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04)화 (70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04화

간밤에 꿈을 꿨다.

꽃무늬가 새겨진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섰는데, 그만 꽃이 우수수 옷에서 떨어져 내린 거다.

그 꽃들이 갑자기 지호처럼 깔깔 웃더니 꾸물꾸물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치 예전의 나를 흉내 내듯 막춤을 추던 꽃들이 펑! 하고 터지더니.

삐비비비빅.

알람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아.”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오늘 쉽지 않겠구나 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세상 외출하기 싫은 사람의 얼굴로 양치를 하고는, 옷을 차려입고 호텔 방을 나섰다.

“형.”

복도에서 마스크를 쓴 채 흐느적거리던 막내가 힘없이 물었다.

“꽃무늬 안 입었네요.”

“꿈에서 꽃이 나왔는데 예감이 안 좋더라. 오늘은 대충 입고 가려고.”

“꿈? 무슨 꿈이요?”

“꽃들이 나 약 올리다가 폭발했어. 이게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네.”

“무대가 터진다는 거 아닐까요? 좋은 쪽으루.”

막내랑 내가 서로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너도 잠 못 잤구나.”

“못 잔 정도가 아니에요. 으어어어어…….”

지호가 기지개를 쭉쭉 켜며 허리를 이리저리 뒤틀었다. 하품과 함께 노곤노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어제 한숨도 못 잤어요. 연습 때 실수한 거 자꾸 생각나 가지고, 화장실 거울 보고 안무 연습하고. 목 관리해야 되니까 리혁이 형이 타 준 허브차 마시고…….”

“마시고?”

“기억이 없네. 잤나 봐여.”

“에라이.”

피곤하다면서 내게 꾸물꾸물 다가와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막내였다.

곧이어 호텔 방문이 하나둘 열리더니 후드를 눌러쓴 괴인들이 등장했다.

안색이 다들 최악이었다.

분명 컨디션 관리하겠다고 시상식 전날은 푹 쉬기로 결정했는데, 역시 쉬는 게 능사는 아닌 모양이다.

다크서클이 깔린 리혁이와 비주를 보며 물었다.

“너희도 어제 방에서 연습했지?”

“어? 어떻게 알았어요?”

나도 그랬다고 하니 비주도 웃었다. 리혁이는 말할 기운조차 없는지 벽에 몸을 밀착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중현이는…….”

“네.”

반짝반짝.

아침 햇살을 머금은 이슬처럼 윤기 나는 피부와 건강한 안색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건강하구나. 동생아.”

“건강해야죠. 제가 뉴블랙의 중심을 떠받치는 받침대니까.”

“언제부터?”

“지금부터 그러기로 결심했어요.”

중현이가 허리를 굽히며 물었다.

“피곤해 보이는데 업어 줄까요, 형?”

“비주나 업어 줘.”

“야, 업어 줄까?”

비주가 말 섞기도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막내가 쪼르르 달려가 중현이의 등 위로 폴짝 뛰어오르면서 복도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웃음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로비로 내려갈 때도, 호텔 바깥에서 기다리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차에 탈 때도, 영어로 된 낯선 표지판과 맑은 하늘을 빤히 바라보는 동안에도.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이고 있을 뿐.

다들 말수가 적었다.

중요한 날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후우…….”

숨을 내쉴 때마다 한숨이 되어 흘러나오는 느낌이다.

비주가 나를 흘깃 보며 물었다.

“노래라도 틀까요?”

“좋아.”

노래를 들으면서 안정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METRO가 흘러나오면서 우리들의 몸이 자동으로 안무를 추기 시작했다.

“…….”

“…….”

촉촉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자 비주가 당황해서 핸드폰을 껐다.

리혁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뭐였어요?”

“망고 차트 100인데 우리가 1위인가 봐.”

“기, 기쁜 일이네요…….”

기쁜 일이지만 잠시 일 생각은 던져두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머릿속에 자꾸만 METRO 연습 때 있었던 자잘한 안무 실수나 음정, 박자, 타이밍 실수 등이 떠오른다.

리혁이가 말했다.

“그냥 일 이야기나 할까요.”

“그러자.”

멤버들과 함께 차분히 머리를 맞대고 일 이야기를 했다.

연습을 하며 살아온 시간이 휴식하면서 살아온 시간보다 길어서 그런지, 쉬려고 하면 더 어색하다.

한참 동안 무대 동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나서 화제를 틀었다.

“으으, 왜 이렇게 떨리지.”

“저두여.”

이 분위기를 표현하면 뭐라고 할까.

중요한 시험?

아니면 TNT 데뷔조를 뽑는 오디션?

정확히 어떤 기분이라고 종잡기 힘들었다. 마냥 떨리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한편으로는 설레는 기분도 들기도 하니까.

미국 최대의 시상식 중 하나인 VMA에 우리 노래로 단독 무대를 선다.

솔직히 아직도 안 믿긴다.

꿈이라면 깨기 싫을 만큼 아주 좋은 꿈인데…….

문제는 그만큼 떨린다는 거다. 최근 1년간 이 정도로 떨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저 너무 떨려여. 으어어어. 어떡하져? 어떡하지?”

“어떡하기는.”

나도 답할 말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하고 오는 거지. 뭐. 미국이 별거냐.”

“별거죠.”

“별거라고 생각해서 위염 걸렸잖아요. 당신.”

“별거 같긴 하네요.”

“별거… 너무 슬픈 단어예요.”

얄밉게 태클을 걸어 대는 졸개들에게 눈을 흘기자 키득대는 웃음이 돌아왔다.

“진짜 뭐라고 할 말이 없네. 나도 떨려서.”

“무능하다!”

“무능해!”

“그 얼굴이 아깝다! 나 줘라!”

마지막 말에 우리의 시선이 돌아갔다.

정적.

리혁이가 홍시처럼 변해 버린 얼굴로 아닌 척하고 외면하고 있었다. 졸개들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내 얼굴이 부러웠구나.”

“사실 저희도 부러워요.”

“자신감을 가지렴. 너희도 소중한 미모를 가지고 있어.”

“고마워요.”

비주가 립글로즈를 내밀었다.

“이거 발라요. 형.”

“나 입 텄어?”

“아뇨. 이거라도 바르고 말했으면 해서…….”

“허어.”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하라는 말을 이토록 고급지게 할 줄이야. 내가 엄지를 들어 칭찬하자 비주가 쑥스러워했다.

솔직히 지금 우리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모르겠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민기 형만 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려 대고 있었다. 역시 우리의 못난 모습이 웃긴 모양이다.

한참을 쓸데없이 만담하다가 졸개들에게 말했다.

“내가 고민을 해 봤는데, 이렇게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에는 답이 하나밖에 없어.”

“뭔데요?”

“미신.”

“역시.”

“손 잡고 기도나 하자.”

다 같이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내가 먼저 운을 뗐다.

“앞으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와. 시작부터 거짓말이네여.”

민기 형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동생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저희도 우주 형을 위해 살겠습니다.”

“…….”

“…….”

정적이 감돌았다.

눈을 가늘게 뜨자 피식피식 웃고 있는 졸개들과 눈이 마주쳤다.

“너무 거짓말이었지?”

“네.”

“다시 하자.”

“네.”

눈을 감고 내가 생각하는 신의 형상을 상상했다.

어두운 곳에서 환한 빛이 등장하더니 대표… 아, 대표님이 아니라 우리 김덕순 여사가 날개를 달고 등장했다.

김장조끼가 성스러운 빛을 자랑하며, 군산 시민들이 아기 천사가 되어 나팔을 불고 있었다.

옘병- 첨병-

다장조로 울려 퍼지는 합창.

“…….”

몰입이 안 돼서 눈을 떴다.

동생들과 적당히 손을 잡고 중얼거렸는데, 사실 기도하고 싶은 게 아니라 손을 잡고 싶어서 핑계를 댄 거였다.

공연장까지 이동하는 동안 혼자 노래 들으면서 창가만 보기 싫어서.

같이 있다는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가끔 생각하는 건데 말이야.”

그래서 그런지 평소 잘 안 했던 이야기가 입에서 새어 나온다.

동생들이 차분하게 눈을 떴다.

“TJ 데뷔조에서 방출됐을 때 그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거든. 회사에서는 선택지를 세 개만 줬어. 배우 할래, 다른 기획사 갈래, 방출될래? 근데, 사실 그거 말고도 옵션이 하나 더 있었어.”

“뭔데요?”

“싱어송라이터로 혼자 데뷔하는 거.”

“그건 진짜 가능했겠네요.”

비주의 맞장구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TJ 프로듀서 분들도 나를 좋게 보고 있어서, 내가 방향만 틀면 그쪽으로 갈 수도 있긴 했어. 회사 나오고 나서도 간혹 그런 상상도 많이 했고. 대학 다니면서 가수 오디션 프로 나가서 데뷔한다든가.”

“오… 그건 진짜 가능했을 거 같은데요.”

중현이의 말에 내가 웃었다.

“뭐, 그때는 그런 생각도 했다는 거야. 중간중간 TV 오디션 프로 같은 데 나갈까 생각도 했었고.”

“근데 왜 안 나갔어요?”

막내의 물음에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몰라. 그냥…….”

“……?”

“재미있을 거 같긴 한데, 내가 원하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 정확히 표현은 힘든데, 내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해선 나 혼자 힘들겠다 하는 느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의 기준치가 높아서 그랬나.”

“너무 높긴 하죠. 멤버를 무슨 소리 나오는 기계로 알고.”

내가 하고 싶은 무대의 기준치는 언제나 높았다.

그래서 필요했다.

나보다 더 노래를 잘하는 친구나 나보다 춤을 더 잘 추는 친구나, 아니면 랩이나 연기를 한다거나.

나 혼자서는 채우기 힘든 여백을 메울 사람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필요하다는 것이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창가를 바라보던 리혁이가 덤덤하게 물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게 데뷔했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도 못했겠지만… 만약에 왔다고 해도 이 차에는 나 혼자 타고 있었을 거니까.”

“…….”

“엄청 심심했을 거야.”

너희가 있어서 참 좋다는 이야기는 부끄러워서 생략했지만 다들 알아들은 분위기였다.

다 같이 손을 잡고 있어서 그런지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감돈다.

즐거움이나 기쁨뿐만이 아니다.

이런 긴장과 초조함을 나 혼자만 전전긍긍대지 않고 나눌 수 있다는 데서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가 다섯인 거 같다.

혼자서는 해내지 못할 일들을 다섯이니까 할 수 있고.

하나가 넘어지거나 못난 모습을 보여도 나머지 넷이 둘러싸서 온전히 가려줄 수 있으니까.

멀찍이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던 중현이가 입을 열었다.

“날씨가 좋네요.”

“그러게.”

동생들과 햇살을 쬐면서 광합성을 할 때, 중현이가 말을 이었다.

“오늘 어쩐지 느낌이…….”

“하지 마.”

“네.”

쌀쌀한 눈보라처럼 우리를 괴롭히던 긴장이나 초조함은 어느새 봄이슬처럼 녹아 있었다.

*   *   *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캘리포니아의 잉글우드라는 도시였다.

인구 10만 명가량 되는 도시였는데,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NFL 경기장으로 유명했다.

이른바 SoFi 스타디움.

7만 명이 들어가도 넉넉할 만큼 거대한 규모!

미국의 탑 가수들이 공연을 하기 위해 쓰는 곳이기도 한데.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저 SoFi 스타디움……이 바로 근처에 보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공연장이었다.

“더 포럼.”

‘The Forum’이라는 문구가 적힌 콜로세움 모양 경기장이었다.

거대한 SoFi 스타디움에 비하면 작아 보이지만 나름 체조경기장보다 더 큰 경기장이었다.

마치 중현이 옆의 비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갑자기 두 경기장이 하찮아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되게 가깝네요.”

손을 들어 올려 눈가에 차양을 드리운 리혁이가 거리를 가늠하며 말했다.

“체조랑 핸드볼 정도 거리 느낌이에요.”

“그런 느낌이긴 하네.”

멀찍이 유명 경기장을 바라보고는 우리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VMA 때문일까.

경기장을 둘러싼 아스팔트 주차장에는 차량이 빼곡하고, 벌써부터 주변에 파란색으로 온갖 장식이 가득하다.

상징색이 파란색인 모양이다.

그리고.

“형.”

나를 바라보는 석환 형에게 경기장 옆에 새로 세워진 건물을 가리켰다.

“이건 뭐야?”

마치 우주 센터처럼 생긴 곳이었다.

파란 글씨로 ‘VMA’ 라고 적힌 하얀 구조물이 어마어마한 크기로 경기장 옆에 뾱! 붙어 있었다.

거의 2000여 명은 수용할 만한 크기의 공연장을 바라보던 석환 형이 말했다.

“레드 카펫이래.”

“…….”

“레드 카펫 행사하려고 지어 놓은 곳이라고 하더라고.”

“임시적으로?”

“응. 임시적으로.”

동생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니 다들 멍한 얼굴로 레드카펫 행사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스케일에 압도된 기분이다.

고개를 흔들었다.

“야야. 지면 안 돼.”

“뭉쳐요.”

뭉쳐서 몸을 부풀려서 우리를 주눅 들게 만들려는 미국의 자본력에 대항했다.

석환 형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손짓했다.

“들어가자.”

레드 카펫은 아직 준비가 한창인지 들어가는 시간이 아닌 듯했다.

어워즈 시작까지 한참 남은 이른 아침.

캐리어를 끈 우리 스탭 군단, 댄서들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더 포럼으로 입장했다.

비주가 말했다.

“근데 우주인 사진이랑 인형이 여기저기 진짜 많아요.”

“엄청 많다…….”

“형, 이따가 저기서 사진 찍어 줄까요? 우주인 옆 우주선 컨셉으로.”

VMA의 트로피이자 상징인 우주복을 입은 우주비행사가 여기저기 로고처럼 그려져 있었다.

60년대 세계를 뒤흔들었던 달 착륙 방송.

MTV도 그것처럼 세계를 뒤흔들겠다, 하는 의미에서 채택한 로고라고 리혁이에게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비주야.”

“네.”

“여긴 어디니?”

“어… 저도 모르게 앞장을 서다 보니…….”

잠시 길을 헤매기도 했지만 무사히 대기실에 도착하고는 짐을 풀었다.

리허설은 순조로웠다.

METRO의 성공 때문인지, 블루문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와는 또 다른 친절함이었다. 어떤 느낌이냐면 우리 바람꽃 잘 됐을 때, 갑자기 방송국 스탭들이 태도를 바꿨을 때 느낌 정도.

미국에서 어느 정도로 잘 되고 있는지가 짐작이 됐다.

방송국 스탭들은 연예계에서 풍향계 같은 존재였다.

풍향계로 바람의 방향을 파악하듯이, 연예계에서 인기 지표에 누구보다 민감한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니까.

‘잘 되고 있구나……!’

‘장하다. 메트로!’

동생들과 중간중간 찐한 눈빛을 교환하며 웃었다.

한결 친절해진 방송국 스탭들의 태도에 흐뭇함을 느끼며 리허설을 두어 번 정도 반복했다.

무대 장치와 소품이 꽤 많기 때문이었다.

TF팀에게서 브리핑을 들은 바.

VMA는 ‘시상식’보다는 ‘쇼’의 정체성이 더 강한 어워즈다. 근본은 없지만 선정성과 화제성으로 승부하겠다! 가 컨셉이라나.

그래서 무대 주목도가 4대 시상식 중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뱀이나 호랑이가 등장한 옛날 무대는 물론이고.

아역 출신 가수가 혀 내밀고 트월킹을 해서 미국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것도 바로 이 어워즈였다.

-VMA는 그런 거지.

조언을 구하는 우리에게 헤일리가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어썸한 무대를 보아라. 이 미천한 인간들아. 그런 의도로 무대를 준비하면 돼.

큰일 날 소리였다.

겸손한 마음으로 미국 사람들에게 보여 줄 무대를 준비했다.

그리고.

무대 리허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앞에 나오는 곡이 Coin이고, 뒤에 나오는 곡이 이번에 나온 신곡 METRO인 거죠?」

「네.」

「너무 멋졌어요.」

나이 지긋한 현장의 촬영 감독님이 우리에게 엄지를 들었다.

「제가 오늘 본 무대 중에 최고의 무대예요.」

「정말요?」

「그렇고말고. 허허허.」

그때, 즐겁게 웃던 우리의 눈에 리허설 순서가 적힌 시트가 보였다.

[#1. The New Black - Coin & METRO]

우리가 오늘 첫 번째였다.

동생들과 나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우리 시선을 따라 눈을 움직이던 감독님이 ‘엇’ 하고 당황했다.

「그렇군요.」

「아차. 이게 그러니까… 아니…….」

「빈말이셨던 건가요.」

「아니! 아니라니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요……!」

「이게 미국…….」

「아니라고!」

‘실망했다, 아메리카.’ 하는 눈빛으로 멀어지는 우리에게 감독님이 울상을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   *   *

리허설을 하고 도시락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침내 때가 찾아왔다.

“후…….”

레드 카펫의 시간이었다.

그날 옷차림에 따라 베스트 드레서와 워스트 드레서로 갈리고, SNS 등에 언급되면서 화제가 되는.

지금까지 딱히 의식한 적은 없지만 오늘은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었다.

“사소한 거 하나하나까지 화제가 돼야 해. 오늘 하루 종일 미국인들이 우리를 언급하게 만들어야지.”

“옳다!”

“일주일 동안은 뉴블랙 이야기를 하게 만들자고.”

“후후후후후.”

“우후후후후후!”

음험하게 웃으며 복장을 착용하는 우리 모습에 석환 형과 매니저들이 뺨을 긁적였다.

석환 형이 우리 옷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좋은 생각인 것 같긴 하다만… 정말로 좋은 선택인지 의심이 드네.”

“괜찮아, 괜찮아.”

내가 말했다.

“이 정도 화제는 끌어 줘야지. 갑자기 불화설을 일으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대에서 옷을 갑자기 벗을 수도 없고. 미국 사람들한테 아주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을 보여 주려면 이 길뿐이야.”

“그러하다!”

“옳다!”

뭐라고 말을 한마디 더 하려던 석환 형이 입을 뻥긋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너희가 하고 싶으면 해야지.”

“아니, 형. 진짜 이 가십의 나라에서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가십이 없다니까? 불화설 내도 누가 믿어. 항상 불화가 있는데.”

“뭐야. 다들 나 쳐다보지 마요.”

“리혁이 때문에 불화설도 힘들어.”

설득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얀 두루미가 부들부들대는 가운데, 우리가 레드 카펫으로 타고 갈 리무진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쩐지 해탈한 미소를 짓는 스타일리스트들에게도 미소를 지어 준 후.

“가자.”

“네.”

일렬로 대기실 문 앞에 서 있는 민수, 종완, 지운 씨에게 헬멧을 하나씩 받아 들고 나섰다.

“반드시…….”

“화제가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전설이 될 것이다.

*   *   *

리무진 앞에서 무표정하게 서 있는 보안요원들.

문을 열어 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보안요원 카일로가 멀찍이 다가오는 무언가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음?”

그가 눈을 깜빡였다.

‘내가 헛것을 봤나?’

멀찍이서 두둥실 떠오르며 다가오는 다섯 형체.

저도 모르게 허리춤의 호신용품에 손이 올라갔던 카일로가 동료에게 물었다.

“이봐.”

“응?”

“다음 순서, 뉴블랙 맞지?”

“맞아. 왜?”

카일로가 말없이 한쪽을 가리켰다.

둥실.

두둥실.

뾰옹- 하며 점프하며 다가오는 5인조의 모습 때문이었다. 동료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거 지금 우주비행사(astronaut)야?”

“그런 것 같은데…….”

“…….”

“…….”

둥실. 두둥실….

어딘가 수줍은 인류의 위대한 도약.

우주복을 입은 채 둥실둥실 걸어오는 5인조의 모습에 보안요원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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