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22화
같은 시각.
한국인들은 단체로 현실을 부정하는 중이었다.
“과장님, 그거 아세요? 이번에 뉴블랙 우주가 패션쇼 런웨이에 선대요.”
“넌 어디서 그런 찌라시를…….”
“아닌데? 진짜로 보도 나온 거예요.”
“뭐?”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하던 이가 상대가 내민 스마트폰을 보고 놀랐다.
‘진짜네?’
그것도 일반 패션쇼가 아니라 무려 르블랑의 패션쇼에 모델을 선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눈을 깜빡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저 얼굴만 잘생겼을 뿐.
대한민국 남자의 다수가 ‘내가 선우주보다 옷을 잘 입는 것 같다’라고 해도 반박을 받지 않는 것이 현 상황이었다. 그만큼 우주의 패션이 독특함을 떠나 괴악하기 때문이었다.
패션 감각을 수치로 환산한다면 마이너스로 표시될 만한 멤버가 패션 위크에 모델로 선다?
모두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진짜야?”
“진짜지 않을까. 소속사가 전 국민 몰카하는 것도 아니고. 설마 이런 걸로 뻥 치고 그러지 않겠어?”
“아니, 얼마나 패션 감각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몰카란 말까지 나와.”
여기저기서 웃음이 감돌았다.
처음에는 ‘진짜로? 진짜?’ 하며 현실을 부정하던 한국인들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설 만하긴 해. 애가 모델 같긴 하잖아.”
“비율도 좋고.”
“옷을 이상하게 입어서 그렇지. 생긴 것만 보면 모델 뺨치긴 하잖아. 내가 디자이너여도 데려간다. 솔직히 저런 아이템이 어디 있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어가고 있는 인기 보이밴드의 가수가 모델 뺨치는 몸매까지 지니고 있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욕심을 낼 만한 콜라보 아이템 아니던가.
다만, 디자이너의 취향에 대해선 좀 의문이 있었다.
‘그냥 얼굴만 잘생겼지, 패션 쪽으론 완전 허위 매물…….’
선우주의 일상 패션만 봐도 백스텝할 텐데, 그를 초청할 생각을 한 브랜드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어떻게 이 행사가 성사가 된 걸까.
궁금한 네티즌들이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자 수플레들과 짭플레들이 올린 정보글들이 보였다.
[이번에 우주가 르블랑 패션쇼에 서게 된 이유]
수석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 인터뷰 中
“이번 시즌 준비를 하면서 영감을 얻을 곳이 필요했는데, 과거 방문했던 한국은 바로 그런 영감의 원천이었다. 동대문 등지에서 보았던 한국 사람들의 패션은 정말로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운명처럼 평창 홍보 영상에 등장한 우주를 보게 되었다.”
..(중략)
“우주와 나는 끊임없는 교감을 나누며 이번 패션쇼를 준비했다. 부디 내가 만든 옷이 그의 마음에 들길 바랄 뿐이다.”
-요약: 꽃무늬 영혼의 듀오 탄생
-끼리끼리 만난 거였구나 아하.. 완벽히 이해했어!
-참고로 저분이 말한 아름다운 동대문 패션은 어르신들 입고 다니는 복대나 김장패션 같은 거 말하는 거임
-취향이 독특하시네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아시아 시장 해먹으려고 우주 부른 거 아닌가?? 르블랑 요새 아시아 시장 공 엄청 들인담서
-ㅇㅇ 그것도 있을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얘들아 저사람이 말하는 꽃무니는 우주 꽃무니랑 다른 거야ㅋㅋㅋ
-(지미 로빈스가 디자인한 옷을 입은 우주 사진.jpg)
-뭐야 이건 아예 다른 옷이자나요
댓글창을 쭉 훑던 머글들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된 거구나!’
하지만 그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인터뷰와는 상관없는 내용이었다.
‘아시아 시장에 공을 들여서 그런 거구나. 그럼 그렇지. 뉴블랙의 영향력이 필요했던 거야.’
현재 아시아권 최고의 스타로 꼽히는 뉴블랙이 아니던가.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르블랑이 우주를 모델로 세워서 뭔가 해 보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대중들은 그렇게 믿었다.
‘우주의 패션을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했을 리가 없지.’
그만큼 불신을 주고 있는 선우주의 패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자 파리 출국하는 선우주 패션 상태]
(저승사자처럼 오버핏으로 입은 검은 옷과 널찍한 챙 모자를 쓴 선우주.jpg)
염라대왕님.. 한놈 데리러 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러고 진짜 패션쇼 가냐고 물어보니까 억울해하는 게 더 웃김
-오빠ㅠㅠㅠㅠㅠ 아이돌 생활 4년차면 이제 옷 좀 잘입고 다닐때도 됐잖아요ㅠㅠ
-아이돌 짬을 콧구멍으로 드신 선우주씨(25세)
-아니 요새 잘 입고 다녔자너.. 왜 갑자기 회귀햇어
-어제 와이앱에서 밝힌 비하인드 “패션 위크 가는 날인 만큼 하루 정도 자유를 얻기로 했다”
-자유 압수
저승사자처럼 옷을 펄럭이며 걸어가는 선우주의 사진에 대중들이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봐도 돈 때문에 초청된 거다. 확실해.’
* * *
“왜 이렇게 다들 안 믿어 주는 거지?”
“우주 형.”
막내가 나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형을 믿을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든 형이 어디로 가자고 하거나 뭘 하자고 하면 그렇게 할 거구, 특히나 위기 상황이라면 무조건 형을 따라서 움직일 거예요.”
“그런데…?”
“그런데 옷은 이야기가 다르니까. 형은….”
귀를 가져다 대라는 듯 지호가 손끝을 까딱했다.
귓가에 뜨끈한 바람이 불어왔다.
“형은 옷을 개 못 입어요.”
“…….”
“진짜 그냥 못 입는 것도 아니고… 아야야야! 아야야!”
“이걸 그냥…….”
엄살을 부리는 막내를 향해 눈을 흘길 때, 비주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형 아무것도 안 먹어도 정말 괜찮겠어요? 지금 계속 빈속이잖아요.”
“내일까지만 참으면 돼.”
뱃속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요동친다.
기내식을 듬뿍 먹은 멤버들과 달리 나는 물만 최소한으로 홀짝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며칠 동안 굶으니 뱃가죽이 훅 꺼지는 느낌이다.
밤만 되면 눈앞에 따끈한 라면 국물이 아른거리고, 숙소 부엌에서 자기들끼리 소고기 구워 먹는 동생들이 왠지 부럽고. 할머니랑 영상통화하면서 자꾸 서럽고 눈물이 나고.
꼬르르르륵-
천둥처럼 배가 한 번 더 요동쳤다.
“…….”
리혁이마저 짠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주섬주섬 손가방을 연 리혁이가 견과류를 꺼냈다.
“뭐… 호두나 땅콩이라도 먹어 볼래요?”
“고맙긴 한데 그건 또 칼로리가 높아서 안 돼…….”
“진짜 이러다 또 쓰러지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나 진짜 그런 거 또 경험하긴 싫어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리혁이도 잘 알고 있었다.
모델 쪽은 체형이 엄청 중요하다.
나야 카메오 출연을 하는 것이니 그 정도로 엄격하진 않지만, 유명 톱 모델도 전날 조금 부어 보인다는 이유로 쇼 출연을 캔슬시키는 업계 아니던가.
나도 그 기준에 좀 맞출 필요가 있었다.
“괜찮아.”
긍정적인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참고 파리 음식 싹 다 달린다.”
“쇼 끝나고 바로 일본으로 출국인데요.”
“…….”
중현이의 말에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비주가 중현이의 등짝을 찰싹찰싹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분 보충. 수분 보충….”
눈물이 빠져나오는 만큼 다시 생수를 들어 홀짝였다.
그동안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어느덧 파리의 드골 공항에 진입하고 있었다.
여전히 춥고 배고프긴 했지만, 파리 시 외곽의 풍광을 바라보니 가슴이 살짝 설레는 느낌이다.
비행기가 서서히 착륙한 후, 매니저들과 현지 경호원들의 도움으로 프랑스에 입국한 우리는 신세계를 보았다.
[Bonjour, The New Black!]
[뉴블랙의 입국을 환영하고 어서 나랑 결혼한다]
[수플레 EU 연합회가 뉴블랙을 몹시 환영]
EU 회의라도 열린 듯한 기분이었다. 곳곳에서 유럽 나라들의 깃발이 흩날리고, 환호성이 쏟아졌다.
“크르르르르르륵!”
“와아아아아아아아!”
올해 유럽 투어를 위해 방문했을 때만 해도 수백 명 정도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10배는 되는 인원이 환호를 하고 있었다.
공항 밖에도 수천 명이 진을 치고 있다는 현지 관계자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메트로가 나오면서 유럽의 팬들이 급속도로 늘었거든요. 프랑스 현지에서도 굉장히 인기입니다!」
우리가 입국하기 전부터 난리가 났다나.
공항 보안을 담당하는 프랑스 헌병군의 항공수송헌병대가 출동해서 이중삼중으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럼 이동하시죠.」
파란색 게리슨 모를 쓴 헌병대원과 우리 측 경호원, 스탭들의 도움 하에 겨우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I love you!”
“중현이 생일 축하한다! 오백 살까지 살아라!”
“생일빵 많이 먹어라! 프랑스 빵순이들의 나라다!”
유럽의 수플레들이 거대하게 출렁이면서 한국어로 ‘생일 축하합니다~’ 하며 노래를 부르는 광경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거기에 현지 취재진까지 우리 이름을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정말 겨우 통과했다. 겨우.
“허억… 허어…….”
“허이고.”
마치 거대한 두꺼비가 우리를 입에 우물우물 굴리다가 퉤! 하고 공항 바깥으로 뱉어 낸 느낌이다.
여기저기 짜부되고 부딪치기를 반복하고 나니 온몸에 땀이 맺혀 있었다.
“비주는?”
“저 여기 있어요.”
비주가 가방을 들어서 중현이의 손목에 연결된 미아 방지용 끈을 보여 주었다.
중간에 고립되었던 스탭들까지 포함해서 버스에 탑승한 인원들을 확인하고는 호텔로 출발했다.
현지 시각으로는 낮이었다.
땀에 푹 젖어서 울상을 짓던 리혁이가 말했다.
“인터뷰고 뭐고 할 시간도 없었어요.”
“그러게.”
“프랑스어 공부 엄청 하고 왔는데, 나 이번에 프랑스어 강좌도 수강했단 말이에요.”
“프랑스어로 ‘나는 멤버들을 사랑한다’ 해 봐.”
“…….”
“공부 안 했네~ 모르는 거 봐.”
“저 형 프랑스어 공부 안 했네~”
우리가 리혁이를 놀리는 동안 석환 형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아무래도 메트로가 우리 예상보다 더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영어 곡을 낸 효과가 있어. 라이트한 팬층이 많이 유입된 거 같아.”
그야말로 글로벌한 효자곡 메트로였다.
그때, 버스를 운전하던 프랑스인 운전기사가 물었다.
「뒤에서 모르는 차량들이 자꾸 따라오는 것 같은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
「예. 스토커예요.」
「아…….」
석환 형의 말에 운전기사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살짝 돌려 창문을 바라보자 우리를 따라 달리는 여덟 혹은 아홉가량의 차량이 보였다.
“사생도 글로벌해졌네.”
버스에 쓴웃음이 흘렀다.
사람이 어떻게 좋은 것만 취할 수 있나. 부작용도 당연히 있어야지.
그래도 이런 메트로의 성공 덕분에 재미있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패션 브랜드 르블랑 측에서 제공해 준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
다섯 명이 묵어도 충분할 만큼 거대한 호텔방에 들어서자, 테이블 위에 놓인 고급스러운 봉투가 우릴 맞이했다.
[친애하는 뉴블랙 귀하]
우리 호텔에 묵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호텔 측에서 준비한 자그마한 선물 세트가 있었다.
그리고.
“허어어어어!”
창가 쪽으로 간 막내가 소리를 질렀다.
“형들! 이거 봐여!”
“뭔데?”
“르블랑에서 선물 보냈어여-!”
각자 이름이 적힌 상자 속에 구두, 향수, 옷들이 가득했다. 졸개들의 행복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패션쇼에 서는 나와 참석자인 동생들에게 보내 주는 브랜드 측 선물이었다.
옷을 꺼내서 자기 몸에 대어 보던 비주가 환히 웃었다.
“우와, 너무 예뻐요.”
“그러네. 비주야, 네 옷 진짜 예쁘다.”
“…….”
“왜 그래?”
“아, 아니에요.”
옷이 예쁘다는 칭찬을 하자마자 자기 옷을 조심스레 내려놓는 비주였다.
“지금 안 입게?”
“네. 나중에 입어 보려고요.”
“…….”
에헤헤 웃으면서 시선을 피하는 비주를 바라보다가 주변에서 자기 옷을 확인하는 졸개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디 한번 실험해 볼까.
“중현아.”
“네.”
“너 지금 들고 있는 그 옷 되게 괜찮다.”
“…….”
스르르륵.
중현이의 손에서 옷이 빠져나갔다.
“리혁이랑 지호도 옷 진짜 예쁘네.”
“…….”
“…….”
털썩.
손에서 옷을 떨어뜨리는 졸개들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것들을 정말…….
“어쩌다가 내 패션이 이런 취급을 받게 됐지.”
“말은 똑바로 해야죠. 당신의 패션은 한 번도 고평가를 받은 적이 없어요.”
“야!”
* * *
간단하게 요거트 등으로 끼니를 챙긴 후.
멤버들과 함께 내일 르블랑의 패션쇼가 열리는 파리 시의 유명 미술관으로 향했다.
리혁이가 설명했다.
“패션 위크는 파리 시에서 거의 국가적인 행사 취급이래요. 그래서 이맘때 되면 유명한 장소를 개방하고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오오.”
“올해도 루브르, 그랑팔레, 에펠탑 근처를 다 개방한다던데요. 콩코드 광장에도 건물 설치하고.”
그만큼 파리에서 패션 위크란 행사가 중요한 모양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패션 위크를 위해 경복궁이나 국립박물관, 광화문 광장을 통으로 쓴다는 거니까.
미술관 입구로 다가서자 경호원들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ID?”
“Here.”
우리 매니저들이 출입증을 보여 주자 문이 열렸다.
“우와아…….”
채광이 좋은 유리 천장에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건물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엄청 넓은데?”
“와, 미술관이 아니라 박물관 같아요.”
동생들과 소곤소곤하며 감탄했다.
진짜 어디 궁전에 들어온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널찍한 복도.
프랑스어로 소리 지르며 행거를 미는 사람들, 모델이나 에이전시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 장비를 최종적으로 점검하느라 바쁜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우릴 불렀다.
「여기입니다!」
깔끔하게 옷을 갖춰 입은 중동계 프랑스인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저번에 패션 위크 건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 미팅을 했던 비서 사이프 씨였다. 그가 밝게 웃으며 우릴 안내했다.
「얼른 모시겠습니다. 안 그래도 수석 디자이너님이 언제 오시냐고 분 단위로 여쭤보고 계셨거든요. 얼른 우주 씨와 직접 만나고 싶다고.」
「정말요? 저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콩닥. 콩닥. 콩다악. 닥순… 닥순….
안내를 따라갈수록 심장의 울림이 느껴진다. 마치 영혼의 공명을 느끼듯이… 패션의 동반자에 대해 심장이 반응하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깊숙이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허어어어어!」
나와 비슷한 꽃무늬 옷을 입고 있는 젊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도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지… 지미!」
「썬!」
서로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격하게 악수를 나누었다.
「이게 누구십니까! 패션의 선구자이자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 님 아니십니까!」
「그러는 그대는 세계 최고의 가수이자 패션 아이콘 선우주!」
「하하하하하!」
「하하하핫!」
곁에서 바라보는 동생들의 눈빛이 차게 식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인 것 같다.
“선우주가 두 명이 됐네.”
“쉿, 조용히 해요. 요새는 외국에서도 한국어 꽤 알아듣는단 말이에요. 틴스피릿이 유럽에서 시발 했다가 들킬 뻔했대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는지 나와 손을 맞잡고 있던 지미 로빈스의 시선이 돌아갔다.
「저기는…….」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 님이 보고 계신 저 아이들은 바로 제 멤버들입니다. 차례대로 비, 중, 리, 호. 의전 서열이 아닌 권력 서열대로 하면 비, 중, 호, 리.」
「만나서 반가워요. 그대들이 바로 썬의 Zol-gae들이로군요!」
자료조사는 열심히 하신 것 같은데, ‘Zol-gae’라는 말의 뜻을 정확히는 모르시는 것 같다.
동생들과 디자이너가 사이좋게 인사를 나눈 후.
디자이너와 내가 서로를 향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나의 패션 세계를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썬 그대 같은 인재가 나타나서 나는 너무 기쁩니다. 마치 달밤의 공원 벤치에 앉아 로마네 콩티를 들이켜는 기분이군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 님의 패션에 도움이 될 수 있어 영광이에요!」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너무 행복하네요!」
크으, 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던 지미 로빈스가 행복한 얼굴로 손뼉을 짝짝 쳤다.
「썬, 그대를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옷들을 준비했는지 몰라요.」
「허어어어!」
「내가 미리 만들어 둔 의상들을 보여 주고 싶군요!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서 쇼에 오르도록 해요!」
지미 로빈스가 손뼉을 치며 멀찍이 장막을 향해 뭐라고 외치자, 장막이 펼쳐지면서 모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입을 멍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 * *
뉴블랙 멤버들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저게…….”
“저게 뭐예요?”
1번 후보로 나오고 있는 남자 모델.
늘씬한 체구의 모델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고 있는데, 화려한 공작새 같은 의상을 입고 있었다.
아니. 화려한 공작새 같은… 것이 아니었다.
“공작새?”
“저건 찐 공작새인데여…?”
플라밍고처럼 화려한 꽃무늬 의상을 입은 남자의 뒤로 깃털 날개가 달려 있는 기묘한 의상이었다.
파리 패션 위크가 아니라 안드로메다 패션 위크에 나올 법한 느낌.
삼두육비의 외계인들이 ‘이번 컬렉션 죽여주는데?’ 하면서 촉수를 흔들며 기뻐할 만한 패션이었다.
‘저건 절대 안 돼.’
적어도 일반인의 감성에 와 닿는 패션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맏형의 위신을 위해서라도 허락할 수 없는 패션이었다.
멤버들의 시선이 얼빠진 표정의 수학귀신에게 향했다.
“팀장님.”
“팀장님, 저거…….”
그들의 표정을 바라본 윤석환 팀장이 미소를 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아무리 우주라고 해도 저런 건 안 골라…….”
“그렇겠죠?”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 형이야.’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일에 관해서라면 철두철미하고 완벽한 맏형 아니던가.
그들의 리더가 아무리 눈이 삐었다고 해도, 저런 옷을 고를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멤버들이 맏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형, 저건…….”
“허어어어어!”
“형?”
“허어어어어!”
입가에 손을 올린 우주가 왈칵! 하고 눈물을 흘릴 기세로 감격하고 있었다.
‘망했다.’
‘큰일이야. 꽃무늬 옷만 보면 IQ가 한 자리 수가 된다, 이 인간.’
‘그냥 형한테 저거 입으라고 할까. 그럼 마지막 패션쇼가 될 텐데…….’
멤버들의 얼굴에 근심이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