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89)화 (68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89화

10억이 담긴 상자를 보여 주던 TBC 사장님이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오늘 여러분의 투표로 10억의 주인공이 결정됩니다.]

와아아아아- 하는 함성이 객석에서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후끈후끈한 열기였다.

“생방송 스탠바이 들어갑니다. 셋, 둘, 하나. 큐!”

무대 위로 올라선 백상중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들고 오프닝 멘트를 외쳤다.

[국내 최고의 걸그룹 대전!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은 최고의 무대가 펼쳐지는 ‘더 스피릿 : 별들의 전쟁!’ 지금 여러분은 일산 TBC 드림센터에서 진행되는 생방송을 보고 계십니다!]

남녀가 골고루 섞인 함성이 터져 나온다.

현장 분위기가 어찌나 뜨거운지 피디님을 비롯해 제작진들의 얼굴에 싱글벙글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자! 그럼 오늘의 참가자들을 한 팀씩 만나 보실까요?]

곧이어 한 팀씩 올라와서 자기소개를 했다.

그때마다 함성과 응원이 쏟아지는데, 보이그룹과 다르게 함성이 저마다 달라서 독특한 느낌이었다.

피디님이 재미있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룹별로 특징이 확 느껴지지 않아요? 함성만 들어도 딱 느낌이 온다니까요.”

“전부 다 다르네요.”

성별 비율과 관계없이 정말 그룹별로 함성이 다 다르다. 여자 팬들의 축구장 함성도 있고 남자 팬들의 하이 피치 함성도 들린다.

그때, 옆구리에 대본을 끼고 있던 메인 작가님이 물었다.

“뉴블랙 팬분들은 함성이 어때요? 걸그룹 팬들 함성만 듣다 보니 궁금해서.”

“저희는…….”

머릿속으로 울려 퍼지는 괴수의 울음소리.

-크르르르르르르!

-크롸라라라라라!

-컹! 컹!

눈을 깜빡이다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근사해요. 되게 우아하게 소리를 내시거든요.”

“그렇구나.”

작고 소중한 수플레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기로 했다.

[네! NYX!]

TJ 엔터의 4인조 걸그룹이 나오면서 함성이 다시 한번 또 커졌다.

밤의 여신 닉스(Nyx)를 모티프로 한 그룹답게 신화 속 여신들처럼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나온 4인조였다.

초창기만 해도 부침의 시절을 겪었지만, 대형 기획사 TJ의 뛰어난 기획력에 힘입어 현재 걸그룹 중에서 1군으로 꼽히는 그룹이다. 팬덤 크기만 따지면 여기가 제일 크다고 들었다.

그런 이유로 오늘 강력한 우승후보 세 그룹 중 하나였다.

[걸스온탑!]

‘Girls On Top’이라는 검은 바탕의 황금색 로고가 나타나더니 6인조 걸그룹이 하이패션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올라왔다.

“허어어… 의상 진짜 예쁘다. 저거 브랜드 어딜까요?”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아니, 알아달라고 부탁드린 건 아닌데…….”

민수 씨가 내 말에 핸드폰을 꺼내 토도독 입력했다.

힙하다는 느낌을 주는 의상을 입은 걸스온탑이 무대에서 포즈를 취하면서 꺄아악! 하는 익룡 소리가 터져 나왔다.

걸스온탑도 이번에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였다.

처음 시작 때만 해도 7년차로 팬덤이 작아진 상황이었다는데, 무대를 잘해서 신규 입덕이 엄청 늘었다고 들었다.

제2의 전성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을 만큼.

[마지막으로 스칼렛!]

고혹스러운 메이크업을 한 스칼렛이 무대 위로 올라오면서 환호성과 함께 술렁이는 소리가 들린다.

‘존나 예뻐’ 같은 외침이 들려오는데 괜히 내가 흐뭇하다.

팝스타처럼 검은 재킷이나 블링블링한 드레스를 걸친 이들이 포즈를 취하면서 현장의 함성이 터졌다.

“와…….”

우승 후보 세 그룹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는 우리 회사 선배들이었다.

출연하는 여섯 그룹 중에서 팬덤이 NYX 다음으로 큰 편에 속하기도 하고.

이번에 퍼포먼스로 빵 터뜨린 무대가 한두 개가 아니어서 대중들이 가장 호감을 가지고 있는 그룹이었다.

“진짜 쟁쟁하네요.”

“이 라인업 모으느라 고생했죠. 기획사 찾아가서 손이 발이 되도록 출연해 달라고 빌고.”

피디님의 말을 들으며 무대 위에 올라온 여섯 팀을 바라보았다.

리더들이 각 팀의 각오를 말하는 동안 앞선 우승후보 외의 다른 그룹들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우리보다 조금 더 일찍 데뷔한 소녀 컨셉의 가을소녀.

메인 보컬급만 모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막내 그룹으로서 패기를 보여 주고 있는 하이컬러.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라비앙로즈.

“와…….”

평소에 무대 영상을 보면서 ‘저 그룹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던 그룹들만 모여 있었다.

이런 그룹들을 다 알아본 피디님의 선구안에 감탄했다.

“어떻게 다 알아보고 섭외를 하신 건가요?”

“사실 제가 다 알아본 건 아니고요. 이번 서바이벌을 준비하는데 비주 씨의 도움이 컸어요.”

“비주요?”

갑자기 소환된 우리 애의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비주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나요?”

“아뇨. 그건 아니고 예전에 회의할 때 비주 씨와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시즌 2를 하게 된다면 추천할 만한 댄서들이나 그룹들이 있냐, 이렇게 물어보니 명단을 쫙 적어 주시더라고요.”

“진짜 비주답네요.”

“거의 백 명을 적어 주셨어요…….”

춤 얘기만 나오면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신이 나는 것이 우리 둘째 아니던가.

“마침 회사에서 걸그룹 서바이벌을 한다고 해서 참가자들을 꾸리는데, 그 명단이 큰 도움이 됐죠.”

“처음 들어 봐요.”

비주한테 감사 인사를 했다는데, 워낙 이런 거 가지고 자랑 안 하는 애라 말을 안 한 모양이다.

지호였으면 ‘내가 서바이벌을 창시해 버렸어…? 어어! 난 창시자다!’ 이러면서 돌아다녔을 텐데.

“아무튼 엄청 신기했습니다. 비주 씨 말대로 정말 모든 그룹이 경연에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 줘서.”

비주가 다른 건 몰라도 춤 보는 눈은 정확하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잠시 멈칫했다.

“음?”

그런데 왜 피디님은 나한테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걸까. 내부자들끼리 할 만한 이야기 아니던가.

게다가 표정도 굉장히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듯한 분위기.

불현듯 의아함을 느낄 때였다.

“아무튼 우주 씨도 같은 예능 종사자로서 아시겠지만, 이 서바이벌이란 것이…….”

“…….”

“기획 회의 때부터 느낌이 올 때가 있거든요. 아시잖아요?”

저기….

제가 그 정도로 업계인은 아닌 것 같은데요…….

*   *   *

걸그룹 서바이벌 ‘더 스피릿’의 파이널 경연.

전국의 아이돌 팬들은 TV나 핸드폰,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파이널 경연을 시청하는 중이었다.

핫한 서바이벌답게 오프닝의 10억 씬부터 반응이 터지고 있었다.

-진짜 미친놈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장: 느 집엔 이거 없지?

-사장 점순이냐

-가지고 싶죠 ㅇㅈㄹㅋㅋㅋㅋㅋㅋㅋ

-근데 10억 들일만했다ㅋㅋㅋ 광고 붙은 거 보니까 숫자 장난 아니더라 확실히 뽕은 뽑았음

-10억 세금 떼면 얼마임???

-원천징수하고 나머지는 입금해 줄걸

10억에서 세금을 떼면 얼마냐부터 시작해서 상금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고.

각 그룹의 자기소개가 이어지면서 헤어, 메이크업, 의상에 대한 품평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걸탑 의상 개구림ㅠㅠㅜㅠ 확실히 소속사 품에 있을 때랑은 또 다르다

-저거 힙하다는 애들은 취향 선우주냐

-걸탑 의상 존구..

-잉 난 이쁜디

-라로즈 오늘 요정들 같아 졸귀

-유빈이 너무 귀엽다

-엔엑스는 컨셉 확고하네.. 의상 좀 바꿀때도 된 것 같은데 언제까지 저 여신머리만 할건지

-스칼렛은 진짜 얼굴 보면 버뮤다 같음 못나옴

-쩽한색도 잘 어울린다.. 얼굴이 이기네

호평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견제와 질시, 질투가 오가면서 흙탕물을 서로에게 파파파팡 튀기는 판이었다.

서바이벌 특유의 서로 머리채 잡고 싸우는 견제.

‘이 정도는 되어야 서바이벌이지.’

코를 쓱 비비며 웃던 아이돌 팬들의 앞에 본격적인 경연이 시작됐다.

한국풍 의상을 입은 라비앙로즈가 무대 위에 등장하면서 걸그룹 팬들이 끼요요옷 하고 비명을 질렀다.

-의상부터 대존예

-유빈이 쌉레전드ㅠㅠㅠㅠㅠㅠ

-시안이 진짜 넘 잘생겼어.. 그 몬가 예쁘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몬가 그런 몬가가 있음

-중국옷 같음ㅋ

-라로즈도 진짜 이번에 이미지 대변신한 그룹중 하나일듯. 무대 보면 너무 잘해 정말

팬들이 쏟아 내는 주접글들이 SNS와 팬 커뮤니티에서 터지고.

아이돌 팬들이 다수 모여 있는 커뮤니티상에서는 견제와 품평이 오가는 상황.

어딜 가든 후끈후끈한 분위기였다.

‘대박이다. 진짜.’

현재 걸그룹 판도는 세레니티 원탑 하에서 블링크와 NYX 등이 삼두정으로 집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서바이벌에 모인 아이돌들의 인기가 없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연차가 조금 오래 되었을 뿐, 스칼렛과 걸스온탑으로 대표되는 2.5세대 걸그룹이 여전히 쨍쨍하고.

차세대 걸그룹으로 올라오는 하이컬러.

그리고 원래 본업 잘하기로 소문난 라비앙로즈와 가을소녀까지.

‘어떻게 모았지?’

그런 생각이 절로 들 만큼 화려한 라인업이었다.

1회 때만 해도 미미한 시청률이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점점 상승하면서 이제는 머글들이 더 많았다.

파이널 경연이 최근 경연 프로그램 중에서 최고치를 찍을 거라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 걸까.

-노래 퀄 심상치 않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로즈 노래 개좋다ㅠㅠㅠㅠ 걸그룹 한국풍이 이런 것이다를 제대로 보여 주는 거 같음

-dns가 돈 좀 썼네ㅋㅋ

-라로즈 노래퀄 와ㅋㅋㅋㅋ 현식이가 간만에 돈썼다

-혐식아 까방권 10개 준다.. 10.. 9..

-여기서까지 규호한테 질 수 없다는 거겠지

-가끔 라로즈랑 스보랑 같은 기획사란 게 잘 안 믿김ㅋㅋㅋㅋㅋ 색이 너무 달라

-공계가 티저 업로드 실수하는 거 보면 같은 기획사 맞음

화려한 꽃을 수놓은 검은 한복 저고리를 뽐내던 라로즈가 들어가고, 이번에는 가을소녀가 우산을 쓴 채 등장했다.

정장을 입고 우산을 지팡이처럼 파워풀하게 휘두르는 돌리는 퍼포먼스에 호평이 나오는 것도 잠시.

-헐ㅋㅋㅋㅋㅋㅋ 여기도 노래 좋다

-snh도 요새 좀 밀려서 그렇지 4대 중 하나긴 함ㅇㅇ

-요새 매출 보면 4대로 끼워 주기도 민망하던데ㅋㅋㅋㅋ 에노티도 영 그냥 힘을 못 발휘하는 거 같구

-snh는 빼고 레몬 넣어야 이제 신 4대지

-노래 대박 좋은데,, 여기도 힘 좀 썼다

-맨날 소녀소녀한 것보다 이게 훨 낫다ㅅㅂㅋㅋㅋㅋㅋㅋ

-아무 컨셉 다 잘 받아먹는 이 그룹을 snh는 대체..

어반 힙합 장르의 곡을 묵직하게 부르는 가을소녀의 무대에 호평이 나오는 한편.

뒤이어 하이컬러와 NYX의 공연까지 나오면서 걸그룹을 두루두루 덕질하는 걸그룹 팬들의 입꼬리가 찢어질 위기에 처했다.

‘미친, 존나 좋아.’

무대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침이 절로 꼴깍였다.

오늘 무슨 날인가 싶다.

날 잡고 ‘걸그룹의 날’이라고 선포해야 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미친 퀄리티의 무대와 곡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근 서바이벌 중에서 역대 최고치를 찍을 거라는 서바이벌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임팩트 있는 무대를 보여 줄 수 있는 기회. 앨범 타이틀곡을 만들 때만큼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ㅁㅊ 오늘 뭔 날인가????

-오늘 덕후들 단체 씹덕사

-여돌 좋아하는 덕으로서 ㅈㄴ 행복하뮤ㅠㅠㅠㅠ 와 씨발

-진즉, 이러라고 미친놈들이 음원경쟁 존나 심할때 빡세게 힘주네

-22222222 행복한데 빡침

-333 여태까지 뭐함

-오늘 진짜 ㄹㅈㄷ

-다들 무대에 혼 갈아 넣은 게 보여서 넘 좋아

무대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훌륭한 퍼포먼스들이었다.

노래도 말할 것이 없다.

누가 더 잘났다고 하기 힘든 상황.

‘그래도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아무래도 방금 NYX가 부른 ‘Pluto’가 아닐까 싶었다.

지하와 명계의 신 하데스를 컨셉으로 하는 강렬한 댄스 곡이었다.

특유의 후렴 사운드에 자꾸만 중독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요즘에 힘빠졌다 뭐다 말 많은데 확실히 tj가 대형은 대형이다

-ㄹㅇ 괜히 프로듀싱팀 전력 최고라고하는 게 아님

-진짜 노래에서 부내 남

-솔직히 레몬도 우주선빨이 좀 심해서,, 자체 프로듀싱이나 송 캠프 곡 보면 TJ가 항상 퀄 더 좋음

-글쎄.. 요즘에 일하는 거 보면 흔한 좆소던데 영감탱 노망나고

-저 프로듀싱팀으로 영어 곡 낸다는 거 보면 감떨어졌다 싶음

-(TJ 엔터 현재 주가 캡쳐.jpg)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음ㅇㅇ 영어 곡 계획 발표 이후로 계속 하락세임

-영감탱 엔엑스나 좀 잘 밀어 줘.. 쓰잘데기없는 거 하지 말구

-ㅋ.. TJ가 이렇게 후려쳐질만한 회사가 아닌데..ㅋㅋ

-넌 뭔데 부심 부리냐 태준이 손자냐

TJ 엔터의 팬들과 다른 팬들 사이에서 신경전이 오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5번째 경연 순서.

[안녕하세요. 스칼렛입니다!]

TV 속에서 미모를 뿜뿜하고 있는 4인조 걸그룹의 VCR이 흘러나왔다.

*   *   *

VCR 속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스칼렛 멤버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후…….”

입을 빵빵하게 부풀렸다가 풀기를 반복하던 데이지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토하고 싶다.’

6년차가 되었지만 여전히 긴장감과 압박감은 늘 무시무시했다.

어깨 위에 한우가 앉아서 음머어- 하는 느낌.

몽실몽실한 뒷목을 주무르는 막내의 모습에 리나가 손짓했다.

“이리 온.”

데이지가 언니의 품에 와락 안겼다.

“언니…! 나 떨려 죽겠어.”

“나도.”

“순 거짓말. 하나도 안 떨고 있으면서.”

“들어 봐.”

심장 소리를 들어 보라는 메인 댄서의 말에 귀를 기울이니.

쿵쾅쾅쾅쾅.

“……엄청 빨리 뛰고 있구나.”

“응.”

두 멤버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사이에도 무대 위에서 VCR이 쭉쭉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봄이 여름 같은 미소를 짓고 있다.

[이번 곡은 이 여름을 뜨겁게 불태워 줄 화려한 곡으로 준비해 봤어요.]

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동안 차분하게 눈을 감고 명상을 하던 리더, 아라가 눈을 떴다.

“애기들, 이리 모이세요.”

네 멤버가 어깨동무를 한 채 서로의 불결한 숨결을 느꼈다.

아라가 멤버들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우린 진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여기서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나는 상관없어. 우린 최선을 다했으니까.”

멤버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긴 말은 필요 없어. 즐기자.”

네 멤버가 손을 모은 채 아자아자! 스칼렛 화이팅! 하고 우렁차게 외치는 동안 VCR이 끝 부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들의 팬을 향해 보내는 메시지.

‘우리 정말 이번 마지막 경연을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니 후회 없이 모든 걸 보여 줄게요.’

스탭의 수신호에 그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면서 현장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근. 두근.

인이어의 잠잠한 침묵과 팬들의 환호성, 심장소리가 한데 뒤섞이는 가운데 네 멤버가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했다.

그들의 머릿속에 프로듀서로부터 받은 조언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스칼렛만의 강점을 살려야 해요. 다른 걸그룹과 구분되는 스칼렛만의 장점 말이에요.’

‘폭죽처럼 터지는 순간적인 폭발력, 그게 여러분의 강점이에요. 강약 조절이 중요한 곡인 만큼,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구간들을 잘 살려서 후반부 순서의 핸디캡을 극복해야 돼요.’

‘김덕춘이란 이름엔 저희 할머니의 명예가 걸려 있어요. 그러고 보니 이래서 김전일이 할아버지 명예를 거는 거구나.’

마지막 말은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그러고는 프로듀서의 마지막 조언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 무대 올라가기 전에는 제가 말한 모든 것을 잊어 주세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줘라.

‘편하게 무대 해요. 여러분은 숨만 쉬어도 멋있으니까.’

서서히 밝아 오르는 조명.

최상의 컨디션을 맞이한 스칼렛 멤버들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   *   *

츠츠츠츠츠.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드럼 소리.

행진곡 같은 박자의 드럼에 TV 속 관객들이 둠칫둠칫하고 있을 때.

-와아아아아아아!

드럼이 고조되면서 핀 조명이 밝아 올랐다.

무대의 인트로 파트.

붉은 크롭티에 검은 재킷을 걸친 메인 래퍼, 데이지가 홀로 걸어 나오며 랩을 하면서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뒤에서 춤을 추는 댄서들을 배경으로 자신만만한 웃음을 띄운 데이지의 진홍색 입술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와아아아!”

레몬 엔터의 회사 라운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스칼렛 TF팀이 ‘옳지! 가서 물어!’ 하면서 박수를 치고 있는 동안 다른 직원들도 함성을 질렀다.

“멋지다. 멋져, 우리 고기 여신!”

“이야! 나윤이 눈 돌아갔다, 돌아갔어. 지금 10억으로 꽃등심 각을 재는 거야.”

“평생 꽃등심이지.”

“대표님, 보이시나요? 스칼렛 식비가 드디어 해결이 됩니다!”

“허허허허.”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간식을 오물거리며 지켜보던 뉴블랙 멤버들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중현이 리혁의 고구마 말랭이 봉투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나윤이 잘해. 진짜.”

“저 누나는 랩할 때 사람이 달라진다니까요. 김나윤에서 데이지로 변신하는 느낌.”

“저렇게 빨리 말하는데 어쩜 저렇게 잘 들리지?”

걸그룹 래퍼 순위를 매기면 항상 순위권에 들어가 있는 데이지다웠다.

강렬한 손동작이 물결을 칠 때마다 음절과 어절이 귓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초반부의 랩 퍼포먼스를 보던 직원들이 앉아 있는 뉴블랙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것도 우주가 편곡한 거야?”

“네! 우주 형이 인트로 만들었어요. 대박이죠?”

“어쩐지 귀에 쏙 들어오더라.”

그때, 잡담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규환 이사가 쉿 하고 입술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제부터 중요한 타이밍이에요. 이 곡은 초반 5초에서 확 치고 나가는 곡이라서.”

박규호 대표를 필두로 임직원들이 소곤소곤거렸다.

‘너희는 이거 곡 들어 봤어? 우린 못 들어 봐서.’

‘저희도 완성된 풀 버전은 못 들었어요.’

처음에 뼈대 정도를 들었던 뉴블랙 멤버들도 덕순덕순한 기분으로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그들의 맏형이 새로운 작곡가 명으로 데뷔하는 순간.

가슴이 들뜨고 설렌다.

솔로 퍼포먼스를 마친 데이지가 사뿐사뿐 걸어서 4인조의 대형에 합류하면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스칼렛] Not Fine

작사 : Day-Z, 리나, 봄, 아라

작곡 : 김덕춘, 조규환

편곡 : 김덕춘, 나상윤, 형섭, 유웅

갈린 사람들 명단이 촤르륵 떠오르면서 졸개들의 가슴이 웅장해졌다.

‘우리 형이 쓴 곡이다.’

그러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TV를 바라보았다.

시작부터 훅 들어오는 후렴 멜로디.

메인 보컬 봄이 앞으로 손을 뻗으면서 다른 셋이 사방으로 팔을 뻗으며 안무를 선보이고.

고개를 획 돌리면서 물결치던 봄의 긴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카메라를 향한 봄의 두 눈이 강렬한 열망을 드러냈다.

곧이어 입술이 열리고.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가 오늘만큼은 날카로운 선을 그으며 나아갔다.

[This is us.]

이게 우리야.

[So take it or leave it.]

받아들이든가 꺼지든가.

그 순간, 현장의 열기가 절로 느껴지는 함성이 TV에서 흘러나왔다.

“와아아아!”

“어머, 어머… 이건 또 새롭네.”

“어머어머.”

현장에서 ‘와아아아-!’ 하는 함성이 흘러나오는 동안 뉴블랙 멤버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여유롭게 무대를 감상하던 이들의 자세가 심각해졌다.

‘곡이…….’

누가 들어도 어마어마하게 근사한 후렴구였다.

“…….”

“…….”

METRO의 발매를 2주 앞두고 있는 현재.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스칼렛의 신곡을 듣는 졸개들의 표정이 심란해졌다.

‘만만치 않다…….’

‘이 인간 때문에 미치겠네. 아니 곡을 적당히…….’

‘엄마, 누나… 우주 형…….’

꽃길만 걷게 될 줄 알았는데.

신곡 발매를 앞두고 그들의 앞길에 수백 개의 압정을 뿌려댄 맏형의 모습에 졸개들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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