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10화
복도 모퉁이.
그곳에서 숨죽이고 있는 6인조 아이돌!
그들은 바로 트릭스터였다.
“망했다.”
리더 슬형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도망치는 거 완전히 티 났겠지?”
“완전히 티 났을 것 같은데. 우주 선배님한테 더 찍혔을 수도.”
“아. 망했다.”
슬형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다른 멤버들에게 눈을 부라렸다.
“그러게 왜 도망치자고 그랬냐고!”
“아니, 그건…….”
멤버들이 뺨을 긁적이는 동안 슬형도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누가 먼저 시작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야야! 도망치자!’ 하면서 다 같이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타박을 하던 리더가 후- 하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됐다. 이건 누구 탓도 아니야. 그냥 다들 당황해서 그런 거니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다시금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망했다.”
“진짜 완전 망했다.”
“우주 선배님 성격 장난 아니라고 하시던데.”
데뷔하기 전에 연습실에서 옹기종기 앉아 하늘 같은 선배님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들었던 트릭스터였다.
그중에서 연예계에서 주의할 사람을 꼽아주던 한태현 선배님의 조언.
-그 형한테는 예의 바르게 구는 게 좋아. 너희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 형은 자기가 봤을 때 아니다 싶은 사람한테 진짜 가차 없거든. 요즘에는 좀 많이 물러지긴 했지만…….
그래서 뉴블랙을 볼 때마다 매일 90도로 꾸벅 고개를 숙였던 트릭스터였다.
물론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현재 국내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라고 꼽히는 뉴블랙의 위엄도 그런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
당장 눈앞에 업계 진행형 레전드인 선배님들이 보인다면 누구든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찍히면 안 돼!’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연예계 생활을 해 왔던 트릭스터였다.
하지만.
갑자기 회장님이 영어 곡 프로젝트를 추진하라고 하면서 모든 게 꼬였다.
-트릭스터들아.
-네!
-자. 여기 ‘영어 곡’이라는 칼이 있으니 이걸 가지고 저 수플레들 틈으로 뛰어 들어가거라!
-시발!
마치 온몸에 화약을 데코레이션 해서 불길로 뛰어들라는 소리와 같았다.
업계 최고 보이그룹에게 견제구를 날린다는 것은 그들의 체급으로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계란이 바위에 부딪치면 무엇이 되는가.
계란이었던 것이 되어 버린다.
“아으으으으.”
트릭스터 멤버들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데뷔한 이후 처음으로 느끼는 위기감이었다.
‘우주 선배님이 우리 진짜 미워할 것 같은데.’
게다가 저번에는 TJ 엔터에서 뉴블랙을 두고 ‘스칼렛 곡 만들다니! 비열하다!’ 하면서 언플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가수와 소속사가 별개로 느껴지겠지만, 과연 뉴블랙 선배님들도 그렇게 생각을 할까.
“망했다.”
“완전히 망해 버렸어.”
6인조 아이돌이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나뭇가지라도 있었다면 바닥에 ‘회장님 빵꾸똥꾸’ 같은 문구라도 새길 기세였다.
“후…….”
세상이 푹 꺼져라 내뱉는 한숨.
만약 다른 보이그룹이었다면 농담이나 긍정적인 면을 담당하는 멤버가 ‘야야! 그냥 뵙고 인사드리자!’ 하고 의견을 제시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능글능글한 외모와 달리 트릭스터는 친구들로부터 별명이 진지충인 인물들만 모여 있는 그룹이었다.
그룹명이 트릭스터(장난꾸러기)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너희는 평소 모습이 진지하니까 무대에서만은 장난기 넘치는 모습으로 가자.
그때, 랩을 담당하는 멤버 케이식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야. 이대로 평생 여기 모퉁이에 숨어 있을 수도 없잖아.”
“그렇지.”
“비상구를 찾자.”
“!”
“한 층 내려가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오면 돼.”
깨달음을 얻은 멤버들이 K-net 사옥 지도를 찾기 위해 열심히 검색을 시작했지만 원하던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선배님들 뵙고 죄송하다고 할까?”
“안 돼. 뭐가 죄송하냐고 여쭤보시면 어떡해. 회사 잘못을 우리가 대신 사죄합니다는 이상하잖아.”
“맞아. 그것도 안 돼. 그럼 우리 회사 사람들 바보 되잖아.”
“근데 좀 치사하긴 했잖아.”
어떻게 해야 뉴블랙 선배님들과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저벅저벅.
그들이 귀를 기울였다.
“누구 오는데?”
“스탭 분인가 봐. 인사드리자.”
회색 후드티를 입은 스탭이 걸어오고 있었다.
방송 관계자들 특유의 거북목.
특유의 세상 다 귀찮은 걸음걸이. 그리고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까지.
물론, 그들에게 시력이 좋은 멤버가 있었다면 사원증에 걸린 것이 ‘명예 수플레 : 선우주’ 라는 것을 알아챘겠지만…….
“안녕하십니까!”
일렬로 서서 꾸벅 인사를 하는데, 스탭이 그들의 앞에 멈춰 서서 이동하지 않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신발코뿐.
의아한 표정을 지은 트릭스터 멤버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상대를 살폈다.
‘누구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느낄 때였다.
“저기.”
“……예?”
“놀라지 말아요.”
“예?”
바로 그때였다.
우드득! 우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후드 속의 형체가 요란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
마치 안에서 살아 있는 외계인이 튀어나오기라도 할 듯한 움직임에 트릭스터는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짜잔. 선우주 등장.”
“으악! 으아아악! 악!”
“아니, 잠시…!”
이성을 잃고 주머니에 들은 추파춥스나 누룽지 사탕을 투척하는 멤버들에게 선우주가 잔상을 남기듯 움직였다.
슉슈슉! 슉!
“나 이상한 사람 아니라니까!”
그리고 마스크를 벗은 순간, 트릭스터는 눈을 크게 떴다.
반짝이는 눈!
하느님이 캐시 질러서 만든 콧대!
앵두를 머금은 듯한 붉은 입술.
그야말로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미모가 사방에 빛을 퍼뜨린다.
멍하니 바라보는 그들의 귓가로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에요.”
그야말로 별에서 온 외계인처럼 등장한 선배님이었다.
* * *
현장 검거 성공.
“나와라.”
“예!”
숨어 있던 졸개들이 암살자들처럼 등장했다.
그렇다.
우리는 한국 최고의 암살 길드…는 아니지. 이게 아니지.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허둥지둥 인사하는 트릭스터 멤버들은 여전히 경황이 없어 보였다.
정신이 혼미할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이들에게 잘 지내고 있냐고 물었다.
“아닙니다! 잘 못 지내고 있습니다!”
“마음 불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안부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
돌아오는 대답을 들어 보면 ‘잘들 지낸다~ 아주 잘들 지내는 걸 보니 마음 편한가 봐?’ 로 해석한 듯한 느낌.
눈을 끔뻑이는 나에게 중현이가 눈짓했다.
‘뭐라도 먹이는 게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다. 암살 3호.’
그러고는 트릭스터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짠했다.
누가 봐도 숨어 있는 모습이라서.
“밥 먹었어요?”
“예. 저희 뉴불백 먹었습니다!”
“간식은 아직 안 먹었죠?”
“예.”
“따라와요. 마주친 김에 간식 사 줄게.”
리더인 슬형이 손사래를 치며 비명을 질렀다.
“저희 사 달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알아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땡글땡글 뜨는 이들에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고는 앞서 갔다.
친화력 담당인 우리 막내가 긴장을 풀어 주었다.
“저 형 때문에 많이 놀랐죠?”
“아닙니다.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도 보고 엄청 놀랐다니까요. 맨날 미튜브 보고 이상한 것만 배워 와요. 키즈 컨텐츠만 보도록 차단시켜야 되는데.”
“…….”
흉을 보는 막내와 나를 곁눈질하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매점에 도착해서 트릭스터 멤버들에게도 간식거리를 하나씩 사 주고는 테이블에 앉혔다.
달콤한 게 좀 들어가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좀 풀어진 느낌이다.
“음.”
뭘 화제로 꺼내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나와 트릭스터의 공통점을 찾다가 가장 쉬운 화제를 떠올렸다.
“태현이는 잘 지내요?”
“예. 무척 잘 지내고 계십니다. 지금 앨범 준비 중이시고, 최근에는 녹음 들어가셨다고 들었습니다.”
“태현이가 트릭스터 이야기 많이 했거든요.”
“오, 그렇습니까?”
트릭스터의 말투 때문인지 전입한 이등병이랑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칭찬 진짜 많이 했어요. 잘하는 후배들이라고.”
“아이, 아닙니다.”
칭찬에 어색해하는 모습.
이럴 때는 그냥 ‘태현 선배님께 잘 배운 덕분인 것 같습니다’ 하고 넘기면 편한데, 알려 줄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대화를 하러 온 자리에서 조언을 하면 안 되지.
“노래 잘 들었어요.”
비주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뮤직 비디오도 엄청 잘 찍었던데.”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들도 진짜 멋지십니다! 저희 얼마 전에 VMA도 봤습니다.”
“봤어요?”
“네, 진짜 선배님들 정장 입고 안무 추시는데… 와, 보면서 저희끼리 노트에 필기하고 그랬습니다.”
무대 이야기가 나오면서 눈을 반짝이며 흥분하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미국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가볍게 풀어 주면서 대화를 하니 아까보다 훨씬 편해 보이는 기색이었다.
대화가 이어지는 중에 리혁이가 웃으며 슬쩍 물었다.
“그런데 아까는 왜 숨어 있었어요?”
“아…….”
고개를 푹 숙이는 이들에게 우리가 웃으며 말했다.
“신경 쓰여요?”
“그게 좀…….”
“이런 거에 신경 쓰지 마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이런 거 가지고 따지고 그러는 사람 아니니까.”
“예…….”
왠지 모르게 촉촉한 눈으로 우릴 바라보는 이들에게 말했다.
“그 이야기 하려고 부른 거예요. 자주 얼굴 마주치는 사이끼리 불편하게 그러지 말자고.”
“예, 알겠습니다!”
“겸사겸사 이야기도 나누니까 좋네요. 평소에 되게 궁금한 거 많았었는데.”
“아, 저희한테 말입니까?”
무대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묻기도 하고.
트릭스터도 눈을 초롱초롱 뜨고 궁금한 것들을 막 묻는데,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다.
사실상 첫 만남이라 좀 어색한 편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긍정적인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한 것 같다.
그리고 의외의 사실 하나.
“저희 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굿즈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중요한 현안이기 때문에…….”
“그래요? 어떤 식으로 굿즈를…….”
“일단 일상생활 용품을 대체하기 위해서…….”
이 그룹이 리혁이와 죽이 잘 맞는다는 사실이었다.
진지한 사람들끼리 눈을 초롱초롱 뜨고 토론을 하는데, 마치 교과서에서 말하는 21세기 글로벌 리더들의 모임 같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다른 졸개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날씨 좋다.”
“이 날씨에 어린이 대공원 가면 대박인데.”
“야구 보러 가고 싶다.”
“야구 하니까 치킨 생각나네. 아버님 회사는 잘 되시니.”
집단적 독백을 하면서 열심히 쮸쮸바를 쯉쯉 먹었다.
신이 나서 번호까지 교환하는 리혁이의 모습을 보고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기지개를 쭉쭉 켜고는 트릭스터 멤버들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럼 이따가 또 봐요.”
“예!”
“숨지 말고 편하게 인사…….”
바로 그때였다.
매점에 어딘가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올망졸망한 눈망울과 새하얀 피부. 귀여운 외모를 지닌 스칼렛의 래퍼 데이지였다.
“언니, 그니까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바보야’ 라고 하는 게 더 연애확률이 높은 거라니까. ‘멍청아’ 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바보야’ 라고 하는 게 더 좋아하는 거야.”
“그래서 너 연애해 봤어?”
“싸우자는 거야?”
투닥투닥거리는 대화가 들려오는 동안 동생들과 나는 테이블 아래로 숨었다.
트릭스터 멤버들의 다리가 움찔거렸다.
“……선배님들?”
“쉿.”
어정쩡하게 앉아 있던 트릭스터 멤버들이 허리를 틀어서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그때 미니 선풍기를 든 봄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방금 어디서 우주 목소리 들린 거 같지 않아?”
“그래?”
“만나야 되는데 안 보이네. 매점 갔다더니 매점에도 없고. 선우주 만나면 축하해 줘야 되는데.”
“아쉽다. 격하게 축하해 주고 싶은데.”
리나가 말없이 손뼉을 팡팡! 하는 소리가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테이블 아래로 트릭스터의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중현이가 눈으로 물었다.
‘근데 우리 왜 숨은 거예요.’
‘너 4 대 1로 싸울 수 있어?’
‘숨을게요.’
현재 Not Fine을 이기고 차트 1위로 우뚝 올라선 메트로.
스칼렛이 나를 격하게 축하해 주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미리 들은 터였다.
순순히 축하 당할 수 없지.
“가자!”
“디지몬 세계로!”
스칼렛이 자기들끼리 깔깔 웃으며 피자빵을 들고 떠난 후.
엉금엉금 기어 나온 우리가 먼지가 묻은 옷자락을 탁탁 털며 잇몸 웃음을 보였다.
“아무튼.”
엄지를 들고 반짝 웃었다.
“다음에 만나면 숨지 말고 편하게 인사해요.”
“아. 예…….”
왠지 모르게 우릴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진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 * *
간식을 먹고 나니 몸이 좀 풀리는 느낌이다.
이것이 바로 설탕의 힘.
달콤한 설탕이 혈관을 타고 움직이면서 온몸을 일깨우는 기분이었다.
“마무리 연습 좀 하자.”
K-net에서 우리의 컴백을 기념해 마련해 준 대기실은 굉장히 넓었다.
벽에는 ‘우주 최고의 아이돌 뉴블랙!’ 하면서 자체적으로 컴백 축하 문구 등을 꾸며 준 꽃다발이 있고.
장비들이 가득한데도 여유 공간이 많다.
“자, 그럼 갈게요.”
비주의 지시에 따라 동작 싱크로를 몇 번 정도 맞추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바쁘게 움직이는 스탭들 중에서 가장 바빠 보이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우리 팬매니저들이었다.
“준비는 잘 되고 있나요?”
“응, 곧 도착할 거야.”
곧 도착한다는 말에 가슴이 설렌다.
바로 오늘 사전녹화에 참여하는 수플레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들!
“좋아하겠지?”
“엄청 좋아할 거 같아요.”
동생들과 마주 보고 히히 웃었다.
* * *
비슷한 시각.
상암동 K-net 사옥 앞은 400여 명의 수플레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하……!”
“하하하!”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나오는 하루였다.
무수한 경쟁률을 뚫고 뉴블랙 사녹에 당첨이 되다니!
로또 사녹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치열한 경쟁이었기에 당첨자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로또 사야지.’
싱글벙글 웃고 있던 팬들이 주변에 있는 덕친들 혹은 모르는 사람들과 모여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번에 진짜 리혁이 너무 예뻐요. 저 뮤비 오프닝에서 블랙 수트 보다가 오열하는 줄.”
“진짜 너무 예쁘잖아.”
“이번에 수트 코디하신 분은 진짜 배우신 분이에요. 중현이 멜빵이라니… 이건 진짜 배우신 분.”
팬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는 대체로 비슷했다.
우리 애들 예쁘다.
그리고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소곤거리는 소리들.
“아, 근데 이번에 일정 좀 빡세던데…….”
“솔직히 우리끼리 얘기하는 거지만 이번에 일정 쪼금… 무리 같은데. 애들 미국 스케 보니까 거의 한 잠도 안 자고 일한 수준이던데요.”
“저기 팬매니저 와요.”
규호가 또 그렇지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팬들이었다.
‘돈독 올랐어. 하여간.’
팬 입장에서는 솔직히 내 가수의 무대를 이렇게 본다는 게 너무나 좋다.
하지만 내 가수가 건강하고 즐거운 활동을 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 막 혹사하면서까지 일하는 것을 원치는 않았다.
무대 보는 게 좋긴 한데 애들 걱정도 되는 기분이 교차한다.
“인원 체크하겠습니다!”
9월이 된 지금.
1월 달의 도깨비, 4월 달의 Coin, 그리고 8월 말의 METRO까지.
1년 3컴백이라는 무지막지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가수들을 떠올리며 인원 체크를 하는 수플레들이었다.
‘이렇게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는데.’
팬들도 덕질 하루 이틀 해 본 게 아닌 만큼 뉴블랙과 레몬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해외 진출이라고 해도 국내도 놓지 않겠다는 뜻.
정말 고마운 의도긴 했지만 아티스트 건강을 좀 챙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규호!’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고는 인증샷을 찍었다.
팔에 차고 있는 ‘METRO’라고 써진 팔찌의 사진을 찍고, 경품 추첨으로 포토카드를 받을 때였다.
“음?”
방송국 근처로 거대한 트럭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뭐야, 뭐야?”
“뭐예요?”
“뭐야. 트럭 왜 이렇게 커. 우리 잡혀가요?”
수플레들이 웅성거리고 있을 때였다.
맨 처음에 도착한 트럭은 선거 유세에 쓰이는 듯한 트럭이었다. 곧이어 트럭 화면에 VCR이 떠올랐다.
수플레들이 오와 열을 맞추고 군단처럼 정렬했다.
반짝!
하면서 멤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플레들! 안뇽-!]
“와아아아악!”
[이거 실시간이에요!]
“캬악!”
익숙한 함성 소리에 수플레들이 스스로 빵 터졌다.
‘진짜 이상해.’
분명 나는 ‘와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합쳐서 들으면 항상 저런 공룡 소리가 나고 있었다.
중현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저희 이번에 미국에서 찍은 VMA는 잘 보셨나요?]
“네!”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번에 너무 고마워서 수플레들한테 무슨 선물을 줘야 할지 고민했거든요.]
“허어어어어!”
막내가 외쳤다.
[그래서 저희가 미국 마트를 돌면서 준비한 상품입니다! 비행기로 직접 공수한 선물들!]
환호하는 수플레들에게 뉴블랙이 짜잔~! 하고 외쳤다.
[자! 열어 주세요!]
그 말과 함께 늘어선 트럭들이 지이잉 하고 화물칸을 오픈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치즈볼 항아리.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팝 타르트.
그런 간식들의 향연을 바라보던 누군가 물었다.
“내 다이어트는……?”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어어어. 유혹 당하면 안 되는데.”
그런 수플레들에게 뉴블랙이 물었다.
[맛있게 먹으면 뭐라고 했죠?]
“0칼로리!”
끄덕.
가수들의 끄덕임에 수플레들도 끄덕이며 코를 슥 비볐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그런 결심을 하는 수플레들에게 마지막 트럭이 도착했다.
맛난 고기 냄새를 풍기는 트럭!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직접 공수해 온 마크 웨버 씨입니다. 햄버거 가게를 하고 계신데, 이번에 특별히 한국으로 모셨습니다.]
“허어어!”
“미국식 햄버거!”
“미친!”
[리혁이 형이 꼼꼼하게 법까지 점검한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법적인 하자도 없다니!”
“역시 서리혁이다!”
어느 치킨 프랜차이즈 할아버지를 닮은 백발노인이 푸드 트럭에서 아들들과 함께 손을 흔들었다.
[저희가 먹어 본 햄버거 중에서 제일 맛있었습니다.]
“얘들아……!”
[수플레들이 미국에 오지를 못하니까 어쩔 수 없이….]
우주가 중대선언을 하듯 말했다.
[저희가 미국을 한국에 가져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주야!”
“누가 선옹졸이라 했어! 저렇게 마인드가 웅장한데!”
“선웅장! 선웅장!”
감격한 수플레들이 비명을 터뜨리며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뉴블랙이 흐뭇한 웃음을 터뜨리고 팬들도 흥분해서 방방 뛰었다.
[미국에 못 가면?]
“미국을 가져오면 된다!”
[흐하하하하!]
“흐하하하하!”
그 가수에 그 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