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20화
달달달달.
하얀색 골판지 달구지… 아니, 골판지 카트에 탑승한 뉴블랙이 지나가면서 일본의 팬들이 환호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마치 왕족이 카 퍼레이드를 하는 듯한 모습에 수플레들이 비명을 터뜨렸다.
찰칵! 찰칵!
현장에 겨우 자리를 잡은 사진 기자들이 카메라에 뉴블랙을 담았다.
“네! 이 시각 하네다 공항입니다.”
유명 언론사의 취재 기자가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들었다.
“세계적인 대-인기를 기록하고 있는 슈퍼스타 뉴블랙이 입국을 하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최신 기술을 이용한 골판지 카트를 이용하고 있는데요! 현장의 열기가 어마어마합니다!”
골판지 카트에 탑승한 뉴블랙의 모습을 카메라가 비춘다.
왜 저런 이동수단을 타고 이동하게 된 것인지, 취재 기자가 공항 측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하네다 공항에 무려 4천여 명의 인파가 집결한 만큼 신속하고 안전하게 공항을 빠져나갈 필요가 있다고 하는데요.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기 위해…….”
달달달.
느릿느릿.
“공항 내의 안전…… 을 위해 최대한의 속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공항 측 설명에 따르면 이를 통해 공항 통과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며, 골판지라는 1차 방어막을 통해 가수에게 가해질 위해를 막을 수…….”
바로 그때였다.
팬들에게 손을 흔들던 중현이 골판지에 손을 덥석 얹었다. 힘을 강하게 준 것도 아니고 그저 얹었을 뿐인데.
콰직!
형편없이 모양이 일그러진 골판지 문짝이 떨어져 내려갔다.
팬들 사이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카메라! 카메라 돌려!’
취재 기자가 보낸 필사의 눈빛에 카메라맨이 재빨리 화면을 돌렸다.
그동안 문짝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서 카트의 구조물 위로 덧입힌 골판지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휑하니 철골이 드러난 카트에 올라탄 뉴블랙이 프로답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그날 뉴블랙의 입국 장면은 뉴스에 짧게 단신으로 처리되었다.
* * *
“이게 무슨 신기술이야?! 무슨 신기술이냐고!”
캬아악! 하면서 불을 뿜어내는 우리 메인 보컬.
공항에서 나온 지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리혁이는 피를 토하듯이 분개하고 있었다.
“카트에 골판지 하나 붙였다고 신기술이냐고요! 진짜 신기술이라는 것은 이런 게 아니고…….”
“나름 인체 공학적으로 설계했다던데.”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그래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아니고.”
신기술이라는 말에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한 모양이다.
리혁이가 이런 식으로 부들댈 때에는 혼자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는 걸 알기에 거리를 벌렸다.
슬금슬금.
캬아악! 하는 애를 내버려두고 우리끼리 모였다.
중현이가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근데 일본 분들은 골판지 되게 좋아하네요. 검색해 보니까 온갖 곳에 골판지가 쓰인대요.”
“골판지 침대… 골판지 가림막…….”
석환 형 말로는 유명 정치인의 친인척이 골판지 회사를 운영한다던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앞으로는 골판지 카트를 안 타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걷는 게 더 빨랐던 것 같아.”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카 퍼레이드 하는 느낌도 나서 좋았던 것 같아요. 나름 재미도 있었고. 수플레들도 재미있어 했잖아요.”
“확실히 재미있긴 했어. 다시 경험하고 싶진 않지만…….”
오늘 우리의 입국 장면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서 새하얀 카트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왕실 카 퍼레이드 같았다.
온라인상에서 한국인들이 댓글 파티를 펼치고 있었다.
-수플레 왕국에 입장한 황제 폐하 같음
-관종대왕니뮤ㅠㅠㅠㅠ
-관종 전하가 왜를 정벌하러 가셨다ㅠㅠㅠ
-관종 4년, 왜(倭)와 화친을 도모하기 위해 대왕과 사졸개가 왜를 방문하고, 골판지 카트가 골(棺)로 가다
-아무리 봐도 걷는 게 더 빨라보여..
-근데 일본 매체에서 카트 포장 부서진거 절대 안 나오는 거 개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우리를 관종 대왕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흐흣, 흐흐흣.”
역사 드립을 보고 헤헷 하고 웃는 우리 메인 보컬의 모습에 댓글러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우리 리혁이 기분은 좀 풀렸니?”
“풀리기는 무슨,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래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오구구구. 그래.”
“아,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지 마요!”
치와와처럼 크왕 하며 물어뜯으려는 모습에 우리가 우쭈쭈 달래 주었다.
일본 반응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인터넷상에서 나오는 반응들을 살피고는 핸드폰을 껐다.
공연장으로 가기 전에 밥을 먹어야 할 시간이었다.
“어디 보자. 일본 팬분들이 추천해 준 집들이…….”
일본 수플레들이 맛있다고 추천해 준 가게 목록에서 추첨으로 한 집을 뽑았다.
주일 한국대사관 근처에 있는 아자부주반이라는 동네의 소바 집인데, 무려 역사가 200년이나 됐다나.
일명 사라시나 소바.
면이 하얀 것이 특징인데 엄청 맛있다고 했다.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한 집인지 [한국어 메뉴 있습니다]라고 적힌 가게에 방문해서 소바를 먹는데…….
“아니, 사람들이…….”
“저 면이 코로 들어갈 거 같아요….”
비주가 흐물흐물한 얼굴로 말할 때, 중현이가 엄지를 들며 웃었다.
“난 이미 들어감.”
“…….”
“케엥! 케엥! 아 왜 안 나오지. 케엥!”
“들이켜 봐여. 형. 흐으읍! 하고. 그럼 뒤로 쏙 넘어와요.”
“오키오키.”
중현이가 한쪽 코를 틀어막고 흐으읍! 하고 비주가 손수건을 들어 가려 주는 동안 소바 가게 손님들은 물론이고 유리창 너머에서도 사람들이 진을 치고 구경하고 있었다.
진귀한 구경거리가 된 느낌이다.
그렇다고 손을 흔들면서 다가가려고 하면 ‘에에!’ 하면서 부담스러워하고, 다들 멀찍이서 구경만 하고 있다.
식사를 하고 나서 편의점에서 일본의 간식거리를 털어 갈 때도 그랬다.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들이 ‘뉴블랙?’ 하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보도가 된 걸까….”
“너희 빌보드 어워즈 이후로 매일 같이 나왔대. VMA 때는 일본에서도 실시간으로 생중계했다던데.”
“…….”
“뉴블랙이란 이름만 따졌을 때, 한국에서만큼 유명하다고 보면 돼.”
석환 형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그 때문인지 공연장으로 향하는 우리 버스 차량 꽁무니에도 택시 행렬이 줄을 짓고 있었다.
저마다 택시에 탑승한 한국 사생들과 일본 사생들의 추격이었다.
보통 홍콩에서 KMA 시상식 할 때나 보던 장면인데, 이걸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동생들과 쓴웃음을 지었다.
“도착했다!”
사생들의 카메라를 피해 빠르게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일본 측 에이전시가 제공한 다과에 우리가 편의점에서 사 온 푸딩, 계란 샌드위치 등을 먹으며 에너지 보충을 한 후.
곧바로 리허설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마쿠하리 멧세!」
도쿄 옆에 붙어 있는 치바현의 마쿠하리 멧세가 바로 우리의 첫 번째 일본 공연장이었다.
수용 인원은 1만 5천여 명가량으로 여기서 3일 정도 공연을 하고, 바로 요코하마 아레나로 넘어가 이틀 동안 공연을 할 계획이다.
동선 체크를 꼼꼼히 하고.
프롬프터에서 흘러나오는 일본어 문구들을 입에 익도록 연습했다. 일상 회화가 가능할 정도로 공부해 두긴 했지만, 최근에 미국 활동을 해서 그런지 일본어가 입에 잘 안 붙는 느낌이라.
막내가 프롬프터의 문구를 암기하며 포즈를 취했다.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들려주려고 이번에는 하카타 방언을 연습했어요! 다른 지역이라 조금 생뚱맞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귀엽게 봐주실 거죠?」
「좋네요! 지호 씨, 한 번 해 보시죠!」
「すいとーよ(좋아해요)!」
일본 현지 스탭들 말로는 요즘 사람들은 안 쓰는 말이라던데, 수플레들은 귀엽게 봐 주겠지.
콘서트 리허설을 하면서 이벤트 연습도 했다.
일본 스탭들이 원반들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걸 팬들에게 던져 주시면 됩니다.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탁! 하고 던져 주면 돼요.」
「아, 네.」
「여기 적힌 번호로 추첨을 진행할 거예요.」
한 번 시범을 보여 주고 싶었던지 스탭이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저 멀리 원반을 던졌다.
스탭에게 건네받은 원반 뭉치를 들고 물었다.
「공연장 곳곳으로 던져 주면 되는 거죠?」
「예, 기왕이면 그게 좋죠.」
한 번 해 보라며 손짓하는 이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원반들을 던졌다.
휙! 휙! 휙!
휘리릭!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A구역, B구역, C구역 등을 향해 차례대로 원반을 빠르게 던지자 스탭이 입을 멍하니 벌렸다.
그리고.
「대체…….」
휘리리리릭!
날아가던 원반들이 빙글 원을 그리며 내 손으로 착착착 안착했다.
「닌자 수리검…?」
내 손에 차례대로 안착하는 원반들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리는 스탭의 말에 뿌듯하게 웃었다.
게임 못한다면서 구박 받았던 설움이 싹 내려가는 느낌.
잘하는 분야를 하니 자신감이 쑥쑥 솟는 듯했다.
“꺄르르륵!”
「야! 야! 히카타! 여기 와 봐. 우주 씨가 부메랑을 기가 막히게 던진다고!」
“꺄륵!”
「뭐? 당장 구경하러 간다!」
홀린 듯이 다가와 내 원반 솜씨를 구경하는 스탭들의 모습에 행복함을 느낄 때였다.
“형.”
“응?”
비주가 물었다.
“근데 그렇게 던지면 추첨은 어떻게…?”
“어?”
……그러네?
* * *
다행스럽게도 추첨은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되돌아오지 않도록 만드는 과정이 좀 어렵긴 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해낼 수 있었다.
반응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Would_joo_marryme
우주의 원반. 이 아이가 던지는 변화구.. 전혀 받지 못하겠어.
@Tezkazone999
어째서 A구역으로 오던 원반이 B구역으로 가 버리는 걸까. 원반도 주인을 닮는 것이었나?!
@Monomi_24
도와주세요. 최애가 저를 부메랑으로 공격했습니다. 우주에 대한 사랑 오늘로 끝내도 될까요
힘없이 날다가 추락한 리혁이의 원반이라든가, 중현이의 강속구. 다리를 들어 올린 비주의 발레 회전 변화구.
그리고 부메랑을 던지다 자기가 맞은 막내까지.
수플레들이 불타오르는 화려한 이벤트와 함께 일주일간 진행된 콘서트는 몹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뉴블랙, 日 투어 시작… 총 21만 규모 ‘드디어 성공했네~’
-일본팬 운집한 요코하마 아레나 앞서 反韓단체 시위.. ‘성난 팬들에 쫓기다 천막 붕괴’
-뉴블랙 메트로, 日 디지털 차트 점령.. 日가요계 ‘우려’ 표명
좋은 곡은 어느 나라에서나 통한다는 것이 맞는 말인 듯, 메트로는 일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서도 지난주에 이어 2주 연속 2위.
그리하여 시끌벅적했던 일본 투어의 전반부를 끝낸 후.
우리는 곧바로 한국으로 귀국했다.
-파리 패션 위크.
또 다른 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 * *
파리 패션 위크.
전 세계의 4대 패션위크 중에서 가장 위상이 높고 영향력이 크다는 세계 최대의 패션쇼!
“…에 내가 서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납득할 수가 없어요.”
뾰족한 얼굴을 절레절레 흔드는 리혁이에게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납득하건 말건, 형이 런웨이에 서게 됐다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란다. 리혁아.”
“어으.”
“이이이잉!”
“에이!”
“어휴!”
어휴?
방금 어휴 누구야.
색출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지만 동생들이 저마다 아닌 척하면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뭐. 부러운 마음은 잘 알고 있단다. 흐하하하하! 부러우면 너희도 패션쇼 한 번 서 보든가.”
“아니, 진짜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지호가 울적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옷 잘 입는 우리들을 놔두고, 어째서 패션계에 불을 질러 대는 사람을…….”
“디자이너님이 다 보는 안목이 있으신 거지.”
이제 며칠 있으면 르블랑(LeBlanc)의 수석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 님과 만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만나면 ‘꽃무늬’라는 한국어부터 알려 줘야지.
그가 건네주는 옷을 입고 쇼의 오프닝과 클로징에 설 생각을 하니 심장 깊숙한 곳이 ‘꽃무늬… 꽃무늬….’ 하면서 울부짖는 느낌이다.
콘서트와 함께 최근에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스케줄이 바로 이 패션쇼의 런웨이에 서는 거였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스케줄!
하지만….
“…….”
이 스케줄의 모든 것이 좋은 건 아니었다.
아삭아삭!
와구와구!
주변에서 젤리 봉지를 뒤적이는 중현이, 감자칩을 먹는 지호를 비롯해 사과를 먹는 비주까지.
복스럽게 간식거리를 먹는 동생들을 바라보며 침만 꼴깍 삼킬 뿐이었다.
“에헤헤헤.”
막내가 감자칩을 꺼내 들어 내 앞에서 흔들었다.
“형은 이거 못 먹져? 못 먹져?”
“……안 보인다. 안 보여.”
“갓 튀긴 감자칩의 바삭한 기름 냄새, 씹을 때 나는 이 아삭아삭한 소리!”
“…….”
패션 위크 스케줄의 단점.
바로 간식거리를 못 먹는다는 거였다.
일본 투어를 돌면서도 최대한 콘서트할 정도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정도만 식사를 한 터였다.
“어쩌겠어. 살을 빼라는데…….”
르블랑 측으로부터 지금 체격이 패션쇼 런웨이에 서기에 좀 부어 보인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물과 음식을 자제하고 있었다.
리혁이가 의문을 품었다.
“나는 어떻게 이 체격이 부어 보인다는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군살도 하나 없지 않아요?”
“근데 거기 모델들이 다 엄청 말라서 어쩔 수가 없대. 남자들이고 여자들이고 나랑 쇼에 서는 사람들 다 엄청 말랐다더라.”
“여기서 더 마르면 영양실조 상태일 텐데.”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나는 마른 편인데, 브랜드 측에서 최대한 타이트하게 빼 달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미국 진출을 본격화한 뒤로는 트레이너의 지도하에 운동을 좀 더 해서, 어깨까지 좀 더 넓어진 상황이었다. 어깨가 넓어져서 당연히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브랜드 측에서 난색을 표했다.
‘Too heavy’ 해 보인다고.
그래서 요청한 대로 근육과 지방을 같이 빼는 중이었다.
“얘들아. 이러다 나 쓰러지면 묘비에 ‘패션의 귀재 선우주, 잠들다’ 라고 써 줄래.”
우물우물.
우걱우걱.
“듣고 있지 않구나…….”
동생들을 향해 훈훈하게 웃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르블랑의 패션쇼가 열리는 것은 파리 패션위크의 3일 차인 28일.
그 전까지 시간 여유가 조금 있었는데, 오늘은 바로 그 시간 여유를 이용해 멘토를 만나 막바지 연습을 할 계획이었다.
“도착했습니다!”
민수 씨의 호쾌한 목소리를 들으며 차량에서 내렸다.
오늘의 도착지는 바로 KM 엔터 사옥이었다.
깔끔한 외관의 이 사옥을 보유한 KM 엔터는 4대 기획사 중 하나로 최근에는 원더 차일드의 흥행으로 다시금 부활에 성공했다.
비주가 건물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는 두 번째네요. 작년에 온 더 스테이지에서 연습생 코칭하기 전에 왔었잖아요. 미팅하러.”
“그랬지. 고기가 참 맛있었는데.”
구내식당 셰프님이 구워 주던 소고기 생각을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중현이가 물었다.
“근데 형은 지금 못 먹잖아요?”
“……들어가자.”
아무튼 이 KM 엔터는 모델 에이전시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기도 하다.
유명 모델 한소라 씨가 소속된 TJ 엔터와 더불어 모델 기획으로 유명한 편인데, 현재 상황에서 방문하기 껄끄러운 TJ보다 KM 엔터를 골랐다.
“아이고오오!”
로비에 들어가자마자 허강민 대표가 플랑크톤 사장처럼 총총 뛰며 뛰어왔다.
거의 10미터를 질주해서 뛰어 온 허 대표님이 내 손을 붙잡았다.
“우리 선우주-우주선-김덕춘-주선우 오셨는가!”
“오랜만에 봬요, 대표님!”
“아이고, 뉴블랙이 온다고 해서 내가 어젯밤부터 잠을 설쳤는데. 꿈에 나와서 나한테 성공 비법 알려 주는 꿈을 꿨어! 핫핫핫!”
뺨에 경련이 올 만큼 환히 웃는 대표님의 머리 위로 플랑크톤 더듬이가 흔들흔들하는 느낌이다.
허강민 대표님이 내게 팔짱을 끼고 안내했다.
“우리 우주를 위해 아저씨가 준비한 뷔페부터 갈까?”
“저 대표님….”
“왜 그래요?”
“저 런웨이 때문에 제가 지금 굶는 중이라…….”
“허억!”
놀란 허강민 대표님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을 찰싹찰싹 쳤다.
“내 입방정 좀 봐! 이런 실수를…!”
“아뇨. 괘, 괜찮으니까…….”
“아이고, 이걸 어떻게 할까! 내가 눈치가 없게…….”
요란하게 미안하다고 하는 플랑크톤 사장님에게 괜찮다고 웃어 보였다.
동생들이 말했다.
“대표님! 저희는 이따가 먹어도 될까요?”
“그럼요. 하하.”
그러고선 내게 눈짓으로 ‘먹여도 되겠지?’ 하는 이에게 내가 진짜 괜찮다고 손을 흔들었다.
사옥에 찾아온 귀빈을 안내하듯이 허강민 대표님이 우릴 이끌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하며 지나갈 때, 대표님이 과장된 동작으로 손가락질했다.
“아니! 이런 우연이! 원더 차일드가 저기 있구나! 얘들아! 여기 내한 가수 뉴블랙 선배님들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원더 차일드입니다!”
“오랜만이에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보이그룹 후배와도 인사를 하고.
“아니! 저긴 우리 블링블링 블링이들!”
“안녕하세요.”
“어, 네. 안녕하세요!”
우리와 데뷔 동기인 힙합 걸그룹과도 인사를 나눴다.
참으로 우연하게 마주치는 분위기에 우리가 눈을 살짝 가늘게 뜨자, 허강민 대표님이 뻔뻔한 미소를 지었다.
“인사를 좀 시켜 주고 싶어서…….”
솔직한 대답에 웃음이 흘렀다.
이윽고 도착한 모델 전용 연습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녀가 우릴 보고 반겼다.
“어머! 안녕하세요!”
“안녕.”
날카로운 눈매와 서구적인 콧대.
훤칠한 키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있는 미녀는 현재는 은퇴했지만, 과거 한국 모델 레전드라고 불렸던 차수연 씨.
그리고 맵시 좋은 하늘색 셔츠를 걸치고 있는 미남은 바로 PBS 인기 예능 <미스터 프로듀서>의 막내 멤버이자 모델 홍석이었다.
이 두 사람이 오늘 내게 모델 워킹에 대해 조언을 해 줄 선배들이었다.
남자 모델만이 아닌 남녀 모델 둘이나 요청한 이유는 바로 이번 파리 패션위크의 테마 때문이었다.
16년도 이후로 화두가 되면서 이번 파리 패션 위크의 테마로 떠오른 젠더리스(genderless).
남녀 구분을 두지 않고 경계를 허무는 파격적인 쇼가 올해 패션계의 화두라는데, 아무튼 사정이 이렇게 된 터였다.
“그럼 나는 이만. 하핫. 이따 봐요~”
윙크를 하던 플랑크톤 대표님이 손을 흔들며 소개팅 주선자처럼 물러났다.
뉴블랙 TV의 스탭들이 비하인드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세팅하는 동안, 모델들이 물었다.
“르블랑 오프닝이랑 클로징에 선다면서요.”
“네.”
“연습은 많이 했어요?”
“부족한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긴 했어요. 마음에 드는 수준까지 실력을 끌어 올리진 못했지만….”
“그래요, 이제 코앞일 텐데…?”
남녀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차수연 씨가 팔짱을 끼며 음… 하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일단 촬영 시작하기 전에 워킹만 한 번 볼까요?”
“아, 네!”
유명 모델들 앞에서 선보이는 워킹.
살짝 부끄러워서 어색하게 웃는데, 곁에 선 졸개들이 왠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