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06)화 (70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06화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입구.

공연장 특유의 습한 공기와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콘서트나 어워즈가 시작하기 전에 느껴지는 특유의 공기가 있다.

“신기한 거 같아요.”

비주가 환히 웃었다.

“어떻게 공연할 때쯤 되면 이렇게 공기가 달라질까요. 리허설할 때랑 분명히 똑같은 공간인데.”

“그치. 신기해.”

교실 공기가 쉬는 시간이랑 수업 시간에 다르게 느껴지듯이.

리허설 할 때 텅 빈 공연장에 들어서는 것과 이렇게 관객들이 꽉 찼을 때 들어서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설렘.

흥분.

기쁨.

긍정적인 단어들이 서늘한 에어컨 바람을 타고 주변에서 톡톡 터지는 듯했다.

“들어가자.”

경호원들의 도움을 받아 행사장으로 입장하자 곳곳에서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르르르르르르르!”

“캬아아악!”

그렇다.

이곳은 던전…이 아니고 우리의 소중한 수플레들이 모인 아름다운 공간!

우리 귀여운.

“크롸라라라라!”

아니.

우리가 세뇌할 시간을 좀 주면 좋겠는데…….

“모르겠다.”

“이래야 우리 수플레 아닐까요. 이제 보통 환호성은 심심하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중현이의 말에 다 같이 허허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달봉이와 왕봉이를 흔드는 팬들이 플래카드도 같이 흔들었다.

조명을 따라 반짝이는 플래카드 글자들.

[김덕순.]

[제육볶음. 김치볶음밥. 돈까스.]

[텍사스도 놀러 와! 스테이크맛이 대환장]

동생들과 함께 감격한 눈으로 손하트를 보냈다.

역시 우리를 응원하려면 무슨 단어를 보여 줘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팬들이었다.

“만두 먹기로 했는데 갑자기 제육 땡기네.”

“제육도 같이 먹을까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는 동안 객석에 앉아 있는 셀럽들과 관객들이 핸드폰을 들고 우리를 촬영했다.

무언가 굉장히 신비로운 것을 바라보는 표정 같기도 하고.

아까 우주인 복장 때문인지 웃음을 터뜨리며 옆 사람과 소곤거리는 사람도 있다.

“형, 사람들이 다 우리 쳐다봐요.”

“흠흠.”

주변의 이목이 지목되면서 동생들과 세계 정세를 논하는 듯한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돈까스는 어떻게 먹지. LA에 돈까스 집 있나.”

“이따가 매니저 형들한테 물어볼까요. 아, 돈까스랑 제육 갑자기 땡기네.”

“우리 내일 코리아 타운 가요. 코리아 타운.”

주변 사람들이 한국어를 모른다는 점이 정말이지 편했다.

맨 앞자리 쪽으로 다가가자 보안요원이 우리 자리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The New Black]

이름표가 붙은 다섯 자리에 앉고는 무대를 바라보았다.

객석에서 바라본 무대는 널찍했다.

미어캣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대 동선을 가늠하고 있을 때였다.

「야!」

헤이~ 하고 부르는 낭랑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윤기가 돌고 웨이브진 파란 머리카락.

초롱초롱한 눈망울.

세상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헤일리! 오랜만이에요!」

「그 정도로 오랜만인 거 같진 않은데… 그만큼 내가 보고 싶었다는 뜻이구나. 이 녀석들.」

「…해석은 자유니까요.」

「부끄러워하기는.」

헤일리가 흐뭇하게 웃는 동안 엄마 뒤에 숨어 인형을 손에 들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고 우리가 환호했다.

「써머!」

「안뇽.」

오늘도 남편, 딸과 함께 어워즈에 참석한 모양이다.

한참 동안 뚱한 얼굴로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헤일리가 주변 자리에 앉자, 눈치를 살피던 이들이 하나둘 다가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아는 얼굴 절반에 모르는 얼굴 절반이다.

막내가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

“메트로가 잘 되는 중인가 봐요.”

“그치? 다들 표정이…….”

“네, 초면인데 표정만 보면 거의 십년지기? 형이 할머님 바라보는 표정보다 더 환하게 웃는데요.”

마치 미국 연예계의 김덕순이 된 것 같다.

친한 척을 하는 이들과 악수를 하거나 사진을 찍으며 사교 활동을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제 어워즈가 시작할 시간.

동생들과 어깨를 맞대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뭉치자.”

“네.”

누구나 다 오고 싶어 하는 미국 시상식인데, 어째 이곳에 있는 우리는 조금 설레면서도 외로운 기분이었다.

혼자 덩그러니 놓인 기분?

국내 시상식은 스탭부터 관객까지 다 같은 한국인이고, 주변 가수들도 선후배들이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외롭지 않은 편인데… 여긴 너무나 낯선 사람들 천지다.

서로서로 의지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중현이가 내게 말했다.

“뭔가 익숙한 상황인 거 같아요. 야구 원정경기 응원하러 가면 딱 이런 분위기인데.”

“비슷하긴 하겠다. 우리가 선수라는 점만 빼면.”

“그래서 좋아요.”

중현이가 객석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선수가 있으면 서포터도 있다는 거니까.”

“크르르르르르르르!”

수플레들의 함성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비록 이곳에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지만, 이곳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 수플레들이 객석 곳곳…….

“응?”

객석 곳곳 수준이 아니라 객석 전체가 다 익숙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사방에서 반짝이는 달봉이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다 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객석 면적과 불빛의 점유율을 계산하던 리혁이가 말했다.

“절반이 우리 팬들인데요.”

“…….”

“저기 파도타기하는 거 봐요. 콘서트장인 줄.”

우리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수플레들이 공연장에서 자체 파도타기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이어지는 함성까지.

“크라라라라라락!”

“캬아아악!”

“쿠웨에에에엑!”

그리고 우리는 보았다.

마치 괴물들에게 포위당한 용사들처럼 1층에 있는 셀럽과 관객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공손해져 있다는 것을.

“…….”

“…….”

동생들과 함께 먼 곳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외로운 건 우리가 아니라 이 자리의 미국인들일 수도…….

*   *   *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7년 비디오 뮤직 어워즈.

빌보드 어워즈에 이어 2번째 어워즈 참석이었는데, 빌보드 어워즈와 비교했을 때 특별히 큰 차이점은 없었다.

그냥 미국 시상식이다.

호스트가 나와서 ‘핫핫핫! 농담!’ 하면 관객들과 셀럽들이 ‘핫핫핫! 리액션!’ 하며 유쾌한 척 좀 해 주고.

중간중간 ‘이 어워즈에는 콜라의 가호가 함께 합니다’ 같은 자본주의 기업의 광고를 뿌려 주고.

대체로 대동소이하지만, 빌보드 어워즈와 차이점도 있긴 했다.

“오, 저거 소품 괜찮은데.”

“우와…….”

무대가 더 재미있었다.

빌보드 어워즈의 무대가 조금 정돈된 디너쇼 같다면, 여기는 더 자극적이고 자유분방한 맛이었다.

웃통을 깐 래퍼와 비키니 총각들이 덩실덩실 춤추고.

기상천외한 무대 장치가 나와서 대표님에게 사 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무대도 있었다.

“리혁아, 머릿속 장바구니에 저거 담아놔라. 저거랑 방금 전에 미니 불꽃 쐈던 거까지 해서.”

“이런 쓰잘데기 없는 거 시키지 좀 마요. 담아놨어요.”

“오키.”

상보다는 무대가 더 중요한 시상식답게 무대 보는 맛이 쏠쏠했다.

미국 사람들에게 VMA는 그런 시상식이라고 했다.

-무대가 재미있는 시상식.

가수들의 음악적인 성향이나 가사에 담긴 뜻을 수백만 달러 상당의 소품과 무대 장치, 그리고 퍼포먼스로 구현하는 곳.

예컨대 방황하는 시기에 대해 노래를 쓴 래퍼 콜드 브라운은 무대 위에 설치된 거울 미로에서 랩을 했다.

붉은 후드를 입고 랩을 할 때마다 살짝 깨져 있는 사방의 거울이 그의 얼굴을 비추는 식이었다.

자아가 여러 개로 쪼개져 있는 방황의 시기를 떠나 마침내 돌출 무대로 나와 온전해졌음을 표현하는 퍼포먼스에 감탄이 나왔다.

“와…….”

이어서 맨디 스파이스는 가식 떠는 남자에게 질렸다는 가사를 담은 노래를 부르며 가면무도회에서 가면을 집어던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가수들이 거의 한 달 내내 준비했을 무대들이 삽시간에 지나가면서 아쉬움과 감탄을 느낄 때였다.

“얘들아.”

원석이 형이 우리에게 다가와 갈 시간을 알렸다.

“이제 준비하러 가야 돼.”

“아, 네.”

막 끝난 무대를 바라보며 아쉽게 발걸음을 뗐다.

대기실로 이동해서 바쁘게 의상을 차려입고,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멤버들 컨디션은 좋은지 확인하고.

그러는 동안에도 머릿속에 오늘 본 무대들이 둥실둥실 떠돌아다닌다.

“다들 진짜 잘하더라.”

내 말에 졸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가 물을 마시고 볼을 부풀렸다 펴기를 반복하며 말했다.

“아. 우리도 잘해야 되는데…….”

“으으으으!”

“잘해야 되는데!”

동생들과 복도에 서서 파닥파닥거렸다.

너무 긴장돼서 멤버들과 꼬옥 안았다가 다시 떨어져서 호들갑을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도 목을 축이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으허어…….”

리허설할 때만 해도 나름 자신감에 꽉 차 있었는데.

정말 돈 깨나 들였을 무대 소품과 어마어마한 라이브를 연이어 목격하면서 살짝 흔들린다.

팔다리를 쭈욱쭈욱 펴다가 얼굴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리허설 때 실수했던 부분을 상기하거나 스탭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숨을 들이켜고 내쉬기를 반복할 때.

누군가의 불안정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흡하. 흡하…. 흐으으… 흡.”

허연 얼굴로 어지럽다는 듯이 호흡하는 리혁이를 챙기려고 할 때.

막내가 투덜대며 다가갔다.

“리혁이 형, 그러다 또 과호흡 와요.”

“후우우우…….”

“어휴, 나 아니면 누가 챙겨. 이 형. 이리 와요. 손도 차네.”

메인 보컬 손을 주물주물하는 막내를 바라보고는 알아서 잘 추스르고 있는 비주와 중현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쳐다보자 둘 다 말없이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저희는 괜찮아요, 하듯이.

“…….”

그런 우리의 공기가 전염된 것인지, 우리 스탭들도 말없이 스탠바이만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컴을 낀 스탭이 달려와 외쳤다.

「뉴블랙! 준비하겠습니다!」

별것도 아닌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수술을 위해 이동침대에 드러누워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서 퉁! 하고 고정장치를 풀고 침대가 이동하면서 천장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

현기증과 메스꺼움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졸개들아!”

“예이!”

이제부터는 긴장이 되든 말든 분위기 업을 시켜야 하는 타이밍이다.

“VMA! VMA!”

“한다! 한다! 할 수 있다!”

백스테이지에 이동하는 동안 기합을 넣어 주고.

무대를 같이 하는 미국인 댄서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른다.

어느덧 무대 위에서 프레젠터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드 수사물의 주인공으로 활약 중인 유명 배우가 ‘소개하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하고 서두를 떼고 있다.

“모여 봐.”

멤버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머리를 맞댔다.

“동생들.”

“네.”

“사랑한다.”

“사랑합니다~”

혼자 조용한 누군가를 말없이 바라보자 리혁이가 ‘사랑하…하휴……’ 하며 중얼거렸다.

키득거리는 동생들과 눈을 마주치고는 미소를 주고받았다.

“끝나고 맛난 거 먹자.”

“형이 쏘는 거예요?”

“오늘 무대 제일 잘한 사람이 쏘는 걸로 하자.”

중현이가 말했다.

“아, 그럼 내가 쏴야 되겠네.”

“아닌데. 난데.”

“이건 솔직히 저예요. 미국 사람들이 저의 귀여운 외모를 안 사랑할 리 없으니까.”

헛소리 파티를 주고받으며 가볍게 웃었다.

이어 분주히 움직이는 스탭들의 모습에 머리를 떼고 손을 모았다. 올라갈 타이밍이었다.

“하나, 둘, 셋.”

“고기! 고기! 화이팅!”

댄서들과도 주먹을 꼭 쥐고 ‘와아아아!’ 하면서 무대 위로 올라섰다.

막을 내리고 있어 어두컴컴한 무대.

무대 장치를 세팅한 스탭들이 빠르게 빠지고, 댄서들이 저마다 예정된 위치로 이동했다.

심호흡 하나까지 귓가로 들리는 지금.

[이들의 미국 첫 단독 무대를 소개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유쾌하게 웃던 프레젠터가 무대 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진심으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뉴블랙!]

거친 숨소리.

환호와 비명.

그리고 눈부신 조명과 함께 무대의 막이 오르기 시작했다.

*   *   *

미국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한국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시청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시상식.

‘드디어!’

VMA를 시청 중이던 전 세계의 수플레들이 환호했다.

베트남의 어느 대학 기숙사에 모인 친구들이 노트북을 보며 소리 지르고, 아이슬란드의 어느 팬이 호프집 TV 채널을 고정하며 주변에 맥주를 돌리고, 이집트의 팬이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달봉이를 흔들었다.

그런 열기가 전달된 것일까.

현장에 모인 팬들도 어마어마한 함성을 터뜨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무대를 소개하는 프레젠터의 목소리가 묻힐 만큼 거대한 환호성과 함께 마침내 막이 올랐다.

다른 관객들도 덩달아 콩닥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드디어 뉴블랙의 무대인가.’

과연 소문만큼 대단한지 직접 보고 싶었다.

‘무대만 보면 팬이 된다던데.’

잔잔한 배경음악이 깔리며 조명이 밝아 올랐다.

일부를 비추는 핀 조명이었다.

‘음?’

뮤지컬이나 연극에서 그러하듯이 조명이 여러 곳을 비추고 있었다.

불협화음이 담긴 배경음악.

조명이 비추는 곳마다 사람들이 다투고 있었다. 부부나 연인이 싸우는 듯한 장면도 있고, 친구끼리 다투는 듯한 장면도 있고.

다양한 인종.

성별.

혹은 혐오 등등.

무대를 보는 미국인들이 그렇게 해석하고 있는 동안, 갈등과 다툼이 벌어지는 장면을 지나 조명이 두 어린아이를 비춘다.

‘뭘 하는 거지?’

어른들의 다툼이 남 일인 것처럼 태평한 어린아이들이 걸어가면서 주변의 조명들이 하나둘 어두워진다.

그들이 다가간 곳은 어떤 게임기.

오락실에 있는 큼지막한 게임기였다.

불협화음이 깔린 배경음악조차 사라져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어린아이들이 동전을 꺼내고는 게임기에 넣는다.

[달그락-]

동전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어가면서 게임기와 전광판에 비디오 게임 폰트의 자막이 떠올랐다.

진동하면서 빛을 뿜어내는 오락실 게임기.

[Insert Coin..]

깜빡깜빡.

아이들이 넣은 동전에 반응했는지, 그중에 Coin이라는 글귀가 확 커지면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Coin이 제목이구나!’

그와 동시에 음악이 시작됐다.

어딘가 오락실에서 어린아이들이 즐겁게 떠드는, 실제로는 레몬 엔터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담긴 Coin의 도입부.

곧바로 오락기 뒤편에 숨어 있던 뉴블랙이 익살맞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전광판에 나오는 뉴블랙 멤버들의 미모에 수플레들의 눈가에 저절로 눈물이 맺혔다.

하얀 뺨 위로 보이는 부드러운 눈매.

글리터와 색조 때문에 눈이 반짝이면서 어딘가 천진난만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메이크업이었다.

비디오 게임의 캐릭터처럼 키치한 의상이 눈을 사로잡았다.

‘우와아.’

오프닝에서 웨이브를 타는 안무가 끝난 후.

지호가 깡총 뛰어나왔다.

농구 유니폼을 리폼한 붉은 의상과 물 빠진 청바지가 그림같이 어우러지고, 청량한 미소 위로 눈이 반짝였다.

짓궂게 웃으며 시계를 툭툭 치는 뉴블랙의 서브보컬.

오늘도 늦게 일어났네

지각하면 어때

엉망진창인 하루

지루한 일상에 하루쯤 색다르게

허밍하는 듯한 끝음 처리와 함께 눈을 찡긋하자, 응원법을 외치던 수플레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곧이어 청재킷에 넥타이를 헐렁하게 걸친 중현이 걸어 나와 막내와 안무 합을 맞추고.

굵직한 저음의 랩이 이어지면서 미국의 일반 관객들도 크게 호응했다.

‘잘한다……!’

뭐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잘하는 느낌이었다.

낯선 한국어지만 래퍼 특유의 운율감과 리듬감이 합쳐지니 귓속으로 부드럽게 흘러들어온다.

능글맞게 웃던 뉴블랙의 래퍼가 안무를 추다가 동전을 튕기는 손동작을 한다.

빙그르르르.

탁!

“와아아아아아아!”

청량하고 시원한 공기가 사방에 퍼지면서 팬들과 관객들이 환호할 때.

허공을 향해 시원하게 손을 뻗던 메인 댄서가 뛰쳐나와 무대 위로 발을 놀리면서 함성이 폭발했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면서 십자 귀걸이가 같이 춤을 추듯이 흔들렸다.

사방의 모든 것이 그를 따라 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부서져라 춤을 추는 모습인데, 그 모습이 너무도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모여라 모여라

다 같이

들어 봐 들어 봐

널 부르는 소리

캡모자를 쓴 메인 댄서가 씩 웃으며 리더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전광판에 흘러나오는 우주의 얼굴.

“크르르르르르!”

“크왕!”

나오기만 해도 함성이 터져 나오는 미모!

그런 반응을 즐기는 듯 환히 웃던 우주의 모습에 환호성이 더 커졌다.

검은 티셔츠를 입고 허리춤에 옷을 두른 리더가 손을 뻗고 나오면서 고음이 매끄럽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느껴 봐 느껴 봐

우리가 함께 하는

빛나는 이 순간의 fever를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의 소유자가 다가오라는 듯 손짓하면서 저마다 고개를 쭉 내밀었다.

그리고 나온 뉴블랙의 메인 보컬.

코인의 후렴구를 부르는 맑은 음성이 공연장을 팡! 터뜨리면서 함성이 또 터졌다.

사방에 마치 금화로 쏘아 올린 듯한 불꽃이 팡팡 터지는 느낌.

리혁의 청량하고 상쾌한 목소리를 실제로 영접한 어느 팬이 벌건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전광판에 잡혔다.

‘노래 좋다.’

그러는 동안 일반 관객들은 Coin의 무대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떤 곡인지 알겠어.’

뉴블랙이 준비한 인트로 퍼포먼스 때문에 감이 잡혔다.

갈등과 다툼으로 가득한 세상.

하지만 그 갈등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한참 싸우다가도 저 오락실 토큰 하나를 가지고 즐겁게 노는 아이들처럼, 그런 갈등과 다툼도 언젠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어울리면 끝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듯한 노래.

혹은 무거운 갈등은 내려놓고 즐겁게 놀아볼까? 하는 노래.

Coin을 부르는 뉴블랙 멤버들이 손짓을 할 때마다 오프닝에서 싸웠던 댄서들이 이제는 합을 맞춘 채 웃으며 춤을 추고 있다.

거기에 비디오 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알록달록한 색감도 눈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와, 진짜 잘 추네.’

뉴블랙의 인기 비결을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저렇게 격한 안무를 2분 넘게 소화하면서도 지친 기색이 하나도 안 보였다.

옆에 있는 댄서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과거 전성기의 댄스 가수들을 보는 것 같았다.

마침내 Coin의 무대가 끝난 후.

“와아아아아아아!”

관객들이 박수를 치면서 춤에 대해 감탄을 하려고 할 때였다.

암전된 무대와 함께 주변에서 환호하던 뉴블랙 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좋아!”

“이제 메트로인가? 이제야 뉴블랙의 춤을 보는구나!”

“드디어 춤 본다.”

“Coin 안무가 가볍긴 하잖아. 일부러 노래에 집중하려고 그렇게 만들었다고 우주가 그랬어.”

일반 관객들의 눈이 지진을 일으켰다.

‘……잘못 들었나?’

방금 전까지 본 건 그럼 춤이 아니었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잠시 어두워졌던 무대가 빠르게 밝아 오르면서 관객들의 시선이 무대 위로 향했다.

고요한 무대.

그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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