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99)화 (69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99화

“음?”

누군가 절규하는 소리 때문에 꿈에서 깨어났다.

분명히 누군가 꺼흐흑! 하면서 울부짖는 소리가 어디서 들린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인가.

“리혁아.”

“왜요.”

“너 혹시 책에서 오타 같은 거 발견했니?”

“아뇨? 왜요?”

“누가 되게 울부짖은 거 같아서…….”

꿈속에서 들은 환청이었나?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던 리혁이가 한심하단 얼굴로 혀를 쯧쯧 찼다. 그러곤 나무젓가락을 내밀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요. 점심밥 왔으니까.”

“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도시락을 하나씩 품에 안고 즐겁게 웃고 있다.

잠을 깨기 위해 고개를 흔들고는 박스에서 도시락 통을 하나 받아 왔다.

“형, 밥 먹기 전에 따뜻한 물 좀 마셔요. 체할 수도 있으니까. 또 위장 병 나면 안 되잖아요.”

온수가 담긴 잔을 내미는 비주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목구멍으로 따스하게 넘어오는 보리차의 향을 느끼며 바닥이 뜨끈뜨끈한 도시락을 집어 들었다.

제육볶음과 햄을 얹은 밥, 계란말이와 김치 등이 탐스럽게 보인다.

“와.”

우리 로드 매니저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국식 도시락은 어디서 구했어요?”

“마닐라 근교에 칼람바라는 데가 있는데요. 거기서 한식 도시락을 배달한답니다.”

뿌듯한 미소로 답하는 매니저들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우리가 이 도시락을 먹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필리핀이기 때문이었다.

동남아시아 투어의 마지막 단계인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콘서트.

신곡 발매를 앞두고 콘서트가 끼어 있다는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이번에 나오는 신곡이 디지털 싱글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신곡은 1곡짜리라 별도 오프라인 쇼케이스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여유롭다.

“와, 한국이랑 진짜 맛 똑같다. 눈 감으면 한국이에요.”

그런 말을 하던 지호가 전단지를 들고 말했다.

“오?”

“왜 그래?”

“형, 이거 봤어요? 여기서 뉴불백 도시락이 제일 인기래요. 여기 ‘인기 메뉴’라고 영어로 적혀 있는데.”

밥을 꿀떡 넘긴 민수 씨가 대답했다.

“네, 뉴불백 도시락이 제일 인기라고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너무 질리셨을 것 같아서…….”

“잘하셨어요. 솔직히 뉴불백은 너무 많이 먹어서.”

막내가 내민 전단지를 바라보고는 다시 밥을 먹으려고 할 때였다.

“음?”

뭔가 이상했다.

전단지에 적힌 뉴불백 도시락을 다시 한번 보고는, 멀찍이 앉아 있는 석환 형을 바라보았다.

“뉴불백이 필리핀에 수출되고 있나?”

“아니.”

“그런데 여기 있는데……?”

“그렇지.”

저작권이나 상표권 같은 것에 안 걸리나 싶었지만, 평소처럼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자주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우리랑 닮은 꼴로 광고판도 만들고 그런다던데. 심지어 광고 모델이 리혁이처럼 차려입고 미백 크림을 광고하는 곳도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뉴불백도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공공재 뉴블랙.”

“그것이 바로 우리다.”

동생들과 깔깔 웃으며 식사를 이어 갔다.

한국에서 먹던 것과 똑같은, 세심하게 준비된 점심 식사를 먹고 나서는 리허설, 리허설, 리허설의 반복이다.

각 공연장마다 무대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동선을 조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음향 장비나 무대 장치에 안전 이상은 없는지 우리 눈으로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객석도 한 번씩 쭉 올라가서 무대가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고.

“마스커레이드 때 지금 동선으로 가면 B 구역에서는 완전 안 보일 것 같은데요. 조금 더 좌측으로 와야 할 것 같아요.”

“그럼 또 D 구역이 안 보이지 않나?”

“잠시만요.”

중현이가 리모컨을 조종하면서 무대 위에 우리 얼굴 깃발을 꽂은 미니카 다섯 개가 움직였다.

필리핀 현지 스탭들의 눈동자가 동그래진 것이 몹시 신기한 것을 보는 풍경이다.

“으음…….”

“음…….”

“그래도 조금 더 좌측으로 가 볼까요?”

“그래 보자.”

좌측으로 움직인 미니카들이 쭈우욱 움직인다.

우리한테 잘 보일 때까지 움직인 미니카들을 바라보며 더더더… 하듯이 주차 요원처럼 말할 때였다.

“어어어어어!”

일렬로 오던 미니카들이 절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이끄는 쥐 떼처럼.

“…….”

“…….”

“……적당히 왼쪽으로 가는 걸로 할까?”

“그, 그래야겠어요.”

동생들과 이 구역, 저 구역을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하다가 잠시 앉아서 쉴 때였다.

지이이이잉.

미튜브 어플에서 구독 중인 계정에서 뮤직 비디오가 올라왔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1시.

미국 동부 시간으로는 자정 12시.

이번에 TJ 엔터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영어 곡 프로젝트가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뭐예요. 형?”

“트릭스터 노래 업로드 됐다고 해서 들어 보려고.”

하품을 하던 동생들이 ‘아’ 하고 말했다.

“트릭스터도 이제 컴백하는구나.”

“저는 선우주의 휴식일기 때문에 까먹고 있었는뎅. 지금 신곡 나온 거래요? 어때요? 좋음?”

“얼른 틀어 봐요. 형.”

양옆으로 둘씩 짝짜꿍해서 앉은 졸개들이 내 핸드폰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잠시만.”

TJ 엔터테인먼트 계정에서 막 올린 트릭스터의 ‘Thunder’ 뮤직비디오를 클릭하고는 시선을 집중했다.

집사처럼 생긴 노인이 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창가를 배경으로 저택을 거닐고 있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무도회장 같은 곳으로 들어선 노인이 등잔에 초를 켜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흰 천에 둘러싸인 조각상들.

조각상들을 하나씩 확인한 노인이 방을 나서면서 멈춰 있던 조각상의 천들이 부드럽게 흘러내려가기 시작했다.

우아하고 고전미 가득한 뮤직비디오의 배경에 동생들이 오오오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색깔 진짜 예쁘다.”

“뮤비 되게 잘 찍은 거 같은데?”

영상을 보며 귀를 쫑긋 세웠다.

우리가 그때 거절했던 스티브 개럿 듀오가 작곡에 참여했다고 그러던데. 왠지 우리랑 잘 안 맞을 것 같아서 거절하긴 했지만, 스티브와 개럿은 미국 시장에서 잘나가는 작곡가들이다.

그들이 만든 K팝 곡에서는 어떤 배울 만한 점이 있을까.

벌써부터 가슴이 득순-득순했다.

“와. 엄청 돈 들인 거 같은데요.”

리혁이가 말했다.

“이거 어쩌면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곡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인 거니까.”

“허어어…….”

TJ 엔터가 마치 ‘후후후, 보고 있느냐. 이 레몬 즙들아’ 하면서 웃어 대는 느낌이다.

그렇게 트릭스터의 세계관 컨셉인 ‘장난꾸러기’를 살린 인트로가 끝난 후.

무대에서 능글능글한 매력 포인트를 뽐내는 트릭스터의 신곡이 시작됐다.

그리고.

“오……!”

트릭스터가 내세운 신곡은 몹시도 좋았다.

누구나 들으면서 ‘오, 이거 노래 좋은데?’ 라는 말이 나올 만한 곡이었다.

듣다 보면 약간 귀를 피로하게 하거나 질리는 감이 있는 노래지만, 그래도 잘 만들었냐? 라고 한다면 그렇다고 답할 만한 곡.

문제는…….

“형들.”

막내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거 그 사람들이 우리한테 들려줬던 곡 아니에요?”

“맞아.”

스티브 개럿과 미팅할 때 들었던 바로 그 곡이었다.

-후후후. 이게 바로 저희의 필살기 같은 곡입니다.

-와아아. 멋.지.군.요.

-이거 너희가 달라고 해도 안 줄 거야! 이미 임자 있지롱! 가지고 싶지? 이거 엄청 가지고 싶지?

-우.와.

…하면서 우리가 ‘안 할 거지롱!’ 했던 바로 그 곡이었다.

중현이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임자가 있다는 게 뻥이었네요.”

“아직 안 팔린 곡 들이밀고 있었구나. 이 사람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요. 다른 사람한테 주려고 작업하던 곡을 외부인한테 들려주는 것도 이상했고…….”

디스코와 락이 섞여서 흥겹게 ‘Thunder’의 후렴구를 부르고 있는 트릭스터를 바라보며 뒤에서 껄껄 웃고 있을 박태준 회장의 모습이 그렸다.

회장님.

저, 그…….

사기 좀 당하신 것 같은데…….

“…….”

“…….”

노래가 끝난 후.

우리는 숙연한 기분으로 뮤비를 끄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왜일까.

우리에게 ‘헹! 영어 곡 나간다! 흐헤헤!’ 했던 TJ 엔터가 이제는 얄밉지도 않고 뭔가 이 짠해 보이는 이 느낌은…….

*   *   *

트릭스터의 팬덤 ‘로아’는 오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영감탱 죽어……. 아니야. 진짜 죽진 말고.’

‘영감탱 가만 안 둬….’

우선은 뜬금포 영어 곡 프로젝트를 진행한 박 회장에 대한 분노였다.

TNT 해체 때부터 오락가락하던 기색이 보이더니 이제는 노망이 들어서 차기 보이그룹까지 망치려는 게 분명했다.

‘이 정도면 다른 기획사에서 심어 놓은 스파이 수준인데.’

박태준 회장이 가발을 벗고 ‘그렇다! 나는 같은 박씨인 박규호다!’ 해도 납득이 갈 정도였다.

그중에서 제일 미친 짓은 바로 뉴블랙과의 비교 언플.

‘누굴 죽이려고 작정했냐고! 이 미친 영감탱이!’

지금 아이돌판에서 가장 큰 팬덤이 어디인가.

바로 저 시커멓고 거대한 수플레들이다.

자꾸만 그들을 자극할 만한 마케팅을 펼치려는 모습에 로아의 심경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쟤네가 숨만 쉬어도 우리 날아간다구.’

매일매일 ‘그만 해… 나 죽는다…’ 하면서 곡소리를 내던 로아들.

다행히 지금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일단 뉴블랙의 메트로 프로모션이 시작되면서 저 거대 팬덤의 시선이 분산되기도 했고.

그리고… 곡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진심 좋은데?!’

소속사에서 언플을 할 만한 곡이라고 생각했다.

절묘한 사운드와 멤버들의 미성이 어우러지는 곡은 확실히 잘 만들었다고 할 만했다.

다른 아이돌 팬들도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곡 괜찮은데??

-대표곡으로 꼽아도 될 거 같은데? 노래 잘뽑았어

-트릭스터도 항상 ㄴ래 좋은 듯

-이번에 트릭스터 노래 괜찮다

-좋긴하데 넘 팝송같아ㅋㅋㅋ

……하지만 최상의 반응은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좀 구린듯ㅠㅠ’ 이나 ‘너네 돌 곡은 개쓰레기구나!’ 같은 극찬이 안 보였다.

견제가 없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천상계로 꼽히는 뉴블랙만 해도 신곡이 나올 때마다 별의별 소리가 나오는 게 이 바닥 아니던가.

‘그래도… 선방은 했다.’

졸속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인 게 뻔히 보여서 결과물이 안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는 괜찮았다.

트릭스터의 팬덤은 현재 상황을 지나가는 소나기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도 영감탱이 고집은 안 세니까.’

한 번 뭔가에 꽂히면 저돌적으로 추진하지만, 벽에 쿵! 박은 후에는 ‘아닌가벼…’ 하고 물러서는 것이 TJ 엔터의 특징이었다.

앨범이었다면 타격이 컸겠지만 그래도 디지털 싱글 정도면 지나가는 활동 정도로 여겨도 될 만했다.

트릭스터의 팬들이 뮤비 속 멤버들의 비주얼이나 신곡에 대한 칭찬, 미튜브 댓글 방어, 스밍을 하면서 열심히 분투하기 시작했다.

‘역시 국내는 좀 무리인가.’

팬들의 힘으로 실시간 차트에 곡을 집어넣긴 했는데… 뭔가 유입이 시원치 않은 느낌이다.

일반 대중들이 ‘오? 신곡?’ 하면서 잠깐 듣다가 그냥 나가는 느낌.

K팝보다는 팝송에 훨씬 더 가까운 곡이기 때문인 듯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곡을 좋아하니까.

“으으으음…….”

미국을 염두에 두고 내놓은 곡이니 그런 걸 수도.

트릭스터의 팬덤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연예부 기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트릭스터 쇼케이스에 참석한 기자들이 수군거렸다.

“오늘 나온 신곡 들어 보셨어요? 트릭스터 거.”

“생각보다 괜찮던데요? 왜 그렇게 보도 자료 돌리고 홍보에 공을 들이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어요.”

“그래도 대형은 대형이더라고요.”

호평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다만…….

“좋긴 한데, 막 또다시 듣게 되고 그러진 않는 것 같더라고요. 나만 그런가?”

“아뇨. 저도… 좋긴 한데. 조금 부담스러운?”

“뮤비랑 같이 볼 때는 엄청 좋은데 또 리스트에 넣어서 계속 들을 정도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퍼포먼스에 특화된 곡 같아요.”

뉴블랙의 어느 작곡 요괴가 공언한 것과 비슷한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생크림 케이크 같은 느낌.

처음에 한두 입은 ‘어머, 맛있다!’ 하지만 매일매일 생크림 케이크를 먹지는 않게 되듯이. 곡이 어떻습니까? 한다면 좋다고 할 만한 곡이지만 막 중독돼서 계속 들을 노래는 아니었다.

“뭐.”

어느 기자가 말했다.

“그래도 미국 반응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국내랑은 또 다르니까. 미국 쪽 K팝 팬들 구미에 잘 맞을 수도 있죠.”

“그렇죠.”

“K팝도 슬슬 파이가 커지고 있는 것 같던데, 꼭 뉴블랙만 미국에 진출하게 되리란 법은 없잖아요?”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   *   *

시카고에 살고 있는 재닛은 K팝 팬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뉴블랙으로 K팝에 입덕을 하게 된 잡덕.

“호오오오.”

스트릿 보이즈의 LB가 고개를 꺾으며 파워풀하게 걸어오더니 랩을 하는 연말 무대 영상에 뺨에 손을 올렸다.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나무는 어쩜 이름도 Tree일까.

무대에선 카리스마 넘치는 아이돌이지만 평소엔 빙구.

그녀가 좋아하는 인물상이었다.

무대 영상이 끝나자 알고리즘으로 자동 추천된 감나무의 먹방 영상이 올라왔다.

-헤헤. 도넛. 헤헤…….

여행 리얼리티에서 도넛을 들고 가다가 갈매기에게 촤악! 하고 뺏기고 울상을 짓는 모습에 재닛이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뉴블랙의 친구다.’

리혁과 절친하다고 하던데.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뉴블랙의 친구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쏘 큐트.”

흐뭇하게 웃던 재닛이 이번에는 틴스피릿으로 옮겨 갔다.

최근 들어 사춘기를 지나 이제 어른미를 뽐내려고 시도하는 틴스피릿의 무대가 이어졌다.

청량한 대학생 같은 무대.

‘K팝은 천국이야.’

종류별로 음식이 구비된 뷔페 같았다.

청량한 소년미를 보고 싶으면 틴스피릿이 있고, 강렬하고 센 힙합이 보고 싶으면 스트릿 보이즈가 있고. 화려하고 블링블링한 무대가 보고 싶다면 최근 뜨는 원더 차일드가 있었다.

그중 최고봉은 31가지 맛을 보여 주는 뉴블랙.

“역시…….”

뉴블랙의 무대를 바라보는 재닛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빌보드 어워즈의 Blue Moon 무대 이후로 미국에서 급격하게 수를 불려 가고 있는 K팝 팬덤이었다.

많은 수는 뉴블랙이란 그룹의 팬이 되었지만, 그녀처럼 이렇게 범위를 넓혀 K팝이란 장르 자체를 좋아하는 팬도 있었다.

“음?”

그런 그녀의 앞에 새로운 동영상이 떴다.

유명 보이그룹 중 하나인 트릭스터가 신규 뮤직비디오를 올렸다는 것이었다.

‘호오오오.’

썸네일부터 취향 저격이라 마우스를 클릭한 재닛이 두근두근한 기분을 느낄 때였다.

뮤비의 인트로에 감탄하다가 노래가 나왔을 때.

“으음?”

왠지 모르게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영어 가사가 나오는 곡.

가사가 확 귀에 들어와서 좋기는 한데, 그녀의 성에는 차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건 K팝이 아니야.”

평생을 시카고에서 살아온 30대 미국인의 마음에 흥선대원군의 자아가 깨어나 버린 것이다.

멤버들의 연기나 춤은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 노래는 그냥…….

팝송 아닌가.

K팝에 ‘K’가 붙어서 좋아하는 팬 입장에서는 미묘했다.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았는지 얼마 안 가 SNS와 K팝 커뮤니티에도 관련 글이 올라왔다.

[한국 가수가 부르면 다 K팝이라고 생각해?]

한 번 등장할 때마다 해외 K팝 커뮤니티를 분열시키는 떡밥이 다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미국인 5인조가 한국어로 K팝 장르를 부르면 K팝인가.

한국 가수가 영어로 노래를 불러도 K팝인가.

-K가 무엇인고. Korea가 아닌가? 당연히 Korea 국적이 있어야 한다. 이 사문난적들아.

-언어랑 형식이 중요하지. 한국 가수가 아랍어 민요 불러도 K팝임?

-K팝은 가고 이제 J팝의 시대가 옵니다.

-아 님은 꺼지세요.

미국인들이 열심히 K팝계의 노론과 소론으로 ‘과연 어느 것이 우리의 소리인가?’ 하며 논의하는 훈훈한 광경.

그런 논쟁을 지켜보던 재닛이 SNS에 본인 의견을 피력하고는 다시 미튜브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봐도 이건 K팝이 아냐.’

영어가 가사라서 그런 게 아니라 K팝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한국인보다 더 까다로운 기준.

고개를 슥슥 젓던 재닛이 다른 영상을 찾아 떠났다.

‘이거나 다시 봐야지.’

그녀가 요즘 들어 푹 빠져 있는 K팝 곡이 하나 있었다.

직장에 출퇴근할 때도 차에서 듣고, 샤워할 때도 틀어 놓고 흥얼흥얼하게 되는 곡.

[Scarlet - Not Fine]

바로 스칼렛의 파이널 경연곡이었다.

무대 위에서 파워풀하게 춤을 추는 걸그룹 멤버들의 모습에서 어떤 소울이 느껴진다.

“This is us, so take it or leave it~”

노래 가사를 같이 흥얼거리며 ‘yeah’ 하고 있는 K팝 팬.

그녀뿐만 아니라 최근에 스칼렛이란 그룹을 접하게 된 미국의 K팝 팬덤 대부분이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 곡을 매일 한 번씩 보러 와

-한국 사람들은 좋겠다. 이런 무대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으니까

-가장 ‘저평가’된 한국 걸그룹

-스칼렛의 다른 곡들 들어 본 사람 있어?? 만약에 그녀들의 데뷔가 늦었다면 뉴블랙처럼 미국에서 그녀들을 볼수 있었을 거야

-작곡가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작곡가 장례식에서 틀어 줘야 할 만큼 끝내주는 노래야

-또 들으러 왔다 이것으로 123번째.

뭄바톤 장르가 K팝 특유의 색채로 전환되어 나오는 중독성.

멤버들의 화려한 비주얼.

걸크러시가 아니라 걸-행성파괴 같은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은 강렬함.

이렇게 미국의 K팝 팬들이 하악… 하면서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아이돌이 바로 스칼렛이었다.

뉴블랙만 미국에 진출하게 되리란 법은 없지 않느냐는 어느 기자의 말처럼.

“호오.”

“여기 괜찮은 것 같은데? 뉴블랙의 자매 그룹이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심해를 헤매는 거대 자본들의 레이더에 고기 여신들이 탐지되고 있었다.

미국에 먹힐 K팝 곡을 만들기 위해 분주했던 송 캠프에서 탄생한 Not Fine.

선발대로 나온 스칼렛의 곡이 미국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점점 더 흥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상금으로 매일같이 동료 걸그룹과 산적들처럼 고기 잔치를 펼치는 어느 걸그룹은 아직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기다! 고기!”

“깔깔깔!”

“스칼렛의 위장은 세계 최강…!”

“야, 다들 먹어, 먹어! 잘 먹고 죽어야 때깔이 LED다!”

그리고.

“오늘도 우주교의 대사제, 저 비주가 주관하는 법회가 있겠습니다. 미튜브 3페이지를 봐주십시오.”

“보입니다.”

“무엇이 있습니까?”

“우주선은 세계 최고의 작곡가라는 댓글이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좋아요를 누릅니다.”

“이것으로 정기 법회를 종료합니다.”

“그게 끝이야? 나 칭찬 더 안 해 줄꼬야?”

호텔 방에서 야식을 먹으며 기묘한 종교 집회를 열고 있는 뉴블랙도 상황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고기! 고기! 고기!”

“우주선! 우주선! 우주선!”

“흐헤헷!”

장차 미국 어린이들의 미래를 맡겨도 괜찮을지 진심으로 걱정할 만한 광경들이 펼쳐지고 있는 건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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