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72화
“뭘 보여 주신다고요?”
우리가 대표님의 등 뒤를 살폈다.
바싹 긴장한 자세로 서 있는 로드 매니저들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저, 대표님.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그야 그렇지. 너희에게 보여 줄 물건이 지금 여기에 없거든. 하하, 조금 이따가 보게 될 거야.”
서프라이즈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우리 메인보컬이 물었다.
“대표님, 지금 말씀하시는 게… 깜짝 놀라거나 그런 건 아니죠?”
“음.”
대표님이 구레나룻 위치를 매만지시며 말했다. 뭔가를 상상하시는지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감돈다.
“깜짝 놀라기는 할 것 같구나.”
“네?”
“동시에 엄청 좋아할 것 같기도 하고.”
“……?”
동생들과 함께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뭔가 어마어마한 것을 준비한 듯 대표님께서 의기양양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뭐, 서프라이즈라는 게 미리 알려 주면 재미가 상하는 법 아니겠니? 하하하!”
대표님이 호탕하게 웃는 동안 우리끼리 서로를 바라보았다.
공항 가는 길.
우리가 깜짝 놀랄 만한 선물.
문득 말도 안 되는 게 떠올라서 농담을 했다.
“혹시 저희 전용기라도 하나 생긴 건가요?”
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핫! 형 우리가 무슨 전용기예여! 말도 안 되… 어?”
“…….”
“대표님?”
“…….”
뚝.
호탕하게 웃던 대표님이 웃음을 멈추더니 시무룩한 얼굴로 바닥을 바라보고 계셨다.
동생들과 내가 눈을 깜빡였다.
‘어라?’
* * *
“저기 저 비행기야.”
서울 김포공항 비즈니스 항공센터.
개인 소유 항공기들이 이착륙을 하는 공항에서 우리가 유리창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우와아아아아…!”
검은색과 흰색으로 도색한 근사한 대형 비행기가 하나 있었다.
비행기 몸체에 ‘강렬고딕 피라루쿠체’로 [뉴블랙]이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 [The New Black]이라고 작게 영문 표기가 되어 있다.
“저게 너희 전용기야.”
“전용기!”
“물론 정확히는 전세기라고 해야겠지.”
“전세기!”
대표님이 웃으며 말했다.
“올해 해외 활동을 하는 너희들을 보면서 무엇을 해 줄까 정말 고민이 많았지. 하하. 내년에도 해외에 나가야 할 일이 많을 텐데. 우리 애들에게 뭘 해 줘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온화한 눈매가 내게 향했다.
“비행에 예민한 우주가 떠오르더구나.”
“아.”
“물론 우주도 우주지만 다들 비행기를 탈 때마다 고생을 어마어마하게 했다고 들었는데.”
박규호 대표님이 우리를 쭉 둘러보았다.
“리혁이는 저번에 달려드는 사람 때문에 팔꿈치에 멍이 들었다고 했고. 비주는 몇 번이고 미아가 될 뻔했다고 하고, 지호도 새로 산 게임기가 부서졌다면서?”
“네. 대표님.”
“맞아요. 완전 새 거였는뎅.”
그런 식으로 사건사고를 언급하던 대표님의 눈이 중현이에게 향했다.
오늘도 건강함과 활력을 뽐내고 있는 고구마 군이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 중현이는…….”
“네. 대표님.”
“그래. 중현이도 많이 힘들었지?”
“어… 네.”
“그래…….”
서로 머쓱해서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에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았다.
대표님이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아무튼 이 문제를 어찌 해결할까, 본부장이랑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다가 저번에 그 이야기가 떠올랐지. 헤일리 블루의 전용기를 탔을 때 엄청 편안하게 갔다면서?”
“네. 맞아요.”
“그래서 우리도 이번에 전세기를 하나 계약하면 어떨까 싶더구나.”
코리아나 항공에서 운영하는 전세기를 앞으로 몇 년간 사용하겠다고 계약을 했다는 모양이다.
“도색은 대표님이 아이디어를 내신 건가요?”
“저건 항공사 측에서 먼저 아이디어를 낸 거야. 뉴블랙 전용기처럼 꾸미면 어떠냐고.”
“오오.”
“좋은 홍보 기회로 여긴 모양이야.”
그래서 저렇게 깔끔하고 근사한 디자인이 나온 거구나.
미국 대통령이 타는 에어포스원을 뉴블랙 버전으로 개량한 듯한 느낌이 드는 디자인이었다.
우리가 대표님에게 꾸벅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
“감사하기는.”
대표님이 손사래를 쳤다.
“너희가 고생한 만큼 돌아오는 건데… 아, 그리고 아마 너희가 비행기를 쓰지 않을 때는 우리 회사 소속 연예인이 쓸 수도 있는데. 그 부분은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구나.”
“당연하죠.”
한류스타 배우들이나 스칼렛 등이 사용할 수도 있다는 말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쯤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한 대표님이 손을 흔들었다.
“이제 비행기가 출발할 시간이 됐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일본에서 무사히 어워드 잘 마치고 돌아오고.”
“네!”
“이건 노파심에서 말하는 것이지만, 이번에 K넷 측에서 도는 소문을 들었는데…….”
연예계에 있는 소식통으로부터 무언가를 들었는지 대표님이 우리에게 말했다.
“어워드 준비가 굉장히 엉망인 모양이야. 일본 자본이랑 깊게 엮인 모양인데 내부적으로도 이에 대해 말이 가득하다고 하니… 수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미리 알아두면 좋겠지.”
진지하게 말하는 대표님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할 때, 대표님이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네?”
“아니다.”
대표님이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건 너희가 어워드를 마치고 돌아오면 얘기해 보자.”
이야기를 한 번 들으면 끝을 보아야 하는 우리 메인보컬의 귀가 쫑긋거린다.
그 모습에 대표님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이야기니까 신경 쓰지 말고.”
“네.”
“그래. 다녀오렴.”
다녀오면 고기 맛있게 구워 주겠다는 말에 와아아! 하면서 다 같이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대표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일본 터뜨리고 올게요!”
뒤에서 ‘그, 그런 건 터뜨리지 말고!’ 하는 대표님에게 다 같이 손을 흔들며 웃어 보였다.
* * *
독자적인 전세기가 생긴 이 기분.
“끝내준다. 끝내줘.”
“너무 좋은데요? 형들, 우리 진작에 전세기 건의할 걸 그랬나 봐요.”
“꿀잠 잤다. 진짜.”
사생 없고.
도촬하는 승객 없고.
기자 없고.
너무나도 편안한 비행에 멤버들과 나는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특히나 나도 이번에 편안하게 비행을 했다.
“나 비행기 공포증이 가짜였나?”
그 동안 비행기를 탈 때마다 막연하게 두려워하고 식은땀을 흘렸던 게 이번에는 하나도 없었다.
리혁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행기보다는 비행기 안전에 대한 공포증이죠.”
“그런가.”
어릴 적에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그랬는데.
리혁이 말대로 크면서부터는 현실적인 걱정 때문에 두려움에 휩싸이긴 했다.
이 비행기가 안전에 대한 정비는 제대로 한 건가?
비행기를 모는 기장과 부기장은 정말 괜찮은 사람들인가?
그런 면에 있어서 이번 전세기는 내 걱정을 모두 안심시켜 주고 있었다.
“대표님이 보내주신 건데 비행기 안전 점검 관련 문서래. 메일로 보내놨으니 한 번 봐봐.”
석환 형이 보내준 문서에서 얼마 전 점검을 통해 비행기 상태가 최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아이고. 이렇게 뉴블랙 분들을 손님으로 모시게 되었네요. 저희 아들과 딸이 팬입니다.”
“저는 제가 팬입니다. 하하!”
파일럿 제복을 입은 온화한 인상의 기장, 부기장님과도 악수를 나누었다.
두 분 다 공군에서 파일럿으로 오랫동안 복무하신 베테랑이라고 하는데,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신뢰가 갔다.
게다가 내부 시설도 어마어마하게 안락했다.
“뒤에 가면 침대도 있어요!”
“냉장고!”
“좌석 진짜 편하다. 이거 사서 프로듀싱팀에 선물할까? 24시간 근무도 가능할 거 같은데…….”
우리 스탭들까지 앉아서 싱글벙글 웃고 있을 만큼 널찍한 공간과 다양하게 구비된 편의시설.
오늘과 같은 단시간 비행이 아닌 장시간 비행에서도 정말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좋다.”
“형들, 저 간만에 비행기에서 내리기 싫은 거 같아요.”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입국 과정이 어마어마하게 빠르다는 점이었다.
“빠르다.”
“어… 뭐였더라. 일본어로 速い 이거 맞죠, 형?”
“응, 그거 맞아.”
심사가 끝난 후에도 얼떨떨한 기분이다.
지금까지 일본 공항들에서 ‘언제 나가면 되나요?’ 하면서 입국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일은 이제 옛말이었다.
빠르게 짐을 챙긴 우리 스탭들과 얼떨떨한 웃음을 교환하고 있을 때.
석환 형이 일본 에이전시 측에서 마중 나온 직원과 함께 핸드폰을 들고 다가왔다.
“VIP 통로로 따로 나갈 수 있다는데 어떻게 할래?”
“그래도 수플레들한테 인사하고 가야지.”
그리하여 하네다 공항에 모인 수플레들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며 입국을 했다.
거기에 일본 매체들도 취재를 나와 있었는데 저번보다 열 배는 되는 인원이었다.
처음에는 어제 그래미 노미니 때문인가 하다가 다른 것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명주 상이 영상으로 여러 메시지를 남겼다고 들었는데요. 일본 팬들에게 남긴 메시지도 있습니까?」
「아들로서 아버지가 20년 만에 다시 개최하는 일본 공연에 대한 소감은 어떠신가요!」
「일본 공연과 관련해서 하시모토 상과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 있나요! 무언가 따로 준비된 이벤트가 있는지…….」
기자들이 쏟아내는 질문을 못 들은 척 넘기면서 ‘사랑합니다~!’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내게 접근하는 기자들을 중현이가 칼차단하며 엄지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이들을 떨쳐내고 버스에 탑승한 후에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어우. 이 날씨에 땀 좀 봐.”
분명 12월의 한겨울인데 현장 열기 때문인지 롱 패딩 사이로 모락모락 김이 솟아올랐다.
머리를 쓸어넘기는 우리 수학귀신에게 말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열기가 대단하네.”
“그만큼 너희 아버님이 일본에서 인기가 어마어마하긴 했으니까. 뭐. 일본 미디어에서 주구장창 얘기를 하기도 했고.”
우리나라는 ‘어머, 선명주가 복귀한대’ 하는 적당히 놀라고 그리워하는 반응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일본은 거의 축제 분위기인 모양이었다.
매일같이 ‘선명주 상의 공연에 대하여 업데이트 사항이…’ 하며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서 보도가 이어지고.
[20여 년 전 세계를 홀린 마성의 천재. 그의 이야기가 오늘 공개된다.]
일본 공영방송에서 ‘아시아의 별 – 전 세계를 울린 천재의 이야기’ 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하고.
-사진 속 우주 씨의 옆에 있는 인물은 말이죠. 뉴욕 시의 존 메이어 시장입니다. 공화당의 대선 주자로 분류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 우측에 있는 인물은 빅터 프랭클린이라는 유명 CEO죠. 그야말로 정재계가 홀릭! 하는 스타인 것이죠.
-이야. 세계적인 클래스네.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에에? 저건 어째서 저렇게 비싼 건가요?
이번에 내가 참석한 모금 파티에 대한 사진들을 전문가를 모아 판독까지 해서 파티장을 모형으로 제작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아시아의 별이 돌아오다!]
미튜브로 공연 예고편을 올린 다음 날에 일본의 주요 조간신문 1면이 이랬다니 말 다했지, 뭐.
솔직히 이걸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뭔가 기…묘하다고 해야 되나.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뭔가 이… 미묘한 게 있었다.
“와.”
핸드폰을 보던 비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버님이 진짜 일본에서 인기가 어마어마했나 봐요.”
“인기가 많기는 했던 것 같아.”
그러나 지금의 인기는 뭔가 인위적으로 더 끌어올린 인기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 조장한 것처럼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
우리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여론 전문가인 우리 TF팀장님이 말을 꺼냈다.
“추측일 뿐이지만, 우리가 판단하기는 이래.”
“뭔데?”
“최근에 너희 빌보드, 그래미 노미니 등의 소식이 뜨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너희는 일본에 빚이 없는 사람이잖아. 여기서 일본어 곡을 내고 활동한 적도 없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아버님은 초창기에 일본에서 도움을 좀 받으셨다고 했고.”
그것도 맞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공연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마침 일본 쪽에서 판로가 뚫렸다고.
“그런 아버지의 공연이 20년 만에 돌아왔는데, 그 아들이 마침 세계적으로 뜨는 가수네? 그렇게 아버지의 공연을 띄워주면…….”
“……?”
“너도 자기들이 띄워준 게 되는 거지. 일본이 재능을 꽃피우게 만든 천재의 아들이 지금 세계적으로 뜨고 있다.”
논리의 전개가 이해가 안 돼서 한참이나 이마를 짚고서야 이해를 했다.
선명주라는 아름다운 나무를 키워낸 일본!
그리고 그 줄기에 피어오른 선우주라는 꽃!
씨앗에 물을 줘서 키워놓은 일본이 없었다면 그 꽃이 피어날 수 있었을까…? 라는 게 논지인 모양이다.
“물론 내 추측이야.”
“아니야. 충분히 일리 있어.”
논리가 말이 된다면 석환 형의 추측을 안 믿었을 텐데, 전혀 말이 안 되니 오히려 믿음이 간다.
그러면 지금의 부자연스러운 흐름도 이해가 가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흘러가니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집요한 이름 하나.
“팀장님.”
막내가 심드렁한 얼굴로 물었다.
“꼭 대답 안 해 주셔도 되는데, 이번에 커트하신 일본 스케줄 중에 그 하쇼몽인가 하는 분 또 있죠?”
“……응.”
“그 이름 뭐였지? 하쇼몽… 라쇼몽 같은 거였는데.”
“하시모토 겐지.”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중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식물 키울 때 달라붙는 진드기 같아요. 그분.”
“진짜 집요하다.”
이쯤이면 떨어져 나가겠지 싶었는데 보면 또 있고, 아 이제 갔구나 싶으면 또 오고.
이제는 미운 정까지 든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아니, 정작 일본 활동은 그리 길지도 않았는데…….”
하도 시끌시끌해서 내가 직접 아빠의 자서전이나 관련 자료들까지 검색해서 알아봤다.
그렇게까지 일본 활동 비중이 컸나 해서.
확인 결과, 팬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긴 하나 이곳에서 오래 상주한 적은 없었다.
대략 초창기의 6개월에서 1년 정도.
그 짧은 시기를 가지고 20년 넘게 저러는 것을 보니 참 대단하다 싶다.
“그렇다면…….”
내가 버스 뒤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것도 다 그걸 취재하러 나온 기자들이겠지?”
“백 프로요.”
일본 방송국 로고를 든 차량들이 따라붙는 것을 바라보면서 동생들과 함께 훈훈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최대한 응대 안 하는 걸로 하자.”
“확인.”
다 같이 커튼을 촥- 펼쳤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본에서의 일정은 꽤나 다이나믹하지 않을까 싶다.
* * *
이번 KMA에 있어 우리는 다른 가수들보다 하루 정도 빨리 입국을 했다.
이번에 아빠의 공연과 관련해서 일본 공연 에이전시 측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할 부분도 있고.
엔딩 무대의 규모가 좀 큰 까닭에 미리 동선을 맞춰야 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었다.
동원되는 댄서들만 50여 명이 넘는 큰 무대.
도쿄도 외곽에 있는 커다란 창고를 하나 빌려 무대와 비슷하게 꾸며놓고 리허설을 반복했다.
“점심은 장어구이 도시락입니다!”
“예이!”
일본의 장어구이 명인이 구워낸 장어 도시락을 비롯해 식사는 대부분 포장을 해서 때웠다.
식사를 하러 갈 때마다 기자들이 어찌나 따라붙던지. 가게까지 따라오려는 것을 보고는 그냥 식사를 포기했다.
그만큼 취재 열기가 어마어마했다.
“이번에만 넘기자. 졸개들아. 어차피 우리 아빠 공연 끝나고 나면 저 중에 90퍼센트는 떨어져 나가니까.”
“사실 저희는 좋아요. 포장해서 먹으니까.”
“포장 최고.”
미안함을 느끼는 나에게 동생들이 괜찮다고 말을 해주는데 왠지 모르게 몽글몽글하다.
“와. 이 사람 감동한 표정 봐요.”
“우린 진짜 그냥 포장이 좋은 건데…….”
와장창 깨지려는 감동을 지키기 위해 동생들의 말을 무시했다.
어쨌거나.
리허설을 수십 번이고 반복을 한 후, 전날 있는 최종 리허설을 위해 KMA가 열리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로 향했다.
“어디 보자.”
공연장에 도착하자마자 큐시트부터 쭉 훑었다.
TJ 엔터의 보이그룹 트릭스터의 오프닝 무대를 시작으로 다양한 K팝 가수들의 라인업이 눈에 띄는 가운데.
K넷에서 초청한 태국의 유명 디바, 중국의 락 밴드, 일본의 단체 아이돌 등도 눈에 띈다.
“유명한 분들이에요?”
“응, 다 노래 들어본 가수들이야. 저기서 저분 태국에서 엄청 유명한데 너희 몰라?”
“저희는 형이 아니어서요…….”
그것을 쭈우욱 지나서 엔딩에 적혀 있는 ‘뉴블랙’ 이라는 글자를 보려고 할 때였다.
중간에 뭔가 이질적인 게 눈에 띈다.
2부의 오프닝 무대.
[Kenta Hashimoto & NORAH]
일본의 여성 솔로 가수와 콜라보를 할 예정이라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이름이 눈에 뜨인다.
“KMA에도 나오시네.”
“성씨가 같은데 아들 분 아니에요?”
“맞아.”
참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나온다.
“우주 형 계속 웃는 거 봐요.”
“저거 좋은 징조 아닌데.”
스탭들과 함께 대기실에 짐을 풀고 드라이 리허설을 하기 위해 무대로 향할 때였다.
꺾어지는 복도로 지나가는데.
방송국 핸디캠을 들고 있는 카메라맨과 함께 누군가가 등장했다.
「어라?」
우연히 나타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싶어 하는 20대 미청년이 불쑥 등장했다.
왠지 모르게 낯이 익다.
아까 큐시트로 본 하시모토 켄타였다.
「여기서 마주치다니. 제가 오늘 쓸 운을 여기에다 다 써 버린 걸까요?」
상대가 치명적인 미소를 지었다.
일본어로도 국어책 대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리혁이가 팔에 돋은 닭살을 비비는 걸 볼 때.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하시모토 켄타라고 합니다. 미약하지만 일본의 신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죠.」
「그렇군요.」
카메라를 의식해서 딱 적절한 수준의 정중함을 담아 인사했다.
「선우주입니다.」
「항상 소문으로만 듣다가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되니 참 신기하네요. 이게 바로 운명인 걸까요?」
「….」
견디지 못한 지호가 헛숨을 삼켰다.
중현이가 콧김을 후우웁 뿜으며 먼 곳을 바라보고, 비주가 뒤로 돌린 자기 팔을 꼬집으며 웃음을 꾹 참을 때.
「우주 씨를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네?」
하시모토 켄타가 뭔가 비장의 말을 준비한 것처럼 숨을 들이켰다.
안 좋은 예감에 머리털이 쭈뼛 솟는다.
뭐야.
또 뭐.
뭘 말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하지 마…. 아니, 진짜로…….
이런 거 흑역사 된단 말이야. 내가 해 봐서 알아.
하지만 그런 애타는 눈빛에도 불구하고 내 진심 어린 메시지는 뿅- 하고 상대의 스팸메일함으로 들어갔다.
「부탁드려요.」
하시모토 켄타가 차렷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들처럼 우리도 선의의 경쟁을 해 봐요.」
「…….」
무언가 반응을 기대하는 듯 초롱초롱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와 옆에 있는 카메라 렌즈.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히끅…!”
웃음을 참다가 나온 딸꾹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