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41화
확실히 MOP 엔터의 복지 수준은 대단했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과자를 꺼내 먹을 수 있는 스낵바를 시작으로 SNS 감성 충만한 사내 카페까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저희 밥도 맛있어요.”
“연습생 때도 맨날 밥 먹으러 왔거든요.”
이웃들이 호언장담을 하며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얼마나 맛있기에 저러나 싶었는데, 구내식당 앞에 도착한 순간 마법 같은 냄새가 흘러 들어왔다.
“이, 이건…….”
막내가 코를 벌름거리며 외쳤다.
“최소 1++ 등급의 한우가 구워지고 있는 냄새예요.”
“한우……!”
틴스피릿과 세레니티로 돈을 많이 벌었다더니, 역시 4대 기획사는 다른 건가! 하고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리혁이가 식당 앞 메뉴판의 영양표를 가리켰다.
“미국산이라는데요?”
“…….”
“…….”
틴스피릿 멤버들이 입을 꿈틀거리며 비웃었다.
고도로 발전한 미국산과 한우는 구분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구내식당으로 들어섰다.
“어……?”
“뉴블랙이다!”
웅성웅성.
우리와 정면으로 마주치고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이는 사람, 저도 모르게 손을 흔들다가 멈칫하는 사람, 누군가의 말에 멀찍이서 힐끔 쳐다보는 사람 등등.
다양한 반응 속에서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식사들 맛있게 하고 계신가요?”
“예예.”
“저희 밥 얻어먹으러 왔습니다!”
미튜브용 카메라를 내밀며 막내가 물었다.
“밥 맛있나요?”
“맛있습니다. 우리 회사 최고의 복지는 밥.”
어느 직원 분이 엄지를 들고 하는 말에 절로 기대감이 든다.
하나둘 몰려들어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고는 바로 식판을 들고 튀어 갔다.
“와…….”
호언장담할 만했다.
탐스러운 밥이 수증기를 훅 뿜어내고, 나물 무침은 기름이 적절하게 번들거리며 광채를 뿜어냈다.
그리고 미리 구워져 있는 고기들까지…….
게다가 맛까지 좋았다.
“허허허허허.”
없던 애사심도 생길 맛이었다.
맞은편에서 식판 위의 닭가슴살을 먹거나 아메리카노만 쭉쭉 빨아먹던 미소년들이 눈을 빛냈다.
“어때요. 맛있죠?”
“구내식당이 아니고 나가서 사 먹는 맛인데? 진짜 맛있다.”
틴스피릿 멤버들의 어깨가 한라산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커피 얼음을 으깨던 하현이 으스대듯 물었다.
“4대 기획사 중에서 저희가 제일 맛있죠?”
“음…….”
“형들은 한 번씩 다 가 봤잖아요. TJ랑 KM이랑.”
“SNH는 못 가보긴 했는데.”
맛 비교를 해 달라는 틴스피릿 멤버들의 말에 주변에서 분주히 젓가락을 놀리던 MOP 엔터 직원들의 손이 멈췄다.
주변을 돌아보자 자부심과 자신감이 가득한 눈들이 기대를 품고 있다.
“으음…….”
잠시 고민을 하고 물었다.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객관적으로요. 정말 가감 없이! 가식적으로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저희.”
“그렇다면야…….”
내가 중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 곰슐랭.”
“네.”
“곰슐랭 평론가가 보는 기획사별 밥 맛은 어떻습니까?”
곰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체적으로 다 맛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우열을 두자면 고기는 KM 엔터가 제일 맛있고, 김치는 TJ 엔터. 야채나 밑반찬은 MOP 엔터가 제일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군요.”
“우리보다 더 맛있다고요?”
발끈하는 이들에게 막내가 말했다.
“KM 엔터는 셰프님이 직접 앞에서 고기를 구워 주시던데.”
“…….”
맛있게 고기를 먹고 있던 MOP 엔터의 직원들이 먹던 고기를 내려놓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TJ 엔터는 저번에 한식 방송에서 우승한 김치 명가랑 계약을 맺었다는데, 김치가 엄청 맛있구.”
“…….”
자신들의 김치를 바라보며 MOP 엔터의 직원들이 또 한 번 생각에 잠긴다.
살짝 시무룩한 분위기.
나와 비주가 잽싸게 나서서 말했다.
“근데 밑반찬은 여기가 제일 맛있는 거 같아.”
“이야, 이거 대박이네. 나물이…….”
반짝반짝.
직원들과 틴스피릿 멤버들의 얼굴에 다시 꽃이 피기 시작했다. 회사의 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모양이다.
동생들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직원 분들 표정이 되게 밝네.’
‘그러게요.’
지금까지 방문한 기획사 중에서 가장 복지가 좋아 보였는데. 그에 걸맞게 식사하는 직원 분들의 표정도 좋아 보인다.
지호가 고기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번에 교양으로 들은 경영학 수업에서 그런 거 봤어요. 직원이 행복해야 능률이 오른다고.”
“맞는 말이야.”
“우리도 신사옥 이전하면 구내식당 만들자고 할까요?”
비주의 말에 좋은 아이디어 같다고 반색할 때.
틴스피릿 멤버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뭐야~”
연후가 훗 웃었다.
“레몬 엔터는 구내식당 없어요?”
“응.”
MOP 엔터 직원들의 어깨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럼 점심밥을 어디 가서 먹어요?”
“고깃집.”
“……?”
“고깃집에서 각자 1인분씩 된장찌개랑 해서……. 근처에 집밥 먹을 데가 별로 없긴 하거든.”
올라갔던 어깨들이 추우욱 내려갔다.
“누가 고깃집에서 점심을 먹어요.”
“먹더라고.”
“근데 그럼 다들 사비로 먹는 거예요?”
“아니, 회사에서 돈 다 나오지. 직원 분들은 구내식당 정도 가격만 내면 돼.”
“와…….”
휘연이 모자를 고쳐 쓰며 물었다.
“레몬 엔터 사옥 주변이면 뉴리단길이잖아요. 거기 음식점들 엄청 유명한 데 많던데.”
“그래?”
“누나가 다녀왔는데 맛집 엄청 많대요.”
막상 뉴리단길이 된 이후에는 주변을 돌아다닌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회사 주변에 나가기만 해도 단체 관광객들이나 놀러 온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밀고 그래서.
그나마 요즘 중국 관광객이 뜸해졌다는 소식을 들어서 한산해질까 싶었는데 어림도 없었다.
아무튼…….
“복지라.”
MOP 엔터의 구내식당에서 와서 밥을 먹으니 복지라는 키워드가 떠오른다.
확실히 밥심으로 일한다는 말이 맞다.
밥을 잘 먹어야 직원 분들도 더 흥겹게 일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회사 사람들에게 뭘 더 해 주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그러니 프로듀싱 팀과 함께 즐거운 회식을…….”
“당신이 가는 순간 ‘즐거운’이란 수식어를 빼야 할 거 같은데요.”
리혁이의 말에 지호가 보탰다.
“작곡가 분들 고기가 코로 들어갈 듯. 코로 츄르르릅.”
“형 저번 회식 때도 밥 먹으면서 계속 작업 얼마나 진척됐냐고 물어보고 그러지 않았어요? 납기일 맞출 수 있냐고 물어보고…….”
“회식이 재미있는 이유: 자기가 상급자임.”
그냥 돈만 보내고 자기들끼리 먹게 하라는 졸개들의 말에 알았다고 하고는 투덜댈 뿐이었다.
그래도 아쉬워서 졸개와 이웃들에게 물었다.
“근데 회식하면서 같이 음악 얘기하고 그러면 재미있지 않을까?”
“저기.”
틴스피릿 멤버들이 진지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형님.”
“왜?”
“자중하십쇼.”
“…….”
졸개들이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 * *
-우주선 프로듀서님! 충성충성!
-감사합니다아!
영상 통화 너머로 나상윤 팀장님의 홀쭉한 얼굴이 들어왔다.
-우주야. 네가 없어서 정말 아쉽다.
“진심으로요?”
-아니.
고깃집에서 술판을 벌인 작곡가들이 꺄르르 웃었다.
-너무 좋다아아!
-프로듀서님! 이런 회식은 환영이에요오-!
“예예. 맛있게 드세요…….”
내가 없다고 너무 좋아하는 게 얄밉긴 했지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송 캠프부터 시작해서 스트릿 보이즈와 틴스피릿의 곡 작업까지, 우리만큼이나 숨 가쁘게 달려온 작곡가들이었다.
마음껏 마시고 달리라는 말에 작곡가들이 소리를 질렀다.
-끊었어요? 끊었어?
-잠시만.
-건배사 합시다! 우주선이 없으니까?
-좋다아아아~!
“안 끊었어요.”
-히끅!
딸꾹질을 일으키는 작곡가들을 향해 나중에 보자며 웃어 주고는 통화를 종료했다.
“그럼 저희도 가 볼게요. 형.”
“이따 보자.”
동생들에게도 손을 흔들었다.
내가 녹음을 하고 있는 동안 졸개들은 ‘4대 기획사 탐방기 III - MOP 엔터편’이란 컨텐츠를 찍을 예정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없으니 동생들이…….
“우주 형이 없어졌으니 이제 누가 제일 잘생겼냐고 물어볼 수 있어여!”
“대박!”
멀어지는 졸개들을 쓸쓸하게 바라보고는 녹음실로 들어섰다.
“힘내십쇼. 행님. 가장이란 게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고맙다…….”
리더인 휘연이 공감 간다는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슬픔도 잠시.
오늘 녹음에 신경을 많이 썼는지 삐까번쩍한 장비들이 가득한 작업실이 주어졌다.
콘솔기기와 스피커 등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소파에 앉아 있는 틴스피릿 멤버들을 호명했다.
“하현 씨 먼저 들어가세요. 그다음은 은겸 씨가 들어가고… 파트 분배 순서 그대로 갈게요.”
“예.”
녹음실 안에 들어선 하현이 헤드폰을 끼고 목을 풀기 시작했다.
-음.
“왜 그러세요?”
하현이 녹음 마이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녹음 마이크 위치가 좀 불편한 거 같아서.
어떻게 조정해 주냐고 묻기도 전에 틴스피릿 멤버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저저 건방진 새끼!”
“불편하면 네가 자세를 고쳐!”
“꼭 실력 없는 새끼들이 도구를 탓해요. 장인이 칼을 들면 무를 써는데!”
멤버들의 아우성에 하현이 입을 댓발 내밀고 말했다.
-아… 드럽게 쫑알쫑알거리네. 조정하면 될 거 아니야.
티격태격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가사지를 바라보았다.
곡 제목은 <던져>.
‘All In’과 ‘던져’ 중에서 선택된 이름이라고 했다.
틴스피릿의 이번 앨범은 카지노와 도박 컨셉이다.
Every time every day
난 모든 걸 걸어
타이틀곡부터가 이런 느낌이라나.
매 순간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베팅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메시지가 바로 이번 앨범에서 전달하고 싶은 부분이라고 했다.
타이틀곡을 보조해 주는 역할인 수록곡인 <던져>도 그와 비슷한 메시지다.
-깊게 고민하지 마. 한 번쯤은 네 모든 걸 던져 봐.
유쾌한 분위기로 ‘한 번 가 보자~’ 하는 곡.
뭐, 여기까지는 MOP 엔터의 기획팀이 만들어 낸 메시지나 주제, 컨셉 등이고.
스보를 떠올리며 썼던 와 달리 <던져>는 주제보다 기술적인 부분에 더 치중한 곡이다.
-저희도 고민이 많죠.
예전에 휘연이랑 포도 주스를 들이켜며 진지하게 나눈 이야기.
-저희가 12년도에 시작할 때만 해도 평균연령이 15세였잖아요? 이제 평균이 20세가 됐는데… 여전히 뭔가 애새끼 같은 이미지 같고. 좀 더 깊고 성숙한 느낌을 내고 싶거든요.
평균이 스무 살이 되어 가고 있는데 계속해서 소년소년한 것은 곤란하지 않느냐는 고민.
그리고 보컬에 대한 고민.
-6년차쯤 되니까 실력 인정에 대한 갈망도 더 강해졌고요.
-무슨 소리야? 너희가 무대를 얼마나 잘하는데.
-말씀은 감사합니다. 행님. 근데 춤은 알아주는데… 노래 쪽은 좀 안 알아봐 주는 느낌이거든요. 저희가 곱상하게 생긴 것도 그런 편견에 좀 한몫하고.
틴스피릿은 실력적으로 대단한 팀이다.
특히나 6인 모두 춤에 재능이 있어서 아크로바틱한 안무까지 자유자재로 소화하는 편이다.
군대에 있을 적에 TV에서 본 신인 아이돌 틴스피릿이 고난도의 안무를 미친 듯이 잘해서 놀랬던 기억도 있다.
그만큼 비주얼도 좋고, 춤도 잘 추는 팀인데… 휘연의 말마따나 보컬에 대한 주목도는 낮다.
앞선 두 가지가 너무 대단해서 그보다 약간 아래 있는 보컬은 주목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
그런 이유로 이번 곡을 쓰게 됐다.
-성숙한 느낌이 있으면 좋죠.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로 곡을 진행하되 저음 파트를 임팩트 있게 써서 리스너의 귀를 자극한다.
소년스러운 외모와 달리 중저음이 많은 멤버들을 고려한 구성이다.
기존 틴스피릿 곡들이 계속해서 고음을 자극하는 ‘시이이~발!’ 하는 발랄한 곡이라면 이건 ‘스으으버어얼~’ 하는 어른스러운 느낌.
-팬들한테 보컬 자랑도 좀 하고 싶고…….
보컬을 보여 주는 과제는 저음부를 임팩트 있게 보여 주되 다채로운 음역대를 넣는 걸로 해결했다.
그러니까 아마 틴스피릿의 팬들이 듣는 곡의 느낌은 이렇지 않을까 싶다.
카지노의 화려한 불빛.
돌아가는 룰렛들.
사람들의 웃음과 소란스럽고 혼란한 분위기.
그 속에서 평소에 티셔츠만 입고 다니던 소년들이 정장을 입고 머리를 넘긴 채 나타나는 장면.
그리고 다채로운 음역대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느낌으로.
-아아. 형님, 저 목 조금만 더 풀게요.
“편하게 해.”
하현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녹음 준비가 잘 되어 있는지를 체크했다.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에 주목하며 체크 리스트를 살폈다.
“음…….”
스보의 녹음과는 또 다를 필요가 있었다.
이미 실력적인 부분으로 포커스를 이미 많이 받은 스트릿 보이즈에게는 곡의 느낌 위주로 디렉팅해 주고.
기술적인 부분에 점검을 원하는 틴스피릿에게는 보컬의 스킬 관련해서 디렉팅을 세세하게 해 주고.
-형님. 저 준비됐어요.
“오케이. 그럼 갈게.”
곧바로 녹음이 시작됐다.
평소의 노래 톤보다 살짝 낮은 본인 목소리에 맞춰 하현이 부드럽게 노래의 스타트를 끊었다.
-저 어땠어요?
“괜찮은데? 괜찮았고 조금 목소리 톤을 그것보다는 더 올려도 될 거 같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워낙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말을 안 듣는 녀석들이라 살짝 걱정하긴 했는데.
바로 수긍하는 모습에 신기함을 느꼈다.
확실히 프로는 프로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나이 든 엔지니어가 신기하다는 듯 속삭였다.
“현달이가 원래 저렇게 말을 잘 듣는 애가 아닌데.”
“그래요?”
“네, 녹음 이야기하면 꼭 한마디씩은 얹거든요. 자기 생각이랑 다르다고. 또 그게 맞을 때가 있어서 고집이 심한 편이거든요.”
오늘따라 말을 잘 듣는다며 신기해하는 이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신기함을 느꼈다.
-하현아.
-네?
-거기 냉장고에서 김치 좀.
-행님이 꺼내세요.
우리 집에서 고기를 얻어먹으러 올 때도 에베벱 귀찮은데 하면서 응수하는 녀석들 아니던가.
그런데 오늘따라 다소곳하게 녹음에 임하는 모습에 신비함을 느꼈다.
게다가…….
“저, 형님 물 좀 드시고 하세요.”
“어어. 고마워. 연후야.”
스보에 LB가 있다면 틴스에는 연후가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런 연후마저 조심스럽게 생수를 건네면서 극진히 대우를 해 주는 모습에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
이상하다.
원래 이런 애들이 아닌데.
* * *
틴스피릿에겐 신념이 있었다.
‘난 나보다 강하거나 약한 놈의 말은 안 듣는다. 맞는 말만 들을 뿐.’
누가 뭐라고 제안을 하거나 설득을 해도, 그게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맞으면 움직이는 케이스.
그렇기에 녹음을 할 때도 까다로운 편이었다.
이 곡이 왜 저렇게 돼야 하는 것인지 납득이 돼야 부를 수가 있었다.
‘우리한테는 프로듀싱에 대한 재능은 없다.’
스트릿 보이즈나 뉴블랙처럼 스스로 곡을 쓰거나 프로듀싱에 대한 감이 좋은 멤버는 없었다.
그저 회사에서 이거 하자고 하면 그중에서 선택할 뿐.
하지만 판단력은 있었다.
이게 될지 안 될지에 대한 감.
그렇기에 그런 납득이 중요했다.
당장 그들부터가 납득이 안 되는 컨셉이나 기획이라면 팬들도 납득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태도 때문에 초창기만 해도 ‘말 드럽게 안 듣는구나!’ 하는 평을 받았지만, 성공을 거두고 나니 이제는 더 이상 뭐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설명을 자주 요구하는 편이었다.
-왜요?
하지만 천하의 틴스피릿도 지금 상황에서는 군말 없이 외부 작곡가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외부 작곡가가 현재 차트 7분의 1을 차지하는 인물이라서?
잘생겨서?
화내면 진짜 무서울 것 같아서?
그런 이유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었다. 물론 마지막은 조금 영향이 있긴 했지만…….
그들이 뉴블랙의 맏형이 하는 말에 토를 안 달고 녹음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오케이…….”
살짝 갈라져 나온 선우주의 목소리.
볼펜으로 종이에 무언가를 쓰는데 손끝이 살짝 달달 떨리는 게 보인다.
거기에 퀭한 다크 서클까지.
‘저러다 피 토할 거 같은데.’
‘하루 두 탕 녹음이라니, 저 형은 제정신이 아니야.’
‘녹음하는 날 누가 아침에 안무 연습까지 하고 오냐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 우주선이었다.
이웃집에 살고 있는 탓에 그들도 선우주의 일정표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 형은 해리 포터 시계라도 샀나?’
시간 여행이 가능한 시계를 가진 것도 아닌데, 마치 목숨이 두 개인 것처럼 공부하고 일하는 인물이었다.
한때 신인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그들을 제치고 탑으로 올라섰지만 질투심조차 안 드는 이유.
저렇게 살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줘도 안 해.’
간단한 일을 할 때도 온갖 계획을 짜는 우주선이다.
분명 오늘 이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서 최근 무대 영상은 물론이고, 멤버별 보컬 특징이나 장단점까지 파악하고 왔을 텐데.
게다가 어마어마하게 피곤해 보이는 얼굴까지.
도저히 ‘왜요?’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형님, 과자 드시고 하세요.”
“어, 고마워.”
“피곤하시면 소파에서 5분만 주무실래요? 저희 어차피 오늘 밤샘인데.”
“괜찮아. 안 피곤해.”
스보 녹음만 쉬지 않고 5시간인가 걸렸다는데, 눈을 형형히 빛내며 녹음 부스에 집중하는 모습에 틴스피릿 멤버들도 괜히 미안함을 느꼈다.
‘뭐라도 해 줘야 되는데.’
안 그러면 마음이 불편해서 이따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괜스레 미안함과 고마움, 안쓰러움 등을 느끼던 틴스피릿 멤버들이 그 순간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
오늘 하루 종일 피곤해 보이던 선우주가 유일하게 미소를 짓고 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거다!’
틴스피릿 멤버들이 눈을 빛냈다.
* * *
그날 저녁.
고급 안마의자를 취급하는 브랜드의 직원이 눈을 깜빡거렸다.
‘음?’
‘레몬 엔터’라는 주소에 뉴블랙이 각자의 이름으로 배송을 요청한 25개의 안마 의자.
그런데 같은 주소에 주문이 또 추가로 들어와 있었다.
도휘연 [LDX-5900] — 10개
25개의 주문에 또 추가로 10개 주문.
그것도 같은 주소.
직원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뭐지. 오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총합 35개의 안마 의자 주문에 전화를 걸어야 하나 고민하는 직원의 눈에 요청사항이 반짝였다.
[예쁘게 포장해 주세요^^]
‘안마의자에 리본…이라도 달아야 하나.’
직원이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