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35화
나는 예전부터 어딜 가든 주도적으로 나서는 걸 좋아했다.
연습생 시절에도 무대를 꾸밀 때 의견을 취합하는 역할을 했고, TNT에 발탁된 뒤에도 마찬가지여서 리더 후보에 오르곤 했다.
아무튼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 나였다.
하지만.
“각 조 3번이 분대장입니다!”
이런 건 원치 않았다.
“…….”
손에 들린 분대장 완장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
어쩜 이 폰트도 마음에 안 들까.
하얀 글씨로 ‘분대장’하고 적혀 있는 글귀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으으…….”
예비군 훈련에 오면 우선 조를 구성한다.
조를 짜서 해야 하는 훈련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 이런 조장은 첫 번째 줄에 선 사람들이 당첨되기 마련이다.
일부러 약삭빠르게 줄을 세 번째로 섰건만 3번이 분대장이라는 말에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화이팅.”
같은 팀 아저씨들이 주먹을 쥐며 껄껄 웃었다. 자기 아니라고 좋아하는 표정들이다.
나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화이팅…….”
같은 조 아저씨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주었다.
“그래도 내일부터는 랜덤이라잖아. 힘내.”
“고마워요. 형.”
다른 사람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우주야. 힘내라!”
“예~!”
대화만 보면 친근한 사이 같지만 사실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다.
호칭이 이렇게 된 연유는 간단했다.
-우주ㅇ… 우주 씨.
-형, 아니, 우주… 님?
사람들이 나를 편하게 부르려고 하다가 흠칫하면서 뒤늦게 예의를 차리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냥 서로 말 편하게 하자고 했다.
우리 조 막내 예비군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재훈아.”
“네, 형.”
“인터넷에 꼭 후기 올려야 한다. 선우주랑 예비군 훈련에서 형 동생 먹은 썰… 이렇게 올려 줘야 돼. 실물 보니까 우주 최고의 존잘이라더라. 그의 인성에 감탄이 나온다더라.”
“꼭 쓸게요.”
상대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민 아이돌이라고 언론에서 띄워 줄 때마다 부끄럽고 민망한데 이럴 때는 또 좋다.
모르는 사람과도 형 동생 하며 10초 만에 절친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최고의 장점이다.
“…1번부터 100번은 다음 훈련장으로…….”
강당 연단에 올라온 교관이 오늘 교육이 어떤 순서로 진행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동안 시계를 살폈다.
빨리 끝나야 오후 3시 40분 정도라던데.
벌써부터 시간이 안 가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이걸 며칠 동안이나 해야 한다는 말이지…. 그냥 동원이 나을 뻔했던 걸까.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의자 끌리는 소리와 함께 의욕 없는 얼굴의 예비군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짱짱하다.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둘째를 떠올렸다.
쓰레기장에 핀 한 떨기 꽃을 보아도 ‘어머 꽃이 피었어요!’ 하며 해사하게 웃는 우리 둘째!
나도 그 긍정적인 마인드를 본받기로 했다.
“갈까요?”
병무청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것이다.
숙소-연습실-무대의 버뮤다 삼각지대에 갇혀 바깥 사람들과 소통이 힘든 것이 연예인이란 직업의 단점 아니던가.
반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예비군의 장점!
오늘 예비군을 기회로 삼아 대중들의 의견을 청취하기로 마음먹으며 활짝 웃었다.
“……?”
웃으면서 가자고 하는데 같은 조 사람들이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왜 그래요?”
“아. 이럴 때 보면 진짜 잘생긴 거 같아서.”
그 말에 내포된 의미에 내가 눈매를 좁혔다.
“그럼 평소에는…?”
“아. 뭔가 좀… 으으음… 그 뭐, 평소에도 잘생겼지.”
“…….”
“오. 나왔다, 우주선 표정.”
우주선 표정이 나왔다며 깔깔 웃는 이들에게 투덜대고는 이동했다.
그걸 시작으로 이야기할 틈이 날 때마다 조원, 혹은 여기저기 앉아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을 교류했다.
“영어 곡 나온다고 했을 때 기분이 상한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이잉? 그게 왜 기분이 나빠?”
“인터넷 보니까 미국병 걸렸냐고 막 그러는 사람들이 있길래…….”
“어허이!”
같은 조 사람들이 뭔 소리냐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런 거 다 쓸데없는 소리니까 듣지 마. 애초에 그런 데다 악플 싸지르는 놈들이 무슨 일반인이야. 악플러지.”
우선적으로 영어 곡에 대한 여론을 수렴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덤덤한 편인 것 같다.
‘미국 활동하는데 영어 곡 내는 게 무슨 문제?’ 라는 게 대다수의 의견.
뭐. 그보다는 우리 가수 활동에 막 그 정도로 관심이 없다는 게 맞는 말인 듯했다.
뉴블랙 노래가 나오면 일단 듣는다 정도.
그런 식으로 의견을 청취하니 제안들이 쏟아졌다.
“이제 영어 싱글도 냈으니까 인터내셔널 앨범을 내 보는 건 어때요, 형님?”
팝송 덕후라는 같은 팀 대학생이 말했다.
“그게 미국인 아닌 가수들이 진출하는 방식이잖아요. 영어 싱글 내면서 간 봤다가 인터내셔널 앨범으로 쫙! 월드 스타 되는 거죠. 크으.”
현재 우리 회사에서도 고려하고 있는 프로젝트기도 했다.
다만 일단 내년 봄에 나올 정규 앨범 준비가 먼저라서 후순위로 밀리고 있지만, 한 번쯤은 추진해야 할 기획이었다.
여기저기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메모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라서 나도 질문에 답을 해 줘야 하긴 했다.
“그거 패션 위크 런웨이 올라가면 느낌 어때?”
“정신 하나도 없어요. 그냥 진짜 덜덜 떨면서 걷는 거죠.”
“그런 것치곤 엄청 잘하던데…….”
“제가 실전에는 또 강해요. 하핫.”
적당히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 위주로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빌보드 1위 하면 기분이 어떠냐, 1위 한 다음에 예비군 통지서 받으면 기분이 어떠냐 등등.
마지막 질문은 진짜 사탄인가.
“그 뭐지. 르블랑 홍보대사 됐다면서.”
“아. 글로벌 앰버서더요?”
얼마 전에 보도된 나의 홍보 대사 소식도 귀에 들어왔다.
“그거 하면 르블랑 제품 살 때 할인되고 그래? 이런 게 궁금하더라.”
직장 다니는 아저씨들의 시선이 모였다.
“아뇨. 할인 같은 건 없어요.”
“에잉……. 그런 거 좀 해 주지. 하여간 유럽 놈들.”
본인들이 더 아쉬워하는 모습에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니 훈련도 쑥쑥 지나가는 가운데, 대망의 실전 훈련이 다가왔다.
“흐하하하하.”
“하하하하!”
수류탄 교장에 도착하면서 뭔가를 떠올렸는지 방탄모를 쓴 아저씨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순간적으로 얼굴이 후끈거렸지만 헛기침을 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임 속 자막.
[김덕순의남자 ☞ 김덕순의 남자 (수류탄)]
수류탄을 던지려다가 자폭해 버린 내 게임 영상이 떠오른다.
심지어 훈련을 통제하는 부사관과 병사들도 입가를 꿈틀거리고 있는 걸 보니, 정말 안 본 사람이 없는 듯했다.
“후우…….”
앞서 호명된 예비군들이 연습용으로 쓰는 파란색 수류탄을 던지면서 펑! 펑! 소리가 터졌다.
약하게 폭발하며 누런 연기를 뿜는 수류탄.
멀찍이 보이는 구덩이에 수류탄을 던지면 합격인데, 생각보다 어려운지 실패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음!”
지급 받은 파란색 수류탄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미튜브에서 보았던 미국 밀리터리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몸을 움직였다.
팔을 뒤로 젖혔다가 힘껏 던지기.
“오오오!”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간 수류탄이 구덩이 안에 안착하면서 사람들의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펑!
노란 연기를 뿜어내는 수류탄 연기를 배경 삼아 나를 구경하는 이들에게 느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습니다. 실전은 게임과 다릅니다.”
다들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리는 걸 보니 흐뭇하다.
이렇게 나도 훌륭한 예능인이 되어 가는 걸까.
자리에 돌아와 나를 바라보며 웃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기왕 게임 얘기가 나온 김에 할 말이 더 있었다.
“내일 저녁 6시.”
“……?”
“제가 프로 게이머들에게 게임을 가르쳐 주는 광고 컨텐츠가 다른 미튜브 계정에 올라옵니다.”
“그런 꿀잼이……!”
똘망똘망한 순정만화 눈망울로 설레어하는 아저씨들의 모습에 나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훌륭한 예비군 1일 차의 성과가 아닐까.
오늘 하루 참 보람찼다.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면서 주변 사람에게 시간을 물었다.
“그런데 지금 몇 시예요?”
“오전 11시요. 지금 절반 지나갔어요.”
“…….”
* * *
선우주가 예비군 1일 차와 2일 차에서 깨발랄하게 꺄하핫 하고 돌아다닐 무렵.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후기 글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2017년 동미참 1일 차 후기 : 선우주 봤어요!!!]
[동미참 1일 차: 연예인(?)을 보았다]
[누가 와서 악수하자길래 쳐다봤더니 선우주였음]
블로그에 올라온 후기 글들을 시작으로 SNS에서 선우주와 함께 찍은 인증샷을 올리는 수백 명의 사람들!
익명 커뮤니티에도 후기 글이 폭증하고 있었다.
[우주 형 앞에서 노래 불러봄]
제2의 케빈을 꿈꾸며 내 노래를 들어 달라고 했음
쥰내 열창함
-미친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뭐래?
-[작성자] 공부 열심히 하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호ㅋㅋㅋㅋㅋㅋㅋㅋ
-[작성자] 열창했는데 특유의 웃음? 그 표정으로 목 풀기는 다 끝났냐고 물어봄. 오늘부터 저 형 안티할 거임ㅅㅂ
-지가 못해 놓고 뭔 안티야ㅋㅋㅋㅋㅋㅋㅋ
-선우주면 아이돌중에서 노래 탑티어인데 무슨깡으로ㅋㅋㅋㅋ
-야 케빈은 존잘이기라도하지ㅋㅋ 군대 사진 보면 개잘생겼음
-인증없음 무다? 주작이다
-주작
각종 뻘한 실화들이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었다.
[우주한테 연예인 되고 싶다고 말함]
어느 쪽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예능인 쪽으로 진로 알아봐 줘서 상처 받음ㅠㅠ
역시 우주선 인성;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못생긴 탓이지 우주선 씨의 인성과는 무관합니다
-첫댓부터 ㅅㅂ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속보] 작성자 뼈 발골되어 발견.. 작성자 ‘연체동물이 되어 기뻐’
-첫 댓글에 통한의 1비추ㅋㅋㅋㅋㅋ
-이게 말로만 듣던 비추 실명제인가여
하지만 진위가 불분명한 실화들이 튀어나오면서 그것을 변주한 각종 유머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너네 선우주 신기 있는 건 아냐]
어제 예비군 훈련장에서 쌍권총 쏘는 훈련하다가 내 어깨를 보더니 귀신이 보인다고 함
액막이 하려면 스밍하라고 해서 스밍중임
메트로.. 메트로.. 메트로.. 지금 3년째 메트로 듣는 중이다
-ㅋㅋㅋㅋㅋㅋ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
-심지어 세줄 사이에 시점도 안 맞음ㅋㅋㅋㅋ
-쌍권총 드립만 아니었으면 긴가민가했을듯ㅋㅋ
-뉴블랙실화 판별법 ‘뭔 개소리야’ -> 루머, ‘뭔 개쌉소리야’ -> 실화
-그러니까 차이가 뭐임?
-사실 저도 모름 ㅈㅅ
-아무리 뉴블랙이라도 이건 좀-> (거짓), 근데 우주 or 중현 -> (참)
-우주 or 중현ㅋㅋㅋ 심지어 and도 아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유머글들을 보면서 수플레들이 깔깔 웃었다.
‘아. 재미있다.’
보통 연예인이 예비군 훈련을 가면 ‘예비군 짤’ 하고 올라오는 정도가 보통인데.
사소한 것 하나에도 온갖 유머글이 올라오는 것이 정말 웃음이 마를 일 없는 덕질이었다.
뽀송뽀송한 수플레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도 활기가 흘렀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이야깃거리가 있었으니…….
-근데 오늘 올라온다는 컨텐츠 뭘까..?
-우주가 프로게이머들에게 게임을 가르친다<< 보고 두 눈을 의심함
-나 너무 기대돼ㅋㅋㅋㅋㅋㅋ하
-6시에 어디에 올라온다는 거지
선우주가 프로 게이머들에게 게임을 가르친다는 컨텐츠.
수플레들뿐만 아니라 오늘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궁금증이었다.
‘어디지? 무슨 게임이지?’
그리하여 모두가 6시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인터넷에서 와글거리는 네티즌들의 반응을 살피던 에어소프트의 홍보팀장 정세연이 두근대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인간적인 감탄에서 나오는 두근거림이었다.
‘……선우주는 홍보의 신이다’
예비군처럼 화제성이 될 만한 이야깃거리 속에 툭툭 홍보를 자연스럽게 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홍보 담당자들의 귀감이라고 할 만했다.
SNS 실시간 트렌드에도 오른 ‘선우주가_대체_왜_프로게이머들을’이란 키워드를 보며 정세연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업로드 예약됐죠…?”
“예. 1분 남았습니다.”
“후우… 떨리네요.”
“후우우우…….”
뉴블랙의 첫 미튜브 광고 컨텐츠.
과연 그 반응이 어떨지 에어소프트의 직원들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 *
오후 6시.
미튜브에서 밍기적거리고 있던 한국인들이 미튜브의 홈 화면으로 들어갔다.
‘추천 영상에 뜰 거야.’
현재 뉴블랙 TV의 구독자 수가 정체된 이유.
이미 구독할 사람들은 다 구독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구독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이 알고리즘 추천 영상으로 바로바로 뜨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
바로 떴다.
[선우주에게 게임을 배워 보았습니다. (feat. 김중현의 건강 스트레칭)]
유명 게임사인 에어소프트에서 올린 동영상이었다.
조금 독특한 부제를 바라보던 한국인들이 미소를 지었다.
‘기대된다.’
선우주가 프로 게이머들에게 게임을 가르친다니,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초반 20초 동안 하이라이트 컷에 나오는 피트니스 게임기를 바라보며 ‘아!’ 하며 탄성을 터뜨렸다.
‘이거면 가능하긴 하네.’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이 광고 기획자를 칭찬했다.
‘컴퓨터 게임만 게임이 아니긴 하지.’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신선하다는 인상이 느껴졌다.
곧이어 영상에서 자료 화면이 흘러나왔다.
[아! 배영훈 선수! 오늘 물이 올랐네요! 러쉬 감각이 정말 탁월합니다!]
[버블! 역시 버블입니다! 저기서 킬각이 나오네요!]
[바퀴 선수, 정말 바퀴벌레처럼 질깁니다. 상대편 선수면 정말 답이 안 나오거든요!]
오늘 출연한 전현직 프로 게이머들이 레전드 플레이를 펼치고, 해설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자료화면들.
그러면서 게이머의 프로필 사진과 함께 약력들이 주르륵 흘러나온다.
그리고.
[선우주 선수! 최악의 플레이입니다!]
‘자료화면:TBC’라는 자막과 함께 망신스러운 플레이가 흘러나오면서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프로 게이머 우승자, 준우승자… 그리고 선우주.
갑자기 확 초라해지는 라인업이었다.
‘우리 애가 좀…….’
어디선가 들리는 듯한 웃음소리에 수플레들이 코를 슥 비비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나오는 오프닝.
화창한 하늘을 배경으로 스튜디오에 도착한 뉴블랙의 모습이 마치 관찰 예능의 한 장면 같다.
옷에 마이크를 장착하고 미리 게임을 플레이해 보려는 뉴블랙 멤버들.
우주 : 지금 바로 게임을 해 보면 되나요?
담당자 : 네네.
우주 : 오호. 요걸로.
졸개들이 우아앙 하면서 리더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주 : 뭐부터 할까? 추천 받을게.
비주 : 탁구요!
우주 : 탁구. 오케이.
곧바로 화면이 2분할로 나뉜다.
탁구를 하는 게임 화면과 리모컨을 들고 있는 선우주.
[자! 그럼 서브를 따라 해 보아요!]
친절한 내레이션과 함께 선우주가 서브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몸을 슥 숙이더니.
마치 주변에 바람이 고오오- 불 것처럼 표정이 진지해졌다. 탁구의 신이 빙의한 듯한 표정.
비주가 ‘어머!’ 하며 양손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01:47 고스트 탁구왕인가요ㅋㅋㅋㅋㅋㅋ
-뒤에 영혼이 보이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
-01:48 근데 이거 표정 너무 잘생겼다.. 으허헣
-나 혼자 헤벌쭉 웃나 해서 민망했는데 화면속 비주가 나처럼 웃고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우주 진심 루브르 전시하고 싶음
-프랑스: 문화재 ㄱㅅ ㅎㅎ
-윗댓보니까 갑자기 빡치네 ㅅㅂ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던 우주가 몸을 숙인 채로 리모컨을 휘둘렀다.
‘어라?’
뭔가 환영이 보이는 느낌이다.
보이지 않는 탁구공이 보이더니 그게 날아가는 모습까지 보이는 듯했다.
그러더니.
휘유유우웅!
게임 속 캐릭터가 스핀이 들어간 화려한 서브를 날렸다.
[어머.]
튜토리얼 내레이션이 수줍은 목소리를 냈다.
[혹시 이 게임을 미리 플레이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Yes/No]
우주가 No를 눌렀다.
그리고 그 순간.
쿠콰가가가가강!
굉음과 함께 튜토리얼 탁구장의 지붕이 무너지며 거대한 탁구 괴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응?”
검은 오라를 풍기는 탁구 괴인.
[이 몸은 탁구 마왕이시다!]
[싹수가 보이는 플레이어가 있다더군! 그것이 네놈인가?]
당황한 선우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팝콘 각을 잰 졸개들이 어디선가 과자를 들고 와 먹기 시작했다.
‘뭐야. 왜 피트니스 게임이 흥미진진한 건데.’
처음에는 ‘그냥 테니스랑 탁구 같은 거구나~’ 했던 사람들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컨텐츠를 시청하던 사람들이 올라가는 조회수와 게임 속 컨텐츠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는 걸 보니 벌써부터 각이 잡혔다.
‘일단 이걸 볼 때가 아니야.’
영상을 잠시 멈춘 사람들이 게임기 최저가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기 시작했다.
* * *
“으어…….”
잠시 연습실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뻐근한 몸을 풀고 있을 때였다.
“형!”
“응?”
핸드폰을 보고 있던 막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내게 내밀어 보였다.
“이, 이거 봐요.”
“뭔데.”
“우리 지난주에 게임 컨텐츠 찍고 왔잖아요. 그거 게임기 지금 죄다 품절됐대요!”
“……?”
뭔가 이상하다.
내 시간 감각이 이상한가 싶어서 리혁이에게 물었다.
“시계야.”
“왜요.”
“지금 몇 시니.”
“6시 17분이요.”
6시 17분이면 그 광고 올라온 지 아직 17분 정도밖에 안 되지 않았나.
내가 눈을 깜빡이는 동안 지호가 [품절]이라는 빨간 글씨로 가득한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량 넉넉하게 있었는데 우리 광고 나오고 갑자기 10분 만에 전부 다 품절됐대요.”
“…….”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는데요?”
“……?”
다 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