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77화
지분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재벌집 막내였다.
“지분이요?”
“그래. 지분.”
대표님이 웃으며 말했다.
“이 레몬 엔터의 지분을 이야기하는 거야.”
“…….”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어마어마한 이야기였다.
레몬 엔터.
올해 매출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 2000억 원을 넘는 매출이 예상되는 우리 회사.
상장한다면 연예계 대표 주식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오는 게 바로 레몬 엔터였다.
“알아.”
그런 우리의 눈빛에 대표님이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희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지.”
“너무 당황스러운데요.”
리혁이가 어버버하는 동안 중현이가 주변을 유심하게 살폈다.
샅샅이 훑는 눈길에 곽시현이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내 뒤에 뭐가 있니?”
“아뇨.”
중현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깜짝 카메라는 아닌가 해서요. 카메라가 숨겨져 있나 해서.”
“아.”
어른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살짝 경직되었던 공기가 부드럽게 풀리는 가운데, 조규환 이사님이 커피를 홀짝였다.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설명이 좀 필요할 거야.”
이사님이 깍지 낀 손을 다리 위에 올렸다.
“알다시피 레몬 엔터는 여기 있는 세 사람이 지분을 출자해서 세운 회사야. 곽시현 씨와 대표님, 그리고 나. 중간중간 외부 자본이 유입되기도 했지만 기본 구조는 이래.”
그리고, 하며 이사님이 운을 뗐다.
“이런 구조는 너희가 오기 전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어. 회사 매출이 500억 대에서 700억대 사이를 왔다 갔다 했으니까.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저희가 엄청 성공을 한 거네요.”
“그렇지.”
조 이사님이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었어. 회사 아티스트가 성공하면 정해진 계약 조건대로 배분을 해 주면 되는 거니까. 어차피 회사 매출에는 큰 변화가 없는 상황이었고. 하지만 너희가 나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어.”
길쭉한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린다.
“회사 매출이 고만고만할 때는 원래대로 하면 그만이야. 하지만 회사 매출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매년 매출을 2배 가까이 성장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야.”
세 사람이 진지한 시선으로 우릴 바라보았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우리와 비슷한 결정을 할 거야.”
“…….”
“게다가 보통 이 정도 금액을 외부에서 조달하면 채권이든 주식이든 무엇이든 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조용히 바라보는 우리에게 조규환 이사님이 웃어 보였다.
“뭐. 기본 논지는 이렇다는 거고. 너희에게 반대급부로 안겨줄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떠올린 거야. 솔직히… 이 정도로 성공한 가수에게 무슨 대접을 해 줘야 할지 우리도 모르거든.”
“아마 이건 박태준 회장님도 모를 거야. 하하.”
“대표님! 그 영감탱이 얘기도 하지 마요, 밥맛 떨어져.”
박규호 대표님과 한류 스타가 끼어들며 분위기를 푸는 모습에 우리도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머릿속이 복잡하다.
지분을 준다는 것은 누구나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칠 만한 소식이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복잡하지?”
그런 내 생각을 훤히 들여다보는 눈으로 이사님이 빙긋 웃었다.
“보니까 다들 어떤 의미인지 안 것 같네.”
“네.”
나름 이 바닥에 들어온 지 어언 4년.
우리 모두 나이는 어리지만 상대의 말에 담긴 의미까지 파악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박규호 대표님이 말했다.
“일주일 정도 시간을 줄 테니 천천히 생각을 해 보고. 필요하다면 변호사나 자산 관리사와 검토를 해 보아도 좋아. 그래서 너희가 수락한다면 우리 지분을 나누어서 줄 생각이야.”
차분하게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해 보라는 말에 알겠다고 답을 했다.
“저 그런데.”
비주가 손을 들고 물었다.
“지분 같은 걸 저희에게 나눠 주셔도 괜찮으신가요?”
배우와 프로듀서, CEO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당연히 괜찮지.”
“허허.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니.”
탭댄스를 추듯이 신발 굽을 달달달 떨고 있는 배우.
커피잔을 든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프로듀서.
흐릿한 반짝임을 보여 주는 CEO.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충분히 생각해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대표님.”
“그, 그래.”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사람들이 정말 소중한 것을 내어 놨다는 사실은 알겠다.
* * *
대표실에서 나온 후.
우리는 중요한 회의를 하기 위해 방음이 가장 잘 되는 곳을 찾았다.
프로듀서들이 비명을 질러도 바깥에 소리가 전혀 새지 않고, 편집증적인 어느 피라루쿠가 설치한 보안 설비로 가득한 천혜의 요새!
[우주의 행복한 작업실]
‘행복한’에 어떤 작곡가가 몰래 매직으로 찍찍 그어 놓은 팻말이 달린 방.
바로 나의 작업실이었다.
“음…….”
동생들과 빙 둘러앉아 회의를 하려는데 머리가 복잡하다.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게 또 뭔 일이냐. 진짜.”
“나도 이게 현실 같지가 않아요.”
리혁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너희 이런 경우 본 적 있어? 나는 이렇게 아티스트한테 지분 주는 경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저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형.”
보통 연예인이 지분을 얻는 경우는 두 가지다.
본인이 직접 매니지먼트를 차려서 지분을 확보하거나 신생 매니지먼트에서 업계 거물을 영업하기 위한 미끼로 건네주거나.
물론 이마저도 순탄한 건 아니라서 이런 과정 속에서 사기를 당해서 수십억을 날리는 연예인 선배들도 상당수다.
무엇보다 우리 회사처럼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회사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케이스다.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몸을 돌리던 막내가 물었다.
“TJ나 대형 기획사 보면 이런 거 있지 않아요?”
“이런 건 못 들어 본 것 같은데.”
그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들은 바는 없다.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거나 사업 같은 것에 이름을 올려 주는 정도?
그만큼 지분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태준 회장님 만나 봤잖아. 지분 줄 것처럼 보여?”
“아뇨.”
막내가 의자를 빙글 돌리며 말했다.
“근데 대표님이랑 두 분 다 진짜 큰 맘 먹은 거긴 해요. 지분은 진짜 목숨 같은 거거든요.”
“역시. 지분도 받아본 사람이 잘 알아.”
“아, 형!”
고개를 끄덕이는 중현이의 말에 우리가 웃음이 터졌다.
맞는 말이긴 했다.
아까 대표실에서 지분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지호의 눈빛이 싸악 가라앉는 모습을 보았으니까.
“그런데 이건 생각을 잘 해 봐야 돼요.”
지호가 말했다.
“지분을 준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형들도 알죠?”
“알아.”
“이건 대표님의 프러포즈 같은 거예요.”
대표님이 무릎을 꿇고 반지를 내미는 상상이 떠오른다.
이상하긴 하지만 정말 프러포즈라는 말 빼고 달리 표현할 단어를 못 찾겠다.
“보통 가수와 회사 관계는 연애 관계 같은 거잖아요. 양쪽 다 마음에 안 들면 헤어질 수가 있어요.”
“맞아.”
“연애 때는 언제든 이별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연애 관계에서는 다툼이 심하거나 서로 간에 마음에 안 들면 헤어지면 된다.
지호가 의자를 빙글 돌리던 발을 멈췄다.
“그런데 지분이 얽히면 그게 안 돼요. 그때부터는 결혼이라서 쉽게 헤어질 수도 없는 거고요. 상대가 정말정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서는… 진짜 계속 매여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아까 이사님이 고민이 많을 거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대체로 연예인과 회사의 관계는 불확실한 관계.
지금이야 서로 황금빛 미래를 약속하고 하하호호 하지만 몇 년 뒤에도 반드시 그럴 거라 보장할 수 없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변한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관건은 그거예요.”
막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우리가 지분을 받은 다음에 회사가 이상하게 변해 버리면 그때부터는 답이 없는 거예요. 어디 못 가잖아요. 우리.”
“…….”
“지금처럼 서로 간에 긴장 관계는 없어지는 거예요. 일단 서로에게 묶이는 거니까.”
주주가 회사랑 재계약을 하지 않고 다른 회사로 가 버린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저기서 배신한다고 떠들 게 뻔하고.
비주가 말했다.
“하지만 대표님 마음도 이해는 돼요.”
“그건 그렇죠.”
벌써부터 재계약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인지 ‘우, 우리 잘해 보자!’ 하면서 어마어마한 것을 내준 마음이 느껴진다.
대표님과 대주주들 입장에선 정말 최선의 호의였다.
자신들의 이익을 나눠 주겠다는 거니까.
“뭐.”
리혁이가 발로 바닥을 콩콩 두드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나쁠 거 없는 기회긴 해요. 이미 회사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잖아요?”
“누가?”
“누구긴 누구예요. 그대지.”
“아. 나구나.”
“지분까지 생기면 그때부터는 공식적으로 회사의 오너가 되는 거잖아요.”
“어?”
그러네.
갑자기 리혁이의 말에 솔깃해진다.
“회사가 이상해지면 어쩌냐는 왕지호 걱정도 맞는 말인데, 우리가 안 그렇게 만들면 되잖아요?”
“오.”
“물론, 그렇게까지 유의미한 지분은 아니겠지만…….”
“그치.”
아마 전체 주식의 1퍼센트 남짓 정도 아닐까.
그마저도 나중에 상장을 하게 된다면 어마어마한 가치가 되겠지만 그 정도 돈이야 얼마든 벌 수 있다.
그러니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중현이가 물었다.
“우리 지분은 얼마 받는 거예요?”
“어?”
그러고 보니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누가 가서 한 번…….”
“…….”
“…….”
다시 올라가서 ‘저기 지분 근데 얼마인가여~? 헤헷!’ 해야 하는 일.
스윽 서로 간에 눈치를 살피고.
내가 입을 열었다.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형이랑 가위바위보 안 해여.”
“저리 가요.”
주먹을 든 채로 소심하게 쭈그러드는 동안 리혁이가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악어로 정하죠.”
“악어 고고.”
인형 악어의 이빨을 하나씩 뽑는 게임인데, 트리거가 되는 이빨을 뽑으면 악어가 촙! 입을 닫아 깨무는 장치다.
곧이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이빨을 하나씩 뽑고.
“어? 나네.”
촙 하고 악어에게 손이 물린 중현이가 웃으며 일어났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역시 수치심이 별로 없는 우리 셋째였다.
다른 애들이었다면 ‘으잉’ 하면서 안 가려고 그랬을 텐데.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중현이가 문을 닫고 나가는 동안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아. 근데 진짜 모르겠네.”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
그냥 지분을 흔쾌히 받아도 되긴 하는데…….
“내가 생각이 너무 많은가 봐.”
“아니에요. 형. 이런 건 신중할수록 좋아요.”
비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머릿속에 이런저런 상상이 든다.
조그마한 지분을 받은 뒤에 회사가 갑자기 불성실한 태도로 나온다면?
적대적인 회사가 M&A에 나서서 인수를 해서 내가 알던 레몬과 다른 회사가 되어 버린다면?
지금의 임원진이 변해 버린다면?
나는 레몬 엔터 자체가 좋은 게 아니라 박규호 대표님이 운영하는 레몬 엔터가 좋은 건데.
지분을 받게 되면 그냥 레몬 엔터라는 별개의 법인과 묶이게 되는 거다.
“고작 1퍼센트 남짓한 걸로…….”
졸개들의 무르팍에 머리를 뉘이며 그런 말을 중얼거릴 때였다.
두다다다다다!
밖에서 누군가 뛰어 오는 굉음이 들리더니 방음문이 쾅! 하고 열렸다.
뒤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등장한 중현이가 속도를 줄이면서 끼이이익 소리를 냈다.
“형.”
평소답지 않게 숨을 헐떡이는 모습에 내가 일어났다.
“왜, 왜 그래?”
“형.”
중현이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
“박규호 대표님이 10퍼센트를 떼어 주시고, 나머지 두 분이 5퍼센트씩 떼어 주신대요.”
“응?”
“우리한테 총 20퍼센트를 주신대요.”
“그러니까…….”
계산을 하고 말했다.
“우리한테 회사 5분의 1을 주시겠다는……?”
끄덕.
“…….”
“…….”
“…….”
코트를 챙겨들고는 졸개들에게 웅장하게 말했다.
“졸개들아.”
“네!”
“사인하러 가자.”
대표님 생각이 바뀌시기 전에 사인을 해야겠다.
* * *
여러 가지 법적인 절차를 거쳐 지분과 관련된 계약을 끝냈다.
단순히 지분만 받으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세금과 관련한 문제를 비롯해 정말 복잡한 절차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분을 받은 게 실감이 나냐면 글쎄.
“메이플 도토리 같네요.”
막내가 말했다.
“가지고는 있는데 현금이 안 돼.”
“싸이월드 도토리 말하는 거지?”
서류상에 써 있는 글씨를 인증샷으로 찍었다.
각자의 이름 옆에 [4%]라는 지분 비율이 적혀 있는 표.
그것을 둘러싸며 웅성웅성하고 있는데 이사님이 우리를 불렀다.
“축하해.”
“네… 감사합니다. 정말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뭘 이런 걸 가지고.”
소파에 자리를 권하는 이사님의 손짓에 둘러앉았다.
계약을 마치고 나서 조규환 이사님이 잠시 할 말이 있다고 우리를 부른 터였다.
“와.”
막내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근데 저희 예전에 불꽃놀이 나올 때만 해도 투자자들 자본 있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너희가 돈 벌면서 그런 부채는 다 청산했지.”
“와…….”
이사님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이제 같은 대주주네. 언제 상황이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네요.”
“기분이 어때?”
“얼떨떨해요. 이런 경험은 해 본 적이 없어서…….”
드라마에 나온 재벌들이 경영권을 가지고 싸우는 것만 봤지 실제 지분은 처음 받아 본다.
중현이가 흐뭇해하며 말했다.
“이제 나중에 저희 아들딸과 이사님의 아들딸이 경영권을 다투고 싸우고 그렇게 되는 건가요?”
“레몬 엔터 제1차 공주의 난.”
“2차 왕자의 복수.”
지분을 처음 받아본 사람들의 드립에 이사님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뭐.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곤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를 여기 부른 이유는 이제 너희가 대주주이기 때문이야.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대주주이기에 지금까지 너희는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해 주려고 해. 지금 우리 회사가 나아가는 방향이 어디인지.”
귀를 쫑긋 기울였다.
여태까지 조 이사님이 바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개황은 잘 알지 못했다.
“우선 회사가 미디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계획은 알 거야. TV 사업, 게임 사업, 컨텐츠 제작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지. 회사 산하에 스튜디오 LM은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어요.”
“현재 채널 NBS에 런칭할 예능이나 드라마들을 제작하는 중이야.”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DNS 미디어의 지분을 일부 인수했어.”
“네……?”
스보 기획사를 말하는 건가?
“언제요?”
“최근에 했지.”
중현이가 허엇 했다.
“왜 그래?”
“어디서 들어 본 적 있는 이야기예요.”
“그래?”
고개를 갸웃하고는 이사님의 말을 마저 들었다.
“DNS 미디어의 지분을 인수해서 우리 회사 산하의 레이블처럼 만들려는 계획이야.”
레이블.
거대한 엔터 회사가 ‘우린 지분만 가질게, 운영은 독자적으로 해~’ 하듯이 DNS 미디어를 산하 레이블로 운영하려는 계획인 모양이다.
스트릿 보이즈랑 한 식구가 될 거라는 말에 얼떨떨해 할 때.
조 이사님이 자신의 큰 그림을 밝혔다.
“그런 식으로 시작해서… 13년도에 연말 평가 기억하니?”
“네.”
“연말 평가에 있었던 기획사들을 시작으로 회사 산하에 레이블을 하나씩 추가하려고 해.”
채널 NBS와 컨텐츠 제작 사업.
산하 기획사 인수.
“이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데는 가장 큰 이유가 있어.”
“?”
“너희 같은 가수를 또 만들어 낼 자신이 없거든….”
이사님의 아련한 눈빛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솔직히 우리 매니지먼트 능력은 대단할 게 없어. 캐스팅이나 신인 육성 노하우가 정말 중요한데 이건… 정말 대형 기획사를 따라갈 수 없지. 너희는 정말 로또 같은 케이스고.”
“로또…….”
“그렇지만 경영이란 건 위험이나 리스크를 피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자신감에 취해서 그런 로또를 또 노리면 안 되잖아?”
조 이사님이 자신의 지론을 밝혔다.
“그래서 이런 사업을 추진하는 거야. 좋은 포트폴리오를 늘려놓으면 그중에 잘 되는 아이템들이 하나씩 나올 테니까. 가요계가 정말 연도나 시기마다 원하는 수요가 다르기도 하고.”
“맞아요.”
“그런 식으로 본업인 매니지먼트의 리스크를 분산하고, 컨텐츠 사업으로 미래를 그리고.”
회사 임원들이 그리는 큰 그림에 감탄하는 동안 조규환 이사님이 웃으며 말했다.
“이게 바로 우리가 그리고 있는 미래야.”
“대단하네요.”
매번 바쁘게 움직이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치밀하게 플랜이 짜여져 있는지는 몰랐다.
비주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 상투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저희도 정말 열심히 활동해 볼게요.”
“그래. 잘 부탁한다.”
그런 식으로 좋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할 때.
“아.”
“음?”
우리의 머리에 뭔가 떠올랐다.
“이사님, 주주라는 게 회사의 소유권을 지닌 오너를 말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럼 저희도 회사의 성장을 위해 이것저것 도와도 되겠네요?”
“그…그렇지?”
“호오오오오…….”
대주주로서 할 수 있는 이런저런 것들이 머릿속에 반짝반짝 떠오르기 시작했다.
동생들과 눈빛 교환.
둘리 무리를 바라보는 고길동 같은 표정의 이사님에게 우리가 손을 꼭 쥐며 웃어 보였다.
“대주주로서 저희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 그래.”
갑자기 마음이 훈훈해진다.
이게 바로 오너의 마음인가.
이 회사 건물이 내 것 같고. 이사님 방에 있는 노트북이나 물건들이 다 내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주변을 훑는 우리 모습에 이사님이 몸을 흠칫 떨었다.
“아.”
우리가 물었다.
“그런데 저희가 대주주라는 사실은 언제 알려지나요?”
“안 그래도 곧 공표할 거야.”
* * *
뉴블랙이 자신들의 새로운 신분을 받아들이며 꺄르륵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때.
-박태준 회장, TJ 엔터에서 퇴임식 가진다
핸드폰을 바라보던 남자가 웃었다.
“허허.”
청담동 사무실에 앉아 있는 박태준 회장이 진열장에 전시된 마지막 골동품을 고이 상자에 넣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었지.’
곧 대표이사가 되는 한영준 총괄이사에게 인수인계를 완벽하게 마치고 이제 정말 떠나야 할 때였다.
연예계의 거목이 퇴장하는 순간.
어찌 아쉬움이 없겠는가.
하지만 그 모든 아쉬움을 후련하게 떨쳐 내고 이제 마음 편히 은퇴생활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허허.”
은퇴한다는 소식에 달렸을 ‘가지 마요ㅠㅠ’ 같은 댓글들을 보려고 다시금 손가락을 올릴 때.
띠롱.
그의 은퇴 뉴스가 포털 메인에서 내려갔다.
“음?”
그리고 쏘오옥! 하고 올라오는 소식.
-[속보] 뉴블랙, 레몬 엔터 대주주 된다
“아이, 저놈의 회사 진짜!”
박태준 회장이 소파에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스스로 불러 온 재앙에 짓눌리는 TJ 엔터의 회장… 아니 전(前) 회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