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44화
애국가와 시구가 끝난 후.
한국 시리즈의 1차전 경기가 시작되는 동안, 리혁의 애국가 영상은 순식간에 각종 커뮤니티로 퍼져 나갔다.
[오늘 한국 시리즈 애국가]
게시글에 첨부된 영상을 클릭한 이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잘해도 너무 잘한다.
당연히 썸네일에 뜬 리혁을 보자마자 잘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대치를 초월한 수준의 가창력이 나오고 있었다.
음질이 좋지 못한 이어폰이나 스피커를 쩌렁쩌렁 뚫고 나오는 애국가.
-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첫소절 끝나자마자 웅성웅성하는 거 봐ㅋㅋㅋㅋ 다들 똑같은 듯
-웅성웅성ㅋㅋㅋ
-진짜 리혁이 보컬은 인정
-라이브로 들으면 소름 돋을듯,,,,
-애국가도 잘 부르면 예술이될수가 있구나 제대로 느낌ㅋㅋㅋㅋ
-리혁아ㅠㅠㅠㅠㅠ
그뿐 아니라 누군가 현장에서 폰카로 찍은 영상들도 올라와 있었다.
첫 소절이 시작되면서 ‘워어어…’ 하면서 사람들이 얼떨떨해하면서 감탄하는 소리들이 나온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연예부 기자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토] 뉴블랙 리혁, 폭풍가창력으로 문학구장 들썩
-[N포토] 한국 시리즈 애국가 제창하는 리혁, ‘오늘은 단추 안 터졌네~’
-애국가 부른 리혁 ‘마이크 필요 없는 성량’.. “하느님도 같이 듣고 계실듯”
그런 소식이 또 포털에 업로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잘 불렀길래.’
그래 봐야 애국가가 애국가 아니겠는가?
학창 시절이나 중요 행사 때 부르던 평범한 애국가를 생각하면서 호기심을 느끼는 한국인들이었다.
성악가가 부른 애국가도 아니고, 일반 가수가 부른 애국가가 뭐 얼마나…….
“어…….”
얼마나 대단하겠냐고 생각한 이들이 TBC 방송국에서 올린 클립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난리 날 만했네.’
맑은 목소리로 고음이 끝없이 올라가는 리혁의 영상을 보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동네에서 배드민턴을 잘 친다고 생각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이번에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고 온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잘 부른다’의 궤에서 한참 벗어난 수준.
“……?”
누군가 ‘저거 AR 깔았네요’, ‘보정이네요’ 같은 소리로 깎아 내릴 만한 것들을 원천 차단하고 있는 영상이었다.
댓글창 맨 위에 있는 베스트 댓글.
-그거 아시나요.. 이거 무반주예요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반주가 들린 것만 같았는데 그 말대로 다시 들어 보니 무반주로 목소리만 들어가 있었다.
“와…….”
저도 모르게 웃음과 감탄이 나왔다.
‘리혁이 엄청 잘 부르는 거였구나.’
다른 유명 가수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이었다.
왜 내가 서리혁도 아닌데 뿌듯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인지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인식에 있어선 중요한 변화였다.
그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을 인식하자 다른 곳으로 시선이 갔기 때문이었다.
-뉴블랙 애들이 진짜 잘하는 거였네;;
-인정
-ㄴㄴ 그건 아님요. 뉴블랙 노래할때는 딱히 가창력 뽐낼파트 없어서 몰랐던거임 딴애들이 잘하는 거 아님
-윗댓 뭔소리임ㅋㅋㅋㅋ 명곡단때 경연은 그럼 뭔데
-메보가 노래를 숨김 같은 소리 하고앉았네 ㅉㅉ
-사실 우주만 해도 메보급 아님??
저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르는데 여태까지 인지를 못했다는 것은 뉴블랙 멤버들도 그에 크게 밀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뜻이지 않을까.
예능 등으로 그저 친근하게만 생각했던 이들의 노래 실력에 새삼스럽게 감탄이 들었다.
딱 한 가지 의문이라면.
‘저 정도로 잘하는데 왜 여태까지 몰랐지?’
일반인들이 그런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동안, 그 해답을 알고 있는 수플레들은 웃을 뿐이었다.
[같은 곡 다시 부른 15년도 리혁 vs 17년도 리혁]
누군가 2년 전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 나오던 서리혁과 지금의 서리혁을 비교한 영상을 올렸다.
뉴블랙 TV의 컨텐츠로 2년 전 노래를 다시 부른 리혁.
성량은 여전하지만 그때에 비해 한층 더 진일보한 실력으로 17년도의 리혁이 압승하고 있었다.
남들보다 수련 효과가 2배가 되는 방에서 노래만 불렀나 싶을 정도.
아무리 막귀인 사람이 들어도 예전보다 훨씬 더 나아진 모습이었다.
‘최고는 최고인 이유가 있다.’
자신이 왜 메인 보컬인지 증명하는 최애의 모습에 수플레들이 괜히 몽실몽실한 기분을 느꼈다.
애국가 영상을 보면 괜히 코가 살짝 시큰거렸다.
영상 속 리혁이 차분하게 웃으며 자길 보라는 듯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까.
수플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려. 리혁아. 우리에게 불러 주는 너의 노래가…….’
전 세계의 수플레들이 주먹을 귀엽게 움켜쥐었다.
그 순간.
지구 위에서 수백만 개의 주먹이 쥐어졌다.
* * *
“고생했다!”
“잘했다!”
애국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리혁이에게 박수를 쳐줄 때였다.
“훗.”
거만하게 걸어오던 리혁이가 그라운드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마치 막대사탕 꼬다리를 바닥에 세워 둔 것처럼 휘청거린다.
“후웃…….”
중현이가 잽싸게 달려가 리혁이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새하얀 얼굴이 창백했다.
“떠…….”
“떠?”
“떨려서 죽는 줄 알았네…….”
심호흡을 하면서 중얼거리는 말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심장이 요동치는지 가슴에 손을 올린 리혁이가 벽에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와…….”
“그렇게 떨렸어?”
“2만 명 앞에서 무반주로 애국가 불러 봐요. 이건… 진짜 안 떨릴 수가 없어.”
막상 올라가서 잘해 놓고 엄살을 부리는 녀석의 등을 팍 쳤다.
“엄살은. 엄청 잘하고 왔으면서.”
“나 잘했어요?”
“부르면서도 감이 왔을 거 아니야.”
“좀 그런 감이 있긴 했죠. 뭐. 첫 소절 부르면서 ‘아 이건 됐다’ 하고 좋아하긴 했는데.”
머쓱하게 웃는 리혁이에게 잘했다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흐어’ 하고 마른세수를 하는 리혁이의 등을 우리가 두드리고 있을 때였다.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그라운드 쪽에서 거대한 행렬이 다가오고 있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
오늘 문학구장에서 열리는 한국 시리즈 1차전을 보러 오기 위해 왔다는 모범 장병들이었다.
리혁이가 애국가를 부르는 동안 경기장 안에서 거대한 태극기를 펼쳤던 이들.
“어……!”
인솔자를 따라 들어오던 군인들이 눈을 크게 뜨고 우릴 바라보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했어요!”
우리의 인사에 허둥지둥 답하는 군인들이었다.
인솔자를 따라 쭉 이동하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 바라보는 게 우리가 엄청 신기한 모양이다.
“아이고.”
군복을 입고 있는 아가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짠하다.
그것도 전방의 GP와 GOP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이라는데.
겨울만 되면 미친 듯이 추운 동네에서 오들오들 떨었을 이들이라 생각하니 괜히 내가 안타깝고 그렇다.
“음?”
그런데 걸어가는 군인들 중에서 익숙한 얼굴이 하나 보인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는데.
“어?”
“어어?”
날 보고 놀라는 상대를 딱 알아봤다.
하지만 인사를 할 틈도 없이 행렬에 밀려 사라지는 이를 바라보며 내가 손을 뻗을 때였다.
“왜 그래요. 형?”
“방금 지나간 사람 중에 수플레 있었어.”
“당연히 있었겠죠.”
막내의 대수롭지 않은 말에 내가 말했다.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만난 적 있는 수플레라고.”
“그랬어요? 못 봤는데.”
머리를 짧게 자르고 베레모를 쓰고 있어서 순간 긴가민가했지만, 내 기억 속에 있는 인물이었다.
-다음 주에 아들이 군에 입대합니다.
올해 초 국악공연장에서 열린 도깨비 쇼케이스에 아버님과 함께 왔던 수플레였다.
입대한다고 해서 내가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 줬던 팬.
그때 이야기를 해 주자 동생들이 ‘아!’ 하면서 바로 기억했다.
“형.”
비주가 말했다.
“그럼 가서 인사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자.”
원석이 형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바로 알아보겠다며 성큼성큼 걸음을 움직였다.
이야기가 잘 됐는지 얼마 안 가 해당 수플레와 만날 수 있었다.
경기장 내부에 있는 매점 테이블에 잔뜩 먹을거리를 사 놓았는데, 두 명이 찾아왔다.
“음?”
왜 두 명이지.
의아해하는 우리 눈빛에 쭈뼛쭈뼛하던 수플레가 말했다.
“절대 혼자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화장실 갈 때도 2인 1조로 움직이라고 해서.”
“아아…….”
혼자 돌아다니다 사고치지 말라는 간부들의 강조가 저절로 귓속에 들리는 기분이다.
쭈뼛쭈뼛하는 수플레와 그 옆에서 같이 쭈뼛쭈뼛하는 상병 계급장의 군인.
“이분은……?”
“제 선임이십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상병 김상곤.”
흐뭇하게 웃으며 악수를 주고받고는 자리를 권했다.
곧바로 우리를 소개했다.
“저희가 바로 후임 분의 가수입니다.”
“아, 예…….”
“이름은 뉴블랙이고요.”
“예, 저도 TV 봅니다…….”
그러곤 수플레랑 우리가 어떤 식으로 엮이게 된 것인지를 짧게 설명해 주었다.
“그때 당시 닉네임이 ‘군대가기싫어’였는데, 닉네임은 여전한가요.”
“‘전역하고 싶어’로 바꿨습니다.”
김 상병과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눈치를 살피던 졸개들이 같이 웃었다.
내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이건 우리만 웃을 수 있는 거야.”
“치…….”
막내가 입을 삐죽였다.
그러는 동안 김 상병과 우리 전역하고 싶은 수플레와 이야기를 나눴다.
선임이 수플레를 대하는 표정이나 행동을 눈여겨보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괜찮은 부대에 들어간 듯했다.
분위기 나쁘면 방금처럼 아이디에 전역 넣었다는 말도 못하지.
“아버님은 잘 지내세요?”
“예. 건강하십니다.”
“영상 통화라도 한 번 짧게 하실래요?”
“어…….”
“아까 된다고 허락 받았어요.”
두 군인의 부모님에게 짧게 영상 통화를 하면서 영업을 했다.
“주변에다가 널리 널리 퍼뜨려 주세요. 뉴블랙 인성 대박이더라. 군인 챙기는 뉴블랙 인성…….”
우리의 얄팍한 속내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긴장했던 것이 좀 풀렸는지 아까보다 훨씬 더 편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전역하고 싶은 수플레가 내게 말했다.
“형도 빡센 부대 나오셔서 아시겠지만…….”
“그, 그건 아닌데.”
저는 행정병이었는디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자 옆에 있는 김 상병도 고개를 갸웃했다.
“빡센 부대 나오지 않으셨습니까?”
“전혀 아니에요.”
“어? 왜 그렇게 알고 있었지…?”
사나이가 간다의 군대 특집 임팩트가 셌는지, 내가 빡센 부대를 나온 걸로 오해하는 둘이었다.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콘서트는 못 왔겠네요.”
“아, 근데 어차피 티켓팅에서 광탈했을 거 같습니다.”
“코인 후렴 들어 볼래요?”
군 복무 때문에 덕질을 못했을 수플레를 위해 잠시 코인과 메트로의 후렴을 짧게 불러 주니 되게 좋아했다.
눈이 촉촉한 걸 보니 행복한 모양이다.
하지만 기분 좋게 팬과 소통을 하는 시간도 잠시 예정된 시간도 끝났다.
“저희… 가야겠습니다.”
“헤어질 시간이네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플레를 위해 간식거리를 챙겨 주려는데 둘이 한사코 거절했다.
보는 눈들이 있어서 안 될 것 같다고.
그 말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죠. 그러면… 가기 전에 포옹 한 번?”
“포옹이요?”
“좀 갑작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요? 그럼.”
* * *
10분이었지만 꿈결 같은 시간이었다.
군복을 입은 수플레가 왠지 모르게 둥실 떠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야.”
옆에 있던 김 상병이 계 탔다는 얼굴로 흥분해서 말했다.
“대박이다. 너 그거 진짜였구나.”
“아니 제가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훈련소에서부터 썰을 풀었던 수플레였다.
-내가 뉴블랙 우주로부터 ‘이등병의 편지’를 듣게 된 사연에 대하여.
-저 새끼 또 시작한다!
자대 배치 받고 선임들이 ‘썰 좀 풀어 보거라’ 할 때도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고.
-제가 뉴블랙 우주로부터 ‘이등병의 편지’를 듣게 된 사연에 대하여.
-허언증이야?
그만큼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은근히 안 믿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우주가 불러 준 ‘이등병의 편지’ 영상에서 그의 얼굴이나 모습이 안 나왔기 때문이었다.
-저기 그림자가 접니다.
-어, 그래. 그럼 저기 조명에 비친 그림자는 나겠네.
이제 부대에 돌아가면 아무도 그런 의심을 하지 않으리라!
수플레가 주먹을 꼭 쥐며 기뻐했다.
‘대박이었다.’
주변에서 남자가 보이그룹 덕질한다고 오만 소리 듣지 않았던가.
그나마 17년도 와서는 어딜 가든 뉴블랙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지만 16년도에만 해도 좀 애매한 분위기였다.
그간 덕질을 한 보람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음?”
관중석으로 돌아온 수플레가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움찔했다.
‘뭐야?’
주머니가 두둑했다.
마치 건빵 봉지가 들어간 것처럼 빵빵한 느낌.
살짝 군복 주머니를 바라보자 그 안에 몰래 먹을 만한 간식들이 가득했다.
‘어느 틈에?’
그제야 수플레는 방금 전에 우주와 짧게 포옹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틈에 소매넣기를 한 듯했다.
왜 갑자기 포옹하자고 하는 거지 했는데.
‘대박이다. 전문 소매치기인 줄.’
하하하 웃던 수플레가 불현듯 표정을 굳히고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
다행히 지갑은 남아 있었다.
“휴…….”
안도의 숨을 내쉬던 수플레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의심해도 선우주 같은 사람을 의심하다니.
하지만 하하 웃던 수플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지갑이 왼쪽 주머니에 있었나? 오른쪽이 아니고?’
* * *
“후우, 훔칠 뻔했다.”
“뭐라는 거야.”
“아니야. 그런 게 있어.”
리혁이에게 고개를 저으며 웃으며 멀찍이 좌석에 앉은 군인들을 바라보았다.
미튜브에서 보았던 소매치기 방어술 영상을 제대로 써먹은 듯해서 뿌듯하다.
“좋다, 좋아.”
최근 들어 새롭게 배운 스킬도 써 먹고, 우리 애 무대도 구경하고.
팬이랑 만나기도 하고.
공연이 아니면 하루 종일 연습실이랑 작업실을 오가던 일상에 한 줄기 빛 같은 날이라고 할까.
쾌청한 날씨의 야구장에서 결승전을 관람하며 응원을 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내가 오늘 하루 느낀 기분을 선물해 주고 싶을 만큼.
“중현이 오늘은 야구 볼 때 인상 안 쓰는구나.”
“남의 팀이라서 괜찮아요. 뭐… 누가 이기든…….”
응원하는 팀인 KG 드래곤스가 떠올랐는지 중현이가 눈물을 왈칵 쏟았다.
어깨를 토닥여 주며 웃었다.
나는 야구 안 봐야지.
“끝났다!”
어쨌든 졸개들과 함께 한 야구 관람은 즐겁게 끝마쳤다.
경기 결과는 홈팀인 대산 호크스가 원정팀인 셀틱 유니콘스를 4대2로 이기면서 마무리가 됐다.
하지만 양쪽 팀 응원석에서 연신 ‘시발’과 ‘개시발-’ 등이 터져 나온 것으로 보아 두 팀 모두 경기력은 좋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다시 보네요.”
경기가 끝나고 리혁이네 가족과 짧게 만남을 가졌다.
어머님은 저번에 뵀을 때랑 똑같았고, 아버님도 콘서트 때 뵀던 모습이랑 완전 똑같았다.
“인기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저희가 좀 대단합니다. 하핫.”
그러곤 리혁이를 붙잡고 내밀었다.
“리혁이 오늘 엄청 멋있었죠?”
“어…어흐음. 네.”
“멋있었지…….”
아버님과 리혁이의 귀가 달아오르고, 어머님이 냉랭한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보셨다.
리혁이의 동생만 싱글벙글할 뿐.
어색하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리혁이가 손 부채질을 하며 우리에게 말했다.
“그럼 나 저녁은 가족들이랑 먹고 들어갈게요.”
“천천히 다녀와.”
“아!”
상기된 얼굴로 가족들을 따라 뛰어가던 리혁이가 고개를 돌려 밝게 웃었다.
“레스토랑 예약 고마워요!”
“……리혁아!”
“왜요?”
“방금 말 녹음하게 다시 한번만.”
눈빛으로 뻐큐를 날리며 사라지는 넷째.
그런 메인 보컬에게 손을 흔들어 주면서 멀어지자 우리가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후후.”
“우후후후후후.”
“리혁이 형은 모르고 있겠죠. 우리의 이벤트를.”
“후후후.”
리혁이는 지금 가는 레스토랑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거다.
* * *
서리혁에게 있어 오늘은 근 몇 년간 최고의 날이었다.
‘길도 안 막혔어!’
가족들이랑 다 같이 외식을 하러 가는데 길도 안 막혔다.
심지어 다른 날이면 지나가다 보였을 보도블록 위의 쓰레기도 안 보였다!
“대단하더라. 아까.”
우물쭈물 칭찬해 주는 부모님의 말도 좋고.
하나뿐인 동생의 대학 입시도 잘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도 흐뭇했다.
“브라운에 얼리 디시전 넣었는데 잘 될 거 같아.”
“진짜? 잘 됐으면 좋겠다.”
미국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동생이 전해 주는 K팝이나 뉴블랙에 관한 소식도 기분이 좋고.
텅 빈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도 기분이 좋았다.
‘이 프라이버시의 맛!’
전망 좋은 레스토랑을 통으로 예약해서 빌려준 맏형이었다.
그림같이 예쁜 식탁보 위에 와인이 올라와 있고, 창밖으로 한강의 야경이 훤히 보이는 뷰.
그런 식당에서 식사를 하니 기분이 점점 업 됐다.
“하하하하!”
서로 간의 얼음이 살짝 녹아내리면서 가족들끼리 달빛 아래의 식사를 즐겼다.
이제 디저트만 나오길 기다릴 때.
“디저트 나오기 전에 이벤트가 하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벤트?”
이벤트란 말에 가족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네가 준비했니?’, ‘누구야?’ 하는 표정.
영문을 모르겠어서 모두가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잉-
바퀴 굴러가는 소리에 서리혁이 벌떡 일어났다.
“안 돼!”
파츳!
전원이 들어온 TV가 둠칫둠칫하는 듯한 기동을 보여 주며 그들의 코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미리 녹화된 4인조의 영상.
[안녕하세요. 리혁이 없는 사블랙입니다.]
사블랙이 무슨 뜻인지 몰라 하는 미국 거주자들에게 리혁이 한숨을 쉬며 설명을 하는 동안.
멤버들의 감동 섞인 멘트가 이어졌다.
[리혁이는 저희에게 정말 소중한 친구입니다. 이 친구가 있어서 저도 곡 작업에 큰 도움을 받고 있고.]
[밥만 조금 잘 먹으면 좋을 텐데……. 콩밥에 콩을 매일 남겨요.]
[리혁이랑 있으면 매일매일이 재미있어요.]
[리혁이 형이 저를 너무 좋아해서 탈이에요.]
그런 리혁이를 우리에게 보내 줘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였다.
부모님이 와인을 들이켜며 조용히 웃고, 리혁이 괜히 와인을 홀짝이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뭐…….’
이런 이벤트라면 나쁘지 않았다.
화면 위로 리혁의 사진이 주르륵 흘러나오며 결혼식 영상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한편.
[가족 간의 시간은 잘 보내고 계신가요?]
우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저희 영상제작팀이 그간 묵혀 두고 있던 특별 영상의 비하인드를 풀어 보려고 합니다.]
‘특별 영상?’
가족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돌아보자 파츠츠 하며 영상이 전환됐다.
핸드볼 경기장에서 첫 콘서트를 할 당시의 영상인 듯했다.
[Q.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 돼!’
첫 콘서트의 감동에 취해 버린 서리혁이 주절주절 ‘사랑…’ 하며 하는 모습에 리혁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부모님이랑 예인이가 따로따로 나와서 멘트를 하고 있었다.
[내가 표현이 약하지만…….]
[리혁이를 응원하고.]
[오빠를 볼 때마다 눈물이…….]
해바라기가 시들어서 고개를 떨구듯이, 영상이 이어지면서 내성적인 가족이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레스토랑 직원들이 3단 케이크를 카트에 싣고 다가왔다.
[조금 늦은 추석이긴 하지만 오늘 이 가족 간의 모임!]
[오늘 가족끼리 행복한 시간 되~세요!]
[으하하하핫!]
“…….”
“…….”
4인 가족이 케이크를 두고 양손을 얼굴에 올리고 있는 동안 멤버들의 발랄한 축하송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