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91화
30분 후.
“형. 여기 아이스 코코아 준비했어요.”
“바닥에 앉아 있으니까 불편하죠? 여기 방석 깔아 놓았어요.”
“와. 오늘따라 잘생겼다!”
“우.와.”
중현이가 한 손으로 나를 들어 올려 방석을 깔아 주고, 비주가 코코아 잔을 손에 쥐어 주고.
귓가에는 막내들의 칭찬 폭격이 날아든다.
“야. 이런 걸로 내 기분이… 흠흠.”
풀리네.
“아이 참…….”
등 따시고 배 따시고, 귀에 달콤한 말이 날아들어 오니 방금 전의 괘씸한 기분들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리혁이 형, 우주 형 기분 좋아지게 애교 한 번 발사해요~!”
“아, 싫어.”
…라고 말하던 리혁이가 나한테 조그마한 미니 하트를 보냈다. 그러곤 벌건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내 기분을 낭낭하게 만들어 주려는 동생들의 모습에 웃었다.
“방금 전에는 컴백 망하면 어쩔 거냐고 때리고 그러더니.”
“…….”
“어휴, 바보들.”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스칼렛이랑 우리랑 경쟁하는 사이야? 우리 이번에 영어 곡이잖아. 국내 음원 성적은 크게 기대 안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국내 차트를 목표로 한 곡이 아니라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바로 이번 프로젝트였다.
“애초에 종류가 다르잖아. 국내 리스너를 목표로 준비했으면 이번에 스칼렛 프로젝트도 이런 식으로 텀을 안 뒀지. 같은 기획사 가수끼리 서로 깎아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네요?”
“스칼렛은 스칼렛이고, 우리는 우리고.”
게다가 걸그룹과 보이그룹은 파이 자체가 다르다.
스칼렛이 걸그룹이라는 하와이안 피자 판에서 세 조각 집어먹는다고, 우리가 먹고 있는 페퍼로니 피자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동생들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내부적으로 ‘야 이거 대박인데?’ 라고 해도, 무엇이든 까 봐야 아는 거니까.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이번에 스칼렛뿐만이 아니었다.
스칼렛이 기존 음악 색을 버리고 새로운 장르로 나아갔듯이, 우리도 이번에 아무도 가지 않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게 성공이 될지 실패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안하지?”
“네…….”
동생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무릎과 손목의 인대 등에 파스를 잔뜩 붙이고 있는 비주, 며칠 밤을 새워서 입술이 잔뜩 부르튼 리혁이.
다크서클이 거의 턱 끝까지 내려올 만큼 팬더로 변한 지호.
그리고.
“…….”
눈을 초롱초롱 뜨고 있는 곰과 눈이 마주쳤다.
탄력적인 피부.
건강한 눈빛.
땀에 절여진 티셔츠를 걸친 멤버들 속에서 방금 샤워를 마친 것처럼 뽀송뽀송한 자태.
“왜 그래요, 형?”
“아니야. 아무것도.”
중현이를 외면하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평소에 컴백 준비할 때도 혼신의 힘을 다하긴 하지만 얘들이 이토록 꾀죄죄하게 변한 건 처음 본다.
초조함과 불안함을 달랠 길이 없어서 연습만 주구장창 하니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에서 ‘야 이번에 스칼렛이 최고네’, ‘스칼렛이 다 차트 먹겠네~’ 하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니, 내가 오자마자 ‘미워!’ 하면서 찰싹 때려댄 것도 이해가 간다.
“불안한 건 이해해. 나도 지금 엄청 불안한걸.”
매일 도망치고 싶다.
“송 캠프에서 곡을 잘 만들었다고는 하는데, 이게 어떻게 될지는 정말 모르는 거잖아? 미국 리스너를 잡기에는 너무 K팝 같고, 국내 리스너를 잡기에는 곡이 팝송 같아서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도 있고.”
“…….”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가 내놓은 곡 최초로 망할 수도 있지.”
“…….”
멤버들이 숨을 삼켰다.
“근데 망하면 어때?”
“네?”
“망하면 뭐 끝인가? 뉴블랙이 그날부로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뭐 옆에서 엄청 비웃기는 하겠지만….”
“아…….”
동생들도 무슨 말인지 조금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이제 우리는 한 번 삐끗한다고 망해 버릴 단계는 아니라는 거야. 이번 활동 망하면 우리는 끝장이다, 그런 건 없다고.”
무엇이든 망하면 타격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것이 단번에 무너져 버릴 정도는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까 말까 최근까지 고민을 했는데,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 생각하는 게 바뀌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 바람꽃이랑 나인 낼 때는 이게 맞았어. 그때는 한 번 삐끗하는 순간, 바닥까지 직행 코스로 떨어지는 거였으니까.”
15년도에서 16년도 초반까지는 정말 Save가 없는 게임과 같았다.
뾰옹, 뾰옹하고 점프를 하다가 한 번 떨어지는 순간 ‘The End’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 게임.
그러한 것을 알기에 진짜 이번 활동 실패하면 죽는다… 하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절박하게 연습했다.
“절박한 게 나쁜 건 아니야. 모든 활동에 절박하면 좋지. 그런데 이게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아서 그래.”
조용히 집중하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절벽을 오른다고 생각해 봐. 처음에 낮은 곳에서는 꼭대기만 보여.”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꼭대기가 아니라 자꾸만 아래를 보게 된다.
떨어질 수 있는 높이가 점점 더 높아지니까.
“당장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다는 공포에 사로잡히면 사람은 자꾸 아래만 보게 돼. 그러면 그때부터 목적지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만 드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우리도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절박하긴 했어도 ‘국내 최고의 아이돌이 된다’라는 목적지가 또렷하게 앞에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목표에 집중하기도 쉽고, 그 절박함을 동력으로 삼기도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정상에 올라왔다.
그런데 그 전과 똑같이 마음이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는 아래만 보이게 된다.
이번의 영어 곡 프로젝트는 우리가 절벽에 올라와 마침내 정상에 오른 상황에서 저 먼 곳의 다른 평지를 향해 달려가는 그런 목표.
게임으로 따지면 이제 메인 스테이지를 클리어했고, 보너스 스테이지 같은 셈이었다.
그러니 관점이 달라질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번 프로젝트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냐. 엄청 중요하지.”
“…….”
“하지만 성공시켜야겠다, 잘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더 강했으면 좋겠어. 지금처럼 실패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보다는 조금 긍정적으로… 아, 말로 설명하기가 힘드네.”
“괜찮아요. 형. 이해했어요.”
눈이 마주친 중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비슷한 반응을 보여 주는 다른 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튼 그렇다는 얘기야.”
너무 진지하고 훈계하는 이야기 같아서 괜히 이야기했나 싶긴 한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리더로서 구성원들이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는 방향을 잡아 줘야 하니까.
다행스럽게도 동생들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 듯한 느낌을 보니 이야기를 잘한 것 같다.
이제 잔소리는 끝냈으니 당근을 줄 타이밍이다.
“그리고 우리 곡이 정말 잘 안 되겠어? 같은 송 캠프에서 나온 Not Fine이 저렇게 호평을 받았는데?”
“허어어어, 그렇긴 하네요.”
“잘될 거야. 정말로.”
그런 말을 하고는 졸개들에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그러면 오늘 Not Fine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김덕춘 작곡가에 대해 너희가 해야 할 말은…?”
“와아아아아아!”
졸개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덕춘쓰 천재 만재~!”
“우리 형 천재다, 천재…!”
“그렇다! 나는 천재다! 흐하핫핫햑!”
신명나게 주접을 부리는 졸개들과 덩실덩실 같이 어깨춤을 추면서 웃음을 흘렸다.
* * *
다음 날.
음원 차트에 등장한 스칼렛의 신곡 Not Fine은 1위로 화려한 데뷔를 했다.
-‘더 스피릿’ 우승 스칼렛.. “Not Fine” 음원차트 1위
-[더 스피릿 종영①] 스칼렛, ‘이게 우리다’ 화려한 매력 뽐내
-더 스피릿 파이널 음원 공개, 스칼렛 ‘Not Fine’ 실시간 차트 1위
음원 차트 1위에 오르자마자 스칼렛 멤버들이 캡처 짤을 보냈다.
아라 [1위!!!!!!!!!!!!!!]
데이지 [오라버니]
데이지 [오래오래 만수무강하세요 (꾸벅)]
봄 [작곡가님 들숨에 고기와 날숨에 상추를..]
리나 [진짜 고마워]
정말 행복해하는 게 핸드폰 너머로 느껴진다.
어제 그 쟁쟁한 걸그룹들이 음원 차트 상위권을 차지한 가운데서도 1위니, 그 기쁨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형, 이거 봤어요?”
“응?”
“스칼렛 누나들 무대 댓글이요.”
‘레전드다 레전드!’ 하면서 환호하고 있는 댓글들 속에서 하나가 보인다.
-김덕춘 씨? 우리 구면인 것 같은데..?
순간 뜨끔했다.
비주가 들고 있는 핸드폰의 댓글을 눌러 대댓글을 살폈다.
-ㅅㅇㅈ 맞나요?
-어쩐지 노래 퀄리티까 쌉인정이다 싶었는데 ㅅㅇㅈ였나
-엥??
-뇌피셜들 오지네ㅋㅋㅋㅋㅋㅋㅋ
-뇌피셜이 아니고 진짜임. 일단 저기 편곡 팀 리스트 둘이 선우주 하수인들이고 레몬 조규환이사보다 앞줄에 김덕춘이라는 모르는 이름이 들어 있다?
-게다가 이름이 김덕순님이랑 비슷함
-이름 비슷하면 같은 사람이냐?? 우리 형도 이름 우주인데 못생김
-왜 가만히 있는 우리까지 때리고 그래..
-김덕춘씨 곡숨찐 의혹
-ㅉㅉㅉ 이러다 김덕춘이라는 진짜 사람 나오면 어쩔라고ㅋ
-잼민이들 추리한다고 신났누
-이거 우주선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지 않나?? 노래 퀄리티 개쩔던데
미튜브 댓글창답게 혼란스럽다.
다만 ‘너 선우주 맞지?’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아니, 어떻게 내 정체를…….”
“예명을 김덕춘으로 정해 놓고 할 소리예요? 아는 사람들한테는 우주선이라고 마크 단 셈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이렇게 바로 알아채는 사람들이 나올 줄은 몰랐지.”
입을 틀어막고 있는 내 모습에 동생들이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사람들 진짜 똑똑하네.
어떻게 바로 알았지?
감탄하면서 다른 댓글들을 읽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정체를 의심하는 댓글들이 있긴 한데, 크게 관심을 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기야 걸그룹 서바이벌에서 무대 감탄하기 바쁘지, 작곡가가 누군지까지 궁금해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무대 감상 댓글을 읽을 때였다.
딩동.
메일이 들어왔다는 알림에 어플을 누르자.
“어?”
왜 이렇게 안 읽은 메일들이 많지.
족히 수십 개는 쌓인 듯한 메일함에 모르는 주소가 보낸 메일들이 쌓여 있었다. 날짜를 보니 죄다 어제였다.
“메일 주소는 또 어떻게 알았대.”
업무용으로 운용 중인 계정의 메일함에 들어온 것들이었다.
전부 다 기획사들 아니면 작곡가들이다.
-안녕하십니까. 작곡가들끼리 스튜디오를 운영 중인..
-[DNS 미디어] 안녕하세요. DNS 미디어입니다.
-SNH 엔터에서 귀하와 미래를 함께 하고자 합니다.
기획사들에서 보낸 러브콜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대부분 내용이 비슷했다.
신인 작곡가 발굴에 우리가 이렇게 성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너의 곡을 무척이나 감명 깊게 들었다. 그러니 만나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뭐예요?”
어깨에 뾰족한 턱 끝이 닿았다.
궁금해하는 막내에게 메일을 보여 주자 웃음을 터뜨렸다.
“대박이다. 이거 어제 다 들어온 거예요?”
“그런 것 같은데.”
“와, 아무도 형인지 몰랐나 보다. 그냥 급해서 일단 허겁지겁 보낸 것 같은데요.”
지금쯤이면 아마 기획사들 정보력으로 저 김덕춘이 나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막내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캡처해서 대표님 보내드려요. 형을 빼 가려고 하는 저 못돼먹은 외부의 세력에 대해 알리는 거예요.”
“대표님 스트레스 받으셔서 안 돼.”
문자 받자마자 ‘선우주 사랑해요. 영원히 함께해’ 같은 플래카드를 들고 달려오실 수도 있었다.
그때, 어느새 뒤에 나타난 리혁이가 손가락으로 메일 하나를 가리켰다.
“저거 눌러봐도 돼요? 궁금한데.”
“어디? 아.”
TJ 엔터에서 보낸 이메일이 있었다.
꾹 눌러보자 ‘국내 최고의 A&R팀과 프로듀싱팀을 가진 전통의…’ 어쩌구 하는 자화자찬과 함께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지호가 말했다.
“이거 형 셀카 찍어서 답장 보내면 안 돼요? ‘저예요..’ 하고 수줍게 웃으면서 보내는 거예요.”
“솔깃…하지만 안 돼.”
“그래도 형인 줄 모르고 보냈나 보네요.”
“알면 안 보냈겠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리혁이가 말했다.
“메일 내용 더 있는 것 같은데요? 뒤에 또 추가로 보냈나 봐요.”
“아. 그러네.”
메일 어플에서 자동으로 그 뒤에 보낸 메일까지 이어서 보여 주었다.
뭔가 했더니 방금 전에 알림을 띄운 그 메일이었다.
발신자는 똑같이 TJ 엔터테인먼트.
[메일 발송에 착오가 있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른 사람한테 보낼 메일을 너한테 실수로 보냈다고 하는 말에 동생들과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리혁이가 자긴 못 보겠다는 듯 눈을 피했다.
“내가 괜히 민망하네요.”
“뭔데요. 뭔데?”
뒤늦게 화제에 참여한 비주와 중현이에게 설명을 해 주자 얘네도 웃었다.
그동안 내 눈에 비주와 중현이가 들고 있는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거 뭐야?”
“스칼렛이 보냈나 봐요.”
부우욱 하고 비주가 테이프를 떼는 동안 중현이가 박스 윗부분를 뽑아 버렸다.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한 비주를 붙잡아주고는 상자의 내용물을 살폈다.
“오…….”
“세상에…….”
어마어마한 간식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육포를 비롯해서 정말 먹기 좋은 간식들이 가득한 풍경을 바라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포스트잇을 주웠다.
은혜 갚는 까치 컨셉인지 까치가 귀엽게 그려져 있다.
[To. 김덕춘 작곡가님께]
우리 커튼이들이 너무 선물 보내 주고 싶어 하길래 우리가 대신 보내 주기로 함
잘 먹어!!
그걸 보면서 괜히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비주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40개 남았어요.”
“응?”
“스칼렛이 보내 준 박스요.”
“……몇 개라고?”
중현이와 비주의 안내에 연습실 바깥으로 나갔을 때.
우리가 연습실에서 잠이 들어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세상에…….”
“…….”
“…….”
그곳에서 우리는 보았습니다.
평소라면 널찍한 연습실 복도에 박스가 거의 통행이 불가능할 만큼 장벽처럼 쌓여 있는 것을.
“……은혜를 좀 격하게 갚네.”
“우리만 그런 줄 알았는데.”
“우리 회사 사람들이 중간이 없잖아요.”
극단적인 은혜 갚기에 몸 둘 바를 모르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리혁이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
“마셜 플랜을 보는 기분이네요.”
“뭔진 모르겠지만 대단하긴 하다… 이걸 또 언제 옮겼대.”
소리 소문 없이 선물 폭격을 선사하고 간 우리 회사 사람들의 괴력에 감탄할 때였다.
삐약삐약.
어디선가 병아리가 미세하게 우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지? 어디서 소리가…….”
바로 그때.
“저희예요오오오…….”
“선배니이임…….”
“저희 눈 떠 보니까 갇혀 있었어요…!”
박스 건너편, 우리 회사 연습생들이 갇혀 있는 듯했다.
“너희도 밤샜니?”
“네……!”
“어휴, 이걸… 잠시만…….”
살았다면서 기뻐하는 목소리가 반대편에서 들어왔다.
곧이어 중현이가 나서서 박스를 가볍게 치워 길을 만들면서, 연습생들이 어둠의 협곡을 지나왔다.
꺼이꺼이 소매로 눈가를 훔치는 연습생들.
“선배님, 감사합니다…….”
“너무 무서웠어요.”
깨어났는데 복도가 상자로 막혀 있으면 나라도 무서웠을 것 같긴 하다.
이이잉 하는 우리 레몬 엔터의 미래, 몬린이들을 토닥여 주며 웃었다.
“이거 너희도 좀 먹을래?”
“네…!”
박스를 개봉하고 거기 가득한 과자를 바라보는 연습생들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하고는 뉴블랙 빵 초코맛을 보며 흥분하는 연습생들에게 내가 물었다.
“너희도 어제 스칼렛 선배님들 무대 봤어?”
“네.”
“어땠어?”
“너무 멋있으신 거 같아요. 막 저도 무대 서고 싶어지고.”
무대에 대한 평을 물어볼 때, 지호가 슬쩍 물었다.
“노래는 어땠어?”
“너무 좋았어요……!”
벌써 입술에 초코 가루를 가득 묻힌 연습생들이 와글거렸다.
“아까도 들었는데, 와 역시 우주 선배님 천재… 하면서 저희끼리 막 이야기하고 그랬어요.”
“……응?”
“선배님이 쓰신 곡 아닌가요?”
“맞긴 한데 어떻게 알았어?”
“네?”
연습생들의 리더인 진후가 잉? 하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저희 생방송 보면서 어?! 하고 눈치챘는데.”
“그렇게 뻔했나?”
시선을 돌리자 졸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후가 이어 말했다.
“수상할 정도로 좋은 곡에 이름이 김덕춘…. 저희는 이름을 보는 순간 바로 확신해 버렸어요…!”
“……예명이 의미가 없었구나.”
“음? 일부러 그렇게 작명하신 거 아니었나요?”
“마, 맞아. 그렇지.”
눈을 초롱초롱 뜨고 있던 연습생들이 ‘역시!’ 했다.
진후가 딸기맛 수플레빵을 먹는 복수의 옆구리를 찔렀다.
“내가 말했잖아. 바보야. 우주 선배님이 너처럼 정말 아무도 모르게 하려고 예명을 그렇게 정했겠냐?”
아니야. 진후야. 형은 바보야.
뒤에서 꾹 웃음을 참으며 키득거리는 동생들에게 눈을 흘겨 주고는 뺨을 긁적일 때였다.
비웃는 동생들 속에 한 명이 안 보여서 고개를 돌렸다.
“음?”
구석에 서 있는 비주가 조용히 핸드폰을 보며 눈매를 좁히고 있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본 것처럼 입을 굳게 다문 비주에게 내가 물었다.
“왜 그래. 비주야?”
“아, 방금 메인에 이런 기사가 떴어요. 너무 황당한 기사여서.”
“뭔데?”
이윽고 기사 제목을 확인한 순간.
나는 왜 비주가 황당하다고 말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더 스피릿’ 기획사 관계자들, “팬덤 강력한 모 아이돌이 작곡 참여.. 음원 경쟁 공정하지 않아”
“오?”
“이건 또 새로운데.”
“그러게요.”
뭔가 참신한 헛소리에 우리가 흥미진진하게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