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07)화 (70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07화

홀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자.

그것은 바로 뉴블랙의 메인 보컬 리혁이었다.

‘우와.’

깔끔한 블랙 수트에 블랙 타이.

그새 옷을 갈아입었는지 멀끔한 정장 차림의 리혁이 스탠딩 마이크 앞으로 다가갔다.

나긋한 손길이 마이크 대를 쥐고, 부드러운 입술이 열렸다.

잠시 돌아갈 시간이야

저 거울 너머

어두컴컴한 대도시(metropolis)의 별빛을 찾아

네게 돌아올게

영어로 된 가사라 그런지 귀에 쏙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목소리가 공연장을 한 바퀴 휘감고.

노래를 부르던 리혁이 어둠 속으로 녹아들면서 조명이 다른 곳을 비추었다.

‘오?’

Coin의 오프닝.

어른들이 싸우고 있는 동안,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며 즐겁게 놀던 어린아이들이 있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는지 그 자리에 어른 댄서들이 서 있었다.

지루해 보이는 회색 정장 차림으로.

‘오호.’

가사에서 말했던 ‘잠시 돌아간다’고 하는 곳의 목적지를 보여 주는 느낌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지곤 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그리고 이런 회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어린 시절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 무엇을 좋아했는지, 그때 좋아하는 일을 지금도 하고 있는지, 그 시절을 반추하며 스스로를 돌이켜 보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들에게 지금 무대가 말하는 듯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음?’

조명이 서서히 밝아 오르면서 비슷한 정장을 입은 댄서들이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뉴욕 센트럴역처럼 분주한 기차역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둠 속에 잠겨 있는 5인조의 실루엣이 드러나면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악!”

바로 그 순간이었다.

퓨처 베이스풍의 미래적인 사운드가 섞인 전주가 흘러나오면서 수플레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드디어 메트로다!’

선우주! 김비주! 김중현! 하면서 응원법을 외치는 팬들의 목소리가 더 포럼을 뒤덮는 가운데.

쪼그려 앉아 있던 멤버들이 인트로의 리듬에 맞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박자 하나마다 팔다리를 꺾듯이 트는 동작이 이어진다.

“와아아아아아아!”

회색 정장을 입은 댄서들의 백업 안무 속에서 검은색 정장 차림의 뉴블랙이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중앙에 선 우주가 정장 소맷자락을 털고 걸어 나오면서 비명이 터졌다.

그에게 시선이 확 모일 때쯤, 그 앞으로 미끄러지듯 나선 지호가 객석을 향해 손짓하며 웃었다.

Hello, VMA-

화사하게 웃는 눈 아래로 별무리처럼 글리터가 반짝였다.

그가 빠르게 다시 뒤로 빠지면서, 고개를 까딱이고 나선 우주가 저음의 보컬로 노래를 시작했다.

어두운 건 익숙해

특히 이 어두운 터널은

이 흔들림은

내게 일상일 뿐이야

지하철이나 대중교통 특유의 흔들림을 센스 있게 표현한 안무가 흘러나왔다.

손잡이를 잡듯 손을 허공 위로 뻗은 이들이 유쾌하게 웃으며 이리저리 기우뚱하듯 춤을 추었다.

스트라이프 수트를 차려입은 미남이 물러나면서 메인 보컬이 나섰다.

숨을까 말까

이 어둠 속에 숨으면

흉터와 상처는 보이지 않겠지

하지만 그건 원치 않아

특유의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던 리혁이 마지막에 살짝 목을 긁으면서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넥타이를 고쳐 매는 안무를 하며 옆으로 슥 빠지는 리혁.

빈자리가 나올 틈도 없이 중현이 나서고, 팔다리를 부드럽게 뒤트는 백업 안무가 이어졌다.

어둠을 휘젓듯 중현의 손이 잔상을 남기며 움직였다.

희미한 불빛들

사방을 휘감은 어둠

유리는 거울이 되어 날 비추고

빛나는 눈에 가득한 것은

마음의 미로

무수한 나

내 마음의 대도시(metropolis)

선이 굵은 외모와 어울리는 중저음의 랩에 멤버들도 정제된 움직임으로 백업 안무를 선보였다.

그동안 미래적인 사운드가 점점 진화했다.

처음에는 잔잔하게 시작했다가 점점 고조되면서 이제 후렴구로 갈 분위기였다.

‘좋다.’

어두운 터널에서 미래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열차가 서서히 밝은 세상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중현과 우주가 서로 한 손씩 맞잡아 다리처럼 만들어 주고.

씩 웃으며 그 사이로 빠져나온 지호가 어깨를 털면서 부드럽게 웨이브를 탔다.

보는 사람이 기분이 좋아지는 안무 합이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잠시 이 터널을 지나는 동안

그 정도면 돼

눈을 감고-

고음이 부드럽게 치고 올라가는 그 순간.

후렴구의 파트에 이르러서 비주가 뒤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특유의 미성을 크게 터뜨렸다.

잠시 돌아갈 시간이야

저 거울 너머

저 어두컴컴한 대도시(metropolis)의 별빛을 찾고

네게 돌아올게

반동이 올 만큼 강렬한 춤에 비주의 넥타이가 진자 운동을 하듯 흔들렸다.

후렴이 이어지는 동안 객석에서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관객들도 입을 떡하니 벌렸다.

‘와…….’

메트로를 부르는 내내 화려하다고 생각한 안무였는데, 후렴구의 안무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수준이었다.

팔다리를 나긋하게 휘었다가 이내 비주를 중심으로 흩어지는데.

마치 비주라는 거울을 가운데 둔 것처럼 2대 2로 나뉘어 좌우 반전된 안무를 선보이고 있었다.

데칼코마니를 좁혔다 폈다 하듯이 정장을 입은 가수들이 타이를 흩날리며 움직이는 모습에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졌다. 손목과 발목을 부드럽게 틀어 유연하게 움직이는 5인조.

‘……장난 아니네.’

어마어마하게 힘든 안무인 듯했다.

Coin을 출 때만 해도 땀을 한두 방울 정도 흘리던 뉴블랙 멤버들의 얼굴이 1절이 끝나자마자 땀범벅이 되어 있었으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아이고 나 죽겠다, 하면서 엎어질 만한 활동량인데.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환히 웃고 있는 이들에게 묻고 싶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운지 알려 달라고.

그런 노력 덕분일까.

“와아아아아아아아!”

2절까지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안무와 중독성 가득한 메트로라는 노래가 합쳐져 현장의 흥이 계속해서 달아올랐다.

Coin부터 시작해서 쭉쭉쭉 위로 올라가는 느낌.

어느새 사람들이 내뿜는 함성과 열기로 공연장이 뜨겁게 변해 있었다.

객석에 앉은 셀럽들도 이제는 메트로의 후렴에 같이 고개를 까딱이며 리듬을 타며 즐겼다.

그렇게 2절과 3절로 가는 브릿지 파트.

잠시 안무에서 벗어난 뉴블랙의 멤버들이 저마다 무대 가장자리로 이동해 방방 뛰는 스탠딩 관객들을 향해 노래를 불렀다.

뉴블랙의 메인 보컬이 답답하다는 듯 겉옷을 벗어 던지면서 셔츠 옷매무새를 정돈하고는, 브릿지 파트의 가사를 불렀다.

이 어두운 도시의 별빛을 찾아

방방 뛰던 수플레들이 ‘Metro!’ 하고 외치며 추임새를 더했다.

언젠가 돌아올 길을 돌아보며

마찬가지로 겉옷을 벗어던지고 셔츠 차림이 된 멤버들이 한 소절씩 받아 노래를 불렀다.

점점 고조되어 가는 브릿지 파트.

정해진 시간이 됐다는 듯 댄서들과 멤버들이 뉴블랙의 리더를 중심으로 무대 중앙에 서서히 모여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한 자리에 모인 뉴블랙 멤버들이 화려한 군무를 선보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적색, 청색 조명이 교차되며 그들의 그림자가 사방에 흩어지고, 그들의 팔다리가 잔상을 남겼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착 달라붙어 눈을 가리는데도 정면을 바라보며 웨이브를 타는 지호.

스냅을 사용해서 딱딱 떨어지는 안무를 선보이는 리혁.

춤을 추다가 타이가 떨어져 나간 것도 모르는지 부드럽게 손짓하며 안무를 백업해 주는 중현.

홀로 다른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비주.

그리고.

‘허어어어…….’

정중앙에서 안무의 중심을 잡고 있는 뉴블랙의 리더.

왜 중심인지 알 것 같다.

길쭉한 팔을 움직여서 선과 모양을 만들어 내어 중심을 잡고,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되도록 강약을 깔끔하게 끊어 내는 느낌.

어찌나 동작이 정확하고 활력이 대단한지 손끝과 발끝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 리더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저마다 다채로운 춤선을 선보이니, 마치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펴는 것 같았다.

그렇게 30초가량 이어진 댄스 브레이크까지 해서 뉴블랙의 무대가 끝난 후.

“와아아아아아아-!”

땀으로 범벅된 얼굴로 고개를 젖힌 멤버들이 숨을 몰아쉬고는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한국어 인사였지만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오늘 끝내주는 무대를 선사해 준 가수들에게 가수들과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지면서 불꽃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마치 그들의 데뷔곡처럼.

뉴블랙이 오늘 보여 준 무대의 미래에 대한 암시처럼 들리는 박수 소리였다.

*   *   *

무대를 지켜보던 윤석환 팀장이 박수를 쳤다.

“이야! 됐다! 됐어!”

“됐네요!”

현장에서 흘러나오는 박수에 ‘이건 됐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뉴블랙이 무대를 하는 동안 가슴을 졸였던 TF팀 직원들과 스탭들이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가슴에 응어리졌던 무언가 싸악 휩쓸려 나가는 느낌.

“휴우…….”

화룡점정.

중요한 프로젝트에 마무리 점을 잘 찍은 느낌이라고 할까.

저도 모르게 방방 뛰던 윤석환 팀장이 체통을 되찾고, 주변 반응을 살폈다.

‘성공이다.’

뉴블랙의 이번 VMA 무대에 모두가 어마어마한 공을 들였던 터였다.

헤어, 메이크업, 의상, 안무, 보컬 등등 그야말로 레몬 엔터의 모든 역량이 총동원된 무대.

그중에서 TF팀이 담당한 분야는 전략이었다.

-미국은 무대에 스토리가 있어야 좋아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이별한 후의 일상에 관한 노래라면 이렇게 아예 집처럼 세트를 꾸며놓고, 여기서 노래를 하고 그러던데요.

-우리 애들도 이런 식으로 해야 되는데.

무대를 재미있는 볼거리로 여기는 미국인 관객들에게 먹히려면 스토리 같은 것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뉴블랙은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 애들은 퍼포먼스 형이라…….’

춤만 추는 것도 바쁜 터라 소품이나 스토리를 보여 주기가 어려운 편이었다.

그래서 TF팀이 멤버들과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 것이 바로 지금의 무대였다.

최대한 스토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그중 첫 과제는 바로 Coin에 대한 소개.

-우리야 엠파이어-도깨비-코인으로 이어지는 3부작을 알고 있지만, 미국 사람들은 모를 거 아니에요.

-조금 맥락을 바꿔볼까?

우선 ‘갈등과 화해’를 다룬 3부작에서 Coin의 맥락을 조금 미국 실정에 어울리게 바꾸어 미국 사회의 다양한 갈등에 관한 노래로 바꾸었다.

그것이 바로 오프닝의 어린아이들이 나온 장면.

그리고 Coin과 METRO를 연결하는 작업도 필요했다.

-METRO는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작이 되는 곡이에요. 지금까지의 우리 노래랑은 좀 다르죠.

우주의 말이 머릿속에 울린다.

-그래서 코인이랑 연결을 이런 식으로 시켜볼까 해요. 어른이 되어서 스스로를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지는데,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비추는 거죠. 하지만 더 이상 그곳에는 어린 시절의 ‘나’가 없고 어른이 된 ‘나’만 있는 거죠.

어른이 된 사람에게는 또 어른만의 고민이 필요하다.

-과거. 그러니까 뒤를 돌아보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지금의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것이 맞지 않겠냐… 이런 식으로.

METRO라는 곡은 앞으로 있을 또 다른 앨범 시리즈의 시작에 해당하는 곡이었다.

지금까지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 노래하던 뉴블랙이 본격적으로 ‘나’에 대해 노래하는 노래.

“시작이 좋아.”

윤석환 팀장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관객 반응을 살폈다.

‘중요한 건 이거지.’

이런 무대에 담긴 의도는 심도 있게 분석하는 팬들이나 관계자들에게 관심거리일 뿐.

중요한 것은 무대 자체를 얼마나 재미있게 보았느냐, 였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금 무대에 대한 반응은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호오.’

그런 반응과 별개로 뉴블랙과 TF팀과의 의도는 완벽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TV로 어워즈를 시청하고 있던 미국인들, 그리고 객석에 앉아 무대를 지켜보던 가수들에겐 무대가 다른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청소년기의 고민을 담은 거구나!’

미국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맞다. 사춘기 때는 고민이 많지.’

‘스쿨버스 타고 터널 지나면 고민이 많아지지.’

사춘기가 되면 원래 고민이 많아지는 법 아니겠는가.

어린 시절을 지나 청소년이 된 뉴블랙이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겠다는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10대들의 대변자.

‘이래서 10대들한테 인기가 많은 거구나!’

왜 10대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며 환호하는지 이해가 갔다.

미국인들이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년기는 힘들지.’

그들에게는 아무리 봐도 10대 후반처럼 느껴지는 외모.

……뉴블랙의 의도와 별개로 그들의 어마어마한 동안이 만들어 낸 오해였다.

*   *   *

팔다리가 후들후들거린다.

힘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긴장이 탁 풀려서 그렇다.

“헥. 헤엑…….”

“하이고, 하유 헤엑…….”

졸개들과 숨을 몰아쉬면서 스탭들이 건네주는 물병을 들이켰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과호흡이 온 것 같다. 심호흡을 느릿하게 하면서 눈을 감고 찬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변 미국 스탭들이 ‘Okay?’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린다.

“뭐래?”

석환 형이 웃으며 답했다.

“너희 괜찮은 거 맞냐고 물어보는데. 의료진 불러야 하냐고.”

“괜찮다고 그래.”

한국에서는 흔한 광경인데.

가수들이 하이고… 하면서 백스테이지에서 철푸덕 엎어져 있는 모습이 이 사람들에겐 낯선 모양이다.

“형.”

“응?”

“우리 잘했어?”

“엄청 잘했다. 진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행이다…….”

매니저의 말에 불안감이 싹 다 날아갔다.

그렇게 평소 시상식 무대에서 그러하듯 널브러져서 안정을 되찾은 후에 동생들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가자.”

“네에…….”

비척비척 일어난 비주와 리혁이가 흐물거렸다. 살아 있는 젤리 괴물들처럼 흐느적대는 애들을 부축했다.

비주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으로 말했다.

“형, 저 너무 행복해요…….”

“정신 차려야 돼. 비주야.”

“아, 긴장 풀려서 잠 온다.”

냉큼 중현이의 등에 업힌 지호를 바라보던 리혁이가 내 등을 바라보았다.

“뭐.”

“아니에요.”

“업어 줄까?”

“땀 때문에 등판이 훤히 다 보여서 쳐다본 거예요.”

남들이 보면 흉하다고 정장 재킷을 던져 주는 리혁이었다.

겉옷을 두르고는 졸개들과 함께 대기실 복도를 이동했다.

그래도 무대가 완벽하게 끝나서 그런 건지, 졸개들과 나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감돌았다.

“햐, 살았다…….”

“진짜 산 것 같네요.”

지금 심정은 뭐라고 표현을 할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난 마지막 날에 ‘끝났다!’ 하면서 어디 놀러 갈지 결정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냥 즐겁다.

학교 화단에 꽃만 봐도 나를 위한 계절인 것 같고, 썰물처럼 빠져나오는 즐거운 웃음소리들 속에 내 몸이 둥둥 흘러가는 그 느낌의 수천 배 정도.

“가자!”

“와아아아!”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의상을 갈아입은 졸개들의 얼굴에서 광채가 흘렀다.

중요한 시험을 보러 가는 날, 아침에는 몸이 안 좋았다가 시험 끝나면 풀 컨디션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다시금 행사장에 진입하면서 함성이 터졌다.

“와아아아아아아!”

환호하는 수플레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우리 자리로 돌아왔다.

주변 가수들이 무대 잘 봤다면서 손을 내밀고 그러는데, 그 눈빛이 굉장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TJ 엔터 연습생 때, 다른 연습생들의 얼굴에서 보았던 그런 표정이었다.

내 얼굴 보고 은연중에 무시하는 표정을 짓던 녀석들이 보컬 수업 때, 내 노래를 듣고 태도가 싹 달라지곤 했으니까.

「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헤일리가 쉬는 시간을 틈 타 우리에게 잡담을 하러 놀러 왔다.

「너희 무대를 그렇게 준비했으면서, 관심 못 받을까 봐 우주인 옷까지 입고 등장한 거야?」

「네.」

「여러모로 제정신이 아니군.」

「칭찬인가요. 욕인가요.」

「칭찬이야. 그만큼 끝내주는 무대였어. 그 뒤에 무대할 놈들 입장에선 좆같겠지만…….」

헤일리의 말에 동생들과 웃었다.

우리 무대가 끝나서 그런지 아까와는 다르게 어워즈를 편히 감상할 수 있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다 했고.

남은 것은 우리가 수상 후보에 든 상의 수상 여부.

-최고의 편집상은 콜드 브라운의 ‘CO2!’

-최고의 특수 효과상…!

약칭 VMA를 풀어쓰면 비디오 뮤직 어워즈.

노래에 대해 상을 주는 시상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비디오’, 뮤직 비디오에 상을 주는 시상식이었다.

그래서 ‘올해의 뮤비상’, ‘올해의 가수상’, ‘올해의 노래상’ 같은 대상 분야가 아니라면 그렇게 막 권위 있는 시상식은 아니었다.

근엄하게 ‘상을 수락하노라’ 하는 그래미 같은 곳과는 또 다르다.

“저건 신포도다. 신포도다…….”

“그럴 거면 그냥 상 받고 싶다고 소원이나 빌어요.”

“안 돼. 김덕순 여사 건강이랑 무대에 오늘치 소원 다 썼단 말이야.”

여기서 더 바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그렇게 두근두근하며 졸개들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수상후보로 들어간 분야도 시상을 했다.

이른바 ‘Viewers’ choice’라고 투표를 해서 뽑는 시상 분야. 2006년을 끝으로 사라졌다가 갑자기 올해 부활한 부문이었다.

수상후보 VCR이 끝나고 시상자가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이 상의 주인공은… 뉴블랙!

집에 갈 때 상 하나 챙겨 가라고 호주머니에 용돈 찔러 주듯 상을 건네주는 VMA였다.

“크르르르륵!”

“캬아아악!”

수플레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동생들과 무대 위로 올라갔다.

한 차례 퍼포먼스를 하면서 무대에 서서 그런지 긴장감보다는 즐거움이 더 큰 것 같다.

회사 사람들, 가족들과 수플레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후.

‘이제 할까요?’

‘하자.’

동생들과 눈빛을 주고받고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었다.

*   *   *

같은 시각.

한국 사람들이 뉴블랙의 수상 소식에 손뼉을 치며 좋아할 때.

-정말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저희는 정말 한국에서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고 있거든요.

한국인들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우주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밖에도 정말 이름을 다 부르기 힘들 만큼 소중한 분들이 많아서요. 모두의 이름을 호명할 수 없기에 잠시 몇 분 추첨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저희에게 응원 댓글을 써 준 국민 분들과 메시지를 보내 준 친구들의 목록이 있거든요.

-짜잔!

-시간 관계상 딱 세 분 추첨하겠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로또 추첨이었다.

품에서 태블릿을 꺼낸 중현이 카메라를 향해 보여 주었다.

-그럼 고르도록 하겠습니다.

귀여운 뉴블랙 미니미들이 돌아다니는 태블릿 화면.

현장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TV를 보고 있는 한국인들이 손에 땀을 쥐기 시작했다.

느슨했던 대한민국에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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