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59화
미튜브에 업로드된 한 편의 영상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천재 음악가’ 선명주, 20년 만에 영상 공개.. “내가 돌아왔다”
지금이야 젊은 세대에게 ‘선우주의 아버지’로 유명하지만 한때 국민적인 인지도가 있었던 재즈 피아니스트.
불운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천재가 다시 돌아오겠다 선언을 하고 있었다.
20년 전부터 준비한 공연으로.
“이거 봤어? 이거? 우주 아버지라는데.”
“뭐야…? 이걸 20년 전에 찍어 놓고 있던 거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곳이 선명주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고 있었다.
“선명주 그 사람이 돌아온대.”
“죽은 사람이 어떻게 돌아와?”
“영상을 찍어 놨대잖어. 자기 공연 보러 오라고.”
“20년 전에 찍어 놓은 거를…?”
가장 크게 반응이 오고 있는 것은 나이가 있는 세대였다.
나라가 금융위기로 흔들리고 있을 때.
미국과 일본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던 음악가에 대해서 모두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골프나 야구는 잘 모르지만 90년대의 영웅들이 활약할 때 환호했듯이 그의 활약을 지켜보며 울고 웃었던 한국 사람들이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얼마나 당혹스러웠던지.
마음 한편에 안타까움을 품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번 소식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뭐지.’
어린 세대는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사무실의 나이 지긋한 부장님들이나 주변 어른들끼리 웅성거리면서 ‘선명주 그 사람이…’ 하고 있었으니까.
‘그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어?’
개미위키에 들어가니 ‘개요’에 간략한 설명이 적혀 있다.
『20세기의 마지막 천재.』
미국의 유명 흑인 뮤지션들만 선정된 ‘재즈 인물 100명’ 등에도 출신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등재된 인물이라고 되어 있었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의 사람들이 즐비한 곳에서 거의 유일한 1960년대 출생 인물이라고.
‘와…….’
이런저런 첨부된 사진만 봐도 커리어가 어마어마해 보였다.
어떤 훈장 같은 것을 목에 걸고 있고.
얼굴만 봐도 ‘어? 저 사람?’ 하는 유명 외국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웃고 있는 미남.
“엄마, 선명주라는 사람이 그렇게 유명했어?”
“한창 때 엄청 유명했지. 그 사람 공항에 들어온다고 하면 사람들이 정말 떼거리로 몰려가서는….”
유명했냐고 물어보면 어른들이 추억을 회상하며 ‘대단했다’ 하고 증언을 하는 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인터넷에서 사소한 갑론을박까지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선우주 vs 전성기 선명주]
여러분이 보시기엔 누가 더 유명한가요
-그래도 이건 우주긴 한 듯
-한창 때 기준이면 아버지 아닌가요?? 진짜 저 국민학교 다닐때 임팩트 갑이었음
-국뽕만 따지면 선명주씨가 더 위긴 했음
-저 시대도 살았던 사람입니다만 우주가 넘사죠ㅋㅋㅋ 고향 내려가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우주는 알아요
-이건 비교 대상이 좀 잘못된것 같은데요; 애초에 대중음악이랑 재즈랑 비교하는 것부터가
-분야가 다름 ㅇㅇ
-예술계 네임드 vs 대중음악 네임드
-근데 저것도 음악에 대한 관심보다는 국뽕 위주라서ㅋㅋㅋ 막상 선명주 대표곡 대라고 하면 아무도 못댈걸요
그것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선명주가 누구인가’ 에 대한 설명글들이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한국인들끼리 서로 세대 차이 느끼는 이유]
[다시 봐도 대단했던 천재 음악가]
[선명주 레전드 즉흥 무대]
그리고 과거의 자료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납득하고 있는 젊은 세대였다.
‘인기 있을 만했구나.’
요즘 시대였으면 레전드 짤이라면서 엄청 돌아다녔을 꽃미남 얼굴.
어마어마한 작곡 실력.
그리고 팬 서비스까지.
-우리 나비는 어디에서 왔니?
야외무대에 난입한 고양이가 건반 위로 올라오고.
고양이가 두드리고 내려간 건반 소리에 맞춰 즉흥 작곡을 하며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영상.
-신사 숙녀 여러분! 저 멀리 한국에서 온 천재 음악가를 환영해 주십시오!
미국의 유명 토크쇼에도 출연해서 MC와 함께 재치 있게 입담을 뽐내는 장면 등.
지금 봐도 스타성이 농후한 선우주의 아버지였다.
‘부전자전이구나.’
그 아들의 스타성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절로 납득이 갔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떠나 지금 ‘선명주’라는 키워드가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선명주’ 무려 20여 년 만의 무대 복귀
어떤 음악가가 자신이 사망할 것을 대비하여 20년 후의 공연을 미리 준비한단 말인가.
음악에 대한 일반적인 열정을 뛰어넘어 광기까지 느껴졌다.
그의 아들이 보여 주는 음악에 대한 집념이 ‘유전이었구나’ 하며 이해가 갈 정도.
영상 속에 담긴 선명주의 분위기, 얼굴 등 예술가적인 면모가 사람들의 가슴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반영하듯 지상파와 종편 뉴스에 모두 같은 소식이 흘러나왔다.
-음악가 선명주 씨가 20여 년 만에 돌아온다고 합니다. 미튜브 인기 채널 ‘뉴블랙 TV’에 올라온 영상에 따르면….
-한편, 선우주 씨의 소속사인 레몬 엔터 측에서는 ‘조만간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며…….
-이 영상은 빠른 조회수 기록을 보이며 미국과 일본 등에서도…….
아무리 유명하다고 하지만 작고한 지 무려 20년이나 지난 음악인.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었다.
본래였다면 소소한 관심과 함께 ‘오? 20년 만의 공연?’ 하며 공연 예술계 위주로 화제가 되었을 사건이었겠지만…….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들의 인지도가 당사자인 선명주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나비효과를 보여 주고 있었다.
-세계적인 K팝 그룹 뉴블랙의 미튜브 계정에 영상 하나가 올라왔는데요. 과거 천재적인 재즈 음악가로 불린…….
-오늘의 문화 소식입니다. 한국 최고 인기스타이자 뉴블랙의 리더인 우주의…….
-그 소식 들으셨어요, 레니? 이번에 뉴블랙의 리더 썬의 부친이 유명한 음악인이라고 하더라고요.
CNN과 BBC를 비롯한 외신의 문화 소식 보도.
미국의 주부 토크쇼.
포털 사이트와 트위터에서의 폭발적인 검색량.
우주의 부친이 보았다면 ‘아, 아들아…? 이게 뭐니?’ 하고 당황했을 만한 장면들이 사방에 펼쳐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런 관심 속에서 모두가 한 사람의 입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선우주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 * *
모두가 내 입을 주목하고 있다.
“…….”
-…….
마우스로 노트북 스크롤을 또로록 내렸다.
얼굴.
얼굴.
또 얼굴.
다양한 인종과 복식을 차려입은 사람들의 얼굴이 격자칸으로 나뉘어 끝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총 인원 : 300명]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화상 미팅 프로그램인데, 비즈니스 미팅을 할 때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오늘은 아빠의 공연과 모금 파티에 관한 회의를 하는 날.
피아니스트 폴 로랑의 제안에 따라 준비한 회의였다.
-선명주 씨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불러서 회의를 하는 건 어때요? 미리 연락을 돌렸거든요.
-저는 좋아요.
그래서 같이 한 번 미팅을 해 보자고 연락을 한 것인데.
「폴.」
「네?」
「……분명히 소소한 회의라고 하지 않았나요?」
폴 로랑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이 정도면 소소하지 않나요? 이 회의에 들어오지 못하는 600명을 더 고려하면요.」
「…….」
아빠는 대체 뭘 하고 다닌 걸까.
-아들! 고생 좀 해라~!
-아하하핫! 사랑해! 우리 아가!
영상 속에서 들었던 아빠와 엄마의 하이톤 웃음소리가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돈다.
웃고 있는 각양각색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선명주의 아들 선우주입니다.」
그 순간 와글와글한 사람들의 말이 오갔다.
-닮았다!
-뉴블랙의 멤버가 선명주 씨의 아들이었다니.
-반가워요!
광장에서 행진하는 밴드처럼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들이 합쳐지니.
-쿠쾅쾅쾅쾈!
-너를….
-죽인다…!
-사랑은….
-없어…!
‘구에에엑-’ 하는 소리들에 자기들끼리 웃음이 터졌다.
저마다 소리를 음소거하는 가운데, 다들 나를 바라보는데 굉장히 따스한 시선들이었다.
삼촌, 이모들이 조카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
귀엽다는 듯이 턱받침을 하고 지켜보는 이들에게 짐짓 회의 주재자답게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흠흠. 그럼 회의 시작하겠습니다아.」
음소거라 소리는 안 들리는데 다들 막 웃는다.
「우선 미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첫 단추는 성공적으로 끼운 거 같아요.」
아무리 우리 아빠가 유명했다고 해도 무려 20년 전이다.
20년 전의 아티스트가 다시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미튜브에 예고편을 공개한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선명주 복귀 인사’ 조회수 폭발.. 외신도 관심
외국 뉴스에도 ‘천재의 부활’이라며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특히 일본은 난리도 아니라고 들었다.
지금도 거의 매 시간마다 우리 아빠에 대한 소식이 나오고 있다나.
-그 친구가 음악적인 유산을 남겼다면 나에게도 남긴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군요. 한때 우리는 지독한 라이벌이었으니까 말이죠. 일반인들은 이해 못하는 우리들만의…….
자칭 라이벌이라고 주장하는 하시모토 겐지 씨가 방송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봤다.
어이 없는 웃음만 나왔던 장면을 떠올리며 말했다.
「미튜브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으니 이제 다음 단계는 모금 파티예요.」
1차적으로 관심을 불러 모으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예산 확보.
하지만 모금 파티에 관해서는 내가 잘 알지 못했기에, 여기 있는 전문가들의 말을 듣기로 했다.
음악 행사에 대해 잔뼈가 굵은 이들이 조언을 해 줬다.
-이런 이슈는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아요. 모금 파티도 최대한 빨리 주최할 필요가 있고.
-맞아. 속도전이지.
-가장 추천하는 날짜는 미국의 추수감사절 즈음이에요.
AMA와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 출연하는 그 주간에 모금 파티를 여는 게 베스트라는 의견에 나도 동의했다.
2주 만에 파티를 준비해야 하는 일이지만 모두가 의욕이 넘쳤다.
유명한 파티 플래너 등의 연락처가 회의에 공유되고, 미팅에 참여한 석환 형도 필기를 하고 있을 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연인데…….
참석자 중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물었다.
-선명주 선생님의 미공개 악보를 공연한다고 들었어요.
-네.
‘미공개 악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삼백여 명의 얼굴에 호기심, 기대, 설렘이 떠올랐다.
다들 입이 근질근질해 보인다.
-선명주 선생님의 작곡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유명세를 얻는 공연이라면 내용도 대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묻는 것인데.
「네.」
-미공개 악보의 수준은 어떻습니까?
「음…….」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재즈에 대한 식견이 좁은 저로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음악인 중의 하나로서 보았을 때.」
꿀꺽.
침을 넘기며 기다리는 인물들.
「‘20년 만의 공연’이라는 타이틀에 부합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저기서 ‘허’ 하며 탄식하는 소리들이 들린다.
음소거된 어느 화면에서 영국인 연주자가 ‘워우’ 하면서 엄청 좋아하는 게 보였다.
곧바로 여기저기서 소리가 빗발쳤다.
-연주자는 구했어요?
-나, 나 무보수로 일할 수 있는데.
-지금이라도 비행기 타고 서울 가면 악보 볼 수 있어요? 공연 때까지 반드시 비밀을…….
아빠가 발굴해 낸 이들은 저마다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 있었다.
음악 칼럼니스트.
색소폰 연주자.
클래식 피아니스트.
피아노 조율자 등등.
그중에서 재즈 쪽으로 진출한 이들이 열띤 얼굴로 지원하겠다며 요청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최고 중의 최고가 연주해야 되지 않겠어요?
-나, 나, 나!
-고기 좋아한다면서요. 위키피디아에서 읽었어요. 여기 청정한 소의 고향 호주입니다.
-나 스케줄 비었어요. 나.
나이와 상관없이 손을 들고 눈을 초롱초롱 뜨는 모습에 웃음이 흘렀다.
아빠가 저 모습을 봤으면 엄청 좋아하지 않았을까.
연주자를 어떻게 구하느냐 하는 걱정은 덜은 것 같다.
저마다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들 덕분에 이야기는 일사천리였다.
-우리만 믿어요.
-이렇게라도 선생님한테 들려드릴 수 있다면….
-내 일처럼 할 거니까.
자신들을 믿어 보라고 하는 수백여 명에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고는 슬슬 회의를 마무리했다.
「그럼 다음에 또 봬요.」
화상 회의를 종료하고는 기지개를 켰다.
“후우.”
“고생했다.”
뒤에서 어깨를 두드려 주는 석환 형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상대의 안경 너머 보이는 눈빛에 의외라는 감정이 보였다.
“안 힘들었어? 영어로 회의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모르겠어. 그냥 안 힘드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기분 좋은 웃음이 나온다.
마음속으로는 ‘아빠 일이야! 진지하게!’ 하면서 다잡으면서도, 자꾸만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고 할까.
그냥 뭔가 좋다.
머리로는 20년 전에 미리 녹화된 영상이란 것을 알지만, 영상을 볼 때마다 아빠랑 엄마가 나를 안아 주며 속삭여 주는 것 같고.
“해야 할 일이 늘어났는데 이렇게 행복한 기분은 처음이야.”
“다행이네.”
내가 웃는 모습에 자기가 다 기분이 좋다고 하는 형에게 치대며 웃어 보였다.
태블릿을 정리한 석환 형이 내게 물었다.
“이제 남은 건 미디어 관련인가?”
“응.”
기지개를 켜며 웃었다.
“홍보 잘하고 와야지.”
* * *
“구용석입니다. 하하. 우주 씨를 이렇게 만나 보네요.”
“홍아란이에요.”
정중하게 손을 내미는 두 앵커와 악수를 나누며 웃었다.
“우주입니다. 오늘 인터뷰 잘 부탁드려요.”
“그럼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환담을 나누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KTN 이브닝 뉴스]
은빛으로 빛나는 금속 로고와 함께 뉴스 데스크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스튜디오.
KTN 최고의 장수 뉴스 프로그램.
이곳에서 하는 ‘오늘의 초대석’ 코너가 바로 오늘 내가 출연하는 방송이었다.
-그래서 공연은 언제 한다는 건가요?
-수익은 어떻게 할 겁니까?
-미공개 악보는 또 뭐죠?
지금 이 시간에도 회사로 빗발치고 있는 연락들.
기자회견을 할까 생각하다가 이런 인터뷰 코너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지상파의 주요 뉴스 코너에는 이런 초대석이 없기에, 종편과 뉴스 전문 채널을 수소문하다가 이곳을 찾았다.
“마침 예전에 제가 출연한 기억도 나더라고요.”
“아아. 갈현동 의인이요?”
두 앵커가 웃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친구가 보여 주더라고요. 야, 이거 네 방송 아니냐고 해서.”
“우주 씨 데뷔했을 때 어디서 봤나 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내가 과거 교통사고에서 어느 할아버지를 구했을 때.
그날의 영상이 나왔던 뉴스 프로였다.
그게 벌써 딱 4년 전이라며 시간 참 빠르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었다.
몇 번 정도 리허설을 마친 후.
“생방송 5초 전입니다!”
뉴스 부조정실, 현장의 카메라와 조명 감독님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곳에서 잠시 현장을 구경했다.
“마이크 확인할게요.”
“네.”
마이크가 제대로 착용됐는지 점검하고는 곧이어 인터뷰 코너에 투입됐다.
초대석 의자에 앉은 채 밝게 미소를 짓자, 프롬프터 옆에 있는 모니터에 내 얼굴이 떠 있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 우주입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서로에게 꾸벅 인사를 하면서 차분한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의 미공개 악보와 영상을 받게 된 것은 얼마 전 일이었어요. 미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악보를 전달해 준 아서 앤더슨 씨가 꾸며준 적당한 명분을 언급하면서 ‘어떻게 이 공연을 기획한 것인지’ 설명을 하고.
“공연은 자선 공연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자선기금을 모으고 공연으로 인한 수익은 모두 음악을 공부하려는 청소년들을 위한 기금으로 운용될 예정이에요.”
그 수익 누가 먹냐.
아버지 팔아서 장사한다.
…하는 비난들에 대처하기 위해 미리 자선 공연이라는 것을 못 박고.
“아직 정확한 시일은 확정 짓지 못했지만… 내년 초 정도로 공연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공연을 선보이고 싶어요.”
대중들에게 전해야 할 메시지를 다 전한 후에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에 답했다.
뉴블랙의 스케줄은 어찌 되는가.
아버지의 음악이 너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런 질문들을 하나씩 받는 가운데, 홍아란 앵커가 마지막 질문을 했다.
“혹시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아버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음…….”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할머니, 우리 동생들, 팬분들.
부모님이 계셨다면 제일 먼저 보여 주었을 얼굴들을 떠올리며 웃었다.
“지금의 저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 * *
-지금의 저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넘겨요. 앞으로.”
-지금의 저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또또.”
계속해서 ‘지금의 저는…’ 하는 음성이 나오는 것을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만 좀 들어.”
“싫은데용.”
“그만 좀 들으라니까아…!”
“민망해서 저러는 거 봐.”
차 안에서 핸드폰 하나에 얼굴을 파묻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4인조.
막내가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그래서 저기 좋은 사람들에서 ‘좋은 사람’의 순위는 우리 넷 중에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저 몇 번?”
“너 4번.”
“으아아아아!”
나머지 셋이 에헷 하는 얼굴로 어깨를 꿈틀꿈틀거렸다.
장래희망이 왕꿈틀이라도 되는 양 좋아하는 졸개들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웃었다.
“고마워. 정말 이번 일에 너희가 큰 도움이 됐거든.”
“뭐. 우리가 일을 잘하긴 하니깐.”
리혁이의 말에 내가 웃었다.
“물론 일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흥!”
“품에 안고 자는 곰돌이 인형 같은 안정감…?”
“허어어…!”
비유를 좀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아차 하는데 자기들끼리 좋아하고 있다.
“형 들었어여? 곰돌이래여.”
“귀엽다는 말인가.”
“사랑스럽다는 뜻이죠.”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는데.
이내 꺄르륵 하면서 막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우리 애들은 테디베어로 나와도 반품이 될 것이다. 성능이 과하다는 칭찬과 함께.
“아무튼… 정말 고마워. 내가 요새 정신이 없어서 감사 인사를 못했네.”
정신없이 일이 휘몰아치면서 고맙다는 말을 못했지만, 이번에 동생들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당혹스러운 순간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같이 당황해 줬으니까.
-어어어!
-이건 뭐지!
그런 게 무슨 도움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도움이 된다.
내 옆에서 ‘너만 그런 게 아니다’라고 느끼게 해 주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중한 법이다.
“고마운 줄 알아요.”
생색을 내는 막내에게 웃어 보이고는 멀찍이 거대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동생들에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이제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를 지었고, 오늘 한 번 제대로 무대에서 한풀이 하고 갑시다.”
“고고고!”
고척돔 경기장이 가까워지면서 환호가 들려왔다.
“캬아아아악-!”
“크르르르르! 크르륵!”
“크르… 온다! 우와아아아…!”
카메라의 플래시가 벌써부터 반짝이는 레드카펫.
[2017 망고 차트 어워즈]
이번에 대상 3부문에 모두 노미네이트된 MCA.
오늘은 바로 올해의 첫 연말 가요 시상식이 열리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