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34화
선우주가 화려한 복싱 스킬을 선보인 후.
프로 게이머들은 어딘가 모르게 공손해진 태도로 배우기 시작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
선우주가 무언가를 가르쳐 줄 때마다 눈을 초롱초롱 뜨면서 박수를 치는 게이머들이었다.
“……?”
우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왠지 모르게 아까랑은 분위기가 다른…?”
“기분 탓이에요. 우주 씨.”
스타 게이머 신현수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냥 우주 씨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네요. 웃음이 나오고. 왠지 모르게 행복해집니다.”
“그…래요? 으으음.”
“네. 우주 씨에게 배워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하하하!”
프로 게이머들이 다 같이 하하하 웃었다.
이윽고 ‘스승의 은혜는~’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모습에 우주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시 한번 또 연습해 볼게요.”
다시 게임 가르치기가 시작됐다.
일렬로 선 그들이 테니스의 서브 동작을 취하고, 우주가 그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허리를 조금 더 피셔야 돼요. 발은 조금 더 뒤로 물러나셔야 하고.”
“네.”
“이제 해 보세요.”
이 자리의 막내인 고등학생 프로 게이머 고윤민이 우주의 지시에 따라 리모컨을 휘둘러 보았다.
곧이어 경쾌한 클린 히트가 떴다.
[80점!]
[대단한데? 조금 더 노력하면 완벽하겠어!]
내레이션을 들으며 고윤민이 쾌재를 질렀다.
‘됐다!’
정말로 선우주의 말대로 자세를 조금 바꾸었더니 30점이었던 점수가 확 올라가 있었다.
곧이어 선우주의 밀착형 맞춤 교육이 시작되면서 프로 게이머들은 감탄했다.
‘몸을 진짜 잘 아는구나.’
정말이지 흔치 않은 케이스였다.
주변에 운동 잘하거나 몸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공통점이 있다.
운동을 하면서 막히거나 안 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왜 동작 같은 것이 안 되는지 이해를 못한다는 것.
-음? 이게 왜 안 돼?
-축구 잘하는 법? 달려가서 골을 넣으면 돼.
그런데 선우주는 그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코칭하면서 자세를 다 바로잡아 주고 있었다.
마치 헬스 트레이너 같은 느낌!
지켜보던 촬영 스탭들과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진짜 확 좋아지네.”
“저희 이런 걸로 홍보해도 될 것 같은데요? 제대로 된 자세 교정을 통해 척추 건강을 되찾는…….”
“근데 우주 씨 표정 되게 헬스관 관장님 같지 않아?”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이 그러네 하며 맞장구 쳤다.
‘약간 허름한 체육관… 그런 곳의 관장님 느낌이다.’
느릿느릿 뒷짐을 지면서 돌아다니고는 무림 고수처럼 자세를 툭툭 봐 주고 있는 우주였다.
헬스장 간판의 ‘ㅎ’이 반쯤 떨어져 있을 만큼 허름해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고이고 고인 헬스 매니아들이 쇠질을 하고 있는 체육관의 관장 같은 표정.
눈빛부터 관록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저기 우주 씨 뒤편에는 부하 트레이너.”
누군가 우주의 뒤편에서 두 손을 모은 채 공손하게 따라다니고 있는 중현을 가리키면서 웃음이 흘렀다.
헬스장 관장님과 트레이너 같다는 농담이 나올 때.
계속해서 고득점에는 실패하는 철권의 프로 게이머 바퀴에게 중현이 성큼성큼 다가갔다.
“흐음.”
사람을 관찰하는 곰처럼 바퀴의 자세를 요리조리 살펴보던 중현이 그를 불렀다.
“바퀴벌레 님.”
“바퀴예요.”
“앗. 죄송합니다.”
“근데 괜찮아요. 진짜로 바퀴벌레의 그 바퀴거든요.”
나는 죽지 않아! 하는 의미에서 지은 닉네임이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아직도 회사원의 태가 묻어나는 게이머에게 중현이 물었다.
“저 바퀴 님, 혹시 허리 아프지 않으세요?”
“어? 네.”
“어깨 쪽도 좀 뻐근하시고.”
“…그렇죠?”
“말랐는데 그 복부 부분만 살짝 튀어나온 느낌이 들고요. 두통도 많이 심하실 것 같은데.”
‘복부’라고 이야기할 때 귓속말로 소곤거리는 중현.
현대인의 고질적인 증상을 물어보는 이에게 바퀴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의문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에게 중현이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요새 재활 쪽으로 공부 많이 했거든요. 하도 연습 중에 부상 잘 당하는 친구가 있어서요.”
“아, 네.”
“그래서 바퀴 님의 자세를 봤는데… 평상시에 그런 자세로 생활하시다가 크게 다치실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혹시 제가 자세 교정 좀 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저야 좋죠.”
바퀴가 물었다.
“그런데 제 증상은 뭔가요?”
“거북목이세요.”
“아…….”
현대인의 고질적인 질병 거북목이었다.
‘내가 거북목이 심하긴 하지.’
직업이 직업인 탓에 거북목이 남들보다 배는 심한 바퀴였다. 하지만 마땅히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당장 게임에 집중을 해야 되는데 자세를 신경 쓴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거울을 볼 때마다 괜히 목을 뒤로 빼면서 평소의 업보를 청산하려고 애쓸 뿐.
친근하게 다가오는 트레이너에게 바퀴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제가 스트레칭을 좀 개발해 봤는데 한 번 따라 해 보실래요? 우주 형 거북목 되지 말라고 개발한 거거든요.”
그 말을 들었는지 우주가 맞다고 대답해 줬다.
“진짜 효과 좋아요.”
“그래요?”
“네. 오래 작업하고 난 다음에 중현이 스트레칭 하잖아요? 바로 자세가 원래대로 돌아와요.”
그 말에 솔깃했는지 연습을 하던 게이머들과 거북목이 있는 촬영 스탭들이 시선을 돌리고 자세를 취했다.
중현이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 먼저 고개를 살짝 들어 주시고요. 이게 거북목은 단순히 목만 교정하는 게 아니고 등이랑 어깨를 펴는 것부터 시작해야 돼요.”
ASMR 같은 차분한 목소리까지 얹어지니 금상첨화였다.
경건한 분위기.
트레이너의 말에 따라 스탭들이 하나둘 목과 어깨, 등의 긴장을 풀고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네, 모두들 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섯 세트 추가.”
스트레칭이 이어지는 동안 촬영장 곳곳에서 한숨과 신음 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어으으으으…….”
“끄으으응.”
“어으으. 시원타…….”
뻐근한 근육을 풀 때마다 눈앞이 하얘지면서 온몸의 독소와 긴장이 풀려 나가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스트레스도 해소되는 듯했다.
짜증과 신경으로 곤두서 있던 몸의 긴장이 풀리고, 딱딱한 얼굴 근육이 풀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평화롭다…….’
곧바로 사람들의 얼굴에 김중현 같은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중현 씨가 늘 푸근한 표정을 짓고 다니는 거였구나.’
몸이 이렇게 평화롭고 편하니 그것을 드러내는 얼굴도 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밖에 비바람이 불면 어떠랴. 몸이 편한데.
최근 들어 이 정도로 편안한 표정을 지은 적이 있을까 싶었다.
“어때요?”
“네?”
바퀴가 눈을 뜨면서 다른 사람들도 꿈에서 깨어났다.
‘어라?’
방금 전까지 파란 하늘과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있던 사람들이 현실로 돌아왔다.
촬영장 조명.
게임기.
광고 모델 뉴블랙.
누군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스트레칭 효과가 어마어마하네요.”
여기저기서 멋쩍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뉴블랙 멤버들이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중현이 형 스트레칭이 좀 강력하긴 하죠. 저도 울 아빠한테 가르쳐 줄까 말까 하다가 안 가르쳐 줬잖아여.”
“저거 한 번 맛보면 못 벗어나지.”
“저희가 불화 없이 화목한 이유입니다. 화가 날 때 중현이 스트레칭 한 번 하고 나면 화가 풀리거든요.”
그런 말이 나오는 동안 중현이 웃으며 말했다.
“거울 한 번 보실래요?”
“거울이요?”
바퀴가 촬영장에 있는 거울에 다가갔다.
그리고 놀랐다.
‘세상에!’
완벽하진 않지만 거북목이 훨씬 개선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제작진과 다른 게이머들, 광고주와 광고 대행사 직원들도 저마다 자신의 목을 살폈다.
‘유레카!’
‘홀리 우주선!’
‘맙소사.’
헬스장 PT를 끊어도 개선이 안 되었던 거북목이 놀랍도록 개선이 되어 있었다.
기쁨이 용솟음친다.
목 뒤에 버섯 증후군까지 개선되는 놀라운 효과에 감탄한 프로 게이머들이 중현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 중현 님. 혹시 손목 터널 증후군은 어떻게 개선하는지 아시나요?”
“얼마 전에 구단 헬스장에서 운동하는데 무릎이 아프더라고요. 자세가 잘못된 건가 싶고….”
“요즘에 눈이 침침하거든요. 시력 개선 효과가 있는 운동은 없을까요?”
본인들의 증상을 언급하는 프로 게이머들의 말에 제작진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래. 잘 물었다. 나도 궁금했어.’
‘그치! 나도 눈이 침침해.’
그걸 시작으로 중현의 뒤에 서서 뿌듯하게 웃기 시작하는 동네 형과 졸개들.
광고주인 정세연 팀장도 고개를 까딱였다.
‘나쁘지 않아.’
광고이지만 광고스럽지 않은 미튜브 컨텐츠가 목적이었기에 이것도 꽤 나쁘지 않은 장면이었다.
“흠흠.”
그러면서 그녀도 거북목 스트레칭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피트니스 목적의 게임기.
분명 시작은 게임 가르치기 컨텐츠였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건강 컨텐츠로 끝나는…….
뭔가 광고 목적에 부합하면서도 아닌 듯한 광고 영상 촬영이었다.
그리하여.
[선우주에게 게임을 배워 보았습니다. (feat. 김중현의 건강 스트레칭)]
라는 제목의 광고 영상이 탄생하게 되었다.
* * *
광고 영상 촬영은 즐겁게 끝났다.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저기 시간 되시면 인증샷 좀.”
“고생 많으셨어요.”
인증 샷도 찍으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지호는 롤 게이머 버블과 옵치 게이머 고윤민을 비롯해 프로 게이머들에게 친추 승낙을 받아 냈다.
“진짜 저랑 친구해 주시는 거예요, 진짜로?”
“저도 영광이죠. 뉴블랙이랑 게임 친추라니……. 언제 게임 한 번 같이 해도…….”
“허어어어어!”
언젠가 게임 한 번 하자는 말에 막내가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뻐했다.
철권 게이머 바퀴가 웃으며 악수를 했다.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운동 컨텐츠는 꼭 올리시는 거죠? 뉴블랙 TV에 스트레칭 꼭 올라오길 바랄게요.”
“네. 시간 되면 업로드 해 볼게요.”
효과가 굉장히 좋았는지 올 때만 해도 찌뿌둥했던 프로 게이머들의 얼굴이 상쾌하게 변해 있었다.
그렇게 프로 게이머들을 송별한 후.
제작사인 에어소프트 측으로부터 게임기 박스를 선물로 받았다.
“저희가 선물로 드리는 게임기입니다. 혹시 플레이 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재미있게 플레이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대개 지루하기 마련인 광고 촬영을 재미있고 보람차게 끝낸 덕에 서로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차분하게 악수를 하고 나서 촬영장을 나섰다.
어느새 해질녘이었다.
“끝이다.”
“끝!”
괜스레 하루를 열심히 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노을빛을 머금은 구름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부로 나는 프로 게이머들에게 게임을 가르친 사람이다.”
“그럼 나는 프로 게이머들에게 게임을 가르친 사람의 동생이다.”
“그러면 나는 프로 게이머들에게 게임을 가르친 사람의 동생의 형이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매니저들이 대기하고 있는 차량으로 걸어갔다.
“근데 이건 언제 나오려나?”
“편집하는 데 삼사일 정도 걸릴걸요.”
“조회수는 꽤 잘 나오겠지? 미튜브 광고 영상 쪽은 조회수가 얼마나 나오는지를 모르겠네.”
“뭐. 적당히 나오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꺄르르 웃었다.
* * *
광고 영상 촬영을 했던 주간은 여유로우면서도 행복한 주였다.
우선 빌보드 2주 연속 1위.
“빌보드 2주 연속 1위를 23번째 축하합니다!”
“와아아아아!”
동생들과 함께 틈 날 때마다 연습실에서 생일용 폭죽을 팡! 쏘면서 개코 원숭이 춤을 췄다.
“언제 축하해도 기분이 좋구나!”
“좋구나!”
혹시나 딱 한 번 1위하고 내려가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앞으로도 2주 정도는 1위가 너끈할 것 같다는 분석을 TF팀으로부터 들었다.
“그리고 축하할 만한 소식이 하나 더 있다. 우주야.”
“뭔데?”
“너희 다음 달 AMA 노미니 됐어.”
“오오오오!”
미국의 4대 시상식 중 하나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의 노미네이션 소식이었다.
1974년부터 시작된 나름대로 역사가 있는 어워즈였다.
메이저한 음악 시상식 중에서는 8, 90년대 들어서 시작한 VMA나 빌보드 어워즈에 비해 좀 더 역사가 깊은 편이다.
1959년부터 시상한 그래미 어워즈 다음 정도로 유서 깊은 포지션.
막내가 갸웃했다.
“근데 74년이면 그래도 빠른 편은 아니네요? 미국 시상식들 보면 막 100년은 된 것 같은 느낌인데.”
“오래된 거 맞는데?”
리혁이가 대답했다.
“74년이면 닉슨 워터게이트 터지던 시기야. 한국에서는 지하철 1호선 생기던 때인데.”
“겁나 오래 됐구나…….”
“용케 살아 있네.”
비교적 싱싱해 보였던 AMA가 가면을 벗고 주름진 얼굴을 드러내며 핫핫핫 하는 모습이 상상 됐다.
아무튼.
AMA는 시상식 중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중요시하는 시상식이다.
수상자도 대중 투표를 통해 가리는 어워즈이기에 우리가 수상할 가능성이 높은 시상식이기도 하다.
“수상 확률은 높게 점치고 있어.”
“오오오.”
“그리고 퍼포머 요청 들어왔거든. 무대 나와서 메트로 불러달라는데 어떻게 할까?”
“당연히 오케이지.”
고개를 끄덕인 석환 형이 일정표를 살폈다. 그러고는 한 가지 더 있다는 듯 말했다.
“참, 다음 달에 미국 백화점 퍼레이드에 참석할 의향 있어?”
“백화점 퍼레이드?”
“응. 여기도 스케줄이 들어오긴 했거든.”
“……?”
백화점 퍼레이드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이윽고 석환 형의 설명을 들었다.
“…그러니까 추수 감사절, 미국의 추석 같은 시기에 뉴욕에서 퍼레이드를 한다는 거지?”
“맞아. 역사도 되게 오래됐고.”
유명 백화점에서 주최하는 추수 감사절 퍼레이드라고 했다.
뉴욕시의 명물 같은 행사인데, 1924년부터 시작되어서 역사가 어마어마하게 길다나.
센트럴 파크부터 시작해서 백화점이 있는 거리까지 거대한 칠면조나 온갖 유명 캐릭터들이 손을 흔들면서 지나간다는데, 이걸 보기 위해서 300만 명이 나온다고 했다.
“우리를 퍼포머로 부른다는 거야?”
“퍼포머는 아니고 퍼레이드 행렬에 참석해 달래.”
석환 형이 자료 사진을 보여 주었다.
유명 가수 로건 스미스가 2000년대 초반에 빨간 산타 옷을 입고 손을 흔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런 식으로.”
“오오오.”
내가 물었다.
“되게 유명한 행사인가?”
“행사 자체는 유명한데 완전 유명한 스타들이 꼭 참석하는 행사는 아니야. 그렇다고 유명인들이 참석을 안 하는 건 아닌…?”
“아하.”
“어린이들 인기 때문에 초청한 것 같은데, 이건 어떻게 할까?”
“음…….”
동생들의 의향을 묻기 위해 시선을 돌리자 반짝반짝하는 눈빛들이 돌아왔다.
충분한 대답이었다.
“할게.”
“오케이. 초청을 승낙한다고 회신할게.”
“그런데 저 퍼레이드는 언제야?”
“어디 보자. 23일이니까…….”
달력을 한 장 넘긴 석환 형이 말했다.
“AMA 3일 뒤네.”
“아. 그럼 괜춘.”
고개를 끄덕이고는 퍼레이드라는 새로운 스케줄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비주가 물었다.
“그 밖에 다른 건 없어요?”
“응. 없어. 너희 마지막 콘서트 준비가 잘 돼가고 있다는 것 정도?”
콘서트 이야기가 나오니 공기가 잠시 진지해졌다.
이번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6만 명 규모로 이틀 동안 진행되는 마지막 앵콜 콘서트.
석환 형이 노트북으로 연락처 파일을 보며 물었다.
“이번에 가족들 다 오는 거 맞지?”
“응.”
“네, 저희 다 와요.”
리혁이도 부모님이랑 동생이 온다며 답했다.
올해 마지막 콘서트.
6만 명의 관객 속에서 우리 모습을 보게 될 가족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래. 거기까지 됐고…….”
그게 끝인지 석환 형이 손뼉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또 보자며 손을 흔들고 인사하려고 할 때.
“그리고 우주야.”
“응.”
석환 형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부터 예비군 잘 다녀와라.”
“…….”
“흐하하하하!”
오늘따라 이 형이 왜 이렇게 얄미운지 모르겠다.
* * *
예비군 훈련장.
“음?”
자가용을 주차하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훈련장에 도착한 남자들이 눈을 깜빡였다.
‘뭐야?’
훈련장 정문 밖에 카메라를 들고 모인 정체 모를 사람들이 가득했다.
곧이어 훈련장 안으로 들어서니 거기서도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고 있는 게 보였다.
“뭐예요? 누구 왔어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자, 들뜬 얼굴의 대답이 돌아왔다.
“우주! 선우주!”
“그 우주요?”
미친, 하고 입모양으로 말한 이가 까치발을 들었다. 두근거리는 마음도 들기 시작했다.
전 세계가 패션 아이콘으로 착각물을 찍고 있는 패션 테러리스트!
빌보드 1위 곡의 작곡가!
국민 아이돌!
머릿속에 촤르륵 타이틀이 떠올랐다.
‘대박, 여자 친구한테 말해 줘야지.’
그러고선 우주의 얼굴을 보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오, 저기 있다. 저기 있다.’
멀찍이서 우주선의 빛나는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 남녀라는 성별을 떠나 외계인도 저 미모를 본다면 촉수를 꿈틀거리며 흥분할 게 분명했다.
‘와. 존나 잘생겼네…….’
하지만 군복을 입고 모자를 쓴 선우주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흠칫하고 말았다.
“음?”
뭔가 그가 알고 있는 선우주와는 달랐다.
우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방송에서 늘상 꺄르륵- 꺄르르르- 하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발랄한 웃음과 햇빛을 품은 것처럼 반짝이는 눈망울.
하지만.
“…….”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우주는 달랐다.
세계 최고로 의욕 없는 눈빛.
미묘하게 삐죽 내밀고 있는 입.
불퉁하고 불손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짝다리를 짚고 있는 저 모습은…….
‘그냥 예비군이네.’
세상 의욕 없는 예비군의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자신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우주가 한숨을 내쉬면서 아련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언의 눈빛으로 전해지는 한숨과 괴로움.
그 눈빛을 받은 이들이 동질감 가득한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웃기 시작했다.
‘예비군은 예비군이지.’
요즘 들어 굉장히 멀게 느껴졌던 스타에게 다시금 친밀함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