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18화
아이돌 E스포츠 대회.
TBC가 매년 명절마다 개최하던 돌림픽을 폐지하고 이번에 E스포츠 버전으로 오픈한 돌림픽이었다.
방영했다 하면 높은 시청률을 찍던 옛날만큼은 아니더라도 매년 명절 효자 프로그램으로 불리던 만큼, TBC 측에서 돌림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다치는 것보단 훨배 낫지 않나요? 우리는 몸이 재산인 직업인데~ E스포츠면 적어도 다칠 걱정은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근데요. 병장님.”
눈을 부드럽게 휜 녀석이 주변에서 여우처럼 알랑거린다.
“왜 오셨어요?”
“…….”
“대체 왜 오신 건지 이 후임은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아니, 게임의 게 자도 못 쓰시는 누추한 분이 어쩌다 이곳에…….”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지. 내가 게임 못하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은성이가 흐응 하며 말했다.
“행정반에서 본 것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지뢰찾기에서도 10초를 못 버티시는 분이니.”
“…….”
“병장님 게임 못하는 건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인데….”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행보관님이 내가 지뢰찾기하는 걸 보고 너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겠다고 말을 하셨지.
“아니, 근데 진짜 어쩌다 오신 거예요? 뉴블랙이 나온다면 지호 선배님이 오실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
이번 추석 예능 촬영의 목표는 짧고 굵은 임팩트.
이런 E스포츠 대회야말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큰 임팩트를 남길 수 있는 기회였다.
-예선에서 바로 탈락하고 오는 거죠. 최대한 임팩트 있게 죽어야 돼요!
-뭐, 특별히 노력할 필요는 없을 걸요? 그냥 하던 대로 하면 장렬하게 1등으로 죽고 돌아올 거니까.
-명예롭게 죽고 와요. 형.
-너무 노력하지 마요. 형! 괜찮으니까!
얄미운 얼굴들이 머릿속에 아른아른거린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심호흡을 하고는 옆에서 알짱거리는 군 시절 졸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넌 왜 나왔어? 너도 게임 잘 못하잖아.”
“병장님.”
“응?”
“저희에게는 선택권이 없어요.”
“아…….”
은성이가 하하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저희 같은 하류층은 방송국에서 나오라고 하면 나오는 거예요. 연예계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병장님처럼 어디 한번 나가 볼까 고민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 그랬구나.”
“부디 올챙이 시절을 기억해 주십시오. 개구리여.”
우스꽝스러운 말투에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선우주를 웃겼다!’ 하면서 좋아하는 후임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을 때, 주변에서 누군가 인사를 왔다.
해골 귀걸이를 걸고 있는 음울한 미남.
풍선껌을 잘 불게 생긴 락커 같은 미남이 양손을 공손히 모으고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저 트릭스터 부기입니다.”
“오랜만이에요.”
“저 선배님, 개의치 않으시다면 제가 한 가지 여쭤봐도 될런지…….”
진지한 얼굴의 트릭스터 멤버에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물어봐요.”
“제가 오늘 선배님의 몸에 바람구멍을 내도 괜찮으실지…….”
은성이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만큼 잔뜩 긴장해서 어깨를 움츠리는 이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부기 씨.”
“네, 선배님.”
“게임 캐릭터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죠?”
“헛, 그렇습니다.”
“편하게 해요. 게임이잖아요.”
내가 정말 옹졸하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 걸까. 게임에서 님 캐릭터를 죽여도 되냐는 정중한 질문에 헛웃음이 나왔다.
총총 물러서는 트릭스터 멤버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주변에서 건네는 인사들을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럭키걸의 루이입니다! 럭키럭키한 하루 되세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경기도 오산에서 온 오산입니다!”
대부분 후배 가수들이었다.
음방에서 마주친 사람들도 있지만 아닌 가수들도 많다. 선배 가수들은 정말 보기 드물다고 할까.
“내가 연차가 이 정도로 찼나…….”
“선배님들 안 보여서요?”
“응.”
“많이 안 보이시긴 하네요. 작년에만 해도 꽤 많으셨던 것 같은데…….”
14년도나 15년도만 해도 데이드림이나 걸스온탑 같은 선배 가수들이 즐비했는데.
고작 데뷔하고 나서 3년밖에 안 지난 17년도의 E스포츠 돌림픽에선 내가 거의 최고참이었다. 선배 가수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예전에 비해 정말 대폭 줄어 버린 느낌이다.
아이돌들이 세대교체가 됐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어?”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안녕.”
방금 스튜디오에 입장한 데이드림의 준이었다.
돌림픽에서 농구를 했을 때, 주장을 맡았던 선배로 키가 굉장히 큰 편이었다. 나도 살짝 올려봐야 할 만큼.
어린 가수들을 보고 머쓱해하는 그가 나를 보고 반색했다.
“너라도 있으니까 정말 반갑다. 우주야. 아는 애들이 하나도 없어서….”
“저도 너무 반가워요. 선배님.”
그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가끔 이런 동병상련으로 친근함을 느끼게 되는 사이가 있다.
슬쩍 물러나는 은성이를 보며 준이 살짝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좀… 내가 어린 애들 노는데 끼었나?”
“아니에요. 선배님. 저기 케빈이가 좀 낯을 가리거든요.”
“예능 보니까 잘 안 가리던데.”
“실제 성격이랑은 다르잖아요. 쟤 MBTI가 I로 시작하거든요. 본인 말로는 뭐 그렇다고 하는데, 설득력이 영 없기는 하죠….”
자기도 I라면서 동질감이 든다는 표정을 짓는 데이드림의 멤버와 잡담을 떨면서 스튜디오에 대기했다.
<아이돌 E 스포츠 대회>라고 적힌 로고 아래로 게임 부스가 마련되어 있다.
최신형 헤드폰과 마우스, 키보드 등이 장착된 부스 근처에는 중계석이 마련되어 있다.
스튜디오 벽에 붙은 리스트를 바라보았다.
[1조 예선]
데이드림 준, 라비앙 로즈 유빈, 뉴블랙 우주, 에이플비 케빈…
예선 1조에 참석하는 면면을 훑어보았다.
나를 포함해 총 20명.
“여기서 4명이 최종전으로 진출…….”
“굳이 그런 계산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떨어지실 텐데.”
고개를 획 돌리자 은성이가 에헤헤! 하면서 줄행랑을 쳤다.
쫓아가려고 할 때, 피디님이 마이크를 들었다.
-네, 참가자 분들은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정된 게임 부스로 들어갔다.
바쁘게 돌아다니던 스탭들이 하나씩 컴퓨터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을 하고는 OK 사인을 보냈다.
부스에 자리 잡은 아이돌들이 게임을 켜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이게 로그인을…….”
지호와 함께 몇 번 정도 연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게임 아이콘을 클릭했다.
-이게 요즘 인기 엄청 많거든요. 형 같은 겜알못한테는 롤이나 옵치보다 훨씬 더 쉬울 거예요.
나온 지 얼마 안 됐지만 벌써부터 PC방 점유율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게임이라고 했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간 사람들끼리 생존을 위해 서로에게 총부리를 돌린다는 비극적인 내용.
맨몸으로 떨어져서 총이랑 각종 아이템을 획득해서 최후의 1인이 되면 승리한다나.
왜 생존자들끼리 협력을 하지 않고 싸우느냐는 비주와 나의 질문에 지호가 해준 답이 기억에 남는다.
-형들, 그런 걸 물어보니까 형들이 게임을 못하는 거예요~
지도 못하면서…….
기지개를 켜고 나서 헤드폰을 착용했다.
* * *
아이돌 E스포츠 대회 중계석.
에이스의 페일, 인기 예능인 모범주, 그리고 E스포츠계의 유명한 게임 캐스터 정현중이 자리를 잡았다.
“네! 2017년 추석 특집 아이돌 E스포츠 대회, 개인전 예선입니다!”
“여기서 상위 4명이 최종 결승전으로 올라가게 되죠. 정현중 캐스터님께서는 결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일단 탈락이 유력한 인사는 누가 봐도 명확하지 않습니까?”
중계석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녹화 카메라가 게임 부스 안에 자리 잡은 미남을 원샷으로 잡는다. 모범주가 멘트를 했다.
“네, 뉴블랙 클랜의 리더 우주입니다. 오늘의 유력한 탈락 후보죠.”
“뭐,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우주 씨가 전 국민에게 공인된 ‘겜알못’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개인적으로 기대가 몹시 큽니다. 과연 그 명성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 줄 것인가. 지금도 보세요. 혼자 부스에서 요가 스트레칭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거든요!”
중계진이 드립을 주고받는 동안 카메라 뒤에 자리 잡은 피디와 스탭들은 행복한 미소를 흘렸다.
‘우주다.’
사실 뉴블랙이 참석할 거라고는 꿈도 꾸지 않고 있었다.
부상 없는 E스포츠라는 기획 덕분에 틴스피릿이나 스트릿 보이즈 같은 팀들도 흔쾌히 참가하기로 했지만, 뉴블랙은 이제 방송국도 함부로 부르기 애매한 팀이기 때문이었다.
국내를 장악하더니 이제는 빌보드에서 이름을 올리게 된 그룹.
지금도 뉴블랙 우주를 바라보는 스탭들의 시선은 마치 내한가수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감사합니다. 레몬. 감사합니다…….’
누가 봐도 회사에서 얼른 촬영 끝내고 오라고 보낸 것이지만, 그럼에도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돌림픽 예고편에 ‘뉴블랙 우주’라는 키워드를 박아 넣을 수 있다는 것부터가 어마어마한 일이니까.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피디에게 조연출이 다가왔다.
“피디님, 채팅창도 스탠바이 됐습니다.”
“오케이! 좋았어.”
이번 E스포츠 돌림픽은 유명 게임 스트리밍 업체와 제휴를 했다.
스탭들끼리 리허설을 해 본 결과, E스포츠라는 장르 특성상 재미있는 장면을 뽑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중계진이 스트리밍을 시청하는 아이돌 팬들과 함께 할 예정이었다.
“중계진 모니터에 채팅창 띄우고, 금칙어는 지정했어?”
“예, 412개 지정했어요.”
“조금이라도 헛소리 하는 사람들 있으면 바로바로 내보내. 중계진이 신경 안 쓰도록.”
“저 그런데…….”
“응?”
“채팅창이 버벅이는데요.”
“…….”
접속한 수플레들 때문인지 채팅창이 버벅거리고 있었다.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들을 바라본 피디가 숨을 삼키고 말했다.
“저기는 자연재해 같은 거야. 어쩔 수 없어.”
“예, 피디님.”
그리하여 만반의 준비가 끝난 후.
제작진의 신호에 중계진이 환호하며 외쳤다.
“네! 지금 바로 제1회 아이돌 E스포츠 대회! 슈팅게임 개인전 예선 1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 *
[말씀드리는 순간! 경기 시작됐습니다!]
20명의 인원들이 낙하산을 메고 비행기에서 점프하기 시작하면서 모니터를 지켜보던 수플레들이 숨을 삼켰다.
‘……펴지겠지?’
다행스럽게도 꽃무늬 옷을 입은 군인 캐릭터가 무사히 낙하산을 펼치고 있었다.
ID는 김덕순의 남자.
선우주가 사이렌 오더를 주문할 때 사용하는 닉네임이라나.
[네! 우주! 시작이 좋네요. 아주 좋은 장소에 착륙을 했습니다. 아이템을 획득하기 좋은 장소죠.]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장소기도 합니다. 여기서 어떤 무기를 얻느냐가 게임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말씀드린 순간 다수의 선수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낙하산을 메고 착륙한 캐릭터들이 아이템을 얻기 좋은 창고들로 모이고 있었다.
험상궂게 뛰어가는 캐릭터들!
-우주는 여기까지인걸로
-30초면 그래도 오래 버텼지;
-은케빈은 어떻게 캐릭터 걷는 것도 열 받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빙 개얍삽해 보인다
-관건은 누가 먼저 우주선을 쏠것인가
-유니크 등급 칭호 [선우주 슬레이어]를 획득하였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다 뛰어가고 있을 때 우주는 걷고 있었다.
[설마 뛰어가는 키를 모르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아닙니다. 어쩌면 전략일 수도 있어요.]
바로 그때였다.
총을 획득한 에이플비의 케빈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역시 케빈입니다! 선후배고 뭐고 없어요! 일단 죽인다! 죽이고 난 다음에 손까지 흔들겠다!]
[아이고! 라비앙 로즈 유빈! 죽었습니다!]
[헤드폰을 빼고 귀엽게 웃고 있네요! 허허허허!]
타타탕! 타타탕!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그쪽으로 걸어가던 선우주가 몸을 돌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사건 현장을 외면하는 듯한 태도.
채팅창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바람직한 소시민의 태도
-그렇지. 총소리가 들릴땐 피해야지
-선우주는 아가야.. 도망쳐야 해
-도망칠때 걸어가는 거 보니까 달리는 키 까먹었나봄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핫앀ㅋㅋㅋㅋ 개웃겨
-누가 우주에게 달리는 키를 알려 주세요
그걸 의식했는지 선우주가 점프를 하기 시작했다.
-할 줄아는 키가 점프뿐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가 달리는 것좀 알려 줘ㅠㅠㅠ
-선우주 그는 차칸 벼룩이었습니다
-얼마나 가슴 졸이고 있을까.. 달리는 키가 기억이 안나 점프를 하는 그의 마음은..
-저거 백퍼 왕지호가 ‘형~~ 저거 뛰는 키가 저거예요~~’ 하고 알려 줬을 거임
-???: 이상하다. 지호가 분명히 뛰는 키라고 했는데
선우주가 느릿느릿 도망을 치는 동안, 많은 이들이 모였던 전장에서는 하나둘 탈락자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트릭스터의 부기가 프라이팬을 들고 선배 가수들의 머리를 깨고 다니고.
에이플비의 케빈이 여기저기 누비면서 박살 나 버린 인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총을 쏜 다음에 다가가 손을 흔들어 주는 인성!
-케빈아 귀갓길 조심해라
-평생 저렇게 살아온 애야.. 쉽게 갈 거였으면 진즉 갔겠지..
-바퀴벌레의 수호성 아래 태어난 우리 아이..
-은성이 목숨은 여러 개라는 게 정설
-오빠ㅠㅠㅠㅠㅠ 제발 나대지 마요ㅠㅠㅠㅠ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동안 중계 카메라가 멀찍이 홀로 돌아다니는 선우주를 비추었다.
걸어가다가 자동차라는 이동수단을 발견한 우주!
깡총깡총 뛰면서 기쁨을 표현하던 우주가 다가가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고.
[이야! 우주 선수! 면허 없습니다! 면허가 없어요!]
쿠쾅쾅쾅!
곧잘 달리던 차량이 가드레일을 박고 산비탈을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현장의 중계진과 제작진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쾅!
곧이어 달려가던 차량이 나무와 부딪혀 하늘을 날다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혼자만 장르가 달라
-아씨ㅋㅋㅋㅋㅋㅋ개터졌네
-어제 차를 사간 손님이 폐차를 하러 왔다
-진심 못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이거 우리집 강아지가 자판 두드려도 저거보다 잘할듯
-컨셉 아니었구나
고장 난 자동차에서 내린 선우주가 건재함을 과시하듯이 깡총 뛰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건물들이 밀집한 장소로 걸어…….
[네! 말씀드린 순간! 선우주 선수가 뛰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역사적인 순간이네요!]
못해도 이 정도로 못할 수가 없는 플레이를 보여 주는 선우주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뛰어가던 꽃무늬 군인이 멈춰 선다.
그리고 발견한 길거리의 3인승 오토바이. 선우주가 탑승하려고 할 때였다.
‘엇! 뒤에서 누구 온다!’
뒤에서 트윈테일을 한 험상궂은 떡대 캐릭터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 발각당했습니다. 럭키걸의 루이! 근육질의 거체를 뽐내며 선우주에게 달려들고 있어요!]
어설픈 플레이를 보여 주는 럭키걸의 루이가 달려오는 모습에 선우주가 우왕좌왕하다가 3인승 오토바이에 탑승했다.
그리고.
럭키걸의 루이가 달려오더니…….
[합승했네요!]
[둘 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근육 캐릭터와 꽃무늬 캐릭터가 사이좋게 보조석이 달린 3인승 오토바이에 탑승했다.
부아앙-
달려 나가는 오토바이 위의 두 캐릭터가 머쓱해 보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네 싸우는 법 모른다ㅋㅋㅋㅋ백퍼ㅋㅋㅋㅋㅋ
-기사님 연신내 가주세요
-선배님 저 카풀 가능할까요
-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본방꼭 봐야지 지금 둘 다 표정 개궁금함ㅋㅋㅋㅋㅋㅋㅋ
-다정하다 다정해
[아! 선우주 선수! 내리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오토바이가 강가로 가네요! 동귀어진하겠다는 거죠!]
내리는 방법을 모르는 선우주가 오토바이를 강가로 몰아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틈을 타서 오토바이에서 내린 루이.
풍덩!
강가에 홀로 처박힌 오토바이에서 선우주 혼자 물속으로 빠졌다. 빙글빙글 돌아가 물속에 빠지는 꽃무늬 군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바로 스불재
-후배에게 물먹이려다가 본인이 물을 먹었고요
-이래서 사람이 마음을 곱게 써야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빠ㅠㅠㅠ 너무 추해요ㅠㅠㅠㅠㅠㅠ
-주하다 추선아
겨우 익사를 모면한 우주가 강에서 빠져나와 루이에게 달려들었다.
강강술래를 하듯이 도망치는 걸그룹 멤버에게 주먹을 매섭게 휘두르는 꽃무늬 군인.
하지만….
퍼억!
호기롭게 달려든 것도 잠시. 근육질 캐릭터의 주먹 한 대를 머리에 맞은 우주가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네요!]
[머리에 주먹을 맞으면 아프거든요.]
[누구나 한 대 맞기 전까진 계획이 삼천 가지 있는 법입니다.]
후배 걸그룹에게 허둥지둥 쫓겨 가던 우주.
그리고 그가 겨우 도망쳤을 때, 이번에는 어디선가 부우웅- 하면서 오토바이가 등장했다!
설상가상이었다.
매드 맥스의 한 장면처럼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에이플비의 케빈.
[케빈 선수가 매복을 하고 있었네요!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죠! 저희 집 뽀삐를 보는 것 같습니다!]
[우주 선수! 다급합니다!]
허둥지둥 도망치는 우주의 뒤에 대고 케빈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투타타타탕!
농락하듯이 우주의 뒤꽁무니 발치쯤에 경고사격을 하는 케빈! 핫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부아아아아앙!
그리고 그런 우주를 들이받기 위해 오토바이가 달려들 때였다.
‘어?’
키를 잘못 누른 우주가 절묘하게 피해 버리면서 에이플비의 케빈이 절벽을 날았다.
순간적으로 슬로우가 걸린 듯한 느낌의 화면.
선우주와 하은성의 캐릭터의 눈빛이 마주친 후.
‘……어라?’
절벽을 날아간 오토바이가 허공에서 추락했다.
[케빈! 추락으로 아웃입니다!]
채팅창과 현장을 가리지 않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미 탈락한 이들이 구경하며 웃다가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넘어졌다. 채팅창도 마찬가지였다.
-권선징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 케빈아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병맛 대회냐고
-진짜 일주일치 웃을 거 다웃었다ㅋㅋㅋㅋㅋㅋ
-아웃곃ㅅ 손떨힘ㅋㅋㄱㅋㅋ
본인도 살아남은 것이 어리둥절했던지 절벽에 서서 바닥을 내려다보던 우주가 깡총깡총 점프를 해서 도망친다.
현재 생존자 7명.
이러다가 진짜 선우주가 4등 안에 들어서 예선을 통과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 느낌이 왔는지 현장에 있는 우주의 얼굴에도 자신감 가득한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우주 선수 얼굴에 자신감이 깃들기 시작했어요. ‘나 오늘 좀 되는 날인가?’ 그런 표정이네요.]
[겜알못이란 설움을 씻나요!]
그동안 다른 선수들의 화면이 흘러나왔다.
주먹질의 맛을 깨달았는지 채팅창에서 주먹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럭키걸의 루이가 후라이팬을 든 부기를 제거하고.
선수들이 하나하나 줄 때였다.
다시금 선우주로 화면이 전환되면서 관중들이 감탄했다.
‘아이템 잘 먹었네.’
헬멧과 총기 등등.
온갖 아이템으로 무장한 우주선이 점점 좁혀지는 전장의 가운데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러다 진짜 본선까지……?’
그런 생각을 하며 기대를 품을 때였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차량의 바퀴마다 총을 쏘며 몸을 풀던 우주가 건물이 밀집한 지역에 접어들었다.
수류탄을 꺼내 들고 적이 있는 건물을 향해 던지는 우주.
-도와줘! 피타고라스!!
-삼각함수의 힘!!!
-사인과 코사인의 기운이 감돈다!!!!
-넌 할 수 있어 우주선!
하지만 건물 벽에 맞은 수류탄이 튕겨 나왔다.
퉁!
-피타고라스 : 아 고멘
-수류탄 : 안녕하세요^^*
튕겨져 나온 수류탄이 파앙! 터지면서 선우주의 캐릭터가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았다.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아이고!]
[잘나가다가 막판에……! 몇 등인가요?]
[5등입니다! 예선 탈락이에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선 탈락.
역대급으로 추한 플레이를 펼쳤음에도 결국 5위로 마감한 국민 아이돌의 리더였다.
* * *
헤드폰을 벗자 주변에서 쏟아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얼굴을 타고 올라오는 화끈화끈한 기운.
여기저기서 배를 잡고 웃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후우우…….”
경기가 끝났는지 웃으면서 달려온 중계진이 마이크를 내밀었다.
“본선을 앞두고 안타깝게 탈락하신 소감 어떻습니까?”
“후우…….”
주변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이들을 둘러보며 꿋꿋하게 말했다.
“가수는… 게임이 아니라 무대로 말하는 법입니다…….”
스튜디오에서 크게 터지는 웃음소리.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추석 특집 예능에 나갈 임팩트 있는 장면들은 제대로 뽑은 것 같다.
“흐하하하하!”
“으하하핫!”
물론 내 존엄성은 안드로메다로 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