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13)화 (71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13화

빌보드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

1위부터 10위까지를 정리해 놓은 도표에서 무언가 확 눈에 들어온다.

“있다.”

“네?”

게살 수프를 홀짝이는 동생들에게 내가 말했다.

“있다고.”

“……?”

떨려서 그런 건지, 흥분해서 그런 건지 손가락이 달달 떨린다. 힘이 풀린 손가락 틈으로 핸드폰이 빠져나갔다.

손을 슥 내밀어내 핸드폰을 낚아챈 중현이가 물었다.

“뭐가 있어요?”

“우리 이름, 10위 안에 들어가 있다고.”

“…….”

동생들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테이블에 떨어졌다.

쨍그랑.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뜬 막내가 나를 붙잡았다.

“며, 몇 등인데요?”

“그것까진 못 봤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동생들이 내 뒤로 모였다.

혼자 보기 겁난다는 듯한 표정들로 내 뒤에 숨은 졸개들이 재촉했다.

“형, 얼른.”

“알았어. 잠시만.”

음식점 손님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이 중요할 뿐.

“후우…….”

“아저씨, 얼른요!”

“알았어. 알았어. 진정 좀 해 봐.”

핸드폰 잠금을 해제하고 화면을 딱 켰을 때.

10위부터 차근차근 확인하려고 했던 우리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잘 보이는 위치에 우리의 METRO가 위치하고 있었으니까.

[Billboard HOT 100]

1. Divine Rules - Cold Brown

2. Slipper - Wayne X & DJ Magik

3. Stay - Rogan Smith ft. Louis Leight

4. METRO - The New Black

5. I Am What I Am - Mandy Spice

4위에 쓰여 있는 ‘METRO’에 하이라이트를 친 것처럼 굵은 글씨가 확 눈에 들어온다.

“…….”

“…….”

팔뚝을 타고 소름이 오소소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고,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보았다. 동생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비주가 입을 열었다.

“너무… 어마어마한 걸 보면 실감이 안 난다는 게 이런 말인가 봐요. 이거 진짜…….”

“맞아.”

내가 답했다.

“우리 4위야.”

“저, 저번에 코인 나왔을 때 얼마였져? 그, 막, 막… 아무튼 큰 숫자는 아니었던 것 같… 아 속 울렁거려.”

“저번에 코인은 93위 진입.”

둘째 주차 가서 70위권으로 훅 뛰기는 했지만 차트 상위권까지는 올라가지 못했던 Coin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번에도 기대치를 10위권 정도로 잡고 있던 터였다.

영어 곡인데 대박이 났다고 하니까… 아마 10위에서 20위 사이에 위치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4위…….”

실감이 안 나는 숫자였다.

아무리 높아도 한 자리 숫자가 나오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게 보통의 이치 아니던가.

그런데 짜잔 하고 나와 버렸다.

그것도 1위부터 5위 사이에 있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핫한 곡들 사이에 있다.

“…….”

여전히 실감이 안 난다.

석환 형을 비롯해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우리 TF팀 직원들도 뭐라고 반응을 못하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기뻐할 타이밍도 놓치고 있을 때.

지이이잉-

지이이이잉-

그 정적을 깨듯이 곳곳에서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예, 예, 대표님. 여기 지금 미국입니다. 예, 지금 봤습니다. 예…….”

“기자들 전화 왔다.”

TF팀 직원들이 멍한 얼굴로 핸드폰을 받아 들고 ‘예, 예…?’ 하고 있는 동안, 우리 핸드폰도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빌보드 Hot 100에 4위로 데뷔한 걸 축하하는 친구들의 메시지.

지인들의 축하와 안부.

어찌 된 일인가 메시지들을 보니 한국에서 [속보] 하고 소식이 올라왔다는 모양이었다.

-[속보] 뉴블랙, 빌보드 Hot 100 ‘4위’

어찌나 급했는지 사진자료 대신에 ‘연합뉴스’ 하는 로고 사진만 올라와 있다.

포털 연예란에 올라온 ‘빌보드 4위’ 기사부터 미국 연예 매거진 홈페이지에 올라온 ‘뉴블랙 4위로 데뷔하다’ 같은 기사들까지.

“…….”

너무 놀라는 바람에 기뻐서 방방 뛰는 단계를 생략해서 그런 걸까.

이제는 안도의 단계였다.

아.

왜 자꾸 눈물이 나오려는지 모르겠다. 너무 마음 졸이고, 긴장하고 있던 끈을 놓아서 그런 건지 자꾸만 눈물이 새어 나온다.

“형, 울어여……?”

“안 울어. 형은 울지 않아.”

“우는 것 같은… 흐… 흐흑… 흐흡.”

이윽고 어허어엉 하고 울기 시작하는 우리 막내.

리혁이가 타박했다.

“야, 왜 우, 우, 울고 그러냐고…….”

“너도 우는데.”

리혁이가 티셔츠를 들어 올려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리는데, 벌써부터 눈가와 닿은 티셔츠가 축축하게 젖어드는 게 보였다.

비주와 중현이도 허공을 바라보며 꾹 참고 있다.

“얘들아.”

“…….”

“이리 와 봐.”

말하기 무섭게 졸개들이 달려들었다.

이윽고 코를 훌쩍이면서 눈물을 펑펑 쏟는 졸개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자꾸만 눈물이 나온다.

“어흐흐흐흑……!”

“우,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어흐흐흐흑!”

결국 다 같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속에 쌓인 것들이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에 섞여 흘러내리는 느낌이다. 하염없이 우는 동안 또 다른 촉감도 느껴진다.

“우, 우리도…….”

“우리도.”

TF팀이 촉촉한 눈가를 보이며 다가왔다.

“오세요.”

“들어와요.”

그렇게 다 같이 펭귄처럼 부둥켜안고 울기를 한참.

“…….”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동생들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촬영하고 있었다.

인상 좋은 흑인 아주머니가 축하해 줬다.

「우연히 들었는데 축하해요.」

「앗,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알아보는 듯한 시선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보통 미국 식당에서 우리가 이러면 ‘뭐지?’ 하고 한 번 쳐다봤다가 자기 식사로 시선을 돌리기 마련인데.

어째 많은 사람들이 우릴 안다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희가 누군지 아시나요?」

「뉴블랙 아닌가?」

「어떻게 아세요?」

「그냥… 아니까? 미튜브에서 봤는데.」

전부 다 우리를 알고 있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 ‘쟤네가 뉴블랙이야’ 할 때마다 ‘아!’ 하는 소리가 번져 나가는 것이 들려왔다.

동생들과 서로 바라보았다.

‘미국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는데?’

‘뭐죠.’

‘왜 알아보는 거지.’

가끔 가다 행인들이 ‘I know you!’ 하면서 외치는 상황만 마주했을 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우릴 보고 ‘우와, 뉴블랙이야’ 하며 셀럽을 보듯이 신기해하는 시선을 느끼는 것은 처음이다.

그제야 빌보드 Hot 100에 4위로 데뷔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 하나.

「리즈, 보여? 여기 진짜 뉴블랙이 있어. 방금 전에 울고 있는 것도 영상 찍었다니까.」

「나 지금 차이나타운인데 뉴블랙이 와 있어.」

「영상 찍은 거 올려야지.」

사람들이 우릴 알아보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펑펑 울었던 게 생각난다.

“…….”

“…….”

빠른 속도로 핸드폰을 톡톡 두드리는 손님들.

미튜브와 SNS를 타고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영상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절로 그려졌다.

스탭들과 우리의 표정이 멍해졌다.

“…….”

미국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할 틈도 없이.

그날 모두가 다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던 영상에는 절묘한 펭귄 BGM이 깔려 올라왔다.

제2차 ‘남극의 눈물’이었다.

*   *   *

뉴블랙이 미국에서 기뻐하고 있을 때.

새벽녘에 잠을 안 자고 기다리고 있던 수플레들과 짭플레, 호일들이 비명을 지르며 환호했다.

“와!”

빌보드 Hot 100 4위.

2012년도에 강남스타일이 대히트를 친 이후로 한 자리수 진입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ㅊㅋㅊㅋ

-아 미친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얘들아 진짜 축하해

-이거 꿈 아니지?ㅠ

-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대단하다.. 4위

-아름다운 밤이야

곧이어 빠르게 퍼져 나가는 소식.

새벽까지 핸드폰을 보면서 놀고 있던 사람들도 ‘와!’ 하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 미친!’

해외 유명 시상식에서 한국인이 뭔가 수상했다고 하면 내가 괜히 기쁘고 으쓱으쓱하듯이.

이번에 뉴블랙이 야심차게 준비한 METRO가 무려 4위로 데뷔했다는 소식에 어깨가 들썩였다.

“치킨이다.”

“치킨이네.”

“이런 날에는 치킨을 먹어 줘야지.”

사실 그냥 치킨이 먹고 싶었던 한국인들이 뉴블랙을 핑계 삼아 배달 어플을 켜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지호네 치킨으로…….’

왕지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호호치킨을 주문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주문이 닫혀 있었다.

[지금은 전화주문만 가능해요.]

주문이 폭주한 모양이다.

이어 다른 치킨을 주문한 한국인들이 크으! 하면서 기뻐했다.

[속보) 뉴블랙 빌보드 Hot 100 4위 데뷔!!]

아이돌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곳곳에 뉴블랙이 이번에 거둔 성과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미쳤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모: 오늘은 장사 안 해. 내가 마실 거야

-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국-뽕이지

-이게 바로 국격 상승의 주범 뉴블랙..

-캐나다사는데 친구 새끼들이 왜 너는 뉴블랙이랑 같은 한국인인데 못생기고 안 웃기냐고 놀립니다.. 흑흑

-뉴블랙 완전 대박났네;

길거리에는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새벽 시간이었지만, 인터넷만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당일 아침.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뉴스가 있는 모든 TV 채널에서 뉴블랙의 빌보드 소식이 흘러나왔다.

[네, 다음 소식입니다. 국민 아이돌 뉴블랙이 빌보드 Hot 100 차트 4위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홍재희 기자입니다.]

[인기 보이밴드 뉴블랙이 팝의 본고장 미국에서 빌보드 Hot 100…….]

[현지 연예 매체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보도하며…….]

TV뿐만 아니라 출근길 라디오, 팟캐스트 등도 들썩였다.

[네, 다음 곡은… 오늘이죠? 뉴블랙이 빌보드 핫 100 차트 4위에 이름을 올렸다고 하네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런 의미로 뉴블랙의 METRO 듣고 오겠습니다! It’s Metro, Baby!]

[예, 그리고 이것은 정치 외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오늘 뉴블랙이 빌보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까?]

[정말 쾌거죠.]

국민 아이돌의 미국 성공 소식.

평소 ‘뉴블랙이 잘나간다고 나한테 뭐 떨어지냐~’ 하며 시큰둥하게 있던 이들도 오늘만큼은 수플레였다.

“그거 들으셨어요? 뉴블랙 애들 이번에 빌보드 차트에 올랐다면서요.”

“빌보드는 맨날 오르는 거 아냐?”

“그게 좀 다르대요. 옛날에 아이돌들이 올라간다고 했던 거랑, 이 핫 100은 완전 다른 거라던데요.”

“그래?”

“완전 대박 났대요.”

“크으.”

괜히 내가 기쁘고 들뜨는 한국인들!

관계자도 아닌 일반인들이 그럴 정도였으니 실제 관계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예, 감사합니다. 예예, 다 힘써 주신 덕분이죠. 국민의 힘으로 커 가는 우리 아이들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아이고, 별말씀을요.”

“예, 저희 학원… 아니 회사가 잘한 게 아니고 아이들이 잘한 덕분이죠.”

회사에 걸려오는 전국의 뉴버지, 뉴머니들의 축하 전화를 받으며 행복하게 웃는 홍보팀 직원들.

‘이게 바로 수험생을 대학에 보낸 학원의 마음인가!’

전국에서 쏟아지는 따스한 격려와 응원에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홍보팀이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 삼매경에 빠져 있는 동안, 박규호 대표와 조규환 이사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규환아.”

“예, 대표님.”

“양장피랑 깐풍기도 이제 좀 물리는구나.”

“……!”

“……!”

놀란 얼굴로 바라보는 조규환 이사와 본부장에게 박규호 대표가 부처님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킹크랩 세트를 좀 주문해 볼까?”

“킹크랩이라면…….”

“33만원.”

“……!”

레몬 엔터 최상층의 대표실에 충격과 감탄, 행복이 퍼져 나가고 있을 무렵.

A&R팀과 프로듀싱팀은 가게 하나를 통째로 빌려 회식에 나섰다.

“캬!”

“위대하다. 우주선!”

괜히 그들의 어깨가 으쓱으쓱했다.

시원한 생맥주를 연거푸 들이켜는 나상윤 팀장에게 누군가 말했다.

“진짜 처음에만 해도 우리끼리 ‘진짜 될까?’ 이러고 걱정 많았잖아요. 진짜 우리 힘만으로 미국 차트 뚫을 수 있나 하고.”

“우주가 진짜 대단한 결정한 거지. 나 같으면 무서워서 그 누구냐, 스티브 개럿 그런 애들한테 매달렸어. 미국에 먹히는 노래 만들려면 미국 애들이 제일 잘 만들겠지 하고.”

“그러고 보니 그쪽은 뭐 한대요?”

“모르지. 뭐, 방에 앉아서 부들부들하지 않을까? 하하하하!”

그와 동시에 작곡가들의 마음에 자신감도 생겼다.

‘우리 식으로 해도 먹히는구나.’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우주가 다 해먹은 것이긴 하지만, 미국의 유명 작곡가들 네임 밸류에 움츠러들었던 작곡가들이 어깨를 쭉 폈다.

한국에서 하던 대로 일해도 외국에도 먹힐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것을 해낸 그들의 어린 상사에게 무한한 존경심이 생기는 날이었…….

딩동!

“우주한테 톡 왔다!”

“뭐래요?!”

“어디 보자~!”

나상윤 팀장이 신이 나서 의자 위로 깡총 올라갔다. 주목하라는 듯이 맥주잔을 숟가락으로 치는 막내 형섭.

프로듀싱 팀에게 전달하는 우주의 메시지가 나상윤 팀장의 입을 타고 전달됐다.

“우리 사랑하는 프로듀싱튐 직원 여러부운~!”

“예아!”

“정말 METRO를 만드는 데 다 같이 고생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책임 프로듀서로서…….”

정성이 담긴 기나긴 메시지를 읽는 프로듀싱 팀 직원들의 눈이 벌게졌다.

‘우주선 님!’

빌보드 진입 4위.

오늘부로 우가 놈이 아니라 우주선 님이었다.

신이 나서 메시지를 읽던 나상윤 팀장의 말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

“업무 관련한 사항 알려 드립…니다. 한국에 가서 스트릿 보이즈와 틴스피릿 녹음을 제가 직접 할 예정이오니 A&R과 프로듀싱팀은 작업 중인 곡들의 진척상황을 보고해 주시기를…….”

“우우우우우우우!”

“우우우!”

“사악한 우주선!”

“미국에서 물 마시다가 사레나 들려라!”

우주선 님의 시대는 개뿔!

프로듀싱팀과 A&R팀 직원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   *   *

레몬 엔터 직원들이 축배를 들고 있을 무렵.

연예계 관계자들은 술렁거리고 있었다.

“빌보드 4위…? 이게 가능한 거야?”

음악 방송의 PD, 촬영 감독, 작가진이 술렁거리고.

예능국을 비롯해 방송국 직원과 기획사 관계자들이 충격에 빠진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영어 곡 내서 가능했던 거 아냐?”

“그걸로 되는 거면 여태까지 한국 가수들이 영어 곡 냈겠지. 트릭스터가 그래서 지금 잘 됐어?”

“그…러네. 영어라서 그런 게 아니네.”

그냥 뉴블랙이 쩌는 것이었다 하는 결론이 나왔다.

마치 한국인 배우나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것처럼 충격적인 분위기였다. 저게 진짜 되는구나 싶은.

연예계 어딜 가든 뉴블랙 이야기였다.

가수들이 모이는 샵이든, 음악 방송 대기실이든, 드라마 촬영장에서든.

“뉴블랙 선배님들 이번에 빌보드 4위로 들어갔대. 일단 진입만 4위.”

“그게… 돼?”

“그리고 코인도 같이 들어갔대. VMA 무대 해서 그런가 봐.”

그야말로 어나더 레벨이라고 해야 할 만큼 압도적인 기록을 보여 주고 있는 뉴블랙이었다.

그러는 한편.

뉴블랙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어느 제작 발표회에 모인 연예부 기자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흘렀다.

“TJ는 반응 어떻대요?”

“글쎄, 아직 이야기 나온 건 없는 것 같던데… 저번에 뉴블랙 저격 보도 난 이후로 되게 사리잖아요.”

“박태준 회장 성정 생각하면 난리 났을 것 같은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   *   *

“…….”

TJ 엔터 사옥 최상층.

박태준 회장이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다.’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중국과 일본에 진출하고,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것까지 원대한 꿈을 꾸고 노력하던 그였다.

그런데 그가 이룩한 과실을 발판 삼아 저 5인조 아이돌이 도약해 버렸다.

‘하늘은 어찌…….’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과실을 가져가게 만든단 말인가.

그가 키운 가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쏘옥 고개를 내민 뉴블랙에 박태준 회장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중에서 선우주의 얼굴이 눈에 박혀 온다.

“끄응.”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지만 이내 박태준 회장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안 될 놈은 안 되는구만.’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그가 인정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었다.

그제야 진실이 눈에 들어온다.

뉴블랙은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데뷔를 했고, 그가 키운 트릭스터는 아직 미국 진출은커녕 국내 입지를 다져야 할 시기였던 것이다.

‘한 이사 말이 옳았군.’

계속해서 만류하던 한 이사의 말이 떠오르며 과거의 자신에 대해 후회막심한 기분이 든다.

동시에 듣기 좋은 말만 속삭였던 기획팀장의 얼굴도 스쳐 간다.

기획팀의 발언권이 강할 때와 아니었을 때의 성과를 분석하던 박태준 회장이 침음성을 흘렸다.

‘기획팀도 통폐합을 하든지 개편을 해야겠군.’

하지만 그에 대한 생각은 길어지지 않았다.

박태준 회장이 하고 있는 생각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옛날이었다면 총명하게 판단을 내렸을 자신이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가.

무엇보다 ‘뉴블랙이 왜 잘 되고 있는 것인지’ 에 대해 답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왜 잘 되는 거지?”

예전에는 보기만 해도 쟤네는 잘 되겠다, 아니다를 쉽게 결론 내렸는데, 이제는 그런 감이 안 잡혔다.

답답한 마음에 핸드폰을 바라보던 박태준 회장이 게시글을 하나 발견했다.

[박태준 : 저기 제 라이벌이 있습니다.]

이건 또 무엇인가.

선우주가 잔상을 남기듯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박태준 : 저기 제 라이벌이 있습니다.]

???: 뭘 보시는 거죠.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개터지네

-할배 미국병 좀 그만 벗어나ㅠㅠㅠㅠㅠㅠ

-엌ㅋㅋㅋ 주가 개같이 나락갔쥬??ㅋㅋㅋㅋㅋ

-주식은 답을 알고 있다

평소 같으면 ‘이 고얀 것들…!’ 하면서 길길이 노했을 텐데, 오늘은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지난 2주 동안의 좌절과 자기 성찰.

박태준 회장은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다.

‘이제는 트렌드에 못 따라갈 나이가 됐어. …여기서 더 욕심 부리면 노망이다.’

그리고 지난 2주 동안 곰곰이 생각했던 일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전화기 버튼을 눌러 비서를 호출한 박태준 회장이 한영준 이사를 회장실로 불렀다.

그의 용건은 간단했다.

“물러나려고 해.”

“예?”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야. 앞으로 회사는 자네가 맡아.”

“…….”

당황해서 만류하는 한영준 이사에게 계속해서 굳은 결심을 전달한 박태준 회장은 집무실에 홀로 남았다.

“후…….”

한때 연예계를 호령했던 거목(巨木)으로서 퇴장을 결심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까지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확인하려는 마음으로 박태준 회장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청담동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뷰.

“허허…….”

마음을 가라앉히며 지난 수십 년을 회고하려고 할 때였다.

반짝-

‘아니, 잠시만.’

반짝-

‘아니, 좀!’

맞은편 옥외 광고판에 뉴블랙 5인조의 사진이 떠올랐다.

반짝반짝-

그 위로 빵실빵실 떠다니기 시작하는 수플레 이모티콘들.

[경축! 뉴블랙 빌보드 Hot 100 4위!!!]

꺄르륵! 꺄륵!

By 수플레 일동

마치 그에게 보란 듯이 걸린 광고를 바라보며 박태준 회장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또 터져 나왔다.

‘저놈의 팬클럽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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