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40)화 (74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40화

“좋다.”

턱을 괴며 녹음 부스 안을 바라보았다.

스트릿 보이즈의 멤버 유건이 싱잉랩을 하고 있다.

-작은 별 하나하나 모두가 거대한 우주

아름다운 초록색의 빛이 흘러들어 오면서 반주에 깔린 연두색의 소리와 어우러지고 있었다.

“네.”

토크백 버튼을 눌렀다.

“방금 완벽했습니다. 이걸로 갈게요.”

-나이스! 드디어!

유건이 주먹을 쥐고 기뻐하며 녹음 부스를 나섰다.

그러는 동안 지금까지 녹음한 곡 ‘My Friend’를 전체적으로 플레이를 해 보았다.

비교적 잔잔한 EDM 장르의 곡.

가벼운 기타 리프로 시작해서 트렌디한 드럼 비트가 얽혔는데, 청량한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한 곡이었다.

메인 보컬인 기원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노래에 스보 멤버들이 ‘오’ 하며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녹음 제대로 들어가니까 다르긴 다르네.”

“좋다…….”

가사를 쓴 당사자들이 몽글몽글한 미소를 지었다.

내 친구(My Friend).

이 곡은 말 그대로 내가 생각하는 ‘스트릿 보이즈’라는 팀을 음악으로 보여 주는 곡 중 하나다.

직접적으로 영감을 얻은 곳은 스보의 앨범 소개 문구.

-여기 아홉 소년이 있다.

초창기부터 올드 스쿨 힙합이라는 다소 마이너한 장르로 시작한 팀.

‘거리의 소년들’이라는 컨셉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힙합이라는 장르 외길을 걸어온 팀.

새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다른 장르를 시도하는 우리와 다르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는 노선이 내겐 존경스러운 부분 중 하나였다.

게다가 까다로운 평가로 유명한 장르라 처음에는 ‘그게 무슨 힙합이냐’며 비판을 받았는데, 데뷔 후 3년이 지난 지금에는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

과제는 산더미

어른들은 남의 편

세상은 망망대해

기댈 곳은 너 하나

연습생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을 쭉 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그리고 지금도 불철주야 노력하는 친구들.

이 곡을 들으면 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이 떠오른다.

닿을 듯 말 듯한 이상향을 찾아서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 힘겹게 노를 저어서 이동하는 이들.

바닷가의 웃음. 멀찍이 보이는 무인도에 환호하는 이들의 목소리. 파란 하늘 아래 가득한 밝은 소년들의 얼굴.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항로를 개척하는 이들의 이미지.

스보 멤버들이 호평을 했다.

“가이드 들을 때랑은 완전히 다르네. 우리 목소리랑 완전히 찰떡처럼 잘 어울리는데?”

“이래서 우주선, 우주선 하는 거구나.”

벌써부터 팬들 좋아하는 반응이 그려진다며 행복해하는 이들의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엣헴.”

“그러니까 다음에 밥은 형들이 사는 거예요.”

……왜 생색을 이놈들이 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우주선 보유 그룹’이라는 드립을 치면서 꺄르르 거리는 졸개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자. 그럼.”

DNS 미디어의 엔지니어 분들에게 마무리 작업을 부탁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는지 다들 눈이 반짝인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녹음은 이제 끝이에요.”

“와아아아아아-!”

팡!

중현이가 미리 준비해 둔 생일 폭죽을 터뜨리면서 스보 멤버들이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저 악독한 작곡 요괴에게서 벗어났다아-!”

“행복하다. 행복해.”

“와! 이제 그럼 작곡가님 욕해도 돼요?”

음? 기원이? 너 방금 뭐라고…?

한술 더 떠서 우리 막내들이 스보 멤버들과 악수를 하고 있었다.

“고생했어요. 그 마음 우리가 잘 알지. 사람을 무슨 고음 나오는 자판기로 취급을 하니까.”

“크으윽……. 역시 당해 본 사람이 잘 아는군요.”

“그럼그럼.”

이제 볼일 없다며 앞에서 욕을 하는 모습에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특히 이현조 씨가 신이 나서 ‘길 가다가 껌 밟아라!’ 하면서 저주까지 걸고 있다.

“형.”

그때, 비주가 내게 바람개비를 내밀었다.

날개마다 벌칙이 그려져 있는 도구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비주가 설명해 줬다.

“아까 녹음 시간 초과한 사람들 벌칙 주기로 했잖아요.”

“그랬지.”

“형이 벌칙까지 준비할 시간이 없을 거 같아서 제가 준비했어요!”

화사하게 웃는 비주의 말에 일제히 떠들던 이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

“…….”

침을 꿀꺽 삼키고 바라보는 이들을 둘러보며 씩 웃고는 손으로 바람개비를 톡 튕겼다.

핑그르르르.

빙글빙글 돌던 바람개비가 딱 내가 원하는 벌칙에 맞춰 정지한다.

“네.”

두려움에 떠는 이들에게 내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여러분.”

“…….”

“지금부터 벌칙을 랜덤으로 추첨할게요.”

*   *   *

스트릿 보이즈의 팬덤 콘크리트.

천상계인 수플레와 압도적인 체급 차이가 나긴 하지만 나름대로 인간계 최대의 팬덤을 가진 단체.

‘심심하다. 어디서 시비 안 걸어 주나?’

‘건드리기만 해 봐. 그쪽 팬덤에 불질러 버리겠어.’

‘안 건드려도 불 지른다.’

성향은 혼돈-악.

뉴블랙을 논외로 둔 채, 누가 인간계 최강이냐를 두고 2년 가까이 싸움을 거듭하면서 거칠어진 이들이었다.

-스보 오프 가면 다 늙은 사람들밖에 없대요~!

틈만 나면 늙었다고 디스하고 가는 틴스피릿의 자칭 ‘어린 팬덤.’

-대중성만 지표로 보면 원차가 갑 아님? 차트만 봐도 스보는 늅 아래 3대장 중에 최약체다 이 말이야.

대중성을 앵무새처럼 울부짖으며 스보의 차트 성적을 놀려 대는 원더 차일드의 팬덤.

17년도 들어 스트릿 보이즈가 뉴블랙 다음으로 치고 올라올 기미가 보이면서 견제는 나날이 극심해지고 있었다.

뉴블랙의 팬덤이 최근 들어 언론과 각종 안티 팬덤의 트집 잡기 등에 대처하고 있다면, 여긴 팬덤 간의 알력 싸움 때문에 매일매일 댓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덕질을 이어 가는 이유.

‘애들이 귀여우니까!’

커뮤니티나 SNS에서 기분을 구기다가도 애들 사진이나 무대 영상 하나만 보면 모든 게 사르르 녹아내렸다.

빡침의 총합보다 소소한 기쁨 하나가 더 클 때 덕질은 계속되는 법이다.

‘그러니 현식아, 새로운 떡밥을 내어 놓아라.’

그런 기도에 응한 걸까.

스보의 SNS에 새로운 사진이 업데이트 되었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나무다!’

거친 개구쟁이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순하고 바보 같은 모습으로 인기가 많은 메인 래퍼 LB.

그의 셀카를 바라보던 콘크리트들이 멈칫했다.

‘뭐야?’

LB가 우주선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수록곡 녹음을 위해 찾아와 준 우주 형!!! 고맙습니다!!!!!♡]

보정 어플을 썼는지 평소보다 눈이 더 또렷해지고 입술까지 붉은색으로 번들거리고 있는 나무.

거기까진 문제가 없었지만 옆이 문제였다.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은 보정 어플을 쓰면 더 과해져야 정상이거늘…….

‘뭐야. 왜 반짝거리는데…?’

어플의 도움을 받아 아예 한 단계 진화해 버린 우주선의 미모에 콘크리트들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히 LB도 어디 가서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외모였다.

하지만 바로 옆에 착 붙어 있으니…….

“…….”

콘크리트들이 단체로 흐린 눈을 하며 LB를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나무는 귀여우니까!’

그걸 시작으로 줄줄이 올라와 있는 선우주와 멤버 개개인의 셀카들.

멤버들이 ‘선우주와 사진 찍어서 올리기’ 벌칙에 걸려 찍은 사진들이었다.

콘크리트들이 이를 까득 물었다.

‘우주선…….’

이를 까득 문 채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왠지 모르게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자, 바로 포털에 걸린 기사가 보였다.

-뉴블랙 우주, 스트릿 보이즈 신규 앨범 작업 참여한다.. 네티즌 “대박”

후속 기사로 ‘스트릿 보이즈 신규 앨범은 언제?’ 하는 제목들이 주르륵 올라오고.

어디선가 나타난 어르신과 중년 남녀들이 선플 달기 운동이라도 하는 건지 댓글을 주르륵 달아주었다.

-화이팅입니다!

-스트릿 보이즈 음악 너무 기대되네요^^ 화이팅!

-응원합니다

-스트릿보이즈방송에서도정감가고호감가는모습으로너무좋았어요이번앨범도잘되길바랄게요화이팅

단순히 응원 댓글뿐만이 아니었다.

-허세 힙찔이들 또 앨범나오노ㅋㅋ

악플 하나가 나오자마자 비추 폭격과 함께 대댓글이 주르륵 달리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네가 이러고 사는 것을 아느냐. 쌀이 아깝다

-네놈 얼굴은 안봐도 비디오구나

-스트릿보이즈 팬분들 이런말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릴없는 골방의 모질이가 하는 말입니다

묵직하게 한 방 한 방 때려 주는 어른들.

악플러를 삽시간에 때려눕힌 이들을 바라보며 콘크리트들이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고 아이돌 팬들이 모인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릴 때.

오늘따라 눈에 띄는 글이 더 있었다.

[근데 미국병은 진짜 걸리면 답이 없는 듯..]

이런저런 다른 사례를 언급하면서 주어가 없는 척하지만 뉴블랙을 까기 위한 빌드업을 하는 글.

그곳에 신랄하게 댓글을 쓴 콘크리트가 흥 하며 끄덕였다.

‘어림도 없지.’

그러고는 근처에서 몽실몽실 풍선처럼 둥둥 떠다니는 수플레들을 바라보며 혀를 쯧 찼다.

‘거대하기만 하지. 저거 다 물몸이야.’

‘옛날엔 멋지게 잘 싸웠는데…….’

‘평화가 길어지면 국방력이 쇠퇴한다더니.’

반박도 제대로 못한다며 흥 하던 콘크리트들이 대신 실드로 악플러들을 퉁탕탕탕 때렸다.

덩치가 크고 힘도 세지만 왠지 부족하고 모자란 친구를 지켜 준 듯한 기분.

그리고 갑자기 어디선가 들어오는 지원사격에 수플레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뻐했다.

‘게임기 회사 직원들이구나!’

늘상 어디선가 도움이 들어오기에 ‘이번에는 게임 업체인가?’ 하며 지레 짐작하는 수플레들이었다.

그저 기쁘게 박수치며 좋아할 뿐.

그런 가운데 스트릿 보이즈의 기획사인 DNS 미디어도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것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이야…….”

단지 뉴블랙 이름 석 자가 들어갔을 뿐인데 기사 숫자부터가 달랐다.

홍보팀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이번에 그 게임기도 ‘뉴블랙 게임기’라고 이름 붙고 나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면서요.”

“사람들이 진짜로 기사를 읽어 주네?”

“홍보 자료 백만 개 뿌리는 거보다 뉴블랙 하나가 더 효과적이에요.”

홍보 문구 한 줄이라도 읽게 하려고 별의별 일을 하는 이들에겐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DNS의 직원들이 감탄하고 있는 한편.

대표실에 홀로 조용히 앉아 있는 임현식 대표도 기사를 살펴보며 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으음…….”

테이블 위에 올린 손가락이 리듬감 있는 소리를 냈다.

뉴블랙과의 협업을 통해 놀라운 화제성을 보여 주고 있는 기사.

그리고 탁자 위에 놓인 레몬 엔터의 제안서를 번갈아 바라보던 임현식 대표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것 참.’

자기들이랑 동맹 맺자고 적혀 있는 제안서의 내용을 다시 한번 훑어본 임 대표는 고민을 거듭했다.

“후우…….”

임 대표는 핸드폰에서 [대머리]라고 되어 있는 연락처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   *   *

“잘 가!”

“다음 달 망고에서 봐유-!”

주차장까지 배웅을 나와서 손을 흔들어 주는 이들에게 우리도 손을 마주 흔들어 주었다.

우리 막내가 쩌렁쩌렁한 목청으로 외쳤다.

“앨범 대박 나세요오오오!”

“와아아아-!”

여기저기서 발랄한 외침이 오간다.

똑똑.

내가 앉은 자리의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한조가 씩 웃으며 뭔가를 들고 있었다.

“뭐야?”

창문을 열자 한조가 자그마한 상자를 건넸다.

“얼마 전에 해투 다녀오면서 사 온 간식들.”

“오, 감사.”

“아껴 먹어라. 귀한 거니까.”

“생색은.”

픽 웃고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주먹을 맞부딪치고 뒤로 물러난 한조를 비롯해 스보 멤버들에게도 나중에 또 보자고 손을 흔들었다.

곧이어 우리가 탄 차량이 멀어지면서 친구들의 모습도 멀어졌다.

“으어…….”

다섯 시간 넘게 앉아 있어서 그런지 허리가 시큰시큰하다.

순간적으로 피로가 몰려오면서 어질어질한 느낌.

“괜찮겠어요?”

비주가 물었다.

“조금 쉬었다가 갈까요?”

“아냐.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오늘 하루에 다 처리하고 말겠어.”

핸드폰 일정표에 적힌 [스트릿 보이즈 녹음]에 완료 버튼을 누르고는 다음 일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틴스피릿 녹음]

역시 하루에 다 해 버린다는 건 욕심이었나.

하지만 스스로 스케줄을 이렇게 잡아 버렸으니 누굴 원망하랴.

뻑뻑한 눈에 인공눈물 한 방울을 넣고는 눈을 감았다. 따끔따끔하면서도 묵직한 통증이 몰려온다.

“으으으으…….”

“누가 일정을 이렇게 잡아요? 하루 동안 녹음 두 탕 뛰는 작곡가가 어디 있어요?”

“에이, 잔소리 듣기 싫어.”

걱정 어린 잔소리를 퍼붓는 리혁이에게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눈을 뻐끔뻐끔 뜨다가 중현이에게 물었다.

“중현아. 눈이 피곤할 때 좋은 스트레칭이나 동작 있니.”

“네. 있어요.”

눈을 감자 불경처럼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눈을 감은 채로 의자 시트에 몸을 파묻으세요. 아주 깊숙이… 내가 밭에 심어진 고구마다. 고구마다…….”

그래. 나는 고구마.

밭에 묻힌 고구마를 상상하며 시트에 몸을 뉘였다.

“그리고?”

“어깨를 시작으로 온몸의 근육을 하나씩 풀어 주세요. 어깨의 긴장을 내려놓고 심호흡 후- 한 번.”

“후우우…….”

“이제 온몸의 근육을 하나씩 풀어 주는 거예요. 어깨를 시작으로 발끝까지…….”

온몸이 노곤노곤해진다.

눈을 감은 채로 나른하게 물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눈이 풀리는 거야?”

“네, 그대로 자면 돼요.”

“……?”

눈을 떴다.

“눈의 피로를 풀어 주는 동작이라며?”

“네. 그래서 잠자라고 해 준 건데요.”

눈의 피로를 푸는 데는 잠이 답이라고 하는 중현이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잠 말고 다른 건?”

“없는데요.”

“…….”

“MOP 엔터테인먼트까지는 그래도 꽤 걸리는데요. 좀 자는 게 어때요. 형?”

“괜찮아. 그 정도로 안 피곤해.”

거짓말이었다.

안 피곤하다기보다는 요즘 들어 잠이 잘 안 온다고 해야 되나.

분명히 몸은 피곤하다고 소리를 질러 대는데 뇌가 잠을 자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새벽 3시, 4시를 넘겨서 6시쯤 돼서 정말 못 버티겠다 싶을 때에 겨우 잠에 든다고 해야 되나.

조금 일찍 잠에 들려고 하면 괜히 하루를 허탕친 것처럼 죄책감이 들고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잠이 잘 오는 우유라도 먹어 봐야 되나.”

“요즘 잠이 잘 안 와요?”

고개를 획 들어서 물어보는 비주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가끔 잠이 안 올 때가 있어서.”

“그래요?”

“별거 아니야. 진짜로.”

위염 이후로 무슨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축축하게 뜨는 조무래기들에게 손을 저으며 걱정을 일축시켰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 너희도 요새 잠 별로 못 자지 않아?”

“가끔…?”

가끔이 아니라 나랑 비슷한 수준이었다.

새벽에 잠이 안 와서 화장실에 살금살금 걸어갈 때면 각자의 방에서 소리들이 들려왔다.

지호가 대본 리딩하는 소리.

리혁이가 혼자서 노래 틀어 놓고 독서하는 소리, 중현이가 밤에 화초에 물 뿌리는 소리.

비주가 1층 소파에 앉아서 허공을 보며 손끝을 이리저리 휘둘러보며 뭔가 발레 같은 동작을 취하던 것까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들 비슷한 증상이 좀 있는 것 같다.

“일단 틴스 녹음 생각이나 하자.”

고개를 저으며 웃고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MOP 엔터…….”

멀끔한 배경의 사옥 사진이 보인다.

배우 출신인 박민오 대표가 세운 기획사로 흔히 말하는 4대 기획사 중에서는 가장 늦게 설립됐다.

하지만 늦게 출발한 역사와 달리 현재는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기획사였다.

마치 고구려, 백제, 신라 순으로 건국이 됐지만 마지막에 뒷심을 발휘한 신라 같은 포지션이다.

MOP의 특징은 비주얼.

대표 비주얼 그룹 틴스피릿과 최근 걸그룹 원탑으로 꼽히는 세레니티까지 정말 미남미녀들이 가득하다.

다른 기준 하나 없이 오직 잘생기고 예쁘면 뽑히는 기획사다. 트레이닝은 그다음이고.

“아, 그러고 보니까 형도 예전에 MOP 갈 뻔했다고 하지 않았어여?”

“응. 갈 뻔했지.”

막내가 웃었다.

“그때 갔으면 틴스피릿 우주 됐겠네요.”

“……그, 그런 끔찍한 소리를.”

지금 졸개들 케어하는 것도 바쁜데, 사춘기가 늘그막에 찾아온 미소년들의 멘탈 케어라니.

상상만 해도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 새끼가 먼저 시비 걸었어요! 형!

-뒤지고 싶냐?! 얘가 먼저 도시락 통에서 제 숟가락 가져갔다니까요! 우리 엄마가 나 생일 선물로 준 거라고! 시발!

-와, 싸운다. 싸워라.

-싸움? 한 번 싸워 보셈. 누가 이기나 보자.

사춘기 소년들의 중재를 맡으며 등골이 휘는 틴스피릿 우주를 생각하니 동생들이 선녀처럼 보였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동생들도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틴스피릿으로 형이 가 버린 세계…….”

잠시 적막이 흐르고 훈훈한 미소가 오갔다.

“사랑한다. 얘들아.”

“저두요. 힛.”

따스한 웃음이 오가는 동안 MOP 엔터의 사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오. 왔네요?”

MOP 사옥에 도착하자마자 뚱한 얼굴의 미소년 여섯이 마중하러 나왔다.

표정은 뚱한데 왠지 모르게 들떠 보인다.

자기 집에 친구가 놀러 온 것처럼 신나 보인다고 할까. 걸음걸이부터가 둠칫둠칫이다.

“애들 신났네요.”

틴스피릿 매니저 분에게 속삭이자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애들이 친구 데려온 건 처음이거든요.”

“아하…….”

‘절친이 우리 학교에 놀러 왔다!’ 같은 상황인 모양이다.

휘연을 필두로 틴스 멤버들이 엣헴 하면서 우리에게 MOP의 사옥을 소개시켜 주기 시작했다.

비주얼로 유명한 기획사답게 어딘가 환상의 동화 나라에 놀러 온 것 같은 인테리어로 가득했다.

“여기는 화장실입니다! 호텔 화장실보다 더 좋아요. 수압도 졸라 짱짱해서 세수하려다 샤워까지 하게 됩니다.”

“오오…….”

“여기는 정수기!”

“오오오오!”

“여기는 스낵바!”

“오오오오!”

직원들을 위한 각종 복지시설을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널찍한 방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건 저희 대표님이 이번에 자기가 쓰려고 산 건데요. 바로 초강력 안마 의자입니다!”

“오?”

“한 번 앉아보시죠. 형님. 저희도 극락 갔습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안마 의자에 몸을 뉘이자 휘연이 버튼을 눌러 주었다.

지이이이이잉.

몸이 뒤로 넘어가면서 안마의자의 롤러가 어깨를 문질문질하기 시작했다.

“오오오…….”

50년 경력의 전문 마사지사가 기계에 빙의한 것처럼 안마 의자가 내 몸을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어우… 이거 잠이 솔솔 오네.”

“잠이 잘 와요, 형?”

“어, 대박인데? 너희도 한 번 써봐.”

그 말에 동생들이 핸드폰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괜찮은데?

“좋죠, 행님?”

“대박이다. 으어어어… 그래. 거기…….”

달달달달 떨리는 안마 의자 위에서 나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동생들한테 하나씩 사 주면 좋을 거 같았다.

*   *   *

그날.

고급 안마의자 브랜드의 본점에서 주문을 확인하고 있던 직원이 눈매를 좁혔다.

‘……뭐지?’

안마의자 주문이 뭔가 이상했다.

‘레몬 엔터’라고 되어 있는 주소로 최고가 라인의 안마의자 주문이 5개나 중복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주문자들의 이름이었다.

김비주 [LDX-5900] — 5개

김중현 [LDX-5900] — 5개

서리혁 [LDX-5900] — 5개

선우주 [LDX-5900] — 5개

왕지호 [LDX-5900] — 5개

‘뭐지, 이 의좋은 형제는.’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야 하나 번민에 휩싸이는 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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