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67화
뉴욕의 컨템포러리 아트 미술관.
그 앞에 속속들이 차량이 멈추고 있었다.
“내린다!”
레드카펫 위로 값비싼 구두와 하이힐이 사뿐히 내려앉고, 리무진에서 유명인들이 내릴 때마다 탄성이 터졌다.
“레슬리 톰슨이다. 레슬리!”
“에릭슨? 에릭슨 씨! 여기는 어떻게 오신 겁니까!”
“프랭크 차우?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유명 TV 쇼의 리얼리티 스타, 카지노 재벌, EGOT을 달성한 브로드웨이의 유명 작곡가 등등.
어지간한 대형 파티에 등장할 법한 라인업에 포토그래퍼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미… 미친, 이건 노다지다!’
AMA 현장에서 우주에게 부탁해 파티 명단에 이름을 올린 유명인들.
폴 로랑을 비롯해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모인다는 말에 ‘예술계의 후원자’를 자청하며 달려온 재계 인사들.
과거 선명주와 인연이 있던 전설적인 재즈계의 명사들까지.
“이쪽! 이쪽 봐주세요!”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양옆으로 카메라들이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다.
번쩍! 번쩍!
턱시도를 입은 남편의 손을 붙잡은 배우자들이 드레스를 조심스럽게 붙잡고 계단을 올랐다.
그동안에도 미술관 앞에 서는 차량들의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한 말씀 해 주시죠! 오늘 어떻게 오게 되신 건가요!”
“그야 당연히 초청장을 받아서 왔죠. 특별한 인연은 없지만 과거 뉴블랙과 공항에서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왜 왔냐니. 나 뉴블랙 절친인디.”
생긋 웃는 미남 배우 알렉 웨스트를 시작해서 왠지 모르게 으스대는 표정의 헤일리 블루 등.
유명인들이 카메라를 보며 인터뷰에 응했다.
“선명주 씨와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습니다. 그의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파티를 연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전설적인 인물이 20년 만에 귀환하는 행사라니… 정말이지 이 행사를 놓칠 수 없었어요. 음악 역사의 한 챕터에 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거잖아요?”
“일찍이 우리 부부는 예술을 후원하는 재단을 세웠습니다. 오늘 행사는 제게도 큰 의미가 있는…….”
그렇게 고상하고 우아한 멘트를 내뱉은 유명인들은 얼마 안 가 파티장으로 입장을 했다.
금속 탐지기를 든 시큐리티들이 초대장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며 기자들이 침을 삼켰다.
‘부럽다.’
저 문 너머부터는 초대 받은 기자들만 입장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영역이었다.
밖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들이 미술관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을 궁금해하는 한편.
“코트 받아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파티장에 입장한 몇몇 참석자들이 직원들에게 코트를 넘기고는 ‘와우’ 하며 입 모양을 그렸다.
‘끝내주게 준비했는데?’
수백 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전시장.
아늑한 조명.
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
최고의 셰프들이 준비한 신선한 굴, 카나페 등이 테이블에 차려져 있었고, 각종 술이 담긴 쟁반을 든 이들이 곳곳을 돌아다녔다.
“사람이 진짜 많군.”
“아직 올 사람이 더 남았다고 하던데. 절반 정도 채웠다고 하는데… 윌슨 부부도 안 보여.”
“진짜배기 파티로군. 나 너무 흥분돼.”
파티에 참석한 미국인들의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은은한 음악.
여기저기서 스몰 토크를 할 수 있는 기회.
어제까지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심심하고 소소한 홈 파티를 했던 이들에게 이런 사교 파티는 크리스마스 선물과 같았다.
‘이게 파티지!’
곧바로 곳곳에서 ‘헤이!’ 하면서 과장스럽게 포옹을 하거나 떠들썩한 웃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회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꼭 참석해 달라고 주최 측에서 간곡히 부탁해서 말이지. 그것도 1번으로 보내 줬다더군.”
“하하, 대단하십니다.”
외국인들에게는 관종으로 유명한 빅테크 기업의 CEO가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흐뭇하게 웃고.
영화배우와 기업인, 모델, 음악인 등이 섞여 자신들의 인맥을 실시간으로 넓혀가고 있었다.
선명주의 지인이 아닌 유명인들이 이 파티에 참석한 이유였다.
첫 시작은 ‘선명주, 아주 위대한 음악가죠~’ 하면서 스몰 토크를 시작한 이들이 여기저기서 소곤거렸다.
“이번에 실리콘 밸리 쪽에서 투자를 하고 있거든요.”
“영화를 하나 새로 찍고 있는데…….”
“중동 쪽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현지 정부와 마찰을 조금 겪고 있긴 하지만 사업성은 뛰어납니다.”
수천 마리의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우우웅 하는 소리들이 미술관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참석자들이 미술품 앞에 모여 고상한 표정으로 칵테일을 들이켜고 있을 때.
이것저것 관심 많은 호사가들의 화제는 금세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그런데…….”
붉은 드레스를 입은 노부인이 칵테일을 홀짝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알기로 이 파티는 선명주 씨의 공연을 위해 그 아들이 여는 파티라고 들었는데 그 아들이 안 보이는군요.”
“음? 그러네요.”
“혹시 보신 분?”
“저는 거의 1번으로 들어왔는데도 못 봤습니다. 들어올 때부터 이미 안 보이던 걸요.”
그녀의 주변에 모인 이들이 의문을 품었다.
‘주최자가 왜 안 보이지?’
당연히 주최자가 손님들을 맞이하거나 돌아다니면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 줄 알았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짐작하기로는 무슨 공연 같은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뿐.
“그러고 보니 저기 피아노가 있네요.”
무대 위에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아마도 저곳에 등장해서 연주를 하고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이상하네요. 뉴블랙은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밴드 아닌가요?”
“피아노 연주에도 재능이 있나?”
하지만 이곳에 모인 음악인들은 최고 중의 최고.
‘그런 사람들 앞에서 보이밴드 멤버가 연주를 한다고?’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자가 칵테일을 홀짝이며 영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폴 로랑 같은 대단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우주의 연주가 내 성에 찰지는 모르겠군요. 물론 그가 위대한 천재의 아들이자 오늘의 주인공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솔직히 맞는 말씀이에요. 의문이 좀 들죠.”
“미공개 악보를 연주할 거라면 기왕이면 훌륭한 연주자를 섭외하는 게 좋았을 텐데…….”
“뭐. 그래도 즐겁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기교의 완벽성이나 예술적인 면은 아쉬울지라도.”
우아하고 고상한 파티를 추구했던 사람들이 입맛을 다셨다.
‘딱히 별로 기대는 안 되는데.’
뉴블랙이 누구인지는 대강 알고 있다.
그 이름을 모르면 학교를 다니고 있는 손자손녀나 아들딸과 대화가 제대로 통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매 시기마다 핫한 보이밴드는 언제나 있어 왔다.
뉴블랙 전에는 오션 파이브가 있었고, 오션 파이브 전에는 원샷, 원샷 전에는 멜로디 보이즈.
그러하기에 나이 든 세대에게 뉴블랙은 지나가는 보이밴드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건 샤방샤방한 외모에 소녀들이 꺅꺅대는 이미지.
헤어젤을 잔뜩 바른 꽃미남이 겉멋이 든 미소를 지으며 피아노를 뚱땅뚱땅 치는 장면이 그려졌다.
‘기왕 할 거면 폴 로랑 같은 피아니스트의 공연이나 섭외하지.’
그런 소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피아노 연주를 잘할지 못할지는 당신들이 관여할 바는 아닌 것 같소만.”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사람들이 시선을 돌렸다.
살짝 쉬고 거친 목소리.
나이 지긋한 노인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누구…….”
라고 말을 하려던 이들이 입만 뻥긋거렸다.
‘윈스턴 로스!’
눈앞에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재즈계에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윈스턴 로스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까부터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가관이더군. 물론 연주를 어떻게 하는지, 기교가 어떤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하지만 예술이 무엇인지 당신들은 제대로 알고 있소?”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곤 주변에 있는 쓰레기통 모양의 조형물을 가리켰다.
“예술에 있어 중요한 건 의미지. 그런 의미에서 이 파티가 현대 미술을 주제로 하는 곳에서 열린 것도 그와 맥을 같이 하는 거요. 미술도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느냐를 중요시하니까.”
“…….”
“그러니 그가 연주를 하기로 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요. 아무리 세계 최고의 연주자가 연주를 한다 한들, 그 아들이 서툴게 더듬더듬 연주하는 것만큼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겠소?”
노인이 말을 끝내자 주변에 모여 있던 이들이 아무 일도 없던 척 헛기침을 하며 해산했다.
‘한심한 인간들.’
윈스턴 로스가 혀를 찼다.
음악이란 그저 즐겁기 위해 존재하는 것.
자신들의 고상함을 드러내기 위한 전유물로 사용하는 부자들을 볼 때마다 속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쯧쯧.”
윈스턴 로스가 혀를 차고 있을 때였다.
박수 소리와 함께 나비넥타이와 턱시도를 맨 갈색 머리의 미남자가 나타났다.
“대단한 연설이었어요, 윈스턴.”
“연설은 무슨.”
폴 로랑이 부드럽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왜 또 혼자 계세요? 여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무슨 이야기만 하면 금세 사람들이 흩어지더군.”
“선생님이 너무 세게 말씀을 하시니까 그래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사람들이 떠나는 거잖습니까.”
“흥.”
왕년에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이자 고집불통의 성격을 지닌 노인이 입매를 비틀 뿐이었다.
폴 로랑이 달래듯 말했다.
“그래도 말씀 잘하셨어요. 듣기 불편하더라고요.”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이야.”
툴툴거리는 노인을 바라보며 음악계의 후배가 작게 웃었다.
괜히 성을 냈던 게 무안했던지 윈스턴 로스가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그는 어떤가?”
“우주요?”
“그래. 많이 닮았나?”
아닌 척했지만 윈스턴 로스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명주의 아들.’
최고의 부흥기를 누렸지만 서서히 쇠퇴한 재즈라는 장르.
다른 분야로 맥이 이어지거나 장르 간 통섭으로 여전히 명맥을 이어 가고 있지만, 그가 알던 재즈는 어느 순간부터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선명주는 그 마지막 불씨 같은 존재였다.
80년대 후반에 혜성처럼 등장하더니 재즈라는 음악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었으니까.
20세기의 마지막 천재.
과거 재즈의 왕이라 불렸던 윈스턴 로스가 찾던 후계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할렘이나 뉴올리언스 출신이 아닌 한국에서 태어난 천재였다.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런 아쉬움을 품은 상황에서 그의 아들이 갑자기 미공개 악보와 함께 등장하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폴 로랑이 그의 상념을 깼다.
“글쎄요. 닮았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부분은 닮았고 어떤 부분은 또 다르더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선명주 선생님이 너무 강렬하게 빛나는 태양이었다면 이 친구는 태양계를 만들 줄 안다고 할까요?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작곡 면에서는 부친보다 더 대단한 거 같기도 하고요.”
“그렇군.”
“하지만 아버지와의 공통점은 명확하더군요. 어마어마한 스타성.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요.”
부전자전.
윈스턴 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하지.’
그가 선명주라는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인상은 말 그대로 그의 성씨인 Sun과 같았다.
밝게 빛나는 태양.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존재.
그때 보았던 그 빛을 떠올리며 윈스턴 로스가 납득할 때였다.
지이이이이잉-
“음?”
조명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무대에 스크린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폴 로랑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나오겠군요.”
장내에 있는 수백여 명의 참석자들이 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할 시간이었다.
* * *
“후우.”
호달달달.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있는 내 등을 리혁이가 팡 쳤다.
“겁먹지 마요. 허리 펴고.”
“예…….”
“상암 운동장 무대에서 6만 명이랑 공연했는데, 천 명도 안 되는 사람들한테 얼어붙을 건 아니죠?”
“아으으으으. 그래도 떨린단 말이야.”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니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다.
비주가 내 어깨를 붙잡고 소곤거렸다.
“긴장하지 마요. 형.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는 거예요.”
“알았어.”
아빠의 미공개 악보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내가 직접 연주해 주는 공연.
뭐.
특별해 봐야 얼마나…….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 특별한 공연이잖아아…….”
머리를 감싸 쥐며 중얼거리자 막내가 한숨을 쉬었다.
“아, 진짜 수플레들이 비하인드 캠으로 이 장면을 봐야 하는데. 그래야 형의 실체를 알게 될 텐데.”
“조용히 해.”
“흐음~ 진짜로 조용히 해여?”
“아니. 계속 말해 줘. 긴장 풀리게.”
손짓하며 말했다.
“아무 말이나 해 줘. 얼른.”
“옛날 옛적에 형부와 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폭탄을 문 까치가 나타나…….”
막내가 펼쳐 주는 헛소리 전래동화 대잔치를 ASMR처럼 들으며 기지개를 켰다.
중현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냥 즐겁게 하고 와요. 아버님이 쓰신 악보에 즐겁게 연주하라고 써 있다면서요.”
“알았어.”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저희한테 아버님의 곡을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연주해 보세요.”
어른스럽게 조언을 해 준 중현이가 껌을 내밀었다.
껌을 질근질근 씹으며 장막 뒤에서 대기를 하자, 행사 직원 분이 곧 나갈 타이밍이라며 손짓했다.
껌을 종이에 싸서 대충 바지 주머니에 넣을 때.
“먼저 가서 연주하고 있어요. 형.”
비주가 나비넥타이 매무새를 고치며 웃었다.
“저희도 곧 따라갈 거니까.”
“조금 이따 보자.”
중현이가 해 준 조언대로 아빠의 공연을 보러 오기 위해 온 후원자들이 아닌 다른 무대를 상상했다.
연습했던 때와 똑같이 동생들과 피아노를 두고.
즐겁게.
그리고 활기차게.
“후우.”
심호흡을 하고 있는 동안 무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아빠의 얼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곧 입장할 타이밍이었다.
* * *
파앗!
대형 스크린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객석에서 감탄사가 흘렀다.
“와우.”
화면에 등장한 그림 같은 미모의 남자 때문이었다.
별을 품은 듯 선명한 눈동자.
베일 듯이 날카로운 턱선.
어딘가 예민해 보이면서도 예술가적인 기질이 다분해 보이는 오뚝한 콧대 위로 안경이 얹어져 있다.
[좋은 저녁입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20년 전에 녹화된 영상이 흘러나오면서 선명주의 아이들들이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짜 선명주 선생님이다.’
90년대 특유의 영어 말투가 귀에 쏙 들어온다.
[아마 영상 속 제 모습이 다소 피곤하고 예민해 보인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얼마 전에 여행계획을 짜면서 부인에게 엄청 혼이 났거든요.]
능글맞은 농담에 청중이 웃음을 흘렸다.
[저의 부인이 말하길, 지나칠 정도로 꼼꼼한 성격 때문에 가끔 화가 날 때가 있다더군요. 하지만 여행지에 가서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는 아주 꼼꼼하게 정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말을 이어가던 선명주가 화제를 바꿨다.
[하지만 저의 그런 꼼꼼한 면이 이런 점에선 빛을 발할지도 모르겠군요. 이런 성격이 아니라면 그 누가 20년 후 열릴 파티에 쓸 영상을 촬영하겠습니까?]
그가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현장에는 몇 명이 있나요? 한 명?]
사람들이 웃었다.
[웃음소리가 들리는군요. 다섯 명?]
또다시 나오는 작은 웃음.
최소 수백여 명은 되는 인원이었다.
[제 친구들 중에서도 몇 명이 왔을지 모르겠군요. 주름이 자글자글할 나의 친구들, 그리고 이 영상을 보게 될 나의 아이들. 그들에게 나를 찾아와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가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우리 참 오랜만이지?]
친구들에게는 ‘이보게 잘 지냈나’처럼 들리고.
그가 구해 낸 아이들에게 ‘무사히 어른으로 잘 자랐니?’ 하는 질문처럼 들리는 인사였다.
스크린 속에서 웃는 친구를 향해 오랜 벗들이 물기 어린 눈으로 웃었다.
[그리고 만약 참석자 중에 어마어마한 부자가 계시다면 그분들께도 미리 감사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계의 후원자들이자 인류의 보배이십니다.]
쇼맨십 가득한 익살맞은 미소에 참석한 부자들이 웃었다.
카메라 너머를 둘러보듯 시선을 옮기던 선명주가 말했다.
[뭐. 파티 규모가 어떨지는 저로서는 알 수 있는 노릇이 없겠습니다. 몇 명이 될 수도, 어쩌면 크면 백 명이 될 수도 있겠죠. 오늘 오신 모든 귀빈들에게 저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예술가가 그들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이 저의 생애 마지막 공연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실 테니까요.]
자리에 있는 참석자들을 띄워 주면서 그들에게 고양감을 심어 주는 PR의 귀재였다.
[그리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의 아들을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음악인이 아닌 아버지 같은 표정이었다.
[이 영상이 여러분에게 도달했다는 뜻은 저의 아들이 어마어마하게 고생을 한 것일 테니까요. 사실 이것이 재생이 될지도 의문인 영상이긴 합니다만… 이걸 해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죠.]
아들이 어떻게 자라났는지는 모르는 20년 전의 아버지.
[제 아들은 아마 지금쯤 평범한 대학생일 테니까요.]
진지하게 말한 대사지만 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큰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아들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니까.
모금 파티가 열렸다고는 해도 절대 이 정도 규모로는 커지지 못했을 테니까.
-20년 만에 천재가 마지막 공연으로 돌아왔다!
-20년 전에 준비한 어느 천재의 공연!
-뉴블랙 리더의 아버지이자 희대의 천재로 명성을 떨친…….
구독자만 수천만인 계정에 올라온 영상의 파급력은 그만큼 어마어마했다.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뉴블랙의 팬덤이 실시간 트렌드에 공연 개최를 응원하는 해시 태그를 올리고.
그 덕에 메인스트림 미디어에 선명주의 이야기가 대서특필된 것이 아니던가.
‘하긴.’
참석자들이 작게 웃었다.
누가 20년 후에 자신의 아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할까.
선명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로 오늘의 파티를 성사시킨 주인공인 제 아들을 여러분에게 정식으로 소개하고 싶군요.]
본래였다면 그저 소소한 손님들 앞에 ‘안녕하세요, 선우주입니다’ 하며 인사하는 데 썼을 비디오 영상.
하지만 왠지 모르게 오늘의 공연을 소개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소개드리겠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소개하며 뿌듯하게 웃었다.
[저의 자랑이자 하나뿐인 저의 아들, 선우주입니다.]
그와 함께 영상이 멈추면서 행사장의 스포트라이트가 한 곳을 비추었다.
중앙 연단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
물결처럼 양옆으로 물러서는 사람들 사이로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청년이 피아노를 향해 걸어왔다.
“와아아아…….”
수수하게 메이크업을 했는데도 피부에서 투명한 광채가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
박수를 치는 이들에게 산뜻한 미소로 답하던 미청년이 그랜드 피아노 앞에 도달했다.
칵테일을 들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 팝 스타가 차분하게 의자에 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침 넘기는 소리가 들릴 만큼 적막이 흐르는 곳에서.
스르륵-
주최자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건반 위로 올라오면서, 마침내 미공개 악보가 연주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