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58)화 (75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58화

“공연?”

자기를 위해서 자그마한 공연을 열어 줄 수 있느냐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같이 있어주지도 못했으면서 이런 부탁을 하는 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음악인으로서 꼭 해 보고 싶은 게 있어.]

아빠가 자신이 가져온 악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가 작곡한 것 중에 현재 대중들에게 공개하지 않은 곡들이야. 흔히 미공개 곡이라고 하면 두 가지 경우가 있거든. 첫째는 외부에 공개할 만큼 곡의 완성도가 충분하지 않을 때고.]

작곡가로서 공감 가는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로는 시기가 적절치 않을 때. 곡을 만들었지만 지금 시기의 대중들에게는 와 닿지 않을 것 같을 때가 있거든. 음악이란 것은 단순히 작곡가의 손끝에서 완성이 되는 게 아니라 대중의 귀에 흘러들어가야 완성이 되는 거니까.]

이것도 이해가 갔다.

아무리 잘 만들어 봐야 대중들이 ‘별로인데?’ 하면 꽝이니까.

[여기 있는 악보들은 말이야.]

아빠가 악보를 들어 보였다.

[아마도 97년인 지금으로부터 10년에서 20년은 지나야 할 노래들이야. 지금 공개하기에는 적절하지 않고.]

그래서 지금 공연을 열어달라고 한 모양이다.

[내가 살아있다면 내가 그런 공연을 기획하겠지만… 이건 나와 너희 엄마가 둘 다 없을 경우를 상정해 만든 비디오니까. 미안하지만 이렇게 영상으로나마 부탁한다. 아들.]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 스물다섯 살인 너에게 모든 것을 부탁하는 건 아니야. 아마 이 나이쯤이면 군대 다녀오고 대학교를 다니고 있을 테니… 이건 네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공연을 기획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빠는 아빠로서 당연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한테 부탁하는 게 더 빠를 거야. 그 방법에 대해서는 내가 자세히 설명을 해 줄 테니…….]

그 뒤에 테이프 두어 개 분량 정도로 설명이 나와 있었다.

어떻게 계약을 해야 하는지.

누구를 찾아가서 무엇을 대가로 제시해야 하는지.

90년대의 공연 방식이라 지금과 시스템이 다르긴 하지만 회사에서 직원들과 함께 콘서트를 기획하면서 많이 보았던 것들과 궤를 같이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그림이 슥슥 그려지는 기분.

[그리 큰 공연을 해야 하는 건 아니야. 관객이 10명이라도 상관 없으니까…….]

아빠가 원하는 것은 소극장 정도의 작은 공연 같다.

하지만.

“한 번 해 볼게요.”

비디오를 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아빠의 걱정과는 달리 지금의 나는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   *   *

우선은 할머니를 서울로 불렀다.

회사로 찾아온 할머니에게 아빠와 엄마가 준비한 비디오를 내밀었다.

“이게… 그거냐?”

“응.”

아빠와 엄마가 각각 장모님과 엄마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작별 인사를 담은 비디오였다.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는 모른다.

그저 30분 정도 되는 분량이라는 것만 알 뿐.

“나는 그럼 조금 이따 돌아올게.”

영상은 30분짜리였다.

하지만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는 데는 3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많이 울었는지 주름진 눈가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닦아 주며 할머니를 안았다.

“괜찮아?”

“괜찮지. 괜찮고말고.”

할머니가 손으로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느이 엄마랑 인사 못한 게 천추의 한이었는데… 이런 식으로라도 이야기를 나누니까…….”

“울지 마. 할머니.”

“안 울어.”

“또 운다.”

헝클어진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고이 넘겨주며 잠시 손자와 할머니끼리 꼬옥 안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래도 후련하지?”

“속이 좀 나아진 거 같긴 허다.”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웃었다.

“이거 시간 되면 꼭꼭 그 컴퓨터로다가 만들어서 내 핸드폰에도 좀 넣어 주고.”

“알았어.”

그런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와 공연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다.

김덕순 여사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게 무어가 있나.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부탁인데… 그거라도 들어줘야 편히 눈을 감지.”

복사본 비디오를 챙긴 할머니는 다시 군산으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것은 공연에 대한 프로젝트.

할머니를 배웅해 주고는 연습실에서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고 있던 동생들을 찾아갔다.

“너희 도움이 필요해.”

*   *   *

보안이 중요한 문제인 만큼 극소수만 불러 도움을 요청했다.

“……아버님이 악보를요?”

“악보랑 비디오를 남기셨다고요?”

“20년 전에…?”

내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휘둥그레 뜨는 동생들.

그리고 조규환 이사님과 박규호 대표님, 석환 형.

“그러니까 공연을 기획해야 한다는 거지?”

“으음…….”

일단은 이렇게 7명이 전부였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나에게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아빠가…….”

쓸 일이 거의 없던 단어라 그런 걸까.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와 다르게 ‘아빠’란 단어를 직접 입 밖으로 내놓을 때마다 혀끝에 어색함이 맴돌았다.

“아빠가 자그마한 공연을 열어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콘서트는 많이 해 봤어도 이런 쪽은 문외한이라서.”

기본적으로 공연이란 틀은 비슷하지만 재즈 공연은 가수의 콘서트와는 또 다르니까.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악기 연주자들은 누구를 섭외할 것이며.

공연장은 어디로 정할 것이며.

사실 아빠가 원한 공연은 굉장히 소규모라 이런 고민을 깊게 할 필요가 없지만 기왕이면 나는 일을 크게 벌이고 싶었다.

“음.”

중현이가 물었다.

“아버님이랑 예전에 공연하신 분들은 없어요? 그분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든가 하면…….”

“그게.”

질문한 사람이 무안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빠랑 같이 투어를 다니던 분들 대부분이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었거든. 공연 기획하는 분들도 그렇고.”

“아…….”

어릴 적에 친하게 지냈던 외국인 아저씨들도 99년 이후로는 기억이 하나도 없다.

한동안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막내가 말했다.

“되게 현실감이 없네요. 이런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

“나도 그래.”

어렸을 때 장례식장에 서 있었을 때만큼 멍한 느낌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기분.

하지만 썩 나쁘지는 않았다.

“이번에 이 공연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좋지 못한 사고로 끝난 기억을 밝고 희망찬 색으로 덮어 주고 싶다.

실제로 아빠가 준비한 미공개 곡들의 테마 대부분이 행복과 미래에 대한 것들이니까.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예산이 얼마나 될지는 내가 맡아 보마.”

대표님이 말했다.

“클래식이나 재즈 공연을 하는 쪽에 지인들이 있으니까. 그걸로 견적을 내어 보면 되겠지.”

“저는 선명주 재단 쪽과 연락을 취해 보겠습니다.”

대표님에 이어 석환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어른들이 있다는 게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때, 조규환 이사님이 티벳 여우 같은 얼굴로 눈매를 좁혔다.

“사실 관건은 예산이지.”

이사님이 말했다.

“예산만 있다면 다른 문제는 모두 부차적이야. 예산만 많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맞아요.”

“우주, 네가 원한다면 우리가 투자를 해서…….”

“그러실 필요 없어요.”

예산 마련에 대해서는 방법이 따로 있었다.

“사실 원래 제 생각은 사비로 하는 거였는데, 아빠가 지정해 준 방식들이 있었거든요.”

“그래?”

“네. 그중에 여러 개가 있었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방법이 있었다.

“미국에서 모금 파티를 열어 보라는 게 있었어요. 국내 쪽은 모금 파티와 정서가 안 맞으니 미국에서 하라고.”

생전에 천재 음악인으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었지만 ‘피아니스트 선명주’는 단순히 음악적인 재능 하나로만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기회에 대한 포착.

스스로에 대한 홍보.

관객들에 대한 쇼맨십.

아빠의 과거 행적을 신문 기사나 평전으로 읽다 보면 비즈니스적인 감각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비디오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이름값이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남아 있다면 모금 파티가 굉장히 효과적일 거야.]

모금 파티.

특정 목적을 위해 파티를 주최하고 참석자들의 기부를 통해서 기금을 조성하는 파티다.

[소규모라도 모금회를 열어서 그게 전파를 타고, 신문 등에 보도가 된다면… 공연에 대한 효과적인 홍보가 될 테니까.]

단순히 예산 확보 차원이 아니라 공연 전에 ‘이런 공연을 하게 된다’ 하며 화제를 불러 모으는 용도로 쓰라는 것.

음악가 선명주가 살던 시대에는 TV나 신문이 주요한 홍보수단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미국에서 모금 파티를 주최하려고 해요. 공연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수익은 음악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기부하는 것으로요.”

“좋은 방식이야.”

타당성이 있는 계획이라며 이사님도 동의했다.

아빠가 제시했던 ‘자선 경매로 기금 마련하기’ 등등을 언급하고는 회의를 그쯤에서 마쳤다.

어른들이 저마다의 일을 위해 뿔뿔이 흩어지자 연습실에 우리만 남았다.

“…….”

살짝 어색하게 내 눈치를 살피는 동생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망고 차트 어워즈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 진짜.”

“그러게여.”

제일 먼저 막내가 헤실헤실 웃었다.

심각하고 진지한 일이라고 생각했던지 표정을 꾹꾹 누르고 있던 동생들이 편하게 웃었다.

리혁이가 물었다.

“기분은 좀 어때요?”

“사실… 되게 좋아.”

갑작스러운 사건들이 휘몰아쳐서 조금 굳어 있긴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작별 인사하는 상상을 늘 하고 그랬거든. 만나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매번 생각했는데… 이번에 조금 속이 후련해진 거 같아. 쌓였던 게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기도 하고.”

후련하다는 말이 가장 어울릴 거 같다.

조용히 웃고는 졸개들에게 주먹을 들어 보였다.

“그러니까 준비 한 번 잘해 봐야지.”

비주가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도울게요.”

“그래. 그럼 일단……!”

“일단!”

동생들에게 말했다.

“망고 차트 어워즈부터 준비하자.”

“아…….”

“일단 눈앞에 있는 일부터 해결해야지.”

훈훈한 웃음이 감돌았다.

정신이 없긴 했지만 지금 가장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바로 망고 차트 어워즈였다.

아빠를 위한 공연은 아무리 빨리 준비해도 내년 1월이나 2월이다.

공연장과 연주자를 섭외하고, 그 연주자들이 악보를 숙지하고 연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그렇다.

공연이라는 게 무슨 일주일 만에 뚝딱뚝딱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러니 당장 눈앞에 있는 일부터 처리하는 게 중요했다.

“자!”

흐느적거리는 동생들을 불러 모아 손뼉을 쳤다.

“연습 들어갑시다!”

어워즈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장 15분간의 엔딩 무대.

특히나 이번에 엔딩 무대는 처음이었다.

작년도에 ‘올해의 가수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엔딩 무대는 틴스피릿이 맡았던 때와 다른 상황.

그만큼 우리의 인기가 높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대개 인기와 연차, 기획사 파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무대 순서를 배분하는데, 올해는 우리 인기가 연차와 기획사 파워마저 무시할 만큼 커졌다는 뜻이니까.

“헉, 허억…….”

두어 시간 정도 연습을 하고 나서 완전히 뻗어 버리는 졸개들.

다 같이 드러누워서 있는 가운데.

“아, 아이디어 받습니다…….”

“회의…….”

벌러덩 드러누워서 자선 파티에 대한 아이디어를 받았다.

전문 업체에게 전달하기 위한 아이디어.

어떤 식으로 컨셉을 정할지, 어떤 식으로 식사를 제공할지 등등. 동생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히히, 아빠 공연…….”

“히히히.”

“효도 제대로 한다. 히히…….”

“히히힛.”

사실 회의보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 것에 가까웠다.

그냥 동생들이랑 엉켜서 ‘히히, 공연, 히히…’ 하는 것이 대부분의 회의였으니까.

“형.”

막내가 물었다.

“근데 모금 파티요.”

“응.”

“누구누구 부를 거예요?”

“일단은…….”

아빠와 연이 있는 국내의 하승주 PD를 비롯해 불러야 할 사람들의 명단이 있었다.

*   *   *

뉴블랙 멤버들이 한창 연습에 열중하고 있을 때.

“…….”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폴 로랑이 피아노 건반을 가볍게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도움이 필요해요. 폴.

은사처럼 여기고 있는 선명주의 아들이 보낸 메시지였다.

처음에는 만우절 장난인 줄 알았다.

작고한 재즈 음악가가 어마어마한 양의 미공개 악보를 남겼고, 그것을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공연을 한다니.

‘반드시 참여해야 돼.’

고마움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을 떠나 음악인으로서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이벤트였다.

천재 음악가가 남긴 미공개 악보들.

그것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당장이라도 보고 싶군.’

1년 내내 일정이 꽉 차 있는 유명 피아니스트만 아니었어도 한국을 찾아갔을 것이다.

들썩이는 엉덩이를 참으며 폴 로랑이 심호흡을 했다.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잠시 누르고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아시겠지만 선명주 선생님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나 하나뿐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해도 될까요?

-믿을 만한 분들인가요?

-걱정 마세요. 모두가 나와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과거 보육원에서 생활을 하던 시절.

폴 로랑은 당시 세계를 누비던 유명 음악인의 눈에 띄어 제대로 된 피아노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려 가는 팝스타의 부친이 세계에 남긴 족적은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이 친구들부터 연락을 해야겠군.”

혈연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선명주의 아이들 간의 네트워크.

거미줄처럼 끈끈한 연결망 속에서 폴 로랑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이봐. 기욤. 잘 지내? 자고 있었다고? 아, 그러고 보니 그쪽은 새벽이겠군.”

자세한 내용은 다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했다.

“선생님을 위한 공연을 열 계획이래.”

-선명주 선생님?

“그래.”

-내가 뭘 하면 되지?

그런 식으로 연락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선명주 씨의 공연을 열기 위해 모금 파티를 개최한대. 나야 당연히 참석을 할 예정이고.

-이번에 선명주 씨의 공연을 연대.

-글쎄, 연주자를 구했다는 이야기까지는 못 들은 거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겠군.

프랑스에서 알제리로.

알제리에서 이집트로.

이집트에서 터키로, 터키에서 이탈리아로, 이탈리아에서 체코로… 전파들이 복잡한 선을 그리듯 얽혀들었다.

따스한 기억들을 회상하며 웃는 목소리들.

-참석해야지.

-반드시 가야지.

-마지막 공연이라니… 이걸 빠질 수는 없지 않겠어?

여기저기서 웃으며 수화기를 내려놓는 사람들.

아직 그 아들은 모르고 있지만…….

20년 전에는 아이였던 어른들이 지금 그를 돕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   *   *

점심시간.

‘심심하구만.’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움직였다.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은 양치를 하며 핸드폰을 바라보았고.

대학교 근처에 밥을 먹으러 나온 대학생들은 카페에 들러 다음 강의가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뭐 볼 거 없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웃긴 유머글을 보거나 미튜브에서 짧게 볼 만한 영상들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들.

그런데…….

“음?”

처음 보는 동영상이 미튜브 추천 동영상으로 떠 있었다.

‘이게 뭐지?’

뉴블랙 월드 TV의 영상이었다.

뭔가 새로운 컨텐츠라도 올라온 건가 싶어서 눈을 빛내는데… 썸네일이 뭔가 이상하다.

‘화질 왜 저래?’

옛날 미국의 퍼니스트 비디오 같은 곳에서 볼 법한 화질이었다.

안경을 쓴 미남자가 피아노 앞에서 앉아 있는데, 왠지 모르게 우주처럼 보이는 얼굴이었다.

‘……우주인가?’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이목구비가 조금 다르다.

아들과 코가 똑 닮았지만 조금 더 날카롭고 뾰족하게 생긴 얼굴. 우주와 리혁을 합친 듯한 얼굴이었다.

“어?”

주변 친구에게 말했다.

“야, 이 사람 그 사람 맞지. 우주 아빠.”

“선…명주? 맞을걸.”

미튜브 영상 제목에도 떡하니 나와 있었다.

[선명주 : 20년 만의 인사]

‘선명주? 아. 그 사람이구나.’

대학생 세대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자 삼사십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한때 굉장히 친숙했던 이름이었다.

썸네일을 본 사람들이 영상을 클릭했다.

‘와.’

잡음을 최대한 걷어 냈지만 그리 좋지 않은 음질.

하지만 그 소리를 뚫고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전해져 온다.

재즈 음악 특유의 스윙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건반 소리들을 들으며 감탄하고 있을 때.

스르르륵.

피아노 건반에 올린 손을 미끄러뜨리듯 내린 남자가 몸을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선명주입니다.]

90년대 방송에서 듣던 그런 말투.

자리에서 일어난 피아니스트가 대중들을 향해 말했다.

[아주 오랜만에 뵙네요. 이게 몇 년 만일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하, 여러분을 만나니 너무 기분 좋군요.]

관객들을 향한 인사인가 하고 궁금할 때쯤.

[이 영상을 보고 계신 여러분들은 아마 2017년에 살고 계시겠군요. 지금 제가 찍고 있는 영상은 97년도에 촬영된 것입니다.]

그제야 그것이 과거가 미래에게 보내는 인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거의 인물이 직접 자신들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궁금한 것이 정말 많습니다만… 그 대답은 나중에 듣기로 하지요. 우선 이 영상을 보고 계실 분들에게 초대장을 드려야 하니까요.]

‘초대장?’

[네, 저 선명주가 이번에 자그마한 공연을 하나 열고자 합니다. 아직 세상에 공개하지 못한 악보들이 있거든요. 그리하여 이번 서기 2017년에 저의 마지막 공연을 하고자 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는 시청자들에게 피아니스트가 웃으며 물었다.

[부디 제 공연에 와 주시겠습니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넘어 약간의 광기까지 느껴지는 눈빛.

그런 눈으로 지그시 응시하던 선명주가 모자를 든 신사처럼 부드럽게 손을 휘저었다.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피아니스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저, 선명주가 돌아왔습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