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09)화 (70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09화

다음 날.

꾀죄죄한 얼굴로 일어난 우리는 호텔 방에서 룸서비스로 시킨 아침 식사를 먹으며 회의를 했다.

“아으으.”

홍차를 홀짝이던 리혁이가 어깨를 주물렀다.

“몸살 때문에 죽겠네요. 진짜. 나도 나이 먹었나.”

“엄살 부리지 마, 젊은 것이.”

“나이 이야기하니까 발끈하는 거 봐. 우주가 아니고 옹주로 이름 바꿔요. 옹졸하니까.”

“…….”

오렌지 주스를 들이켜던 지호랑 중현이가 ‘선옹주~ 선옹주~’ 하면서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다.

어제 무대를 본 사람들이 지금 우리 모습을 보지 못해서 정말 다행이다.

저마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하품을 쩍쩍하고, 부은 얼굴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수련회 다음 날 아침을 보는 듯했다.

“그나저나 어제 반응 되게 좋은 것 같던데요. 어제 미국 실트에 우리 우주인 의상 올라갔대요.”

“그래?”

비주가 핸드폰을 쏙 내밀어 보여 주었다.

달콤한 설탕을 뿌린 프렌치토스트를 우물거리면서 핸드폰 화면을 쏙쏙 내려다보았다.

R로 시작하는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인 모양인데, 댓글이 주르륵 스레드 형식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반응 좋네.”

“성공한 거 같아요. 우리 관종 이미지.”

화사하게 웃는 비주와 마주 웃었다.

‘저 녀석들은 재미있는 관종이구나!’ 하는 이미지를 노린 것이 성공을 거두면서 목표를 달성했다.

중현이가 빵에 딸기잼을 바르며 말했다.

“이제 우리의 본모습을 편하게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간 숨겨 왔던 우리의 본모습을…….”

“그거 좋구나.”

“와, 우리 이제 좀 편하게 방송해도 되겠져?”

“그럼. 그럼.”

지금까지 미국 방송에 출연하면서 고역을 겪은 터였다.

한국에서 하던 대로 즐겁게 하고 싶은데 모든 것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마치 잘못 시작한 맞선 같은 느낌!

-어머! 듣던 대로 차분하고 잘생기고 말수가 적으시군요! 카리스마 있고 과묵해 보여요!

-엇… 예.

아무리 말수가 많은 사람도 그런 말을 듣게 되면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 법이다.

미국 방송에서 ‘잘생기고 선하고 착한 애들’ 이미지로만 비춰 주려고 하는 터라 살짝 곤혹스럽긴 했다.

잘생기고 선량한 것은 맞지만 누가 내 이미지를 멋대로 규정하려고 하면 그것만큼 성가신 게 없다고 할까.

리혁이가 동의한다는 얼굴로 말했다.

“틴스피릿 봐요. 컨셉 한 번 잘못 잡았다가 지금 6년째 고생하고 있잖아요.”

“그거 맞다.”

“우리도 잘못하면 미국 틴스피릿 될 뻔한 거예요. 한국에선 서커스 하다가 여기 오면 세계 최고로 선량한 미소년 역할 하고.”

“으으으으!”

“서커스 너무 재미있는데!”

“옳다!”

이제 미국에서도 재미있는 것들을 좀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기존 이미지에 큰 변화를 주는 것은 아니다.

딸기 케이크에 마지막 데코레이션으로 딸기 한 조각을 올리듯이 ‘재미있고 웃긴 애들’ 이미지를 한 스푼 첨가해 주는 식으로.

경험상 연예계에서 유쾌한 이미지는 해 될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형. 근데 저 밈(meme)이 500개 나왔어요.”

“응?”

“무중력 댄스 한 것 가지고 밈이 벌써 500개나 나왔대요.”

“……그, 그래?”

치명적인 섹시 BGM이 깔리면서 핑크빛 효과가 폭발하는 식으로 무중력 댄스를 재미있게 편집한 영상이라든가.

중현이가 비주를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리는 장면에 자체적으로 밈 자막을 넣은 짤도 있었다.

“괜찮아. 비주야.”

“뭔가 창피한 것 같은데…….”

“너는 3억 미국인들에게 큰 웃음을 준 거야.”

“그 밑에 형에 관한 밈도 있어요.”

“이런 고얀 사람들을 보았나……!”

비주가 배신감이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무중력 점프를 두고 온갖 밈을 만들어 낸 미국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뒷목을 주물렀다.

“아니야.”

부들부들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긍정적인 일이야. 이건 긍정적인 일이다. 아주 긍정적인…….”

“풉.”

“누구야? 누가 웃었어?”

도끼눈을 뜨는 내 모습에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릴 때였다.

땡그랑.

홍차를 휘휘 젓고 있던 리혁이의 티스푼이 테이블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우리 메인 보컬이 핸드폰을 떨어뜨린 채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미, 미친!”

벌떡 일어나서 뒤로 물러나는 모습에 우리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CNN 기사에 오타라도 났어?”

“아, 아뇨! 이… 이거!”

“저 형 또 시작이에여. 진짜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아니야! 별거라고!”

리혁이가 호들갑을 떨면서 핸드폰을 내밀었다.

“우, 우리 의상 두고 나사에서 트윗했다고요!”

“나사?”

로켓 쏘는 그 NASA냐고 묻자 리혁이가 둥그렇게 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NASA

What a jump!

거기에 나의 무중력 점프 영상이 있었다.

‘점프 한 번 끝내주네!’ 같은 문구 아래로 ‘뉴블랙 수상 축하해!’ 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설명도 첨부되어 있었다.

@NASA

무중력 점프라는 것은 사실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달에도 중력이 존재하거든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우주 정거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도 지구의 영향으로 미소 중력은 존재하죠.

리혁이가 말했다.

“정말 맞는 말이에요. 우주 정거장이라는 것도 사실 지구가 지구본 사이즈라고 하면 거의 1cm 정도 위에 떠 있는 거거든요. 사실상 지구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 있는…….”

“아하…….”

“아하아아…….”

“하, 어떻게 이런 위트 있는 문구를 썼을까. 아니, 내가… 내가 NASA 트윗에 이름을 올리다니!”

성공한 덕후, 라고 해서 성덕이라고 한다던데.

최애의 SNS에 얼굴이 올라갔다며 행복해하는 우리 메인 보컬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평소엔 멀쩡하니까 됐지.

“형.”

막내가 또 다른 걸 발견했는지 리혁이에게 말했다.

“여기 한국 무슨 기관에서도 비슷하게 SNS 글 올렸대요.”

“어디?”

“한국 항공…우주 연구원?”

“허어어어!”

국내에서 우주 개발을 담당하는 연구기관이 ‘수상 축하합니다’ 하면서 ‘#한국 우주인을 우주로!’ 하는 문구를 올린 모양이다.

흥분한 리혁이가 캣닙을 맡은 고양이처럼 침대로 달려가 베개를 끌어안고 버둥거렸다.

중현이가 중얼거렸다.

“평소에는 그래도 멀쩡하니까.”

“그렇지.”

저렇게 좋을까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혼자 꽃밭에 뒹굴거리는 리혁이를 바라보는 가운데, NASA의 트윗을 시작으로 여러 SNS 반응을 살피던 우리가 안색을 굳혔다.

좋은 반응만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욕이…….”

“아니. 욕을 왜 이렇게…….”

거의 저주를 내뱉고 있는 영어 SNS 글들을 보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들 유쾌하게 웃고 있는데 미친 듯이 손가락질하면서 욕을 퍼붓고 있는 사람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어서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핸드폰에서 멀리 떨어뜨렸는데.

이내 우리에게 욕을 퍼붓고 있는 이들이 모두 한 단체 소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 어디서 이렇게 욕을 하는 거지.”

“봐… 봐볼까요.”

그들이 속한 단체의 이름을 클릭했다.

우리에게 쌍욕을 퍼붓고 있는 사람들.

그 단체의 이름은 바로!

[달 착륙에 대해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모임]

!! 달 착륙은 거짓이다 !!

“…….”

졸개들과 짜게 식은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마음이 편해진다.

“이런 분들이면 욕할 수도 있지. 편하게 욕하세요.”

“별로 타격이 없네.”

욕하는 사람들의 논지는 비슷했다.

-달 착륙은 거짓이다! 이 썩을 놈들!

-달 착륙을 오피셜로 확정 짓기 위해서 CIA가 저 미국의 보이밴드에게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외국 보이밴드가 저렇게 확 뜨는 것도 이상하다! 의회는 조사하라!

-NSA에서 음원 스트리밍을 한다더라!

-NSA라는 기관이 어디 있냐! A가 하나 더 들어간 NASA야! 이 멍청아!

미국에도 참 독특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 착륙이 가짜라고 믿는 사람들이 격렬하게 비난을 퍼붓는 모습을 보고 시선을 돌릴 때였다.

“여기는 또 누구지?”

저런 단체와 같이 우리에게 욕을 퍼붓고 있는 이들이 더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지구는 평평하다!]

중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달 탐사도, 중력도 모두 거짓입니다!

“…….”

“…….”

갑자기 머리가 아파 와서 창을 끄기로 했다.

마지막 글을 볼 때쯤에는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미국…….”

“진짜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이 10프로나 있대요.”

“…….”

아이스 초코를 홀짝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시 문화 충격에 빠진 동생들과 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꺄핫 하며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리혁이가 돌아왔다.

“왜 그래요? 뭐 있어요?”

“아, 아니! 아무것도!”

창을 다급하게 껐다.

저거 보여 주면 하루 동안 앓아누울 게 분명했으니까.

“그래요?”

기분이 좋은지 별 말 없이 넘어간 리혁이가 NASA 트윗을 캡처해 자기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동생들과 미소를 지었다.

‘이건 비밀로 하자.’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지켜요…….’

*   *   *

월요일의 VMA가 끝나고.

화요일과 수요일 이틀 간은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LA를 비롯해 서부 지역의 토크쇼, 라디오 쇼, 인터뷰 등등의 스케줄이 거의 분 단위로 꽉 차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서 와요, 뉴블랙! 우주인 복장으로 VMA에서 큰 화제가 되었죠?」

아침에는 주부들이 많이 시청한다는 토크쇼에 나가 재롱 좀 부리면서 메트로를 부르고.

「이 메트로라는 노래는 들을수록 기이하더군요. 기존의 팝과 분명히 다른 것이… 사운드도 굉장히 독특하고요! 뉴블랙이 정의하는 메트로의 장르는 무엇인가요.」

「K팝이죠. 당연히.」

「오.」

점심에는 LA 지역에 송출되는 라디오 쇼에 출연해서 DJ들과 진지하게 음악 이야기를 하고.

메트로도 부르고.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뉴블랙!」

「크르르르르르!」

저녁에는 서부 도시들에서 녹화하는 TV 토크쇼 녹화에 나가 메트로의 무대를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토크쇼에서 진행하는 독특한 기획들도 함께 했다.

「여기가 바로 Mean Tweets을 촬영하는 장소예요.」

「오호.」

유명 토크쇼에서 진행하는 ‘Mean Tweets’라는 코너였다.

트위터 등에서 달리는 악플을 셀럽들이 읽어 주면서 ‘난 아무 타격도 없지롱!’ 하며 비웃어 주는 내용.

나도 미튜브를 돌아다니면서 한두 번씩은 본 적 있는 영상이었다.

“와. 여기가…….”

“근데 진짜 평범하네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영상에서 보던 벽돌 배경의 벽은 그냥 판넬을 세워 둔 거였고, 카메라 한 대와 평범한 파란 의자만이 있을 뿐이다.

사원증을 건 프로듀서가 중요한 이야기라는 듯 속삭여 주었다.

「저 의자에 무수한 스타들이 앉았죠. 크리스 배너, 로건 스미스, 이사벨라 도리스, 헤일리 블루, 최근에는 에일로까지.」

「그렇군요.」

저 자리에 닿은 무수한 사람들의 엉덩이를 언급하는 발언에 리혁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우리 넷째가 제작진들이 안 보는 틈을 타 자기 의자에 손수건을 깔았다.

막내가 의자를 문지르며 말했다.

“기름기가 좀 있긴 하네. 와. 다들 엉덩이가 습했나 봐요.”

“그런 것 좀 상기시키지 믈르그.”

이윽고 촬영이 시작되면서 악플 같지 않은 귀여운 내용들을 읽어 주면서 리액션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몇 개를 찍었는데 그중에서 반응이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내보낼 모양이다.

아마 애들이 다 비실비실하고 약해 보여서 초등학생한테도 질 것 같다는 트윗이 방송에 나오지 않을까 싶다.

‘들켰다!’

‘눈치가 빠르구나! 아메리칸!’

빠르게 인정했다.

그런 우리 모습에 제작진들이 웃었는데, 농담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어쨌든.

“으아. 바쁘다. 바빠……!”

거의 이틀 동안 밤샘을 하다시피 프로모션 일정을 돌았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었다.

다음 주 월요일 즈음에 미국으로 와서 이번에는 뉴욕을 비롯해 동부 토크쇼에 출연하기로 했으니까.

일정이 띄엄띄엄이라 별로긴 했다.

시차 적응 문제도 있고 해서 마음 같아서는 미국에서 일정을 다 마무리하고 돌아가고 싶긴 했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뉴블랙, 美 일정 마치고 귀국 예정.. ‘첫 스케줄은 K-net 음방’

국내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 회사에선 컨디션 문제 등을 근거로 발매 둘째 주 음방을 스킵하는 것을 권유했는데, 동생들과 상의 끝에 나가기로 했다.

미국 활동을 위해 영어 곡을 쓰긴 했지만 우리의 주 활동지는 한국이다.

여태까지 한 번도 스킵하지 않은 음악 방송을 뺀다는 것이 마음에 찜찜하고 걸린다고 할까.

“마무리 짓고 얼른 돌아가자.”

“돌아가요. 우리.”

몸이 고되고 힘들긴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   *   *

최악의 선택이었다.

“콜록!”

“크헤헤헥!”

“어으으으으…… 끄어어어… 엄마… 우주 형… 누나…….”

기침 소리와 괴로워하는 소리.

여기저기서 좀비들이 흐느적거리는 가운데 비주가 놀란 얼굴로 날 가리켰다.

“형! 코피 나요!”

“나 코피 나?”

평소처럼 고개를 젖히자 비주가 가방에서 솜을 꺼내 틀어막아 주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민기 형이 미소를 지었다.

“얘들아.”

“네.”

“그래서 우리가 힘들 거라고 했잖아…….”

“…….”

“아니, 그냥 프로모션 일정 넉넉히 잡고 첫 주 쉬라니까. 어워즈 끝나고 하루도 안 쉬고 그러니까 탈이 난 거 아냐. 매니저가 쉬라고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단 말이야.”

무리수 일정이긴 했다.

새벽 비행기로 귀국해서 곧장 캐리어를 끈 채로 상암동 K-net 방송국으로 바로 들어왔으니까.

민기 형과 원석이 형이 에휴 하면서 두통약이나 시차 적응에 좋은 것들을 건네주었다.

“너희 쓰러지면 형들 마음 끊어져. 돈도 끊어지고.”

“말 좀 들어 주면 좋을 텐데.”

매니저 형들의 불만에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서 꿈틀거렸다.

“어으으…….”

“이번에는 좀 무리수였던 걸로…….”

“사람이 어떻게 완벽하겠어요. 이렇게 하나씩 다 교훈을 얻어가는 거지.”

리혁이의 말에 우리가 맞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현이도 얼굴이 살짝 핼쑥해진 것을 보니, 나머지 얼굴 상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막내가 말했다.

“근데 어쩔 수 없어요. 이게 형들 입장에선 저희 컨디션 걱정하고 그러는 게 당연한데. 저희는 이거 꼭 해야 된단 말이에요. 팬들이 엄청 기다리고 있어서…….”

그냥 내 몸 좀 고생하는 게 낫지.

팬들한테 ‘우리 미국에 있을 테니까 다음 주에 봐용~!’ 하기가 좀 미안하고, 민망하고 그렇다.

코를 훌쩍이면서 TV를 바라보았다.

TV 속에서 나오는 걸그룹 안무를 따라 하던 막내가 물었다.

“오늘 1위 후보는 누구래요?”

“스칼렛이랑 트릭스터일걸.”

“라인업 쎄네요.”

이따가 우리 고기 여신님들 만나면 미국에서 가져온 선물이나 줘야겠다.

“스칼렛 얘기 나오니까 배고프네.”

“뭐 먹을까요?”

“매점 가자. 내가 쏠게.”

환호하는 졸개들과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대기실을 나섰다.

미국 방송국들에서 핫도그, 나쵸, 햄버거 같은 간식들만 사 먹어서 그런지 한국적인 음식이 당겼다.

뜨끈한 베지밀이나 하나 먹어야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매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음?”

복도 멀찍이 끝에서 6인조의 뒤통수가 보였다.

알록달록한 색감을 보아하니 딱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트릭스터다.”

이번에 우리처럼 ‘Thunder’라는 영어 곡으로 발매를 한 TJ 엔터의 6인조 보이그룹이었다.

가죽 재킷을 입은 이들의 초조한 발걸음.

왠지 모르게 굉장히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뒷모습이었다.

“분위기 안 좋아 보이는데.”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인사를 할까 말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매점에 들어선 막내가 외쳤다.

“아이스크림이다!”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처럼 거대한 우리 막내의 목소리가 닿은 걸까.

멀찍이 걷던 트릭스터 멤버들의 어깨가 바짝 굳었다.

마치 몰래 어딘가로 향하다가 들킨 고양이들이 단체로 멈추면 저런 느낌일까. 긴장한 어깨가 수직상승해 있다.

“……?”

그러더니 발걸음이 미친 듯이 빨라졌다.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이들.

뒤통수를 보이면 추격하기 시작하는 동물들처럼 우리도 모르게 따라갔다.

“오.”

중현이가 말했다.

“점점 빨라지는데요.”

“경보 대회 나가도 되겠는데.”

최대한 자연스럽게 걷는 척하고 있지만 발에 모터가 달린 것 같다.

타타타타타타.

조금 따라잡았다 싶으면 모퉁이를 돌아 휙 사라져 있고, 뭔가 우리를 피하는 것이 분명했다.

“혹시 영어 곡 때문에 껄끄러워서 그런가?”

“그런가 본데요.”

TJ 엔터와의 신경전 때문에 눈치를 보는 듯했다.

비주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눈치 보지? 그렇게 눈치 볼 필요 없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혹시 TJ 엔터 관계자라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환히 웃다가 스산해지는 비주의 말투에 내가 말했다.

“비주야. 그러니까 무서워하는 거야.”

“저를요? 아닐 텐데. 형을 무서워하는 거 아닐까요?”

“나를?”

그런 내 말에 졸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가능성이 높긴 하죠. 옹졸한 성품으로 유명한 데다 한 번 찍히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옹졸하니까.”

“마음 씀씀이가 거의 종이컵.”

입을 비죽대다가 매점 아주머니와 안부 인사를 주고받고는 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안겨 주었다.

달콤한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말했다.

“만나서 인사 편하게 하고 싶은데. 우리 때문에 후배들 마음 불편하게 있는 것도 좀 마음에 걸리고…….”

“가서 인사할까요?”

“그럴까.”

그런데 내가 가면 또 피하겠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럼 되겠다.”

*   *   *

우드득! 우득!

기괴하게 몸을 뒤틀더니 후드와 마스크를 뒤집어쓰는 리더를 바라보며 졸개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

“…….”

완벽하게 달라진 실루엣에 흐뭇해하던 리더가 말했다.

“이럼 다른 사람 같지? 덜 무섭고.”

졸개들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퍽도 안 무섭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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