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65화
뉴욕 JFK 공항.
“와아아아아아-!”
LAX 공항에서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JFK 공항에서도 천여 명의 팬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누구야?」
「뉴블랙이야! 뉴블랙!」
「자기야, 여기 뉴블랙이 왔나 봐.」
지나가던 일반인들도 핸드폰을 들어서 찍거나 소리치는 걸 보면 그래도 전보다는 이름이 좀 알려진 것 같다.
“Thank you!”
“고마워요. Happy Thanksgiving!”
수플레들에게 추수감사절 재미있게 보내라며 인사를 하고는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왔다.
차량 근처까지 달라붙은 팬들에게 손을 흔드는 한편.
차에 타고는 코를 훌쩍였다.
“뭐가 이렇게 춥냐.”
미리 롱패딩을 꺼내 입어 둬서 정말 다행이었다.
막내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이게 나라 땅덩어리가 커서 그런가 봐요. LA랑은 날씨가 완전히 정반대인 거 같은데.”
“내가 말했잖아. 이맘때쯤 뉴욕 엄청 춥다고.”
자기 말이 맞다며 으스대던 리혁이가 에취 하고 입을 막았다. 휴지를 뽑아 건네주는 동안 나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춥다.
한기가 뼈에 스며드는 느낌이라고 할까.
「원래 이맘때쯤 뉴욕이 어마어마하게 춥죠. 하하하. 히터를 좀 더 세게 틀까요?」
「아뇨. 지금 정도가 딱 적당해요.」
차량을 모는 운전기사 분에게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패딩을 벗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해서 조금 따스해지니 바깥 풍경이 막 아름답게 보인다.
“와아아…….”
11월 말의 뉴욕.
미국의 양대 명절인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몰린 11월 말~연말은 이른바 홀리데이 시즌이라고 불린다.
산타클로스 복장을 입은 할아버지들이 오호홋!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고 돌아다니고.
쇼핑몰마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걸고 곳곳에서 종소리와 캐럴이 울려 퍼지는 시즌!
비주가 창밖을 바라보며 우와아 했다.
“한국에서는 잘 몰랐는데, 여기 오니까 확실히 연말 느낌이 나는 거 같아요. 벌써부터 이것저것 달려 있고.”
“진짜 나 홀로 집에 2에 나오는 거 같아여.”
“맞아. 저쪽으로 가면 케빈이 묵은 호텔 나온다며.”
추수 감사절을 앞두고 이런저런 장식들이 보인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 뉴욕 토박이라는 운전기사 분이 설명을 해 줬다.
「이 정도면 맛보기죠. 하하. 12월이 되면 정말 휘황찬란하게 바뀔 겁니다. 다음 달 1일이 되면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에 점등식을 할 거고요. 나중에 시간이 되신다면 다이커 헤이츠 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추천 드리고 싶군요.」
「다이커 헤이츠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브루클린 남쪽에 있는 마을인데 집 외관을 반짝이는 전구와 트리 등으로 멋들어지게 장식한 마을이라고 했다.
매년 크리스마스 장식 컨테스트를 하는데 우승자는 1년간 전기세를 무료로 쓴다나.
여러모로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나라다.
“좋구나.”
동생들과 창밖을 바라보면서 우와아아 하는 소리를 반복했다.
우리는 심드렁하게 돌아다니는 뉴리단길에서 왜 관광객들이 와아- 하는지 알 것 같다고 할까.
여행자가 되니 너무 즐겁다.
정작 뉴요커들은 빵모자에 코트를 여민 채 인상을 쓰고 걷는 중이지만, 우리에겐 홀리데이 시즌의 분위기에 휩싸인 도시가 낭만적으로 보였다.
“형들, 형들!”
막내가 중요한 게 떠올랐다는 듯 초롱초롱하게 눈을 떴다.
“우리 이번에 그거 꼭 먹어여! 미드에서 보면 추수감사절 시즌에 꼭 칠면조 먹고 그러던데!”
“그래?”
“네, 우리도 한 번 먹어 봐야져!”
“그래. 맛집 한 번 알아보자.”
운전기사 분에게 맛있는 칠면조 집을 추천 받고 있을 때.
홀리데이 시즌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지 막내가 창밖을 내다보며 행복하게 웃었다.
“분위기 너무 좋다. 엄마랑 누나들 데려오고 싶어요.”
“진짜. 너무 예쁜데? 할머니 데려오고 싶다.”
저마다 각자 가족들을 생각하며 웃었다.
김덕순 여사의 얼굴을 지나 문득 비디오에서 봤던 부모님의 얼굴을 잠시 떠올리고 있을 때.
막내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미드에 보면 크리스마스 에피소드가 한 편씩은 꼭 나오거든요. 이제 오프닝에서 크리스마스 캐럴 한 곡 나오고.”
“오호.”
훈훈한 가족적인 분위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이제 저기 빌딩 위에서 의문의 시체가 하나 떨어지면서 사건이 시작되죠.”
“…….”
“왜 그래요? 수사물 드라마는 다 그렇게 시작하는데.”
미국 감성은 잘 모르겠다.
한국으로 따지면 드라마에서 매년 추석이나 설날마다 시체가 하나씩 등장하는 것 아니겠는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웃고 있을 때, 운전기사 분이 쾌활하게 외쳤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제야 거대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뉴욕에 오자마자 들린 첫 번째 목적지.
이곳은 바로 컨템포러리 아트를 전시하는 대형 미술관이자 내년에 열릴 공연의 모금파티가 열리는 장소였다.
* * *
대형 미술관의 관계자용 입구로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이 우리를 맞이했다.
「우주!」
「폴, 오랜만이에요!」
수려한 외모의 프랑스인이 밝게 웃으며 반겼다.
가볍게 포옹하며 뻥긋 비쥬를 하고는 영어로 안부인사를 나누었다.
동생들도 어색하게 나를 따라 했다.
“김중현.”
“그래. 김비주.”
침을 꿀꺽 삼키며 서로를 바라보는 비주와 중현이의 사이에 리혁이가 손을 가르며 말했다.
“우리끼리는 하는 거 아니에요. 남이랑 하는 거지.”
“아.”
“아하.”
동생들의 바보 같은 모습에 폴과 내가 깔깔 웃었다.
그러곤 서로의 초췌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요. 폴.」
「우주한테 들을 이야기는 아닌 것 같지만… 스케줄을 하면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를 한 터라 준비할 게 좀 많았죠.」
살짝 눈이 퀭해 보이는 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이 유명 피아니스트는 숨 가쁘게 바쁜 스케줄인데도 이번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선명주 선생님의 마지막 공연에서 해야 할 일을 안 했다가는 잠이 안 올 것 같았거든요.」
「고마워요. 폴.」
이런 모금 파티나 행사에 문외한인 나에게 큰 도움이 된 사람이었다.
폴 로랑이 손짓하며 말했다.
「오늘 모금 파티를 여는데 힘 좀 쓴 친구들을 소개해 줘야겠군요. 이리 와요.」
관계자용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자 널찍한 전시실이 나왔다.
거의 축구장이라 해도 될 만큼 넓은 공간과 높은 천장, 그리고 그 아래로 이런저런 아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입구에서 코트 차림의 두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반가워요. 우주 씨.」
수염을 깔끔하게 다듬은 유럽인이 손을 내밀자, 폴이 소개해 주었다.
「라울 곤살레스. 이번 프로젝트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친구입니다. 지금은 다국적 펀드를 운영하고 있죠. 주로 예술품이나 음악 분야에 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선명주 선생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 재능은 다른 쪽에 더 있었더라고요. 하핫.」
날렵한 여우 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고맙다고 악수를 주고받고는 옆에 있는 아프리카인과 마주했다. 화상 미팅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반가워요. 꼭 만나고 싶었답니다.」
느릿한 거북이 같은 인상이었는데, 영어 말투도 온화하면서 차분한 분위기였다.
폴이 소개했다.
「임마누엘 무가보. 지금은 나와 같은 연주자들이 소속된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저도 재능을 다른 쪽에서 찾았죠. 물론 지금도 색소폰 연주는 즐겨 하고 있습니다.」
밝게 웃는 이와 악수를 주고받았다.
펀드과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두 사람, 그리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이 사람들이 이번에 인맥을 총동원해서 모금 파티를…….
「이 정도 규모로 만드셨군요.」
「그렇습니다. 하하!」
기뻐서 웃음이 나와야 하는데 스케일 때문에 자꾸만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거대한 전시장.
미리 말을 들었는데도 눈을 깜빡깜빡하게 된다고 할까.
동생들과 매니저 형들, 그리고 석환 형까지 이번 파티장으로 쓰일 전시장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야, 이게 규모가…….”
“원석아. 저거 전시품 실수로라도 다가가지 마라. 저기 쓰레기통같이 생긴 게 천만 달러짜리랜다.”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쓰레기통인데요?”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믿기지 않는 것은 바로 준비 기간.
폴에게 연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규모의 파티가 준비되다니.
「이게 가능한가요?」
라울 씨가 능글능글한 미소를 보였다.
「가능합니다.」
「정말요?」
「네, 돈을 무진장 많이 쓰면 안 될 게 없죠.」
명언이었다.
에이전시 대표인 임마누엘 씨가 덧붙였다.
「게다가 대개의 파티에서 어려움에 직면하는 문제들도 쉽게 해결이 됐거든요. 예를 들어 유명한 참석자들을 초청하는 문제라든가.」
「어떻게 해결하신 건가요?」
「폴 이 친구와 예술계에서 유명한 몇 명을 초청한다고 하니 그때부터 명사들이 달라붙더군요. 부자들의 허영심을 채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요. 그다음부터는 오히려 먼저 참석 의사를 밝혀 오고…….」
임마누엘 씨가 미술관을 둘러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장소 섭외도 어렵지 않았죠. 지금 몇천만 뷰를 찍었던가요? 미튜브에 그 예고편이 올라오고 난 뒤로 일사천리였죠.」
천재로 불린 재즈 음악가가 자신의 죽음을 대비해 준비한 공연.
20년 만에 돌아온다는 아빠의 이야기가 예술계에서 큰 화두가 되었다는 모양이다.
「우리가 장소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미술관 측이 먼저 장소를 대관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20세기의 마지막 천재에 관한 파티가 20세기의 미술을 다루는 갤러리에서 열린다는 건 의미가 크니까요.」
그걸 시작으로 모금 파티에 가장 주도적으로 참여한 3인방이 파티에 대해 안내를 해 주었다.
참석자들이 도착하면 어디 포토월에서 사진을 찍을 것이며.
칵테일 파티에서 다과는 어떻게 제공되는지.
각 유명인들이 내어 놓은 경매품을 통해 어떤 식으로 모금 절차가 진행될 것인지.
「정말 감사해요. 이걸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 할지…….」
자신들의 일도 제쳐두고 이 모든 것을 성사시킨 이들에게 정말 큰 고마움을 느꼈다.
「고마워 할 거 없어요.」
임마누엘 씨가 손사래를 치며 껄껄 웃었다.
그러곤 진지하게 말했다.
「그분은 제 인생을 바꿔 주셨으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지그시 웃다가 왠지 모르게 낯간지러운 분위기라 시선을 피했다.
「흠흠.」
폴 로랑이 멀찍이 설치된 그랜드 피아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저기가 바로 우주 당신이 연주할 곳이에요. 모금 파티가 시작할 때, 저기서 입장을 해서…….」
리허설을 하긴 할 것이지만 동선을 한 번 더 맞췄다.
폴 로랑의 안내에 따라 입구에서부터 피아노까지 쭉 걸어온 다음에 조용히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피아노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내가 물었다.
「한 번 연주해 봐도 될까요?」
「그럼요.」
이번 모금 파티에서 아빠의 미공개 곡 중 한두 곡을 내 손으로 직접 연주할 계획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자들 앞에서 하기에는 초라할 테지만.
그래도 아들인 내가 연주를 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지 않을까.
“…….”
심호흡을 짧게 하고는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재즈 특유의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면서 건반 위의 손가락을 부드럽게 쓸어 움직였다.
내 손길을 타고 퍼져 나가는 아름다운 색채들.
잔잔하게 시작했다가 조금은 격정적으로, 그리고 마무리는 차분하고 느릿하게.
복사본 악보에 쓰여진 아빠의 글귀 ‘Slow, lovely, and dreamily’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느리고, 사랑스럽게, 그리고 꿈꾸듯이.
이윽고 연주를 마치고 부드럽게 손을 떼자, 왠지 모르게 물기 젖은 눈으로 바라보는 삼인방이 보였다.
“……?”
동생들은 우와아 하고 좋아하고 있는데 아저씨 셋만 자기들끼리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마음에 드셨나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듯 폴 로랑이 답했다.
「아까 고맙다고, 어떻게 보답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했죠?」
「네, 맞아요.」
피아니스트가 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이걸로 보답이 된 거 같네요.」
* * *
모금 파티 준비에 대한 일정을 마친 후.
하루 정도 푹 쉬면서 컨디션을 회복하고 나니 추수감사절이 되어 있었다.
한국에 추석이 있다면 미국에는 추수감사절이 있는데, 자본주의의 나라답게 굉장히 스케일이 컸다.
1년 매출의 70퍼센트가 발생한다는 블랙 프라이데이도 바로 이 추수감사절 다음 날에 진행하는 행사라나.
그것을 비롯해 올해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할리우드 영화가 개봉하고 브로드웨이 연극이 열리는 등.
1년 중 소비가 최대치로 폭발하는 시즌답게 도시 곳곳에 상업적인 광고가 가득했다.
-Macy’s Thanksgiving Day Parade.
우리가 참여하는 퍼레이드도 그런 상술의 일환이었다.
1924년부터 시작된 이 유서 깊은 퍼레이드는 어린이들이 있는 가족의 지갑을 열기 위해 유명 백화점이 준비한 프로젝트.
그 때문에 볼거리도 많고 규모도 크다.
치어리더와 광대 분장을 한 참가자 2천여 명을 포함해 8,000여 명이 참여하는 미국 최대의 퍼레이드.
맨해튼 길거리에 나와서 보는 사람만 대략 300에서 400만 명 정도 된다고 관계자에게 들었다.
그만큼 대단한 퍼레이드였지만.
“에취!”
“에츄츄!”
우리에게는 그런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아, 왜 이렇게 춥냐.”
“시원하네요.”
11월 말 뉴욕의 새벽 날씨는 겁나게 춥다는 사실.
메이시 백화점 앞에 준비된 특설 무대에서 METRO의 리허설을 하는데 콧물이 줄줄 나온다.
“Ko-Jjil-Jjil-Eee! So cute!”
코찔찔이 누구야?
리허설을 지켜보면서 환호하는 수플레들에게 ‘얼굴 기억했다’ 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웃었다.
「이따 봐요!」
출연자들이 머무는 트레일러 대기실로 이동해서는 몸을 녹였다.
우리의 미국 에이전트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석환 형이 스케줄을 말해 주었다.
“이제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너희는 그래도 꽤 앞 순서라서 그리 오래 밖에 있지는 않을 거야. 퍼포먼스 순서상으로 3번째니까.”
“앞에 두 명은 누구예요?”
“보 리치랑 올리비아 시트웰.”
“어유. 그럼 앞 순서 하셔야지.”
나이가 꽤 있는 미국의 국민 가수들이다.
뒤에 서 있는 에이전트에게 또 무슨 이야기를 전달 받았는지 석환 형이 ‘아’ 하면서 말했다.
“그리고 팬들을 자극할 만한 행동은 좀 삼가달라고 뉴욕 경찰에서 요청이 왔어.”
“자극할 만한 행동?”
“어… 윙크라든가. 다가오라고 손짓을 한다든가. 손가락으로 사랑의 총을 쏘는 시늉이라든가. 아무튼 팬들을 흥분시킬 만한 행동을 좀 자제해 달래. 너희 팬들이 워낙에 그… 강하니까.”
“그렇지. 강하지…….”
최근 들어 거세지는 테러 위협 때문에 경찰 측이 굉장히 안전에 예민하다는 듯했다.
어쩐지 새벽부터 소총을 맨 경찰과 폭발물 탐지견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더라.
안전에 대한 유의사항 등을 듣고는 공연에 대해서도 안내를 들었다.
“퍼레이드 행렬을 따라서 쭉 움직인 다음에 백화점 앞에서 너희 마차가 멈출 거야. 그러면 거기서 메트로를 부르고 퇴장하면 돼.”
“네!”
“잘 해 보자. 작년에 TV 시청자가 2200만 정도 됐다더라.”
온가족이 즐기는 분위기 때문에 핫하고 유명한 톱스타보다는 나이가 있는 국민 스타나 키즈 스타들이 등장하는 무대긴 하다.
하지만 시청자 수만 따지면 우리가 지금까지 한 단일 무대 중에서 가장 큰 행사였다.
2000만 앞에서 공연할 기회는 절대 못 놓치지.
동생들과 의욕을 불태우고 있을 때.
“이번에 너희가 출연한다고 해서 주최 측에서 엄청 신경을 쓴 모양이야. 너희를 위해서 특별히 풍선이랑 마차도 준비했다더라.”
“오오오!”
그때, 우리가 앉아 있는 트레일러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주최 측 스탭이 뭐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음? 아.”
석환 형이 우리에게 웃으며 말했다.
“풍선이랑 너희 마차가 준비됐다는데 지금 한 번 볼래?”
“풍선!”
“마차…!”
동생들과 신이 나서 트레일러를 뛰쳐나갔다.
그리고.
“……?”
하늘에 둥실 떠오른 거대한 풍선을 보는 순간.
우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 * *
뉴욕 추수감사절 최대의 퍼레이드.
맨해튼에 300만 명이나 운집하는 상황 속에서 경찰관들은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젠장, 사람 더럽게 많군.”
경찰관 하나가 동료에게 투덜거렸다.
“이래서야 누가 뭘 들고 있는지도 안 보이잖아. 어이! 거기 펜스 넘어오시면 안 됩니다!”
호루라기를 불면서 경광봉을 흔드는 경찰관들.
센트럴 파크 옆으로 행사가 이뤄지는 도로마다 펜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끝없이 가득한 사람들.
담요를 뒤집어쓴 어린이들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고, 빵모자를 쓴 커플이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여기저기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있는 이곳.
경찰관이 동료에게 말했다.
“체감상으로 올해는 작년보다 사람이 몇 배는 더 되는 거 같은데.”
“뉴블랙 때문일걸?”
“뉴블랙? 아, 그 보이밴드.”
조카가 ‘뉴블랙!’ 하면서 방방 뛰어서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무슨 굿즈 사달라고 하는 것도 피곤한데, 하여간 사람 일을 힘들게 한다며 투덜거릴 때였다.
퍼레이드가 출발하는 곳 부근.
그곳에서 안전사항을 점검하던 경찰관들이 처음 보는 마차를 보며 흠칫했다.
“잠시만.”
그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저거… 염소야?”
“염소… 같은데. 사탄의 상징이 아니고서는.”
눈에서 불길이 이글이글 솟아오르고 있는 암흑 염소 모형이 마차 앞에 달려 있었다.
투레질까지 하는 흑염소 모형.
마치 지옥의 패왕이 강림한 듯한 압도적인 비주얼이었다.
“Dae-gil! Dae-gil!”
출발선 부근에 서 있는 팬들이 알 수 없는 챈트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사탄의 염소가 이끄는 마차 위로 뉴블랙 멤버들이 귀여운 패딩을 입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What the…….”
저 허공에 둥실둥실 떠오른 풍선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백여 명이 끈으로 붙잡고 있는 풍선 중에서 다섯 개는 알겠다. 멤버들을 미니미로 귀엽게 형상화한 것이니까.
하지만.
“나 저거 고스트 버스터즈에서 본 거 같아.”
“지옥의 마시멜로 맨?”
유령 퇴치 영화에서 최종보스로 나온 마시멜로 맨이 떠오르는 거대한 풍선이 있었다.
팔다리가 달린 거대하고 누런 빵.
왠지 모르게 귀여운 표정을 짓곤 있는데, 그림자 때문인지 음산해 보이는 비주얼이었다.
분명 작았다면 귀여웠을 비주얼인데 사이즈가…….
“왜 무서운 거지?”
“히죽 웃고 다니는 아기곰이 수십 미터짜리 풍선이 된다면 누구든 무서울걸.”
둥실둥실 허공에서 팔다리를 흔들며 발랄하게 웃고 있는 빵 인형.
그 아래에서 뉴블랙 멤버들이 중학생 형을 뒷배로 두고 있는 초등학생들처럼 후후후 웃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풍선과 눈이 마주치기가 무서워 시선을 피하는 경찰관들이었다.
‘몰라. 뭐야, 무서워.’
뉴욕 시민들에게는 ‘What the?’ 라는 별명이 붙은 인형이자,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수플레 대마왕’으로 불리게 된 풍선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