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27화
“히야…….”
“이게 먹어도 먹어도 안 끝나네.”
호텔에서 드골 공항까지 이동하고, 탑승 수속을 기다리고, 일본 하네다 공항에 내렸을 때까지도 빵은 사라지지 않았다.
멍한 얼굴로 빵 봉투를 안아 들고 있는 우리를 보며 민기 형이 웃음을 터뜨렸다.
“배부르면 그만 먹어. 그거 꼭 다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맛있어서 그래요.”
캐리어 안에서 눅눅해지고 딱딱해졌는데도 여전히 맛있는 프랑스 최고의 빵들이었다.
부우우욱.
빵을 한 조각 뜯어내어 입에 넣으니 잘 발효된 맛이 느껴진다.
“너무 맛있다…….”
“괜히 빵의 나라라고 하는 게 아닌가 봐요. 어쩜 이렇게 맛있지? 한국으로 가는 거였으면 엄마랑 누나들한테도 사다 주는 건데.”
지호의 말에 김덕순 여사를 떠올렸다.
우리 할머니한테도 이런 맛난 빵을…….
-빵만 먹으니까 속이 부대껴 가지고 못 살겄네. 외국인들은 어떻게 이런 것만 먹고 사는지… 라면이나 하나 끓여야 쓰겄다.
……아니야.
괜히 주고 나서 욕만 먹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공항 직원과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석환 형에게 손으로 엑스자를 그렸다.
“안 탈 거야.”
“응?”
“이번에는 안 탈 거라고. 골판지 카트.”
“……?”
“공항 직원 분이랑 그 이야기하고 온 거 아니야?”
혹시나 또 저번의 골판지 카트에 탑승하라고 하는 건 아닐까 싶어 미리부터 거절을 했다.
석환 형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게 아니고. 공항에 모인 인파가 저번보다 더 많아져서 빠르게 나갔으면 한다고 그러더라고.”
“……더 많아져?”
“그게 가능해요?”
“저번에도 역대급이었는데…….”
4천여 명이 모였던 저번 인파보다 더 많은 수라니.
리혁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몇 명이나 모였는데요?”
“오천 명.”
“…….”
“공항 전체가 포화 상태래. 이런 건 처음 본다고 하더라. 아무튼 그것 때문에 이번에는 좀 빠르게 나가야 할 것 같다. 다들 짐 단단히 잘 챙기고.”
빵을 캐리어에 다시 넣어 잘 챙기고는 경호원들과 공항 경찰의 안내를 따라 탈출했다.
저번보다 더 심하다는 말이 진짜였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임시로 설치된 펜스 너머에서 손을 뻗으며 소리 지르는 사람들.
“뉴브랙-꾸!”
“뉴블랙!”
“愛してる(사랑해요)!”
잘못하면 사고가 날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어마어마한 인파였다.
그 때문에 돌격대장처럼 달려 나가는 중현이를 따라 우리도 빠르게 하네다 공항을 빠져나갔다. 어찌나 상황이 급박한지 팬들한테 환히 웃으며 손 흔들 틈조차 없었다.
호텔 방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이번 패션쇼에서 말이죠.]
TV 어느 채널에서 나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판넬에 르블랑의 수석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의 사진이 붙어 있고, 그 옆에 내 사진도 붙어 있었다.
[우주 상이 아시아 스타 최초로 르블랑의 패션쇼에서 오프닝과 피날레를 장식했다고 하죠! 정말로 대단한 소식입니다. 무려 수석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가 공인한 뮤즈라고 하네요.]
스바라시- 하는 과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주가 손가락으로 TV를 가리켰다.
“저기 판넬 앞에 미술관 모형도 있어요. 우리 패션쇼 갔던 미술관.”
“어? 진짜네?”
미니어처 모형으로 우리가 갔던 미술관 앞거리가 재현되어 있었다.
MC와 패널들이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섰다.
[그러니까 이 앞 거리가 수천여 명의 팬들로 뒤덮였다는 말이죠? 파리의 미술관 앞을…….]
[그렇습니다. 뉴블랙의 해외 인기를 보여 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역시 심상치 않은 인기네요.]
수플레 모양의 미니미들이 미술관 앞에 놓여 있고, 식물의 팻말처럼 ‘수천여 명!!’이란 말이 적혀 있다.
우리가 패션쇼장에 도착하거나 퇴근하는 장면이 자료화면으로 흘러나오고.
패션쇼장에서 셀럽들과 찍은 사진들이 자료화면으로 나왔다.
“……세상에.”
우리가 파리에 도착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거의 시간 단위로 무슨무슨 스케줄을 하고 누굴 만났는지가 쓰여 있다.
심지어 정확하다.
저런 취재력을 왜 이런 데다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일본에선 패션 위크가 그만큼 중요한 행사인가?”
“그러게요. 한국에서는 짧게 지나갔는데.”
온라인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을 뿐, 한국 뉴스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은 우리의 소식이었다.
그냥 재미있는 오늘의 영상 코너에 ‘뉴블랙을 보고 환호하는 인파가 저만큼이나 있습니다!’ 하고 나온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 일본에서는 상당히 메이저한 TV 프로그램에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루고 있었다.
[르블랑의 회장 조르주 벵거의 말도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하네요. ‘몇 년 있으면 그들은 세계 최고의 셀럽이 될 것이다. 지금도 대단하지만’ 이라고 공언을 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조르주 벵거가 누군지 약력이 담긴 판넬이 등장했다.
멍하니 바라보는 우리에게 석환 형이 설명을 해 주었다.
“패션 위크라서 주목을 받은 게 아니고 파리라서 그래.”
“파리라서?”
“일본 사람들이 프랑스를 엄청 좋아한대. 그냥 성향이 그렇다더라.”
“아…….”
‘어맛!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인정 받은 뉴블랙!’ 같은 느낌인 모양이다.
프랑스가 열광하고, 콧대 높은 셀럽들의 기를 눌러준 아시아의 샛별…! 하듯이 찬양하는 TV 속 패널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우리와 일본계 미국인 모델과 찍은 셀카를 띄워두고 한창 떠드는 이들을 바라보고는 TV를 껐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콘서트 리허설 하러 가기 전에 패션 잡지 인터뷰를 할 예정이야. 간단하게 한두 곳 하면 돼.”
가볍게 끼니를 때우고는 곧바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이동했다.
도쿄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채광 좋은 사무실.
화보 촬영을 마치자 기다리고 있던 패션 잡지의 에디터가 꾸벅 인사했다.
「오늘 인터뷰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잘 부탁드려요.」
수첩 위로 만년필을 올린 에디터가 다리를 꼬고 물었다.
「그럼 가벼운 질문부터 하겠습니다.」
「네!」
「우주 상은 이번에 파리 패션 위크에서 어마어마한 화제를 끌어모았는데요. 쇼가 끝나고 칼럼니스트 로라 맥코넬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쇼가 끝나고 그가 평소에 입는 패션들을 살펴보았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에디터가 수첩에 적힌 내용을 고스란히 읽어 내렸다.
「‘놀랍게도 최소 삼사 년은 이른 패션들이었다. 그의 패션은 선구자적인 면이 있다. 누가 알았을까? 진정한 시대의 패션 아이콘이 저 한국이란 나라에 숨어 있을 줄 말이다.’」
동생들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키고 내 어깨가 기쁨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선우주. 그는 차세대 패션 아이콘이 될 재목이 있는 인물이다.’」
아. 기쁘다.
너무 기쁘다.
와타시는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에요!
“말도 안 돼.”
“어찌 저런 인간을…….”
동생들이 한국어로 수군거리는 동안 나는 살짝 나오려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얼마나 길었던 인고의 세월이더냐.
기나긴 싸움이 끝나고 마침내 내게 영광의 빛이 비춰지고 있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면서 패션 아이콘처럼 다리를 꼬았다. 그러고는 무릎 위에 깍지를 올리고 웃었다.
에디터님이 나의 패션 아이콘 포즈를 보고는 ‘과연…’ 하며 감탄했다.
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감사한 말씀이네요. 저의 패션이 인정받은 것 같아서 너무 기쁩니다.」
「그렇군요. 이참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주 상의 패션 철학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을 패션 아이콘으로 만들었나요?」
「흠.」
주변에서 꿈틀대며 괴로워하는 졸개들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저의 패션 철학은 말이죠. 우선적으로 이번 파리 패션 위크에서 느낀 바에 의하면….」
구체적인 패션 철학은 없지만 뭐 어떤가.
지금부터 만들면 되지!
「그런 철학이……. 대단하군요.」
「흐하하하하하!」
짜게 식어가는 멤버들의 눈빛을 무시하며 에디터님과 함께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패션 아이콘 좋아. 너무 좋아! 행복해!
* * *
시대가 낳은 패션 아이콘 선우주로서 일본 패션 잡지들과 인터뷰를 끝내고.
“저 개소리 알레르기 생겼나 봐여. 우주 형 인터뷰에서 한마디 할 때마다 너무 괴롭고 힘들었어요.”
“대단하다. 나 같으면 양심에 찔려서 저런 말 못할 것 같은데.”
“패션의 신이 본다면 벼락을 떨궜을 듯.”
“들린다! 이놈들아!”
“저는 그래도 형의 편이에요.”
감격하려는 나에게 비주가 그늘진 얼굴로 웃었다.
“아무리 형이 못난 모습을 보일지라도 포용해 주는 게 멤버인 거니까…….”
“…….”
……어쨌거나 인터뷰를 잘 끝내고, 2일간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도 콘서트를 무사히 마쳤다.
여러모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자! 여러분! 시대가 낳은 패션 아이콘 선우주의 런웨이를 감상하시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콘서트 토크를 진행하면서 수플레들 앞에서 런웨이 워킹도 선보였는데 반응이 엄청 뜨거웠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우린 다시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시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 저 선우주가 귀국했습니다!”
입국하자마자 당당하게 포즈를 취했다.
졸개들이 다급하게 도망쳤다.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흰 지나갈게요!”
“얘들아! 형이 부끄럽니!”
“아는 척하지 좀 마요!”
“어차피 너네가 내 동생인 건 전 국민이 다 안다고……!”
웃음을 터뜨리는 사진 기자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브이를 하거나 포즈를 취하면서 웃었다.
“좋은 기사 좀 써 주세요!”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찡긋했다.
“약속하시는 거예요!”
“그럼!”
공항에서 빠져나가자마자 기사들이 속속 떴다.
-[포토] ‘자칭 패션 아이콘’ 선우주 “나님 등장!”
-[포토K] “시대가 낳은 패션 아이콘 선우주”.. 멤버들 “모르는 사람입니다”
-[동영상] 신바람 난 선우주, 네티즌 ‘꽃무늬 입은 할아버지 같다’.. 중장년 네티즌 ‘우리도 저렇겐 안 입어’
기사 제목 너머로 화사하게 웃는 K-기자들의 환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다들 인정을 안 해 주는 거지.”
“공든 탑은 하루아침에 세울 수 없어요. 형.”
중현이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형은 이미 무너진 탑이니까.”
“…….”
졸개들이 꺄르르 웃었다.
고얀 것들.
괜히 입만 삐죽이고는 다이어리로 시선을 돌렸다.
한국은 이제 추석 주간이었다.
회사에서 새롭게 런칭하는 TV 채널 NBS의 개국도 앞두고 있고, 우리가 찍은 다양한 추석 컨텐츠들이 올라올 시간.
-뉴블랙 우주, 아이돌 ‘E-돌림픽’ 예고 등장
-돌림픽 PD “우주가 겜알못? 전혀 아니다. 방송 보시면 알게 될 것”
-[추석특집] ‘예선 탈락’ 우주.. 몇 초만에 아웃일까?
……조금 거북한 컨텐츠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 기대가 되는 것들이었다.
스케줄을 체크하다가 달력 위의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달력 봤어? 벌써 10월이야.”
“와. 시간 진짜 빠르게 가네요. 이제 어워즈 몇 번 하면 바로 2018년이고.”
10월.
이제 메트로 프로모션, 패션 위크 등의 굵직한 스케줄이 끝나고 나서 좀 여유로운 달이었다.
어워즈가 있는 11, 12월을 앞두고 재정비를 할 시간.
이제야 평소에 미뤄 뒀던 것들을 손대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형들, 저랑 꼭 약속한 거예요.”
막내가 우리 손에 자기 손가락을 걸며 말했다.
“이번에 꼭 촬영장 놀러 오기로.”
“꼭 갈게.”
<신이> 촬영장에서 ‘형들에게 사랑 받는 막내’를 연출하고 싶다는 막내의 요청에 승낙했다.
매번 놀러 간다, 놀러 간다 했는데 이제야 시간이 났다.
최근 들어 가장 밝게 웃는 막내의 표정을 보며 웃고는 리혁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 달은 우리 메인 보컬의 달이었다.
“왜 쳐다봐요?”
“기특해서 쳐다본다.”
“기특하다는 표현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향해 쓰는 표현이에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동생 농사 망했어.”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메인 보컬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이번 달에 드라마 <나의 곰과 호랑이> OST 발매와 함께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있는 우리 넷째였다.
“준비는 잘돼 가?”
“그럭저럭요.”
리혁이가 준비하고 있는 행사는 바로 올해 야구 결승전인 한국 시리즈 1차전의 애국가였다.
우리도 같이 방문해서 리혁이를 응원하고.
간만에 야구도 보면서 기분을 낼 예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중현아. KG 드래곤스는 어떻게 됐어? 올해도 뭐 플레이오프인가 그런 거 진출했어?”
“…….”
“어……. 중현아?”
“…….”
표정 변화가 없이 평온한 중현이의 얼굴에 힘줄이 잠시 솟았다. 순간적으로 눈에 핏발이 선 듯한 느낌.
아마 손에 과일이 들려 있었으면 즙이 되지 않았을까.
“후우.”
그러고는 다시 평온해졌다.
그 모습을 보고는 중현이가 애정하는 KG 드래곤스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중현이마저 평정심을 잃는 야구는 정말로 무서운 스포츠인 게 틀림없었다.
“저기.”
리혁이가 물었다.
“근데 나 이따가 애국가 부르는 거 좀 봐줄 수 있어요? 피드백이 좀 필요한 상황이라서.”
“당연하지.”
“이거 어떻게 불러야 할지 감이 안 와서요.”
리혁이에게 보컬을 봐 주기로 약속을 잡고는 핸드폰 달력을 살폈다.
“그리고…….”
달력에 표시된 알림을 바라보며 동생들과 고개를 끄덕였다.
스케줄…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우리가 가장 기다리고 있었던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빌보드 Hot 100 발표!
바로 METRO의 빌보드 순위 발표였다.
* * *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오사카 돔 콘서트를 위해 연습실에서 한창 동선 체크를 하고 있을 때였다.
“The time has come…….”
중현이의 근엄한 목소리에 우리가 으으으 했다.
막내가 후우 심호흡을 했다.
“밤이 되었습니다. 뉴블랙은 고개를 들어 빌보드 차트를 보아 주세요.”
“으아아아아!”
빌보드 Hot 100 차트의 이른바 탑 10이 발표되는 시간.
SNS를 새로고침하면서 말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1위 가능성 있겠지?”
“패션 위크 나오고 나서 스트리밍이 확 늘었대요. 이번에는 진짜 1위를 할 수도 있어요.”
4-2-2-2.
2번째 주부터 2위를 하면서 미묘하게 2인자로 한 달 가까이 집권하고 있던 메트로였다.
-4222. 왠지 모르게 두 번 댓글을 쳐야 할 것 같네요ㅋㅋ 이번엔 꼭 1위 하기를
-4222. 왠지 모르게 두 번 댓글을 쳐야 할 것 같네요ㅋㅋ 이번엔 꼭 1위 하기를
-뉴블랙 메트로 화이팅!!
-뉴블랙 메트로 화이팅!!
2등이라고 놀리는 건지 사람들이 댓글창에서도 꼭 댓글을 2개씩 쓰면서 응원을 해 주고 있었다.
“2등도 대단한 건데…….”
“그래서 다들 알고 놀리는 거잖아요.”
솔직히 2등도 어마어마한 성적이다.
미국에 갓 진출한 신인 가수가 빌보드 4위로 진입해서 한 달 가까이 2위에 머물러 있다.
정말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단한 성적이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1등 한 번만 해 보고 싶어요.”
“진짜. 딱 한 번이라도…….”
“한 번만 1등하면 소원이 없을 거 같아.”
계속해서 전교 2등을 하는 기분이 이럴까.
동생들과 조마조마한 심경을 느끼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1등이 너무 세긴 한데…….”
1위를 하고 있는 콜드 브라운의 Divine Rules를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이번에 작정하고 나왔다는 평을 받을 만큼 명반으로 꼽히고 있는 콜드 브라운의 앨범이었다.
한국에서 머글픽으로 꼽히는 음원이 발라드라면 미국은 머글픽으로 꼽히는 음원이 바로 이런 힙합 가수들의 노래다. 그 때문에 메트로가 대중적으로 좋은 성적을 얻고 있어도 경쟁이 힘들었다.
그나마 희망을 가지자면 Divine Rules가 나온 지 시간이 좀 되어서 해 볼 만하다는 것.
이제 1위 음원이 슬슬 힘이 빠질 시기였다.
그 틈을 타고 패션 위크에서 추진력을 얻은 우리 메트로가 얍삽하게 뒤에서 일격을 가하는 것이다.
“후우우우.”
긴장감에 주먹을 꼬옥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새로고침을 몇 번이고 반복했을 때.
“떴다……!”
마침내 빌보드 트위터에 새 게시글이 떴다.
“아. 잠시만.”
“잠시잠시.”
동생들과 앞으로 착하게 살겠다는 기도를 올린 후.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이미지 파일을 꾹 눌렀다.
“…….”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릴 만큼 고요한 적막.
우리가 아래서부터 차근차근 살폈다.
“3위에 없어요.”
“그러면 2위가…….”
2위에 써진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Billboard Hot 100]
2. Divine Rules - Cold Brown
“……그러면!”
그리고 마침내 대망의 1위.
[Billboard Hot 100]
1. METRO - The New Black
있다.
“있다.”
“1위.”
그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연습실의 빛이 꾸물꾸물 꿀렁거리며 마치 나에게로 쏟아지는 느낌. 별들이 쏟아지는 듯한 현기증을 느끼며 뒤로 넘어졌다.
긴장이 풀린 까닭이었다.
“형…….”
비주가 입을 틀어막으며 말했다.
“우리 1위예요.”
“1위……!”
그 순간 졸개들이 와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퍽! 퍽!
내 몸 위로 샌드위치처럼 엎어지는데도 통증 하나 없이 그저 멍하니 황홀한 기분을 느낄 뿐이었다.
“우리 노래가 빌보드 1위…….”
2위와는 또 다른 현실감 없는 이 느낌.
머리가 멍하면서도 아찔한 황홀함을 느끼며 이내 동생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리며 뒹굴었다.
1위.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라니.
“와하아…….”
양손을 들어 올려 눈가를 가렸다가 천장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것도 내 행복을 방해할 수 없었다.
* * *
그날 아침.
사옥에 출근한 뉴블랙의 매니저 도원석의 귓가로 뉴스가 흘러들어왔다.
-파리 패션 위크에서 화제를 모은 바 있는 국민 아이돌 뉴블랙이 빌보드 1위의 영광…….
좋은 소식에 콧노래를 부르던 도원석이 멤버들에게 건네줄 밀린 우편을 꺼내 들었다.
그중 하나를 보고 작게 미소 지었다.
수취인 선우주.
발신인 병무청.
도원석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예비군 통지서를 집어 들었다.
‘올해도 어김없구나.’
파리 패션 위크에서 선정한 최고의 패션 스타.
빌보드 1위 작곡가.
그런 영광스러운 주간의 끝에서 대한민국 병무청이 상큼한 윙크를 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