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39화
한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래도 조진 거 같은데…….’
겉보기로는 큰 변화가 없다.
짜증 나게 잘생긴 얼굴 위로 싱글벙글 미소를 띠어서 평소의 선우주라 할 만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잘 아는 절친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저것은 극도로 부들부들 떠는 표정이었다.
일단 눈에서부터 뭔 불꽃이…….
“저기.”
한조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반응.
“왜. 뭐. 왜.”
“…….”
완전 삐졌구나. 너.
“게임 못한다고 전 국민한테 놀림을 당하고 있는데, 친구라는 놈은 방송에 나와서 본선 간다고 한술 더 뜨고 있고.”
“그, 그건 방송이니까…….”
“방송용 표정이 아니던데? 내가 표정을 보면 다 알아.”
선우주가 그의 표정을 고스란히 따라 했다.
“자, 이게 너의 진심 표정.”
“…….”
반듯하게 웃는 미소를 따라 한 우주가 이번에는 다소 가식적인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게 너의 방송용 표정. 둘 중에 표정 비교를 해 볼까요? 비교를 해 볼까아아-?”
“…….”
부들대는 우주선을 바라보며 한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뭐라고 해명할지 고민하던 한조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처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죄송합니다. 아주 죄송합니다.”
눈을 가늘게 뜨며 째려보던 우주가 쯧 하며 말했다.
“됐어. 어차피 지난 일인데.”
‘이제 와서 쿨한 척하네. 겁나 부들댔으면서…….’
“어어? 뭐지? 방금 뭔가 굉장히 불손한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유, 아닙니다.”
‘귀신같은 놈.’
다행스럽게도 선우주는 평소의 선우주로 금세 돌아왔다.
한 발짝 물러난 한조가 지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쟤 왜 저래?”
“우주 형이 게임 못하는 것 때문에 엄청 놀림 받았거든요.”
“음?”
한조는 이상함을 느꼈다.
“놀림이야 평소에도 받고 있잖아.”
“이번에는 할머님까지 전화해서 너 게임 못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극대노했어요.”
“아…….”
할머님이 엮여 있으면 인정이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일 때, 막내가 간신배처럼 속삭였다.
“근데 그것보다는 형이 자기보다 게임을 잘해서 그런 거 같아요.”
“쟤보다 못하면 그건 게임 고자 아니야?”
“그렇긴 하죠. 우주 형은 고자니까.”
그들의 대화에 선우주가 고개를 획 돌렸다.
“너희 내 욕 했지?”
“아닌데.”
“아닌데요~? 귀신이 두 발 저려서 그런 거예요.”
시치미를 뚝 떼는 둘을 향해 선우주가 두 손가락을 눈에다 가리키며 지켜본다는 포즈를 취했다.
그걸 보면서 한조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방금 전 이야기는 잊은 거 같네.’
게임 때문에 한창 부들대던 선우주가 ‘오늘 녹음 잘 해봅시다~ 아주 잘!’ 했던 기억을 잊은 모양이었다.
한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했다.
‘오늘 녹음은 수월하겠어.’
하지만 스트릿 보이즈의 연습실 문을 여는 순간.
한조는 자신이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단장님이다!”
“게임 돌림픽에서 임팩트를 남긴 우리 민초단장님!”
‘썩을.’
바로 그의 동생들이 더럽게도 눈치가 없다는 점이었다.
선우주를 발견하고 하이에나처럼 일어나는 멤버들에게 한조와 기원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멈춰! 이 새끼들아!’
‘아니야. 오늘 아니란 말이야.’
그의 텔레파시가 닿은 걸까.
개구쟁이처럼 벌떡 일어난 감나무가 그들의 눈빛에 찡긋하며 답했다.
‘알겠어!’
그러곤 선우주를 가리켰다.
“흐하하하! 겜알못이다, 겜알못!”
“흐하하하하하!”
“와! 겜신 등장!”
못난이들처럼 들썩이며 웃는 멤버들의 모습에 한조가 관자놀이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빙긋 웃고 있는 선우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웃고 있는 입가 위로 투명한 눈동자에…….
‘또 불꽃이…….’
보이지 않는 불꽃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느 때보다도 환히 웃는 모습에 뉴블랙의 졸개들이 조심스럽게 그 곁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감나무가 소리쳤다.
“한조 형보다 게임을 못하는 단장님!”
“흐하하하!”
“와! 보고 감탄했습니다!”
한조와 기원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조졌다.’
‘저건 형도 아니야. 장작 같은 새끼…….’
아무래도 오늘 녹음은 쉽지 않아 보였다.
* * *
녹음실 의자에 앉아 손을 뻗었다.
“물이…….”
생수병이 없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녹음실 소파에서 부산스러운 소리들이 들려왔다.
“생수! 생수가 필요하다!”
“물! 선우주 님께서 물을 찾으신다-!”
우당탕탕 일어난 스트릿 보이즈 9명이 내게 생수 9병을 내밀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아닙니다.”
렉스가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저희는 오늘 단장님의 충실한 종이에요. 위 아 유어 서-번트.”
“그건 우리 역할인데…….”
역할을 뺏길까 봐 긴장하는 비주를 보며 웃고는 스트릿 보이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반짝반짝.
눈이 마주치자마자 환히 미소를 지으며 ‘우리 착해요’ 어필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 옆에서 같이 인위적인 미소를 짓는 한조에게 물었다.
“넌 대체 뭐라고 말을 전한 거야…?”
“있는 그대로.”
뭐라고 말을 전한 건지 갑자기 스보 멤버들이 공손한 태도로 나오고 있었다.
아이돌치고 우락부락한 몸 때문일까.
힙합 패션과 어우러지니 조직의 어깨들이 ‘큰형님 오셨슴까!’ 하면서 반겨 주는 분위기였다.
“……부담스럽게 그러지 말고요. 편하게 있어요.”
“예!”
다시 의자를 빙글 돌리고는 가사지를 살폈다.
[My Friend]
작곡 : 우주선
작사 : 한조, LB…
작곡에는 내 이름이, 작사에는 한조와 랩 라인 멤버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곡이었다.
마이 프렌드.
내가 작업했던 곡을 우리 프로듀싱팀이 스트릿 보이즈의 색깔에 맞춰 편곡한 노래였다.
곡 주제는 연습생 시절부터 투닥거리던 멤버들이 서로를 향해 전하는 메시지.
스보의 신규 앨범에 5번 트랙으로 실릴 노래였다.
-우리 곡을 돌아보니까 팬들을 향해 부른 노래나 스스로에 대해 부른 노래는 많은데,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 준 적은 없더라고.
그런 의도를 담아 가사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사지를 쭉 훑어보면서 어떤 식으로 녹음할지 계획을 짜고는 DNS 미디어의 엔지니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할게요.”
“예.”
엔지니어가 세팅을 하는 동안 심호흡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이번 프로젝트는 귀중한 기회다.
뮤지컬 영화의 OST, 솔로 가수, 걸그룹, 콜라보를 위한 발라드 등은 써본 적 있지만 다른 보이그룹을 위해 노래를 써본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힙합과 락의 색깔이 강한 음악이라 평소와는 조금 다른 도전.
또한 음악적으로도 성장할 기회였다.
고기만 먹으면 건강하기 힘들고 야채를 먹어 줘야 하듯이, 음악도 다채로운 분야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른 기획사들에게 제스처를 보여 줄 필요가 있어.
석환 형의 말을 떠올렸다.
스트릿 보이즈와 함께 하는 녹음은 다른 기획사들에게 보내는 외교적인 제스처이기도 했다.
저번의 송 캠프 곡을 뿌렸을 때처럼, 다른 기획사들과 잘 지내보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는 제스처.
굳이 그런 의사를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지나친 성공 때문에 현재 문제가 좀 있었다.
-[이슈Pick] 지나친 차트 점령.. 기획사들 말말말 “특정 가수와 팬덤의 힘이 너무 과해.. 시정 필요할 듯”
저번 걸그룹 서바이벌이 끝나고 스칼렛의 신곡이 나왔을 때도 있었던 반응이다.
쉽게 요약하자면 ‘뉴블랙이 다 해먹어 버리네? 신고합니다’ 같은 주장.
익명의 가면을 쓴 기획사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노래가 잘 되는 이유는 수플레들 때문이라나.
노래가 나올 때마다 ‘이거 우주선이네!’ 하며 수플레들이 밀어주고, 그게 또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면서 차트가 전부 다 뉴블랙과 관련된 노래로 도배가 된다는 불평이다.
솔직히 저게 말인가 방구인가 싶긴 하다.
유명세의 도움이 있는 것은 나도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아무리 유명해도 안 좋은 노래는 오래가기 힘드니까.
문제는 이런 주장이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영세 기획사들, ‘차트 개편’에 한 목소리.. “유명하지 않은 가수에게도 희망을”
-[일침 놓는 기자] “진윤서라는 가수를 아시나요?” ..어느 무명 가수의 눈물
-[리뷰] ‘다양성 없는 차트는 서서히 말라 죽을 뿐’.. J-Pop의 교훈을 되새겨 보아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계속해서 변주하고 반복하다 보니 ‘그런가?’ 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대체로 영세한 규모의 기획사들을 내세워 ‘뉴블랙 때문에 차트 진입이 힘듭니다’ 하는 기사 써 주고.
문화 산업과 관련된 국회 문체위 소속 국회의원이나 문체부에 해결을 촉구했다는 기사를 띄우며 ‘제발 소규모 기획사를 살려 주세요’ 하면서 눈물 흘리고.
우리와 앨범 발매 시기가 겹쳐서 바로 묻혔다는 신인 가수의 눈물 이야기도 한 번씩 올리는 등등.
직접 우리 이름을 언급하기보다는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있지만 정말 전방위적으로 공격이 오는 게 보였다.
-어디야?
어디서 자꾸만 공격하느냐는 내 물음에 석환 형이 명언을 해 줬다.
-다 한통속이지.
딱히 어디서 속셈을 가지고 저러는 게 아니란 소리였다.
차트의 금, 은, 동메달을 계속해서 쥐고 있는 우리가 꼴 보기 싫은 기획사들 한 스푼.
뒤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아이돌 팬들 한 스푼.
숫자는 적지만 강렬하게 활동 중인 우리 안티 한 스푼까지 합쳐진 삼위일체의 완벽한 조화.
여기에 잘못된 기사로 수플레들에게 욕을 먹어 앙심을 품은 기자들이 열심히 소식을 나르고 있다.
아직은 서서히 수면 아래서 언론 플레이를 하는 중이지만, 한 번쯤 수면 위로 올라와 불을 지피려는 조짐이 보이는 정도.
그랬기에 이게 이슈가 되지 않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다.
큰 이슈가 되더라도 대중들이 우리 편을 들어 줄 가능성이 높지만… 세상에 확실한 건 없으니까.
‘뉴블랙 차트 독점… 음?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고?’
…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슈가 커지면 그때는 불리하게 돌아갈 수도 있다.
일단 큰 관심이 없는 대다수 사람들은 연예계 이슈에서 언론이 말하면 그런가 보다 하는 편이니까.
언론은 불을 활활 지피는 걸 좋아하지, 우리 편이 아니다.
게다가 저번에 걸그룹 서바이벌 때 노골적으로 언플을 해서 실패한 이후에는 전략을 바꿔서 은밀하고 치밀하게 여론 조성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애초에 이슈가 되지 않도록 만든다는 것.
-어떻게 할래, 우주야?
-일단 우리 편부터 늘리자.
우스꽝스러운 말이긴 한데, 결국 이 문제는 우리가 우리 곡을 독점(?)해서 생긴 문제였다.
혼자 맛있는 도시락을 싸 왔다고 주변에서 ‘지만 먹나’ 하고 눈총을 주니, 포크로 소시지를 하나씩 콕 찔러서 건네주는 수밖에.
반찬을 얻어먹은 친구들은 우리 편을 들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회사가 요즘 DNS 미디어에게 ‘친하게 지내자’ 하며 윙크를 하는 분위기인 듯했다.
대표님도 그런 이유로 방문한 것 같고.
겸사겸사 시너지가 나는 작업이었다.
나는 친구들 곡도 직접 챙기고, 회사들끼리는 우애를 나누고.
“작곡가님?”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에 가사지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한조가 가사지를 든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들어가도 되나요?”
“예예. 들어가시죠.”
잠시 표정이 심각해 보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한조에게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바람 새는 소리처럼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긴 하다.
세상에 어떤 작곡가가 차트를 독식한다는 비난을 우려해 여기저기 곡을 뿌려야 한단 말인가.
황당한 일이긴 한데…….
문제는 그게 나도 납득이 갔다.
-망고 100 차트에서 장기 차트인 중인 곡이 열네 개야. 네가 작곡한 노래랑 너희 곡들 다 합쳐서.
-열네 개…….
14퍼센트.
7곡을 들으면 1곡이 우리와 관련된 곡이 나온다는 것이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저 수치면 말이 나올 만하지 않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녹음 부스에 들어간 한조에게 토크백 버튼을 누르고 말을 걸었다.
“한조 씨.”
-예.
“준비되셨습니까?”
-예. 준비되었습니다.
맑게 웃는 한조에게 나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 최고의 녹음을 하고 가야지.
* * *
“으으…….”
스트릿 보이즈의 멤버 아이피가 녹음 부스의 문을 열고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어어어…….”
목소리가 살짝 갈라지는 느낌이다.
아직 갈라진 건 아니고, 여기서 더 하면 갈라지겠다 싶은 정도인데. 딱 절묘한 타이밍에 녹음이 끝났다.
“얼른 와라.”
“아이고, 나 죽는다…….”
녹음실 소파에 먼저 널브러진 이들 옆에 그가 벌러덩 드러누웠다.
‘개빡세네.’
수록곡이라서 나름대로 가벼운 녹음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와, 천장이 빙글빙글 도네.”
“나는 속이 울렁거려.”
그리 긴 시간 들어가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어찌나 힘든지 식은땀까지 난다.
그저 노래하는 것인데도 짧은 시간 동안 한계를 맛보는 느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스보 멤버들이 시선을 돌려 꼿꼿하게 앉아 있는 우주를 바라보았다.
‘저 형은 안 지치나?’
벌써 4시간이나 지났다.
그런데도 물 한 모금 정도만 마셨을 뿐, 처음과 똑같이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집중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엔지니어들은 화장실을 서너 번은 다녀왔을 정도.
그럼에도 선우주는 녹음을 체크하면서 디렉팅을 하는 중이었다.
“기원 씨.”
-네. 형.
“발음 조금 더 신경 써서 불러볼게요. 톤은 좋아요. 톤은 좋은데 ‘ㄴ’ 발음 뭉개지 말고 확실하게 해 주세요.”
-네.
곧이어 개선된 모습을 보이자 우주가 작게 웃었다.
“좋아요. 메인 보컬인 이유가 있네.”
-감사합니다. 형.
“그런데 들어가는 타이밍을 조절할게요. 더 빨리 해야 돼요. 일단 ‘My friend’ 그 부분부터 다시.”
-넵. 알겠습니다.
완벽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무한 반복하는 선우주를 바라보며 스보 멤버들이 방금 전 일을 회상했다.
하나를 수정하면 또 하나를 수정하고 계속해서 되풀이를 하는 선우주에게 기준이 뭐냐고 물은 터였다.
그러다가 돌아온 답.
-색이 예쁘게 나올 때까지.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납득했다.
한 번 확인하라며 최종 녹음본을 들려줄 때마다 ‘오’ 하고 저도 모르게 끄덕였으니까.
그리고 신기한 점은 또 있었다.
“기원 씨.”
-네, 형.
“방금 파트 완벽했어요.”
-정말요?
“좋아요. 너무 좋은데 그렇게 부르면 안 될 거 같아요. 타이틀이랑 안 어우러질 거 같거든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죠?”
-네…….
“밴딩 좀 주의해 주시고요.”
수록곡이 전체적인 앨범과 어우러지도록 디렉팅하는 걸 보며 스보 멤버들이 감탄했다.
‘우리 타이틀 모르지 않나?’
타이틀곡을 안 들어 본 작곡가가 타이틀곡을 부른 가수에게 안 어울릴 거라고 하고 있다.
대외비인 스보의 신규 타이틀곡이 어떤 분위기인지도 말로만 설명을 들은 것인데도 대강 어떤 곡인지 짐작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우주의 말은 맞았다.
‘방금 전처럼 부르면 안 어울리긴 하지.’
옷을 못 입고 게임도 못하고, 성격이 다소 옹졸한 뿐이지.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정말 천재적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대단하긴 하다.”
“그니까.”
조금 빡셀 뿐… 좋은 곡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가수 입장에선 최고의 작곡가였다.
‘선우주만 빼고 가져오고 싶다. 우주선 & 주선우.’
본체는 별로 탐이 안 나지만 부캐가 탐이 났다.
우주의 뒷모습을 보며 속삭이던 이들이 조용해진 분위기에 두리번거렸다.
“근데 한조 형은 왜 말이 없…….”
컴백 준비에 고난이도 녹음이 겹치면서 입을 멍하니 벌린 한조가 기절한 채로 잠들어 있었다.
‘죽었네.’
‘아주 장렬히 죽었어.’
‘그래도 명예롭게 죽은 거니까.’
그걸 바라보던 스보 멤버들이 시선을 돌렸다.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있는 뉴블랙 멤버들을 향해서.
LB가 동갑내기인 리혁에게 착 달라붙어 넌지시 물었다.
“근데 원래 녹음 저렇게 빡세게 해? 우리 합동 무대 했던 때보다 더 빡세진 거 같은데…….”
“저리 가.”
달라붙은 친구를 휙 밀어 버리다가 자기가 소파 아래로 떨어진 리혁.
떨어지지 않은 척 여유롭게 웃던 리혁이 대답했다.
“그리고 저게 뭐가 힘든데?”
“안 힘들기는, 하다 보면 토할 것처럼 힘든데.”
막내가 쏙 끼어들어 속삭였다.
“저희는 토한 적 많아요.”
“아…….”
“중현이 형도 가끔 헛구역질 하는데.”
그렇구나. 이미 토하셨구나.
간만에 녹음 빡세다, 하고 있는데 ‘여유로워 보이는구나’ 하며 흐뭇하게 웃는 뉴블랙의 모습에 스보 멤버들이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졸개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구나.’
자신들이었으면 반란을 벌써 수십 회는 일으켰을 텐데.
저런 리더 밑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이들도 괴물처럼 보였다.
‘우리도 뒤처지면 안 되지.’
‘열심히 해야지.’
다음 달로 예정된 컴백을 상기하면서 다시금 긴장감의 끈을 조이는 스트릿 보이즈였다.
‘이렇게 뉴블랙이 쉴 때 우리가 실력에서 역전한다.’
리더를 따라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소파에서 각자 핸드폰을 하거나 놀고 있는 뉴블랙 멤버들.
스보 멤버들이 야심 찬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물었다.
“그런데 다들 바쁘지 않아? 스케줄 엄청 바쁘다고 들었는데 왜 같이 왔어?”
“아.”
막내가 말했다.
“원래는 각자 회사에서 연습하려고 했는데.”
했는데?
“회사에서 좀 쉬라고 출입카드를 정지시켜 버려서…….”
“…….”
“갈 데는 없고.”
“…….”
토끼가 잠든 사이에 야심 차게 역전을 해 보겠다고 결심한 거북이들의 마음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토끼가 잠이 들었다는 소식에 ‘하하! 방심했구나!’ 하며 웃었는데.
내비게이션이 ‘띠링! 전방 900km에 토끼가 있습니다’ 하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휴식을 하는 게 아니고 당하는 거였네…….’
리더만 미친 사람처럼 봤던 스보 멤버들이 뉴블랙 멤버들을 바라보며 훈훈하게 웃었다.
‘쉽지 않아. 국민 아이돌.’
‘안 해.’
‘국민 아이돌 너네 해. 너네 다 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비주가 밝게 웃었다.
“다 됐다.”
손에 쥔 바람개비 같은 것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 LB가 물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뭐 해요, 형?”
“우리 벌칙 만들었어. 우주 형이 1인당 녹음 시간 많이 오버한 사람들에게 벌칙 줄 거라고 농담했잖아.”
“그…죠?”
“그런 농담을 현실로 만드는 게 바로 우리들의 역할. 후후후.”
‘아니야. 그거 아니야.’
비주가 돌림판을 보여 주고 말했다.
“짜잔.”
다양한 벌칙으로 가득한 미니 돌림판.
그중에서 ‘선우주와 투샷으로 찍은 셀카 SNS 업로드하기’ 같은 벌칙이 적힌 것을 보며 스보 멤버들이 침을 삼켰다.
‘절대 안 걸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