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90화
This is us
So take it or leave it
노래가 시작되면서 방청객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미쳤다.’
도입부부터 찢었다는 말이 나오는 강렬한 보컬이었다.
단 5초.
강렬한 도입부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어모은 봄이 걸어 나오며 후렴구의 멜로디가 폭발했다.
“와아아아아아-!”
진홍색 조명 아래서 스칼렛의 무대가 시작됐다.
각이 선명히 살아 있는 칼군무였다.
우아하게 손동작과 손목 스냅을 살리던 이들이 어깨를 튕기는 동작으로 후렴 안무를 끝낸 후.
붉은 원피스 의상을 입은 아라가 양손을 뻗으며 나섰다.
우린 영원히
끝이 나지 않는 story
수고했다 하기에
이 밤의 끝은 멀었어
어깨를 슥 흔드는 리드 보컬이 몸으로 유려한 곡선을 그리면서 환호가 터진다.
뭄바톤 특유의 중독성 있는 리듬에 관객들이 절로 턱 끝을 까딱였다.
아라가 뒤로 물러나 안무를 받쳐주는 동안 메인 댄서인 리나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나섰다.
긴 머리카락이 나풀나풀 흔들리고, 몸에 달고 있는 귀걸이나 목걸이가 부드럽게 살랑이면서 주변의 먼지들까지 춤을 추는 듯한 착시가 보일 때.
부드러운 춤 못지않은 목소리가 귓가를 적신다.
난 어두운 하늘의 별자리
네 속삭임
네 목소리
빠짐 없이 내게 와 이 순간
I know just what to say
색이 들어간 안경을 살짝 걸친 메인 댄서가 손짓하는 장면에 시선이 훅 빨려 들어간다.
팬들이 전하는 기쁨, 슬픔, 걱정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듯한 가사.
스칼렛 팬들이 커튼봉을 기쁘게 흔드는 동안, 리나가 몸을 획 돌려 우아하게 뒤로 빠졌다.
다시 메인 보컬 봄의 파트였다.
후렴구 직전에 곡이 고조되어 가는 프리 코러스.
We’re fine fine fine
So fine
그러니 너의 밤을 즐겨 봐
거침없이 태워
모든 걸 불사지르듯-
격한 안무를 추고 있는데도 쭈우욱 올라가는 고음.
특히나 마무리 부분의 고음이 찌르듯이 올라가면서 객석에서 보던 이들의 피부에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반짝이는 조명에 4인조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우고.
리드 보컬인 아라가 나와서 씩 웃으며 입술을 뗐다. 팬들을 향해 지금 나올 가사의 us는 너희와 우리라는 듯이.
This is us
So take it or leave it
이번에는 푸른 조명 아래서 4인조가 춤을 추면서 물결이 사방에 퍼져 나갔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무대였다.
무대 위에서 군무를 펼치고 있는 스칼렛 멤버들의 얼굴에 벌써부터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체력 소모가 심한 고난도의 안무.
그럼에도 멤버들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순수한 즐거움만이 떠올라 있었다.
‘오늘 스칼렛 대박이네.’
‘진짜 꾸준히 잘하는구나. 얘네도.’
‘음색이 다 특색이 있는데 어쩜 저렇게 잘 어우러지냐.’
다른 아이돌 팬들이 혀를 내두르는 동안 후렴 안무를 마친 스칼렛 멤버들이 2절에 들어갔다.
데이지가 나와 랩을 하면서 곡의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다.
1절 부분이 팬들에게 하는 말이라면, 2절은 악플러나 이러쿵저러쿵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가사인 듯했다.
악플러 뻐큐 머거, 두 번 머거 하듯이 시원하게 악플러를 때려잡는 데이지의 랩에 스칼렛 팬들이 환호하며 기뻐했다.
다른 걸그룹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와아아아아!”
속이 시원해지는 랩과 강렬한 사운드, 군무가 어우러지면서 현장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2절의 프리 코러스가 지나고.
리나가 끼고 있던 색안경을 휙 집어던지며 미소를 지었다.
우린 우리일 뿐, 받아들이기 싫은 사람들에게 어디 한번 와 보란 듯이 손을 까딱이면서.
This is us
So take it or leave it
영원의 불을 태우듯이 화려하게 팡 터지는 후렴 안무에 다시 한번 환호가 터졌다.
조명 때문인지 불꽃 아래서 모든 걸 태우는 듯한 안무였다. 잔상을 남기듯 빠르게 움직이는 팔다리가 불꽃이 넘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땀이 숫제 얼굴을 뒤덮어 번들거렸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저 환히 웃을 뿐.
동선의 중앙에서 부서져라 춤을 추던 리나가 씩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기자, 현장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2절 후렴구가 끝나고 브릿지 파트까지 이어지면서 현장의 분위기는 한층 더 후끈후끈해졌다.
‘미쳤다.’
‘나윤아. 언니가 돈 많이 벌어서 덕질할게…….’
‘이게 덕질이다. 이게 덕질이야….’
스칼렛 팬들이 입을 틀어막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동안.
경쟁 그룹의 팬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각 잡고 나왔네.’
자신들의 강점인 춤을 완벽하게 살리고 있는 안무에 헤어, 메이크업, 의상까지 모든 게 다 완벽하다.
누가 저 곡의 프로듀싱을 맡았는지는 몰라도 감이 대단한 인물인 게 분명했다.
저마다 제각각이라서 튀기 쉬운 네 명의 보컬을 한 자리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만들고.
멤버 개개인의 매력 포인트를 잘 살리고 있었다.
스칼렛 팬들이 이걸 보고 있다면 쉴 새 없이 캡처 버튼을 누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게다가…….
‘곡 진짜 미쳤다.’
가끔 그런 무대가 있다.
중후반부에 이르렀을 때, 처음으로 다시 돌려서 이 노래의 도입부부터 다시 듣고 싶다는 느낌이 들 때.
지금 스칼렛이 보여 주는 ‘Not Fine’의 노래가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면서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원은 이게 1등 먹겠다.’
경연 순위는 알 수 없지만, 노래의 순위는 정해진 듯한 분위기였다.
* * *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온라인 반응도 비슷했다.
-ㅁㅊ 조ㄴ나 미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무대 찢었는디??
-조회수 존나게 터질듯
-지금 다들 무대 안 본사람들 있으면 당장 봐ㅠㅠㅠㅠ
-와 개쩐다 ㅋㅋㅋㅋㅋㅋ
-지금 집에서 다 같이 보고 있는데 엄빠가 잘한다고 감탄하심. 노래 되게 좋다고 하네
TV로 보고 있는 아이돌 팬들 모두가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1등은 스칼렛이 먹겠다.’
서바이벌에 대한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대중들의 비율이 높아진 상황.
파이널은 문자 투표의 비중이 높은 만큼 머글들이 누구의 무대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1위가 갈릴 터였다.
-이건 스칼렛이 1위 먹을듯ㅋㅋㅋㅋㅋ
-최근 3년동안 본 걸그룹 무대 중에 젤 좋았다..
-곡이 ㅁ침
-곡이 사기네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저 곡으론 무조건 1위임
일부 아이돌 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작곡가가 누구지?’
곧바로 아까 캡처해 두었던 사진을 찾아냈다.
[스칼렛] Not Fine
작사 : Day-Z, 리나, 봄, 아라
작곡 : 김덕춘, 조규환
편곡 : 김덕춘, 나상윤, 형섭, 유웅
“흐으음…….”
뭔가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덕춘?”
뭔가 위화감이 드는 이름은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잠시만, 어디 보자. 이게 가나다 순서인가?’
작곡가 이름의 배열 순서를 확인했다.
곧이어 편곡 칸에서 ‘형섭’이라는 인물의 이름이 ‘유웅’이라는 사람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말인즉, 가나다 순서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김덕춘이라는 사람이… 조규환보다 앞에 있네?’
조규환.
가끔 기획사 대표 말고도 팬들에게 이름이 알려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규환 이사가 그런 케이스였다.
잘생긴 외모가 공개되면서 이름을 알리기도 했고, 지금까지 스칼렛의 명곡들을 만들어 낸 인물이기 때문에 걸그룹 팬들에겐 유명했다.
그런데 가나다 순서가 아닌데도…….
‘조규환의 이름이 뒤로 밀렸다?’
저 김덕춘이라는 낯선 이름의 작곡가가 이 곡의 메인이란 뜻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이름이 좀 익숙하지?’
김덕춘이라는 이름 세 글자에서 왠지 모를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하지만.
‘……모르겠네.’
안타깝게도 사고의 흐름이 우주선까지는 당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안 가 걸그룹 팬들이 ‘에이 몰라’ 하면서 신경을 끄고 걸스온탑의 VCR로 시선을 돌릴 때.
그 속에서 작곡가의 정체를 눈치챈 인물들도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아이돌 팬들의 뒤에서 미니언즈처럼 숨어 있는 수플레들.
‘이거 우주랑 왠지 연관이 있는 것 같죠?’
‘끄덕끄덕.’
‘조용히 있죠. 확실하지 않으니까.’
오피셜이 없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최애가 관련됐을 거란 추측을 하고 있는 수플레들이었다.
익숙한 이름들 때문이었다.
‘유웅? 이분은 누군지 모르겠는데 나상윤, 형섭… 이 두 사람은 우주가 제일 아끼는 사람들 아닌가?’
우주가 제일 애용하는 도라에몽들이었다.
편곡 내놔, 하면 형섭이라는 동갑내기 친구가 에우웅 하면서 편곡을 만들어 내고.
나상윤 팀장도 빼어난 실력으로 자주 쓰이는 장미칼 같은 존재였다.
“으으으음…….”
수플레들의 침음성을 흘렸다.
‘우주일 것 같은데. 그러면 모든 게 맞아떨어지니까.’
뉴블랙 TV에 올라오는 리얼리티 <친절한 우주선>을 보면서 팬들 모두가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우주가 리혁이 OST도 참견하고, 멤버들 스케줄마다 다 참견하는 컨텐츠.
그런데 여태까지 공개된 에피소드에는 4인조의 스케줄밖에 없었다.
‘우주도 이번에 뭘 했을 텐데.’
만약에 그것이 스칼렛 곡 프로듀싱이었다면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진다.
김덕춘이라는 이름의 획을 몇 개 빼면 ‘김덕순’이라는 홀리한 이름이 등장하지 않던가.
‘맞는 것 같은데…….’
물론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저거 우리 애라고 했다가 진짜 김덕춘 씨가 ‘전데요…’ 하고 등장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음악 색채도 기존의 우주선과는 좀 다르기도 하고.
하지만…….
‘왠지 맞는 것 같은데.’
점 두 개 찍고 김덕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게 될 최애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꽃무늬 티셔츠를 입은 채, 샛노란 선그라-스를 쓰고 등장할 누군가의 모습이 투명도 80으로 은은하게 보인다.
“끄으으응.”
궁금해서 팔짝팔짝 뛰고 있는 수플레들이었다.
* * *
같은 시각.
“……스칼렛이 이겼네.”
“저 언니들이 상금 타겠다.”
“상금으로 고기 먹겠지.”
저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더 스피릿>의 출연자들이 에헤이~ 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우리 정도면 1등 각이지.’
…라고 생각했는데.
누가 1등을 해도 말이 안 나올 만큼 화려한 퍼포먼스들이 줄지어 나오면서 다들 마음을 비운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강력한 1등 후보가 나왔다.
“……무대도 무대인데 노래도 너무 좋다.”
“안무 진짜 좋은데? 누구 거 받아왔지…?”
모든 기획사들이 최고의 작곡가와 최고의 안무가를 섭외한 상황에서도 어나더 레벨을 보여 주고 있는 레몬 엔터였다.
기획사 관계자들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저거 작곡가 누구래?”
“김덕춘이라고 신인 작곡가라고 하던데요.”
“신인 작곡가?”
“레몬에서 요새 프로듀싱팀 엄청 늘린다고 그러잖아요. 내부적으로 키운 작곡가일 수도 있고. 발굴한 거일 수도 있고.”
기획사 관계자들이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스칼렛이 무대를 마치고 내려간 뒤에도 여전히 후끈해 보이는 현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방금 전에 들었던 곡이 귓가에 메아리치고 있다.
‘이거 우리 애들이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작곡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블랙의 송 캠프에 참여한 작곡가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저거 우주선이에요…’ 하고 말했을 테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기획사 관계자들의 눈이 번뜩였다.
‘누구보다 먼저 접촉한다.’
‘그러다 안 되면 일단 좀 베끼라고 해야겠어.’
그러는 한편.
골동품 도자기를 쓰다듬고 있는 어느 엔터사의 대표가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허허.”
박태준 회장이 TV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간만에 쓸 만한 인재를 발견했군.’
스칼렛의 곡을 들으면서 박태준 회장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크게 될 재능을 가진 친구라고.
‘어쩌면 우주선보다 더…….’
아니.
‘우주선보다 더 대단한 재능이야.’
그가 방출한 연습생보다 훨씬 더 좋은 실력이다.
박태준 회장은 확신했다.
K팝에서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별칭이 붙은 만큼 잘 될 것에 대한 감각이 탁월하다고 자부하는 그였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 걸그룹 판도를 바꿀 만한 곡이 지금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한 이사.”
“예, 대표님.”
“저 곡 쓴 작곡가 말이야. 어떻게 좀 데려올 수 있을까?”
“……레몬 엔터에서 발굴한 작곡가 같은데 어렵지 않을까요? 쉽게 안 놔줄 것 같습니다.”
박태준 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거야 당연한 말이고. 세상에 누가 저런 작곡가를 쉽게 놔주겠나?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하지.”
“그러면…….”
“돈.”
그가 자신의 철학을 피력했다.
“돈 마다하는 사람 세상에 없어. 자네도 알다시피 저작권료도 쌓여야 많은 거지, 하나 대박 터진 걸로는 얼마 안 되는 거 알잖아. 신인이 큰돈 만져 본 적 있겠어?”
“으음, 그건 그렇습니다만…….”
“컨택할 방법 찾아내서 억대 연봉 제시해. 아니, 레몬 엔터에서 뭘 준다고 했든 간에 몇 배를 준다고 해.”
“예. 회장님…….”
한 이사가 조금 미묘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이 안 이러셨던 것 같은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K팝 판도에 대해서 놀라운 감과 선견지명을 보여 주던 대표가 예전 같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눈의 총기가 흐려진 느낌.
하지만 그에게 지시를 내린 인물은 여태까지 모두가 안 된다는 프로젝트를 매번 성공시킨 전설적인 프로듀서였다.
“대표님이 지시한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최대한 빨리 컨택해 봐.”
김덕춘이라는 신인 작곡가에게 이메일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한영준 이사였다.
* *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 예상대로 <더 스피릿>의 최종 1위는 우리 회사 걸그룹이 차지했다.
스트리밍 어플의 흐릿한 저화질 속에서 스칼렛 멤버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부모님, 대표님과 조규환 이사님 등등.
감사한 사람들에게 울면서 소감을 전한 이들이 내 이름도 입에 올렸다.
[그리고 이번에 Not Fine을 써 주신 김덕춘 작곡가님께도 정말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해요. 작곡가님…!]
눈물 젖은 찹쌀떡이 된 데이지의 모습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평소 감정 변화가 적어 보였던 리나마저도 손등을 들어 올려 흐르는 눈물을 막고 있었다.
스칼렛뿐 아니라 화면에 나오는 팬들도 붉은 깃발을 흔들며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잘 됐다.”
화면 속에서 기뻐하는 걸그룹 멤버들을 보면서 TV 어플을 껐다.
살짝 멀미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흐아아암…….”
하품을 길게 하면서 차가 지나갈 때마다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을 바라보았다.
스칼렛 무대가 끝나자마자 방송국을 나온 나는 지금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기분이 좋다.
저 옆으로 보이는 한강변도 왠지 모르게 운치 있어 보이고, 달밤에 코코아 한 잔 기울이고 싶은 날이었다.
처음 만든 걸그룹 곡이 좋은 성과를 거뒀다.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을 때도 가장 함성이 크기도 했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내가 쓴 곡이라고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좋게 반응해 준다는 거였다. 왜 유명한 사람들이 가끔 필명을 바꿔 소설을 쓰거나 정체를 숨기고 노래하는지 이해가 됐다.
최근 내게 부족했던 것.
바로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확인이었다.
나는 정말 곡을 잘 쓰는 건가?
내가 우주선이나 뉴블랙의 이름이 없더라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저 나를 좋아해 주는 팬분들이 많아서 우리가 1위 곡을 하고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맴돌았는데, 오늘 곡을 보고 나서는 깨달았다.
“앞으로 3년은 버틸 것 같아요.”
“네?”
갸웃하는 민수 씨에게 말했다.
“작곡이요. 제가 얼마나 트렌드를 잘 따라갈진 모르겠지만 앞으로 3년은 거뜬하지 싶어요.”
“저는 10년 정도 봅니다.”
“10년이면 진짜 좋겠네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인터넷 반응을 살폈다.
홍서영 과장님이 보내 준 스크린샷에 음원사이트 망고의 검색어 순위가 떠 있다.
1위. Not Fine
아직 음원 발매도 안 됐는데, 다들 그만큼 음원을 찾으려고 했다는 뜻이었다.
포털 검색창에도 1위와 2위 검색어가 ‘스칼렛’, ‘Not Fine’이었다.
“후하하하하……!”
스크린샷을 캡처하면서 크 하는 미소를 지을 때였다.
“다 왔습니다.”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편히 들어가세요.”
“예!”
민수 씨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회사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이제 동생들에게 가서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등장할 차례였다.
-보아라! 졸개들아! 걸그룹 곡까지 성공시키는 이 위대한 작곡가를 모시고 살도록 하여라!
-허어어어! 이렇게 소중한 형을 우리가 몰라봤구나!
-내가 누구?
-세상에서 제일 소듕한 우리 형……!
벌써부터 가슴 덕순덕순한 거 실화인가.
그러고 보니 김덕순 여사한테도 이 희소식을 알려야…….
“응?”
화살표가 붙은 귀여운 포스트잇이 지하 복도에 가득했다.
마치 이 연습실로 들어오세요, 하는 듯한 분위기.
“나를 반겨 주려고 또 이렇게…….”
요 귀염둥이들~ 하면서 연습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연습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운데 포스트잇이 끝나는 부분까지 홀린 듯이 따라가 도착했을 때.
포스트잇에 써 있는 가는 피라루쿠체가 보였다.
[뒤를 돌아보시오.]
명료한 지시사항에 고개를 획 돌리니 졸개들이 보였다.
벽에 착 달라붙어서 숨을 고르고 있는 동생들. 마치 습격을 앞둔 것 같은 눈빛에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미리 얼굴 보여 주는 거예요. 우리니까 반격하지 마요!”
“응?”
그 순간이었다.
탁.
중현이가 전등 스위치를 누르면서 연습실의 불이 꺼졌다.
타타타타타탓!
우다다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아! 아악!”
찰싹! 찰싹! 찰싹!
사방에서 내 등짝을 팡팡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야! 아야!”
“이 미친 인간!”
“아 뭐야, 왜 때려?!”
어둠 속에서 리혁이가 외쳤다.
“우리 메트로 발매 얼마 안 남았는데, 노래를 만들어도 그렇게!”
“형 때문에 우리 컴백 망하게 생겼어요!”
“당장 다음 주부터 프로모션 들어가는데!”
졸개들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책임져!”
“책임져라아아!”
“책임져!”
서라운드로 울리는 동생들의 서글픈 목소리에 내가 아 하고 눈을 깜빡였다.
그제야 나도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바로 며칠 뒤부터 바로 METRO의 프로모션이 시작된다는 사실.
하지만 졸개들의 불만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
“내가 그렇게 쉽게 밀리는 곡을 만들었을 거 같아?”
찰싹 때리던 어둠 속의 손짓이 멈췄다.
눈이 어둠에 익어서 그런지, 어둠 속에서 굼벵이들이 당황해서 꾸물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제일 작은 굼벵이가 어어 하며 말했다.
“그런데 다른 직원분들이 무대 보면서 올해 최고의 곡이 나왔다고 그러던데…….”
이 귀 얇은 놈들.
“그분들 중에 메트로 들어보신 분은 있고?”
“아뇨. 없는 것… 아.”
침묵이 흘렀다.
“…….”
“…….”
30초쯤 지났을까.
다시 불이 켜졌다.
그리고 방금전까지 어둠 속에 있었던 일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졸개들이 환히 미소를 지으며 날 반겼다.
“왔어요?”
“…….”
“형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
형을 모기 잡듯이 잡을 때는 언제고.
붉게 달아오른 손을 스윽 숨기며 모른 척하는 졸개들의 모습에 눈을 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