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23화
꽃으로 된 날개를 흔들며 걸어오는 모델의 모습에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큰일이다.
「큰일이로군요….」
침음성을 흘리는 내게 지미 로빈스 님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썬?」
「지미. 이건 정말 큰일이에요.」
곁에 서 있던 졸개들이 바로 그거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생각이 일치한 것이 분명했다.
「오, 지미…….」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1번부터 이렇게 강력한 후보를 내어 놓으면 어떡해요? 제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게 된단 말이에요.」
「썬…….」
「어떡하죠? 1번부터 너무 마음에 드는데.」
지미의 뒤편에 서 있던 졸개들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뭐라고 눈빛으로 전달하는데 수신이 잘 안 되는 느낌이다.
지미가 한숨을 쉬었다.
「후, 나도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이렇게 강력한 옷을 1번으로 내보낸다면 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만큼 멋진 옷들을 준비했으니까.」
「세상에……!」
내가 입을 틀어막았다.
「저것보다 더 멋진 옷들이 존재한다는 건가요?」
「물론.」
사상 최고의 패션 천재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고독한 천재 같은 미소였다.
「내가 누구입니까? 나 지미 로빈스입니다. 자신이 없었다면 나의 뮤즈를 부르지 않았을 거예요.」
「지미. 오 지미!」
「썬!」
「지미, 당신은 패션 업계의 전설로 기억될 거예요!」
「썬, 그대도 오늘 패션쇼의 전설이 될 거랍니다!」
리혁이가 이마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게 보였다.
「그럼….」
지미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1번을 보았으니 2번부터 쭉 감상해 봐요.」
곧이어 나온 2번 의상을 입은 모델도 만만치 않았다. 유럽 왕실 초상화에 나올 법한 펑퍼짐한 옷에 꽃장식이 가득했다.
모델이 쓰고 있는 멋들어진 머리띠에도 관심이 간다.
「저 머리의 더듬이는 무슨 뜻인가요? 감히 제가 상상할 수도 없는 심오한 뜻이겠죠?」
「꽃의 수술과 암술입니다.」
「역시! 그런 깊고 고귀한 뜻이…….」
1번의 플라밍고 의상, 2번의 수술암술 의상.
무엇 하나 선택하기 힘든 난제였다.
오프닝 3번부터 시작해서 클로징의 7번까지 쭉 보고 났을 때, 지미 로빈스가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물었다.
「그대가 선택할 시간이에요.」
「후우.」
이건 마치 후라이드냐 양념이냐를 두고 싸우는 것과 같았다.
평생 하나를 입는다면 무엇을 입어야 할까.
아니다.
이건 평생 하나가 아니고,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기회다. 지미와 나의 패션 철학을 전 세계에 퍼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무래도 역시…….」
1번이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비주가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응?”
“자, 잠깐 기다려 주세요.”
동생들과 속닥거리던 비주가 손을 들었다. 어찌나 급한지 초조한 얼굴로 깡총깡총 뛸 정도였다.
“왜 그래, 비주야?”
“제1차 비주 협약에 의거하여 뉴블랙 총회 소집을 제안합니다! 찬성하시는 분?”
“찬성.”
“이건 찬성이에요.”
“찬성합니당.”
비주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적 인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총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어째서…….”
“미안해요. 형.”
비주가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내 시선을 회피했다.
“하지만 패션쇼에 설 의상을 형 마음대로 고르는 건 두고 볼 수 없었어요.”
“나도 잘 고를 수 있는데…….”
살짝 슬픈 기분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주 협약을 깰 순 없지.
멤버가 어떠한 결정을 하려고 할 때, 심각한 결함이나 오류가 보인다면 멤버들이 개입한다는 것이 바로 저 1차 비주 협약의 내용이었다.
다수결에 의하여 총회를 소집하고 멤버는 그 결정에 따르도록 한다.
“후우.”
심란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자 지미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썬?」
「멤버들이 제 옷을 골라 주고 싶다고 하네요.」
「음, 패션의 자기 결정권을 중시하는 입장이지만… 썬이 좋다면 나도 상관없습니다.」
「멤버들의 의견을 존중하려고요. 때로는 패션에 무지한 사람들의 시선도 필요하니까요.」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졸개들의 눈을 믿기로 했다.
이런 부분까지 고집 부릴 생각은 없었다.
“1번 골라 주면 솔로 곡 하나 써 드림.”
“……!”
“저 악마의 혓바닥……!”
“혓바닥의 악마!”
졸개들 사이에서 파문이 일었다. 흔들리는 졸개들의 모습에 곧바로 매니저 형들에게 격리 당했다.
“놔 주시면 대표님께 보너스 인상 제안해 드릴게요.”
“대표님께서 이미 주신다고 했어.”
“그럼 원하는 걸 말씀해 주세요. 램프의 요정처럼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 뭐든지.”
“결혼.”
“다른 소원은 없나요?”
씁쓸해하는 민기 형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거나 탈출 실패.
나를 둘러싼 매니저들의 팔과 다리 틈 사이로 졸개들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입모양으로 일, 일, 일, 일 하면서 중얼중얼했지만, 안타깝게도 동생들이 내게 등을 돌려 버렸다.
그렇게 속닥속닥하는 회의가 끝난 후.
“저희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후우.”
“오프닝 5번, 클로징 4번 의상으로 고르겠어요.”
어떻게 골라도 제일 안 예쁜 옷들로만 골랐다.
멤버들이 제출한 총회 결의안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미도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나름대로 무난한 선택이라며 칭찬했다.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좋은 옷들로 골랐군요. 셀러브리티로서의 뉴블랙을 생각하면 좋은 선택지죠.」
「나머지 옷들은 그럼 어떻게 되나요?」
「다른 모델들이 입을 거예요.」
그 말을 하던 지미가 비서를 불러서 지시를 내렸다.
내가 입을 수 있게 오프닝 5번과 클로징 4번 의상을 가져오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상을 가져왔다.
지미가 내게 옷을 대어 보면서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것도 잘 어울리는군요.」
「세계 최고의 천재인 지미의 솜씨 덕분이죠. 옷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옷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멋진 말이군요. 우선, 한 번 입고 워킹을 해 보겠어요?」
「네.」
휘하 디자이너들의 도움을 받아 의상을 입고 런웨이에 섰다.
“우와아아…….”
“뭐야. 왜 잘 어울려?”
동생들과 스탭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보는 것을 보니 의상이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듯했다.
특히나 비주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폰카로 나를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반응이 격렬한 사람이 있었으니….
“BRAVO!!!!!!”
자리에 앉아 있다가 점프하듯이 일어난 지미 로빈스였다.
워킹을 끝내자마자 지미가 달려와 내 손을 붙잡았다.
「썬! 당신은 천재입니다! 워킹의 천재! 얼굴 천재!」
「천재한테 천재 소리를 들으니 부끄럽네요. 진정한 천재는 이 옷을 만들어 낸 지미 로빈스 님 아니겠어요?」
「세상에, 카메오로 출연한 유명인이 이 정도로 워킹을 잘하는 건 처음 보네요. 그야말로 브라보! 브라바! 브라바! 썬이 보내 준 영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동입니다!」
알아듣기도 힘들 만큼 빠른 영어가 속사포처럼 나왔다. Amazing, Gorgeous 등으로 된 낱말들의 대포가 내게 쏟아지는 느낌.
패션쇼 스탭들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어라? 얘 왜 잘해?’ 같은 느낌으로 기뻐하는 듯하다고 할까. 오프닝과 엔딩에 설 카메오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을 위해 몇 달 동안 연습했다고 하니 지미의 얼굴에 환희가 감돌았다.
「나를 위해서 매일 밤낮을…….」
「밤낮까진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썬. 방금의 워킹에서 나는 썬이 연습한 세월을 느낄 수 있었어요. 몇 달간 매일 밤을 새워야 가능한 워킹이었습니다.」
좋은 쪽으로 곡해하는 모습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매일 새벽 연습을 했죠.」
「역시!」
새벽 3시쯤에 30분씩 워킹 연습한 것이지만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이것 때문에 우리가 굉장히 많은 회의를 했거든요. 현장에서 썬의 워킹이 부족하다면 그것을 어떤 식으로 보완해야 할지 말입니다. 저번에 보내 준 연습 영상에서도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지미가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이제 그러면 여기에 첨가물 한 스푼만 추가를 하면 되겠군요.」
「첨가물이요?」
「썬의 워킹을 더 근사하게 만들어 줄 요소들을 몇 가지 준비했거든요. 우선 대표적으로… 사이프, 줄리안 좀 불러 와.」
「네, 수석님.」
줄리안은 또 누구지?
동생들과 내가 호기심을 보일 때, 곧바로 장막 뒤에서 런웨이에 한 청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누구야?’
‘모르겠는데요.’
모델 느낌이 나는 인물은 아니었다.
모델이라기엔 살짝 작아 보이는 키에 비율도 특별한 편이 아니고, 뭔가 어슬렁어슬렁 워킹을 해서 걸어오는 인물.
포마드를 해서 올린 금발 머리에 수더분한 인상이다.
“……?”
“……?”
워킹을 마친 이가 어슬렁~ 어슬렁~ 하면서 되돌아갔다.
초짜인 내가 봐도 저것보단 잘하겠다 싶은 워킹을 선보이는 이가 들어가자, 지미가 말했다.
「줄리안 배너.」
「…가 누구인데요?」
「크리스 배너의 아들이에요.」
「아!」
크리스 배너라면 미국의 유명한 배우 중 하나였다. 세기의 미남에서 지금은 미중년으로 이름을 떨치는 인물.
지미가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로 웃었다.
「저 친구 아버지가 우리 브랜드 캠페인과 연관이 깊거든요. 저 아이의 대모(godmother)도 내 업계 선배이고. 회장님과 크리스 배너가 친구기도 해서 이래저래 어쩔 수 없이 쇼에 세워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소위 말하는 금수저 모델.
디자이너의 설명을 들어 보니 서구권 셀럽들이 자녀들한테 ‘어… 얘 뭐라도 시켜야 하는데…’ 하고 고민하다가 뭐라도 시켜 주기 위해 모델로 만드는 게 트렌드인 듯했다.
뭐. 따지고 보면 셀럽으로서 선 나도 큰 차이는 없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지미 로빈스가 웃으며 엄지를 들었다.
「저래 보여도 이런 데 쓸모가 있죠. 내일 패션 위크에서 썬을 더 빛나게 해 줄 겁니다.」
동생들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바로 선녀로 만들어 주는 거군요.”
“그런 계략이…….”
감탄하는 동생들과 눈빛을 교환하며 지미 로빈스가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프랑스의 패션 위크! 하면서 왠지 모르게 거리감이 들고 그랬던 차였는데, 이런 모습들을 보니 친근하다.
역시 사람 사는 건 어느 동네든 비슷한 모양이다.
* * *
파리 패션 위크!
가장 권위 있는 4대 패션 위크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파리.
이곳의 패션 위크가 3일 차에 접어들면서 도시는 점점 더 달아오르고 있었다.
“메이슨! 메이슨!”
“이쪽입니다! 여기 봐 주세요!”
“메이스으으은!”
“저기 맨디 스파이스다! 맨디 스파이스!”
패션쇼에 참석하기로 한 셀러브리티들이 등장할 때마다 벌떼처럼 달려든 포토그래퍼들이 플래시를 번쩍번쩍! 터뜨리고.
다양한 곳에서 열리는 프로모션과 패션쇼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클럽. 박물관. 갤러리 등등.
“저는 입술이 항상 건조한 편이에요. 그래서 이곳의 립스틱을 가장 선호하죠. 모이스처라이징 효과가 뛰어나거든요.”
유명 모델이 디자이너의 허리에 팔을 두른 채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립스틱을 홍보하고.
“그녀의 패션은 정말 최고예요. 그녀는 패션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의 이분법이란 문법을 파괴했죠.”
패션쇼 디자이너를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셀럽의 인터뷰.
“글쎄요. 오늘 쇼가 그다지 임팩트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의 유명세에 비하면 아쉬운 결과물이군요.”
꼬장꼬장한 미소를 지으며 패션쇼에 대해 혹평하는 유명 칼럼니스트.
그리고 캐스팅되기 위해 발이 닳도록 뛰는 모델들까지.
그야말로 도시가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네! 모드 매거진 구독자 여러분!”
파리 시내를 배경으로 패션 매거진의 에디터가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로 3일 차! 전 세계 패션 업계와 할리우드의 최상류 인사들이 이곳 빛의 도시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도시 전체가 활기찬 분위기에 전염된 것 같네요!”
그녀가 걸음을 옮기면서 카메라가 따라붙었다.
파리 시의 유명 미술관.
웅장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한편, 카메라에 잡히는 것은 어마어마한 수의 인파였다.
“오늘 이곳에선 가장 중요한 패션쇼 중 하나인 르블랑의 쇼가 열리는데요! 현 시각 어마어마한 인파가 집결했습니다. 파리 패션쇼 역사상 최초로 있는 일입니다.”
수천여 명이 한데 집결한 광경은 일찍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에디터가 다가가 아무나 붙잡았다.
“질문 한 가지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지금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요?”
“뉴블랙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쪽 뺨에 태극기 프린팅을 한 팬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수플레 깃발.
“뉴블랙이요?”
“네! 오늘 우주가 패션쇼 무대에 서거든요. 들어갈 수는 없지만 멀찍이서 응원이라도 하려고요!”
“인기가 어마어마하네요. 뉴블랙이면 Metro? 그 그룹이 맞나요?”
“네!”
메트로~ 메트로~ 하면서 춤을 추는 팬의 움직임에 주변에 있는 다른 팬들도 같이 춤을 추며 화답했다.
그러는 한편.
현장의 경호원들과 포토그래퍼들은 경악하면서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Oh my god…….”
대체 누구이길래 이 정도로 광적인 반응이란 말인가.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뉴블랙! 뉴블랙!”
“와아아아아아!”
“수플레! 강하다!”
자기들끼리 두둥탁 두둥탁 박수를 치면서 응원까지 하는 모습에 현장 경호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현장에 방문한 셀럽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명 배우가 선글라스를 들어 인파를 확인하고, 어느 가수는 ‘와우’ 하며 웃음을 터뜨리고.
“뭐야? 여기 무슨 일이야?”
“뉴블랙 때문에 모인 인파라는데요.”
“뉴블랙이면 이번에 VMA 걔네? 워우…….”
포토그래퍼 앞에서 포즈를 취하던 할리우드의 셀럽들이 혀를 내둘렀다.
‘미국에서만 뜨는 게 아니구만.’
요즘 들어 여기저기서 뉴블랙, 뉴블랙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럽에도 이 정도의 열성 팬덤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따 만나면 사진이나 같이 찍자고 해야지.’
‘말 좀 걸을까.’
‘친해 둬서 나쁠 게 없다. SNS 인증샷 올리면 좋아요가 폭발할 거야.’
뉴블랙을 아직 만나지 못했던 이들이나 만났던 이들 모두 만남을 고대할 정도였다.
저 정도로 열성적인 팬덤을 지닌 이들과는 친하게 지내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러는 동안 리무진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
차량에서 내린 그림 같은 미모의 남자.
그가 밖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에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뭐, 뭐야.’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환호성에 당황한 한류 스타 이견우가 다시금 차량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이미 문이 닫힌 뒤였다.
부아아앙-
멀어지는 리무진을 향해 어정쩡하게 손을 뻗던 한류배우에게 환호성이 쏟아졌다.
“저 사람이다! 우주가 추첨해서 소감에서 불러 준 사람이다!”
“저 자가 켠우 리다!”
“켠우 리! 나의 사랑을 당신의 절친 뉴블랙에게 전해 줘요!”
여기저기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당황한 한류 스타가 어색하게 ‘때… 땡큐…!’ 하면서 빠르게 도망쳤다.
‘뉴블랙 애들이랑 멀찍이 앉아야지.’
어느 스타가 성공하지 못할 결심을 하고 있을 때였다.
경호원들이 귀에 꽂고 있는 리시버에서 본부의 메시지가 들렸다.
-뉴블랙 이동 중. 스탠바이.
“확인.”
경호원들이 심호흡을 하며 펜스 너머의 과격한 팬들을 바라보았다.
빛이 나는 요상한 몽둥이까지 들고 있어서 위협적인 팬들. 그들에게 물러나라며 손짓을 할 때였다.
“크르르르르륵!”
“캬아아아아아아악!”
고블린처럼 괴성을 지르는 팬들의 모습에 경호원들의 긴장이 팽팽해질 때!
미술관 앞에 도착한 다인승 리무진의 문이 열렸다.
그러자.
“와아아아아~”
귀신같이 함성이 귀여워지기 시작했다.
‘뭐지.’
‘뭐야. 이 변화.’
‘고블린이 요정이 됐어?’
당황한 경호원들이 눈을 끔뻑였다.
고블린처럼 괴성을 질렀던 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살랑살랑 웃으며 응원봉을 귀엽게 흔들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내린 4인조.
안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우주와 달리 이번 패션쇼에 손님으로 참석하는 뉴블랙의 자칭 귀요미즈, 타칭 졸개즈였다.
“I love youuuuuu!!!”
“사랑해! 얘들아!”
귀엽게 방방 뛰며 외치는 팬들에게 뉴블랙도 멈춰 서서 열심히 손을 흔들어 준다.
중현이 라이온킹의 심바처럼 지호를 번쩍 들어 올리자, 지호가 멀찍이 팬들을 향해 손키스를 날렸다.
“와아아아아~!”
“왕지호 너의 프랑스 이름은 조르귀탱~!”
리혁과 비주도 열심히 깡총깡총 점프하며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목청 높여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포토그래퍼들에게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곤 입장했다.
그러는 동안 경호원들은 멍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뭐지.’
수플레들의 얼굴에서 일어나는 표정 변화 때문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로 친절했던 표정이 지금은 크르르륵! 하면서 들끓고 있었다.
“봤어? 개 귀여워! 싯-팔!”
“Jonna 귀엽다!”
“뉴블랙의 미모는 전설이다.”
흥분해서 크르르륵! 하는 야수 같은 모습에 경호원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보통 반대지 않나?’
와앙~ 하다가 가수를 보면 크왕 하는 것이 기본 아니던가.
그런데 여긴 반대였다.
마치 환히 웃으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설파하던 테디 베어가 아이들이 사라지자 담배부터 태우는 느낌.
경호원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저기.”
“에? 뭐? 왜요? 뭐.”
본토의 팬덤에게 배워서 공권력이나 경호원이라면 무조건 경계심부터 품는 아이돌의 팬들.
“아니, 방금 뉴블랙이 오니까 표정이 바뀌었던 것 같아서…….”
“아. 그거.”
수플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 좀 무서워하더라고요.”
“기왕이면 귀여운 모습을 보고 싶어 하니까, 앞으로는 귀엽게 하자고 본토에서 지령이 내려왔어요.”
“야, 지령이라고 바깥에서 그러면 안 돼. 합의라고 해야 돼.”
“어쨌든 우리가 잠잠하게 있어야 현장 통제도 더 잘 되고 애들 얼굴도 더 오래 볼 수도 있더라고요.”
현장 질서를 잘 지켜야 멤버들을 더 오래 본다는 말에 경호원들이 감탄사를 흘렸다.
‘장사 잘 되는 집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괜히 핫하게 뜨는 보이밴드가 아니었다.
그렇게 경호원들이 감탄하는 한편.
수플레들이 수천여 명이나 집결한 사건은 곧이어 또 다른 결과를 불러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