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88화
일산 스튜디오 앞.
방청을 앞둔 팬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흐어…….”
앞줄에 서 있던 팬들이 뒷줄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진짜 끝없이 오네요. 오늘 방청 인원 역대급인가 보다.”
“와, 대박.”
“장난 아니네…….”
파이널 경연이라 그런지 인원이 역대급으로 많아 보인다.
대다수는 팬카페에서 방청 신청을 하고 온 걸그룹 팬들이었지만 중간중간 일반인들도 끼어 있는 분위기였다.
‘머글들한테도 방청 신청 받았나 보네.’
걸그룹 팬들이 콧김을 내뿜었다.
‘제작진 놈들. 티켓이 남아돌면 팬들 방청 인원이나 더 늘려 주지.’
지금 온라인에 <더 스피릿>의 최종 경연 방청 추첨에 떨어져서 슬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제 몫까지 응원하고 와주세요ㅠㅠㅠㅠㅠ
-우리 애들 얼굴 직접 보고 싶었는데ㅠㅠㅜㅜ
-나는 또 떨어져따
-TV 보면서 치킨이나 먹어야지..
너라도 재미있게 보고 와! 하는 동료들의 메시지에 아이돌 팬들이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원 조진다.’
파이널 경연답게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설렘과 비장함이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난 8주 동안 얼마나 치열했던가.
미튜브로 경연 영상 조회수 비교, 현장 투표, SNS 점수 등등.
팬덤한테 노동을 강요하는 TBC에 맞서…지 못하고 장렬하게 굴복해 온갖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던 팬들이었다.
‘반드시 1등 만든다!’
악과 깡으로 가득 차 있는 돌덕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각오를 다졌다.
그러고는 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전의를 불태웠다.
“이거 1시간 전에 혜나가 올린 SNS래요.”
“귀여워…. 응원 조져야지.”
“유빈이는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지. 되게 사람 자체가 러블리한 거 같지 않아요?”
자기 아이돌의 SNS나 사진, 저번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이돌 팬들.
스칼렛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흐헤헤… 리나 예쁘다.”
“나윤이가 올린 사진 봤어요? 저번 의상 진짜 너무 예뻐요. 존예…….”
“저는 제가 얼빠가 아닌 줄 알았는데, 정신 차려 보니까 애들 사진 500개씩 저장하고 있더라고요.”
미모 부심으로 가득한 스칼렛 팬들이 저마다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서 꺄아악 하고 있었다.
‘존예다. 존예.’
얼굴만 봐도 보배로운 우리 언니들이었다.
과거 돌림픽에서 아이돌들이 뽑은 미모 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팬이 아닌 사람들도 홀린 듯이 저장하게 되는 움짤을 다수 보유한 여신들. 항상 예쁜 걸로 유명한 최애들이었다.
하지만 스칼렛의 팬들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은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 언니들 무대도 잘한다!’
바로 무대였다.
미튜브에서도 댄서들이 ‘와… 댄서처럼 춤추는데요’ 하며 리액션 영상을 찍을 만큼 퍼포먼스가 화려한 걸그룹.
대개 얼굴 보고 ‘음?’ 하고 힐끗 보다가 연말 무대 영상을 보고 입덕하는 것이 스칼렛 팬덤의 대표적인 입덕 경로였다.
‘우리 언니들 무대 잘하는 거 온 세상이 다 알아야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팬들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규호 씨…….”
“안 돼요.”
“아, 규호 씨라고 그냥 한 거예요.”
“아. 전 또…….”
팬들 사이에서 아련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간 스칼렛 팬들이 당한 전적이 많은 만큼 핸드폰에 ‘규호’만 쳐도 자동완성으로 ‘규호 씨ㅂ…’ 하고 나오는 스칼렛 팬들이었다.
-시발 팬덤명이 커튼.. 뒤진다
-머머리색기가 팬덤명을 정해도 커튼???? 커트으으으느능ㅇ???
-규호 진짜 우리한테 잘해야지
-응원봉도 커튼봉 시발 지금이야 다들 웃어넘기는 거지 그때 당시 팬덤분위기 존나 흉흉했슴
-커튼봉 모양이 진짜 커튼 거는 데랑 똑같은 모양이어서 아씨발 다시생각하니깢ㄴ빡치네
-규호야 이 씨
-우린 커튼이라서 뉴블랙처럼 수플레빵도 못해
스칼렛 초창기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자칭 ‘굿 아이디어’가 폭발했던 박규호 대표가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해 생긴 일들…….
“요즘에는 잘하니까 다행이죠. 초창기에는 이벤트나 이런저런 아이디어 낼 때마다 욕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우리 팬덤 한창 욕쟁이 할매 이미지일 때가 있었죠…….”
“그래도 요새는 좋아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에는 진짜 행복 덕질이지.’
후배 그룹인 뉴블랙 덕분이었다.
뉴블랙이 돈을 너무나 많이 벌어와서 이른바 낙수 효과가 벌어지고 있었다.
-니, 님들 이거 봐요! 매주 스페셜 스테이지가 올라온대요!
-뭐야. 이벤트 퀄 존나 좋아졌네.
중소 기획사 특유의 느낌이 사라지고, 요새는 대형 기획사 걸그룹을 덕질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부내 나는 자체 예능 컨텐츠도 줄줄이 올라오고.
번쩍거리는 스테이지에서 무대 영상을 따로 찍은 영상들도 올라오고.
굿즈 퀄도 훨씬 좋아지고.
최고의 작곡가들로 구성된 프로듀싱팀이 만들어 내는 노래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다.
“오늘 기획사별로 신곡이라 하던데. 우리 노래 좋겠죠?”
“좋은 거 나왔으면 좋겠다….”
“조 이사님은 이번에 참여 안 했다던데요. 어찌 됐든 좋은 곡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요. 이번에 흐름 쫙 탄 김에… 곡도 빵 터뜨리고.”
서바이벌 출연 전까지 침체기를 겪고 있던 팬덤이었다.
매번 앨범 나올 때마다 ‘대박!’ 하고 좋아하는데 왠지 모르게 트위터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
있는 사람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뉴비가 안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걸그룹 여섯 팀이 서바이벌에 출연한 계기일 터였다.
매년 GDP가 성장을 해야 경제가 좀 돌아가듯이 아이돌 팬덤도 새로운 유입을 끌어 낼 성장 동력이 있어야 제대로 굴러가는 구조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서바이벌 출연은 신의 한 수다.’
어쨌거나 그 덕에 삐약이들이 ‘뉴비 왔쪄요!’ 하면서 활력을 주고 있었으니까.
스칼렛 팬들이 심호흡을 했다.
‘오늘 무대에서 뭔가 빵 터졌으면 좋겠는데…….’
정규 앨범까지 기다리는 건 길다.
이 뉴비들을 계속해서 붙잡고, 팬덤에 활력을 줄 만한 그런 무대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자!’
스칼렛 팬들이 저마다 미니 커튼이 깃발처럼 달려 있는 ‘커튼봉’을 꺼냈다.
펄럭-
펄럭-
뭔가 사상적으로 위험해 보이는 색의 붉은 깃발이 펄럭이면서 주변 사람들이 움찔할 때.
‘내래 다른 돌덕 동무들에게 스칼렛 팬의 위엄을 보여 주갔어…!’
‘간나들! 빨간 맛 한 번 보라우!’
깃발을 든 스칼렛 팬들이 위풍당당하게 입장했다.
* * *
“으흐흐흐흐.”
-기분이 좋아 보여요. 형.
“흐하하하하!”
고개를 갸우뚱하는 졸개들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그러는 거 있지. 이제 우주선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거라고 하는데 내가 쓴 줄 모르나 봐.”
-허어어어.
비주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김덕춘으로 이름을 쓴 게 진짜 훌륭한 전략인 것 같아요. 차트를 통치하지만 아무도 우리인지 모르는 거예요.
-우리가 차트를 지배한다…!
-꼭두각시를 세워두는 게 이런 거죠. 이게 바로 수렴청정.
-우리가 흥선대원군이다!
이해력이 빠른 졸개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곡 대박이 날 것 같다며 설레발을 치고 있는데, 리혁이가 새초롬하게 물었다.
-그런데 오늘 언제 올 거예요? 경연 다 보고 올 거예요?
“스칼렛이 5번인가 그럴 거야.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어서 경연까지 보고 바로 돌아가려고.”
-천천히 와오.
“와오…?”
-꿀꺽… 와요.
뭔가 목울대로 넘어간 것 같은데.
그제야 동생들의 영상 통화 각도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올려 두고 그 위에 얼굴을 옹기종기 얹은 느낌.
“잠깐만. 천장 벽지 색이 왜 그래?”
-음? 뭐가요?
중현이가 모르는 척하며 몸을 꾸물꾸물 움직여 천장이 안 보이게 덮었다.
-치이이익.
“치이익?”
뭔가 불판에서 지글지글 끓는 소리.
아니. 다년간의 고기러의 경험으로 보아할 때, 이것은 숯불구이 불판 아래 물이 부족할 때 나는 소리다.
“……잠깐만.”
이거 설마.
“너네 지금 나 빼고 고깃집에서 고기 구워 먹는 거야?”
-아닌데용.
막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꽃등심 추가 왔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
-…….
“…….”
-오해하면 안 돼요, 형. 연습생들 고기 사 주러 온 거예요. 이거 파이널 경연도 보여 줄 겸 해서….
비주가 카메라를 넘겨서 하얗게 몽글몽글한 우리 레몬 어린이들을 비추었다.
고기를 우물거리던 진후가 일어나서 ‘안녕하세요!’ 하는 모습에 내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많이 먹어.”
다시금 카메라가 동생들에게 향했을 때, 방긋 미소를 지었다.
“잘했어. 연습생들 고기도 먹이고.”
-방금 전에는 굉장히 삐지려고 했던 것 같은데.
“에이, 무슨 소리…….”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오!”
뒤편에서 활기찬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해서 리트리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DNS 미디어의 연습생이 무리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지혁이 형~”
-지혁이 형…?
통화 목소리를 들었는지 연습생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뉴, 뉴블랙……!”
“안녕하십니까!”
핸드폰을 향해 허둥지둥 90도 각도로 인사하는 연습생들의 모습에 동생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비주가 눈동자를 위아래로 슥 움직이더니 나긋한 미소를 지었다.
-응. 지혁이 친구들이니?
-지혁아!
-야!
이 틈을 타서 ‘야! 야!’ 하는 막내들의 모습이 얄밉다.
잠시 뉴블랙과 이야기를 하면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연습생들을 보면서 뒷목이 당기는 느낌을 받을 때.
중현이가 뺨을 씰룩이며 말했다.
-그래. 지혁이가 고생이 많네. 공연 잘 보고 오고.
“예…….”
-우리 지혁이 진짜 레몬 엔터의 보배지. 에이스고.
막내가 화면을 슥 돌렸다.
그러자 리혁이가 띄워 준 문구를 읽는지 연습생들이 작위적인 어조로 외쳤다.
-지혁이 형! 우리 몫까지 잘 보고 와!
단체 사기단이다. 이놈들.
막내나 중현이가 눈치 없이 ‘음? 형을 왜 그런 이름으로 불러요?’ 라고 해서 선우주로서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했는데.
나의 자만추는 실패해 버렸다.
‘너네 나한테 이럴 거야?’
‘깔깔깔깔깔!’
졸개들이 손을 흔들었다.
-지혁이 힘내. 우린 고기 먹을게~!
-혁이 안뇽!
……통화를 종료하고 나서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다시금 허리를 꾸벅 숙이고 있던 연습생들이 ‘와’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와. 뉴블랙 선배님들이다.”
“근데 우주 선배님은 어디 가셨지?”
“그러게.”
……너희 앞에 있어.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하다.
뭔가 돌아가는 상황으로 ‘우주 선배님!’ 하고 나를 알아보는 게 정상인데, 이미 나를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지 눈치를 못 챈다.
“어?”
연습생 중 하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네. 맞아요.”
마스크 위로 손을 올렸다.
“저 사실 김지혁 아니고 선우…….”
“연습생 두 분이라고 했는데 한 분은 어디로 가셨…….”
“네?”
내 정체를 눈치챈 것 같아서 그냥 마스크를 쏙 내리고 얼굴을 보여 줬는데.
뭔가 대화가 이상했다.
“…….”
“…….”
입을 떡하니 벌리고 눈의 초점이 사라진 DNS 미디어의 연습생들.
석상처럼 굳어진 모습에 내가 어색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
“저기…….”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는 DNS 미디어의 연습생의 모습에 말을 하다가 멈췄다.
아니.
왜 쓰러지는 건데?
* * *
“많이 놀랐어요…?”
“허어어억… 허어어…….”
가슴에 손을 올린 연습생 계홍주가 침을 삼켰다.
“시, 실존 인물이셨군요.”
“네?”
“아, 아닙니다. 저 당황하면 아무 말이나 막 나와서요. 죄,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요. 제가 말 안 해서 오해하게 만든 건데.”
원래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러다가 끌려갈 것 같았다.
‘지혁이 형! 저희랑 같은 자리에서 보시죠!’ 하면서 끌려가다가 ‘왜 마스크 쓰세요?’ 라고 하면 할 말도 없고.
그래서 그냥 이참에 얼굴을 오픈하고.
“저를 여기서 봤다는 건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누가 칼을 들이밀어도 말 안 하겠습니다!”
“칼을 들이밀면 해야죠.”
“맞습니다. 선배님 말씀이 맞습니다…! 칼을 들이밀면 바로 외치겠습니다.”
본인이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한조를 바라볼 때와는 다르게 뭔가 몽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살아 있는 반인반신이 된 느낌이다.
“……선배님.”
침을 꿀꺽 삼킨 계홍주가 손을 달달 떨며 내밀었다.
“저 너무 영광인데 악수 한 번만.”
“네.”
“저, 저도!”
“저도 악수 한 번만.”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연습생들에게 악수를 해 주고는 구석진 자리에 가서 셀카도 같이 찍어 줬다.
병아리들이 기뻐서 ‘선우주랑 사진을 찍어따…!’ 삐약삐약하는 느낌이었다.
“펴, 평생 가보로 간직할게요.”
“그럴 필요는 없고…….”
흥분하는 연습생들을 차분하게 달래 주었다.
나를 본 게 그렇게 신기한가.
작별 인사를 하며 돌아갈 때도 뒷걸음질하면서 꾸벅 하던 연습생들 일부가 엎어지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이 상황을 초래한 졸개들을 떠올렸다.
“졸개 놈들…….”
어디선가 네 명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느낌.
사실 따지고 보면 내 실수로 시작된 거긴 하지만… 아무튼 졸개들 잘못이다.
“어디 보자…….”
DNS 미디어의 연습생들을 보내고 관계자용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제작진들이 모여서 모니터링을 하는 곳.
백스테이지 부근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쪽이라서 각도가 조금 별로긴 하지만, 무대를 직접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머, 어머!”
화들짝 놀라는 작가들과 스탭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대본을 쥐고 있는 PD님과 인사를 나눴다.
메인 PD 두 분 중 한 분인데, 비주가 출연한 댄스 경연 프로그램 를 기획하신 분이었다.
“우주 씨 오셨어요?”
“오랜만에 봬요. 피디님.”
악수를 나누면서 선물을 건넸다.
“비주가 피디님한테 드렸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쿠키를 구웠어요. 달콤한 것 좋아하신다고.”
“세상에… 감사합니다.”
곧이어 나를 따라 들어온 민수 씨도 스탭들에게 커피를 조금 돌리면서 분위기가 좋아졌다.
남들 일하는 데서 유유자적 구경하려면 기름칠을 할 필요가 있었다.
“와. 커피 선물은 간만에 받네요.”
“그런가요?”
“네, 저희 이번에 서바이벌 하면서 커피도 안 받았거든요. 저희가 공정성 있게 심사를 해야 되니까.”
매니저들이 방송국 스탭들에게 커피 돌리는 것은 흔한 일인데, 편파 판정 시비라도 걸릴까 봐 금지했다는 모양이다.
그만큼 공정한 진행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나.
서바이벌 치고 기획사들한테서 잡음이 안 나왔다는 것도 아마 이런 부분까지 세밀하게 신경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네! 총 상금 10억의 주인공… 누가… 흠흠… 총 상금 10억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요!]
스테이지 위에서 MC를 맡은 백상중 아나운서가 큐 카드를 보며 마무리 리허설을 하는 게 보였다.
팬들이 많이 들어왔는지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려오고.
뜨끈한 열기가 백스테이지까지 넘실넘실거리는 느낌이다.
가수들이 입장하고 퇴장하는 반대편 백스테이지에서 알록달록한 머리통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보인다.
곧 생방송을 시작할 타이밍이었다.
“제가 다 떨리네요.”
“모두가 떨리는 순간이죠.”
무전기를 든 피디님이 지시를 내리면서 현장에 스탠바이가 되기 시작했다.
TV와 똑같은 화면이 송출되고 있는 모니터에도 [30]이라는 카운트다운 숫자가 써 있었다.
[이것이 뉴블랙의 속도다.]
올해 새로 찍은 통신사 광고에서 중현이가 멋진 척하는 장면이 끝나고.
TV 화면에서 본격적으로 방송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오늘 방송 내용 소개] VCR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대 영상만 본 나는 왜 이 서바이벌이 그토록 잘 됐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TBC 사장 심원섭입니다.]
초장부터 중후한 풍채를 자랑하는 TBC 방송국 사장이 자기소개를 하는 가운데.
특수 요원처럼 선글라스를 낀 경호원들이 사장님 앞에 007 가방을 내려놓았다.
[딸깍.]
가방이 열리면서 노란색 5만원권 소품들이 영롱한 광채를 드러냈다.
[저희 TBC가 준비한 이번 상금 10억입니다.]
“……!”
[가지고 싶죠?]
현찰 10억.
현장에서 웅성거리면서 와아-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내가 피디님에게 물었다.
“생방송에 이렇게 나가도 괜찮나요…?”
“방심위 제재 맞을 겁니다. 아마도.”
“…….”
“하지만 시청률은 잘 나오겠죠.”
타락한 사람의 웃음소리를 내던 피디님이 은근하게 물었다.
“어떠신가요?”
“네?”
“저희가 뉴블랙 TV를 보면서 많이 연구했거든요. 어떤 식으로 해야 화제성을 끌고 갈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주목하는지…….”
“…….”
“지금 보시는 게 바로 그 연구의 결과물입니다. 후후후.”
“그…….”
연구 방향이 좀 잘못되신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