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50화
‘대박 사건.’
수플레들과 짭플레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바로 영상을 클릭했다.
그러자 검은 화면이 나타났다.
[사건의 발단]
어두운 화면에 하얀 글씨로 통화 내용만 깔려 나왔다.
그 위로 작게 ‘추석날 E스포츠 돌림픽 방영 직후’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덕순님 : 어쩜 그렇게 못하냐.
우주 : ……아니, 그게.
덕순님 : 내가 해도 너보단 잘하겄다. 에휴.
통화가 끝나면서 등장하는 자막.
[그래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김덕순 VS 선우주]
곧이어 나오는 뉴블랙 TV 오프닝을 보면서 구독자들이 감탄했다.
-벌써부터 가슴이 옹졸해진다
-어떤 손자가 70대 할머니를 게임으로 이겨 보겠다고ㅋㅋㅋㅋㅋㅋㅋ
-우주 추어탕집 하면 개잘할듯 추하니까
-추선아 주하다
-이겨도 져도 불효자 확정
-킹덕순: 그때는 손주 농사가 잘 된 줄 알았지.. 흉작이었던 거시여
평소처럼 우주선을 놀리는 댓글들.
하지만 구독자들도 궁금했다.
‘게임 고자 VS. 70대 할머니.’
솔직히 너무 궁금하지 않은가?
도무지 누가 이길지 감이 안 오는 라인업이었다.
보통의 20대 청년과 70대 노인이 게임으로 맞붙는다면 너무나 결과가 명백하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니까.
오죽하면 일상생활에서 겜알못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는 선우주였다.
-와씨. 개못하네. 님 선우주임?
-얘 별명 앞으로 발산동 우주선으로 하자. 아 꺼지긴 뭘 꺼져~ 존나 못하는 건 사실인데.
-님ㅋㅋㅋㅋ 선우주임??
-이 새끼 우주선급 피지컬이네; 다음 판에선 만나지 말자
중고등학생이 가득한 PC방이나 게임 채팅창에서 종종 이름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두근두근.’
오프닝 로고가 끝나고 뉴블랙 TV의 스튜디오가 나왔다.
할머니와 손주가 서로 마주 보는 컴퓨터에 앉아 세팅을 하고 있는 한편.
중계석으로 장면이 전환됐다.
[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1회 레몬배 아마추어 게임 대회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국내 최고의 스포츠 아나운서가 미소를 지으며 멘트를 시작했다.
정장을 차려입은 3인조.
중앙에 앉아 있는 게임 캐스터가 화면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E스포츠 돌림픽 중계를 맡았던 게임 캐스터 정현중입니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 옆에서 머리를 살짝 빗어 넘긴 왕지호가 꾸벅 인사했다.
[게임이 취미인 왕지호입니다!]
3인조의 자기소개가 끝나면서 멘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늘 현장의 열기가 아주 뜨겁습니다.]
현장에서 매니저들과 멤버들이 팝콘을 먹으며 깔깔 웃고 있는 모습이 잠시 비춰진다.
정현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아주 역사적인 순간이거든요. 어쩌면 선우주 선수가 게임 인생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둘 수도 있는 날이에요.]
[하지만 승률이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왕지호 캐스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의 경기.]
뉴블랙의 막내가 능글맞게 웃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우주 선수가 이기는 게 너무 당연한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저 선수가 상식적으로 플레이를 하지 않는 분이잖아요? 제 생각엔 겁나 불안불안합니다~!]
캐스터들이 이러쿵저러쿵 놀려 대는 멘트에 우주가 헤드폰을 벗고 꽥 소리를 질렀다.
[다 들려요!]
캐스터들이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소란이 있었네요.]
[중계 이어 가겠습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선우주의 모습에 구독자들도 같이 웃음을 터뜨릴 때.
두 게이머의 피지컬과 스펙이 표로 나뉘어 비교되고 있었다.
‘마음만은 20대’라고 김덕순 여사 본인이 적은 표에 캐스터들이 웃음기 가득한 멘트를 하는 한편.
[네! 경기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하네요.]
[종목은 돌림픽 때와 똑같은 서바이벌 게임입니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 게임.
최근에 뉴블랙 덕을 본 제작사 측에서 특별하게 만들어 준 1대1 아레나 맵이 배경으로 소개됐다.
[네, 맵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요. 일단 선수들 각오 들어 볼까요?]
[예. 삐 캐스터! 우리 귀여운 삐 캐스터 나와주세요!]
막내의 말에 장면이 전환됐다.
해바라기처럼 웃는 메인 댄서가 양손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귀엽다는 칭찬 감사합니다. 왕 캐스터.]
[히힛, 별말씀을.]
[네! 오늘 경기를 앞둔 두 선수를 만나 보겠습니다.]
먼저 선우주에게 마이크가 갔다.
건방진 표정을 짓는 우주선이 할머니를 깔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뭐. 제가 오늘 많이 봐주도록 하겠습니다.]
‘이여얼~~’ 하며 매니저와 스탭들이 추임새를 넣어 주는 가운데, 마이크가 김덕순 여사에게 넘어갔다.
손주의 도발이 먹혔는지 눈에서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
[야.]
[……응?]
[뭘 하든 나랑 할 때는 최선을 다혀라. 알겄냐?]
[으, 응….]
그 뒤로 타오르는 불길에 손주가 움찔하면서 웃음이 터졌다.
-선우주 하드카운터ㅋㅋㅋㅋㅋㅋㅋ
-05:37 으.. 으응.. ㅋㅋㅋㅋㅋ 이거 왜 자꾸 보게 되지
-레몬 엔터의 사악한 독재자 우주선도 결국에 한낱 손주에 불과한 것
-벌써부터 기싸움에서 진 거 같은데ㅋㅋㅋ
비주가 웃으며 인터뷰를 했다.
[김덕순 선수님! 연습은 많이 하셨나요?]
[어젯밤에 지호가 알려 줘 갖고, 쪼오까 해 보긴 했는데… 아무래도 노인네가 하라고 만든 게임은 아니니까. 뭐가 그리도 눌러야 되는 게 많은지.]
[그렇군요. 선우주 선수는요?]
[뭐 특별한 연습이 필요하겠습니까?]
캐스터인 지호의 멘트가 적절하게 치고 들어온다.
[어제 밤샜거든요. 저 형.]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지 마십시오. 왕지호 씨.]
[그거 게임 로그 떠요. 제가 친구라서.]
[……엇, 진짜로?]
막내가 손가락을 내밀며 윙크했다.
[뻥인데~]
[저저…….]
뒷목을 주무르는 우주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인터뷰가 끝났다.
중현과 리혁이 팝콘을 우물거리며 서로에게 뭐라고 속삭이며 웃는 장면이 나오는 동안.
[네! 1차전 시작되었습니다!]
할머니 캐릭터와 꽃무늬 군인 캐릭터가 낙하산을 타고 섬에 내려갔다.
진지하게 모니터를 바라보는 조손.
-이래서 할머니랑 손자구나
-와 할머님 집중하실때 표정 선우주랑 개똑같아ㅋㅋㅋㅋㅋㅋ
-ㄹㅇ승부욕이 대단한 집안ㅋㅋㅋ
선우주가 훗 하고 웃으며 키보드를 누르기 시작했다.
달리기 시작하는 군인.
[달려갑니다! 이젠 달려갈 줄 안다 이거죠!]
[아이템도 이젠 잘 먹네요!]
자연스럽게 뛰어간 선우주가 창고에서 총을 줍고 온갖 방어구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건물들이 가득한 거리로 나아갔다.
투타타타탕!
총을 쏘면서 도발하기도 하고.
깡총깡총!
얄밉게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 나와 봐라! 김덕순!’ 하고 있을 때였다.
깡총깡ㅊ….
피융-!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선우주의 캐릭터가 풀썩 쓰러졌다.
[……?]
멍하니 마우스만 휘휘 젓는 우주.
캐릭터가 3인칭 시점으로 전환되면서 킬 로그가 떴다.
[백반마녀 ☞ 김덕순의 남자 (저격 라이플)]
멀찍이 건물 옥상에서 백발의 할머니가 엎드려서 저격총을 쏘는 자세로 멈춰 있었다.
모니터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는 김덕순 여사.
-아씨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머님무친 플레잌ㅋㅋㅋㅋㅋㅋㅋㅋ
-표정 앀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깝쭉대다가 한방에 가는 거 개웃기네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침나옴 ㅅㅂㅋㅋㅋㅋ
-ㄹㅇ 선우주 하드카운터ㅋㅋㅋㅋㅋㅋㅋ
현장에서도 다들 배를 잡고 뒤집어진 가운데 우주가 헤드셋을 벗고 얼굴을 양손에 파묻었다.
캐스터들이 중계를 하다 말고 꺽꺽대는 웃음을 터뜨릴 정도.
[아, 미치겠네요!]
[정말 선우주 선수가 나 한번 잡아 봐라 하고 있었는데 잡아 버렸네요.]
[경기 시작한 지 5분 만에 1차전 승부가 갈렸습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우주선과 어깨를 두둠칫 흔들며 트로트 춤을 추는 김덕순 여사.
-티배깅까지 완벽ㅋㅋㅋㅋㅋㅋㅋㅋ
-우주가 대충 어디서 뭘 물려받았는지 알겠음ㅋㅋㅋ
-할머님 귀여우심ㅋㅋㅋㅋ
곧이어 경기를 속개해 달라는 우주선의 요청에 시작된 2차전.
하지만 2차전과 3차전에서도 똑같은 결말이 그를 찾아왔다.
[삐-]
백발의 할머니가 폭탄을 작동시켜 던지자 우주가 깡총 점프하면서 폭사를 하는 장면.
3차전에는 겁부터 집어먹고 도망치는 손주를 향해 여유롭게 화살을 날려 손주를 사냥한 할머니였다.
-김덕순 the 그레이트 헌터
-(대충 무림에서 노인이랑 어린아이 보면 조심하라고 했던 말)
-???: 이런 전란의 시대에 노인을 보거든 생존자라고 생각하게나
-진짜 한번을 못이기네ㅋㅋㅋ
-그것보다 할머님 게임 개잘하시는데??? 재능 있으심
-진짜 젊게 사시는 거 같음
우주의 게임 실력이야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었으니, 그 할머니에게 시선이 가고 있었다.
우주가 구석에서 입을 비죽이는 동안 졸개들의 축하를 받는 김덕순 여사.
그녀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뭐, 이겨도 저걸 이겨 먹은 거니까 뿌듯하진 않은데… 암튼 게임이란 것이 오묘하게 재미있고. 이 나이에도 뭔가 새로운 걸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요로코롬 뿌듯해집니다.]
다들 한 번 이것저것 도전해 보라는 심금 울리는 멘트.
이윽고 구석에서 처량하게 있는 손주에게 다가가 안아 주는 힐링 장면으로 영상이 끝났다.
그리고.
[70대 할머님의 개쩌는 무빙]
[결국 할머니에게도 패배한 우주선 (feat. 게임)]
[손주가 깝죽대서 저격총으로 참교육한 할머니 (뻥 아님)]
구독자들에게 큰 웃음을 준 영상이 바이럴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하루 동안 할머니와 꿈결 같은 시간을 보낸 후.
곧바로 나는 불행에 빠졌다.
“흐하하하하하!”
“…….”
“으헤헤헤헤헤!”
“…….”
김덕순 여사를 다시 군산으로 보내고 허한 기분을 느낄 틈도 없었다.
뉴블랙 TV에 광속으로 영상이 올라왔다.
“……편집자 분들은 퇴근을 안 하시나? 아니 이게 어떻게 이런 속도로 나와. 찍은 지 하루 만에.”
“뭐, 컨텐츠도 타이밍이 중요하잖아요.”
리혁이가 논리적으로 말했다.
“관심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딱 올라오면 제일 반응이 좋죠.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너 지금 웃고 있지?”
“푸흐흡, 아닌데요? 내가 언제?”
시치미를 뚝 떼는 리혁이를 바라보며 괜히 가슴만 쳤다.
막내가 흉을 봤다.
“그러게. 형도 참 바보지. 그걸 왜 찍자고 한 거예요?”
“나는.”
나를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힘겹게 입을 뗐다.
“……내가 이길 줄 알았지.”
“진심으로요?”
“와.”
“오, 정말 근거 없는 생각으로 추진한 거였네요.”
여러 의미로 감탄하는 졸개들.
그 속에서 쓸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밤새 연습했으니 설마 할머니한테 지겠냐 했는데 진짜로 져 버렸다.
그냥 하지 말걸.
“후…….”
“웃어요. 형.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래요.”
막내의 말에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눈을 흘겼다.
하지만 내 반응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졸개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유머글들을 보며 꺄르르 웃을 뿐이었다.
나도 핸드폰을 들었다.
이런 건 무시하고, 좋은 소식들이나 보면서 기분을 달래야지.
-[종합] 뉴블랙, 빌보드 Hot 100 1위.. ‘5주 연속’
분명히 2위나 3위 정도로 하락할 거라 생각했던 메트로는 5주 차에도 여전히 1위 자리를 지켰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이번 콘서트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글렌 데이비스 씨와의 공연 영상이 북미에서 화제였던 모양이다.
-글렌 데이비스는 정말 위대해. 저 짧은 순간에도 관객을 저만큼이나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니.
-윗 댓글에게 말해 주자면, 한국인들은 모든 가수한테 저렇게 환호해 줘.
-그의 연주는 다시 들어도 소름 돋는다
-관중들 진짜 반응 끝내주네
-거장이 거장인 이유.
그것을 비롯해 헤일리 블루 등과의 공연이 SNS에도 퍼지면서 메트로에 손이 한 번 더 가고.
그래서 1위를 한 모양인데 새로 발매한 맨디 스파이스의 신곡과 격차가 적은 것으로 보아 아마 이번 주가 정말 마지막인 거 같다.
-피처링 꼭 잊지 말고.
-호주에 놀러 오면 연락하게.
공연 바로 다음 날에 출국하는 이들을 영상통화로 배웅해 줬던 기억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번 공연을 위해 멀리까지 날아와 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품는 한편.
또 다른 행운에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후후후.”
“왜 그래요, 형?”
비주에게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여기 이분들.”
“아.”
유명 게스트들을 불러서 공연한 것도 좋았는데.
공연이 끝나기 무섭게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엄청 서운함이 가득해 보이는 메시지들이 들어왔다.
노재현 [재미있어 보이더구나.]
장소원 [우리 사이 썸씽 이젠 없어진 거니]
백상교 [일본에서도 마에다 그놈 내가 주선해 준 건데]
하승주 [이렇게 단물만 쏙 뽑아먹고 버린다 이거지]
아니라고 해명을 했지만 다들 믿어 주지 않았다.
-노스탤지어는 뭔데! 그건 2015년 영화잖아.
-뮤지컬이 올해 17년에도 또 히트를 쳤대요. 브로드웨이에서.
-몰라!
-연락할 때는 안 받으시더니.
-그, 그건…….
전화를 걸어도 ‘다음에 이야기하자꾸나’ 하면서 도망치던 사람들이 그러니 조금 그렇긴 했지만.
중현이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월척이네요.”
“대박 중의 대박이지.”
본인들이 알아서 먼저 출연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서운해하는 이들을 달래 준 다음에 바로 제안했다.
-그럼 다음에 나와 달라고 부탁드리면 꼭 나와 주시는 거예요.
-어? 그렇지.
-꼭이에요. 지금 약속한 거예요. 구두 계약인 거예요.
-그, 그래…….
졸개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내년 송 캠프는 풍족하겠구나.”
“송 캠프요?”
“꼭 콘서트라고 말은 안 했잖아. 콘서트도 나와 주시고, 송 캠프도 나와 주시고 하는 거지.”
“와. 진짜 못돼먹은 생각이네요.”
리혁이가 새초롬하게 웃었다.
“마음에 들어요.”
“그렇지?”
동생들과 꺄르륵 행복하게 웃고, 스탭들이 허허허 웃고 있을 때였다.
달칵.
대기실 문이 열리고는 큐시트를 겨드랑이에 낀 스탭이 들어왔다.
“10분 뒤에 리허설 들어가겠습니다.”
“네!”
손목시계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준비하자.”
“네.”
몸을 쭉쭉 풀면서 대기실 벽에 붙은 포스터를 바라보았다.
[11.01 평창 G-100 기념 광화문광장 콘서트]
콘서트가 끝난 후 우리의 첫 스케줄이었다.
기지개를 켜던 지호가 말했다.
“이제 평창도 100일 남았네요.”
“진짜 금방이네.”
3개월 뒤면 올림픽이라니.
G-100이란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처음에 저 G가 뭔지 되게 궁금했는데, 바로 올림픽이 시작하는 게임데이(G Day)라는 의미에서 G라고 했다.
D-100이 아니라서 낯설긴 한데 조직위에서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나.
아무튼 평창 올림픽을 100일 남겨 두고 ‘잘 되어라!’ 하고 광화문에서 K팝 콘서트를 하는 날이었다.
라인업은 우리를 비롯해 틴스피릿, 스트릿 보이즈, 원더 차일드, 세레니티, 스칼렛 등등.
K팝에서 잘나가는 그룹이란 그룹은 총출동했다.
“이따 문체부 장관님도 잠깐 온다니까 사진 찍을 준비하고.”
“네.”
민기 형의 말에 답하고는 TV를 바라보았다.
[네, 오늘 인천공항에 도착한 평창 올림픽 성화는…….]
앞으로 100일 동안 전국을 돌면서 평창으로 여정을 떠나는 성화에 대한 소식이 흘러나왔다.
저걸 보니 올림픽이 진짜 얼마 안 남았다는 게 실감이 났다.
어깨를 으쓱여서 몸을 풀고는 동생들을 불렀다.
“리허설 하러 가자.”
“고고~!”
그렇게 호기롭게 광화문 광장으로 나선 것까진 좋았는데.
“아니…….”
밖으로 나오자마자 동생들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
“오늘 뭐 있어요?”
멀찍이 펜스 너머로 어마어마한 인파가 광화문 광장 주변에 밀집해 있었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는 스트릿 보이즈를 향해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동생들과 감탄했다.
“이야.”
“스보도 인기 진짜 장난 아니네요.”
“대박…….”
* * *
광화문 광장 일대.
성화봉송 기념 콘서트를 위해 4시부터 10시까지 교통통제가 이뤄지고 있는 경복궁 앞 광장이었다.
아직 입장이 이뤄지지 않아 의자 좌석이 텅 비어 있었지만.
‘세상에…….’
광화문 주변 일대가 인파로 마비되어 있었다.
지나가던 이들이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오늘 뭐 해요?”
“케이팝 콘서트 해요!”
하지만 일반적인 케이팝 콘서트의 인파가 아니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의문을 품은 이들에게 해답이 돌아왔다.
“뉴블랙이 콘서트에 나오거든요.”
“아아.”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납득한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저마다 구경하기 위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저기 봐. 외국인들도 있어.”
“그러네?”
뉴리단길에서 볼 법한 외국인들까지 밀집하면서 점점 광화문 광장 주변에 사람들이 꽈악 차기 시작했다.
광화문 무대를 두고 그 뒤 거리까지 꾸역꾸역 사람들이 몰려드는 상황.
경찰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 솔둘. 인파가 폭증하는 상황임. 현장 통제 인원 더 파견 바람.”
-지금 갑니다!
“그리고 의경 대원들 있으면 이리로 다 보내 주세요. 여기… 어어, 거기 싸우시면 안 돼요!”
상황을 지켜보던 경찰들이 추가 인원을 요청할 정도였다.
아직 본 공연이 시작하기 전인데도 경찰 추산 몇만 명이 모여 있을 정도.
여기저기서 사투리도 들려온다.
‘그야말로 전국에서 왔네.’
지금 이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얼마 전 뉴블랙의 콘서트 때문이었다.
헤일리 블루와 글렌 데이비스 등 파격적인 라인업으로 화제가 되었던 뉴블랙 피날레 콘서트.
그런 판국에 ‘뉴블랙 오프라인 공연을 구경할 수 있다더라!’ 하니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뉴블랙 콘서트 = 표 구하기 힘든 내한 공연’이라는 인식이 퍼져 나가고 있었으니까.
‘서울 광장으로 인원이라도 좀 분산시켜야 하나.’
주최 측과 경찰이 예상하지 못한 인파가 몰리는 한편.
리허설을 하기 위해 누군가 멀찍이 무대 위로 올라오면서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뉴블랙인가!’
일단 아이돌 같아서 환호하는데 9인조였다.
환호하다가 ‘으음?’ 하고 ‘누구지’ 하고 있는데 9인조의 리더가 마이크를 쥐었다.
-안녕하세요! 스트릿 보이즈입니다!
“와아아아.”
-저희가 누군지 잘 모를 분들에게 소개드리자면, 예, 저희가 바로 뉴블랙의 절친한 친구입니다.
그 순간.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후후후 웃는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
‘친구 팔아 강남 간다!’
‘뉴블랙 코인 풀매수!’
‘큭큭큭, 너희를 이용해서 성공해 주지. 큭큭.’
그것이 바로 뉴블랙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들었던 함성의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