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80)화 (68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80화

즉흥적으로 결성된 우리 우비즈에 대한 반응은 몹시도 좋았다.

“와아아아아!”

제작진이 물개 박수를 치면서 반기자, 중년 배우 김정남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것들은 내가 뭐 할 때는 시큰둥하게 보다가, 우리 뉴블랙이 왔다고 눈이 저렇게 뒤집혔어.”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이거 날씨가 어째…….”

먹구름이 낀 하늘을 바라보던 진행자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게 생겼네. 두 사람은 비 내리는 날씨를 좋아해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선배님.”

“그래. 그럼.”

비를 좋아하냐고 편하게 물어보는 질문에 우리가 웃으며 답했다.

“비 오는 날씨 좋아합니다!”

“그래?”

“네, 숙소에서 창밖으로 비 내리는 거 구경할 때는 좋지만 맞는 건 싫은…….”

코코아 마시면서 재즈 음악 틀어 놓을 때만 좋다는 말에 제작진들이 공감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년 배우의 험상궂은 얼굴에도 슬며시 웃음꽃이 피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만.”

“그래도 오늘 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고 있어요.”

비주의 말에 그가 관심을 보였다.

“그건 또 무슨 소리여?”

“비가 오는 걸 보고 저희가 중현 씨한테 기우제 반대 버전을 부탁드렸거든요. 화창한 날씨를 맞게 해 달라고.”

상대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그렇게 해서 비가 멈추면 좋겠네. 중현 씨면 그 말하는 반대로 이루어지는 친구 맞지?”

“네, 어? 아시네요?”

“뉴블랙을 어떻게 몰라. 내가 이름도 다 아는데. 우주, 비주, 중현이, 리혁이, 지호.”

손가락으로 하나씩 꼽는 선생님에게 박수를 치며 대단하시다고 하자 상대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제작진 중에서 선발대가 움직여 월명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가운데, 진행자가 우리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우리 뉴블랙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프로에…….”

“이런 프로라니요.”

“신기해서 그렇지. 저어기 미스터 프로듀서 그런 데서 뒹굴뒹굴해야 되는데 여기 와 있으니까.”

출연 계기라.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미튜브에 올릴 여행이나 일상 리얼리티를 잔뜩 촬영했지만, 그것들은 일반 대중들이 보라고 만든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물론 최근에 <지금부터 우리는>이라는 예능에 출연했지만 이것도 2040 사이의 젊은 세대가 보는 프로그램이고.

“음.”

카메라를 바라보며 얼마 전에 받은 팬레터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저희가 이제 정말 많은 팬레터를 받는데, 팬분들의 연령대가 다양하거든요. 그런데 그중에서 <지금 내 고향은>을 보고 팬이 되신 분이 ‘요런 프로그램들에 나오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거든요.”

미튜브나 예능 재방송은 보기 어려워하는 어르신 팬분들께서 ‘보고 싶어요..’ 하고 보낸 팬레터들.

내 말에 이어서 비주도 답했다.

“저희가 스케줄 때문에 전원이 참석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더 많은 분들과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이렇게 나왔습니다.”

“마음씨가 기특하네.”

김정남 쌤이 우리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갸륵하고 기특한 분위기 속에서 비주와 내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도 이런 김에 트로트 한 곡 뽑아볼까요?”

“음악~ 주세요!”

우비를 입고 신명나게 트로트도 한 곡 뽑아내면서 오프닝 촬영을 끝낸 후.

아직도 빗방울이 멈출 기미가 안 보이는 하늘을 향해 비주와 내가 손을 흔들었다.

“중현아아아! 좀 더 힘내라아아!”

“김중현! 힘내!”

“화창한 날씨!”

“깨끗한 하늘!”

비주와 내가 방방 뛰며 서울에 있는 제사장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에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서 보던 김정남 쌤도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렇게 한다고 비가 멈추겠…….”

그때였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서서히 한 방울씩 멈추기 시작하더니.

“옴마…?”

먹구름이 멀찍이 바다가 있는 방향으로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5분 후.

비에 젖어 축축한 아스팔트 바닥에 따끈한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면서 촬영장에 침묵이 흘렀다.

“……진짜였네.”

중현이 굿 한 번에 얼마 받냐고 농담하던 선생님의 말과 함께 제작진의 감탄 섞인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다.

물론.

‘뭐야. 비가 왜 멈춰.’

‘진짜 멈춰 버렸어요…….’

비주와 내가 눈을 멀뚱멀뚱 뜨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형. 이게….”

“되네…?”

갑자기 화창해진 날씨.

저 멀찍이 곰발바닥을 닮은 구름 하나가 쮸쀼쮸쀼 하고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   *   *

같은 시각. 서울.

“흠…….”

비를 멈추게 해 달라는 농담 섞인 부탁에 심심풀이 기도를 하고 있던 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 형도 은근히 바보야.’

고개를 슥슥 저었다.

‘이런 거 한다고 비가 어떻게 멈춰.’

지도 어플로 띄운 군산 월명공원.

정화수 대신 삼다수를 담은 종이컵.

기도를 멈춘 중현이 종이컵에 담긴 물을 호로록 하고는 노트북으로 믹스테이프 작업을 이어 갔다.

바로 그때.

지이이이이잉-

지이잉-

전화가 걸려 왔다.

[중현아! 비가 멈췄다! 대박!]

[야! 너 뭐 한 거야?!]

덕분에 비가 멈췄다고 고마워하는 두 멤버의 감사 인사가 이어지는 동안 중현은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통화를 종료한 후.

“오오…….”

김중현이 자신의 큼지막한 두 손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니 뭔가 있는 것만 같다.

‘나 좀 대단할지도.’

수긍이 빠른 타입이었다.

행복한 고구마 같은 미소를 짓던 중현이 믹스테이프 작업을 하고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힙합 스웨그 가사를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파트.

“나는 전지전능. 저 하늘의 비도 멈출 수 있어… 요런 느낌으로 쓰면 되겠다.”

입으로 랩을 흥얼거리며 푸근한 미소를 짓는 래퍼.

‘무제’로 작업을 하고 있던 믹스테이프에 ‘Weather Control’라는 제목이 붙는 순간이었다.

*   *   *

월명공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금강산도 식후경>의 컨셉은 간단하다.

말 그대로 일단 밥부터 먹고, 그다음에 주변 볼거리를 챙기면서 배를 꺼뜨린 다음에 또 먹는 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방송.

“어으으, 좋다.”

아침부터 뜨끈한 칼국수 국물이 들어가니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뿌연 국물에 적당히 짭조름한 맛. 뜨거운 국물에 김 가루가 녹아들어 감칠맛을 주고, 젓가락으로 면을 한 움큼 집을 때마다 안에 가득한 해산물이 바스락거린다.

국물을 마시며 행복해하는 나에게 김정남 쌤이 물었다.

“그렇게 맛있어?”

“네.”

“진짜 복스럽게 먹네.”

“이게 진짜 맛있는 것도 있는데, 오랜만에 고향 음식을 먹으니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칼국수가 다 같은 칼국수 아닌가?”

“군산 칼국수는 또 다르죠~”

군산 부심을 자랑하면서 틈새 홍보를 하자, 멀찍이 주방에서 구경하던 가게 직원들과 주변 손님들이 ‘옳지!’ 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비주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우주 형이 진짜 서울에서도 맨날 그래요. 같은 맥도날드도 군산이 훨씬 맛있다고.”

“감자튀김이 다르다니까.”

김정남 쌤이 웃었다.

“그래?”

“네~”

그러면서 비주가 평소에 군산 부심을 드러내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휴지로 입을 슥슥 닦던 김정남 쌤이 물었다.

“그럼 몇 살 때부터 군산에 산 거야?”

“거의 완전 어렸을 적부터 살았죠. 유치원생까지는 서울에 살다가… 초등학생 시절에 왔어요.”

“토박이까진 아니네.”

“근데 기억을 제대로 할 수 있던 순간부터는 거의 군산에 있어서요.”

나한테는 고향이었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적당히 피해 주던 김정남 쌤이 말했다.

“의미가 큰 곳이네.”

“그렇죠.”

우리 김덕순 여사가 있는 곳인데.

어린 시절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비주와 김정남 쌤의 눈길에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초등학생 고학년 되어서는 이제 서울 생활을 시작했어요.”

“혼자서…?”

“네, 당시 TJ 엔터테인먼트로 오디션을 보러 가서 통과하고. 거기서 이제 연습생 합숙생활을 하면서 살았죠.”

“그때 나이가…?”

“초등학교 한 5학년이었나? 이제는 가물가물하네요.”

“그 나이부터…….”

갑자기 눈이 촉촉해지려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내가 화급히 주제를 바꿨다.

“너무 어릴 때부터 연습생으로 살아서 그런지, 체중 관리 때문에 굶고 그럴 때면 꼭 군산에서 먹던 음식들이 생각나더라고요.”

“서울이랑은 또 간이 다르지.”

“네~ 서울에서도 엄청 맛난 거 많이 먹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살던 데 음식이 그리워지더라고요.”

칼국수 국물을 들이켜면서 진짜 너무 좋다고 말하자 김정남 쌤이 웃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노력을 한 덕분에 이렇게 국민 아이돌로…….”

“켁!”

“형, 괜찮아요?”

“컥! 콜록! 쿠훕-!”

휴지로 입을 훔치고는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중견 배우에게 말했다.

“국민 아이돌이란 호칭이 아직도 좀 부끄러워서요…….”

“저두…….”

손부채질을 하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중에서 짓궂은 손님 중에 한 분이 말했다.

“그것까지 들으면 기절하시겠네~”

“예?”

중견배우의 물음에 아침부터 해장술을 마시던 손님이 웃었다.

“아, 군산에는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이 우주 씨가 데뷔하고 나서 군산에 관광객이 엄청 늘었어요. 테레비에서 하도 군산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이 궁금해서 와 본다고.”

“오오오…….”

“그래서 군산시가 아니고 우주시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리혁이가 평소에 어떤 느낌이었는지 알 것 같다. 얼굴이 후끈후끈하면서 어디로 숨고 싶은 느낌.

비주가 박수를 치며 좋아하더니 눈을 빛냈다.

“저 진짜 우주시 되면 제가 시장으로 출마할 거예요.”

“하지 마…….”

“시장이 되어서 우주특별시로…….”

“이야아아! 좋네!”

“어허허허! 좋다!”

야심찬 포부를 밝히는 비주의 모습에 술을 마시던 식당 손님들이 신나게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김비주! 김비주!”

“감사합니다. 여러분!”

껄껄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리는 김정남 쌤의 모습을 보고는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위대했던 군산시를 다시 더 위대하게…!”

근데 구호의 상태가…….

뭐. 괜찮겠지.

*   *   *

“날씨 너무 좋다아~!”

“엄청 들떴네. 우주.”

“너무 행복해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프로그램에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생 때문에도 그렇고 워낙 돌아다니기 힘들 만큼 얼굴이 알려져 있어서 군산에 와서도 평소 나들이를 못했던 터였다.

그 때문에 속속들이 그동안 못 봤던 군산의 모습들이 보인다.

“어?”

비주가 어느 식당을 가리키며 웃음을 터뜨렸다.

“저기 봐요. 형!”

“뭔데?”

“형 오면 무료라고 쓰여 있어요.”

“진짜…?”

<군산의 아들, 선우주 씨는 무료입니다>라고 되어 있는 팻말에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밖에도 나와 관련된 게 진짜 많았다.

“저기 카페 홍보에 ‘우주와 리혁이 온 곳’이라고 되어 있어요. 형이랑 리혁이 사진 붙어 있고.”

“맞아. 저기 갔었어.”

비주가 오전에 먹었던 칼국수집 명함을 뒤적이자, 김정남 쌤이 물었다.

“비주는 또 뭐 해?”

“이따가 아까 그 가게에 전화해서 저랑 우주 형 사진 같이 걸어 달라고 하려고요.”

은은하게 샘을 내는 모습에 나와 중견배우가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힐링 분위기 속에서 ‘선우주의 도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같은 느낌의 군산 구경을 했다.

중간중간 ‘어?!’ 하고 우리를 바라보며 놀라는 사람들과 인터뷰도 하고.

“우리 우주!”

“아이고, 오랜만이에요.”

“테레비에서만 보고 이렇게 처음 보네.”

“그러니까요~ 여기 비주도 있어요.”

“어머어머어머!”

우렁차게 어머를 연호하던 행인 아저씨가 비주와 악수를 나누며 횡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비주까지. 어이구, 경사 났네~ 다른 애들은? 우리 중혀이랑 리혀이, 지호.”

“스케줄 때문에 못 왔어요.”

그러고는 비주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각이죠?’

‘각이다.’

방금 전에 애들 이름을 얼버무린 행인의 말에 파고들었다.

“그런데 저희 멤버들 이름은 다 잘 알고 계시나요?”

“그럼~”

“자. 그러면 김중…?”

“중혀이….”

“기역일까요? 니은일까요?”

얄밉게 깐족거리는 우리 모습에 행인 분이 어흐흠 하고는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 알지~ 김중혀이~ 서리혀이~”

중현과 중혁, 리혁과 리현 사이에서 긴가민가하는 모습에 우리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인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도 ‘중혀이~’ 하며 가시는 분이었다.

내가 진행자에게 말했다.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촬영하는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 되게 재미있네요.”

“그렇지? 지나다니는 돌멩이도 사연이 있다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얼마나 웃긴지 몰라.”

전 국민이 코미디언이라는 김정남 쌤의 말에 공감했다.

예능적인 측면에서 진짜 노다지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연예인이 아니라 재미있는 비연예인을 게스트로 하는 그런 방송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손님이나 게스트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가진 일반인을 초빙하는 식으로.

어쨌거나 좋은 시간이었다.

겸사겸사 연습실에서만 있어서 몰랐던, 일반 대중들이 우리에게 어떤 인식을 가졌는지 알게 되는 계기도 됐다.

“아이고, 우리 뉴블랙이들!”

간식거리를 먹으면서 돌아다니다가 복덕방에서 바둑을 두고 있던 할아버지 3인방에게 붙들렸다.

안부를 묻던 이들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번에 테레비로 빌보드 봤어~ 아이고, 무대도 잘하더만.”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가 고걸 보면서 생각한 게 있어. 이게 한국어 곡이니까 미국에 먹히기가 쉽지가 않은 거야. 팬들도 많아서 좋은데, 이게 전략적으로 접근을 해야 돼요. 전략하면 전명근이거든!”

“전명근이란 분은…?”

“나여.”

“아하아….”

“그러니까 이번에 영어로 노래를 내서 딱 성공하는 거지!”

비주와 내가 조언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하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다.

“뭘 모르는 소리! 한국어로 노래를 하니까 특별한 것이지.”

“아, 그대야말로 모르는 말 말어. 이 팬들이라는 사람은 말이야. 저 숯불탄들은 뉴블랙이 무슨 노래를 하든지 다 좋은 거여. 영어고 한국어고 그냥 편하게 내버려 둬야지. 왜 부담을 주고 그래?”

“글쎄 영어로 노래를 써야 돼. 퐙송을 써야 한다고. 내가 미국파 아녀. 나성에서 말이야.”

“나성이 언제쩍 나성이여?”

나와 비주가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제작진이랑 김정남 쌤은 좋은 장면 건졌다면서 자기들끼리 하이파이브를 하며 좋아하는 중이었다.

가까스로 <뉴블랙의 미국 전략과 세계 진출>에 대해 논의하는 분들에게 탈출한 후.

“다른 게스트들은 이런 거 하나도 못 봤는데 너희는 뭔가 다르다, 야. 사람들이 미국 전략까지 세워 주네.”

“……감사한 일이네요.”

“명절에 시달리는 조카들 같았어.”

정말 적절한 비유 같았다.

사촌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주변 이야기에서 들리는 그런 것들 있지 않은가.

대학 학과 진학을 두고도 ‘스페인어가 뜬댄다! 스페인어과로 가라!’ 하면서 조언해 주는 친척들.

“아. 행복하네요…….”

‘국민 아이돌’이란 호칭을 들었을 때만 해도 민망하면서도 은근 좋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부작용을 느끼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점심으로 짬뽕집에서 짬뽕을 먹으려고 할 때도 주변 손님들이 웅성거리며 쳐다봤다.

가족과 온 어느 어머님이 물었다.

“어머, 우주 위염이라고 그러지 않았니?”

“네.”

“그런데 짬뽕을 먹니? 위장 버리는데.”

“……짜장면 먹으려고요.”

촉촉한 눈빛을 하는 모습에 손님들이 ‘짬뽕 좀 덜 맵게 해 줘요. 사장님. 쟤 위염이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산에 와서 안 매운 짬뽕을 먹는다니.

나를 보던 비주가 고개를 돌리고 뺨을 씰룩였다.

이윽고 나오는 허연 짬뽕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하하…….”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도는 오늘 하루 동안 들은 메아리들. 왜 내가 쓰러졌을 때 회사 분들이 기절했는지 알 것 같다.

-영어! 영어로 곡을 내라!

-초심 잃지 말고 항상 정진하는 자세로.

-위염에 좋은 음식을 말해 줄 테니 다 들어 봐.

-또 시상식 무대 나가면 이번엔 도깨비로 임팩트 있게 시작하는 겨! 국악으로 양놈들 귀를 조지는 거여!

하얀 짬뽕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이렇게 염려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이 어마어마한 행복.

너무나 큰 행복을 받아서 그런 걸까.

……당분간 대중들과는 안 만나도 괜찮을 것 같았다.

*   *   *

점심에는 짬뽕거리를 신명나게 돌고.

군산에 있는 볼거리들에 대해서 내가 설명을 하면서 촬영은 거의 다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후, 하, 후, 하.”

“형. 긴장 풀어요. 릴랙스.”

“후우우…….”

꽃 한 송이를 들고 김덕순 여사의 백반집 앞에 섰다.

이제 곧 최애의 실물을 목격할 시간.

김정남 쌤이 가게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가게가 생각보다는 작네.”

“네, 그렇게 안 커요.”

“여기가 바로 할머님이 우리 우주를 키워 낸 곳이네. 역사적인 장소야.”

“정말 역사적인 장소예요…!”

비주가 그런 말을 하면서 선우주 생가 터를 찍는 사람처럼 사진 촬영을 할 때였다.

“……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미 만석이었다.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처음 보는 알바생이 우리한테 말했다.

“엇… 촬영 나오신 분들이죠?”

“네!”

“본관은 지금 꽉 차서 별관 가셔야 될 것 같은데, 그쪽에서 촬영 준비하시면 될 거예요.”

“별관이요……?”

직원의 안내를 따라 걸어가니 정말 별관이 나타났다.

<순이네 소문난 식당>이라고 아주 화려한 간판이 번쩍이는 4층 건물.

“백반집이 듣던 거랑은 좀 다르네…. 허름하다고 하지 않았나.”

“…별관까지 있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형.”

마치 센과 치히로에 등장하는 온천처럼 웅장한 규모에 김정남 쌤과 비주가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아… 아니에요!”

이게 아닌데.

이 웅장한 건물은 대체 뭐란 말인가.

제작진조차 멍한 얼굴로 거대한 백반집을 바라보고 있을 때, 팡파레 소리와 함께 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유바바가 등장했다.

“어서 오셔요~! 오호호호!”

간드러지는 웃음으로 내면의 옘병을 숨긴 김덕순 여사의 등장에 나도 모르게 할 말을 잃었다.

누가 봐도 부티가 줄줄 나는 느낌.

내 얼굴에 꽂히는 시선이 느껴졌다.

“…….”

“…….”

내 연습생 시절 이야기에 울고 웃었던 제작진과 김정남 쌤이 의혹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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