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54)화 (75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54화

카메오 출연.

대개 카메오를 출연시키는 목적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특정 유명인을 등장시켜서 시선을 확 끌어모으기 위함이다.

극의 내용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소소한 재미 포인트 정도.

“그러니까 부담 크게 가질 필요 없어요~ 편하게 대사 한두 마디 하고 가면 땡이니까.”

세상 느긋하게 말하는 막내가 얄미워 옆구리를 쿡 찔렀다.

“으익!”

“속 편한 소리 하고 있네. 너 같으면 신경이 안 쓰여?”

“왜 그래요. 카메오 출연 처음도 아니면서.”

그렇긴 하다.

막내가 단역으로 나왔던 <슬립>에 경찰서에 끌려온 고등학생 잡범들로 한 차례 출연한 적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미리 준비가 안 된 거잖아.”

무언가를 완벽하게 준비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게는 영 불안불안한 일이었다.

막내가 비주를 데리고 와서 말했다.

“비주 형이 <외계인 가족>에서 사과 사는 손님으로 우정출연했던 거 기억나요?”

“응.”

“비주 형도 준비할 시간 별로 없었는데 엄청 잘하고 갔잖아요.”

“그건 또 그렇긴 한데…….”

비주가 막내를 바라보며 ‘나 잘했어?’ 하며 웃자 막내가 그렇다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가 투덜대며 말했다.

“형은 그게 문제예요. 준비성이 너무 철저해.”

“아니, 네가 만든 문제 상황이잖아. 네가!”

“그래도 형은 너무 준비성이 과해요. 카메오 출연을 누가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해요?”

“그건…….”

얄밉긴 해도 막내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헤일리 블루처럼 미국 유명인들이 국내 드라마에 심심풀이로 출연하고, 감독이나 주연 배우의 지인들이 우정 출연으로 짧게 나오는 것도 가볍게 찍고 가는 것이니까.

촬영장 놀러 왔다가 카메오로 붙잡히는 케이스도 많다.

“그리고 형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데!”

“…….”

눈을 초롱초롱 뜨는 막내의 말에 헛기침을 했다.

“더 해 봐.”

“2017년 한국예술대상 신인 남자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시청률 30퍼센트의 주인공!”

“더 해 보세요.”

“평론가들이 ‘우주의 눈을 보면 알 수 없는 우수가 느껴진다’고 평했을 만큼 눈깔 연기의 최고 존엄!”

“더더.”

“유죄인간 김우주를 연기한 불세출의…….”

“그것까진 너무 갔다.”

하나 그리 자제를 시키면서도 내 입가가 씰룩씰룩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짐짓 헛기침을 하고는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뭐, 그럼 한 번 제대로 해 볼까.”

“역시 우리 형!”

흐뭇하게 웃으며 대본을 뒤적거리자 막내가 먹고 살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음? 형이 카메오 하는 게 별로니? 방금 표정이…?”

“아뇨!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근데 목이 좀 마르네.”

바람처럼 달려간 막내가 생수를 가져왔다.

“여기 있습니다.”

“까서 줘야지.”

“…….”

옆에서 지켜보던 리혁이가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생수병을 돌돌 돌린 막내가 병을 내밀었다.

“음…….”

지호가 건네준 대본을 차분하게 살폈다.

-아무튼 형은 너무 준비성이 과해요.

내가 생각해도 내 완벽주의 성향이 과하긴 하다.

최근 들어 드는 생각이었다.

모든 일에 과하게 신경을 쓰는 것이 장기적으로 안 좋을 것 같다고.

얼마 전 평창 G-100 콘서트 MC를 맡은 날에는 너무 멘트나 발음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끝나고 몸살을 앓기도 했다.

그러니까…….

“조금은 힘을 빼 볼까.”

본업인 음반 제작이나 무대가 아닌 사소한 스케줄까지 본업처럼 했다간 몸이 안 남아날 거 같다.

20대 중반에 접어드니 또 초반이랑은 체력이 좀 다르고.

이런 식으로 즉흥적으로 발생한 가벼운 이벤트에는 가볍게 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가벼운 것에는 가볍게.

무거운 것에는 무겁게.

“…….”

불현듯이 찾아온 깨달음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마음속에 있던 부담감이 날아가면서 ‘그래, 되는 대로 재미있게 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대본이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내가 반드시 해내야 하는 활자 더미가 아닌 진짜 대본이 눈에 보이는 듯한 느낌.

대본을 숙지하고 나자 감독님과 작가님이 나를 불렀다.

“우주 씨가 맡아야 할 배역은 이름 없는 무명의 독립군이에요.”

“네, 감독님.”

작가님이 차분하고 진지하게 내 배역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 줬다.

이름 없는 진 아무개.

“경성의 부유층으로 살아온 인물이지만 어떤 계기로 만주로 넘어와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 인물이에요.”

머릿속으로 내가 연기할 캐릭터의 디테일을 그렸다.

“한때 화가가 꿈이었지만 지금은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일본군을 공격하는 작전을 앞두고 있던 중에 지호 씨의 배역 ‘신이한’과 만나는 거예요.”

감독님과 작가님의 설명이 막힘없이 줄줄 흘러나왔다.

중간중간 막내도 한두 마디씩 얹고.

눈을 빛내며 설명해 주는 이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해했어요.”

그런 내게 감독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한 번 해 볼 수 있겠어요?”

“네.”

차분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볼게요.”

*   *   *

웅성웅성.

보조 출연자와 스탭들이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자작나무 숲을 바라보았다.

“우주 씨가 카메오로 나온다는데?”

“웬일이야. 우리 대박 나겠다.”

분장을 마친 우주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감탄했다.

‘저래도 잘생겼네.’

만주에서 고생을 한 독립군답게 얼굴에 검댕이 가득한데도 미모가 숨겨지지 않았다.

졸개들이 호오 하며 폰카로 찰칵찰칵 찍어 주자 우주가 살짝 웃었다.

이윽고 공터에 선 우주.

“잘 부탁드립니다.”

“화이팅-!”

스탭들이 카메오 출연을 해 준 고마운 인물에게 박수를 쳐주는 한편.

모닥불이 세팅된 곳에서 감독과 지호, 우주가 진지한 얼굴로 동선과 카메라 구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메인 작가 배예진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주 씨의 카메오!’

100억대 드라마의 대본 집필을 맡은 것 때문에 매일 밤 잠을 설치고 있던 배예진 작가였다.

밤마다 넷플러스가 ‘내 돈 내놔!’ 하고 쫓아오는 악몽을 꾸고, 네티즌들이 악플 세례를 퍼붓는 악몽을 꿀 정도.

어떻게든 뭐 하나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고 있었는데 국내 최고의 홍보 요정이 찾아왔다.

‘그것도 연기력으로 검증된 배우야.’

시청률이 어마어마하게 높긴 했지만, 예술성을 따지는 한국예술대상에서 시트콤 연기로 신인상을 받는다는 것부터가 엄청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본인이 연기보다 음악에 비중을 둬서 그럴 뿐.

지금 드라마나 영화 쪽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는 뉴블랙의 리더였다.

그런 인물이 카메오를 아무 때나 불러달라고 요청을 한다?

‘지금 즉시 해야지.’

솔직히 지금 떠나보내면 언제 스케줄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카메오란 게 확실히 계약서 쓰고 ‘출연하겠습니다’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가수에게 연락해서 ‘저… 언제 가능한 건지’ 하고 묻는 것도 좀 부담이 되고.

바쁘기 그지없는 주연 배우에게 ‘지호야, 우주 씨는 스케줄이…’ 하고 묻는 것도 왠지 아닌 거 같고.

“후우.”

배우들에게 디렉팅을 마친 감독이 돌아와 간이의자에 앉았다.

배예진 작가가 물었다.

“어때요?”

“느낌이 좋은데? 일단 두 사람 다 집중력이 장난이 아니야. 빨려 들어가는 거 같더라고.”

배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 씨 연기 잘하지.’

그리고 잘 어울릴 것이었다.

우주가 카메오로 출연한다고 하자마자 머릿속으로 수십여 가지의 캐릭터와 시나리오가 떠올랐으니까.

“어어, 시작한다.”

소문이 무성한 뉴블랙 리더의 연기.

보조 출연자들과 스탭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두 멤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 그럼 슬레이트 칠게요. 중현 씨.”

“네.”

중현이 나타나 귀엽게 슬레이트를 푸콱! 터뜨리면서 촬영이 시작됐다.

*   *   *

휘이이이이잉.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만주.

“…….”

모닥불 앞에서 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신이한’이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

불빛을 발갛게 반사하는 눈동자가 무언가를 보여 주는 것만 같다.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온 남자의 세월을.

“무엇을 그리 보십니까?”

맞은편에 앉아 있는 멀끔한 인상의 남자가 하는 말에 신이한이 조용히 시선을 던졌다.

그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독립군 대원 중 하나였다.

주변에서 나무에 몸을 기댄 채 졸고 있는 독립군들을 바라보며 신이한이 답했다.

“그저 잠이 오지 않아서.”

“그러셨군요.”

그 말을 끝으로 대화가 끊겼다.

“…….”

신이한은 지금 또 다른 괴이를 추격하는 중이었다.

일제의 군대가 만주로 운송하고 있다는 괴이를 쫓는 와중에 만주의 독립 세력과 연이 닿았다.

사령관을 구워삶는 것은 쉬웠다.

-상해의 임시 정부에서 나왔소.

아직은 임시 정부의 권위가 살아 있는 시절.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재가 특별한 능력으로 인간을 속이는 것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 길로 신이한은 만주로 넘어오는 일본군을 습격하기 위해 독립군과 함께 하는 중이었다.

“정말 임시 정부에서 오셨습니까?”

“그렇소.”

의심이라도 하는 것인가.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이에게 상대가 선한 미소를 지었다.

“한 가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지요. 상해는 어떤 곳입니까?”

독립군 대원에게 상해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말해 주자 상대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그러곤 멋쩍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사실 경성을 빼면 조선 팔도 가 본 곳이 없는 촌놈이어서 말입니다. 그저 아는 곳이라곤 경성과 이 만주밖에…….”

“상해도 특별할 것 없소.”

신이한이 냉소적인 투로 말했다.

“사람들이 쓰는 말과 고장에서 나는 물산이 다를 뿐. 기실 세상 살아가는 곳은 어디든 비슷한 법이지.”

“그렇습니까.”

상대가 선하게 웃었다.

“그래도 궁금했습니다. 일제의 손발이 뻗지 아니한 곳에선 어떠한 삶이 펼쳐져 있는지.”

“…….”

“참모님도 그런 상상해 보신 적 없으십니까? 독립이 되면 무엇을 하고, 어떠한 삶을 살아갈지.”

임시정부의 참모로 위장한 신이한에게 웃어 보이던 대원이 다른 대원들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돌석이 저 친구는 고향 땅에선 돼지 잡는 백정이었답니다. 피 냄새가 하도 많이 배서 독립이 되면 농사를 짓겠다더군요. 저기 준이는 독립이 되면 참한 색시를 구해 혼례부터 올리겠다고 어찌나 난리인지.”

쉽진 않겠지만요 하고 웃던 이가 주변의 대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마다의 꿈.

저마다의 희망.

그것을 품은 젊은이들이 웅크려 잠을 자고 있었다.

“워낙에 춥고 고된 땅이라 이런 꿈 하나쯤은 품고 있어야 잠에 들 수가 있죠. 하하.”

“그럼 자네는?”

흥미 없는 얼굴로 물어보는 신이한에게 상대가 답했다.

“그림을 그릴 겁니다.”

“그림?”

“예, 경성에 작은 가게를 하나 차려놓고 그림을 그릴 겁니다.”

“왜?”

“그야 그림이 좋으니까요? 사람이 하고 싶은 일에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렇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모닥불의 불똥이 몇 번 정도 타닥타닥 타오른 후.

그림을 좋아한다는 대원이 신이한을 불렀다.

“참모님.”

“말하시게.”

“저희가 정말 일본군을 찾으러 가는 게 맞습니까?”

“…….”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눈치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는 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신이한의 뾰족한 손톱이 꿈틀거렸다.

‘입막음을 해야 하나.’

지나치게 눈치가 빠른 자이기는 하나 불필요한 살상은 내키지 않았다.

말없이 앉아 있는 신이한을 바라보며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

방금 전에 동료들의 꿈을 하나하나 말했던 것도 그에게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전한 수단인 모양이다.

-임시 정부에서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당신의 소모품으로 쓰지 말라.

잠시 침묵을 지키던 신이한이 입을 열었다.

“이번 작전이 성공한다면… 그대가 염원하는 독립에 한 발짝 더 다가갈 거요.”

그것은 진실이었다.

만주로 ‘저주 받은 그것’을 옮겨 와 조선인들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저지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의 눈을 바라보는 대원.

이내 맥없는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렇습니까.”

다시금 끊어지는 대화.

의심했던 것이 미안했던지 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꺼낸 대원이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저 참모님.”

“무슨 용건이요?”

“혹시 초상화 한 점 그려 볼 생각은 없으십니까?”

“초상화?”

“예. 기왕 시간도 많이 남고, 참모님이 미동도 안 하시고 계시니 좀이 쑤셔서 말이지요.”

신이한이 선선히 승낙했다.

곧이어 예술가적인 눈매의 남자가 종이에 슥슥 손을 움직이더니 그림같이 완성된 초상화를 내밀었다.

“어떻습니까?”

“좋은 그림이군.”

한눈에 봐도 뛰어난 솜씨였다.

신이한이 말했다.

“이 정도면 값을 치러야겠어.”

“아닙니다.”

연거푸 거절하는 대원 때문에 신이한은 결국 사례를 하지 못했다.

슬슬 대화에 나올 말이 궁색해질 때쯤.

신이한은 그때까지 상대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통성명을 잊었군.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오?”

“이름은 진즉에 버린 지 오래지요. 그저 진 아무개, 진모라고 불러 주십시오.”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   *   *

“컷!”

감독의 외침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렀다.

“우와아아아아-.”

모닥불 앞에서 열연을 펼친 두 배우들을 바라보며 스탭들이 박수를 쳤다.

‘잘한다.’

‘진짜 잘한다.’

‘합이 완전…….’

정말 드라마 속 한 장면을 보듯이 몰입해서 본 사람들이었다.

멤버들도 감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저걸 몰입을 하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막내와 맏형의 연기력에 대해 잘 아는 이들.

그럼에도 감탄한 이유가 있었다.

“아, 형!”

촬영이 끝나자마자 지호가 인상을 썼다.

“누가 그림을 이렇게 그려요?”

“난 미술엔 재능이 없는 걸.”

우주가 내민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며 지호가 여기 보라는 듯 외쳤다.

“다들 이거 보세요! 사람을 졸라맨으로 그려놨어!”

“흐하하하하!”

바로 우주가 그린 초상화 때문이었다.

어차피 CG로 초상화를 넣을 테니 대충 그리라는 말에 정말로 대충 그려 버린 우주.

그림 속 못생긴 졸라맨에 지호가 ‘이게 뭐냐고’ 역정을 부리고 있었다.

“에이, 그게 뭐 어때서.”

능청맞게 웃던 우주가 물었다.

“저 잘했죠?”

“대박이에요!”

배예진 작가와 감독이 함박웃음으로 답했다.

‘생각 이상으로 잘해 줬어.’

대본에 대사들이 있긴 하지만 크게 부담 가지지 말라고 하긴 했다.

대사는 편하게 입에 맞게 바꿔도 된다고.

그러나 몇 가지 어미 정도만 바뀌었을 뿐, 순식간에 카메오 대사를 소화한 우주였다.

“그럼 다음 씬 들어가겠습니다!”

바로 다음 카메오 씬 준비가 들어가는 가운데.

감독이 턱을 매만졌다.

“정말 잘하네.”

“그죠? 저도 놀랐어요.”

조연출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우주 씨는 지호 씨랑은 또 궤가 다른 느낌예요. 생활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되나.”

“그러게 말이야.”

지호가 카멜레온처럼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면, 우주는 배역을 자신의 몸에 딱 맞게 맞춤정장처럼 입는다.

감독이 혀를 내둘렀다.

‘뭔 한 그룹에 저런 배우가 둘이나 있어. 아깝게스리.’

음악이 아니라 연기를 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머금는 한편.

첫 카메오 씬이 성공적으로 촬영이 끝나면서 감독과 작가가 대본을 바라보았다.

“다음은 이건데.”

“으아아. 이거 진짜 잘 살리면 완전 극의 재미가 배가되는 건데.”

조금 감정적일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에 촬영 퀄리티에 따라 쓸지 말지 결정하려는 씬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감독이 입맛을 다셨다.

“자! 그럼 촬영 이어서 가겠습니다!”

이번 슬레이트는 서리혁.

리혁이 푸콱! 슬레이트로 자기 손가락을 찧으면서 촬영이 시작됐다.

*   *   *

신이한이 심호흡을 하며 손을 들었다.

“후우…….”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리는 피를 닦은 그가 괴이가 봉인된 궤짝을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시체들.

적아를 가릴 수 없이 온통 시체들로 즐비한 숲이었다.

“…….”

눈밭에 어지러이 놓인 시체들을 바라보며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재가 잠시 눈을 감았다.

‘여전히 죽음은 익숙해지지 않는군.’

전멸.

같이 따라온 전우들의 눈을 하나하나 감겨 주고 있을 때였다.

덥석.

“……?”

그의 발목을 붙잡은 누군가가 눈에 들어온다.

피를 잔뜩 머금은 옷을 입고 쓰러진 남자였다.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오래 버티지 못할 성싶었다.

“……괴물은.”

침을 꿀꺽 삼킨 남자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쓰러뜨리셨습니까.”

“그래.”

곧 죽을 사람을 앞두고 말투가 원래대로 돌아온 신이한.

그를 보며 진 아무개가 허탈하게 웃었다.

“임시 정부에서 나오셨다는 말, 거짓말이셨지요?”

“알고 있었나?”

“혹시나 하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요.”

그가 힘겹게 말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군요……. 저런 것이 만주에 있었다가는 그야말로 떼죽음을 당했을 터이니…….”

“…….”

“결국 독립은… 못 보게 되었습니다, 그려. 하하.”

허파에 피가 찼는지 숨을 가쁘게 쉬는 진 아무개.

웃으면서 본인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인물을 바라보던 신이한이 손끝을 움직였다.

“…….”

무슨 변덕인지는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가끔 이런 순간이 있었다.

오랜 세월로 메말라 버린 감정의 골짜기에 한 방울 정도 물줄기가 잠시 솟을 때가.

“한 가지 보여 줄 게 있다.”

이윽고 옛 것이 어린 것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그 순간.

죽음을 앞두고 있는 남자의 얼굴 위로 환영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아주 먼 미래.

아이들은 독립이 아닌 꿈을 가지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죽지 않아도 되는 시대.

웃음이 가득하고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미래.

신이한이 골라 준 아름다운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독립군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제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헛것이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지.”

“그렇군요. 저는….”

“…….”

희미한 미소를 남기며 숨이 옅어지고.

또다시 홀로 남아 버린 숲에서 눈을 감겨 준 신이한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인간의 명이란 어찌 이리 짧은지.

상대가 그려 준 초상화를 품에 챙기며 중얼거렸다.

“초상화 값은 치렀다.”

그러니 저 너머에서 편히 쉬기를.

*   *   *

“컷!”

입가까지 흘러들어온 눈물에 가짜 피가 섞여 들어온다.

나를 바라보며 무심한 표정을 연기하고 있던 지호의 얼굴에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지호야.”

“넹?”

자꾸만 휘몰아치는 배역의 감정을 무시하며 화제를 돌렸다.

“이거 은근 맛있다. 케첩이야?”

“케첩 좀 들어갔을 걸요. 맛있죠?”

막내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주변의 시체들도 주섬주섬 일어나며 웃었다.

감독님과 작가님이 잭팟이 터졌다면서 행복해하고 있을 때.

지호와 내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며 동생들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어흐흐흐흑!”

“어흐흑!”

……얘네는 왜 이렇게 울고 있는 거지.

역사적으로 통곡하고 있는 리혁이와 함께 같이 눈물을 적시고 있는 두 졸개.

“얘들아. 울지 마.”

하지만 내가 다가가자.

“어흐흐흐흑!”

“어흐흑!”

내 얼굴을 바라보며 졸개들이 더욱더 통곡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

“어흐흐흐흑!”

어….

연기를 잘한 것인지 긴가민가했는데 동생들 반응을 보니 제대로 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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