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28화
빌보드 Hot 100 1위.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핸드폰부터 들었다. 어제 캡처한 사진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Billboard Hot 100]
1. METRO - The New Black
2. Divine Rules - Cold Brown
3. Smoke Factory - ABC Slim
“이야…….”
핸드폰을 손에 쥐고 몸을 꿈틀꿈틀 흔들었다.
“진짜였어.”
현실감 없이 몽롱한 기분.
괜히 실없이 웃음만 흘러나온다.
빌보드 1위에 들어가 있는 우리 이름을 눈가로 가까이 가져다 댔다가 멀리 떼기를 반복했다. 원근감에 따라 글씨의 크기는 변해도 여전히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이름은 똑같았다.
괜히 기분이 업 돼서 주변을 돌아봤지만 동생들은 아직 잠에 빠져 있는 중이었다.
서로 어깨를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얘들아아아…….”
소곤거렸지만 아무도 깨어나지 않았다. 중현이 정도만 귀를 쫑긋하다가 다시 잠에 빠져들 뿐.
내가 다시 소곤거렸다.
“빌보드 1위…….”
“허어!”
“흡!”
“어어…….”
꾸물거리던 졸개들이 눈을 뜨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저마다 손을 뻗어 주섬주섬 핸드폰을 챙겼다. 방금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핸드폰 스샷을 확인한 졸개들이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후.”
중현이가 기지개를 켜며 웃었다.
“이게 바로 빌보드 1위 가수의 아침인가. 생각보다 평범하군.”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흐하하! 하면서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눈을 비비면서 키득거리던 비주가 핸드폰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우와. 축하 메시지 엄청 들어왔어요. +999는 처음 보는데. 어? 엄마한테 전화 왔다.”
비주가 ‘여보세요!’ 하면서 발랄하게 웃으며 바깥으로 나가는 동안, 우리도 저마다 핸드폰에 들어온 메시지들을 살폈다.
장문의 축하 메시지들이 여기저기 가득하다.
SNS에서는 헤일리 블루, 루퍼트 딘을 비롯해 우리와 친한 셀럽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냈고.
포털 메인에는 굵은 글씨로 우리의 빌보드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공식] 뉴블랙 ‘Metro’ 빌보드 핫 100 1위 달성 ‘쾌거’
-뉴블랙 Metro ‘드디어 일 냈다’.. “빌보드 Hot 100 1위”
-뉴블랙, 빌보드 차트 5주 만에 1위
축하해 주는 댓글들을 쭉 읽고는 빌보드 홈페이지에 있는 매거진 기사들을 살폈다.
-뉴블랙의 메트로 1위에 등극, 그리고 파리 패션 위크의 음악
파리 패션쇼에서 쓰였던 우리의 음악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기사에 따르면 패션쇼 영상이 바이럴처럼 퍼지고 나서 우리의 음악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지수가 확 올랐다고 했다. 단순히 메트로뿐만이 아니라 쇼에 쓰였던 다른 음악들도 다 같이.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이번에 진짜 큰 일 했어요.”
산삼보다 귀하다는 리혁이의 칭찬에 기분 좋게 웃었다.
중현이가 두툼한 손을 내 어깨에 올렸다.
“형, 진짜 고생했어요.”
“고생은 무슨.”
말은 그리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빌보드 매거진을 시작으로 영미권의 유명 음악 잡지들이 ‘메트로? 1위 할 만했지’ 하고 내놓는 기사들에 흡족한 미소가 나왔다.
패션쇼에서 틀어 놓을 음악을 편곡하려고 며칠 밤을 샜던 보람이 있었다.
“프로듀싱팀한테 감사하다고 인사나 하러 갈까.”
“아직 출근 안 하셨을걸요?”
“아. 그러네.”
시계를 바라보니 이른 아침이었다.
이 시간에 회사에 있을 만한 사람이라면 우리 매니저들 정도.
그래서 TF팀 사무실을 찾았다.
“형!”
“얘들아!”
서류 정리를 하던 원석이 형의 곰 같은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환히 웃었다.
“저희 1위예요!”
“진짜 축하한다. 드디어 1위네.”
“저희 어제 이것 때문에 잠을 못 잤어요.”
싱글벙글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데, 원석이 형의 손에 들려 있는 편지가 보였다.
“그런데 그건 뭐예요?”
“아, 이거?”
상대가 어색하게 웃으며 편지를 내밀었다.
“너 예비군 통지서 왔어. 우주야.”
“…….”
맑은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는 것처럼 우중충해지는 내 표정에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 * *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번에는 동미참이니까.”
“동미참이 뭔데요?”
“3일 동안 자고 오는 게 동원, 이건 5일 동안 출퇴근 식으로 다녀오는 거야. 이게 훨씬 낫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리혁이가 말했다.
“전혀 나아 보이지 않는데요.”
“그거야 예비군이니까…….”
촉촉하게 웃으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 진짜 가기 싫다.
벌써부터 예비군 훈련장 특유의 퀴퀴하고 쿰쿰한 냄새가 밀려오는 듯한 느낌에 한숨만 푹 내쉬었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네. 나 예비군 몇 년 남았지.”
“8년 하는 거 아니에요?”
“어? 어떻게 알았어? 맞아.”
“검색하니까 7년차부터 훈련 없다던데요. 8년차까지 끝나면 그때부터 민방위라고.”
손끝으로 계산했다.
그러니까 2020년에 7년차니까, 19년까지 훈련을 받고… 21년에 예비군이 끝나게 되는 거다.
“우리 재계약할 때쯤 예비군이 끝나는 거네.”
“그리고 당신은 민방위가 되는 거죠.”
“민방위 아이돌인가…….”
탐스러운 칭호였다.
연예계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군필 아이돌’은 있어도 아직 ‘민방위 아이돌’은 없지 않던가.
주먹을 꼭 쥐고 눈을 빛냈다.
“내가 최초가 되어 보겠어.”
“……굳이 그런 것까지 최초가 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고개를 흔들던 리혁이가 노트나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리혁이 전용 보컬 연습실.
내 작업실에 버금갈 만큼 널찍한 곳인데, 레몬 엔터의 가수 중에서 보컬 연습실을 따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딱 둘이었다.
유명 발라드 가수이자 음원 강자라는 별명이 있는 윤찬혁 선배.
그리고 우리 메인 보컬.
윤찬혁 선배의 경우에는 조규환 이사님이 처음으로 계약한 가수라는 상징성도 있고, 워낙 노래 연습을 하는 시간이 많아서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다른 가수들이랑 같이 쓰면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니까.
리혁이도 그와 비슷한 케이스였다.
-저는 되게 궁금해여. 저 형은 이미 노래를 잘하는데 왜 저리 연습을 많이 하는 건지…….
이미 잘하는데도 보컬 연습시간이 우리 중에서 탑을 달리는 리혁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저번에 보컬 연습실에서 종이컵에 남은 커피 안 버리고 간 사람 누구예요? 이건 진짜 경우가 없는 거 아냐?
-아니… 청소를 하는데 머리카락이 끝없이 나와. 누구예요?
-화이트보드에 ‘깔끔쟁이 메롱’ 누구예요? 글씨체 보니까 이거 완전 왕지호인데…!
나였다.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하도 청결과 깔끔한 것에 신경 쓰다 보니 가수들이 대표님께 하소연을 했던 터였다.
-쟤랑 다른 방 쓰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우리 메인 보컬님께서 격리가 된 거였다.
널찍한 연습실을 둘러보는 나에게 리혁이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넓지 않아요?”
“넓네.”
“처음에 깜짝 놀랐다니까요. 대표님이 오셔서 너무 기특하다고 하는 거 있죠. 그러고는 연습량이 많은 만큼 개인 공간이 필요할 거 같다고 하시는데… 그날 좀 감동했어요.”
“그, 그랬구나.”
“역시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는 복이 오네요.”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감옥을 만드는 방법.
그것은 바로 죄수가 자신이 격리된 것인지를 모르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의 행복함을 뺏고 다니는 디멘터를 아즈카반에 보낸 마법사들의 마음이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역시…….”
“네?”
“아냐. 아무것도.”
그러곤 연습실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리혁이가 좋아하는 의자 아니랄까 봐, 딱딱한 쿠션감에 허리를 바른 자세로 만드는 의자였다.
“어우, 허리야.”
반듯하게 허리를 세우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이트와 블랙 톤으로 꾸며진 리혁이 전용 연습실은 인터넷에 ‘깔끔한 인테리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표본 같다.
불필요한 장식품 하나 없이 깔끔하게 소품만 있는 것이 미니멀리즘의 끝이라고 할까.
“너는 디자인 했어도 잘했겠다.”
“흠, 보는 눈이 좀 있네요. 학교 다닐 때부터 그림 잘 그린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
칭찬을 해도 ‘괜히 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아이.
그것이 바로 우리 애였다.
자세를 바로잡고는 리혁이에게 물었다.
“준비는 다 됐어?”
“네.”
리혁이가 기다란 스탠딩 마이크를 두 대 설치했다.
“한국 시리즈에서 애국가 부르는 영상들 보니까 마이크를 이런 식으로 교차해서 설치하더라고요. 똑같이 재현했어요.”
지금 내가 리혁이의 연습실에 온 이유는 바로 애국가를 봐 주기 위함이었다.
뺨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런데 굳이 애국가에 피드백을 줄 부분이 없을 것 같은데… 그럴 만한 부분이 있나?”
“이게 두 가지 버전이 있거든요.”
“……?”
눈을 깜빡이는 나에게 리혁이가 물었다.
“혹시 한국 시리즈 애국가 영상 본 적 있어요?”
“몇 개 보긴 했어.”
“두 가지 방식이 있어요. 하나는 기교를 넣어서 좀 더 멋스럽게 부르는 방식이 있고.”
윤찬혁 선배가 부른 애국가 영상이 떠오른다.
음정을 살짝 바꾸고 화려하게 부르는 방식으로 외국에서도 가수들이 자국 국가를 그런 식으로 부른 걸 본 적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리혁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담백하게 부르는 방식이에요. 기교보다는 톤으로 임팩트를 주는 방식이에요.”
“차우현 선배처럼?”
“네.”
기교 없이 담백하게 부르는 애국가 영상.
정말 깔끔하게 애국가 그대로 부르는데 가수들 특유의 독특한 톤으로 임팩트를 주는 방식이다.
“둘 중에 하나를 골라달라는 거지?”
“그렇죠. 어떤 걸로 부를지…….”
“글쎄.”
우리나라 사람들 취향 생각하면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긴 한데.
“일단은 들어 보자. 사람들이 어떤 걸 좋아할지 예측해서 하기보다는 어떤 게 더 좋을지 봐야 할 거 같아.”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첫 번째 버전부터 부를게요.”
“응.”
귀를 쫑긋 세우고 리혁이의 입술에 시선을 집중했다.
후우- 하고 숨을 내쉰 리혁이가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첫 소절부터 이건 끝났다, 싶을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연습실이 온통 아름다운 빛깔로 가득 차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 메인 보컬을 지켜보았다.
차분하게 넘긴 머리카락 아래로 고운 속눈썹이 길게 늘어져 있다. 평소 얍삽하고 뾰족한 인상이 멋지게 느껴질 만큼 좋은 보컬 실력이었다.
“음…….”
매 순간마다 기교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절묘한 타이밍마다 기교가 들어가 있다.
혹시나 편곡이나 기교가 과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이 정도면 자연스럽다.
보컬 연습실에 오기 전에 자료 조사를 해 본 결과, 대체로 사람들이 애국가는 담백한 방향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곡이 과할 경우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애국가가 장난이냐 ㅡㅡ
-국가를 꼴리는 대로 부르냐ㅋㅋㅋㅋ
-가요도 아니고 국가를 참.. ㅋㅋ 할 말많지만 돈 없어서 참는다
-기교 넣고 싶으면 혼자 부를때나 하지?
-왜요 좋은데?? 미국 슈퍼볼 보면 국가 저런식으로 부릅니다
-그럼 미국 가세요 ㅋㅋㅋ 참내..
살벌한 댓글들.
이게 나라마다 취향이 다른 것 같은데 우리나라 쪽은 애국가는 애국가답게 깔끔하게 부르는 것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기교를 넣었다고 하기도 애매한 수준이라 괜찮은 듯했다.
“어때요?”
침을 꼴깍 삼키며 묻는 리혁이에게 내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 거까지 일단 듣고.”
“아. 알았어요.”
리혁이는 주변 반응이나 표정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라 표정 변화 없이 계속 담담하게 웃어 주었다.
“후우.”
호흡을 하며 페이스를 조절한 리혁이가 다시금 입술을 뗐다.
이번에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
“……!”
이거다.
맑고 고운 목소리로 쭉쭉 뻗어 나가는 방식이 평소 리혁이의 보컬 방식과 가장 흡사하고 자연스러웠다.
힘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부르는데도 고음이 쭉쭉 올라갔다. 어찌나 성량이 좋은지 살갗이 웅웅 울린다.
“어때요?”
노래를 끝낸 리혁이가 물었다.
“둘 중에 뭐가 더 나을 거 같아요?”
“일단 둘 다 너무 마음에 들긴 하거든?”
“정말요?”
리혁이의 눈이 환해졌다.
“관건은 이거지. 둘 중에서 뭐가 더 부르기 편해?”
“그야 당연히 두 번째 버전이죠.”
“그럼 두 번째 버전으로 가자. 부르기 편하다는 건 그만큼 네가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다는 거니까. 노래에 감정 싣기도 좋고.”
무대에서는 보컬이나 댄스 등의 퍼포먼스가 자연스러워야 감정이나 예술성을 담을 수 있다.
“기교 있는 방식으로 부르게 되면 네가 기교를 넣는 데 더 신경을 쓰게 될 것 같았거든.”
“그렇긴 해요. 근데 요즘에는 이런 식으로 부르는 가수들도 많더라고요.”
리혁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내 식대로 부르면 좀 밋밋한 것 같기도 했고요.”
“아니야. 자연스러운 게 최고야. 기교 넣는 가수들은 본인 창법에 그게 더 어울리니까 그런 거고.”
리혁이는 깔끔한 보컬이 특징이다.
압도적인 성량, 거기에 맑고 청량한 목소리를 더해 울림을 주는 방식.
단체곡을 들을 때도 우리들 파트에서 좋다, 좋다 하다가 리혁이 파트가 되면 귀가 청량하게 확 뚫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 청량함과 깔끔함으로 승부하는 것이 리혁이 보컬의 매력 포인트였다.
“나라면 두 번째 버전으로 갈 거 같아.”
“뭐. 그럼 두 번째로 갈게요.”
후하- 하고 숨을 내쉬던 리혁이가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다소 긴장된 눈치였다.
“긴장돼?”
“조금요.”
“잠실야구장이 꽉 차도 2만 5천 명밖에 안 될 텐데. 그 정도 인원수에 긴장하기에는 이제…….”
“그것보다는 이번에 그.”
리혁이가 고민하다가 말했다.
“……미국에서 엄마랑 예인이 오기로 했거든요. 아빠도 그날 오기로 했고.”
“그래?”
“아직 다른 사람들한테는 얘기 안 했고 팀장님한테만 말씀드렸는데, 뭐 그렇게 됐어요. 추석 때 만나지 못하니까 그날 만나자고…….”
먼 곳을 바라보며 꼼지락거리며 말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벌써부터 그날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모양이다.
조용히 웃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헛기침을 한 리혁이가 말했다.
“그래서 좀 잘 부르고 싶거든요. 음, 약간 자랑스럽게 보이고 싶기도 해서…….”
“음?”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자랑스러우실 거 같은데?”
“…….”
귀가 확 달아오른다.
“새삼스럽게 뭘 그래. 이미 너 TV에 나오고 그러는 거 다 보고 그러실 텐데.”
“그, 그만.”
“……?”
“상상하면 부끄러우니까 그만해요.”
내가 뭘 했다고…….
혼자서 으으으 하면서 몸을 배배 꼬던 리혁이가 말했다.
“나는 좀 그렇단 말이에요. 가족들이 내 모습을 TV로 보는 상상을 하면 막 부끄럽고 민망하고.”
“난 좋던데.”
어릴 적에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하고 꺄하핫 돌아다녔던 꼬맹이가 바로 나였다.
리혁이가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아무튼 콘서트 말고 일반 대중들 앞에서 하는 나름의 공연… 같은 거니까. 좀 멋지게 나오고 싶어서요.”
“흠…….”
“그래서 더 잘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리고?
“아, 이 얘기까지는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음…….”
“보통 그런 표현 쓰면 꼭 얘기해야 되는 거 알지?”
“그… 우리 엄마랑 아빠랑 따로 살고 있는 건 알죠? 이혼해서 따로 살고 있는데…….”
“자세히는 모르고 있었지.”
“예인이한테 전해 들었는데 요즘 들어 둘 사이에 분위기가 좀 좋은 것 같기도 해서, 그…….”
어떻게든 말을 자연스럽게 마무리하려고 노력하는 리혁이에게 웃어 보였다.
워낙에 속사정을 이야기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성격인 탓에 본인도 막 어색해하는 것 같다.
“어쨌든 그날 분위기가 좋았으면 한다는 거잖아.”
“맞아요.”
“그럼 지금부터 빡시게 연습하면 되겠다.”
내가 후후 웃으며 고개를 낮췄다.
“이렇게 된 이상 역대 최고의 애국가, 미튜브 조회수 1억 뷰 돌파 애국가로 간다.”
“……좋아요.”
“하이파이브?”
진지하게 하이파이브를 짠-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리혁이의 애국가에 피드백을 해 주려고 할 때였다.
똑, 또독 똑.
불청객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서리혁 씌~!
발랄한 목소리에 리혁이가 눈살을 찌푸리고 입가를 씰룩이며 좋아했다.
똑 또도독 똑.
-두 유 워너 빌 더 스노우맨~?
우리가 피식 웃고 있자 이번에는 노크가 격해졌다.
쿠쾅쾅쾅쾅!
켈켈켈 웃는 웃음소리와 함께 귀여운 목소리가 험상궂게 변했다.
-Here’s Johnny! 문 열어랏!
갑자기 호러 연기를 펼치는 막내의 모습에 내가 바라보자 리혁이가 답해 줬다.
“영화 중에 샤이닝이라고 있어요.”
“아. 그거.”
흐릿한 유리 너머로 몸을 씰룩씰룩 움직이며 춤을 추는 막내의 모습에 내가 문을 열었다.
“뭐야.”
“드디어 시간이 됐습니다! 형제여!”
“……?”
“모니터링을 할 시간이에요.”
내가 물었다.
“무슨 모니터링?”
“형, 저번에 찍었던 E스포츠 돌림픽 있잖아요. 그거 5분 있으면 시작해요.”
“…….”
“리혁이 형! 우주 형 표정 봐요!”
“흐하하하!”
망부석처럼 굳은 나를 향해 두 졸개가 수류탄 던지는 시늉을 하며 농락하기 시작했다.
아. 진짜 보러 가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