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87화
HBS 가요대상의 MC 활동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와, 기사 수 봐요.”
지호가 핸드폰을 보면서 입을 떡하니 벌렸다.
“웬만한 무대 기사보다 형이 방송 사고 대처한 게 기사가 더 많아요. 완전 대박.”
“방송 사고라는 소재가 자극적이잖아. 그래서 그래.”
아무래도 ‘귀염뽀짝 아이돌 무대!’ 보다는 ‘HBS의 방송 사고 대처’가 더 이슈가 될 만하지 않겠는가?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화제성의 차이였다.
“그래요?”
리혁이가 코웃음을 치면서 물었다.
“별거 아니란 듯 말하면서 입꼬리가 계속해서 씰룩씰룩 올라가고 있는데요?”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핸드폰을 슥 보았다.
[방송 사고에 대한 어느 아이돌의 대처 방식ㄷㄷㄷ]라는 미튜브 동영상에 달린 댓글들.
-진짜 이런 센스와 대처능력이 프로지ㅋㅋㅋ
-그 와중에 음색 너무 좋다ㅠㅠㅠ
-은케빈 저 와중에 장단 잘 맞추는 거보면 선우주가 데리고 나온 이유가 다 있음ㅋㅋㅋ
-케빈아.. 네 병장님한테는 앞으로도 이기긴 글렀다
-절하고 살아 케빈아
-근데 케빈이는 절하라고 하면 두 번할 애임
-우주는 진짜 한결같은 게 너무 좋아. 정말 음악에 대한 열정이 느껴짐
-짧게 무반주로 부르는 라이브가 저런데 어케 라이브 논란이 그렇게 있었지
-ㄹㅇ 명곡단 하기 전에 욕 오지게 처먹음ㅋㅋㅋㅋ
은성이를 보고 내게 감사하며 살라는 댓글들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바로 이 반응이지.
히죽히죽 웃는 나에게 졸개들이 물었다.
“은성 님은 뭐래요?”
“한결같지. 자기가 아니었으면 그렇게 보조를 맞출 수 있었겠느냐? 감사한 줄 아십쇼, 병장님~! 이러고.”
“그래서요?”
“너보다 더 잘 맞춰 주는 애들 넷이나 있다고 하니까 답장 없던데.”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멤버들이 들고 있는 핸드폰에도 이런저런 영상들이 보인다.
“너희는 뭐 보고 있는 거야?”
“우리 음향사고 대처 모음이래요.”
중현이가 보여 주는 핸드폰에 [무대사고 대처하는 뉴블랙 모음.zip]이란 영상이 있었다.
데뷔 쇼케이스의 무반주 무대.
이천 축제의 빗속 무대 영상 등등.
추억 돋는 장면들 아래로 칭찬댓글들이 자자해 있었다.
“좋구나.”
“뭐, 나 원래 칭찬 좋아하는 사람 아닌데 이런 건 좋네요.”
“칭찬 제일 좋아하면서….”
푼수같이 웃는 졸개들을 따라 나도 같이 웃었다.
시작은 HBS 방송 사고 대처 영상인데, 그게 우리의 기존 음향사고 대처 영상들로 이어져 있었다.
“좋다. 좋아.”
흐뭇하게 웃고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석환 형이 이메일로 보내 준 기획안들.
이번에 HBS 사건의 성과는 단순히 평상시 라이브 실력에 대한 주목뿐만이 아니었다.
-IBC ‘디스 이즈 K팝’ 특별 MC 섭외건
-TBC ‘도전! 명곡발굴단’ 시즌3 스페셜 MC 섭외 건
-HBS ‘듀엣 배틀’ MC 섭외에 관한 건
바로 여러 방송국들에게서 들어온 MC 섭외 제안이었다.
대부분 음악 예능.
-여러 요소가 들어간 것 같아. 대중 친화적인 이미지에, 음악적인 지식이 풍부한 편이고, 생방송에 대한 감각도 발군이고. 그런 이유로 음악 예능들에서도 널 섭외하려는 거 같아.
석환 형이 말해 준 바에 따르면 그런 이유였다.
-사실 무엇보다 네가 진행을 잘한다는 점이 크지. 예능 피디들이 너 잘한다고 인정해 준 거야.
그 때문에 굉장히 기쁜 섭외들이었다.
아무리 인지도가 높고 유명한 가수들이라고 해도 MC로 섭외되는 일은 흔하지 않다.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인 MC.
맛깔나게 진행하는 게 프로그램의 성공을 좌우하는 만큼 유명세로만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MC였다.
“오호.”
“이거 IBC에서 이번에 런칭하는 예능이라고 하던데.”
“듀엣 배틀, 이거 한 번 해 보고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어느새 머리 네 개의 히드라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히드라 중에서 똑똑함을 담당하는 머리가 뾰족하게 물었다.
“그래서 할 거예요?”
“해야죠. 형! 이거 시켜서 우주 형을 트레이닝 시킨 다음에 나중에 우리 솔로 무대 할 때 쇼케이스 MC 시키면 돼요.”
“찬성.”
부유함과 순박함을 담당하는 두 머리가 맞장구를 치는 가운데, 부드러움을 맡은 머리가 물었다.
“형은 어때요?”
“솔직히 제안은 나쁘지 않아.”
6개월 넘게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의 MC도 아니고 몇 주나 하루 정도 하는 스페셜 MC는 할 만하다.
리혁이가 슥 훑어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문제점이 좀 있네요.”
“맞아.”
“포맷이나 편집 괜찮은 ‘듀엣 배틀’ 같은 예능은 장기 MC 제안이고. 단기 MC 제안이 들어오는 곳은 또 내용이 별로고요.”
다른 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리혁이 말마따나 장기 프로젝트는 너무 길어서 맡을 수가 없다.
스케줄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도 하고, 메인 활동도 아닌 서브 활동으로 앨범 작업에 지장을 줄 순 없으니까.
반면에 단발성 MC를 제안하는 곳들은 포맷이 그냥저냥이다.
“이게 그나마 스케줄상으로 가장 가능성 있긴 한데… 진짜 포맷이 취향이 아니네.”
“IBC 예능이요?”
“응. 그거.”
종합편성채널 IBC에서 이번에 새로 런칭한다는 음악예능 <디스 이즈 K팝>.
한국에 거주하거나 여행 온 외국인들을 방청객으로 불러서 한국 가수들의 무대를 보여 준다는 프로였다.
최근 들어 성행 중인 외국인 패널이나 여행 온 백인들을 초대하는 예능인데 내 취향에는 별로 안 맞았다.
“뭐. 나중에 해도 되니까.”
사실 이번 MC 섭외 건은 보너스 스테이지에 가까워서 굳이 몸이 달을 만한 제안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이거 대중들한테 다가가기에는 되게 좋은 역할들인데.”
“MC가 그런 게 좀 있죠.”
최근 들어 하락세인 TV 예능들 중에서 나름대로 시청률 방어가 잘 되는 것이 바로 음악 예능이었다.
라이브 클립이 잘 뜨면 공연 영상들도 이슈가 되고.
화제성 높은 음악 예능에서 MC를 맡아 잠깐 출연하는 것은 대중들에게 예능인으로서 눈도장을 콱콱 찍어 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중현이가 농담을 했다.
“차라리 형이 음악 예능을 하나 만드는 건 어때요? NBS에다가 음악 예능을 런칭하는 거예요.”
“뉴블랙배 천하제일 음악대회.”
막내의 드립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릴 때였다.
비주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어?”
“왜, 비주야?”
“근데 진짜 가능할 수도 있어요.”
“……?”
단체로 눈을 깜빡이는 우리에게 비주가 되새겨 주었다.
“우리 이제 대주주잖아요.”
“!”
“!!”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는 연결을 하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지분 20퍼센트의 대주주!’
동생들과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바로 우리……?’
‘강하다. 우리.’
과거에는 드립으로만 주고받았던 이야기가 이제는 실현 가능하다는 것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산하의 NBS 방송국을 거느린 레몬 엔터.
그곳의 대주주가 우리였다.
“이게 대주주인가? 갑자기 막 힘이 느껴지네.”
“와. 이래서 울 아빠가 근자감이 쩔었구나.”
“핏속에 권력이 흐르는 기분이에요. 너무 좋다아…….”
지호와 비주가 해바라기처럼 손을 올린 채 흐뭇하게 웃는 걸 보며 우리도 같이 웃었다.
“그런데.”
리혁이가 내 핸드폰을 가리키며 물었다.
“다른 음악 예능들은 그렇다 치고 저건 어떻게 할 거예요? 내년 연말 무대 건들.”
“아.”
음악 예능과 별개로 세 개의 제안서가 들어와 있었다.
이번에 내가 MC를 맡아 시청률이 굉장히 올랐다는 HBS의 소식이 퍼진 것 때문일까.
부모님들이 미리부터 유치원 명단에 아이 이름을 올리듯 방송 3사가 벌써부터 내년 연말 MC 예약을 걸어왔다.
-2018 HBS 가요대상 MC 섭외 건
-2018 PBS 가요제전 MC
-2018 TBC 연말가요제 MC 섭외에 대한 건 (수정)
대체로 이 바닥에 상도가 있기 때문에 다 하는 것은 불가능.
그래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인데.
벌써부터 급하게 승낙할 필요가 없어서 그냥 보류하려고 내버려 두기로 결정한 건들이었다.
리혁이가 간질거리는 손가락을 [삭제] 버튼에 올리며 물었다.
“그래도 이건 뺄 거죠?”
“응.”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빼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뉴미디어팀이 어처구니없는 영상을 올렸던 어느 방송국.
곧이어 내 승낙에 리혁이가 속이 다 시원하다는 얼굴로 HBS의 이메일을 삭제해 버렸다.
“잘했다. 대주주 3.”
“민망하니까 그냥 이름으로 불러요.”
“잘했다. 피라루… 악!”
* * *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연말은 참 빠르게 흘러간다.
-[공식] 2017 PBS 가요제전, ‘뉴블랙, 세레니티’ 등 특급 라인업 펼쳐진다
-PBS 가요제전, 엔딩은 역시나 ‘국민 아이돌’ 뉴블랙
-[연말결산] PBS 가요제전, 작지만 알찬 구성 ‘어른들을 위한 안방콘서트’
29일에 열린 공영방송의 연말무대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PBS의 인기 예능 <도전! 명곡 발굴단>으로 핫하게 떠오른 발라드 가수들의 무대를 비롯하여 과거 추억의 무대 등등.
대부분 유명 가수들 위주로 소규모로 꾸민 무대였지만 제법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대망의 12월 31일.
[2017 TBC 연말가요제]
올해의 마지막을 장식할 무대를 위해 상암동에 있는 TBC 사옥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대기실에 신인 가수들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HBS 때의 멘트가 제법 반응이 좋았던 것인지 왠지 모르게 저쪽의 눈빛에서 내적 친밀감이 느껴진다.
“선배님,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 100위권으로 음원이 들어가 본 게 처음입니다.”
“축하해요. 근데 그건 노래가 좋아서 그런 거예요.”
“아니에요. 선배님 덕분이라… 저희가 너무 감사해서 선물을 하나 사 왔습니다.”
“아이고. 뭘 그런 걸…….”
부담스럽게 선물까지 들고 온 이들에게 손사래를 치자, 보이그룹 그래비티의 리더가 입에 손을 올리고 속삭였다.
“동대문에서 산 꽃무늬 잠옷입니다.”
“!”
이런 센스 있는 친구를 보았나.
내가 고이 손을 붙잡고 말했다.
“정말 감사히 받을게요.”
“…….”
옆에 서 있는 졸개들이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후배들이 나가자마자 박스를 개봉했다.
“그래! 이거지.”
국민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그것은 바로 전 국민에게 내 선물 취향이 오픈된다는 점이었다.
꽃무늬 잠옷을 몸에 대 보며 ‘꽃을 든 남자’ 가사를 흥얼거리자 리혁이가 중얼거렸다.
“정전기나 올라라.”
“그런 말 한다고 정전기가 오르겠니?”
허공에다 대고 ‘전기야 올라 줘!’ 하며 메아리처럼 외치면서 어깨를 둠칫둠칫 흔들었다.
동생들이 꼴 보기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후배들로부터 감사 인사나 자잘한 선물을 받아 기분이 업 된 상태에서 오늘 무대에 올라갔다.
-네! 음악으로 위 아 더 원이 되는 2017 TBC 연말 가요제!
-오늘 방송은 TBC 상암과 일산 스튜디오, 강변북로에 가설된 야외 특별 무대로 삼원 생중계가 되는데요!
TV 중계 화면.
강변북로 측 대표 가수로 호달달 떨고 있는 스트릿 보이즈를 보고는 짠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와 스트릿 보이즈, 틴스피릿의 팬덤을 분산시키기 위해 세 군데로 가수들을 나눈 모양이다.
그중에서 메인은 우리가 있는 상암 스튜디오.
꽤 정신없는 구성이긴 했지만 그마저도 오늘 날짜의 특수성 때문인지 흥겹게 느껴진다.
-올 한 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 2018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오!
한복에 족두리를 귀엽게 쓴 스칼렛이 시청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는 모습에 우리도 손을 흔들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바로 2018년 새해였다.
겨울에는 동계 올림픽이, 여름에는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는 해.
뭔가 새해가 된다는 것은 그런 기분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예쁜 리본을 매단 선물 상자가 내 앞에 스르륵 다가오는 기분.
올해에 있었던 아쉬움이나 미련은 상자에 담아 두고 이제 새로운 상자를 열어 볼 차례였다.
-네, 이제 새해를 5분가량 남겨 두고 있죠? 출연진 분들은 무대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11시 55분.
MC를 맡은 백상중 아나운서가 전 출연진을 무대 위로 불렀다.
서브 MC를 맡은 세레니티의 설하가 카메라를 향해 보조개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네! 2018년 무술년이 곧 다가오는데요! 2018년은 바로 황금 개띠의 해입니다!
-개띠 스타들을 한 번 만나볼까요?
또 다른 서브 MC 원더 차일드의 기도훈이 큐카드를 읽었다.
-94년생 개띠 스타들을 한 번 만나 보겠습니다!
-예능돌 하면 우리 빠질 수 없는 분이죠! 케빈 씨!
94년생 대표로 은성이가 나가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을 하고.
-얼마 전에 솔로로 음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한태현 선배님!
-안녕하세요.
태현이가 나가서 새해 인사 등을 하고 가볍게 물러났다.
은성이랑 태현이랑 같은 94년생으로 묶이는 것을 보고는 새삼 TNT 데뷔 연차를 실감했다.
저마다 데뷔 년도가 제각각이라 그런지 가까운 사이인 나도 보면서 혼선이 온다.
대선배라서 엄청 어른처럼 느껴지는 사람들과 이제 막 신인 딱지를 떼어가는 사람들이 같은 나이로 섞여 있으니까.
-네! 그럼 성인이 되는 멤버들도 만나 보실까요?
원더 차일드의 멤버들을 비롯해 내년에 어른이 되는 가수들이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밝히는 가운데.
“캬. 풋풋하네요.”
99년생들과 고작 1살 차이인 우리 막내가 ‘애기들이구만~’ 하는 헛소리를 흘려 넘겼다.
시간이 남아서 그런지 우리에게도 순서가 왔다.
-올 한 해 이분들을 빼면 대한민국 가요계를 논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죠?
-뉴블랙 선배님들 앞으로 모셔보겠습니다!
멤버들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가자 설하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올 한 해 소감과 2018년을 앞둔 포부 한 번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네, 앗 따가!
정전기가 올랐다.
리혁이가 날 쳐다보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 가운데, 키득거리는 동료 가수들을 무시하며 멘트를 했다.
-역시 연말하면 정전기죠. 여러분도 남은 한 해 동안 정전기 조심하세요.
앞으로 2분 동안 정전기 조심하라는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신인 때 정전기 소감이 잠시 떠올라서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가 말을 이었다.
-네. 정말 올해 마법과도 같은 일이 많았습니다. 저희 뉴블랙이 정말 국내외로 큰 사랑을 받았고…….
미국 어워즈.
스칼렛에게 곡을 준 신인 작곡가 김덕춘.
월드 투어와 상암동의 앵콜 콘서트.
아빠의 공연.
그런 것들이 스르륵 앞을 스쳐 간다.
-올 한 해 아쉬움이라면 아무래도 대중 분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는 점인데요. 내년에는 저희가 아주 친밀하고 끈끈하게, 파리 주걱처럼 여러분에게 다가갈 생각입니다.
파리 주걱이라는 단어가 취향저격이었는지 백상중 아나운서님이 엄청 좋아했다.
그쯤에서 멘트를 마무리하는데 중현이가 마이크를 들었다.
-파리지옥과 끈끈이 주걱입니다.
-그렇다고 합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호쾌하게 외치고는 마이크를 넘기고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제 30초.
MC들의 멘트와 함께 우리가 보고 있는 화면이 종로에 있는 보신각으로 전환이 됐다.
10만 명이 운집한 보신각이 연말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평창 올림픽의 마스코트 반다비와 수호랑이 둠칫둠칫 보신각의 종을 울렸다.
바야흐로 2018년 1월 1일 0시.
파앙!
허공에서 폭죽이 터지면서 금박이 쏟아져 내려왔다.
-네! 드디어 2018년, 무술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여기저기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인사를 주고받는 분위기 속에서 졸개들을 부둥켜안았다.
“사랑한다. 우리 동생들.”
“저도 사랑해요.”
부둥켜안고는 고개를 돌렸다.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에 귀가 벌게진 어느 펭귄이 모른 척 날개를 흔드는 중이다.
막내가 물었다.
“뭐죠? 뭘 망설이는 거죠? 리혁이 형?”
“뭐. 사랑… 해요.”
“크으!”
“이게 바로 엎드려 절 받기!”
동생들과 어깨동무를 하고는 방방 뛰었다.
근처 스크린에 붙은 2017이 2018로 바뀌어서 아직 실감이 안 나는 시간.
바쁘게 다시 무대를 내려가는 가수들 틈바귀에서 TBC 스탭들이 바쁘게 우리에게 달려왔다.
“뉴블랙 분들! 엔딩 준비하실게요!”
“네!”
작년처럼 올해의 첫 방송 무대를 우리가 장식할 시간이었다.
* * *
2018년 새해 자정.
“엄마아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딸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아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기저기서 가족들의 방을 찾아가거나 거실에서 새해 복! 하면서 외치고 있는 가운데.
전국의 가정들에서 틀어놓은 TV 화면이 전환됐다.
보신각에서 연기대상으로, 연말가요제로 넘어가는 화면에서 사람들이 TBC로 시선을 돌렸다.
“뉴블랙 무대하네.”
TV 속에서 잘생긴 5인조가 한복 의상을 입고 있다.
가비가비 돗가비~ 하며 흥겹게 새해를 알리는 도깨비 무대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명곡 파티.
그중에서 올해 히트곡 중 하나인 Coin이 흘러나왔다.
-여러분! 새해에는 부자 되세요!
옛날 광고의 멘트를 귀엽게 외치는 뉴블랙의 막내.
멤버들이 허공에 금화 소품을 던지면서 ‘금 나와라 뚝딱~’ 하면서 무대를 하고 있었다.
Coin Coin
Keep Going
코인 특유의 밝고 쾌청한 후렴구가 이어지면서 새해에 대한 밝은 미래가 그려지는 가운데.
“음?”
최근의 뉴스들 때문일까.
젊은 세대가 코인의 가사를 들으며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꼭 뭔가 가사가 그렇게 들렸다.
‘코인 코인….’
계속 가라는 뜻의 Keep Going.
‘가즈아?’
2017년 연말 들어서 뜨거워지고 있는 비트코인이 연상되는 듯한 가사.
한편으로 나이 든 세대들은 그들대로 ‘돈 많이 버세요’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노래였다.
절묘한 타이밍!
마치 새해 소원으로 국민들에게 ‘올해 소원 다 이뤄질 거예요!’ 하는 듯한 노래가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해 첫 노래로 최고다.’
2017년 봄에 나왔다가 다시 음원 차트로 순위가 수직 상승 중인 뉴블랙의 Coin이었다.
의도치 않은 역주행과 함께.
SNS 등에 올라오는 ‘새해 자정에 꼭 들어야 할 곡’에 뉴블랙의 코인이 1위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