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21화
“저 끝에서 여기까지 걸어오시면 돼요.”
하이힐을 신은 늘씬한 다리가 바닥에 가상의 선을 그린다.
차수연 씨가 거리를 가늠하며 말했다.
“유독 르블랑이 동선이 좀 길거든요. 베르티에나 르루 같은 데보다 훨씬 더 긴 편이에요.”
“네. 자료 조사하면서 봤어요.”
“일단 포즈 먼저 볼 건데, 탑 포즈부터 볼게요. 탑 포즈가 뭔지는 알죠?”
“네!”
탑 포즈란 우리가 ‘모델 포즈’라고 부르는, 런웨이 끝에서 취하는 포즈를 말한다. 그러고 나서 턴을 해서 원래대로 돌아가는데 이 턴의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인가 그랬다.
“우주 씨는 오프닝으로 나올 거니까 중앙으로 나올게요.”
“네.”
세세하게 디렉팅을 해 주던 차수연 씨가 손가락을 튕겼다.
“자, 그럼 고!”
양손으로 카메라 사각형을 만든 졸개들이 찰칵! 찰칵! 하는 의성어를 내며 포토그래퍼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입꼬리를 눌러 웃음을 꾹 참고.
눈을 지그시 감고 이곳이 런웨이라는 상상을 했다. 어두운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조명이 비추고 수많은 사람이 자리에 앉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후우…….”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고는 눈을 떴다.
그리고 발걸음을 뗐다.
* * *
‘큰일이네.’
차수연의 얼굴에 근심 걱정이 감돌았다.
팔짱을 낀 그녀가 선우주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조건은 완벽해.’
키가 저기서 좀 더 커서 180 후반대였으면 좋았겠지만 180 정도만 해도 적당한 키였다.
일단 비율이 완벽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되살아나 선우주를 보게 된다면 그 유명한 인체 비율 그림에 선우주의 몸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만큼 모델로서 완벽한 비율을 가지고 있는 1군 아이돌이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나칠 정도로 잘생겼어.’
연예인으로서는 최고의 장점이지만 의외로 모델계에서는 좋은 점이 아니었다.
옷이 주목을 받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죄다 얼굴만 본다면 어느 디자이너가 좋아할까.
차수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지미 로빈스니까 괜찮아.’
지금의 르블랑은 그녀가 런웨이에 섰을 때와는 또 다르니까.
새로운 수석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는 투 머치의 끝이라고 불릴 만큼 화려하고 블링블링한 패션을 사랑했다.
그런 패션이라면 저 얼굴과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
“음…….”
침음성을 흘리는 차수연의 모습에 홍석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왜 그러세요. 누나?”
“정말 괜찮을까 싶어서. 다른 브랜드도 아니고 르블랑의 오프닝이랑 클로징이잖아.”
세계 명품 브랜드를 꼽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브랜드다.
아무리 워킹이 중요치 않은 셀럽이라 한들, 그래도 기본적인 것은 할 줄 알아야 하는 무대였다.
“기본보다 더 잘해야 돼. 최고의 모델들이 오는 자리니까.”
“그런데요?”
“우주 씨가 아까 연습 시간이 부족하다고 그랬잖아. 런웨이 연습이란 게 단시간에 될 일이 아닌데…….”
그 말에 홍석이 작게 웃었다.
“왜 그래?”
“쟤가 좀 엄살이 심하거든요. 말만 저러지, 런웨이 서는 거 확정되자마자 매일같이 밤 샜을 거예요.”
“분명히 아까 시간이 부족했다고.”
“본인 기준으로 부족하다는 걸 거예요. 작년에 미스터 프로듀서 특집 촬영할 때, 옆에서 어떻게 사는지 지켜봤거든요.”
홍석이 그때를 회상하는 얼굴로 웃었다.
“진짜 지독하게 살더라고요. 저도 어디 가서 독기로 꿇린다는 소리는 안 듣는 편인데 그때 보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해내야 할 일이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해내더라고요.”
“그래?”
“이번에도 엄청 연습하고 왔을 거예요. 분명.”
기대감을 품은 말에 차수연이 시선을 돌렸다.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모델들은 걷는 모습만 봐도 태가 난다. 기본적인 자세부터가 타 직군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탑 모델인 그녀가 보기에 선우주의 자세는 그냥 좋은 정도였다.
모델 같은 느낌은…….
‘어?’
바로 그때였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선우주가 눈을 뜨면서 걸어오기 시작했다.
자신만만하면서 옅은 웃음기가 밴 눈매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워킹이 시작되면서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어?”
육성으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워킹을 시작하면서 셔츠가 부드럽게 나풀거리고, 이마 끄트머리에서 머리카락이 살랑인다. 정면을 바라보는 모델의 눈빛에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워킹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무게 중심을 발바닥에 두고 걸음을 긴 폭으로 떼어 우아하게 걷고.
르블랑의 핵심 컨셉이라 할 수 있는 ‘화려함, 고귀함’을 담은 의상의 에센스를 얼굴 표정에 담고 있다.
“세상에…….”
보통 초보자들이 하기 쉬운 흔한 실수조차 안 보였다.
걸음걸이에 머리와 어깨가 흔들린다거나 초조해서 손을 꿈틀꿈틀하는 반응 하나 없이 완벽하다.
‘완벽한 수준이 아니야. 그냥 우리 업계인이다.’
차수연이 입을 멍하니 벌렸다.
우주가 스파이 영화처럼 얼굴 마스크를 벗고 ‘안뇽하세요. 이탈리아 모델 베네치오입니다’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연습만으로 나올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보통 연습으로 되고 안 되는 게 있는데, 저건 모델로서 타고난 센스나 감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천재는 진짜 존재하는구나.’
가끔 가다 보면 독특한 선후배 모델들의 이야기들을 접하곤 한다.
그냥 동네 산책하듯이 걸었는데, 해외 디자이너가 ‘너 좀 워킹할 줄 아는구나’ 하면서 발탁했다고.
“와…….”
그동안 차수연이 그어 준 선 앞에 정확하게 멈춰 선 우주가 포즈를 취했다.
‘완벽해!’
차수연이 주먹을 꼭 쥐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이제 턴까지 완벽하게 하면 되는데…….’
그리고 선우주는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왼발을 앞으로 살짝 내민 상태에서 두 박자 정도를 정지한 후, 머리를 돌려 어깨 너머로 관객들에게 시선을 준다.
스르륵.
그리고 힙과 어깨, 발을 중심으로 회전을 하면서 오른발을 떼며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크으.”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칠 뻔했다.
태도까지 완벽했다.
가장 중요한 탑 포즈와 턴을 성사시키고 나면, 신입 모델들은 감정적인 동요를 보이곤 했다. 탑 포즈를 완벽하게 하고 난 다음에 정작 돌아갈 때 엉덩이를 씰룩씰룩한다든가.
살짝 들떠서 걷는다거나.
하지만 선우주는 퇴장하는 모습까지 일관된 태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와하아…….”
작게 ‘브라보’ 하면서 박수를 치는 차수연의 눈빛에 벌써부터 애정이 감돌기 시작했다.
모델계에 등장한 샛별을 바라보는 기분이 이럴까!
그녀가 고개를 획 돌렸다.
“석아. 네가 한 말뜻을 알겠어. 저렇게까지 잘하니까 네가…….”
“…….”
하지만 그녀가 쳐다본 곳에서 홍석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주, 노력파니까 걱정 마세요~’ 하며 여유롭게 웃던 모습은 사라지고.
“아, 아니… 저게 어떻게 가능… 아니, 시간상으로 저게 어떻게……. 아니, 난 뭐지…….”
횡설수설하는 모델 후배를 보며 피식 웃던 차수연의 날카로운 눈매가 시작했던 곳으로 되돌아온 선우주에게 향했다.
“브라보!”
박수를 치는 그녀의 모습에 뉴블랙 멤버들도 신이 나서 같이 박수를 쳤다.
“역시 우주선이다.”
“우주 형 개미위키 직업란에 모델도 추가해야겠어여. 작곡가, 매니저, 대만 사람, 학원 원장, 요괴…….”
“형! 너무 잘했어요!”
마치 자기가 잘한 것처럼 방방 뛰며 기뻐하는 졸개들.
방금 전까지 진지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우주가 꺄르르 웃으면서 행복해했다.
“와.”
차수연이 혀를 내두르며 손뼉을 쳤다. 자신의 감정을 전할 길이 없어 답답했던 그녀가 엄지까지 들었다.
“진짜 대박이에요. 대박.”
“저 잘했나요?”
“잘한 수준이 아니라 이미 모델이신데?”
그 말에 졸개들이 환호했다.
“정말 진심으로 장담하는데, 르블랑 가서도 절대 꿇리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주변에서 깜짝 놀랄걸요. 내가 다 기대가 될 정도예요.”
“허어어어!”
칭찬을 들은 우주가 ‘졸개들아!’ 하면서 뛰어가자 멤버들이 ‘혀어엉!’ 하면서 달려갔다.
“칭찬받았다!”
“성공!”
아이들처럼 방방 뛰는 국민 아이돌을 바라보던 차수연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촬영 준비 다 끝났습니다!”
느닷없이 들려온 외침에 그들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아, 이거 뉴블랙 TV 촬영이었지.”
“맞다.”
그리고 피디가 말해 주는 오늘 촬영의 목표는…….
“뉴블랙 TV 오늘의 특집은 모델 분들에게 모델 워킹 배우기입니다!”
“…….”
“…….”
차수연이 눈을 깜빡였다.
‘가르쳐 줄 게 없는데……?’
막 세팅을 다 끝낸 제작진과 뉴블랙을 번갈아 보던 차수연이 미소를 지었다.
“저, 뉴블랙 분들.”
“네!”
“퇴근하시면 될 것 같아요.”
5인조 미청년과 제작진이 단체로 웃음을 터뜨렸다.
* * *
모델에게서 모델 워킹 배우기 특집!
“…은 여기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 버렸네요.”
우리의 침통한 표정에 두 모델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사태를 미리 예견한 우리 제작진이 촬영 전 연습하는 장면을 핸디캠으로 담아 둔 터였다.
“그럼 두 분에 대한 소개 없이 이대로 방송 녹화를 종료…….”
“아아아!”
“우리 소개 좀 해 줘요~!”
손을 파닥거리며 어필하는 모델들에게 카메라가 돌아간다.
우리가 웃으며 소개했다.
“네! 대한민국 모델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모델 선배님이죠. 클리시의 최연소 뮤즈! 포브스 선정 가장 수입이 높은 슈퍼모델 랭킹에 올랐던 모델계의 자랑……!”
“차수연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기대감에 눈을 반짝반짝이고 있는 주황색 머리카락의 미청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홍석 선배님입니다.”
“어째서…! 나도 경력 많은데…….”
“자기소개는 스스로 하는 것이 저희 뉴블랙 TV의 규칙입니다~!”
홍석이 우리 팬들을 향해 꾸벅 인사하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같이 있는 차수연 씨가 너무나 압도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홍석 선배 또한 모델계에서 유명했던 인물이었다.
단지 중간에 예능과 TV 쪽으로 커리어를 틀었을 뿐.
자기소개와 잡담을 나누며 오프닝 촬영을 끝낸 후.
“…….”
“…….”
짤막한 적막이 감돌면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저희 이제 뭐 할까요?”
“그러게요. 우주 씨는 더 이상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없고…….”
“파리 맛집이라도 알려 줄까?”
홍석의 말에 우리가 환히 웃었다.
“네!”
“일단 파리는 무조건 크로와상이야. 그거 아니면 갓 구운 바게트.”
파리에 자주 방문한 모델들로부터 현지 맛집과 꼭 먹어야 할 것들을 들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한참 남자, 차수연 씨가 우리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분들은 모델 워킹 배워 볼 생각 있어요?”
“있습니당!”
“저희도 배우고 싶어요!”
그리하여 당사자인 나는 빠지고, 멤버들이 모델 워킹을 배우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이분이 얼마나 내게 칭찬을 해 준 것인지 알게 됐다.
“아니지! 그거 아니지! 리혁 씨! 왼팔이랑 오른팔이랑 같이 움직이면 어떻게 해요? 호두까기 인형이에요?”
“…….”
“어… 리혁 씨 우세요?”
“……누, 눈에 잠깐 먼지가 들어갔을 뿐이에요.”
호두까기 인형 서리혁.
“지호 씨, 방금 포즈가 너무 과했어요. 실제 런웨이에서 저런 포즈를 취하면 이제 마지막 쇼가 되는 거죠.”
“우주 형한테는 칭찬만 해 주셨잖아요! 저도 해 주세요…!”
“칭찬은 잘하는 사람한테 해 주는 거예요.”
떼쟁이 왕지호.
“중현 씨는 너무 위풍당당하게 걷는데… 워킹은 행진이 아니에요. 행진은 마치라고 마치! 그건 워킹이 아니고 마치예요.”
“전 언제나 당당하게 걸어요. 저희 할아버지께 이 배추밭 워킹을 배웠습니다.”
당당한 김중현.
“비주 씨는 음…… 괜찮아요.”
“우주 형이랑 같이 런웨이에 서도 될 정도인가요?”
“음…….”
그나마 괜찮다는 평을 받은 비주.
차수연 씨의 말 한마디가 나올 때마다 동생들이 시무룩하게 모델의 꿈을 접었다.
본업에 장난이란 없다는 기조를 지닌 톱 모델이 엄격한 얼굴로 동생들에게 워킹 코칭을 하자 눈물의 강이 흘렀다.
“……모델 안 할래.”
“저희는 모델 쪽에 얼씬도 안 할 거예요.”
“우주 형한테는 칭찬 엄청 해 주셨으면서…….”
그리하여 10분 만에 동생들의 모델 워킹 배우기가 끝나 버린 후.
차수연 씨가 표정을 풀고 당황했다.
“어머…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했네. 나 이러다가 백만 안티 생기는 거 아니야? 연예계 생활 이제 막 빛을 보려던 차였는데….”
“괜찮아요.”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걱정하는 톱 모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희 팬들도 저희를 강하게 키우는 기조라서요. 응석이나 어리광 부리면 안 받아 주고…….”
“잡초 같은 아이돌, 그것이 바로 저희입니다. 후후후.”
그런 말을 하며 이제 또 뭘 할지 고민할 때.
홍석이 제안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우주한테 고급 스킬을 전수해 주는 건 어떠세요, 누나? 무대에서 쓸 만한 스킬들.”
“아! 그거 좋겠다.”
곧바로 일일 선생님이 모델학 교과서에서 봤던 포즈랑 턴들을 하나씩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익힐 때마다 바로바로 리액션이 돌아왔다.
“그렇지!”
“완벽해!”
“어머어머! 이걸 한 번에 했네? 진짜 모델 해 볼 생각 없어요? 아니, 이미 모델 수준이긴 하지만…….”
“우주야! 아니! 어디서 이런 인재가!”
흥분해서 우리 후배라며 내 손을 맞잡는 차수연 씨.
눈에서 불꽃이 이글거렸다.
“진심으로 모델 해 볼 생각 없니? 없어?”
“그…….”
“모델을 하면 전 세계적으로 성공이 가능할 것 같은데!”
“이미 세계적으로 잘 되고 있어서요….”
“아.”
그러네, 하면서 내 손을 놓는 차수연 씨가 연신 아쉽다는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진짜 우리 업계에 꼭 필요한 인재인데…….”
“하핫.”
내가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졸개들의 눈이 반짝였다.
“모델… 하면 돈 잘 버나요?”
“잘 되면 엄청 벌죠. 그게 어려운 거지만.”
“호오오오.”
벌써부터 핸드폰을 켜서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리혁이의 모습에 혀를 끌끌 찼다.
모델 할 생각 없냐고 꼬드기는 동생들을 무시하고는 녹화를 끝냈다.
“고기! 허강민 대표님이 구워 주신다는 고기 먹으러 가요!”
“KM 엔터’s 매지컬 뷔페!”
“아 쎄이 뷔! 유 쎄이 풰! 뷔!”
“풰!”
굶고 있는 맏형은 안중에도 없는 즐거운 모습들.
“어유. 꼴 보기 싫어….”
그때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나서 딸에게 줄 우주선 사인을 받아가던 차수연 씨가 말했다.
“아무튼 이번에 정말 기대가 되네요. 르블랑 측도 그렇고, 구경하러 온 셀럽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녀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정말 다들 깜짝 놀랄걸요.”
“진짜로 그랬으면 좋겠네요.”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일일 모델 특집 촬영을 끝낸 후.
우리는 파리로 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2위네요.”
“2위로 끝날 운명인가…….”
동생들과 함께 핸드폰을 바라보며 턱을 매만졌다.
[Billboard HOT 100]
1. Divine Rules - Cold Brown
2. METRO - The New Black
3주 연속 2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은 정말로 옳다.
2위에 처음 올랐을 때만 해도 너무 행복했는데, 4-2-2-2로 3연속 2위를 하니 묘하게 아쉽다고 할까.
물론 북미 차트를 다 씹어 먹고 있는 콜드 브라운의 노래와 이 정도로 비비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긴 하다. 힙합 가수들이 강세인 현 미국 음악계에서도 탑 오브 탑으로 꼽히는 래퍼니까.
그래도 1위 한 번 해 보면 어떻게…….
“뭔가 계기가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VMA 어워즈의 강렬한 임팩트 덕분에 초장에 4위로 뙇! 등장할 수 있었지만, 살짝 모자란 느낌이다.
로켓이 지구에서 벗어나기 위한 속도가 있다던데, 약간 그런 속도에서 2% 부족한 느낌. 추진력이 떨어지기 전에 어떤 계기가 생겨서 1위 한 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형들, 우리 도착했어요.”
“내릴까?”
인천공항 3층 출국장.
평소처럼 승강장에 내리려던 우리는 횡단보도 건너편의 인파를 보고 질겁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셔터가 번쩍이고 환호성이 들려왔다.
“크르르르륵!”
“캬아아아아악!”
평소보다 몇 배는 되는 인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하지만 일단은…….
“김중현 생일 축하해!”
“중현아아아아아! 논밭 샀다! 결혼해 줘어어어!”
“중현아!”
중현이의 생일 축하를 위해 수플레들이 모인 듯했다.
생일 축하를 외치는 팬들에게 중현이가 곰발바닥을 흔들듯 손을 흔들자 환호가 돌아왔다.
[오늘 생일임] 하는 티셔츠를 입은 우리 애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밝다.
“어이구!”
근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모르는 중년 아저씨와 가족들이 서 있었다.
아저씨가 밝은 얼굴로 물었다.
“얘들아! 어디 가니?”
“저희 패션 위크 참석하러 파리에 가요. 제가 이번에 패션쇼에서 런웨이에 서거든요.”
“패션 위크? 하하하하하하! 농담도 참!”
진짠데…….
그쪽 가족 중에 따님이 ‘아빠, 우리 모르는 사이야’ 하면서 중년인이 ‘어?’ 하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와아아아아아아!”
횡단보도가 초록불이 되면서 공항이 광란의 현장이 됐다.
경호원 수십여 명의 도움으로 공항을 빠져나가는데, 셔터를 터뜨리는 기자들이 다급하게 물었다.
“우주 씨! 런웨이에 선다는 레몬 엔터 측 보도자료가 나왔는데요! 사실입니까?”
“네!”
다른 기자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진짜예요? 진짜 런웨이?”
“네!”
이번에는 또 다른 기자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정말로 런웨이에 서는 거였습니까?!”
“진짜예요!”
“우주 씨! 정말 보도자료대로 세계 5대 브랜드인 르블랑의 패션쇼에 정말로 모델로서….”
“…….”
아니.
대체 다들 왜 안 믿어 주는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