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42화
틴스피릿과의 녹음은 즐겁게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행님.”
“고생 많았어.”
주차장까지 배웅을 나와 꾸벅 고개를 숙이는 미소년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차량에 탑승했다.
“그래.”
차창을 내리고 웃었다.
“다음에 보자. 컴백 준비 잘하고.”
“예, 살펴 들어가십쇼!”
인사를 받아주고는 차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멀찍이 우리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모습에 잠시 웃음이 나왔다.
“으으.”
그나저나 이거 진짜 피곤하네.
온몸이 전자레인지에 돌린 치즈처럼 녹아내리는 것 같다. 잘만 하면 시트와 한 몸이 될 수 있을지도.
비주가 사과 맛 탄산음료를 내밀며 말했다.
“고생했어요. 형.”
“너희도 일하느라 고생했어.”
치익.
캔을 따고 시원한 음료를 들이켜자 정신이 조금 든다.
당이다.
역시 당이 최고야.
“어때? 촬영은 잘 했어?”
“네.”
졸개들이 피곤한 얼굴로 답했다.
MOP 엔터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촬영을 진행했다는데, 나름대로 소득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호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확실히 큰 회사라서 그런지 되게 체계적으로 굴러가는 거 같아요. 배울 점도 많고. 저 되게 상업 스파이 하는 기분으로 촬영하고 왔어요.”
“산업 스파이겠지.”
“그게 그거죠. 뭐~”
평소였으면 반박했을 리혁이도 피곤한지 눈을 감고 입만 우물거릴 뿐이었다.
노곤노곤한 분위기.
비주가 내게 웃으며 말했다.
“요즘에 잠 잘 못 자고 피곤하죠, 형?”
“조금?”
“그래서 제가 형을 위해서 선물을 준비했어요.”
“뭔데?”
초롱초롱 눈을 뜨고 바라보자 비주가 비밀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희한하네.”
“왜요?”
“나도 너희 주려고 선물 준비한 거 있는데.”
“……어? 진짜요?”
궁금해하는 졸개들에게 나도 비밀이라며 웃어 주었다.
그런데 나와 비주가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동안, 리혁이와 중현이, 그리고 지호도 뭔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도 선물 준비했는데요.”
“너희도……?”
각자 서로에게 선물을 준비했다는 이야기에 우리가 서로를 향해 눈을 깜빡거렸다.
* * *
선물에 대한 비밀은 다음 날 풀렸다.
-예, 주문자 분 성함 선우주 님… 맞으신가요?
“네.”
-저 실례지만 혹시…….”
“네. 맞아요. 그 우주.”
-역시!
직원 분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다름이 아니라 레몬 엔터로 배송 요청이 총 6건 들어왔는데요. 내역이 맞는지 확인 부탁드릴게요. 중복 주문이 아닌가 해서 확인차 연락을 드린 거거든요.
“6개요?”
이상하다.
“저는 5개를 주문했는데요.”
-아뇨. 주문 건수가 총 6건이요.
수량은 맞는데 주문 건수가 다르다는 이야기.
이윽고 레몬 엔터로 오기로 예정된 안마 의자가 총 35개가 맞느냐고 확인 부탁이 들어왔다.
“…….”
내 침묵을 느꼈는지 수화기 너머에서 머뭇거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저기, 잠시만요.”
숙소 위층을 향해 소리쳤다.
“얘들아!”
“…….”
조용한 2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소리 질렀다.
“고기 있다!”
덜컹!
달칵!
쿠광광!
“고기 구웠어요?”
“고기?”
사료 타임이 된 리트리버 떼처럼 신명나서 내려온 졸개들이 이윽고 날 바라보며 분노했다.
“고기라면서요.”
“이따 사 줄게. 이따가.”
“저번처럼 고기 사 준다고 해 놓고 치과 데려가는 거 아니죠?”
의심하는 막둥이까지 자리에 앉힌 뒤에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졸개들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폭소가 터져 나왔다.
비주가 배를 잡고 소파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가운데, 리혁이마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우리가 의좋은 형제처럼 5개씩 주문했다는 거네요.”
“그치.”
“어떻게 할 거예요?”
“음…….”
고민을 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냥 사무실마다 뿌릴까? A&R팀, 프로듀싱팀, 경영지원팀, TF팀마다 놓으면 좋을 거 같은데.”
“그거 괜찮네요.”
이번에 MOP 엔터를 둘러보면서 직원 복지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 터였다.
직원이 즐거워야 회사가 잘 굴러간다!
-아. 몸이 뻐근하네. 회사 가서 안마 의자에서 안마나 받아야지.
-안마 의자에 앉고 나니 우주선에 대한 증오가 눈처럼 녹아내렸어! 작업을 열심히 해야지!
머릿속에서 희망 회로가 활활 타기 시작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직원 분에게 주문이 제대로 들어간 거 맞다고 그대로 진행해 달라고 했다.
“음…….”
통화를 끊고 나서 한참 생각에 잠겨 있자, 지호가 물었다.
“왜 그래요?”
“뭔가 이상해서. 아까 수량이… 맞나?”
“헷갈려요?”
“응.”
잠을 안 자서 그런가. 머리가 안 굴러 간다.
5인이 5개씩이니까.
막내에게 스피드 퀴즈로 구구단을 물었다.
“오-오?”
“삼십오.”
“아. 맞구나.”
* * *
‘~리단길.’
독특한 분위기로 유명한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뜬 이후로 우후죽순으로 여기저기 붙기 시작한 별명이다.
자생적으로 ‘~리단길’ 하며 붙는 경우도 있고, 상권을 만들기 위해 자체적으로 붙이는 경우도 있고.
그중에서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뉴리단길>은 자생적으로 별명이 붙은 케이스였다.
시작은 뉴블랙이 2016년도에 프로듀서로 등장한 예능 <미스터 프로듀서.>
[여긴 저희 회사 근처 맛집입니다!]
[오!]
연습생으로 나온 예능인들을 데리고 주변 음식점 투어를 해 준 것이 시작이었다.
정말이지 맛깔나게 음식을 먹는 뉴블랙.
감자칩 하나 먹을 때도 맛깔나게 먹는 뉴블랙이 음식점 소개를 하니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나도 한 번 가 봐야지!
그런 식으로 맛집이 유명해지면서 놀러 온 대학생들, 커플들이 붐비고 상권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SNS 감성 카페가 생기고.
거리에 활기가 넘치니 주변에 각종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가게들이 등장하고.
-여기가 뉴블랙의 나라입니까?
한국 관광을 온 외국의 수플레들이 성지순례를 하러 방문하면서 상권이 더욱더 폭발하기 시작했다.
[요즘 이태원보다 더 외국인 많다는 동네 (feat. 뉴리단길)]
[“뉴리단길을 아시나요?”.. 주말 ‘이색 거리 풍경’에 네티즌 화제]
[페북픽 ‘뉴리단길에서 핫한 카페’ Top 10]
그리하여 서울의 핫 플레이스 중 하나로 등극하게 된 이른바 뉴리단길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골목길 같았던 동네가 이제는 국제적인 거리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거리의 중심은 뉴블랙이었다.
길거리에 널린 음식점이나 카페에 붙은 사진만 해도 그런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뉴블랙이 연습생 시절 단골 방문한 껍데기집]
[수플레 인증시 전 메뉴 10% 할인]
[Welcome to Hometown of The NBLK!]
그런 간판들을 둘러보던 어느 커플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죄다 뉴블랙이 방문한 가게라고 하네. 저거 다 진짜기는 할까?”
“개미위키 보니까 진짜라는데. 뉴블랙이 이 동네 음식점 중에 안 가 본 데가 없대.”
“걔넨 옛날부터 열심히 살았구나.”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알록달록한 눈동자의 색목인들이나 동남아와 일본 등의 관광객을 둘러보는 커플이었다.
“와. 외국인들 진짜 많다…….”
분명히 배경은 한국인데 뉴욕처럼 외국인으로 가득한 모습이 오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왜 SNS에서 핫 플레이스라고 하는지 바로 이해가 된다고 할까.
유명하다는 동네를 수없이 가 보았지만 이 정도로 분위기가 좋은 동네는 또 처음이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레몬 엔터 사옥 이전을 빤대한다! 빤대한다!
-빤대한다!
-지역 상인들 등골 뽑아서 잘 될 때는 언제고 이젠 이전이냐! 박규호 대표는 책임 져라! 책임 져라!
확성기를 틀어 놓고 전단지를 돌리는 시위꾼들.
커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 앞을 지나갔다.
“회사 이전하나 봐.”
“그러게, 어… 저기 있다!”
그들이 뉴리단길의 정중앙에 멈춰 섰다.
깔끔한 인테리어로 외관이 꾸며진 건물로 ‘Lemon Entertainment’라는 검은 간판이 붙어 있다.
“오빠. 나 여기 간판 다 나오게 사진 좀.”
“어어, 가서 서 봐.”
“찍었어?”
“어. 잘 나왔다. 야, 나도 찍어 주라.”
서로 턴을 돌아가며 사진을 찍은 커플이 인증샷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스타에 올려야지.’
뉴리단길에 왔으면 당연히 레몬 엔터 사옥은 구경하고 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괜히 레몬 엔터 사옥의 불투명한 유리를 기웃기웃 바라보는 커플이었다.
‘혹시…….’
뉴리단길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90퍼센트가 하는 상상.
갑자기 뉴블랙이 사옥을 나오는데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다.
막 그렇게 아는 척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뉴블랙이 그들을 보고 먼저 다가온다.
-어! 일반인이다! 일반인!
-저희가 사진 찍어 드릴게요!
뉴블랙이 사진을 찍어 주고, 어쩔 수 없이 SNS에 그 사진을 올리며 인증하는 것이다.
그렇게 다음 날 학교나 회사에 가면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
하지만.
‘어림도 없지.’
그런 희망을 품으며 5분 정도 기웃기웃하다가 마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행동 양식이었다.
“갈까…?”
“가야지….”
커플이 아쉬움을 삼키며 움직이려 할 때였다.
“음?”
삐삐삐-
아주 거대한 화물 트럭이 이쪽 방향을 향해 후진하고 있었다.
부아아아앙.
천천히 움직이는데도 우렁찬 엔진소리. 거대한 트럭이 레몬 엔터 앞으로 다가오면서 구경꾼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뭐지?”
“뉴블랙인가? 화물차에서 등장하는 건가?”
“뉴블랙이야?”
하지만 차가 정차하고 화물칸이 열리면서 사람들은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여서 수레에 내려놓기 시작하는 것.
“……안마의자?”
그것은 바로 안마의자였다.
군수공장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온 탱크들처럼.
따끈따끈한 안마 의자들이 수레에 실려 레몬 엔터 사옥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뭐야. 저기 리본 붙어 있는 안마의자도 있어.”
서른 개가 넘는 안마의자들이 끊임없이 밀고 들어가는 모습에 사람들이 멍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는 한편.
그들이 멍하니 바라보지 않고 레몬 엔터 사옥 안쪽을 조금 더 유심히 바라보았다면…….
“악! 악!”
어렴풋이 뉴블랙 멤버들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하얀 얼굴을 지닌 멤버가 맏이와 막내의 등짝을 고무손 막대기로 때리는 장면을.
“오오는 이십오! 이 멍청이들아!”
“악! 으악!”
“내가 진짜 속이 터져서 증말…!”
“아아악!”
어쩌면 사람들이 못 봐서 다행일 수도 있는 광경이었다.
* * *
등짝이 시큰거린다.
워메. 아픈 거.
“……거 사람이 헷갈릴 수도 있지.”
따끔한 등짝을 매만지면서 회사 사옥을 둘러보았다.
우선 A&R팀.
“어때요. 안마 의자 써 보셨어요?”
“응.”
“좋죠?”
“엄청 좋은데. 요새 기술이 엄청 좋아졌더라~”
A&R팀 직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걸 시작으로 홍보팀, 프로듀싱팀 등등을 돌았는데 다들 반응이 좋았다. 앞으로 점심시간 때마다 쓰겠다나.
“어깨가 쫘악 풀리네.”
홍보팀 팀장님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틴스피릿 분들한테도 감사하다고 전해 줘.”
“이미 전했어요.”
안 그래도 깜짝 선물을 보내 준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한 터였다.
진지하게 고맙다고 했더니 오글거리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3초 만에 전화를 끊었다.
“홍보팀, 경영지원팀, TF팀… 확인.”
민기 형과 원석이 형이 나란히 안마의자에 누워서 어어어… 덜덜덜… 어어어… 덜덜덜 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동했다.
우리 회사에는 직원들 말고도 또 챙겨야 할 사람들이 있다.
“얘들아. 어떠니!”
“가, 가… 감사합니다!”
지하 연습실에 놓인 안마 의자!
우리 삐약이 연습생들이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안마 의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들의 포부를 밝혔다.
“저희 진짜 열심히 할게요!”
“이거 쓰면서 밤 새겠습니다!”
“그래. 그렇다고 또 매일 밤 새지는 말고. 이틀에 한 번 정도만 새렴. 건강이 우선이니까.”
“네……!”
우리집 삐약이들을 토닥여 주고는 마지막으로 대표실로 이동했다.
똑똑똑.
노크를 해도 반응이 없어서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나란히 의자에 앉아 있는 삼인방이 보였다.
어어어어… 달달달달… 어어어… 하는 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대표님의 얼굴이 보였다.
“목욕탕에서 받는 안마보다 시원하구나. 어어어….”
열반에 든 부처님의 표정이 이럴까.
그 옆에 티벳 여우처럼 날카로운 조규환 이사님의 얼굴도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다.
“점심은 시켜 먹을까요. 나가서 먹기 번거로운데.”
옆에서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본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장피도 좀 물리는데. 오늘은 깐쇼새우 먹죠.”
그러더니 다시 어어어… 덜덜덜… 하면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직원 복지 작전 성공.
어딜 가든 행복과 웃음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아.”
그때 비주가 중요한 것을 물었다.
“그런데 안마 의자 35대면 전기세 어떻게 될까요?”
“…….”
“…….”
“…….”
대표실 안에서 허허허… 덜덜덜… 하는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해맑은 대표님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대표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어련히 알아서 잘하실까요.”
“이런 건 어른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해여. 저희는 꿈과 희망만 주면 되는 거니까.”
“그것이 아이돌.”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스트릿 보이즈와 틴스피릿의 녹음이 있던 주가 끝나고 그다음 주.
10월 마지막 주는 즐거운 소식으로 시작했다.
-[속보] 뉴블랙 ‘METRO’ 4주 연속 빌보드 1위
드디어 메트로가 한 달간 1위를 달성했다.
슬슬 1위에서 내려갈 기미가 보이긴 해서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아서 그런지 더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그리고.
굵은 글씨로 빌보드 소식이 도배된 포털 연예면을 쏘옥 넘기자 스포츠면이 눈에 들어온다.
“캡처 완료.”
스포츠면에 적혀 있는 기사 중 하나가 눈에 쏙 들어온다.
-오늘 한국 시리즈 1차전 애국가.. ‘국민 아이돌’이 부른다
기사 내용을 슥슥 훑고는 핸드폰을 돌려보여 줬다.
“짜잔. 리혁아, 너 기사 났다.”
“…….”
힐끔 본 리혁이가 시선을 떼고 말했다.
“댓글은요?”
“잠시만.”
차량 조수석에 있는 민수 씨에게 잠시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가끔 추천수랑 비추천수랑 반반씩 섞인 이상하고 불쾌한 댓글을 볼 때가 있어서 이럴 때 매니저들에게 요청하곤 했다. 저번에 내 출신 지역을 가지고 욕하는 댓글을 봐서.
한차례 훑어본 민수 씨가 OK 사인을 보냈다.
“선플들인 거 같은데?”
“그래요…?”
잔뜩 긴장해 있는 리혁이의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 우리가 다 같이 댓글을 낭독했다.
-고막 좀 미리 닦아 놓고 있겠읍니다..
첫 댓글부터 웃음이 터졌다.
잘하고 오라거나 긴장하지 말고 잘 부르고 오라는 응원 댓글들이 가득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리혁이가 뜨고 물었다.
“기대가 된다는 댓글은요?”
“있긴 있어.”
리혁이 노래라니! 너무 기대돼요, 하는 댓글을 기대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건 연예면이 아니고 스포츠면.
스포츠를 주 관심사로 하는 이들에게 리혁이의 가창력은 딱히 큰 관심사가 아닌 것 같다.
리혁이가 살짝 아쉬워했다.
“명곡단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거 벌써 2년 전이야.”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에 기대된다고 잔뜩 댓글 달려 있었으면 너 엄청 긴장했을걸. 부담돼 가지고.”
“뭐. 그건 또 그러네요.”
쿨하게 인정한 리혁이가 눈을 빛냈다.
“내가 오늘 진짜 애국가의 끝을 보여 주고 올 거예요.”
막내가 훗 웃었다.
“그리고 그는 그만 삑사리가 나고 마는데…… 악! 악!”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믈르그!”
먼지떨이를 터는 사람처럼 막내를 팡팡 털어 대는 넷째를 바라보며 웃었다.
깔끔한 정장 차림.
검은색 라인이 어깨를 타고 우아하게 각진 선을 그리는 저 수트는 이번에 리혁이가 앰버서더를 맡게 된 브랜드에서 보내 준 명품이다.
하얀 셔츠 위로 검은 넥타이까지.
꼭 첩보 영화의 무도회에 등장할 법한 복장이었다. 마치 쿨한 첩보요원 같다.
“에이. 먼지 묻었어.”
……먼지 한 톨 묻었다며 돌돌이로 수트 위를 문질문질하는 모습이 좀 깨긴 하지만 말이야.
아무튼 오늘은 한국 시리즈 애국가를 부르러 가는 길.
“오늘 가서 잘해 보자. 리혁아.”
“부담 주지 마요.”
“…….”
“아니, 뭐 응원은 고맙고…….”
오늘은 리혁이의 가창력을 동네방네 뽐낼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 애 노래 잘 부르는 거야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약간 결이 다르긴 하다.
‘리혁이는 노래를 잘 부른다’와 ‘리혁이는 가수들 중에서도 진짜 잘 부르는 보컬이구나!’ 하는 건 다르니까.
이런 스포츠 경기의 애국가는 많은 가수들이 서는 무대다.
바꿔 말하자면 모두가 똑같이 무반주로 불러서 비교가 될 수 있는 무대.
그런 무대에서 잘한다면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리혁이의 보컬은 세계 제일…!’ 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저 서리혁이랑 막상막하인 선우주는 엄청 대단한 애구나, 하면서 인정을 해 주는 거지.”
“그리고 그런 선우주와 서리혁 옆에 있는 김비주는 대단하구나.”
“왕지호도 건강하고 기특하구나.”
“중현이는 래퍼구나.”
다 같이 히죽 웃으며 한마디씩 거드니 리혁이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봤다.
그러는 동안 멀찍이 오늘 야구 결승 1차전이 열리는 문학구장이 보였다.
“거의 다 왔네.”
내가 리혁이에게 말했다.
“가기 전에 한 번 더 연습해 보자.”
“차에서요?”
“어차피 방음유리야. 밖에서 안 들려.”
* * *
인천 문학경기장 앞 사거리.
운전자들이 화창한 하늘 아래 드라이브를 하고 있을 때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환청처럼 아련하게 들려오는 듯한 애국가.
어딘가 모르게 애국심이 차오르는 분위기에 운전자들이 멈칫했다.
‘음?’
아련하던 애국가가 점점 커져 간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하느님이 막 옆에서 어루만져 주는 듯한 음량.
앰뷸런스가 애오오옹 하며 가까워지듯이 애국가가 조금 더 또렷이 들릴 때.
부아아아앙.
아주 커다란 밴 한 대가 스쳐 갔다.
…우…리나라 만세……
배기가스 대신 애국가를 메아리처럼 남기고 사라지는 밴을 바라보던 운전자들이 동승자를 바라보았다.
“방금 사람 목소리야?”
“그런 거 같은데? 사람이지 않을까?”
“사…람 목소리가 저렇게 클 수가 있나?”
“…….”
인천 지역에 애국가 괴담이 퍼져 나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