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87)화 (68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87화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친구.

“야!”

분개한 한조가 옆에서 깔깔 웃고 있는 친구의 옆구리를 쿡 찌르려고 했다.

아니.

찌르려고 했다.

“피했지롱.”

슈슉!

순간적으로 폭발한 얄미움에 손가락으로 콕콕콕! 이곳저곳을 찌르려고 했지만 잔상을 남기며 피하는 친구였다.

3분 정도 치열하게 선우주를 공격하던 한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대만 맞아 주라.”

“싫은데.”

“딱 한 대만 찌르게 해 줘. 나 소원이야. 저번에 받은 소원권 여기 쓸게.”

“알았어. 뭐. 그럼.”

우주가 옆구리를 찌르라는 듯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고개를 끄덕인 한조가 손가락으로 코오옥…!

슉! 슈슉!

“피했지롱!”

“야!”

“깔깔깔깔!”

“아오!”

“찌르게 해 줬으니 소원권 소멸입니다~ 피하면 안 된다는 조건은 없었으니까요.”

괴로워하는 그를 보며 선우주가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악마 같은 놈.’

진짜 이렇게 얄미운 인간이 있을 수가 없었다.

진짜 어떻게 꿀밤 한 대라도 딱 먹이고 싶다. 저 짱구처럼 웃는 머리통에 딱밤이라도 딱 한 대만…….

“얍!”

기습적으로 내지른 손가락.

매트릭스의 주인공처럼 고개를 스윽 꺾어 움직인 우주가 바로 피해 버렸다.

김중현도 박수를 칠 만한 반사 신경이었다.

‘진짜 어떻게 돼먹은 애지.’

운동을 해서 근육을 만들면 뭐 하는가. 저 호리호리한 친구 하나한테 딱밤조차 날리지 못하고 있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친구를 바라보고 있을 때.

뺨을 살살 긁던 우주가 말했다.

“아. 맞다. 잘 지냈냐?”

“……빨리도 물어본다.”

“네가 놀라는 바람에 못 물어본 거야. 너무 놀라니까.”

“아니…….”

뭐라고 논박을 하고 싶은데 머릿속의 논리구조가 엉킨다.

궤변으로 자신을 나쁜 놈으로 만드는 친구의 모습에 한조가 후회 막심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친구하지 말걸.’

데뷔 초만 해도 뉴블랙의 리더와 친구가 되고 싶었던 한조였다.

잘생기고 예의 바르고.

본업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대화할 타이밍이 있으면 ‘우주 씨한테 뭐라고 말을 걸지’ 하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도 했다.

그 정도로 절친이 되고 싶었는데.

“꺄르르륵!”

“…….”

다 한때의 일이었다.

친해지고 나니 같은 그룹 동생들에게 치는 장난 같은 것들이 그에게 고스란히 날아오고 있었다.

‘매니저 특집 때도 그러더니…….’

그런 생각을 하던 한조는 복도에서 마주친 스탭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하는 우주의 모습을 보았다.

‘뭐.’

조금 생각이 바뀐다.

‘이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자기 바운더리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철저하게 선을 긋는지 알고 있는 터라 오히려 친구가 된 게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친해지는 데만 거의 3년이 걸렸으니까.

“아. 맞다.”

우주가 손에 들고 있는 봉투를 뒤적거렸다.

그중에서 작은 선물 상자를 하나 꺼내서 건넸다.

“이건 뭐야?”

“미국에서 사 온 거야. 요술봉 같은 거 팔더라고. 그거 버튼 누르면 불도 들어와.”

“고맙다.”

“핑크색이야.”

“!”

참으로 소중한 친구였다.

입이 찢어지게 벌어지는 것을 멈추며 한조가 선물 상자를 챙겨들었다.

‘침대 옆에 놔야지.’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한조를 보는 친구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 모습에 한조가 ‘음?’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야… 너 왜 마스크 쓰고 있냐?”

후드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쓴 것이, 누가 봐도 정체를 숨기고 움직이는 연예인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DNS 미디어의 연습생들이 레몬 엔터 연습생이라면서 우주를 가리키며 소개했었다.

그건 어찌 된 일일까?

자초지종을 묻는 한조에게 우주가 ‘실루엣 교정술’부터 시작해서 연습생으로 오해 받은 상황까지 설명했다.

“흐하하하!”

“웃지 마.”

“미치겠다. 정말.”

“야. 나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너무 당황했다니까.”

빵 터져서 웃음을 터뜨리는 한조를 보며 우주가 너도 한 번 그 상황 겪어 보라는 듯이 하소연을 했다.

“연습생들이 모여서 ‘우와 레몬이세요?’ 그러는데, 또 옆에선 ‘우주 선배님 닮았다’ 그러지.”

“얘기 안 했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내가 우주라고 이야기해? 그리고…….”

“응?”

“아니다.”

뭔가 더 말하려던 우주가 말을 멈췄다.

왜 정체를 숨기게 된 것인지 이유가 하나 더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음…….”

“뚫어지게 바라보지 마라. 간파하려고 하지 마.”

“으으음…….”

친구를 바라보던 한조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뭔가 이상해.’

사복으로 나왔는데도 꽃무늬나 반짝이 없이 평범한 후드티와 청바지 한 장만 걸치고 있다.

거기에 정체를 숨기려고 쓴 마스크와 푹 눌러쓴 후드 모자.

누가 봐도 선배 가수를 방문하는 연예인의 차림새가 아니었다. 뭔가 비밀리에 방문한 듯한 느낌.

‘게다가 실루엣까지 숨긴다?’

장래희망 1지망 요술공주에 이어 2지망이 탐정이었던 한조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선우주가 스칼렛을 방문했는데 별로 알려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꼭 방문할 만한 이유가 있다.

“아.”

그 순간 한조의 머릿속에 퍼뜩!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다.

“너 곡 썼지.”

“…….”

움찔!

“맞네.”

“아닌데……?”

“맞는데?”

“전혀 아닌데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말이 빨라지는 것을 보니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스칼렛한테 곡 줬구만.’

또 얼마나 괴물 같은 곡을 썼을지 두려워진다.

인성이 안 좋을 뿐 작곡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천재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친구였다.

신인 시절 합동 무대를 했을 때도 편곡하는 걸 보고 식겁하지 않았던가.

“우주선이 곡을 줬다는 그런 근거 없는…….”

“우주선이 아닌 다른 부캐네.”

“…….”

“내가 한두 번 속는 줄 알아? 후후후후. 속아서 아이스크림 갖다 바치고 그랬던 것도 옛날이야.”

사기꾼에게 자주 속다 보니 이제는 속임수가 훤히 보인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우주가 말했다.

“……일단 비밀이야.”

한조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아이스크림 사 줘.”

“예.”

“붕어 싸만코.”

“예.”

“그것만 먹으면 아쉬우니까. 저기 구내 카페 가서 라떼에 휘핑크림 두 번 올리고…….”

“……예.”

그런 식으로 친구를 살살 놀려먹던 한조가 아, 하며 무언가를 떠올렸다.

“근데 너 걸그룹 곡은 처음 아닌가?”

“맞아. 처음이야.”

그래서 엄청 떨린다고 말하는 친구의 엄살에 한조는 속지 않았다.

“또 얼마나 좋은 곡을 만들어 놨길래.”

“그냥 내가 듣기에는 좋아.”

“……일 났네.”

곡 하나 새로 낼 때마다 보이그룹 음악 트렌드를 바꿔버리는 요괴 아니던가.

그 요괴가 이번에는 걸그룹 판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한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곤 멀찍이 선배 그룹인 라비앙로즈가 있는 대기실 방향을 바라봤다.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강력한 우승후보인 스칼렛에게 요괴의 곡까지 들어갔다니. 어마어마하게 험난한 게임이 될 게 분명했다.

‘그래도 우리도 준비 잘 했다니까.’

DNS 미디어도 다른 기획사들과 마찬가지로 심혈을 기울인 터였다.

친구가 그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아마 경쟁이 엄청 치열할 거 같아. 너희 기획사도 두어 달 전부터 곡 의뢰해서 받아갔다며.”

“응?”

“왜 그래?”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 곡 만든 분이 이번에 우리 기획사로 들어왔거든.”

물론 그분이 곡에 관해선 업무상 비밀이라며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말을 해 왔지만 한조는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데려갔지.’

섭외하기 엄청 어려운 사람이라는데, 어떻게 또 레몬 엔터에 들어가게 된 것인지 의문이다.

“궁금하지? 어떻게 된 건지?”

“응.”

“내가 너니까 특별히 얘기해 줄게.”

한조가 침을 꿀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말이지.”

“응….”

“8월 중순. K-net에서 방영되는 뉴블랙 컴백 리얼리티, ‘선우주의 휴식일기’를 보면 그에 관해 알 수 있습니다!”

“…….”

친구하지 말 걸.

*   *   *

“이따 보자~”

“어, 이따 봅세.”

한조에게 손을 흔들고는 스칼렛이 있는 대기실로 향했다.

똑똑.

-네에~!

나윤이 특유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린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서 왁자지껄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덕춘쓰!”

“덕춘 오빠다-!”

스칼렛 멤버들이 예명을 부르며 반겼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들과 헤어 디자이너들이 한창 마무리 세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방에 즐비한 콘센트와 고데기 선, 드라이어 선 등을 피해 가며 소파에 앉았다.

먼저 들어와 있던 민수 씨와도 인사를 주고받을 때.

“오라버니 오셨습니까!”

두 손 모으고 꾸벅 인사하는 데이지에게 미소를 지었다.

“안 하던 거 하지 말고 그냥 앉아.”

“그래도 이제 프로듀서님이니까 예의를 차리는 거야. …근데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야?”

“간식 가져왔어.”

“와아아아악!”

상어처럼 이빨을 드러내는 찹쌀떡에게 봉투에 담긴 간식을 건네주었다.

“우와! 언니들! 이거 봐아아! 쿠키에 우리 얼굴 그려져 있어!”

“비주가 직접 구운 쿠키야.”

“근데 난 왜 이렇게 못생기게 나왔어. 오빠? 트윈테일이 꼭 뿔 달린 요괴처럼 나왔어.”

“네 건 지호가 그려서.”

왕지호를 지구상에서 없애 버리겠다고 말하는 나윤이에게 힘내라고 응원해 줬다.

곧바로 호기심을 보이는 4인조에게 보온병을 꺼내 건넸다.

“이건 리혁이가 준비한 차인데, 이거 마시면 심신이 안정된대요.”

“오오오.”

꼴깍꼴깍.

“근데 저라면 안 마시는 걸 추천해요. 그거 마시면 번뇌망상이 사라지거든요. 무대 왜 하나 싶고.”

“……콜록!”

“무슨 재료가 들어가는지는 아직까지 비밀이에요.”

콜록거리는 이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이번에는 중현이가 준비한 것을 건네주었다.

“이건 중현이가 쓴 부적이에요.”

“오오오오오!”

나뭇잎에 주초위왕을 새긴 것처럼 ‘불행, 근심, 걱정’ 같은 키워드가 적힌 나뭇잎을 건네주었다.

반대로 이뤄지는 자체 부적.

고맙다며 답례를 전해 달라는 스칼렛 멤버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다 같이 소파에 둘러앉았다.

“우리 오늘 어때?”

“멋진데요?”

“칭찬 말고 프로듀서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리더인 아라가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음…….”

스칼렛 멤버들이 원했던 그대로의 의상 같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올 법한 여신들이 인간계에 팝 스타가 되어 내려온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아이라인에 힘을 줘서 인간 세상과 동떨어진 미를 표현한 듯하고.

보석이 반짝거리는 붉은 드레스나 팝스타 느낌의 검은 재킷이 광택을 빛내는 게 근사하다.

특히나 색이 들어간 무대용 안경을 살짝 걸치고 있는 리나의 모습에 감탄이 흘러나왔다.

“대박인데요.”

사실 의상 쪽은 잘 모르겠다.

다만.

“곡이랑 진짜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그치?”

스칼렛 멤버들이 행복하게 웃었다.

무대 준비가 잘 된 것 같다며 꺄르르 웃는 모습에 나도 미소를 지었다.

곧 리허설이라는 말에 응원의 말을 건네줄 때였다.

“스칼렛 분들 스탠바이 하실게요!”

“네!”

FD의 말에 스칼렛 멤버들이 으으 하며 몸을 떨었다.

<더 스피릿>의 최종 경연.

최종 리허설을 앞두고 4인조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거나 다리를 길쭉하게 늘렸다.

“후.”

잔뜩 긴장된 얼굴로 벽을 잡고 스트레칭을 하는 리나에게 물었다.

“많이 긴장돼?”

“응.”

리나가 목을 쭈욱 늘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 곡으로 1등 못하면 진짜 망신살 뻗치는 거라서…….”

“그게 왜 망신이야.”

스칼렛 멤버들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망신 맞지.”

“최상의 무대를 해야 본전인 곡이잖아. 이걸로도 우승 못하면 진짜 실력파 걸그룹에서 실력파를 빼야 돼.”

“우리 이거 못 살리면 얼굴이 예뻐서 떴다는 소리만 듣게 될 거야. 언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자기들끼리 솔깃해하다가 빵 터져서 다시금 와글와글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웃었다.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서 어떻게 응원을 해 줘야 하나 멘트를 고심했는데.

알아서 본인들끼리 멘탈을 잘 챙기는 6년차 선배들의 모습에 걱정을 놓았다.

그리고.

인망이 좋은지 다른 걸그룹들도 수시로 문을 열고 말 한마디씩 하고 가곤 했다.

“여, 빨강이들! 힘내쇼!”

“여~!”

“어차피 우리가 이길 거지만~”

“우우우우우! 문이나 제대로 닫고 가! 에어컨 바람 나간다아아~!”

원래부터 스칼렛과 친하기로 유명한 DNS 미디어의 걸그룹 라비앙로즈도 중간에 ‘여~’ 하고 지나가고.

“선배님들 화이팅~!”

“화이팅~”

NYX나 다른 걸그룹들도 인사를 하러 왔다.

걸그룹들끼리는 어떻게 노는지 몰라서 궁금했는데 보이그룹이랑 똑같은 것 같다.

그리고 그중에서 의외의 인물도 있었다.

“언니들, 안녕하세요.”

11년도에 데뷔한 7년차 최고참, 걸스온탑의 막내 길채경이었다.

지호와 앙숙으로 알고 있는 그 멤버.

무대 최종 리허설을 마치고 내려왔는지 힙한 하이패션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있다.

“어……?”

수더분하게 인사를 하던 길채경과 눈이 마주쳤다.

‘뭘 봐요’ 같은 눈빛을 예상했는데, 살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슥 숙인다.

“안녕하세요. 오빠.”

“네, 안녕하세요.”

굉장히 까칠했던 성격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뭔가 순한 성격에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

응원차 왔다며 스칼렛 멤버들에게 간식거리를 선물하는 길채경에게 아라가 토닥토닥해 주며 웃었다.

뭔가 따스한 빵집을 방문한 듯 뭉클해하는 걸스온탑 막내를 잠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이따 봐.”

“네, 언니들 무대 잘하세요.”

차분하게 문을 닫고 나서는 이의 모습에 눈을 깜빡였다.

분명히 같은 사람인데 뭔가 다른 느낌.

게다가 스칼렛이랑 걸스온탑은 데뷔 초부터 앙숙 같은 관계라고 알고 있었다. 팬덤간 신경전도 좀 심했고.

“친해졌어요?”

“응. 서바 찍으면서 좀 친해졌지. 걸스온탑 매니저 잠수 탔을 때 우리가 좀 도와주고 그랬거든.”

“아…….”

걸스온탑의 소속사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국계 자본으로 움직이던 화이 엔터가 도산하면서 본인들이 자체 소속사를 차렸다는 그런 이야기.

아라가 미소를 지었다.

“쟤네도 옛날이랑 다르고, 우리도 옛날이랑은 또 다르고. 너도 알다시피 보이그룹, 걸그룹끼리 모이면 막상 잘 통하잖아. 다 똑같은 생각하고 똑같은 고민하고 사니까.”

“그렇죠.”

“사실, 같은 고깃집에서 합석하다가 친해졌어.”

나윤이의 속삭임에 아 하고 웃었다.

쭉쭉 스트레칭을 하던 선배 가수들이 나갈 채비를 하면서, 메인 보컬 봄이 나한테 손을 마이크 모양으로 내밀었다.

“자, 이제 곧 생방송이라 이게 마지막으로 보는 걸 텐데. 우리 프로듀서님 한마디 해 주세요!”

“한마디!”

프로듀서로서 준비한 말들을 떠올렸다.

그간의 녹음이나 연습 과정을 보면서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무대에선 요렇게’ 하면서 몇 가지 조언을 해 줄 생각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런 조언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프로다.

“최선을 다했잖아요. 즐기고 오세요.”

“…….”

잠시 말없이 날 지켜보는 스칼렛 멤버들.

그 속에서 아라가 내 어깨를 자상하게 붙잡았다.

“우주야.”

“네, 누나.”

“보탬이 안 되는 감상적인 멘트 말고 제대로 된 조언 좀.”

“네…….”

웃음을 터뜨리는 스탭들과 스칼렛 멤버들에게 핸드폰을 꺼내 미리 준비한 당부사항을 읽어 주었다.

*   *   *

TBC 일산 방송국.

6번 스튜디오.

방송국 바깥에서는 입장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돌 팬들이 줄을 서고 있을 무렵.

-스칼렛 최종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스칼렛의 신곡인 ‘Not Fine’이 울려 퍼지면서 무대 위에 올라선 걸그룹 멤버들이 화려한 춤을 선보였다.

팔과 다리가 어찌나 빠르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지 마치 잔상을 남기는 느낌.

‘잘한다.’

‘확실히 잘해.’

카메라 감독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퍼포먼스로 이름 높은 그룹다웠다. 저 시원한 춤선을 볼 때마다 가슴이 뻥 하고 뚫리는 느낌.

‘확실히 춤이 다르긴 하네.’

운동할 때도 원래 안 되는 동작인데 힘으로 해결한다는 말이 있듯이, 춤도 그런 느낌이었다.

힘이 원체 좋아서 다른 걸그룹은 못하는 동작도 잘하는 느낌.

그 때문에 간혹 여성적인 느낌이 부족하다는 비난이 있다고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은 언제나 감탄하곤 했다.

“이야, 잘해.”

“스칼렛은 진짜 무대 할 때 보면 누가 빙의하는 거 같아요. 완전 다른 사람 같아.”

“저런 거 요즘 애들은 뭐라더라. 아수라 백작 같은 거.”

“반전 매력이요.”

그렇게 무대에 집중하던 스탭들이 감탄했다.

“근데 노래가 너무 좋은데?”

“노래가 정말…….”

연출부의 표정이 밝았다.

벌써부터 시청자들의 반응이 기대가 된다고 할까.

도입부 듣자마자 ‘이건 끝났다’ 할 만한 곡이었다. 도입부와 초반 인트로부터 확! 제압하고 들어오는 느낌.

-감사합니다!

리허설을 마치고 내려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노래가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와…….”

그것은 6번 스튜디오의 문 근처에 귀를 가져다대고 있는 매니저들도 마찬가지였다.

각 기획사들이 보낸 로드 매니저들.

스칼렛의 곡이 어떤지 염탐하러 온 이들이 저마다 ‘대박’하며 입을 가렸다.

“너무 좋은데요?”

“레몬이 곡을 너무 잘 뽑았네.”

“요새 프로듀싱팀 엄청 증강한다잖아요. 유명한 작곡가 분들 채간다고 그러던데.”

우리 그룹이 큰일이 났다는 생각이 아니라 곡에 대한 감탄사가 먼저 나오는 퀄리티였다.

매니저 중 하나가 소곤거렸다.

“근데 소문 들어 보니까 이거 신인 작곡가가 썼다고 하더라고요.”

“신인이요?”

“거의 첫 곡이라는 것 같던데요. 저도 잘은 모르는데 스탭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 돌더라고요.”

“와. 그런 사람이 재야에 묻혀서…….”

매니저 하나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로드 매니저들이 저마다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요새 이 정도로 대박인 노래는 처음 들어 본 것 같은데 차트 상위권 갈 거 같죠?”

“백 퍼예요. 백 퍼.”

“간만에 우주선이 안 쓴 곡이 1위 갈 수도 있겠네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좀 많이 차지했어요?”

“이런 곡이 좀 올라가야죠. 요새 차트 다양성이 좀 없어진 것 같다고 말이 나오기도 하고…….”

그때 다른 매니저가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옆구리를 쿡쿡 쳤다.

‘저쪽.’

‘아.’

레몬 엔터 출입증을 걸고 있는 인물이 주변에 우두커니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제야 입조심을 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신참 매니저들이 아차 하고 있을 때.

꾸벅.

“……?”

뭔가 기쁘다는 듯이 감사 인사를 하는 레몬 엔터의 로드 매니저에게 그들도 어색하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들이 눈을 마주쳤다.

‘뭐지?’

‘굉장히 기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스칼렛 팀은 뉴블랙을 별로 안 좋아하나?’

뉴블랙 우주선이 너무 해먹어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는데.

뒤돌아서는 레몬 엔터 직원이 몸을 둠칫둠칫 흔들며 좋아하는 모습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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