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71화
한국으로 돌아온 후.
아빠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제작진과의 인터뷰 등을 시작으로 우리는 평소의 일정으로 복귀했다.
그 말인즉, 다시금 무한 연습 지옥으로 돌아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후우…….”
땀에 푹 젖어서 자꾸만 가슴팍에 들러붙는 티셔츠를 떼어 내며 연습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화요일 새벽 2시.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리는 K넷 뮤직 어워즈를 불과 3일 앞두고 있는 날이었다.
게다가 미국에서의 일정이 꽤 시간을 잡아먹은 탓에 막바지 준비를 위해 거의 밤잠을 새워 가며 연습을 해야 했다. 각자 개인 무대를 비롯해 엔딩 무대까지 준비할 게 너무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연습을 제쳐 두고 잠시 쉬는 중이었다.
[60th Grammy Awards Nominations]
제60회 그래미 시상식 후보 발표.
연습실 구석에 있는 TV 위로 곧 미튜브 스트리밍이 시작된다는 자막이 떠올라 있었다.
데굴데굴 굴러 온 막내가 내 무르팍에 머리를 뉘이며 물었다.
“형.”
“어?”
“저거 언제 시작이래요?”
“새벽 2시 반 조금 넘어서 시작한다고 그러던데.”
지금 우리는 올해부터 미튜브로 공개한다는 60회 그래미의 후보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사실 딱히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그래미 어워즈는 미국 대중음악의 최고 시상식이긴 하다.
수상을 한 것도 아니고 후보가 됐다는 이유만으로도 미국 가수들이 ‘내가 그래미에!’ 하면서 눈물을 쏟고.
아카데미 시상식처럼 ‘그래미 무슨 상 노미니’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커리어가 되는 어마어마한 곳.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아요.”
리혁이가 말했다.
“찾아보니까 보이밴드는 2000년대 이후로 거의 노미네이트 된 적이 없대요.”
“알지. 어려운 거.”
우리는 현재 미국에서 이른바 ‘보이밴드’로 분류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보이밴드는 그래미 어워즈에서 딱히 높이 쳐주지 않는 분야 중 하나였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어차피 우리 노래는 올해 8월 다 되어서 나오기도 했고.”
“맞아요. 늦게 나왔으니까.”
첫 영어 싱글 메트로는 올해 8월에 나왔는데, 보통 그래미 같은 시상식은 집계 기간 초반에 나온 곡들이 유리하다.
그 때문에 이번에 메트로는 노미네이트 되지 않을 가능성이 90퍼센트가 넘었다.
그랬기에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다른 곡이었다.
“블루문도 잘하면 후보에 오를 수 있겠죠?”
“쉽지 않을 거 같긴 한데.”
2016년 할로윈에 나와서 2017년 그래미 집계 기간에 안 들어갔던 콜라보 곡이자 내가 공동 작곡한 곡.
올해 빌보드 연간 차트에도 오를 만큼 성적이 좋은 블루문이라면 희망을 걸어 볼 만하다.
문제점은.
-그래미 노미는 좀 힘들 수도 있지.
파란 머리카락에 요정 같은 얼굴을 지닌 슈퍼스타였다.
-왜 힘들어요. 헤일리?
-내가 지금은 많이 철이 들었는데, 결혼하기 전에 막 살던 시절에는 업보를 쪼오금 쌓았거든.
-헤일리. 솔직하게 말해 봐요. 또 뭘 했어요?
-내 친구 중에 레지나라는 애가 있거든.
히스패닉계 솔로 가수로 2010년대 들어서 세계 최고의 디바로 꼽히는 가수다.
-걔가 예전에 그래미에서 물 먹었는데, 아무리 봐도 인종 차별 각이라서 음… 내 의견을 피력했지.
-뭐라고 했는데요?
-심사위원들한테 좆같은 늙은이들이라고… 근데 맞는 말이긴 하잖아? 뭐. 발언은 철회하긴 했지만 그 뒤로 잘 안 부르더라구. 하여간 속 좁은 영감탱이들.
모금 파티에서 들었던 대화를 떠올리면서 동생들과 함께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큰 기대하지 말자.”
“맞아요.”
리혁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찾아보니까 수상 논란도 엄청 많던데요. 뭐. 인종 차별 논란도 많고, 누가 봐도 납득이 안 가는 수상 결과도 많고.”
“맞아. 맞아.”
“그래미가 뭐 별거라고. 어차피 미국인들 시상식인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TV를 안 바라보는 척을 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연습실 노크 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단발머리의 찹쌀떡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오빠 하이!”
“어, 나윤이.”
그러더니 비닐봉지를 쏙 내밀며 말했다.
“우리 치킨이랑 야식 시켰는데 같이 먹을래?”
“허어어!”
“그럼 들어간다.”
곧이어 치킨과 족발 등을 들고 들어오는 4인조에게 우리가 감격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여신들이시여!”
“야, 절하지 말고 상이나 차려.”
“네!”
고귀하고 아름다우신 존재들이 건네주는 봉투를 받아 들어서 연습실에 신문지를 깔고 세팅했다.
평소처럼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아라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잘 먹을게요. 누나.”
“맛있게 먹어. 체하니까 너무 급하게 먹지 말….”
각 팀의 막내들이 젓가락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손으로 한 점 쏙 집어먹는 모습에 우리가 숨을 삼켰다.
“김나윤, 너 언니가 손으로 집어먹지 말라고 그렇게…….”
“지호야. 우리 품위는 지키면서 먹자.”
“우에에!”
“우우웅!”
입에 음식을 잔뜩 머금은 막내들을 타박하면서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KMA 연습 중이었어요?”
“응. 너무 힘들다아…. 너희도?”
“네, 그런데 이 시간에 있을 줄은 몰랐어요.”
양념 치킨과 후라이드 순살을 양 볼에 하나씩 넣은 리나가 우물우물하며 말했다.
“우리도 너희 노미네이션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거든. 잠시 쉴 겸 해서 야식 시킨 거야.”
“헐, 누나들도 보고 있었어요?”
막내의 말에 리나가 답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 다 보고 있을걸?”
리혁이가 사레가 들렸는지 콜록거렸다.
콜라를 찾는 리혁이에게 중현이가 페트병 주둥이를 입에 쏘옥 꽂아 주었다.
“푸우우웁!”
콜라 분수가 펼쳐지고 여기저기서 ‘야이!’ 하며 불평이 오가는 동안 나머지는 평온한 대화를 이어 갔다.
동갑내기인 리나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이걸 보고 있다고?”
“응. 너희 그래미 노미네이트되는지 확인하고 자겠다는데.”
“……?”
“여기 실시간 댓글창.”
[뉴블랙 그래미 노미 불판] 같은 게시글과 함께 댓글 400개가 달린 커뮤니티 게시글 등이 보인다.
검색해 보니 그런 게시글들이 진짜 여기저기 많다.
-언제 시작하나요?ㅠ
-노미 된 다음에 치킨 시키면 늦을 거같아서 미리 시켰습니다 ㅎㅎㅎ
-족발 시킨 1인
-현직 호프집인데 지금 호프집 스크린으로 미튜브 스트리밍 틀어져 있습니다ㅋㅋㅋㅋㅋ
-아 언제 시작하냐~~~~
-지금부터 스탠스 미리 잡고 갑시다. 노미네이트된다 -> 세계 최고의 권위 있는 시상식 그래미!! // 안 된다 -> 머갈텅텅 백인 꼰머 시상식
-완벽히 이해했다. 상 주면 시발놈 안 주면 그레이트 시발놈인거군요
-아 스탠스 확실하고
와글와글한 댓글들을 바라보면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온 식구들이 모여서 TV를 바라보는 듯한 분위기에 기분 좋게 웃을 때.
‘식구’라는 키워드에 뭔가 떠올랐다.
“아.”
비주와 눈이 딱 마주쳤는데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형, 연습생.”
“우리 연습생들도 데려올까?”
지금쯤 연습실에 있을 우리 꿈나무들을 부르기로 했다.
“근데 누가 가지?”
“그러게요.”
“나는 걔네랑 나이 차이 너무 많이 나서 좀 대하기가 부담스럽더라.”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이런 건 연습생이랑 가장 친한 사람이 가야지~”
“연습생이랑 나이도 가깝구~!”
음식을 입에 잔뜩 문 지호가 형누나들에게 눈을 흘기고는 연습생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들, 강녕하셨습니까!”
뻣뻣한 통나무처럼 통통 튀며 들어온 연습생들에게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천천히 먹어. 천천히.”
“잘 먹겠습니다!”
우리 삐약이들이 퍼덕거리며 치킨을 조심스럽게 음미했다.
스칼렛과 우리가 귀여운 후배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을 때.
복수가 들고 있는 핸드폰이 보였다.
그래미라는 글자가 뜬 것을 바라보며 선배들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너희도 보고 있었어?”
“네. 선배님들 혹시 노미네이트되나 해서요. 그런데 왜… 아! TV로 보고 계셨네요!”
“와! 큰 화면!”
TV를 보며 감탄하는 이들의 모습에 같이 웃고는 치킨 날개를 들었다.
우물우물.
뭔가 3대가 함께 사는 레몬 가족이 TV로 중요한 발표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다.
“어? 시작하나 봐요.”
미튜브 화면 대기창이 그래미 뮤지엄으로 바뀌었다.
그래미 어워즈를 주최하는 레코딩 아카데미의 CEO가 인사말을 하고 후보들을 하나씩 부른다.
베스트 랩 앨범에 콜드 브라운을 시작으로 쭉쭉 이어지는 후보 지명.
10분, 20분, 30분…….
어느새 텅 빈 치킨 박스를 앞에 두고 다들 벽이나 멤버들에게 몸을 기댄 채 하품을 쩍쩍 했다.
혹시나 METRO가 나올 만한 부분에서도 언급이 하나도 없었다.
“사실 우리는 별 기대를 안 해요.”
“맞아.”
“그래미도 뭐 미국 시상식 아니겠어요?”
스칼렛의 메인 보컬 연봄이 히죽 웃으며 물었다.
“신경 안 쓴다고?”
“네.”
뭐가 웃긴지 고개를 돌리고 자기들끼리 웃는데, 우리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후드티나 티셔츠 안으로 무릎을 쏘옥 넣은 채 가오나시처럼 웅크리고 있는 지호와 리혁이.
후드를 뒤집어쓴 채 사과를 10개째 깎은 비주.
젤리 성경을 품에 끌어안은 채 중얼중얼하는 중현이를 비롯해 서로를 바라보며 머쓱한 웃음을 터뜨렸다.
“형은 근데 왜 요가 자세를 하고 있어여?”
“그냥 스트레칭하는 거야.”
“전갈 자세를…?”
“어어, 조용히 해. 나온다!”
바로 그때였다.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입니다.]
TV 속 프레젠터가 후보를 하나씩 부르면서 자막이 떴다.
총 5개 후보.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작년과 올해 노래들이 하나씩 언급이 되는 가운데 다 같이 숨을 죽였다.
[맨디 스파이스와 레지나의 Hold Your Breath.]
세 번째 후보는 싱어송라이터 맨디 스파이스와 디바 레지나의 협업곡.
[더 세일러스의 Strong Enough.]
팝과 락을 주 장르로 하는 밴드가 올해 초에 발표한 인기곡이었다.
지호가 보는 화려한 게임 플레이 영상 등에 자주 깔리는 BGM.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후보를 호명할 차례.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울려댈 때였다.
프레젠터가 마지막 후보를 담담한 목소리로 읊었다.
[헤일리 블루와…….]
‘and’에 동생들과 스칼렛, 연습생들이 단체로 손에 힘을 꾸욱 주었다.
[뉴블랙의 Blue Moon.]
그 순간 스칼렛과 연습생들이 벌떡 일어섰다.
“됐다!”
“우, 우리 레몬 가문이 그래미 후보를 배출했다!”
“선배님들!”
곧바로 베스트 팝 솔로 퍼포먼스로 후보 지명이 넘어가는 동안 연습실은 완벽하게 축제 분위기였다.
“…….”
그 속에서 깔깔 웃는 스칼렛 멤버들에게 짤짤 흔들리며 동생들과 내가 시선을 교환했다.
그래미 후보 지명.
“어…….”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속에서 샘솟기 시작했다.
“얘들아!”
“형!”
“우리… 그래미 간다!”
옆에서 활기찬 얼굴들이 인사를 건넸다.
“축하해!”
“선배님, 축하드려요!”
동생들과 방방 뛰며 즐겁게 웃었다.
분명 수상도 아니고 후보에 선정된 것뿐인데 어째 오늘 밤은 잠을 못 잘 듯싶었다.
* * *
TV 속에서 호명되는 뉴블랙의 이름.
“와아아아아-!”
어느 호프집에 모인 사람들이 맥주잔을 부딪치며 즐겁게 웃었다.
유명 클럽에서도 DJ가 ‘지금 뉴블랙이 그래미 후보에 지명됐대요!’ 하면서 환호 속에 쉑낏쉑낏 하고.
온라인에서도 축포가 쏘아 올려졌다.
-[속보] 뉴블랙, 60회 그래미 시상식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노미네이트
댓글창이 복작거렸다.
-ㅊㅊㅊㅊㅊㅊㅊ
-내가 이거 보려고 잠 안자고 기다렸다ㄹㅇ
-뉴블랙 정말 보기 좋습니다. 응원합니다♡
-대박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역시 세계 최고의 개쩌는 시상식 그래미다운 후보 발표네요^^
-치킨 먹으러 갑니다
-주모 치킨 하나 튀겨줘요
-주모: 내가 먹으려고 튀겼는데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세계 최고의 시상식 그래미!’ 하며 바글바글 거리는 동안.
수플레들은 행복사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진짜 노미니 됐어.’
인피니티 스톤처럼 이로써 미국의 4대 시상식에 모두 참석하게 된 뉴블랙이었다.
그래미는 팬들 사이에서도 ‘설마 될까?’ 했던 부분이었다.
메트로야 일단 8월에 나왔으니 논외고 블루문 같은 경우도 확률이 희박했기 때문이었다.
‘헤일리 블루랑 주최 측이랑 사이가 나빠서 안 될 줄 알았는데.’
물론 수상 확률이야 높지 않다지만 일단 노미니가 어디인가!
새로운 떡밥을 받아 든 수플레들이 고구마에서 흙을 털듯이 호호 불면서 떡밥을 고이 보관했다.
그러면서 일반인들이 펼치는 진풍경을 바라보았다.
[이 시각 이태원 클럽 풍경]
클럽에서 뉴블랙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일반인들이 ‘그래미!’ 하면서 깔깔 웃고.
호프집을 비롯한 24시간 영업장에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영상.
아파트 단지에서도 새벽 프리미어 리그에서 한국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처럼 와아!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면서 전국의 치킨집과 야식 가게의 매출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수플레들이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뭔가 이용당하는 느낌이긴 한데…….’
머글들이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노는데 동원되는 소재가 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국민 아이돌이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다른 아이돌이었으면 이렇게 국민들이 다 같이 보고 그랬을까 싶었으니까.
여기저기서 대중들이 같이 축하해 주는 모습에 수플레들이 웃으며 배달 앱을 켰다.
‘그래. 나도 야식을…….’
하지만 배달앱에 뜬 [지금은 주문이 어려워요]라는 문구.
치킨집과 야식 가게를 살필 때마다 저마다 영업을 안 한다고 되어 있는데, 불과 5분 전만 해도 영업을 하는 곳들이었다.
메뚜기 떼처럼 그들이 먹을 야식을 휩쓸어 간 이들을 보며 수플레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이 빌어머글들!’
그렇게 팬들이 꺼이꺼이 울고 있는 한편.
야심한 새벽에 뉴블랙의 그래미 후보 지명이 발표되면서 기업들이 준비한 이벤트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바람 넣어요!”
“예!”
“배치는 이곳으로 해 주시고요!”
후우우우우우—
바람이 들어가면서 무게추를 단 풍선이 석촌호수의 물 위로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근데 진짜 무섭게 생기긴 했네요.”
“귀여운데 무섭네. 애가 눈에 초점이 없어.”
“물에 놓으니까 크라켄 같네요. 캐리비안 베이의 해적에 나오는 거 같아요.”
뉴블랙 미니미 풍선들과 함께 물 위에서 흐느적거리는 최종보스.
그 뒤에 거대한 타워에서 [뉴블랙 축하해요] 하는 전광판의 빛을 받아 더욱 무시무시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안전모를 쓴 직원들이 땀을 훔쳤다.
“주임님, 그런데 이거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글쎄다. 애기들은 보고 울 것 같은데.”
“…….”
“…….”
둥실-
두둥실-
ƪʃ [ ✪‿✪ ] ƪʃ
2014년의 러버덕으로부터 3년이 지난 후.
석촌호수에 새로운 명물이 둥실둥실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 * *
밤이 지나고 정말 축하 문자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축하해! 얘들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평생 가요, 프로듀싱팀!”
“…….”
“음? 우리 같이 만든 노래로 그래미에 간 거잖아요. 평생 안 가실 건가요?”
열렬하게 눈물까지 흘리며 환호하는 프로듀싱팀을 비롯해 회사 사람들과 축배를 들고.
미국 쪽 에이전시가 보내 준 축하 메시지도 받고.
[어라? 나 왜 노미니 됐지?]
어리둥절해하는 콜라보 파트너와도 축하…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기쁨을 나누었다.
-뉴블랙, 맨디 스파이스 등 ‘2018 그래미 후보 발표’
-[독설하는 기자들] ‘뉴블랙 그래미 후보 지명’.. 수상 확률은 ‘글쎄’
-‘국민 아이돌’ 뉴블랙, 이번엔 2018 그래미 어워즈 간다
지상파 메인 뉴스에도 보도되었다고 하던데.
최근에 MCA에서 대상 3관왕을 했을 때만큼이나 많은 톡과 메시지 등이 핸드폰에 뜬다.
그래서 정말 좋고, 다 좋은데…….
절친들이 보낸 축하 메시지들을 보는 순간 한숨만 나왔다.
이현조 [축하한다]
이현조 [축하 선물로 스타일러 ㄱ?]
스타일러 빌런.
한태현 [축하해. 형]
한태현 [내 고양이 귀엽지]
한태현 [(사진)]
고양이 빌런.
하은성 [ㅊㅋㅊㅋ]
하은성 [병장님 근데 저 안검하수 교정 생각 중인데 어떠심??]
하은성 [이것만 답장하고 차단해 주떼여]
안검하수 빌런.
“안검하수는 뭐야?”
“졸려 보이는 눈이요.”
은성이에게 너의 매력 포인트를 버리지 말라는 조언을 해 주고는 차단했다.
축하 문자를 보내면서 저마다 다 자기 용무가 있는 절친들이었다.
나도 참 친구 복이 없다.
“에잉. 쯧쯧.”
혀를 끌끌 차면서 흥 하자 리혁이가 지호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또 왜 저래?”
“할머님한테 그래미 자랑했는데 안 먹혀서 그래요.”
“아하.”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할머니한테 ‘할머니 나 그래미 간다!’ 하고 외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어리둥절한 표정뿐이었다.
-뭔 애미?
다른 가족들은 ‘이야! 그래미!’ 하는데, 나는 할머니에게 그래미가 어디인지 설명해 줘야 했다.
“아니야.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우리 김덕순 여사 덕분에 내 자의식 과잉을 막을 수 있는 거야.”
연예계 포털 메인.
실시간 검색어.
석촌호수에서 준비했다는 이벤트 등.
여기저기서 대단하다고 띄워 주면서 자아가 좀 비대해질 뻔했는데. 우리 할머니 덕분에 푸시시 식어서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게 다 김덕순 여사의 큰…….
“분하다. 그래도 분해.”
부들부들하는 나에게 동생들이 키득거렸다.
내가 물었다.
“준비는 다 됐어?”
“네!”
오늘은 KMA를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는 날이었다.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실에서 저마다 캐리어를 들고 서 있을 때.
딩동.
“매니저 형들 왔네.”
하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어?”
“……어?”
현관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팅커벨과 같은 반짝임과 함께 너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부처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대표님?”
“잘 잤니? 어제 그래미 노미네이트 정말 축하한다, 핫핫핫!”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대표님이 왜…?’ 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자 박규호 대표님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오늘 너희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어서.”
뭔가 어마어마한 것을 준비해 오신 듯한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