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74화
무대 아래서 김중현은 스트레칭을 했다.
“으으음.”
기지개를 쭉 켜서 어깨 근육을 풀어 주고, 다리를 뒤로 잡아당겨 허벅지 앞쪽도 뻐근하게 풀어 주고.
육상 경기를 앞둔 선수처럼 느긋하게 체조를 이어 갔다.
‘생각만큼 떨리진 않네.’
처음으로 서는 어워즈 단독 무대였다.
그래서 많이 긴장하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막상 무대를 앞두고도 마음은 편안했다.
강인한 눈매의 청년이 주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훑었다.
“음…….”
흰 맨투맨에 검은색 항공점퍼.
가죽바지.
코끝에 선글라스를 반쯤 걸친 모습이 다른 보통의 래퍼들처럼 보이는 모양새였다.
손가락에 걸고 있는 반지들의 개수도 정확하다.
‘문제없고.’
귀에 꽂은 인이어의 수신 감도를 체크하고는 허리춤에 있는 마이크팩을 다시 한번 고정했다.
‘인이어도 체크.’
경력이 좀 쌓이니 이제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 무엇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일종의 루틴이 생겼다.
“기분이 어때?”
그의 옆에 서 있던 매니저 도원석이 웃으며 물었다.
“떨려?”
“벼를 수확하는 기분이에요.”
“…….”
중현이 동글동글한 미소를 지었다.
“1년 농사를 지으면서 열심히 키운 벼를 이제야 마침내 수확하는 그런 느낌이네요.”
중현이 손에 쥔 마이크를 볼펜처럼 빙글빙글 돌렸다.
“바이브라는 곡을 부르는 첫 무대잖아요.”
“그렇지.”
“차트에 노래가 올라간 걸 계속 보기는 했는데, 직접 무대를 한다니까 이제야 좀 실감이 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빙글빙글 돌아가던 마이크가 손에 착 안착했다.
“잘해야죠.”
푸근하게 웃던 눈이 원래의 선명한 눈매로 돌아갔다.
웃고 있을 때는 인심 좋은 농부처럼 보이지만 말이 없을 때는 서늘한 인상을 풍기는 뉴블랙의 래퍼.
무대를 앞두고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모습에 매니저들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중현 씨, 이제 올라갈 준비할게요!”
스탭의 말에 중현이 리프트 위로 올라가 쪼그려 앉았다.
뻥 뚫린 구멍으로 시원한 바람과 관객들이 쏟아 내는 열기가 섞여 들어온다.
박수.
환호성.
무한히 빛나는 응원봉의 은하수.
그 속에서 중현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숨결과 목소리를 느꼈다. 그리고 엉뚱한 무언가를 떠올렸다.
‘불빛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올라간 선산에서 보았던 반딧불이들이 떠오른다.
여름철 매미와 맹꽁이들이 울음소리를 낼 동안 빛을 내며 그들의 연주를 듣던 반딧불이들.
그런 반딧불이들처럼 공연장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딱히 흥을 돋울 필요도 없이 온전한 행복감이 그의 마음속에 가득해졌다.
“올라갑니다!”
덜컹- 하면서 올라가는 리프트 위에서 중현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떨린다, 진동하다는 뜻에서 따온 단어 바이브.
목소리도 성대의 떨림.
바닷물이 부딪쳐서 자갈들이 일으키는 소리도 떨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소리도 떨림.
세상의 모든 것은 저마다의 떨림으로 자기 자신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금만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 모두 서로에게 더욱 진실된 소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VIBE는 그런 마음으로 쓴 곡이었다.
[여러분.]
그러하기에 중현은 마이크를 들어 또박또박한 한국어로 관객들에게 첫 인사를 했다.
조금은 흥겹고, 리듬감 있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밤새워 고민한 인사말을 전했다.
* * *
어두운 공연장.
무대가 밝아지면서 수만 개의 응원봉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현이다!’
그리고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가수의 첫 인사는 그들의 예상과 조금 달랐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래퍼들 특유의 ‘Yeah’ 같은 추임새나 ‘What’s up, Japan!’ 등이 아닌 또박또박한 한국어 인사.
그런데도 어떠한 랩보다 더 운율감 있는 느낌이었다.
환호성 속에서 돌출무대로 걸어 나오는 중현의 모습에 맞춰 전주가 시작됐다.
“와아아아아아아-!”
K넷의 중계 카메라가 울부짖는 어느 일본의 팬을 잡고, 달봉이를 마구 흔드는 이들의 장면을 보여 줄 때.
댄서들과 함께 돌출무대로 나온 중현의 얼굴이 희게 빛났다.
이윽고 마이크 위로 입술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아름다운 밤
너를 품은 별이
날 비쳐줘 환히
어딘가 감성적인 분위기의 멜로디에 수플레들이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새겼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별빛이다!’
뉴블랙의 첫 번째 팬송이었던 별빛에서 응용한 비트였다.
댄서들이 부드럽게 안무를 추고 있는 동안, 허공에 손을 부드럽게 휘저은 중현이 손을 뻗었다.
별을 움켜쥘 듯이.
너의 이름은
햇살이었다가도 별빛이 되지
어쩌면 달빛
언젠가는 노을
자신을 비추는 다양한 빛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현이었다.
그것이 다양한 팬들을 의미하는 것인지, 언젠가는 별빛이나 달빛이 아닌 저무는 노을이 될 것을 의미하는 변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뉴블랙의 래퍼가 첫 도입부로 그들의 팬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건 여기 있는 너희 모두를 위한 노래야 하듯 웃어 주던 도입부가 끝나면서 암전되는 조명.
[ Sweet Potato | VIBE ]
TV 화면에 그런 자막이 떠오르는 동안.
무대 위에서는 의자에 앉아 있는 중현의 얼굴 위로 하이라이트 조명이 떨어지고 있었다.
감각적인 도입부와 함께 뒤편에 도열한 댄서들이 그루브한 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드는 중현.
오르고 내리고
누르고 또 누르고
우리 대화는 늘 그런 식이었네
살짝 지친 듯 음영이 진 얼굴 아래로 입술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가만 보면
너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었지
너의 호흡
너의 떨림
호흡. 떨림. 그런 단어들이 하나하나 귀에 쏙쏙 들어왔다.
꼭 낱말로 된 시리얼을 들이켜는 것과 같은 느낌.
‘중현이는 진짜 가사가 다 들려.’
다른 래퍼들과 다르게 일부러 부드러운 가사 위주로 부르는 게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빼어난 전달력.
가사 전달력이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 뉴블랙에서도 김중현은 발군으로 꼽히는 멤버였다.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다면 평범했을 문장이 중현의 입에서 흘러나오면 그림이나 이미지로 변해서 나오는 느낌.
실시간으로 TV로 보고 있던 무수히 많은 가정에서도 그에 공감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요즘 가수들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중현이 쟤는 뭐라고 하는지 쏙쏙 들어오네.”
“가사가 여자 친구한테 말하는 것 같은데 중현이 쟤 연애하냐? 아, 왜 넌 아빠한테 화를 내고 그러냐.”
“저러니까 염소가 말을 잘 듣지. 사람도 이렇게 말이 잘 들리는데.”
그러면서 차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1위 곡에 대해서도 호평이 나오고 있었다.
“노래가 좋네.”
“연애하다가 이제 내가 잘못했소 하는 노래구만.”
하지만 어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과 달리 아이돌 팬들은 웃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하인드를 몰랐더라면…….’
얼마 전에 바이럴처럼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돌았던 의 비하인드였다.
틴스피릿이 선물로 사준 안마의자 위에서 달달달 떨다가 오오오 어어어 하면서 노래가 나왔다고.
-맨인블랙 기계로 기억 지우실 분 (1/100)
-자꾸 중현이가 진지하게 표정 연기할 때마다 안마의자 떠올라서 웃참 챌린지중ㅋㅋㅋ큐ㅠㅠ..
-근데 뭘 선물로 사줬어도 진짜 독특한 것들 나왔을 거 같음
-ㄹㅇ 세탁기 샀으면 탈쑤! 하는 국악랩 나왔따
-탈쑤ㅅㅂ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노래 또 좋긴 좋다ㅠㅠㅠ
-이럴 땐 머글이 부럽다.. 걔넨 모르고 듣자나
아이돌 팬들은 필사적으로 ‘안마의자 아니다… 아니야….’ 하면서 노래에 집중을 하려고 애쓰는 한편.
출퇴근길이나 이동하는 동안 가볍게 를 들었던 일반인들은 중현의 노래를 마음 편히 즐기는 중이었다.
-바이브 노래 좋네요
-지금 KMA 보는데 뉴블랙 무대합니다
-중현이 선글라스 브랜드 아시는 분?? 와이프가 저 사주겠다네요 ㅎㅎ
┕(날아라 슈퍼보드의 저팔계 짤.jpg) 님이 쓰면 이거일 텐데요
┕윗분 어디 사시나요?
-노래 좋네요. 대학시절 연애 떠오릅니다 ㅋ.ㅋ
그런 식으로 무대에 대해 호평이 나오는 가운데.
댄서들과 함께 돌출 무대에 나와 있던 중현이 느긋한 걸음으로 가수석을 향해 다가갔다.
“와아아아아아아!”
가수석에서 일어나서 환호를 해 주는 가수들.
의 그루비한 리듬에 맞춰 틴스피릿이 리듬을 타고, 스트릿 보이즈의 랩 라인이 ‘Yeah!’ 하면서 중현에게 양손을 흔들었다.
반겨 주는 스칼렛 멤버들을 지나 중현이 누군가의 옆에 앉았다.
어쩌면 내 잘못은 아니었을까
귀를 기울이지 못한 건
그저 들리는 것만이 전부라 생각한
내 잘못은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한 가사.
자신의 동갑내기 친구 옆에 털썩 앉은 중현이 비주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 웃었다.
그러자 비주가 웃으며 응수했다.
뉴블랙의 막내 라인이 자기들끼리 손뼉을 짝짝짝 마주치며 깔깔거리고, 리더가 우정을 응원한다며 꽃가루를 날리는 손짓을 할 때.
생각해 보면 말이야
씩 웃은 중현이 다시금 일어났다.
대망의 후렴구.
댄서들과 돌출무대에서 합류한 중현이 후렴을 불렀다.
V-I-B-E
모든 곳에 너의
V-I-B-E
목소리가 가득해
‘비-아이-비-이’ 하는 후렴구가 흘러나오면서 가수석에 있는 이들이 카메라를 보며 따라 불렀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성공적으로 끝난 중현의 솔로 무대.
팬들과 가수들 모두 좋은 무대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카메라 앞에서 장단을 맞춰 주던 누군가가 서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흐하하!”
“비주 형 표정 봐요!”
“……없애 버릴 거야. 김중현.”
앞으로 중현이 먹을 밥에 먹구름이 끼는 순간이었다.
* * *
뉴블랙의 래퍼가 무대를 마치고 내려간 후.
일본의 유명 락 밴드의 무대가 끝나고, 1부 엔딩 무대인 스칼렛의 이 흘러나왔다.
신인 작곡가 김덕춘이 자신의 곡에 감격해하는 물개 박수를 치고 주변에서 뒤집어져서 웃는 장면이 지나간 후.
스칼렛의 리나가 핑크빛 조명 아래 고혹적인 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무대가 암전됐다.
[잠시 후 2부가 시작됩니다!]
동시에 방금 전까지 스칼렛 멤버들의 무대와 미모를 찬양하던 가수 팬들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미모에 취해 ‘헤헷, 존예….’ 하다가 광고가 뜨면서 본래 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다 ㅈ같아서 뭐라고 해야될지 모르겟음
-이럴 거면 니혼뮤직어워즈를해 개새끼들아
-개: 에반데
-ㅅㅂㅋㅋㅋㅋ 표팔이는 뉴틴스로 존나게해 놓고 일본 가수 라인업 뭐임??
-요새 예능으로도 일본 관광 홍보 엄청 때리던데; 자본 오지게 들어오긴 했나 봄
-이야 잽머니 달달하다~~
어워즈의 주최 측인 K넷을 향해 쏟아지는 분노들이었다.
뜬금포 일본 가수와의 콜라보.
이상한 VCR.
자꾸만 중계 화면에 비추는 일본 가수들.
물론, 객관적으로 일본과의 협력이나 일본 가수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의 K넷 뮤직 어워즈에 MSG 첨가하듯 조금 들어갔는데… 문제는 파무침에 들어간 식초처럼 여기저기 버무려진 느낌.
당연히 파만 먹고 싶었던 이들은 부들부들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이이이!’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2부의 오프닝 무대가 공개되면서 피아니스트 하시모토 켄타와 일본의 솔로 가수가 듀엣을 하고 있었다.
‘잘생겼네?’
미남이라면 일단 파고 보는 이들이 젓가락을 길게 들듯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찍먹.
곧바로 검색창에 뜬 ‘하시모토 켄타’ 아래로 여러 게시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핫핫핫 작위적인 웃음과 이상한 멘트.
찍어 먹어 본 팬들이 추르릅 뱉었다.
‘퉤.’
괴식가 성향을 가진 팬들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동안.
방금 전까지 리젠 속도가 빨랐던 게시판에서 글 개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몇몇 팬들이 두려움을 느꼈다.
‘실시간 글이 잘 안 올라오네.’
게시판에서 실시간으로 불판을 달리던 이들이 글을 안 쓰고 있었다.
그 말인즉, 수플레로 추정되는 이들이 마음에 안 드는 상황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다는 뜻이었다.
‘왜 그러지?’
그런 이들에게 설명해 주듯 SNS 상에서 ‘하시모토 겐지’라는 저 피아니스트의 부친이 벌인 언행이 요약되어 올라왔다.
라이벌 행세.
선명주에 대한 발언 등등.
그런 글들을 보며 왜 뉴블랙의 팬들이 저런 뾰로통한 반응을 보이는지 납득이 갔다.
동시에 공포스럽기도 했다.
‘와. 개쫄렸네.’
게시판에 글들이 폭주할 때도 무섭지만 동시에 썰물처럼 싸아악- 빠져나갈 때도 무서운 법이었다.
지금까지 어느 정도인지 추정만 하고 있던 숫자가 실체로 드러나는 때였으니까.
이거 잘못 건드리면 우리가 조져지겠구나! 핫핫! 하는 느낌이 들었다.
‘……잘해 줘야지.’
최근 들어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이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바보라는 사실을 깨달은 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1부의 중현이 무대에 이어서 2부에서는 리혁이의 독무대가 있었다.
최근 들어 종영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인기 드라마 <나의 곰과 호랑이>의 메인 OST를 부르고.
OST 업계의 왕이라고 불리는 발라드 가수 차우현과 유명 드라마 OST 메들리를 불렀다.
한류 팬들이 많은지 현장 관객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었다.
“나 오늘 좀 잘한 거 같아요.”
2부가 끝나고 우리 두루미가 상기된 얼굴로 퍼덕거렸다.
“객관적으로 목 상태도 좀 좋았던 것 같고… 후렴 부를 때 딱 잘 터진 거 같거든요. 차우현 선배도 내려오자마자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인다고 칭찬해 주던데요? 스탭 분들도 박수 치고.”
칭찬을 갈구하는 눈빛에 핸드폰으로 리혁이 전용 칭찬 메들리를 들려주었다.
[아~ 장하다~ 장해~]
[동네 사람들 우리 메인 보컬 보소~!]
막내와 내가 흥겹게 주고받는 멜로디를 들은 리혁이가 사이좋게 우리의 등짝을 때렸다.
하지만 손을 부여잡는 우리 메인 보컬.
“악!”
“이럴 줄 알고 오늘 등짝에 비즈 많은 옷을 입었지롱.”
물론 이것도 곧 갈아입어야 하지만 말이야.
몸을 푸는 우리 근처에서 스탭들이 다다다 뛰어다녔다.
“의상! 의상 그거 아니라니까!”
“거기 비켜요!”
“예? 멤버들 언제 올라가야 된다고요?”
3부 오프닝이 나오는 동안 우리는 대기실에서 세팅을 마치고 의상을 갈아입었다.
망고 때와 마찬가지로 엔딩 무대라 준비할 게 많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스프레이를 가득 뿌려 정돈하고, 의상에 문제는 없는지 두 번, 세 번 체크하고.
댄서. 의상. 헤어. 메이크업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치열하게 움직이는 곳에서 우리도 공연에 올라갈 막바지 준비를 마쳤다.
비주가 물었다.
“준비됐어요. 형?”
“응.”
첫 번째 무대는 내 단독 무대였다.
워낙에 무대가 길어서 단독 무대로 중간중간 체력을 안배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준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번 KMA에서 내 단독 무대는 특별히 기획한 목적이 있었다.
‘이슈에는 더 큰 이슈로 대응한다.’
자꾸만 아빠와 하시모토 겐지를 라이벌 관계라며 엮는 것도 그렇고.
외국에서 활동을 하는 우리에게 찐득하게 달라붙으며 자국과의 접점을 만들려고 하는 일본의 미디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뭐, 이런다고 안 그럴 것 같지는 않다만…….”
“그렇긴 하죠.”
“겸사겸사 아빠 공연 홍보도 하고 좋지. 뭐.”
긍정적인 마인드를 탑재하고는 대기실 복도를 걸어가 외딴 방의 문을 열었다.
무대로 올라가기 전.
오늘 나의 첫 단독 무대를 함께 해 줄 게스트의 컨디션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 * *
일본의 지상파 채널.
‘K-net Music Awards’라는 타이틀이 우측 상단에 떠오른 가운데.
대중음악 평론가, 유명 작곡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패널들이 시상식 코멘터리를 하고 있었다.
[틴스피릿의 무대네요. 일본에서 현재 대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이죠.]
[소년미가 넘치는군요.]
카지노를 컨셉으로 하는 틴스피릿의 무대가 끝나고 나오는 코멘트.
[확실히 한국 아이돌들은 콘셉트의 제한이 없다고 할까요? 어려 보이는 친구들에게 성숙한 컨셉도 시키네요. 일본과 이런 면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저긴 멤버들 대다수가 성인입니다.]
[아.]
진짜 전문가 한 명이 환장해서 가슴을 치고, 나머지 패널들이 환장의 대잔치를 벌이는 중계였다.
잘못된 정보가 속출하고.
일본의 K팝 팬들이 ‘코이츠.. 용케 그딴 지식으로 업계에 있군’ 하는 멘션을 올리고 있는 한편.
현재까지 패널들의 심사는 꼬일 대로 꼬인 상황이었다.
[뭐. 확실히 뭔가 차이점은 보이네요.]
객관적으로 봐도 한국 가수들의 실력이 많이 발전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K팝이 어떤 부분에서는 앞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J팝이 음악의 다양성을 추구하며 발전해 왔다면… 한국은 과거 J팝의 인기 요소를 계승해 아이돌 위주의 상업적인 성장을 한 것 같습니다.]
‘아이돌이 전부네!’ 하다가 래퍼나 인디 가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귀신같이 조용해지는 패널들.
그와 더불어 중계를 이끌어 낸 방송국 측도 불만이 가득했다.
‘우리 측 비중이 많다더니 사기 당했군.’
시청자들과 자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탄 K넷이 양쪽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와 별개로 시청률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우선적으로 방송국이 아시아 최대의 음악 시상식이 일본에서 열린다고 어마어마하게 홍보를 하기도 했고.
요즘 연예계 소식을 접수하고 있는 뉴블랙이 나온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 트위터가 시끌시끌하네.”
“아시아의 어마어마한 시상식이 일본에서 열린다잖아요. 뉴블랙도 나온다던데요.”
“아아, 뉴블랙…….”
일본의 포털 댓글창에서는 일부 네티즌들이 ‘나라가 망한다…!’ 하며 오열하고.
SNS에서는 아이돌 팬들이 ‘가수들 무대할 때 코멘트 좀 닥쳐!’ 하며 여기저기서 시끌벅적할 때.
[드디어, 그 시간인가요.]
패널들의 목소리가 진중해지면서 시청률이 더욱 뛰기 시작했다.
소문만 무성한 뉴블랙의 무대.
미튜브만 검색해도 바로 무대들이 줄줄이 나온다지만, 실제로 뉴블랙의 무대를 검색해서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서도 단신으로 짤막하게 자료 화면만 지나가고.
심지어 거기서도 무대 음악이 아닌 성우의 발랄한 ‘세계적인 슈퍼 인기스타 뉴블랙!’ 하는 내레이션이 깔리는 정도.
‘무대는 처음 보네.’
일본의 시청자들이 TV 볼륨을 한 단 두 단 올렸다.
[소문이 무성한 뉴블랙의 무대네요. 하시모토 상 기분이 어떠신가요?]
[기대가 되는군요. 어느 정도인지 한 번 지켜보고 싶은 기분입니다.]
패널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TV 속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수플레사우루스가 강림한 듯한 함성.
그러면서 암전된 무대에 깔리는 자막.
[ 선명주 | That’s Not Me ]
아버지의 작곡에 아들이 편곡자로 들어간 곡.
어둠 속에서 우주로 보이는 실루엣이 그랜드 피아노를 차분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오. 재즈를 연주하네요.]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피아노 연주를 하는 아이돌.
패널 하나가 신이 나서 물었다.
[하시모토 상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확실히 조금 미흡한 부분이 보이긴 하는군요.]
실력에 대해 코멘트를 이어 가려던 그 순간.
무대가 밝아 오르면서 카메라가 전환됐다.
그런데 분명 피아노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우주가 전혀 다른 곳에서 등장을 하고 있었다.
[……?]
패널들의 말소리가 작아질 때.
조명이 밝아 오르며 피아노를 치고 있던 인물의 실루엣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금발 아래 미형의 외모를 지닌 프랑스인.
폴 로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 중 하나이자 일본 음악계가 선망하는 클래식 아티스트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
TV 속에서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