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19화
<아이돌 E스포츠 대회> 녹화 첫날.
아이돌들이 다양한 게임 종목으로 진검승부를 펼친 녹화에 대한 반응은 호의적인 편이었다.
특히나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일단 팬들 동원 안 해서 괜찮네.’
아이돌을 인질 삼아 팬들을 동원하던 기존 돌림픽보다 훨씬 나았다.
추위 속에서 아이돌과 팬들이 찬 바닥에 오들오들 떨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욕이 나올 때가 있었다. 팬들이 제발 연차 차서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스케줄 1위가 돌림픽 아니던가.
그에 비해 E스포츠는 여러모로 나쁘지 않은 기획이었다.
-솔직히 아직도 ㅂ신같긴 한데.. 그래 이 정도면 뭐ㅋㅋㅋ
-스튜디오 녹화라서 좋다. 애들 진짜 보는눈 때문에 경기장에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그러던데
-일단 부상 안당하는 게 최고지. 콘서트 앞두고 발목부상입은 최애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떨림 ㅅㅂ
-카트한다는데 카트도 보고 싶당ㅋㅋㅋ
-누구누구 나오려나
-ㅋㅋㅋㅋㅋㅋ종목 보니까 내돌 나왓음 좋겠음
-선우주 나오면 개꿀잼일듯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반응이 제법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첫날 녹화 중계가 시작되면서 호의적인 반응들이 쏟아졌다.
[아이고! 카트가 벽에 충돌합니다! 정말 화려한 플레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는 사람의 속을 화려하게 불태우네요!]
[쉽지 않습니다. 이 경기.]
[과연 이런 장면을 보면 우리나라가 E스포츠 강국이 맞는 것인지 의문을 통감할 수가 없네요! 하하하!]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돌들이 만들어 내는 온갖 명장면에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바로 슈팅게임 예선 1차전에서 탈락한 1군 아이돌 리더였다.
[선우주는 겜알못이 아니다]
겜알못으로는 표현이 안 되는 실력이다
에임 실화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인정
-보다가 개웃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케 사람이 이 정도로 하냐고
-진심 내 발가락이 더 잘할자신 있음
-‘게임은 이기기위해하는 것이 아니라 빡치게 하려고 하는 것’이란 정의에 따르면 완벽한 플레이긴 함
-아군까지 빡치게 하는 플레이
-우주는 올해 명절에도 전설을 썼다
용서가 안 되는 게임 실력!
팬들조차 실드로 같이 최애를 때리고 있을 정도였다.
[오늘 그의 업적]
1. 총 소리 듣고 반대방향으로 유유히 걷기
2. 자동차 타고 하늘 날기
3. 오토바이에 합승한 후배 가수와 동귀어진 시도하다가 자기만 처박힘
4. 후배 가수에게 주먹질 시도하다 한대 맞고 도망치기
5. 수류탄 던지다 튕겨 나와서 사망
(번외) 선우주를 공격하다가 절벽으로 달려간 하은성.gif
-번외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
-번외짤미쳤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하다 추선이
-그래도 귀여워..웠으니까 됐어
-오토바이 합승한 것도 개웃기긴했어ㅋㅋㅋㅋㅋㅋㅋ 본방송에 현장 표정 좀 나왔으면 좋겠다
-자동차 하늘 날아갈때 해리포터 브금들리더라
-가자 작곡도비들이 가득한 호구와트로
-귀엽긴 해ㅋㅋㅋㅋㅋㅋㅋㅋ
그야말로 추한 플레이의 끝판왕.
잔뜩 신이 나서 놀려 대는 팬들을 의식한 것인지 Y앱을 킨 우주가 팬들에게 변명했다.
-진짜 총이었으면 잘 쐈을 거예요. 저 예비군 가서도 사격으로 칭찬 받은 사람입니다.
-추하다! 우우우!
-조용히 하지 못해?! 너네 때문에 나간 거잖아아-! 내가 진짜 속이 터져 가지고…!
-에베베베베~~
물론 팬들에게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속보) S모 씨 ‘진짜 총이었으면 잘 쐈을 것’]
근데 연습 많이 하고 갔다고 함
-그렇긴 하겠지
-하지만 우주야 이건 게임인걸..
-그런 논리면 올림픽 사격선수들이 게임 세계를 휩쓸고 있겠지ㅋㅋㅋㅋㅋ
-사격 선수대회 나가기 vs 게임초보들 사이에서 총 쏘기
-놀랍게도 우리의 최애에겐 전자가 더 쉽습니다 (뿌듯)
-빌보드 핫백보다 어려운 게임 잘하기.. 여러분 게임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이미 기차는 떠났다 우주야
-저게 연습을 하고 온 실력이었다니 아찔하다
-일단 예능신이 가호하는 건 맞는 듯
어쨌거나 이런 국민 아이돌의 투혼(?) 덕분에 성황리에 시작된 E스포츠 돌림픽이었다.
무수한 화젯거리들의 탄생!
선우주를 주먹으로 때리던 신인 걸그룹 럭키걸의 ‘루이’는 그날 슈팅게임 우승으로 ‘주먹왕 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정말 영광이에요. 주먹왕 루이…! 감사합니다!
데뷔하고 나서 받은 첫 관심에 핑크빛 머리카락의 귀여운 아이돌이 주먹을 꼭 쥐고 기뻐하는 장면이 SNS에서 화제가 되고.
-한조, 대기 중……. 후아…….
유명 게임 캐릭터의 대사를 성대모사하며 현타가 온 한조의 표정도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겜알못 선우주’와 함께 가장 화제가 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게임이 끝나고 나서 잔뜩 열이 오른 틴스피릿의 표정이었다.
[오늘 틴이들 표정ㅋㅋㅋㅋㅋㅋ]
단체전 3연패하고 나온 틴이들 표정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 게임하니까 또래처럼 보여
-빡친 것도 귀엽다ㅠㅠㅠㅠㅠㅠ
-오구오구 우리 애기들 이런 면도 있구나
-사생들 후기 보면 평소 표정 존나 썩었다고 그러던데; 모에화 개웃기누ㅋㅋㅋ
-사생 보면 누구든 표정 썩지 ㅂㅅ인가
-먹금해 먹금
-애들 너무 귀엽다ㅠㅠㅠㅠㅠ
허탈한 3연패에 울컥해서 잠시 표정 관리에 실패한 틴스피릿의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 아이돌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한편.
주제가 주제인 만큼 아이돌 E스포츠 대회에 관한 짤들은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도 퍼져 나가고 있었다.
[오늘 아이돌 게임대회에 출연했다는 우주선 (매운맛 주의)]
(TBC 미튜브 동영상 링크.metube)
나는 분명 매운맛 주의라고 했음
-우주형은 게임하지 마 빡치니까
-키보드랑 마우스 압수
-이건 컴퓨터에 대한 모독임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시발 그냥 매운맛이 아니라 캡사이신 수준 아님?
-갑갑하지도 않고 웃김
-아이작 아시모프 “고도로 못하는 게임실력과 유머는 구분할 수 없어..”
-와 실화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곡좌는 앞으로 작곡만 하도록해..
병맛스러운 장면들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던 게임 유저들이 신이 나서 같이 놀려댈 때였다.
[우주선 놀리는 거 지양합시다]
이러다 우주선이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라도 가지면 어떡할라구 하냐
게임 짜증 나네 -> 게임 반대 운동 -> 전국의 학부모 환호
너네 감당할 자신 있냐
진지한 헛소리에 게임 유저들이 웃음을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당할자신 ㅇㅈㄹ ㅋㅋㅋㅋ 너가 선우주냐
-근데 이거 맞다
-게임에 심사가 뒤틀린 선우주가 있는 평행세계 : 게임 멸망
-ㅇㄱㄹㅇ 잘한다고 칭찬해 줘야 함
-여러분 혹시 그거 아시나요? 칭찬이 고래를 먹고 큰다는 사실
-다들 칭찬을 흔들어 손을 보내줍시다
-와 게임 개잘해
-선우주는 신이야! 선우주는 신이야! 선우주는 신이야! 선우주는 신이야! 선우주는 신이야!
-대한민국의 게임산업을 살리기 위해 나는 오늘도 선우주를 칭찬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겜신 선우주’ 드립이 나오면서 온라인 세상에 웃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스탭들의 합창과 함께 여기저기서 박수가 오갔다.
방금 막 끝난 촬영.
매니저들이 건네주는 손수건으로 이마와 얼굴에 성글성글 맺힌 땀을 닦았다.
“이걸로 끝인가?”
“다 끝났어요. 이게 진짜 마지막이에요.”
리혁이가 스케줄러의 마지막 일정에 선을 찌익- 그으며 말했다.
아이돌 E 스포츠 대회를 시작으로 우리는 추석과 관련된 촬영을 하나씩 마무리했다.
광고 모델로 있는 브랜드마다 한복을 입고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하며 추석 인사 영상을 찍고, PBS <지금 내 고향은> 같은 프로그램에 보낼 한가위 축전 영상도 촬영하고.
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뉴블랙 TV 추석특집 컨텐츠까지 모두 촬영을 완료했다.
전체적으로 흐름이 좋았다.
딱 한 가지를 빼면…….
“와 겜신 선우주!”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을 보살로 만들어 준다는 게임보살님…!”
“이거 은근 재밌네. 허헛.”
눈을 반짝반짝이며 개나리처럼 몸을 흔드는 졸개들이었다.
정말 건수 잡았다고 생각한 건지, 매일매일 겜신님! 하면서 놀려 대는 모습이 얄미웠다.
에베벱 하는 막내를 붙잡고 부들부들했다.
“지호야. 형 어떡할 거니. 형의 대외적인 이미지 어떡할 거니.”
“음?”
내게 붙잡힌 막내가 해사하게 웃었다.
“제가 왜 책임을 져요? 형이 나간 건데.”
“네가 나가라며!”
“저는 권유했을 뿐이지. 나가기로 결정한 건 형인데요. 논리적으로 따져 보면 그게 맞지 않나요?”
“…….”
논리정연한 모습에 내가 고개를 획 돌렸다.
우리 막내가 이렇게 똑똑할 리가 없지.
아니나 다를까.
흉수는 따로 있었다. 핸드폰 전광판 앱에 지호가 말해 줄 대사를 띄워 주는 리혁이가 보였다.
“야!”
“붙잡을 수 있으면 붙잡아 봐요!”
잔상을 남길 만큼 빠른 속도로 도망치는 4호기를 보며 한탄했다.
“잘못했다. 데뷔를 잘못했어. 은혜도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이 데뷔를 해서…….”
“참아요. 형.”
내 어깨에 손을 올린 비주가 생긋 웃었다.
“겜신이잖아요.”
“…….”
졸개들이 박수를 치며 깔깔 웃었다.
믿을 사람 하나 없다. 정말 없어.
어쩜 나를 놀리는 걸 이렇게 좋아하는지, 나 같으면 지겨워서 못 그럴 텐데 며칠 동안이나 이러고 있다.
막내가 미소를 지었다.
“전혀 지겹지 않아요. 형. 매 순간순간이 얼마나 짜릿하고 즐거운데.”
“으으으으!”
진짜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다.
주변에 연락하는 사람들마다 게임 실력 실화냐고 놀려 대고 있었으니까.
“나중에 휴식기 되면 진짜 게임 연습 엄청 할 거야. 누구도 나를 더 이상 놀리지 못하도록…….”
“하지만 휴식기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투 싸우전드 이얼스 레이터…….”
동생들의 드립에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추석 관련 녹화가 끝났으니 이제 우리가 홍보모델로 있는 DA 면세점의 콘서트에 참석하고, 그 뒤에는 바로 출국해서 일본으로 가서 공연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주의 일본 공연 일부가 끝나면 또 파리로 출국해서 패션 위크에 참석해야 하고.
틴스와 스보 녹음과 일본 공연, 지호 단막극…….
“빼곡하다, 빼곡해…….”
“그래도 이 정도는 감수해야죠. 뭐, 이 정도는 소화해야 계속 이 자리에 머무를 수 있는 거니까.”
“리혁아. 그거 1페이지다.”
“뭐, 뭐야. 뒷장도 있었어요?”
가득한 스케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한편.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일본 투어를 위해 TF팀과 전략 회의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석환 형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이번 일본 투어의 목표는 간단해. 최대한 조용히 콘서트만 하고 돌아오는 거야.”
“콘서트만?”
“응. 이번에는 팬 대상 프로모션 정도만 조금 할 거야.”
조금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까지의 일본 투어와는 양상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팬 대상 프로모션이야 늘상 하는 것이지만, 그 밖에도 일본 대중들을 대상으로 홍보하려고 노력했던 터였다.
우리가 일본어 곡으로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최대한 호감을 주기 위해 일본의 아침마당 같은 곳에도 나가고 그러지 않았던가.
자체 뉴블랙 월드 TV 계정으로 일본어 관련 컨텐츠들을 올리기도 했고.
하지만 우리 TF팀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기자회견도 안 하고?”
“응, 미디어랑 접촉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여겼거든. 지금 일본 미디어 측 분위기 고려하면…….”
“지금 분위기가 어떤데?”
“음.”
석환 형이 머릿속으로 말을 고르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본 미디어가 미국을 많이 의식하는 건 알고 있지?”
“응.”
“그래서 너희가 미국 진출한 걸 두고 좀 시끌시끌한 편이야. 한국 가수가 미국에서 큰 관심을 받은 거니까.”
“아…….”
왠지 모르게 상상이 간다.
지금까지 우리가 쭉 보아 왔던 것들.
[역시 한국 정부의 정책이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군요. 우리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쓸데없는 내각 내부의 다툼보다 한국처럼 영리한 전략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네요~]
[뉴블랙을 보면 젊은 세대를 향한 한국의 반일 세뇌가 얼마나 성공적인지…….]
[선명주 상이 살아 있었다면 일본을 향한 아들의 태도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쉽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떨쳐 낼 때였다.
비주가 살짝 걱정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반응이 좀 안 좋겠네요. 한국 가수 잘 됐다고 막 물어뜯고… 그래서 미디어 접촉을 말리신 거구나.”
“아니. 그 반대야.”
“네?”
“너희 반응이 어마어마하게 좋아서 문제야.”
물어뜯는다거나 하는 반응을 상상했던 우리가 눈을 깜빡이자, 석환 형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 축제 분위기거든.”
“왜요?”
“아시아의 가수가 빌보드를 뚫었다고.”
“……?”
어이! 우리는 도모다찌다! 한다는 분위기에 의아함을 느낄 때였다.
홍서영 과장님이 노트북을 돌려 자료화면을 보여 주었다.
곧바로 일본의 시사, 생활 정보 프로그램의 클립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별! 뉴블랙이 빌보드 Hot 100에 4위로 진입! 1961년 이후로 아시아가 다시 해낸 쾌거입니다!]
[음, 제가 보는 뉴블랙의 성공 비결은 말이죠. J-Pop을 모방한 K-pop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뉴블랙을 보면 대중들에게 망가지고 코믹한 모습을 보여 주며 한국의 국민 아이돌이 되지 않았습니까?]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아시아가 이룩한 쾌거!]
자기 일처럼 방방 뛰며 기뻐하는 모습에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자, 석환 형이 부연 설명을 했다.
“미국에서 잘 되니까 지금까지의 견제 노선을 바꾼 모양이야.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제 같이 묻어가는 식으로.”
“…….”
“J팝의 후계자 같은 느낌으로 포지셔닝을 하려는 거 같아.”
TV 영상 속에서는 일본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장면들이 편집되어 나왔다.
[Q. 뉴블랙과 J팝 가수와의 유사성을 느끼는지?]
시민1: 확실히 좀 그런 게 있는 것 같기도? 망가지는 느낌이 일본 아이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시민2: 그런 면을 좀 더 세련되게 바꾼 느낌?
시민3: 친근한 이미지로 어필하는 전략이 어디서 많이 본 것이지 않나.
시민4: 일본이 키운 아이돌이지 않을까. (웃음)
“언제 우릴 키워 줬다고…….”
“뭐, 그쪽 의견은 그렇다는 거야.”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더니 옆집 아저씨가 내가 널 키웠다면서 청구서를 들이미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옆집 애랑 친하게 지내려고 할 때마다 ‘거기까지다!’ 하며 쌍심지를 켰던 아저씨…….
석환 형이 웃었다.
“어쨌거나 너희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메이킹을 해 주고 있긴 한데, 이것 때문에 우린 좀 곤란하거든.”
“그렇지.”
“방송 출연 요청은 엄청 많아. 일본의 메이저 예능들이 꼭 나와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
홍서영 과장님이 노림수를 설명해 주었다.
“지금부터 띄워 주겠다는 거지. 그러면 19년, 20년쯤 가서는 지금 나오는 17년도 자료화면으로 ‘일본이 키운 뉴블랙’ 하면 되니까. 그때쯤 되면 지금 일을 누가 제대로 기억이나 하겠어.”
“눈에 훤히 보이네요.”
“게다가 이번에 나올 만한 예상 질문들도 문제야.”
왜 일본어 곡은 안 내느냐.
J팝의 유명한 선배 가수들을 벤치마킹한 것 같은데 맞느냐.
일본이 키운 가수로서 기분이 어떠냐.
“……그냥 미디어 접촉을 안 하는 게 베스트네요.”
“그게 맞아.”
일본의 유명 예능에 출연하는 것도 좋지만… 이건 독버섯 토핑을 뿌린 피자 같은 거였다.
“어차피 한국에 관심이 많은 나라야. 미국에도 관심이 엄청 많고. 이런 보도 추세라면 1년 뒤에는 너희 개개인의 이름까지 다 기억할걸. 이런 상황에서 굳이 홍보를 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
석환 형이 전략을 말했다.
“이 과도기만 넘기면 돼. 지금이야 너희가 미국에서 날아오르기 시작해서 숟가락을 얹으려는 거지만, 나중에 이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그때는 숟가락 올릴 엄두도 못 낼 테니까.”
예컨대 회사가 성장하는 시기에는 투자금을 약간 출자한 투자자도 엣헴할 수 있지만, 대기업으로 커 버린 상황에서는 투자금을 얹어 봐야 그냥 흔한 주식 보유자 1이 되는 상황과 같았다.
TF팀의 설명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미디어 접촉은 최대한 하지 않는 걸로.”
“응, 이번에는 콘서트만 하고 온다고 생각하면 돼. 명목상으로 잡지 인터뷰 정도만 소화하고.”
TV 등의 대규모 미디어 매체와는 접촉하지 않기.
이해 완료였다.
* * *
며칠 후 면세점 콘서트가 끝나고.
김포공항에서 출국한 우리는 일본의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바로 입국할 수는 없었다.
일본어 통역을 대동한 석환 형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현장 인파가 너무 많아서 조율할 시간이 필요하다던데…….”
“얼마나 많은데?”
“2천 명.”
“2천 명 정도면 그래도…….”
“그리고 공항에 들어오지 못해서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또 2천 명 정도 된대. 너희 구경하겠다고 모인 사람들까지 합친 거라…….”
“…….”
분명히 음원이 터진 건 미국이었는데 어째 여기까지 스케일이 달라져 있었다.
경호원과 경찰 인력 300여 명이 상황을 통제하는 중이라 잠시 기다려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어마어마한 소리들.
동생들과 내가 옹기종기 모여 붙어서 부르르 떨었다.
“야 이거 어떡하냐.”
VIP용 출구를 통해 나가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원래 이런 건 국가 귀빈들만 이용하는 곳이고.
게다가 4천여 명이나 모였는데 얼굴 한 번 안 비추고 가는 것도 좀 그렇다.
회사 스탭들과 우리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공항 측 보안 책임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저희가 매뉴얼로 준비를 해 둔 것이 있습니다.」
「정말요?」
「예. 이 소요사태를 끝내려면 빠르게 돌파하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 딱 알맞은 수단이 있습니다.」
우리가 호기심을 보이자 보안 책임자가 결심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일본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신속하고 정확한 수단이 하나 있는데, 뉴블랙 분들이 괜찮으시다면 이걸 이용하는 것은 어떨지…….」
「최첨단 기술…!」
「어떻습니까?」
눈을 빛내며 묻는 보안 책임자의 제안에 우리가 흔쾌히 승낙했다.
신기술이란 말에 리혁이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럼 그 첨단 기술을 적용했다는 물건은 어디에 있나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보안 책임자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소개했다.
* * *
공항 입국장 문이 열리고.
“와아아아아아아!”
크게 환호하며 뉴블랙을 반기던 수플레들.
방방 뛰며 환호성을 터뜨리던 팬들이 멈칫했다.
“에……?”
최애의 얼굴을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었건만, 뉴블랙의 얼굴이 공중에 붕 떠서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탄 것 같은 느낌.
지이이이이잉-
원통형 로봇이 길을 안내하는 가운데.
전자동 골판지 카트에 탑승한 뉴블랙이 손을 흔들며 느릿느릿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전자음 ‘엘리제를 위하여’ 까지.
‘뭔가 카 퍼레이드 같은 분위기….’
‘걷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
‘리혁 쿤… 오늘따라 눈빛이 더 서늘해.’
왠지 골판지 카트를 바라보는 리혁의 눈이 짜게 식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진지하게 고민에 빠진 일본의 수플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