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68)화 (76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68화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무대 위.

피아노 앞에 앉은 미남이 손가락을 유려하게 미끄러뜨리면서 음악이 시작됐다.

‘우와.’

그들이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실력에 참석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고개를 까딱까딱하면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재즈 특유의 리듬감이 확 살아나 있었다.

산뜻하고 친근한 도입부.

마치 재즈의 세계로 초대하듯이 단조로우면서도 가벼운 멜로디가 이어졌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어느 음악 애호가가 옆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이게 미공개곡이라는 거죠?”

“쉿.”

손가락을 입에 올리는 옆 사람의 손짓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을 삼켰다.

처음엔 연주 실력에 감탄했다가 그다음에는 곡의 수준에 입이 떡 벌어졌다.

‘장난 아니군.’

첫 멜로디를 듣자마자 전율이 일었다.

그것은 지금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는 이의 아버지가 이 곡을 20년 전에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게 20년 전에 쓴 곡이라고? 어제 썼다고 해도 믿겠는데?”

“왜 그가 천재라고 불렸는지 알겠네요.”

“정말 이게 미공개 악보라고요?”

처음에는 단조롭게 시작했지만, 점점 음이 쌓여 가면서 복잡한 멜로디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패츠 윌러. 카운트 베이시. 에롤 가너.

재즈계의 유명한 거장들이 2017년으로 넘어와 작곡을 한다면 이런 곡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분위기였다.

‘깊고 그윽한 곡이야.’

재즈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윈스턴 로스가 칵테일 잔에 올린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며 입을 내밀었다.

그의 머릿속에 깊고 그윽한 향기를 뿜어내는 꽃 한 송이가 그려진다.

히아신스.

멀리서도 향이 느껴질 만큼 향기가 강한 꽃.

사랑. 행복. 기쁨. 승리. 비애. 슬픔과 추억.

영원한 사랑.

다양한 꽃말을 담은 그런 꽃이 연상되는 음악.

오랫동안 가슴에 묵혀 둔 꽃을 꺼내와 오랜 친구들에게 선물을 해 주는 듯한 곡이었다.

‘정말이지 끝내주는 인사를 준비했구나, 애송이.’

젊었을 적에 음악에 대한 견해를 두고 그에게 당돌하게 대들었던 피아니스트를 떠올리며 윈스턴 로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 선명주에게 음악에 깊이가 없다는 비판을 했던 것에 대해 완벽한 카운터펀치를 당한 기분이었다.

윈스턴 로스가 칵테일을 홀짝이며 웃었다.

‘네가 이겼다.’

그러는 동안에도 뉴블랙의 리더는 연신 손가락을 부드럽게 튕기면서 리듬을 타고 있었다.

잔잔한 재즈 피아노곡이 이어진다.

피아노를 홀로 연주하는데도 그 존재감이 주변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조명에 음영이 진 오뚝한 콧대를 보며 윈스턴 로스는 수려한 얼굴을 지닌 그의 부친을 떠올렸다.

“닮았군.”

그 말에 대꾸하듯 옆에 서 있던 폴 로랑이 칵테일을 홀짝였다.

“닮았죠.”

짤막하지만 자리에 참석한 선명주의 지인들이 모두 공감하는 발언이었다.

부전자전.

물론 지금 연주하는 이의 기교나 테크닉 등에서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부족한 점들이 있다.

하지만 저곳에 있는 이에게서는 아무리 연습해도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재능.

천재성.

무언가 알 수 없는 반짝임.

닮았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 이 곡의 제목이 뭔가.”

“To All My Friends, 라는 곡이에요. 윈스턴.”

나의 모든 친구들에게.

정말로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2분 30초짜리 곡이 흘러나오는 동안 선명주를 알고 있는 이들은 저마다 회상에 잠겼다.

-이름이 라일라니? 연주해 보고 싶으면 이 악기의 현을 한 번 튕겨볼래? 뭐…? 세상에, 여자는 악기를 연주하면 안 된다는 게 어디 있니?

다마스쿠스의 빈민가에서 나와 지금은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라일라 버튼이 남편과 함께 조용히 웃고.

-꼭 이론 공부를 해야만 음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이론은 그러니까 레시피 같은 거지. 레시피를 알면 요리를 더 맛있게 할 수 있지 않겠어? 자, 그러니까 말해 보렴. 드럼 스틱으로 교장 선생님의 가발은 왜 벗긴 거니?

볼티모어 워싱턴 미들스쿨의 문제아이자 지금은 재즈 음악 교수가 된 레이먼드 바클리가 머쓱하게 웃고.

-음악은 그저 즐기는 거야.

선명주를 알고 있는 이들 모두가 20년 만에 전해지는 인사에 미소를 지었다.

깊고 그윽한 인사.

이윽고 첫 번째 곡이 끝나면서 자리에 참석한 이들이 박수를 치면서 작게 환호했다.

“…….”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우주는 조용히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릴 뿐이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박수.

그것이 잠잠해질 때까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이의 모습에 박수가 서서히 잠잠해졌다.

‘이번엔 무슨 곡이지?’

예술품과 같은 길쭉한 속눈썹이 파르르 한 차례 떨린 후.

청중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맑은 눈동자의 미남이 그들에게 웃어 보이는 장면이었다.

곧이어 경쾌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어머.”

방금 전까지 아련한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던 이들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감돌았다.

신나는 재즈 음악이었다.

경쾌한 스윙 리듬.

자리에 참석한 이들이 저도 모르게 어깨를 까딱까딱하며 리듬을 타게 만드는 곡이었다.

헤일리 블루가 남편과 어깨를 맞댄 채 칵테일 잔을 흔들고, 음악인들이 턱 끝을 까딱이며 웃었다.

‘이게 선명주의 음악이지.’

솔직히 예술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야 많다.

하지만 선명주가 그중에서도 유명했던 이유는 바로 그런 예술을 대중 영역으로 확고하게 끌어왔기 때문이었다.

어떤 화음, 어떤 음이 대중을 즐겁게 하는지.

무엇이 대중을 춤추게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음악계의 스타.

‘좋다.’

‘처음 들어 보는데 신나네.’

부부가 손을 맞잡고 작게 춤을 추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잔을 부딪치고.

몸을 가볍게 흔들다가 다른 사람과 몸을 부딪쳐도 즐거운 웃음이 나오는 분위기.

무도회장처럼 변한 분위기에 사람들의 입가에 싱글벙글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동안 경쾌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선우주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음.”

윈스턴 로스가 입술을 뗐다.

“닮았지만 다르군.”

“다르죠.”

폴 로랑의 답에 윈스턴 로스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아직은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부친과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두 번째의 경쾌한 피아노 곡 이 마무리를 향해 달려갈 때였다.

끝마무리로 온음표가 찍힌 음을 지그시 누를 때.

“어어? 끝인가?”

“끝일걸요. 미공개 악보를 두 곡 한다고 했잖아요.”

왠지 모르게 아쉬움을 느끼며 사람들이 연주자에게 박수갈채를 퍼부었다.

그런데.

‘끝이 아닌가?’

우주는 말없이 머리를 쓸어 넘길 뿐, 무표정한 얼굴로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두 손을 무릎에 올린 채.

마치 박수를 더 기다린다는 듯.

그 모습에 관객들이 기대감을 품고 박수의 열기를 올렸다.

“와아아아아-!”

그러자 우주가 능청맞은 표정을 지으며 왼손을 피아노 위에 올렸다.

그 모습에 선명주의 지인들이 즐겁게 웃었다.

‘핏줄이 어디 안 가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작은 환호성을 지르며 점점 파티장의 열기가 무르익기 시작하는 가운데.

박수 소리의 데시벨이 천장을 뚫고 올라갈 기세가 되면서 마침내 우주의 양손 모두가 피아노 건반 위에 올라왔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박수.

‘쉿.’

무대 위에서 능청스럽게 검지를 입에 올린 미남의 모습에 파티장에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양손 소매를 걷어붙인 선우주의 얼굴에 시선이 집중됐다.

‘가늠이 안 된다.’

무슨 곡이 나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건반 위의 손가락이 무겁게 움직였다.

“음?”

곧이어 장중한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엄숙한 행사에 나올 것 같은 묵직한 곡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마 이게 마지막 곡일 텐데, 마지막을 장식할 곡으로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 누가 나와요?”

“사람들이 나오… 뉴블랙이네.”

잘생긴 미청년 넷이 무대 장막 뒤에서 저마다 스탠딩 마이크 대를 하나씩 쥐고 나오고 있었다.

분산되는 스포트라이트.

리더가 묵직하고 엄숙한 곡을 연주하는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멤버들이 헛기침을 한 채 뒷짐을 졌다.

나는 따라갔네 그 길을

저 멀리 더 멀리

4인조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화음이 되어 귓가에 흘러 들어왔다.

마치 교회의 성가대 같았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한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현장의 흥이 서서히 식어가고 엄숙해지는 한편.

‘이거 그 곡이구나.’

선명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주변의 반응을 보며 웃음을 삼킬 뿐이었다.

이 곡은 미공개 곡이 아니었다.

다만 어느 천재의 짓궂은 장난기가 가득 담긴 곡이었다.

나는 따라갔네 그 길을

저 멀리 더 멀리

그런 식으로 같은 후렴구가 반복될 때였다.

선우주의 피아노가 서서히 잦아들면서 멤버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 무렵이었다.

무언가를 예감한 사람들이 조용히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왠지 슬슬 나올 거 같다.’

스윽.

선우주가 양손 소매를 다시 걷어붙이고는 잠잠해진 관중들과 멤버들에게 눈을 윙크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손가락이 피아노의 건반 끝에서 끝까지 촤르륵 미끄러졌다.

그러자 유쾌하고 상쾌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

자리에 참석한 미국인들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거 그 곡이구나.’

제목은 모르지만, 도입부를 들으니 바로 아는 곡이었다.

초반 30초의 전주가 속임수였던 듯, 완벽하게 반대되는 멜로디에 저절로 몸이 들썩였다.

사람들도 웃으며 투-포, 2박과 4박에 강세가 들어가는 재즈 리듬의 박수로 호응했다.

그와 함께 무대 위에서 익살스럽게 손가락을 드럼처럼 딱딱 튕기며 즐겁게 웃는 4인조.

체격이 좋은 멤버가 부드럽게 한 바퀴 턴을 하면서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만약 내 고향에

놀러 올 일이 생긴다면

이 길을 따라와 주세요

그 뒤를 이은 것은 온화한 인상의 미소년이었다.

그가 부드럽게 손짓을 하면서 재즈 리듬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가 무용수처럼 눈길을 끄는 인물이었다.

아이들도 데려와 주시고요

어른들도 좋습니다

그저 이 길이면 됩니다

선명주가 작곡한 곡 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알려진 곡이었다.

90년대 초반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레스토랑이나 쇼핑몰 등 어딘가에서 한 번쯤 들었던 재즈 음악.

뉴블랙의 즐거운 노랫소리에 맞춰 청중들이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다르군.”

윈스턴 로스가 무대에서 즐겁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와 멤버들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밴드처럼 쿵짝이 맞는 5인조.

선명주의 아들은 그를 똑 빼닮았지만 이런 면에서는 느낌이 달라 보였다.

아름답게 생긴 저 청년의 부친이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처럼 주변의 빛을 잡아먹을 만큼 화려했다면…….

-선명주 선생님이 너무 강렬하게 빛나는 태양이었다면 이 친구는 태양계를 만들 줄 안다고 할까요?

정말이지 그 말대로였다.

스스로도 빛나지만 옆의 다른 별들과 함께 다니며 다른 별들을 따스하게 끌어들이는 느낌.

선명주가 별처럼 빛나 시선을 끌어모았다면, 이쪽은 동료들과 함께 주변을 아름다운 색으로 칠하는 것만 같다.

같이 있으면 기분이 즐겁고 상쾌해지는 기분.

‘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지 알겠군.’

어린 세대가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납득하는 재즈계의 거물이었다.

그러는 한편.

싱글벙글 웃으며 리듬을 타는 가수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은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어머.’

체격이 큰 멤버가 눈을 찡긋하면서 손짓을 할 때 저도 모르게 가슴이 들뜨고.

날카로운 인상의 멤버를 둘러싸고, 미소년 같은 멤버와 짓궂은 미남이 익살맞은 춤을 출 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방법을 안다고 할까.

노래 기교.

춤.

표정.

그 어떤 하나에도 모자람이 없으니 저절로 무대에 빨려 들어가듯이 집중이 된다.

“와아아아-.”

어느새 파티장은 무도회장처럼 변해 있었다.

한두 명이 즐겁게 춤을 추고, 무대 위의 멤버들이 손짓과 웃음을 보이며 더 호응을 이끌면서.

고상한 격식을 추구했던 이들도 즐겁게 웃으며 몸을 까딱 움직일 정도였다.

즐거운 웃음.

달밤 아래의 흥겨운 90년대 음악과 함께 펼쳐진 무도회가 끝났을 때.

‘인사 나누고 싶다.’

‘진짜… 끝내주는 노래였어.’

‘뉴블랙.’

무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보이밴드 아냐?’ 하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관객들이 열화와 같은 박수를 터뜨렸다.

리더를 중심으로 모여 유쾌하게 웃는 멤버들.

‘……진짜 잘생겼어.’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관객들은 자신들이 이 청년들에게 매료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동생들과 준비한 깜짝 퍼포먼스의 반응은.

“와아아아아아-!”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좋았다.

우리가 서 있는 연단 아래로 칵테일을 든 사람들이 몽롱한 눈으로 우릴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동생들과 흐뭇한 미소를 교환했다.

‘처음 맛 보시죠. 이게 바로 K아이돌의 맛입니다.’

‘혹사에 가까운 연습량이 동반되어야만 가능한 아시아의 신비!’

‘후후후후!’

동생들에게 엄지를 들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박수를 치는 사람들 앞으로 다가가서는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섰다.

무대 근처에 서 있던 폴 로랑이 ‘잘했어요’ 하는 눈빛과 함께 스피치를 하라는 듯 턱짓했다.

톡톡.

스탠딩 마이크를 가볍게 두드렸다.

“음음.”

미국의 이런 자선 파티에서는 주최자가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스피치를 해야 한다나.

머릿속 스위치를 한글에서 영어로 전환하고는 입을 열었다.

「와우, 현장의 열기가 어마어마하네요!」

스피커를 타고 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계속해서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고는 동생들과 함께 인사를 했다.

「어떻게 무대는 마음에 들었나요? 방금 우어어, 누군가요? 아. 헤일리. 열광해 줘서 고마워요.」

헤일리 블루의 ‘워호!’ 하는 외침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확실히 무대 효과 때문일까.

칵테일 잔을 들고 있는 이들의 표정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호의나 호감으로 반짝이고 있다.

「방금 들으셨던 두 곡은 와 입니다. 두 곡 모두 미공개 악보에 있는 곡입니다. 본래 다른 악기도 들어가는 곡이지만 안타깝게도 연습 시간이 없어서 연주해 줄 분들을 구할 수 없었거든요.」

그러면서 자리에서 눈을 빛내는 이들에게 말했다.

「미공개 곡의 피아노 파트만 연주했는데도 이 정도라면… 완성본은 어떨지 상상이 되시나요?」

웅성거리는 사람들.

모금 파티에서 미공개 곡을 연주한 것이 바로 이런 전략 때문이었다.

-네 아버지 공연에 기부를 하고 싶은데… 곡이 얼마나 좋을지 잘 모르겠어.

기부를 하려는 투자자들에게 일종의 사업 설명회를 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좋은 곡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그것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는지 신뢰 가득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정말 많은 분들이 와 주셨네요.」

무대 앞부터 저 입구 근처까지 사람들로 빼곡하다.

「아마 아버지께서 상상하지 못하셨을 장면일 거예요.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아마 굉장히 기뻐하셨을 것 같네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니.」

좋은 뜻으로 모인 이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말들을 전했다.

그렇게 스피치를 마무리한 후.

건배사를 제안하는 시간이 되자 내게 무알콜 칵테일이 담긴 잔이 주어졌다.

「음악을 위해.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을 위해.」

어느 영화의 주인공처럼 느끼한 표정으로 건배사를 하니 뒤에 있는 동생들이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 형! 그게 뭐예요!”

건배사가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동안 막내가 웃음을 터뜨리며 내 등을 팡팡 쳤다.

중현이가 내 표정을 따라 하며 잔을 들었다.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야. 중현아. 형이 언제 그랬니?”

타박하면서 내려올 때였다.

안타깝게도 동생들과 즐겁게 환담을 나누는 시간은 삽시간에 끝났다.

「뉴블랙!」

「무대 진짜 끝내줬어요. 제가 최근에 본 공연 중에서…….」

얼굴에 홍조가 떠오른 사람들이 몰려들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밀려드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거나 가볍게 포옹을 하고, 정신없이 쏟아지는 말들에 대꾸했다.

그리고.

「정말 만나 보고 싶었네.」

아빠의 지인들과도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윈스턴 로스.

재즈 교과서에 실린 인물과도 악수를 했는데, 나를 바라보면서 묘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연주였어.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품고 지켜보겠네.」

칭찬을 남기고는 바로 사라지셨는데 주변 사람들 반응을 보니 원래 칭찬에 박하신 분인 것 같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수백여 명의 사람들과 한두 마디씩 하는데… 정말 혼이 나갈 거 같다.

「라일라 버튼이에요. 아버님과는 오랜 인연이 있죠.」

「레이 바클리예요. 줄리어드 음대의 Jazz Studies에서 교수를 맡고 있죠. 제가 아버님 속을 많이 썩였죠. 하하.」

「폴 로랑입니다.」

중간에 섞여서 초면인 척 악수를 하는 폴 로랑 때문에 웃음이 터졌다.

「왜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그래요?」

「우주 당신이 10분 전보다 훨씬 더 유명한 사람이 된 거 같아서요.」

그의 말에 웃으며 대꾸했다.

「덕분에 정말 감사해요.」

폴을 비롯해 이번 파티를 주최하는 데 도움을 준 라울, 임마누엘 씨에게도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그리고.

“얼굴 보기 진짜 힘들다.”

“오셨어요?”

한국에서 온 아빠의 후배 피아니스트 하승주를 비롯해, 우리 측 스탭과도 해후를 했다.

턱시도를 입은 게 어색한지 석환 형과 우리 매니저들이 머쓱한 미소를 짓고 있다.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파티를 즐기는 홍서영 과장님에게도 웃어 보였다.

“과장님도 오셨어요?”

“응, 여기 너무 재미있다. 아. 그런데 우주야, 너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어.”

“네, 소개 부탁드릴게요.”

그 와중에도 일을 하셨는지 미국 에이전시 관계자, 선명주 재단 관계자들을 데리고 와서 짧게 조율할 부분에 대해 회의를 했다.

그다음은 만남, 만남, 또 만남.

미국의 유명 기업가, 뉴욕 쪽에서 활동하는 정치인들, 연예인들과 숨 가쁘게 인사를 다녔다.

헤일리 블루와 글렌 데이비스.

토크쇼 호스트 앨런 데일, 노스탤지어 때 인연을 맺은 루퍼트 딘과 벨라 페이지, 그리고 존 에드워즈 감독. 작곡가 프랭크 차우. 가수 콜드 브라운, 맨디 스파이스, 리얼리티 스타 레슬리 톰슨 등등.

미국에서 우리와 인연이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초청한 까닭에 정말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휴우.”

겨우 아이스 초코를 마시며 땀을 식히고 있을 때, 폴 로랑이 경매사 직원과 함께 왔다.

뉴욕의 유명한 경매업체 웨더비.

오늘 기금을 마련할 자선 물품 등을 보관하고 경매를 주관하는 업체였다.

「경매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점검을 해야 하거든요.」

경매사 직원과 악수를 주고받고는 경매 물품 서류를 건네받았다.

경매 물품은 나도 오늘 처음 본다.

동생들이 음료를 홀짝이며 내 곁에서 얼굴을 쏙 들이미는 가운데.

“어디 어떤 물품이…….”

유명인들의 냅킨이나 기타 등의 물품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1번 물품.

라일라 버튼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개인 수집용으로 가지고 있다 기증한 물건의 이름이 보인다.

[Item #1]

1696년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낙찰가 : 400만 달러 예상

“푸흡-!”

300년 된 바이올린에 코로 아이스 초코가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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