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56)화 (75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56화

66장. 위대한 유산

마침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고 있던 대학생이 카페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 되게 많이 오네.’

습하고 뿌연 물안개가 낀 가운데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거리를 바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촤아아악.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물벼락을 내뿜고 가고, 헤드라이트나 간판의 불빛들이 뿌옇게 번지는 날이었다.

‘아. 과제하기 싫다.’

조원이 보내 준 엉망진창의 리서치 자료를 살피며 인상을 찌푸리다가 기지개를 쭉 켰다.

그러곤 카페 테이블에 엎드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볼에 닿는 차가운 감촉.

할 일은 많은데 뭔가 심심하다.

주섬주섬 주머니에 손을 넣어 이어폰을 귀에 꽂고는 음악을 재생했다.

‘비 오는 날이면 R&B지.’

재즈나 R&B 같은 음악을 들으며 잠시 시간을 때울 때였다.

“음?”

음악 어플에서 자동으로 추천곡을 재생하는지 낯선 곡이 들린다.

굉장히 좋은 곡이었다.

처음에는 잔잔하면서도 트렌디한 사운드로 시작을 하더니… 이윽고 리드미컬한 비트가 차분하게 울렸다.

저절로 손가락을 까딱까딱 테이블을 두드리게 만드는 비트.

‘이거 뭐지? 좋네.’

곡의 장르는 힙합.

어디선가 들은 듯한 래퍼의 묵직한 보이스가 가사를 읊었다.

오르고 내리고

누르고 또 누르고

우리 대화는 늘 그런 식이었네

남녀 간에 연애를 다루는 가사인 모양이었다.

전 남친과 연애를 하면서 꾹꾹 감정을 눌러 담았던 기억을 떠올리던 대학생이 가사에 몰입했다.

가만 보면

너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었지

너의 호흡

너의 떨림

래퍼의 차분한 목소리와 바깥 풍경이 자연스럽게 얽혀드는 느낌이다.

우산 아래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연인들.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시켜 놓고 어묵을 야무지게 입가에 넣고 있는 직장인.

버스 정류장에서 몸을 웅크린 사람들.

비 오는 날 특유의 물기 가득한 분위기와 감성 가득한 힙합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어쩌면 내 잘못은 아니었을까

귀를 기울이지 못한 건

그저 들리는 것만이 전부라 생각한

내 잘못은

차가운 테이블에서 얼굴을 뗀 대학생이 노트북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대화만이 소통의 전부는 아니다.

상대의 눈빛, 떨림, 혹은 비언어적인 무언가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노래.

잠시 호흡을 한 래퍼가 차분하게 한마디를 보탰다.

생각해 보면 말이야

랩이 더 나오겠다고 생각한 타이밍일 때.

너무나 당연한 예상을 깨고 가수의 보컬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신선한 분위기 전환이었다.

V-I-B-E

모든 곳에 너의

V-I-B-E

목소리가 가득해

비-아이-비-이.

딱 한 번 들었는데도 흥얼흥얼 따라 하게 되는 후렴구였다.

맑은 종소리 톤의 신디사이저가 만드는 감미로운 멜로디에 산뜻함까지 느껴지는 노래.

감각적인 비트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노래 좋네.’

곡이 2절로 들어가면서 대학생이 핸드폰을 들었다.

‘누구지?’

앨범 아트에 겨울철 바닷가의 버스 정류장이 나와 있었다.

한 남자가 등을 내보인 채 앉아 있다.

“오오.”

등짝만 보고 확신하긴 어렵지만 이건 100퍼센트였다.

존잘이다.

확신의 존잘!

뒷태에서부터 느껴지는 존잘의 기운이 있었다.

“누구지?”

신인 힙합 가수인지 랩 네임이 ‘스윗 포테이토’라고 되어 있었다.

고구마.

아니면 달콤한 감자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힙합 서바 출신인가?’

최근 들어 잘나가는 힙합 서바이벌들 때문일까. TV를 안 보는 사람들에겐 잘 모르는 유명 래퍼들이 많이 생긴 요즘이었다.

분명 이쪽도 그런 곳에 나온 가수 아니겠는가.

일단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될성부른 떡잎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홍보 잘하면 완전 터질 거 같은데…….’

좋은 인디밴드를 발견했을 때 느끼는 그런 흥분!

하지만 포털에 접속한 대학생은 눈을 깜빡거렸다.

‘뭐여.’

[실시간 검색어 1위]

1위. 스윗 포테이토

2위. 고구마 영어로

3위. 뉴블랙 중현

3위를 보아하니 중현이가 뭔가를 한 모양이고.

2위와 1위를 보니 그녀에게만 핫한 노래가 아닌 듯했다.

‘뭐야. 이미 유명한 사람인가?’

대학생이 검색어 1위를 클릭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응?”

포털 인물란 프로필 사진에 뉴블랙의 중현이 푸근하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

오류인가.

새로고침을 했지만 여전히 김중현이다.

그제야 불현듯이 느껴지는 무언가.

“…….”

대학생이 검색어 3위인 중현을 클릭했다.

그러자 프로필 사진은 그대로인 채 이름만 ‘중현’으로 바뀌어서 나온다.

[중현]

김중현, Sweet Potato | 가수, 래퍼

출생 : 1995. 09.

소속그룹 : 뉴블랙

……확인 사살하듯이 이름 아래 박혀 있는 Sweet Potato.

그 아래 최신 기사들도 주르륵 달려 있다.

-‘괴물 신인’ 스윗 포테이토.. “VIBE” 음원 차트 실시간 올킬

-[위클리연예] ‘소년들의 성장은 계속된다’.. 돌아보는 국민 아이돌의 ‘작곡돌’ 역사

-뉴블랙 중현, 2번째 믹스테잎 앨범 ‘Stationery’ 발매.. 타이틀 ‘VIBE’는 자작곡

보면서도 안 믿기는 기사였다.

‘이게 김중현이 만든 곡이라고?’

다시 들어 보니 중현의 목소리가 맞긴 맞다.

뉴블랙의 곡과 분위기가 완전 달라서 그럴 뿐, 목소리는 중현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작곡이란 말이 잘 믿기지 않았다.

‘뉴블랙 작곡 멤버는 우주선 아닌가?’

거기에 더해 중현의 평소 이미지가 한몫 하고 있었다.

흑염소 레슬러.

뉴블랙의 부처님 멘탈.

고르는 것마다 안 되는 꽝손.

뉴블랙에서 ‘뭔가 비범하고 말도 안 되는 것’을 담당하고 있는 메인 래퍼 아니던가.

일단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그랬다.

‘중현이가 작곡…….’

수플레들에게는 ‘중현이도 우주랑 같이 곡 만들고 그러지’ 하고 납득하지만 대중들에겐 예능적인 면이 더 강한 이미지.

장르가 안 어울려서 벌어진 문제였다.

복싱 선수가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서 우승을 했다고 하면 다들 한 번쯤은 음? 하지 않겠는가?

‘나만 그런가?’

다행스럽게도 음원 사이트의 앨범 댓글창에 비슷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게 김중현이 쓴 곡이라고요???

-여러분 이제 곡도 근육으로 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ㅋㅋㅋㅋ

-고도로 발달한 근육맨은 작곡천재와 구분할 수 없다 by 우주선 (1993~2017)

-객관적으로 봐도 곡 개잘쓰는 듯. 뉴블랙 때부터 곡의 퀄리티나 프로듀싱 실력은 검증됐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더 발전하면 정말 한 획을 그을 수가 잇을 거라 생각하빈다

-한 그룹 안에 음악 잘하는 애가 둘이나 있네

-근데 감자임?? 고구마임??

-믹테 1집 앨범 커버가 감자인걸로 봐서는 달콤한 감자가 더 가능성 높음

-다른 아이돌팬들인가 별점 테러 보소ㅋㅋㅋㅋ

VIBE가 워낙 좋았던 덕분에 다른 곡들도 한 번씩 들어 보았다.

명반이라고 해도 될 만큼 좋은 사운드들이 가득한 앨범.

처음에는 조금 당혹스럽긴 했지만 중현의 랩을 들으면서 서서히 좋은 쪽으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현이도 곡 잘 쓰는구나.’

어느새 과제는 잊고 1시간 넘게 웹서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은 채.

대학생이 곡을 계속 들었다.

그때쯤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도 눈에 띄었다.

[지금 차트에서 핫한 VIBE -- 이거 보면 전으로 못 돌아감]

클릭하자 기사 링크가 떴다.

(중현, ‘VIBE’ 비화 밝혀.. “틴스피릿 선배님들이 보내 주신 안마의자 덕분”)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만 당할 순 없지

너희도 저주에 걸려라

틴스피릿이 보내 준 안마 의자에 누워 있다가 영감이 떠올랐다는 내용의 기사 전문이 첨부되어 있다.

“…….”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은 대학생이 다시금 VIBE를 재생했다.

예전 연애를 떠올리며 들었던 곡의 가사가 갑자기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오르고 내리고

누르고 또 누르고

우리 대화는 늘 그런 식이었네

‘그치. 안마 의자가 올리고 내리고 눌러 주고 그랬겠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연애 관계로 대입해서 들렸던 감성 가득한 가사가 안마 의자 위에 앉아 허허 웃는 김중현으로 치환이 됐다.

“…….”

감성 촉촉한 분위기로 노래를 듣고 있었던 대학생이 창가의 비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곤 친구에게 게시글 링크를 보냈다.

‘나만 당할 순 없지.’

행운의 편지처럼 곡의 비하인드가 대한민국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형, 이거 봐요!”

막내의 말에 김중현이 고개를 돌렸다.

“오.”

팬들이 찍은 스샷인 모양이다.

모든 실시간 음원 차트에서 ‘VIBE’가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와, 이게 되는구나.”

감탄하는 중현의 곁에서 형과 친구, 동생들이 방방 뛰었다.

“축하한다. 중현아!”

“야. 축하해.”

“중현이 형, 오늘 야식은 형이 쏘는 거예요. 오늘 족보 세트에 매콤 족발까지 추가를 해서…!”

그런 축하 인사 속에서 중현이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

‘진짜 내가 1위네.’

다른 뉴블랙 멤버였다면 눈물을 주르륵 흘렸을 만한 일이었겠지만 중현은 허허 웃고 말았다.

‘잘됐다.’

다른 사람들까지 같이 목숨이 걸려 있는 그룹 활동이라면 모를까.

개인 활동에 대해서는 마음을 편히 먹고 있는 김중현이었다.

어차피 자기만족을 위해 시작한 활동이고, 타인의 반응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 타입도 아니었기에.

“흠흠.”

물론 그래도 기쁜 건 기쁜 거였다.

여기저기서 오는 축하 메시지에 중현이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랑을 했다.

“아부지, 나 1등 했어요.”

부모님과 형한테도 자랑을 하고.

앨범에 참여해 준 래퍼와 프로듀싱팀 직원들에게도 감사 인사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행님. 저희가 보내 준 안마 의자로 1위를 하셨군요.

잔뜩 뿔이 난 6인조 미소년과도 조우했다.

“어… 고마워.”

-행님.

“응?”

-잘하셨어요.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몹시도 밝았다.

-어차피 우리가 못할 1등! 내가 못 가지면 남도 못 가지는 거야!

-스보 형들, 타이틀곡 우리보다 순위 높으면 뭐 해. 같이 털려 버렸죠~?

내가 못 먹을 거 남도 못 먹으니 좋다는 미소년들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 후.

축하 전화를 걸고는 나중에 협업 하자는 스보 멤버들의 말에 웃었다.

그야말로 사방이 축하 분위기였다.

‘좋다. 행복해.’

남의 반응에 일일이 관심을 안 기울이는 성격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도 좋으니 행복했다.

내가 만든 노래에 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 돌아온다는 것.

처음 느껴 보는 종류의 행복이었다.

“수고했다. 중현아.”

좋아서 웃고 있는 그의 어깨에 맏형이 팔을 둘렀다.

“진짜 자랑스러워.”

“고마워요. 형.”

“어때? 기분 엄청 좋지?”

“네. 너무 좋네요.”

실시간 차트 1위 추이를 보아하니 앞으로도 몇 주는 최상위권에 있을 거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오직 성적 때문에 기쁜 것은 아니었다.

자기 증명.

스스로를 증명해 냈다는 사실에 안도와 함께 작은 행복을 느꼈다.

-나도 뭔가를 보여 줘야 하는데.

최근 들어 멤버들 속에서 살짝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김비주는 작년에 댄스 경연 프로에 나가서 춤으로 1등을 먹었고.

최근에 애국가로 화제를 모은 리혁이는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보컬로 손꼽히고 있다.

지호는 100억대 드라마의 주연이고.

우주 형은 우주 형.

저마다 자신의 특기를 잘 살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자신도 뭔가 해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이야.’

이제야 멤버들에 어울리는 무언가를 좀 갖추었다는 생각에 조금 안도감이 드는 듯했다.

“휴우.”

그런 생각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정리할 때.

꺄르륵 웃으며 좋아하는 멤버들 속에서 선우주가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부담은 좀 덜었어?”

“부담이요?”

“요새 부담을 좀 느끼고 있던 거 같길래.”

맏형이 능글맞게 웃었다.

“말은 안 하고 있었다만… 내가 곡 도와준다고 해도 괜찮다고 그러고. 좀 뭔가 해내야 한다는 그런 게 보였거든.”

“네. 조금 그랬긴 했는데, 이제는 조금 덜어 낸 거 같아요.”

“다행이다.”

등을 툭 치면서 씩 웃는 맏형에게 그도 웃어 보였다.

간만에 리더답게 웃은 것도 잠시.

쫄래쫄래 다른 졸개들에게 뛰어 간 우주가 같이 꺄악- 하며 인터넷 반응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조용히 웃고 있을 때였다.

“음? 여기 평론가 리뷰도 엄청 좋은데요?”

리혁이 새침하게 평론을 읊었다.

“기존의 뉴블랙과는 완벽하게 다른 분위기의 곡을 선보인 중현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 준다. 이는 굉장한 강점으로… 최근 들어 색깔과 톤이 단조로워졌다는 평을 받는 우주선의 곡에 새로운 활기를…….”

리혁이 말을 얼버무리면서 멤버들이 낭패 섞인 표정을 지었다.

‘함정 카드였다니!’

중현을 칭찬하는 척하면서 우주를 돌려까는 고도의 우주선 안티 리뷰였다.

멤버들이 맏형의 눈치를 슥 살필 때.

“…….”

고개를 살짝 숙인 우주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형?”

“……나는 바보였어.”

“네?”

“외부인도 생각해 내는 이런 간단한 아이디어를 놓치고 있었다니!”

고개를 획 든 우주.

두 눈동자에서 불꽃이 이글거렸다.

‘형 눈에서 불꽃이…….’

‘이쯤 되면 요괴가 아니라 작곡 마귀인데.’

‘아씨. 똥 밟았다.’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와 함께 행복하게 웃는 미소.

우주가 중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중현아!”

“네, 네…?”

“생각해 보니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만 숨긴 게 아니었구나? 내가 작업실 갈 때마다 갑자기 알트 탭 눌렀던 것도 그렇고.”

“그…….”

“그런 실력을 나한테 숨겨 두고 있었던 거구나? 그렇게 발전한 작곡 실력을 감추고 있던 거였어.”

자의식 과잉이 왜 이렇게 심하냐며 서리혁이 뭐라고 열 마디를 하고 있을 때.

김중현이 눈을 감았다.

‘들켰다.’

작곡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맏형에게 티를 내지 않았다. 알리는 순간 이런 지옥이 예상이 됐었기에.

“이런 꿀단지가 내 곁에 있는데 모르고 있었다니.”

“헐, 그러게여! 등잔 밑이 거무죽죽했네여!”

자기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졸개들이 한마디씩 보탰다.

김비주가 입가에 손을 올리고 상냥하게 웃었다.

“중현이가 형이랑 작곡하고 싶었나 봐요. 되게 최근 들어 공부도 열심히 한 거 같고.”

‘아니야. 전혀 아니라고.’

“뭐. 중현이 형이 표현이 좀 서투른 면이 있죠.”

‘아니야. 일부러 표현을 안 한 거라고.’

화르륵 타오르는 선우주의 뒤에서 에헤헤 웃어 대는 졸개들.

덥석 손을 잡은 채 우주가 한 발짝씩 다가왔다.

“중현아.”

“네.”

“이제부터는 함께 하자. 우리 작곡 듀오가 최근에 서로에게 소홀했던 거 같아.”

“…….”

“그런 의미로 형이랑 약속. …비주야. 기념사진.”

“네!”

새끼손가락을 거는 두 멤버의 모습에 김비주가 어디선가 폴라로이드 카메라까지 가져왔다.

찰칵.

번쩍이는 플래시 때문일까. 왜 이렇게 눈이 뿌연 건지….

“어이구.”

맏형이 인자하게 웃었다.

“중현이 기뻐서 우니?”

“…….”

“그래. 형은 다 알고 있어.”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고인 래퍼의 모습에 다른 멤버들이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다.

*   *   *

가족이 인정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혼자였지만 강렬한 ‘스윗 포테이토’.. 김규식 평론가 “트렌디함의 결정체”

-美 연예 매체, 중현 믹스테잎 앨범 집중 조명.. “그의 고뇌가 보여”.. 네티즌 “안마 의자일 텐데”

-‘VIBE’ 일간 차트 1위.. 이것이 국민 아이돌의 ‘바이브’

중현이의 신곡 VIBE는 일간 차트 1위까지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당사자와 앨범 제작에 참여한 프로듀싱팀 직원들도 ‘이게 왜?’ 라는 반응을 보일 만큼 얼떨떨해하는 분위기였다.

-이게 왜?

-곡이 좋다고는 생각했는데… 우리끼리 심심하다고 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엄청 좋아하네.

-우리랑 대중 취향이 다른가 봐.

가벼운 마음으로 내어 놓은 믹스테잎이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었다.

대개 믹스테잎이란 게 그렇다.

각을 잡고 만드는 것도 존재하지만 대체로 유명 래퍼들이 ‘이거 믹스테잎이야’ 라고 말하는 것은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편하게 들어 줘’ 하는 뉘앙스도 담겨 있다.

상업적으로 ‘앨범이 나오니 기대하라고!’ 보다는 편안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 이거야!’ 하고 부드럽게 풀어 주는 분위기.

그랬기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었다.

“다음번에 중현이가 앨범을 만들면… 그때는 더 각 잡고 홍보를 해 봐야 할 거 같아.”

TF팀 사무실에서 석환 형의 말에 물었다.

“그래도 이번에 할 건 다 하지 않았어?”

“좀 더 신경을 쓰겠다는 거지. 기왕이면 뮤직 비디오도 크게 찍고, 프로모션 이벤트도 크게 기획하고.”

“반응이 엄청 좋긴 했나 보네.”

“장난 아니야. 내년도 대학 축제 관련해서도 섭외가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지… 이게 다 중현이 섭외 요청이야.”

석환 형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너희 앨범과 분위기가 또 달랐던 게 호평이었던 거 같아. 중현이만의 독자적인 색깔이 독특하게 느껴졌나 봐.”

“맞아. 이번에 진짜 트렌디하게 잘 썼더라.”

“중현이도 보면 은근 감성적인 면이 있어.”

그런 말을 하며 웃던 석환 형이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들을 보여 주었다.

지금은 석환 형과 내 개인 스케줄과 관련된 회의를 하는 시간이었다.

“일단 안마 의자 업체에서 광고가 들어왔어.”

“광고?”

“틴스피릿이 안마 의자 보내 줬다고 너희가 Y앱에서 그랬잖아. 그게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난리가 났나 보더라고.”

그 덕분에 해당 업체가 지금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들었다.

얼마나 안마 의자가 좋으면 남한테 10개씩이나 보내 주냐고.

“어떻게 할래?”

“멤버들한테 물어봐야 할 거 같긴 한데… 딱히 동하지는 않는 거 같아. 스케줄도 바쁘고.”

“오케이.”

그러면서 어워즈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음…….”

마지막 서류철을 든 석환 형이 뺨을 긁적였다.

“이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미국에서 엄청 유명한 로펌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거든. 너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나를?”

“응, 네 생일날에 꼭 만나야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건 비밀이라지만…….”

요상한 용건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

석환 형의 목소리가 귓가에 날아들었다.

“너희 아버님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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