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95)화 (69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95화

62장. METRO

베스트 드레서 선우주.

그 단어를 본 순간, 졸개들의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말도 안 돼.’

선우주가 베스트 드레서라는 것은 전혀 성립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마치 ‘출구는 들어오는 문입니다’, ‘공부는 노는 것입니다’ 같은 문장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들의 형은 베스트 드레서란 키워드가 절대 어울릴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바지 롤업하는 게 이쁜데… 아, 이 바지는 그렇게 입으면 안 되는 바지야? 칠부 바지처럼 보일 거라고?

-실용성이 최고지. 이번 여행 리얼리티에 복대 차고 다니면 편할 거 같지 않아?

-왜 내가 마음에 드는 옷들은 다 중년 남성 카테고리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이고, 참 서글픈 세상이어라…!

그간의 화려한 전적이 귓가에 맴돈다.

“우주 형이 베스트 드레서…….”

“어허허허허허.”

“와, 중현이 형 실성한 거 봐요. 이 형이 이렇게 놀라는 형이 아닌데.”

먼 곳을 바라보던 졸개들이 심호흡을 했다.

‘침착해. 침착해.’

그러고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성스러운 분위기를 잔뜩 풍기고 있는 맏형을 바라보았다.

“해 냈다……!”

마치 눈보라를 뚫고 히말라야 정상에 등반한 등산가 같은 표정이다.

눈물이 촉촉하고, 굼벵이처럼 기쁨의 꿈틀거림도 보여 주고.

혼자서 해피 엔딩을 맞이한 맏형을 보며 멤버들이 미소를 지었다.

‘저 형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뉴블랙에서 반동분자 역할을 맡고 있는 서리혁마저 동의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들의 리더가 끝장나게 잘생겼다는 사실이었다.

가만히 창가에 기대 웃기만 해도 화보가 되고, 어떨 때는 그림자마저 잘생겨 보이는 착시가 들 때가 있었다.

왜 리더가 되었겠는가.

저 사람을 리더로 뽑아 놓으면 소감이나 멘트할 때 시선 집중 하나는 끝내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국민 아이돌이 되었겠는가.

얼굴이다.

저 촐싹거리고 방정맞은 성격으로 어떻게 팬이 많겠는가?

얼굴이다!

오죽하면 미모로 소문 난 스칼렛마저 우주를 기피하겠는가.

-우주야.

-네, 누나.

-나 얼굴 너무 커 보이는데? 조금 뒤로 와 봐.

-저 이미 최대한 뒤로 온 건데요. 저기… 나윤아, 야구 방망이는 왜 드는 거니?

괜히 다른 아이돌들이 한 화면에 같이 안 잡히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광역으로 ‘주변 모든 사물이 못생겨 보임’이라는 디버프를 걸어 버리는 미모를…….

‘옷으로 다 까먹지.’

그 얼굴을 못나 보이게 만들어 버릴 만큼 대단한 패션 감각이었다.

데뷔 초창기만 해도 사회적인 지탄을 우려했는지, 나름대로 평범하게 입고 다닌 선우주였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 저 사람은 옷에 관심이 없구나’ 하는 느낌. 그래도 원판이 괜찮으니 거적때기를 걸쳐도 멋졌다.

하지만 점점 유명해지면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지금에 이르고 있었다.

“움하하하하하하!”

꼴 보기 싫은 웃음을 터뜨리는 맏형을 바라보던 졸개들이 다시금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진짜 인정하기 싫지만 잘 어울리긴 했네요…….”

“잘 어울려.”

“옷이 너무 예뻤어.”

지미 로빈스가 만든 옷은 선우주와 완벽한 궁합을 자랑하고 있었다.

화려함과 화려함의 조합.

자칫하면 투 머치가 될 수 있는 옷을 선우주의 얼굴이 밸런스를 잡아줘서 그림같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꽃무늬를 싫어하는 멤버들마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옷이었다.

멤버들이 눈매를 좁혔다.

‘근데 아무리 봐도 얼굴로 이겨 먹은 거 같은데…….’

베스트 드레서를 뽑은 사람이 얼굴로 선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머릿속을 스쳤다.

한편.

그런 의심과 별개로 짜증이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항상 겸손하게 ‘그렇게 입으면 안 되는구나’ 했던 우주의 콧대가 한라산에서 백두산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봤니?”

“…….”

“졸개들아. 보았니? 이 형이 베스트 드레서가 된 것을 보았니? 여기 B-E-S-T 드뤠서? 보이니?”

“…….”

“인정하기 싫겠지만 이 승부는 내가 이긴 것 같다. 하… 좋은 승부였다.”

벌써부터 북 치고 장구 치고 좋아하는 리더의 모습에 멤버들이 눈을 감고 뒷목을 주물렀다.

*   *   *

틴 초이스 어워즈가 끝난 후.

곧바로 아이돌 커뮤니티에는 뉴블랙의 틴 초이스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가끔 TNT나 식스티 세컨즈가 후보로 들었던 글로벌 아티스트 부문에서 최초로 수상을 했고, 또 미국의 10대들이 뽑은 최고의 음악 그룹으로 꼽혔다는 소식이었다.

-ㅊㅋㅊㅋㅊㅋ

-슈스다 슈스ㅠㅠㅠㅠㅠ

-어린이들만 좋아하는줄 알았는데 급식들한테도 인기 많아보이더라

-뉴린이가 미래다

-현지 사는데 완전 듣보 시상식임; 커뮤에서만 핫한 거

-글로벌 아티스트에 틴스피릿도 후보에 있던데,, 걍 K돌 상주려고 만든 부문인 듯

-ㅋㅋㅋㅋ 그래서 케돌 상주려고 생긴 부문에서 작년까지 미국 보이밴드인 오션파이브가 상탔음??

평소처럼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틴 초이스의 레드 카펫 등등, 오늘의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는 곳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틴 초이스 베스트 드레서 : 선우주]

바로 선우주가 베스트 드레서에 선정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소식이었다.

모두가 두 눈을 의심했다.

‘만우절도 아니고, 뭔 개소리야.’

이내 게시글을 클릭한 아이돌 팬들은 아 하고 감탄사를 터뜨렸다.

화려한 꽃을 수놓은 붉은 수트를 차려입은 선우주의 자태가 정말 그럴싸했기 때문이었다.

-선우주 꽃무늬 업체 바꿨나

-인정하기 싫지만 진짜 옷빨 잘 받는 거 같음

-선우주가 베스트드레서????? 인지 부조화오다가 납득했읍니다..

-우주가 옷 잘입는 거긴 어느 평행세계냐

-(영어 SNS글 캡쳐.jpg) 미국 SNS상에서도 화제된듯 옷 잘입는다고

-속지 마 미국애들아ㅠㅠㅠㅠㅠ 쟤 저런 애 아니야

-쟤는 이불을 걸쳐도 망토로 만드는 애라구.. 저 옷을 잘입은 게 아니고 걍 잘생긴거야ㅜㅠ

-아니 근데 왜 잘어울림???? ㅋㅋㅋㅋㅋㅋㅋ진짜 어이가 없네ㅋㅋㅋㅋㅋㅋ

-옷 르블랑 거라고 하던데

-아무리 봐도 얼굴이다

-우주 사복 감성 보면 르블랑 디자이너가 엄청 좋아할 만함. 짐 로빈스가 투머치의 끝판왕임

미국에서 패셔니스타처럼 행동하는 선우주의 사기극을 바라보면서 할 말을 잃는 아이돌 팬들이었다.

‘아니, 옷을 잘 입기는 했는데…….’

저건 솔직히 얼굴로 이겨 먹은 거 아닌가?

Y앱에서 ‘나의 승리다’ 하며 자화자찬하는 선우주의 영상이 너무나 얄미웠다.

운 좋게 게임 한 판을 이겼는데 ‘이게 실력이죠?’ 하는 느낌.

“아이… 이게…….”

‘선우주는 옷을 못 입는다 - 그런데 잘 입었다’ 사이에서 인지 부조화로 혼선이 오는 느낌이다.

그러고 있을 때.

누군가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글을 다급하게 가져왔다.

[지미 로빈스 SNS에 우주 관련 글 올라옴!!]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가 SNS에 오늘 우주의 레드 카펫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사진 위에 영어로 적힌 글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패션 감각을 지닌 친구]

[나의 미약하고 미미한 옷들이 도움이 되었기를]

아이돌 팬들이 눈을 끔뻑거렸다.

지미 로빈스가 누구인가.

르블랑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명품 브랜드 중 하나로 발돋움하게 만든 천재 디자이너였다.

패션 스쿨 재학 당시부터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해졌고, 르블랑의 최연소 수석 디자이너가 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인물이다. 너무 어린 것이 아니냐는 말에 보란 듯이 성과를 낸 천재적인 인물.

그런데.

‘아니, 왜 그런 분이 우주를 칭찬하고 있는 건데요…….’

모두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니 그거 아닌데

-그냥 우주는 못입는 거라구요

-뭐지?? 않이 진짜 뭐지

-패션 역전 세계

-근데 이런 거보니까 우리 생각이 잘못된거 아닐까?

-아냐 얘들아 원래 이 사람 취향이 좀 이런 스타일링 쪽임ㅋㅋㅋㅋㅋㅋㅋ 한국와서 김장조끼 사 가고 그런 사람이야

-하이패션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고도로 발전한 하이패션은 꽃무늬와 구분할 수 없다 by우주선

-나 빼고 단체로 몰래카메라하냐

-로빈스 씨 얼마 받았어, 솔직하게 말해 봐

-다들 납득 못하는 거 개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한테 말하니까 안 믿음

유명 디자이너의 등판.

그 때문에 아이돌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다른 커뮤니티로 빠르게 소식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반응은 아이돌 팬들과 그닥 다르지 않았다.

-최면걸었나?

-최면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너는.. 나를 칭찬한다..

-근데 우주선이라면 진짜 가능할 것 같아서 더 무서움

-저 졸개들의 충성심이 사실 최면 기법 때문이라는 말이 있음

-야 그거 설득력 있다

-그 무슨 서브프라임 효과 ㅣㅆ지 않나 뭐더라 그 장면사이에 0.1초씩 넣어서 세뇌하는 거

-서브프라임은 모기지고.. 여기 댓글 단 애들 지능 수준으로는 최면 걸 필요도 없을 거 같은데

온갖 드립 파티가 벌어지면서 유명 디자이너의 등판을 한 바탕 해프닝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이거 보셨어요? 유명한 디자이너가 우주 옷 잘 입는다고 칭찬했대요.”

“돈 받았나.”

틴 초이스에 관심이 많은 아이돌 팬들과 다르게 오프라인에서는 주로 유명 디자이너의 칭찬 소식이 퍼지고 있었다.

“한국에 진출하려고 그런 거 아닌가?”

“근데 엄청 유명한 사람이래요. 르블랑에서 디자인으로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하던데.”

“르블랑, 그 대기줄 긴 데……?”

콧대 높기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가 칭찬을 했다는 소식에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한국인들이었다.

누군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SNS에 올린 거 보니까 완전 반한 거 같던데, 저러다가 패션쇼에도 서 달라고 부르는 거 아닌지 몰라.”

“풉, 우주가 패션쇼……!”

“프흡!”

커피를 마시다 단체로 웃음을 터뜨리는 한국인들이었다.

‘우주가 패션쇼라니.’

상상만 해도 희대의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   *   *

다음 날.

“베스트 드레서 선우주 등장.”

“…….”

보통 이 타이밍이면 흐하핫! 하면서 박수를 쳐야 되는데, 졸개들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박수.”

“와아아아아아…….”

힘없는 박수 소리에 리혁이가 투덜거렸다.

“언제까지 베스트 드레서 가지고 얘기할 거예요?”

“너희가 진심으로 나의 승리를 축하할 때까지?”

“승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얼굴로 이긴 거잖아요…!”

“허어어.”

리혁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들어 마이크처럼 내밀었다.

“녹음하게 다시 한번 좀.”

“캬아아악!”

“리혁이 형, 진정해요! 참아!”

“리혁아. 가서 물어. 얼른 물어.”

“비주 형은 왜 그러고 있는데요!”

동생들이 투닥대고 있는 동안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어제 베스트 드레서가 된 기념으로 오늘도 지미 로빈스 님이 보내 주신 꽃무늬 티셔츠 하나를 입었다.

“흠흠흠.”

맑고 화창한 LA의 하늘이 스쳐 지나간다.

몽실몽실한 구름을 보며 덕순덕순한 기분을 느끼는 한편, 호텔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미니 버스에 올라탔다.

“다들 잘 잤니?”

인자한 목소리로 안부를 묻는 대표님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잘 주무셨어요?”

“시차 때문에 조금 피곤하더라고. 허허허, 얼른 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어제 미팅 일정이 많았던지 대표님과 석환 형의 얼굴이 조금 피곤해 보였다.

중현이가 대표님의 어깨를 조물조물 주물러드리면서 대표님과 우리 팀장님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감돌았다.

“아이고, 시원하다.”

“어어어어… 중현이는 손에 모터 달았니.”

“네.”

두 사람이 행복해하는 동안 차량이 출발했다.

여름철이라 그런지 아침나절부터 후끈후끈한 편인데, 차량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맡기며 동생들과 사진을 찍었다.

틴 초이스 어워즈를 마친 다음 날.

다른 때와 달리 바로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은 이유는 LA에서 안무 영상을 찍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네!”

셀프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LA 2일 차고요. 저희는 오늘 촬영장으로 갑니다! 비주 씨, 오늘 저희가 뭘 하죠?”

“저희는 오늘 메트로의 안무 영상을 찍을 거예요.”

“왜 찍는 거죠?”

“글로벌 프로모션을 준비한 메트로인 만큼, 미국의 지하철을 배경으로 한 안무 영상도 찍어 보고 싶어서요.”

그런 의도로 준비한 기획이었다.

지하철이란 배경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미국에도 있으니까.

막내가 물었다.

“근데 LA에 지하철이 있어요?”

“검색하니까 있다던데.”

“한 번도 못 본 거 같은데요.”

LA에 와서 한 번도 지하철을 못 본 터라 있는 줄도 몰랐는데. 검색하니 LA 메트로가 있다고 했다.

규모가 엄청 크고 그런 편은 아닌데 생각보다 최근에 지어져서 시설이 좋은 편이라나.

호주에서 리얼리티 찍을 때 2층 지하철은 타 봤는데, 아직 미국 지하철은 체험을 못 해 봐서 굉장히 궁금하다.

“음, 외곽 쪽으로 나가는데요?”

LA 지하철과 관련된 촬영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출발하는데, 뭔가 목적지가 생각과 다르다.

앞자리에 앉은 석환 형에게 고개를 내밀었다.

“형, 우리 촬영장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그런데 여긴 방향이 다른 거 같은데.”

“아, 월드 아트 스튜디오 측에서 마련해 준 촬영장으로 가는 거야. 세트장을 작게 지어 놨다고 하더라고.”

“오…….”

한국에서 뮤비 찍었을 때처럼 지하철 칸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그런 세트장이 있나 보다 생각을 했다.

이윽고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월드 레코드사와 소속이 같은 영화제작사 월드 아트 스튜디오의 사옥을 지나 거대한 부지 안으로 진입했다.

거의 소도시만 한 땅에 거대한 창고 같은 스튜디오가 즐비해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그중에서도 규모가 꽤 큰 곳이었다.

“와…….”

“진짜 크네.”

차량에서 내리자 선글라스를 쓴 30대 여성이 다가왔다.

「반가워요! 오늘 촬영을 맡은 현장 총괄, 셀레나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와우, 뉴블랙… 어제 틴 초이스에서 상 탔다면서요? 축하해요. 제 조카도 투표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원증을 걸고 있는 현장 팀장이 우리를 스튜디오 안으로 안내했다.

「세트장에서 촬영을 해서 현장감이 좀 떨어질 순 있겠지만, 현장 촬영 협조를 구하는 게 어려워서요.」

「많이 어려웠나요?」

「LA 메트로 측에서 조건을 너무 많이 걸어서, 촬영은커녕 장비 설치할 시간도 빠듯하더라고요. 행인들을 통제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일단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면 안 되니까.」

우리가 한국에서 실제 지하철 촬영을 못했던 것처럼 여기도 현실적인 애로사항이 많은 듯했다.

그런 말을 하던 현장 팀장이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그래서 비용 계산을 하다가 오히려 세트장을 건설하는 게 더 싸게 먹힐 것 같더라고요.」

「오…….」

「그래서 지하철 세트를 통째로 만들었습니다!」

“예?”

나도 모르게 한국말이 나왔는데, 팀장이 눈을 찡긋하면서 ‘Yeah~’ 하고 동의했다.

지호가 눈을 깜빡였다.

“방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현장 촬영을 하는 돈을 생각하니 세트장 짓는 게 더 싸다고 한 거예요?”

“그런 거 같은데…?”

현장 촬영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세트장을 짓는 것보다 더 들지는 않지 않나?

그것도 고작 하루 안무 영상 찍는 건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

“…….”

중현이가 눈을 비볐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철역이잖아. 이거.”

“지하철도 있어요.”

LA 지하철을 고스란히 옮긴 듯한 세트장 안에 진짜 지하철이 있었다.

현장 촬영보다 이게 더 싸다고…?

이 나라에서는 현장 촬영할 때마다 구경하는 사람들한테 금괴라도 돌리는 건가.

장비와 카메라를 설치하는 스탭들을 바라보며 이 거대한 세트장 속에서 잠시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저기.」

현장 팀장 셀레나에게 우리가 물었다.

「오늘 하루 촬영하고 가는 거 아시죠?」

「네.」

「그런데 세트장을 지으신… 건가요?」

「그렇죠?」

대수롭지 않게 ‘현장 촬영하기 싫어서 지었는데요?’ 하는 모습에, 우리 팀 재벌집 막내조차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의 생각을 알아챈 셀레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사실상 거의 무료로 지은 셈이니까.」

「무료요?」

「이 촬영장은 앞으로 ‘뉴블랙이 촬영하고 간 곳’이라고 남겨 둘 거예요. 성지 순례를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는다고 치면 1년도 안 돼서 회수가 끝날 거예요. 기념품까지 팔면 흑자까지 3개월로 단축되고.」

「대, 대단하네요…….」

미래에 출시할 상품으로 메트로 티셔츠, 메트로 빨대, 메트로 우산, 메트로 캐릭터 뱃지 등을 말하는 모습에 동생들과 감탄했다.

‘이게 자본주의…….’

‘원조는 다르구나.’

석환 형도 원조 자본주의 상술은 격이 다르다며 감탄하고, 우리 대표님도 어허허 웃을 때.

촬영장 한편에 설치된 아이스박스들이 보인다.

얼음이 가득한 박스에 갈증을 달래 줄 탄산음료들이 담겨 있었다. 셀레나가 물었다.

「콜라 좋아해요?」

「네.」

「기업에서도 후원이 들어와서요. 그 덕분에 사실상 무료로 세트장을 지었어요.」

「혹시 영상에 저 음료가 들어가야 한다거나.」

「전혀요.」

그 말에 셀레나가 멀찍이 음료 기업의 담당자로 나온 사람을 소개했다.

안경을 쓴 멀쑥한 인상의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편하게 즐겨 주세요. 아무 부담 없이 촬영장에서 갈증이 날 때마다 한 번씩 마셔 주시면 됩니다.」

이른바 PPL이라는 이야기였다.

뉴블랙의 비하인드 영상에서 마시는 모습이 슬쩍 나오기만 해도 좋겠다는 듯한 뉘앙스라고 할까.

그마저도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하고 있었다. 브랜드에 호감을 가지기만 해 줘도 감사하다고.

“…….”

뭔가 이상하다.

비용을 댄 음료 기업은 PPL과 브랜드 이미지로 이득을 보고, 제작사는 음료 기업 돈으로 세트장을 지은 것도 모자라 앞으로 몇 년 동안 장사할 관광지가 생기고.

분명히 세트장을 짓는 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갔을 텐데… 아무에게도 마이너스는 없는 상황이었다.

손해를 본 사람은 없고 이득만 본 사람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뭔가 멍한 기분을 느꼈다.

“…….”

이거 뭐지? 하고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말했다.

“일단 마시고 보자.”

“네.”

주변에서 돌아가는 카메라를 의식하며 동생들과 함께 시원한 탄산음료를 들이켰다.

“크으으!”

“어우! 달다! 달아!”

“어멋, 이게 바로 세계 최고의 음료…!”

서서히 조금씩 다른 나라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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