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76화
올해의 앨범상 시상자를 소개하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Album of the Year! Your presenter….]
시상자로 붉은 드레스를 입은 배우가 걸어 나왔다.
올해 부마 항쟁을 다룬 영화에서 열연을 펼쳐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여은선이었다.
-안녕하세요. 여은선입니다.
청초한 이목구비의 배우가 자기소개를 하고는 큐 카드에 있는 멘트를 읽어 내렸다.
곧이어 나오는 후보 소개.
스트릿 보이즈, 틴스피릿, 세레니티 등의 앨범과 함께 우리 앨범이 소개되면서 환호가 터졌다.
“…….”
망고에서 나름 수상을 직감했던 것과 다르게 이번 앨범상은 정말 잘 모르겠다.
성적으로만 따지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앨범상을 타지 않을까 싶긴 한데… 방금 전 노래상의 임팩트가 어마어마해서.
-네.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시상자가 봉투를 톡 뜯었다.
동생들의 동공이 확장되는 게 보일 때, 봉투 안을 들여다보던 시상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분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어 영광이네요.
그 순간.
수플레들의 비명이 터졌다.
-축하드립니다. 뉴블랙.
동시에 동생들과 내가 벌떡 일어나 서로를 안았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안도감과 기쁨이 얽혀들면서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축하해.”
트릭스터, 한태현, 스트릿 보이즈, 틴스피릿 등이 건네주는 인사에 웃어 주고는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바짝 긴장했던 것 때문인지 다리에 힘이 살짝 풀리는 기분. 혀도 살짝 꼬이는 느낌이다.
시상자가 건네주는 트로피를 받아 들고는 무대 중앙에 섰다.
“축하드립니다. 팬이에요.”
“감사합니다.”
비주, 리혁이, 지호, 중현이.
뒤편에 서 있는 동생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고는 중현이와 마지막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곤 마이크에다 입을 가져다댔다.
-일단… 정말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자합니다.
갑자기 뒤에 서 있던 동생들과 드레스를 입은 배우가 큐카드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뒤를 돌아보고는 객석에서 웃는 수플레들을 바라보았다.
-제가 혹시 뭐라고 했나요?
* * *
‘역시 선우주다.’
소감 시작부터 말실수를 내뱉은 최애의 모습에 수플레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실시간으로 폭발하기 시작하는 드립들.
-감자하다 [동사] 1. 몹시 고맙게 여기다 2. ‘감사하다’의 잘못
-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넘어가면 자연스러웠을 텐데 꼭 확인해서 화를 자초하는 저 허술함이 참 좋음
-초심을 되찾았구나 선우주
-중현이 얼굴 보다가 저랫나 본뎈ㅋㅋㅋ
-이거 마따ㅋㅋㅋ
-중현이 좋아하는 거 봐ㅋㅋㅋㅋㅋㅋ
-중현이는 원래 야채 이름만 들어도 다좋아해ㅋㅋㅋ
-와이앱 피셜) 어머님이 태교로 야채 동화 읽어 줬다고 함
화면 속에서 우주가 머쓱한 얼굴로 헛기침을 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소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올해의 가수상.
[축하드립니다! 뉴블랙!]
올해의 앨범상에 이어서 올해의 가수상까지 뉴블랙이 2관왕을 차지하면서 시상식은 마무리됐다.
-[속보] 뉴블랙 오늘 KMA 대상 ‘2관왕’
-‘대상 2관왕’ 뉴블랙 “감자합니다”.. 수플레 “우리도 감자해”
-2017 KMA in 재팬, ‘이변은 없었다’.. 뉴블랙 대상 2관왕
속속들이 연예계 뉴스 소식이 보도되고 트위터의 실시간 순위에 ‘뉴블랙 감자해’가 올라오는 한편.
어워즈가 끝나기 무섭게 아이돌과 관련된 게시판, SNS의 모든 곳이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노래상 때문이었다.
-양심 존나 없다ㅋㅋㅋㅋㅋㅋ시발
-연간 60위권 노래가 노래상ㅋㅋㅋㅋㅋ 개콘이 여기 있네
-새삼ㅋㅋㅋ 다들 케마 올해 처음 봤니?
-(심사기준 채점표.jpg) 사실 말이 안 되는 건 아님. 다른 그룹들 점수 0점 주고 몰아주면 가능함
-ㅇㅏ 솔직히 이건 아니잖아
-기준이나 보고 설쳐ㅋㅋㅋ 받을 만해서 받은 건데 알못들이 존나 나대네ㅠ
-저기 미안한데 너가 제일 부들대는 거 같아ㅋ
-저런 애들이 지 가수 욕먹이는 거임ㅋㅋㅋ
-케이넷 새끼들 다 승진 근무평정 매긴다음에 마지막에 심사위원 점수로 뒤집어야 함
쟁쟁한 후보들을 이기고 가장 하위권이었던 원더 차일드의 노래상 수상.
아이돌 팬들 입장에서 정말 뜬금없다는 말이 나오는 수상에 곧이어 누군가 글을 올렸다.
[내년도 케이넷과 오디션 프로 협업한다는 KM]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K넷 측에서 자신들과 내년에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획사에게 선물을 안겨 준 모양이었다.
-이 새끼들 진짜 노림수가 존나게 얄팍해서 더 빡침ㅋㅋㅋㅋ
-마지막까지 간 존나 본 것 같음ㅋㅋㅋㅋ 각 안 나오니까 노래상만 건드리고 놔둔듯
-ㄹㅇ 머글들은 뉴블랙 2관왕 했다고 하면 오 하고 넘어가니까
-HBS꼴날까 봐 눈치 오지게 봤네
누가 봐도 올해의 가수라고 할 만한 뉴블랙에게 2관왕을 적당히 안겨줘서 머글들을 막은 다음.
성적이 확고해서 건드리기 힘든 앨범상 대신에 만만한 노래상의 채점을 건드린 것이다.
정말이지 다양한 아이돌 팬들을 열 받게 하는 수상 결과였다.
우선 성적만 따지면 3관왕을 했어도 무방했던 뉴블랙의 팬들.
-올해 애들 예능도 적게 뛰고 거의 음악활동만했는데ㅋㅋㅋ 이 커리어로도 대상 3관왕 안 되면 이게 뭐임??
-이 새끼들한테 3관왕은 뭐 화성 콘서트해야 주는 거냐
-우리 애들 국민아이돌이라 2관왕이라도 한 거지,, 다른 중소였으면 걍 1관왕이었음
-올해 보다 어케 더 커하 찍으라고ㅋㅋㅋ
2관왕을 한 수플레들은 그나마 온건한 반응이었다.
‘원차한테 줄 거면 나나 주지.’
‘어이없네.’
무슨무슨 아이콘상, 슈퍼스타 페이보릿 상 같은 것만 잔뜩 안아 들고 온 스트릿 보이즈와 틴스피릿 등의 팬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활활 타오르고 있는 건 세레니티의 팬들이었다.
-여돌 살려 ㅅㅂ놈들아
-작년에도 망고때도 그지랄하더니 트라우마 도진다 싯팔
-쌍놈새끼들아
-파티걸 놔두고 하반기에 나온 캔디러브 올릴때부터 알아봄ㅋㅋㅋㅋ 이걸 엿 먹이네
-코인이 탔으면 그냥 그러려니라도 하지 진짜
-민오는 강민이한테 또 상 뺏겼니
-mop 말만 4대지 존나 부실함ㅋㅋㅋㅋ 박규호랑 박민오 트레이드해야됨
-근데 거긴 규호가 아니라 뉴블이 개쩌는 거자나ㅜ
-덕질 참 험난하다.. 세상이 왜 이러냐 정말 나 너무 속상하다
-힘내 (토닥토닥)
그러나 이런 공격을 받고 있는 원더 차일드의 팬덤은 환장할 따름이었다.
‘아, 이거 어떡하냐.’
‘우리도 왜 받았는지 잘 모른다고!’
실드 댓글을 달기도 힘들 만큼 거센 공격.
데뷔 이후 최고의 고난이었지만 그나마 지금은 차라리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진짜 아까는 우리 애들 죽는 줄 알았다.’
노래상과 앨범상 사이의 딱 5분.
그 짧은 시간 동안 수플레들의 살벌한 반응에 덕질 인생 최고의 위기를 맞이한 팬들이었다.
원더 차일드가 누구인가?
뉴블랙 휘하에서 스보, 틴스와 삼강 구도를 이루고 있는 보이그룹의 한 축이다.
경쟁자인 틴스나 스보는 물론이고, 세레니티 같은 원탑 걸그룹도 우스울 만큼 강한 화력을 지닌 팬덤.
게다가 오디션 출신이라 남부럽지 않은 대중성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뉴블랙 앞에선 이야기가 달랐다.
‘……아 시발. 손 떨려.’
댓글을 치려고 하는데도 손가락이 달달 떨린다.
SNS.
아이돌 커뮤니티.
5분 동안 수천 개의 트윗, 커뮤니티 게시판 페이지가 100개를 넘어간 것을 보며 원더 차일드의 팬덤이 멍한 기분을 느꼈다.
‘이건 상대 자체가 안 되잖아.’
노래상이 발표됐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두렵지는 않았다.
수상 결과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반박 댓글을 달거나 나대는 이들도 있었을 정도.
-우리 이제 1군 아님?ㅋㅋ 무서울 게 뭐 있음
-야 쫄지마
-노래상 주는 대로 받았는데 뭐 어쩌실?
-ㅋㅋㅋㅋ 억울하면 니들도 노래상 받든가~
-응 느그 아이돌이 좋아하는 국민들한테 가서 상이나 받으세요
맨날 히히덕거리기만 하는 뉴블랙네 팬들이 뭐가 무섭나.
다른 팬들이 ‘하지 마, 하지 마’ 하는데도 기어이 가서 짱구처럼 엉덩이춤을 추는 일부 팬들.
그것이 화근이었다.
곧바로 과거 텐틴뉴로 경쟁하던 시절의 버릇이 나온 수플레들이 폭주하면서 팬들이 비명을 질렀다.
쏟아지는 게시글들.
인터넷 곳곳에서 그들이 쉬쉬하던 온갖 것들이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기 시작했다.
‘왜 자극하냐고!’
‘저기에 맞으면 뒤진다. 진짜…….’
‘저 새끼들 우리 팬은 맞아?’
정말이지 이러다 우리 죽겠다 싶은 반응.
오죽하면 ‘쥐 잡듯이 다른 팬덤을 잡네~’ 하며 비아냥거릴 안티들조차 지금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조용히 있었다.
그랬기에 원차의 대다수 팬들은 누구보다 뉴블랙의 2관왕을 반겼다.
‘……2관왕 해서 다행이다.’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긴 했지만, 앨범상과 가수상의 수상 이후에 수플레들이 비교적 유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휴.”
원더 차일드의 팬들이 겨우 숨을 골랐다.
‘그래도 이 정도면 일주일 정도만 견디면 된다. 그 이후에는 좀 잠잠해질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띠링!
새로운 장작이 업로드됐다.
-[공식] K넷, 원더 차일드 수상논란에 “공정한 기준에 의거하여 심사.. 논란 이해 안 돼”
‘개새끼들아! 우리 죽는다고!’
원더 차일드의 팬덤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 * *
같은 시각.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온라인도 활활 타고 있었다.
-뉴블랙, K넷 뮤직 어워즈 대상 2관왕 ‘올해의 최고 가수상’
꽤 큰 규모로 진행된 일본의 방송 생중계.
그 때문에 시청자도 많았고 여기저기서 시끌시끌한 반응이 오고 있었다.
[뉴블랙의 무대 어떠셨습니까?]
한류에 비판적인 이들이 모인 포털에서 내걸은 설문조사에서 ‘별로였다’가 70퍼센트를 찍고.
포털 댓글창과 SNS에도 과격한 이들이 방방 뛰고 있었다.
-문화 도둑국
-도깨비란거 결국엔 오니가 한국으로 옮겨 간 거잖아?
-오니가 언제부터 도깨비란 이름으로 불렸습니까? 나는 정말 이것을 이해할 수 없는 노릇
-정말 밥맛이다 이 녀석들
-그런데 좀 우습지 않아? 그 많은 국비를 써서 저 정도 밖에 결과물이 안 나왔다는 거잖아?
하지만 수플레들은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됐다. 확실히 터졌어.’
무릇 성공의 척도는 안티들의 발광과 비례하는 법이었다.
그만큼 오늘 무대를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는 이야기였다.
“뉴블랙 무대 봤어? 확실히 멋지긴 멋지던데.”
“너무 잘생겼어.”
“그 춤추는 애 너무 귀여웠던 거 있지.”
오프라인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올 만큼 파급력이 컸던 뉴블랙의 무대였다.
지금까지 어렴풋이 소식으로만 접하던 뉴블랙의 무대를 직접 본 이들은 호평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마지막 도깨비의 임팩트가 어마어마했으니까.
색색의 눈동자를 자랑하는 미남들이 두루마기를 펄럭이는데 호흡조차 잊을 만큼 몰입했다.
‘와.’
일본 웹에서는 황금색 눈동자를 한 메인 댄서가 옷자락을 펄럭이며 독무를 하는 움짤이 퍼지고 있었다.
그렇게 일반인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는 뉴블랙의 무대.
그런 호응에 미디어들이 다급하게 반응했다.
[뉴블랙이 마지막에 보여 준 도깨비 말이죠. 그 배경으로 들리는 자동차 소리가 일본의 통치 시기에 있던 자동차 소리라는 설이 있던데요.]
[궁궐을 빼앗긴 요괴 컨셉인가요.]
[아무래도 무대 하나하나에 오브제와 의미를 담는 뉴블랙의 무대 특성상…….]
저 무대에 독이 들어 있다! 하면서 열심히 말을 퍼뜨렸지만 유의미한 효과는 없었다.
아무리 안 좋은 소문이 난무해도 직접 만나 보면 그게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되듯이.
뉴블랙에 대해 무슨 말을 얹어도 어제 무대를 본 사람들에겐 딱히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미디어의 언플에 무반응하는 이유에는 어제의 해프닝도 있었다.
한일 양국의 인터넷에서 비웃고 있는 누군가의 코멘트 영상.
[하시모토 상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확실히 조금 미흡한 부분이 보이긴 하는군요.]
세계 최고 수준의 피아니스트인 폴 로랑의 피아노 실력에 대해 코멘트를 하는 하시모토 겐지의 영상이었다.
현재는 방송국에서 해당 영상을 미튜브에서 내려서 볼 수 없지만, 그런다고 숨겨지는 세상이 아니었다.
현재 SNS 상으로 병맛이라며 급속도로 퍼지는 영상!
-뭔가 부끄러운걸
-이 아저씨 언제까지 라이벌로 다니는 거냐 대체
-직업란: 라이벌(웃음)
-청력 확실히 문제 있어
-솔직히 뭔가 거창한 말로 항상 자기를 포장하고 있지만, 세계적인 성과 하나도 없잖아?
-내가 수치스럽다. 폴 로랑에게 사과해
-하시모토 겐지의 부친이 재일 한국인이라는 설 말이야. 역시 소문이 아닌 진짜였을까나.
-이 영감 사실 한국의 첩자 아니냐wwwww (웃는 이모티콘)
수많은 사람이 보았기에 퍼질 대로 퍼진 영상.
지금까지 ‘라이벌!’ 하면서 떠들었던 하시모토 겐지의 위상이 일반인들에게도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그 때문에 미디어에서 선명주와 하시모토 겐지의 라이벌 구도에 대한 언급량이 빠르게 줄기 시작했다.
그 대신.
‘하시모토 켄타가 있다!’
미디어들이 노린 것은 겐지의 아들인 하시모토 켄타였다.
잠깐 반짝했던 아버지와 달리 이쪽은 진짜 커리어부터 떡잎이 보이는 케이스.
[하시모토 켄타의 무대가 정말이지 근사했죠?]
[정말 일본 음악의 자존심을 보여 준 무대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어찌나 고고하던지…….]
[진짜배기 천재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정말 클래식했습니다.]
고고하고 우아하고 독보적인.
그런 이미지로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을 때.
하시모토 켄타의 SNS에 그가 뉴블랙 멤버들과 빙구처럼 웃고 있는 기념사진이 올라왔다.
@Kenta_Prince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
혼신의 힘을 다해 저도 뉴블랙처럼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열혈만화 주인공이 쿨하고 멋진 캐릭터에게 ‘너처럼 빛날 거야!’ 하고 외치는 듯한 멘트.
뉴블랙을 ‘노력파 범재’, 하시모토 켄타를 ‘쿨한 천재’로 포장하려던 미디어 관계자들이 흐린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
“…….”
그들의 패착은 단 하나.
바로 하시모토 겐지의 아들이 눈치가 더럽게 없다는 점이었다.
* * *
지난 며칠은 축배의 연속이었다.
“축하해! 얘들아!”
“축하합니다!”
일본에서 전세기를 타고 돌아오자마자 회사 사람들과 함께 단체로 가게를 빌려 회식했다.
먹어라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
그야말로 여기저기서 축하가 쏟아졌다.
“올해의 가수 뉴블랙!”
“뉴블랙! 뉴블랙!”
환호해 주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꽃등심을 추가해 주었다.
그러고는 같은 테이블에서 고기를 우물우물하고 있는 초췌한 인상의 동갑내기에게 말을 걸었다.
“형섭아. 어때. 행복하니?”
“응…….”
“왜 그래. 어디 불편해?”
“먹는데 자꾸 네가 말을 거니까…….”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왁자지껄한 웃음을 터뜨리는 직원들에게 우리가 엣헴 하고 말했다.
“고마운 줄 아세요. 저희랑 식사하는 경매권이 100만 달러에 팔린 거 아시죠? 이 식사의 가치가 11억이다 이 말이에요.”
“이야. 아주 감사합니다! 영광이네요!”
“감자합니다. 우주 씨.”
‘감자합니다~’ 하면서 놀리는 나상윤 팀장님과 PD들의 모습에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 송 캠프는 해병대로 보내 버려야지.
내가 웃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저것 때문에 진짜…….”
KMA 끝나자마자 동료들에게 엄청 놀림 받았다.
앵무새처럼 ‘감자! 감자!’ 하며 따라다니는 은가 놈을 시작으로 사진 찍을 때마다 김치 대신 감자를 외치던 이웃집과 친구 녀석들.
-밥 한 끼에 십억이라면서요. 우리 언제 밥 먹어요?
-십 원 줄게 밥 먹자. 우주야.
축하 인사와 함께 밥 한 끼 하자는 이야기를 엄청 들었는데…….
과연 시간이 날까 싶다.
연말무대 되어서야 다시 만날 거 같긴 한데, 어쨌거나 간만에 친구들 얼굴을 봐서 좋은 날이었다.
물론 대상을 두 개나 탄 것도 좋고.
“막판까지 K넷에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더라.”
“그래?”
석환 형이 속삭이며 말했다.
“내부에서 나온 이야기가 흘러 들어왔는데, 앨범상 두고 막판까지 시끌시끌했다고 그러더라고.”
“오호.”
원래는 앨범상을 틴스피릿이나 세레니티에게 줘서 기획사 간 밸런스를 맞추려고 했는데.
그랬다간 대중들이 폭발할 거 같아서 바꿨다는 듯한 소식이었다.
막내가 신기하다는 듯 속삭였다.
“그런데 팀장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NBS 쪽에 K넷 경력자들이 꽤 많거든.”
“아.”
대표님이 출발하기 전에 K넷 관련 소식을 이야기해 준 것도 그렇고. NBS라는 방송국을 개국하면서 뭔가 회사의 인맥이 더 넓어진 것 같다.
아무튼, 역대급 이상한 시상식이라는 평을 들었던 2017 KMA에서 우리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
“하시모토 그 양반 소식이 TV에서 통 안 보인다더라. 이번에 체면을 많이 구긴 모양이야.”
“잘됐네.”
아빠의 공연에 얹혀가려던 누군가가 잠시 떨어져 나갔다는 소식부터 무대에 달린 댓글 반응까지.
보기만 해도 만족스럽다.
일본어로 된 댓글들을 바라보며 웃을 때.
“형, 이거 봤어요?”
“뭔데?”
“미국 사람들이 무대 봤는지 팬아트 그렸나 봐요.”
비주가 핸드폰을 들어서 보여 주었다.
“우와.”
바로 하회탈 팬아트였다.
우리가 도깨비 무대를 하는 동안 댄서들이 쓰고 있던 하회탈이 서구권 네티즌에게 꽤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저 무서운 마스크는 뭘까
-어쌔신크리드 같다
-오싹오싹한 호러 무대가 컨셉인가?
-독가스를 무기로 쓸 것 같은 빌런처럼 생겼어.
우리에게는 익숙한 하회탈인데 다들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오는 탈처럼 여기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독특한 반응이네.”
“모르고 보면 무서울 거 같긴 해요.”
그런 반응들을 끝으로 모니터링을 마쳤다.
2017년 KMA.
노래상도 수상할 만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2관왕을 한 것에서 큰 보람을 느꼈다.
KMA에서 여태까지 3관왕을 준 적이 한 번도 없기도 했고, 2관왕도 어지간하면 안 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콩 한 쪽이라도 나눠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어워즈라고 할까.
인터넷에서는 수상 가지고 굉장히 말이 많다고 하던데… 그 부분은 모니터링을 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일단…….”
하회탈 팬아트를 보고는 우리 매니저에게 말했다.
“형, 그 이번 무대에 하회탈 아이디어 보내 주신 할아버님 있잖아. 안동에 사시는 박상덕 할아버님이라고 했나?”
“성함은 확인해 봐야 하는데 맞을 거야. 그분.”
“그분에게 선물이랑 편지를 써서 보내드리고 싶어.”
홍보팀에 전화를 걸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는 시민들의 연락처가 담긴 리스트.
이번 어워즈에도 댄서들이 착용한 하회탈도 바로 그런 일반 시민들이 보내 준 아이디어에서 나온 소품이었다.
“오케이. 그럼 그 이야기는 마무리됐고….”
즐겁게 회식하는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러곤 동생들에게 말했다.
“내일은 대표님 뵈러 가자.”
저번에 우리에게 돌아오면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한 박규호 대표님과 마저 이야기를 나눠야 할 시간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대표실로 찾아간 우리는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
조규환 이사님과 박규호 대표님이 앉아 있는 가운데.
레몬 엔터의 1호이자 간판 배우인 곽시현이 다리를 꼬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아한 캐주얼 정장 차림으로 앉은 미인이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
“안녕하세요. 선배님.”
무슨 용무라도 있는 건가?
문틈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우리가 물었다.
“혹시 다른 이야기 중이신가요? 이야기 중이시면…….”
“아니야. 딱 정확히 맞춰 왔어.”
조규환 이사님이 시계를 바라보곤 웃었다.
“들어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네.”
어딘가 엄숙한 분위기에 동생들이 닭 뒤의 병아리처럼 내게 달라붙었다.
그러는 동안 참석자들을 훑어본 내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간다.
분위기도 그렇고.
대표님이 KMA 가기 전에 지었던 결의에 찬 표정도 그렇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주변의 단서들을 빠르게 집어삼켰다.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 TV로만 보다가 이렇게 직접 또 보니까 신기하네.”
중화권에서 톱스타 급의 인기를 누린다는 최고의 한류스타이자 회사 대주주 1.
“이번에 상 정말 축하한다. 얘들아.”
전설적인 프로듀서이자 유명 작곡가인 대주주 2.
“허허허. 축하한다.”
반짝이는 대주주 3.
머릿속에 퍼즐이 완성되듯이 척척 그려지는 가운데,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앉은 동생들 속에서 차분히 앉았다.
뭔가 짚인다.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대표님이 내어 온 음료 잔을 받아 들었다.
“얘들아.”
“네, 대표님.”
박규호 대표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회사 지분 받아볼 생각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