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43)화 (74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43화

65장. 조금 늦어도 괜찮아

인천 문학경기장역.

치이이이익-

지하철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역사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힘차고 가벼운 느낌을 풍겼다.

‘한국 시리즈다!’

올해 프로 야구의 우승팀을 가리는 한국 시리즈!

시즌 개막부터 지금까지 팀을 응원해 오던 팬들에게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스포츠 팬들의 최고 관심사는 당연히 우승 아니겠는가?

그만큼 치열하게 응원과 쌍욕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하나 그런 치열함과 별개로 한국 시리즈라는 그 자체로 야구 팬들에게는 축제와 같은 날이었다.

“와. 사람 진짜 많다아~”

화창한 하늘.

출구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알록달록한 잡상인 천막들.

그리고 각 팀의 유니폼을 입은 서포터들이 바글바글 무리 지어 다니고 있었다.

‘어디였더라.’

광주에서 원정 응원을 나온 셀틱 유니콘스의 팬들이 익숙한 걸음으로 움직였다.

쭉 걸어가자 나오는 갈림길.

홈팀은 좌측, 원정팀은 우측이라는 알림에 따라 각 팀의 서포터들이 부산하게 흩어졌다.

“크으으으…….”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문학경기장을 바라보며 야구 팬들의 입가가 헤벌쭉 올라갔다.

‘티켓팅한 보람이 있다.’

흐뭇하게 웃던 사람들은 매표소를 방문했다.

-몇 장 예매하셨어요?

“두 장이요.”

-이름이랑 생년월일이요~

빳빳한 티켓에 적힌 [2017 한국 시리즈 1차전]이라는 단어에 팬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콩닥콩닥.

그리고 기분이 설렐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국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치킨 먹을까?”

“주먹밥도 하나 시키고.”

“이따가 오레오 아츄도 먹자. 여기 오레오 아츄 맛있다더라.”

응원을 하려면 열심히 먹어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다 우리 팀을 위한 일이었다.

“그럼 슬슬 들어갈까?”

곧이어 들어선 경기장 내부.

맑고 화창한 하늘 아래 야구 구장 특유의 초록 잔디가 싱그럽게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영상과 음악이 흘러나오는 전광판.

태극기 바로 옆에서 펄럭이는 우리 팀 깃발!

응원을 하기 위해 모인 우리 팀 서포터들까지, 그야말로 공기 중에 ‘한국 시리즈’라고 적힌 물방울이 몽실몽실 떠다니는 분위기였다.

“햐…….”

“이 맛이지. 이 공기지.”

“이게 한국 시리즈의 공기인가.”

공기마저 달콤한 날이었다.

야구 팬들이 단체로 모여 있어서 그런지 당연 화제는 오늘 결승에 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중간중간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오늘 애국가 리혁이라는데?”

“그래? 리혁이 온대?”

리혁이 온다는 말에 사람들이 반색했다.

‘뉴블랙의 최약체.’

사천왕 중 최약체가 온다는 것의 의미.

그 말은 최약체를 케어하기 위해 대마왕과 다른 악의 간부들도 같이 따라온다는 뜻이었다.

“오늘 뉴블랙도 보겠네.”

“히야, 운 좋고~”

“님도 보고 멱도 따고~ 좋은 날이다.”

킬킬킬 웃는 대학생 친구들 사이에서 누군가 물었다.

“근데 리혁이 노래 잘 부르나?”

어허 하며 주변 친구들이 말했다.

“개 잘 부르지.”

“아이돌 중에서 제일 잘 부른다고 그러던데.”

“이 새낀 인터넷도 안 보나.”

“뭔 동굴에서 살다 오셨어요? 저 새끼 집 가면 동굴 벽화 그려져 있는 거 아님?”

괜히 말 한마디 꺼냈다가 면박을 들은 친구가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친구들을 바라봤다.

‘니들이 뉴블랙이냐.’

왜 지들이 뽕에 차서 부심을 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별개로 틀린 말 같진 않았다.

서리혁은 원래부터 아이돌 중에서 노래 잘하는 가수로 유명하니까.

보컬 예능이 런칭된다는 뉴스가 올라올 때마다 댓글창에서 ‘서리혁 나왔으면’ 하는 댓글들을 많이 본 터였다.

그만큼 여기저기서 노래를 잘 부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뉴블랙의 메인 보컬이었다.

다만.

‘그 정도로 잘하나…?’

당연히 가수니까 잘 부른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자신이 막귀라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빌보드 무대 영상을 봤을 때도 ‘잘한다’ 정도.

다른 뉴블랙 멤버들이랑 비교했을 때도 ‘좀 더 잘 부른다?’ 정도지, 레벨이 다르다 하는 인상까지는 아니었다.

‘뭐. 잘 부르니까 초청한 거겠지.’

그래도 한국 시리즈니까 가창력으로 소문난 톱클래스 가수들을 초빙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긴 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네, 잠시 후…….]

곧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   *   *

“큼큼, 아아… 오백 원, 오백 원…….”

대기실 벽을 보면서 목을 풀던 리혁이가 몸을 돌렸다.

잔뜩 긴장한 얼굴.

“후우우…….”

길게 숨을 토해 내더니 이번에는 안면 근육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얼굴의 긴장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손뼉을 쳤다.

“옳지. 이제 깡총깡총.”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요.”

깡총깡총.

제자리에서 뜀뛰기를 하는 리혁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준비 완료?”

“완료.”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리혁이에게 우리가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해 줬다.

“형, 진짜 잘하고 올 거예요.”

“나도 알아.”

막내가 ‘뭐야…’ 하며 입을 비틀며 시선을 슥 돌렸다.

비주가 응원했다.

“리혁아. 너무 긴장하지 말고.”

“나 별로 긴장 안 했는데요. 긴장한 것처럼 보여요? 아, 긴장한 것처럼 보이면 안 되는데….”

“그…….”

“형이 긴장한 것 같다고 말하니까 자꾸 신경이 쓰이잖아요.”

“…….”

비주가 웃은 채로 정지했다.

며칠 내로 리혁이의 밥에 돌이 많이 씹히지 않을까 싶다.

비주와 지호가 입을 삐죽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던 중현이가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 만 원짜리를 건넸다.

“여기.”

자신의 롤모델이자 최애인 세종대왕님을 바라본 리혁이의 표정이 그제야 온순해졌다.

“대왕님…….”

리혁이가 중얼거렸다.

“하긴… 신하들의 반대에도 훈민정음을 창제한 대왕님의 부담감에 비하면 지금 일은 아무것도 아니죠.”

“그래. 좋아.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

“후, 내가 좀 까칠하게 대했네요. 미안해요.”

“괜찮아.”

사실 난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사과는 내가 받았다.

비주와 지호가 억울해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동안 리혁이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오늘따라 더 까칠하고 두 배는 더 예민하지만 우리가 다 받아주는 이유가 있었다.

“부모님이랑 예인 씨는? 오셨대?”

“왔을 거예요. 아마.”

“아마?”

“핸드폰을 아직 확인 안 했거든요. 괜히 보면 더 떨릴 거 같아서.”

리혁이 너머로 민기 형 쪽을 살짝 돌아보자 ‘오셨어’ 하는 입모양의 답이 돌아왔다.

오늘 한국 시리즈에는 리혁이네 가족도 왔다.

원래는 상암동에서 열리는 앵콜 콘서트를 보러 오기 위해 어머님이랑 동생이 입국한다고 했는데 시간을 좀 더 오래 보낼 겸해서 일찍 입국한다고 들었다.

마침 한국에서 살 적에 인천에 살아서 대산 호크스의 경기를 직접 보러 온 적이 있다고도 하고.

“문학구장이 몇만이라고 했지?”

내 물음에 리혁이가 답했다.

“2만 명 좀 넘을걸요.”

“오사카 돔에서도 공연하고 왔는데 2만 명이야 뭐…….”

“그럼 나 대신 무대 설래요?”

“아니.”

무반주로 애국가를 부르는 건 사양하고 싶다.

잘해 내지 못하면 가창력으로 유명한 가수들이랑 비교하는 영상이 죽을 때까지 돌아다닐 텐데.

“형은 오늘 닭다리나 뜯고 구경할란다.”

“…….”

“우리 리혁이 화이팅~!”

윙크를 하며 응원해 주자 리혁이가 파들파들 떨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긴장은 좀 가신 듯하다.

“준비되셨나요?”

대산 호크스 측 스탭이 문을 열고 물었다.

후- 하며 고개를 꺾어 천장을 바라보는 리혁이에게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다녀와.”

“갔다 올게요.”

마지막으로 거울을 바라보며 정장 옷매무새를 점검한 리혁이가 복도로 나갔다.

관계자용 복도를 쭉 지나서 나오는 그라운드로 진입하는 입구.

초록 잔디가 반짝이고 있는 구장을 향해 걸어가던 리혁이가 잠시 멈춰서 우릴 바라봤다.

“나 다녀와요.”

혼자 서는 무대라 그런지 살짝 힘없이 손을 흔드는 동생에게 우리가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같은 시각.

서리혁의 동생, 서예인이 야구장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엄마, 내가 여길 어릴 때 왔었어?”

“응. 그랬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그녀의 엄마가 답했다.

“너랑 네 오빠가 손 잡고 왔어.”

“그랬나?”

어린 시절에 여기에 야구를 보러 왔다는데 딱히 기억은 없는 서예인이었다.

고개를 쭉 내밀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한국어들을 들으며 낯설어 할 때.

“예인아.”

“응?”

그녀를 사이에 두고 옆에 앉은 아빠가 방석을 내밀었다.

“엄마 좀 앉게 건네주라.”

“아빠가 건네줘.”

“…….”

귀가 살짝 물들려는 조짐에 서예인이 살짝 한숨을 내쉬며 방석을 받아 건네줬다.

그러자 이번에는 엄마가 생수를 꺼냈다.

“예인아, 아빠한테 좀.”

“…….”

말없이 생수병을 건네준 후에 다시금 둘이 입을 열려고 할 때.

그녀가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 물었다.

“둘이 지금 연애해?”

“아니야.”

“아닌데.”

아닌 건 또 뭘까.

수줍음을 타고 있는 부모님 사이에 끼어서 괜스레 삐죽거리고 있는 서예인이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둘이 잘 지내내.’

이혼하고 따로 살고 있긴 하지만, 이혼 전에도 딱히 큰 사건이나 사고는 없었던 부부였다.

그저 성격이 어마어마하게 안 맞을 뿐.

성격이 달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격이 너무 똑같아서 생긴 문제들에 가까웠다.

각자 일만 하는 워커홀릭에 표현은 안 하고. 오해는 계속 겹겹이 쌓여 가는데 그런 걸 또 넘길 만한 무던한 성격이 아니라 여린 성격들.

‘난 나랑 성격 다른 사람들이랑 결혼해야지.’

그러면서도 내심 부모님이 어색하게 서로에게 뭔가를 건네주는 모습이 반갑기도 했다.

‘오빠 덕분이야.’

리혁이 한국에서 뉴블랙 활동을 하면서 생긴 변화였다.

뉴블랙 데뷔를 계기로 아빠가 ‘한국에서 요즘 리혁이가 이렇다더라’ 하면서 이메일을 꾸준히 보내면서 생긴 변화.

엄마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소식인데도 군말 없이 고맙다고 답장을 보내는 것을 보면 싫진 않은 모양이었다.

‘하여간 서씨랑 강씨…….’

자식이 된다는 것은 매일 투닥대는 커플 사이에 낀 친구와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요즘 들어 깨닫는 서예인이었다.

‘그래도 이따가 저녁 먹을 때는 오빠랑 같이 먹기로 했으니까. 부담 좀 덜어야지.’

오빠 생각을 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예인아. 오늘 LA 날씨가 건조하다고 들었는데 방에 가습기는 잘 틀고 있어? 캘리포니아는 좀 건조해서…….

매일 이메일 한 통씩 보내 주며 동생의 안부를 걱정해 주는 그녀의 오빠.

방송용 이미지 때문에 까칠한 이미지가 어쩌다 덧씌워져 있지만 그야말로 선량하고 따스한 성격의 소유자!

퉁! 퉁!

훈훈하게 웃던 서예인이 의자 등받이에 느껴지는 충격에 고개를 획 돌렸다.

“아이, 진짜.”

성질 뻗치게.

아까부터 계속해서 등받이를 걷어차고 있는 커플에게 서예인이 눈을 부라렸다.

“지금 열여섯 번째 치시는 거거든요? 조심 좀 해 주세요.”

“앗, 죄송합니다…….”

자신들이 해야 할 말을 대신 해 준 딸의 어깨에 부모의 손이 척 올라왔다. 잘했다는 듯이.

서예인이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성격 좀 다스려야지.’

이따가 오빠 앞에서 이런 성질이 나오면 곤란했다.

“후우.”

대개 사람들은 캘리포니아에 살면 성격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따스하고 화창한 날씨.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니었다.

-야! 무술 해 봐. 무술 할 줄 알아?

-중국어 왜 못해?

지금에야 좋은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공립 초등학교에 다녔던 남매였다.

하필이면 아시아계가 또 드문 학교.

초등학생 시절부터 개소리를 지껄이고 다니는 미국 놈들을 말빨로 후려 패고 다니다 보면 성격이 좋아질 수가 없었다.

분명히 잘못은 저 새끼들이 먼저 했는데 응수해 주면 교감 선생님이 딱딱한 얼굴로 ‘언어 폭력도 폭력이란다’ 하면서 몰아가고.

“예인아.”

“응?”

“엄마한테 이것 좀…….”

부인에게 줄 야구 모자를 딸에게 부탁하는 아빠의 모습을 바라보던 예인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하여간 이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

속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네, 이어서 다음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애국가가 있을 예정이란 뜻이었다.

그라운드 위에서 오늘 1차전에 초청된 현역 군인들이 초대형 태극기를 펼치고 있을 때.

전광판에 익숙한 얼굴이 떴다.

‘오빠다!’

검은색 정장에 흰 셔츠. 검은색 타이.

늘씬한 체구의 가수가 우아하게 걸어 나오면서 경기장에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리혁아!”

“리혁이다!”

수줍어서 손을 흔들어 주는 진짜 가족보다 더 반겨 주는 사람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서예인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였어…?’

미국에서 살고 있으면서 오빠네 그룹의 인기를 서서히 실감하고 있던 서예인이었다.

친하지도 않은 백인 그룹 애들이 ‘뉴블랙 알아?’ 하면서 물어보고.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써니는 깐 머리인가, 덮은 머리인가?’ 하며 토론하는 여자애들도 종종 보이고.

얼마 전에 다른 학교 치어리딩에서 뉴블랙의 신곡 ‘메트로’를 쓰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국민 아이돌 어쩌구 하길래 미국보다 좀 더 인기가 있겠구나 싶었는데…….

“리혁아아아-!”

“리혁이 오늘 얼굴에서 광채 나는데?”

이건 뭐 광기 수준이었다.

부모님도 놀란 반응이었다.

“논문으로만 접하던 뉴블랙 현상을 정말 실생활에서…….”

“CNN에서 전해 주던 한국 뉴스가 정말…….”

연구실과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의 말에 서예인이 혀를 끌끌 찰 때였다.

국민의례가 시작되면서 선수단이 일렬로 섰다.

대산 호크스와 셀틱 유니콘스의 선수들이 저마다 가슴에 손을 올린 가운데, 리혁의 모습이 전광판으로 흘러나왔다.

‘오빠다!’

포마드로 살짝 머리를 넘겨서 단정한 인상이 부각되는 미모.

마운드에 설치된 마이크 두 대 앞에 선 리혁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침을 꿀꺽이더니.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야말로 마법과 같은 첫 소절이었다.

고요한 경기장에 바이브레이션 하나 없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

첫 소절이 끝나자마자 그 정적 사이로 사람들의 ‘워우’ 하는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뒤편의 커플이 와하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쾌청한 하늘 위로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끝없이 치솟았다.

굳이 힘을 들이지도 않는 차분한 표정과 별개로 거대한 목소리의 파도가 물결처럼 스쳐 가는 기분.

전광판에 어느 외국인 선수가 ‘워…’ 하는 모습이 스쳐 갔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무우…’ 하면서 올라가는 고음에 관중석에서 ‘와……’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서리혁의 가족들마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한편.

관중들도 충격 가득한 얼굴로 경기장에 선 서리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반주 아니야?’

반주가 없이 부르는데도 경기장 전체가 소리로 꽉 차 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풍성한 보컬이었다.

무반주로 부르는 애국가.

진짜 라이브란 뜻이었다.

‘미친.’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뭐야?’ 하며 눈을 크게 뜨거나 입을 오므렸다.

생각과 전혀 다른 라이브였기 때문이었다.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엄연히 아이돌이란 기준 하에서 바라보고 있던 대중들이었다.

‘왜 이렇게 잘해?’

아이돌이라고 하면 음악 방송에서 AR을 깐다더라, 립싱크를 한다더라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차였다.

노래 잘하는 아이돌이 많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하지만 옛날에는 가수로 데뷔할 만한 실력자들이 요즘엔 아이돌로 데뷔한다더라 하는 정도의 인식이었다.

그런 인식을 깨뜨리듯 뉴블랙의 메인 보컬이 선명하게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

시작 전에 리혁이 노래를 잘 부르냐고 했던 대학생도 놀란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뭐야. 이래서 얘네가 나한테…….’

친구들을 돌아보자 리혁이 노래 잘 부른다고 했던 놈들도 똑같은 표정이었다.

바로 그때.

애국가의 마무리 소절에 있어서 리혁이 살짝 힘을 주어 음을 올렸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대-’ 부분에 바이브레이션이 들어가면서 살짝 기교가 들어간 소절에 팔에 소름이 쫘아악 하고 올랐다.

경기장 전체가 부웅 떠오르는 느낌.

이윽고 노래를 끝낸 리혁이 차분하게 미소를 짓자, 솟았던 무언가가 훅 꺼지면서 쾌감까지 느껴진다.

“와아아아아아아!”

휘파람 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   *   *

중계를 맡은 TBC 방송국.

[동해물과-]

첫 소절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온라인에서도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피씨방에서 피카츄 시켰는데 알바가 가지고 오다가 멈춰 서서 구경함ㅋㅋㅋ

-여기 서울역인데 볼륨 낮춰달라고 민원 들어감ㅋㅋㅋㅋㅋㅋㅋ

-분명 이어폰을 꼈는데 지하철 옆사람도 같이 애국가를 듣게 된 건에 대하여

-리혁이 뭐야

-왕모씨: 리혁이 형이 소리지를 땐 차라리 그냥 때려 줬으면 좋겠다..

-그냥 한 대 맞는 게 덜 아플듯

-뭐임 진짜ㅋㅋㅋㅋ

-와ㅋㅋㅋㅋㄱㅋㅋㅋ

초반부터 고막 폭격의 임팩트.

지금까지 들었던 애국가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실력에 모두가 와하… 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와아아아-]

애국가가 끝나고 현장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함성이 터져 나오는 한편.

중계방송에서 캐스터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제가 여태까지 들어 본 한국 시리즈 애국가 중에서도 톱을 달릴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도 평소 보기 힘든 반응이거든요. 애국가 하나로 오늘 경기 정말 에너지 충만해지는 것 같습니다!]

[평소의 리혁 씨랑 너무 달라보여서 또 놀랍네요.]

그러면서 캐스터가 말했다.

[어우. 근데 리혁 씨는 귀가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멀리서 듣는 저희도 순간 볼륨 때문에 놀랐는데.]

[말씀드리는 순간, 리혁 씨가 귀마개를 빼네요.]

[본인은 귀마개를 했군요! 역시 리혁 씹니다! 내 귀는 내가 챙긴다!]

리혁이 귀마개를 빼면서 은은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사람들이 웃으면서 주먹을 꼭 쥐었다.

‘서리혁…!’

어느새 평소처럼 얄밉게 웃고 있는 뉴블랙의 메인 보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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