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94)화 (69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94화

출국날.

인천공항에서 레전드 미모를 갱신한 뉴블랙의 사진은 삽시간에 SNS를 들끓게 만들었다.

-사진 너무너무 청량해ㅠㅠㅠㅠㅠ

-여름 여행 떠나는 소년들같아

-사진에서 파도 소리 들리는 느낌.. 안 되겠다 불곷놀이 들으러 간다

-이게 아이돌이지 (⸝⸝⸝ᵒ。ᵒ⸝⸝⸝)

-이대로 불꽃놀이 3번째 컴백 가자

흰 티셔츠에 청바지, 블링블링한 액세서리들.

여름 화보를 찍으러 떠나는 듯한 청량 비주얼의 미청년들에게 수플레들이 하악 하고 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얼마 안 가 팬들은 다른 곳에 시선을 주목했다.

‘얼레? 규호도 있었네?’

미국에 볼일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진 속에서 반짝이는 규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다른 기획사들의 뻘짓 때문일까. 옛날에는 미워했는데 요새는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음?”

흐뭇한 미소를 짓던 수플레들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안 되지.”

이러다 스며들어서 정이라도 들면 곤란하다.

단 한 번의 실수라도 벌어지는 순간 ‘규호, 이 새끼야’ 하면서 욕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진정한 아이돌 팬인 것이다.

‘정 들면 안 돼.’

단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때였다.

아이돌 커뮤니티에 어떤 일반인이 올린 후기글이 올라오면서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공항에서 규호 본 사람 후기]

(페이스북 캡처.jpg)

오늘 뉴블랙 사진 유독 잘 나온 이유:

걸어다니는 반사판이 있었다고 함

-앗.. 아아..

-참 대표니뮤ㅠ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토할 거같음

-이게 바로 진정한 대표인가

-규호는 별이야.. 스스로를 불태워서 아이들을 빛내지

-엔터계의 태양제국도 아무나 세우는 게 아니구나

-태양제궄ㅋㅋㅋㅋㅋㅋㅋ

-(뉴블랙 출국사진 모음.jpg) 규호 있을 때 vs 없을 때 사진 비교. 톤이 다름

-ㅋㅋㄱㅋㄲㅋㅋㄱㅋㅋㅋ

-규호 앞으로 평생 동행해ㅠㅠㅠㅠ

-규호 앞에선 뉴블랙도 한낱 태양 앞의 반딧불이일 뿐이로구나..

-근데 규호는 어디까지가 이마야??

-사탄 : 인간들의 수준 잘 보았다.. 역겹군

-레몬 엔터 바이럴이네,, 규호 안사요ㅠㅠㅠ

-바이럴 해도 아무도 안 사니까 괜차나

말 그대로 스스로를 희생해 가수들을 빛내주는 모습에 수플레들과 다른 아이돌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때 악명을 떨쳤던 레몬 엔터의 대표.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아이돌 팬들 사이에도 긍정적으로 스며들고 있는 어느 기획사의 대표였다.

*   *   *

마침내 도착한 미국.

틴 초이스가 열리는 LA는 이번으로 몇…….

“몇 번째더라?”

중현이가 손을 들었다.

“중현아. 넌 어차피 모르잖아.”

“단정 짓기엔 너무 이른 거 아닌가요.”

“그래. 그럼 말해 봐.”

“사실 저도 잘 몰라요.”

손을 휘휘 저어서 흐응 하는 중현이를 멀리 떨쳐 내고는 동생들에게 물었지만 모두가 으음 했다.

심지어 계산 담당인 리혁이마저 손가락을 세다가 갸우뚱한다.

“모르겠네요. 이제는 꽤 많이 와서.”

스케줄을 하며 자주 들락날락하다 보니 LA가 몇 번째 방문인지 헷갈린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LAX에 내려서 호텔로 이동하고, 스케줄을 준비하기까지 과정이 익숙하다.

시차적응이 문제긴 한데, 이건 뭐 1박 2일 일정이니 괜찮다. 비행기에서 푹 자고 오기도 했고.

“흐아아암.”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LA 시내 풍경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지려면 아직도 시간이 좀 남은 오후.

쾌청한 하늘 아래로 우리가 탄 차량이 틴 초이스의 레드 카펫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음흠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리무진의 거울을 살폈다.

검은 셔츠 위로 걸친 나의 아름다운 수트.

상하의 모두 알록달록한 붉은색과 보라색 꽃으로 수놓은 내 수트가 그림같이 어우러져 있었다.

세계 최고의 재능을 가진, 르블랑의 수석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 님이 보내 주신 세계 최고의 수트!

“꺄르르륵.”

“어휴. 꼴 보기 싫어.”

“보이느냐. 졸개들아. 나의 플로라 수트!”

“플로라 수트라고 포장하지 마요. 그냥 꽃무늬 정장이잖아요.”

리혁이의 핀잔에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름대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졸개들 속에서도 한 떨기 꽃처럼 빛이 나고 있는 나의 패션.

평소 같았으면 얘네가 극혐이라고 난리 쳐야 보통인데.

“어때? 잘 어울리지?”

“……잘 어울려요.”

비주가 슬퍼하면서 핸드폰으로 내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다.

막내와 리혁이가 에이~ 하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에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슥슥 젓던 지호가 화제를 돌렸다.

“근데, 대표님은 어디 가신대요?”

“석환 형이랑 어디 간다던데… 아마 우리 관련해서 중요한 일이겠지.”

대표님까지 오셨으니 아마 중요한 미팅이 아닐까 싶다.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움직인 회사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도 핸드폰 메모장을 켜서 몇 가지를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연습 좀 하자.”

“Yes. Yes.”

TF팀에서 정리해 준 ‘현재 미국에서 언급하면 안 될 단어나 키워드’ 등을 확인하면서 동생들과 인터뷰 연습을 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미국도 사회적 이슈에 굉장히 민감한 국가기 때문에 우리가 영어로 키워드 하나 잘못 내뱉는 순간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예컨대 어디서 인종 차별 관련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가 의도치 않게 관련된 키워드나 단어를 쓰게 될 수도 있고.

지금 미국에서도 우리 말 왜곡해서 퍼뜨리려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다 왔다. 얘들아.”

조수석에 타고 있던 민기 형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곳이었다.

올해 초에 우리가 슬라임을 맞을 뻔했던, 키즈 초이스가 열렸던 게일런 센터가 바로 틴 초이스 어워드가 열리는 장소였다.

멀찍이서부터 줄지어 서 있던 수플레들의 환호가 우리를 반겼다.

-와아아아아아아!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가 흘러나온다.

곧이어 차량에서 내리면서 팬들의 환호성이 주변 거리를 뒤흔들었다.

리무진 안에서 들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함.

“크롸라라라라라라-!”

“으르르르르르!”

“크아아아아아악!”

귀…….

귀엽다는 말이 나오려다가 목구멍 안으로 다시 들어온다.

귀… 귀기 서린 미국 수플레들의 함성을 들으며 포토월로 입장하자, 이번에는 포토그래퍼들이 난리였다.

「우주, 이쪽을 봐 주세요!」

「리혁, 오른쪽! 오른쪽!」

「중현! 중현! 지호!」

「B, 여길 봐주세요! 여기! 바로 여기입니다!」

저마다 우리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 쪽을 봐 달라고 하고 있었다.

평소 포토월에서 하던 대로 포즈를 취하면서 좌에서 우로 쭈우욱 훑고 포토월을 통과했다.

포토월을 통과하자 이번에는 인터뷰어들이 찰싹 달라붙었다. 취재 경쟁을 하듯이 카메라를 들고 달려오는 이들을 민기 형과 원석이 형이 교통정리를 하면서 하나씩 인터뷰에 응했다.

「와우!」

인터뷰어가 활기차게 웃으며 내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오늘 패션이 굉장히 인상적인데요. 써니.」

「마음에 드시나요?」

「굉장히 어울리네요. 어디서 구매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예요.」

화기애애한 인터뷰였다.

그 밖에 다른 미디어들과 짧은 인터뷰, 그리고 ‘METRO 꼭 들어 주세요!’ 하는 홍보를 마친 후.

파란 카펫이 깔린 틴 초이스 행사장에서 안면이 있는 스타들과 인사를 나눴다.

「헤이!」

「잘 지냈어?」

저번 빌보드 어워드에서 한 번 보고 끝인 것 같은데, 자기 가족처럼 반겨 주는 이들에게 우리도 똑같이 포옹하며 인사를 했다.

셀카도 찍고.

콜라보 한 번 하자고 빈말 교환하고.

소개해 주는 사람들이랑 악수하고.

키즈 초이스나 빌보드에서는 얼떨떨하고 어색했는데, 그래도 한두 번 해 보니 바로 슬슬 적응이 된다.

“와.”

미드나 미국 영화를 좋아하는 우리 막내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행복한 비명을 질러 댔다.

“허어어! 저기 제가 보던 드라마 출연진 있어요. 저 가서 사진 찍어야겠어요.”

“가라. 지호몬.”

“가, 갔다 올게요!”

모르는 미국인들에게 가서 친화력을 뽐내는 막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여기 10대들이 오는 어워드라고 하지 않았어?”

“네.”

“……이게 다 설마 10대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은데요.”

키즈 초이스 어워드에서도 느꼈지만, 이 나라의 어린이와 10대들은 뭔가 한국인과 성장 속도가 다르다.

심지어는 벌써부터 눈이 퀭하고 노화가 오는 듯한 10대들도 보인다.

“그래도 키즈 초이스 때보다는 낫다. 야.”

“그때는 진짜 어린이들 틈바귀에서 어색어색했죠.”

“이 정도면 비빌 만한데?”

한국이었다면 우리가 섞여 있기에 좀 미묘한 나이대였다.

중고등학생 나이대라서 어색하게 ‘요즘에도 야자 하니?’, ‘중앙 계단 이제 써도 돼?’ 하는 대화만 나오게 될 테니까.

하지만 미국의 10대들은 뭔가 달랐다. 2차 성징을 직빵으로 맞은 듯한 노숙한 아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후후.”

“여기라면 섞일 수 있겠어요. 형.”

우리도 친목을 도모할 겸 주변에서 다가오는 이들과 반갑게 사교적인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10대 소년 소녀들은 우리를 또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허어어! 뉴블랙! 너무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래그래. 반가워. 우리 친구 하자~!」

「친구?」

「응, 친구!」

「꺄르르르르르!」

「꺄륵!」

10대들 사이의 잠입 미션 성공.

그렇다!

신체적인 나이는 20대지만 마음은 10대인 소년들.

그것이 바로 우리였다.

“…….”

먼 곳에서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막내의 시선을 회피하며 10대들과 칭구칭긔를 이어 갔다.

*   *   *

미국의 대형 방송국 회의실.

회의실에 틀어져 있는 TV 채널에서 ‘2017 틴 초이스 어워드’가 막을 올리고 있었다.

객석의 10대들과 스타들을 비추는 카메라.

[와아아아아아아아!]

화면에 뉴블랙이 흘러나오면서, 행사장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회의실로 들어선 방송국의 임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장난 아니군.’

현장의 열기가 오롯이 전해져 오는 커다란 함성에 긴장된다.

평소라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말았겠지만, 지금은 저 박력에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회의실 안에 앉아 있는 두 남자가 바로 저 보이밴드의 관계자이기 때문이었다.

인상이 좋은 중년 남자, 그리고 안경을 쓴 철두철미해 보이는 30대 남성.

“……안녕하십니까.”

두 남자가 일어나서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TV를 껐다.

“이런, 오신 줄 몰랐네요. 실례했군요.”

“아닙니다. 하하.”

“저희 아이들이 어워드에 나오는 걸 너무 보고 싶어서요.”

안경을 쓴 남자가 TV를 끄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가 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리 없었다.

‘보여 주려고 했던 거겠지.’

지금 그들이 매니지하고 있는 가수가 얼마나 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

협상전략의 일종처럼 느껴졌다.

‘너네 지금 우리 애들 인기 보이지?’ 하는 듯한 상황. 안경을 쓴 남자에 대해 살짝 경계심이 든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몬 엔터테인먼트의 TF팀 팀장 윤석환이라고 합니다.”

“미스터 윤.”

“이분은 저희 CEO 박규호 대표님입니다.”

“미스터 박.”

중년 남자의 영어가 서툰지 팀장이 대신 소개를 했다.

방송국 임원이 악수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았다.

곧바로 시작되는 미팅.

뉴블랙의 토크쇼 출연이나 각종 프로그램 관련 논의가 진지하게 시작되면서 방송국 임원은 평가를 수정했다.

‘……뭔가 만만치가 않은데.’

처음에는 안경을 쓰고 있는 윤석환 팀장에게 경계심이 들었지만, 회의가 이어질수록 푸근한 중년 남자에게 경계심이 든다.

협상의 주도권을 살짝 가져왔다 싶을 때쯤, 그가 윤 팀장에게 뭐라고 속삭이면 또 상황이 반전되곤 했다.

“그 부분의 광고 수익에 대해서 저희 CEO가 궁금해하십니다. 조건에 대해서도 궁금해하시고요.”

“…아, 그 부분은 제가 깜빡했군요.”

‘들켰군.’

뜨끔한 이에게 박규호 대표가 ‘그럴 수 있죠, 하하’ 하는 듯한 미소를 보내 주었지만 임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따스하게 웃고 있는데 중간중간 예리하게 찌르고 들어온다.

외모만 보면 세상에서 제일 사기를 잘 당하게 생긴 얼굴인데, 허허 웃으면서 뭔가 말할 때마다 숨기려고 했던 부분이 밝혀지거나 말을 안 하려고 했던 부분이 들춰졌다.

결국 협상 30분 만에 그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의도했던 30 대 70 정도로 해먹으려고 했던 것이, 중간에는 50대 50 정도로 가더니…….

마지막에는 레몬에게 60 정도로 유리한 조건으로 끝났다.

“그런… 조건으로 협의를 진행하죠.”

“좋다고 하시네요.”

임원이 숨을 골랐다.

‘선방했다.’

이 정도면 윗선에게 욕을 들어먹지 않을 선에서 협상이 잘 끝났다.

사실, 상대가 마음만 먹는다면 유리한 조건의 비율이 7대3까지도 가능했겠지만 그쯤에서 멈춰 준 듯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배려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레몬 엔터의 두 사람이었다.

“나쁘지는 않군요. 이 정도면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해석) 사기 치려다 다 털렸쥬?

“하하. 쉽지 않은 분들이네요.”

해석) 날강도가 따로 없구나.

애초에 불리한 싸움이긴 했다.

‘자꾸 그러면 다른 방송사 가 버린다? 가 버려?’ 하면서 ‘방금 TV 봤지? 기억하지?’ 하면서 더럽게 플레이를 하는 이들이었다.

‘얼른 갔으면 좋겠다.’

이득은 이득대로 다 챙긴 이들을 보면서 입맛을 다실 때였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박규호 대표가 더듬더듬 영어로 입을 열었다.

“K팝이란 장르는 참 독특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굉장히 유니크해서 현재 미국 시장에 희소성이 있죠.”

“그렇습니다만…….”

“개인적으로 그 희소성을 좀 유지하고 싶군요. 보이밴드에 한해서는요.”

빙빙 돌려 말하고 있지만 상대의 온화한 눈이 말하고 있는 듯했다.

‘누구랑 친하게 지낼래?’

아마 최근 들어서 한국의 TJ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에서 오는 제안을 언급하는 듯했다.

어떻게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차기 뉴블랙’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관계자의 이야기에 방송국이 솔깃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뉴블랙을 선점했던 앨런 데일 쇼가 큰 주목을 받았듯이, 정말 차기 뉴블랙 같은 존재라면 큰 기회니까.

하지만 지금 가파르게 인지도를 높여가는 뉴블랙 정도로 중요한 기회는 아니었다.

“…….”

빠르게 계산을 마친 임원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어떤 상품이든 희소성이 있어야 잘 팔리죠.”

“동의하신다니 기쁩니다.”

악수를 나누고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는 두 남자.

방송국 복도를 나오자마자 ‘후아…’ 하고 숨을 내쉬는 윤석환 팀장이 혀를 내둘렀다.

“미국 사람들 진짜 만만치 않네요. 눈 뜨고 코 베어가려고 하는 게 정말…….”

“고생했어. 윤 팀장.”

“대표님이야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어유, 부담스럽게 그러지 말고. 허허.”

박규호 대표가 넉살 좋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고는 슬쩍 한기가 담긴 눈으로 오늘 방문할 방송국과 에이전시 등의 리스트를 훑었다.

‘남의 떡 빼먹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회장님.’

용납할 생각도 없고.

그의 가수들이 일궈놓은 미국 진출의 과실을 쏙 빼먹으려는 TJ 엔터를 떠올리며 박규호 대표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내 한기를 거둔 레몬 엔터의 대표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고.”

“예, 대표님.”

뉴블랙이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동안.

마찬가지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레몬 엔터의 직원들이었다.

*   *   *

1시간 정도로 짧게 진행된 틴 초이스 어워드는 무사히 막을 내렸다.

“와아아아아아!”

그리고 우리는 상을 두 개나 탔다.

하나는 최고의 음악 그룹에게 주는 상이고, 다른 하나는 글로벌 아티스트 상이었다.

“수플레! 저희 상 탔어효오오오!”

“상 탔당!”

호텔 방에 돌아오자마자 Y앱을 켜서 수플레들과 수상의 기쁨을 나누었다.

트로피로 받은 서핑보드를 흔들면서 외쳤다.

“보이시나요? 리혁이보다 커요!”

“김비주보다 커요.”

우리 팀의 상대적인 쪼꼬미들이 반발했다.

“무슨 소리예요. 내가 저거보단 크지.”

“맞아. 말도 안 돼요.”

틴 초이스의 트로피는 조금 독특하게 생겼다.

키즈 초이스가 요상한 만화경을 준다면, 틴 초이스는 ‘2017 Teen Choice’라는 문구가 새겨진 거대한 서핑보드를 준다.

자그마한 체구의 연예인들은 정말 트로피 뒤에 숨어도 될 만큼 크다.

“그럼 증명해 봐요. 형들.”

“기다려 봐.”

비주와 리혁이가 후우우웁! 하면서 벌새처럼 몸을 부풀리고는 두 개의 서핑보드 뒤로 각각 섰다.

그리고.

“푸하하하하하하!”

“흐하하하!”

수플레들과 우리가 단체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뒤에 쏘옥 들어가는 사이즈의 우리 팀 메인 댄서와 메인 보컬이었다.

얼굴이 벌게져서 쉬익쉬익 하는 리혁이와 서늘한 영애님 미소를 짓는 비주를 달래 주었다.

“음, 10대 친구들이랑 많이 친해진 것 같아요. 근데 되게 또래 느낌이라서 친구하기로 했어요.”

오늘 어워드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면서 수플레들과 시간을 보낼 때였다.

“음?”

잠시 핸드폰을 보던 리혁이가 말했다.

“이거 예… 동생이 보내 줬는데. 우리 베스트 드레서에 들었대요.”

“베스트 드레서?”

“네, 패션 매거진에서 오늘 틴 초이스 어워드 레드카펫 보면서 베스트 드레서 꼽았다는데요. 우리 중에 하나가 들어가 있대요.”

“오……!”

수플레들이 ‘ㄷㄱㄷㄱ’ 하는 댓글을 치는 가운데.

동생들이 ‘나네’, ‘저인가 봐요’ 하고 있는 동안 왠지 모르게 내 가슴이 덕순덕순해지기 시작했다.

뭔가 쎄하거나 느낌이 좋을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랬다.

“왠지 나 같은데.”

“너무 양심 없다는 생각 안 들…….”

리혁이의 말이 멈췄다.

핸드폰 화면에 떠올라 있는 플로라 수트의 나.

“워스트 스펠링이 BEST 맞져? 그런 거져? 제발 그런 거라고 해 주세요.”

“말도 안 돼.”

“아니…….”

졸개들이 말을 잃고 어어어 하고 있는 동안 그간의 한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손이 올라간다.

“내가 베스트 드레서……?”

“…….”

“내가? 내가 베스트 드레서…?”

“…….”

나도 모르게 기쁨의 눈물이 주르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동안 꽃무늬 때문에 받았던 모진 수모와 구박이 머릿속으로 스쳐 가면서 울컥했다.

“해, 해냈다……!”

“뭘 해낸 건데여?”

“해내 버렸어! 내가!”

기쁨의 눈물을 쏟으며 무릎을 꿇고 프랑스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지미.

오 지미.

우리는 옳다는 걸 이 세상이 인정해 줬어요.

“제가 해냈습니다……!”

“아니, 뭘 해낸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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