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89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재즈 뮤지션들이 신이 나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선명주 선생님이 말하길 군산은 신비와 마법으로 가득한 땅이라 하셨죠.」
「나 너무 기대돼. 과연 어떤 곳일까?」
「그중에서 월명공원이라는 곳을 꼭 가 봐야 해. 명주가 그곳의 석양을 보라고 했어.」
버스 안에서 나는 조용히 손바닥을 비비고 있을 뿐이었다.
혀로 입술을 축이며 재즈 뮤지션들을 돌아보다가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옆자리에 앉은 비주가 속삭였다.
“형, 저분들이 군산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거 어떻게 말하지?”
여러분이 무슨 이야기를 들으신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고.
잔뜩 신이 나서 기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흥을 깨는 것도 왠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아빠랑 엄마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다닌 거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군산에 있는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잘 포장해서 전달해 주신 것 같아요.”
“포장을 좀 지나치게 한 것 같은데. 저 월명 얘기는 찾아보니까 군산 얘기가 아니래.”
“헛…….”
내가 자란 군산은 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법 같은 도시가 아니다.
활력과 매력이 있고, 바다와 산이 같이 있고, 근대 역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
내가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고향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법의 도시는 아니었다.
저쪽에서 말하는 건 뭐라고 할까.
“제 생각에는요.”
막내가 고개를 쏙 내밀고 말했다.
“저분들이 군산을 곡성처럼 생각하는 거 같아요.”
“곡성?”
“영화요.”
“아. 그거.”
정말 적절한 비유였다.
영화 속에서 신비로운 도시로 나왔던 곡성처럼 군산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버스 옆옆 좌석에 앉아 있던 리혁이가 말했다.
“그래도 이거 말은 해 줘야 할 거 같은데요. 가서 충격 받아서 쓰러질 수도 있잖아요.”
“뭐 그런 걸로 쓰러질 것까지야.”
“학계에 보고된 실제 케이스가 있어서 그래요. 파리 신드롬이라는 거 검색해 봐요.”
인터넷에 검색을 하니 옛날 일본 사람들이 파리에 가서 실신하거나 환각을 보았다는 에피소드들이 적혀 있다.
막연하게 환상과 동경을 품고 있던 도시의 실제 모습이 상상과 달라 충격을 받는다나.
뭐. 설마 사람이 그런 걸로 충격을…….
「정말 너무 설레서 눈물이 날 거 같아.」
몽롱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어느 재즈 뮤지션의 모습에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건 말해 줘야겠다.
마침 곧 군산으로 들어가는 타이밍이기에 버스 기사님에게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여러분.」
재즈 뮤지션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곧 있으면 이제 군산에 진입을 하는데요.」
「Wow-!」
‘워우!’, ‘예쓰!’ 하며 주먹을 쥐는 흑인 뮤지션들의 모습에 내가 침착하게 말했다.
「우선 군산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마법의…….」
내가 이야기를 이어 나가려고 할 때였다.
누군가 창밖을 보며 외쳤다.
「안개다!」
「나 이거 영화에서 본 것 같아.」
「이상하다. 방금 전까지는 안개가 없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마법이라니깐.」
군산에 진입하자마자 마법처럼 안개가 스멀스멀 가득해 있었다.
수능 공부를 하면서 읽었던 현대 소설에 나왔던 문장들이 안개 사이로 스멀스멀 보이는 느낌이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산과 산 사이로 안개들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와 도로 주변을 휘감고 있는 모습.
시야가 잘 확보되지가 않는지 헤드라이트를 켜고 가는 차량들이 반대편 도로에서 서서히 지나간다.
「…….」
마이크를 든 내게 향하는 시선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느냐는 듯 묻는 눈빛에 내가 헛기침을 할 때였다.
이번에는 불쑥 무언가 튀어나왔다.
「어엇……!」
「사슴이야!」
「어디서 나온 거지?」
「내가 말했잖아. 마법이라니까.」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무언가.
서서히 속도를 줄인 버스 앞으로 고라니가 지나갔다.
마치 무언가를 응시하듯이 버스를 자신만만하게 바라본 고라니가 폴짝- 수풀 너머로 사라졌다.
「우와아아아아-!」
흥분한 재즈 뮤지션들이 창문에 손을 올린 채 환호했다.
안개.
그 속에서 슥 튀어나와 차량을 바라보고 사라지는 고라니.
지호가 감탄했다.
“공포 영화 도입부네요. 완전.”
“…….”
뭐라고 말을 하려다 말고 마이크를 다시 내려놓았다.
나도 모르겠다.
멍한 얼굴로 안개 낀 군산을 바라보다가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중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중현아.”
“네, 형.”
“네가 소원 빌고 그런 거 아니지?”
중현이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곧이어 불상처럼 온화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형.”
“응.”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인정.”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긴 했다.
그 속에서 졸개들이 얄미운 웃음을 터뜨렸다.
* * *
「도착했어요.」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
[선명주 기념관]이라고 적힌 표지판 너머로 3층짜리 건물이 웅장한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바로 여기로군.」
버스에서 내리는 윈스턴 로스 선생님을 부축해 드렸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잔디밭 너머로 보이는 건물을 바라보며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군요. 선명주 선생님이 있는 곳이.」
폴 로랑도 눈에 이채를 띠었다.
내가 대답했다.
「맞아요. 여기가 저희 아빠가 있는 곳이에요.」
비행기 사고 때문에 아빠와 엄마는 따로 납골당 같은 것이 없다.
묘역을 조성한 곳이 있긴 하지만 그곳은 텅 비어 있는 곳이니까.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선명주 기념관이었다.
내가 어릴 적이나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찾아와서 조용히 아빠와 엄마 얼굴을 돌아보고 가는 곳.
재즈 뮤지션들뿐만 아니라 우리 동생들도 묘한 표정으로 3층 건물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바로 그곳이네요.”
특히나 가장 오고 싶어 했던 비주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리혁이가 설 연휴 때 다녀와서 이야기 엄청 했거든요. 그래서 한 번 꼭 와 보고 싶었어요.”
“그러고 보니 너희는 처음이구나.”
작년 설 연휴 때 리혁이와 방문했었지.
「…….」
“…….”
건물을 지그시 바라보는 재즈 뮤지션들과 동생들에게 웃으며 손짓했다.
「그럼 가 보실까요?」
오늘 선명주 기념일은 정기 휴관일이었다.
한국을 방문한 재즈 뮤지션들에게 특별히 관람을 시켜 주기 위해서는 휴관일이 아니고선 힘들었다.
선명주 재단 관계자가 그런 말을 했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사람이 정말 많이 옵니다. 요즘에 선생님을 뵈러 오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PBS의 선명주 특집 다큐가 방영된 이래로 방문자가 무지막지하게 늘어서 관람하기가 어마어마하게 힘들다는 듯했다.
「지금부터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재즈 뮤지션들에게는 선명주 재단의 관계자와 통역사가 따라붙어서 기념관 투어를 시작하고.
“우린 우리대로 가 보자.”
나는 동생들을 이끌고 기념관 투어에 나섰다.
로비에 진입한 리혁이가 팸플릿들부터 쏘옥 뽑았다.
“저번에 가져갔잖아?”
“디자인이 바뀌었어요.”
팸플릿 성애자가 행복한 얼굴로 다이어리에 팸플릿을 끼워넣는 동안 동생들을 이끌고 2층으로 향했다.
기념관은 저번과 특별하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관람할 것이 많은 편도 아닌데 동생들은 연신 진지한 얼굴로 안내문구나 전시 영상 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얘들아. 안 가?”
집중해서 문구를 읽고 있는 멤버들.
안내 문구 등을 암송할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본 나와 달리 멤버들에겐 특별한 경험인 듯했다.
첼로를 켜는 엄마와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빠의 사진 옆에 적힌 ‘카네기 홀 공연’ 등의 설명을 읽고 있는 동생들을 바라볼 때.
“저, 우주 씨.”
선명주 재단 관계자가 내게 다가왔다.
“관람 다 하셨으면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공간 보여 드릴까요?”
“새로운 공간이요?”
“지금 공사 중인 구간입니다. 새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거든요.”
매니저와 함께 관계자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그런 팻말이 붙은 문을 넘어가자 페인트 냄새들과 먼지들이 가득한 공간이 드러났다.
영상들로 가득한 방이었다.
[20년이 지나 다시 돌아오다]
원래 불운한 사고를 마지막으로 전시가 끝나 있는 곳이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단장한 공간이 준비되고 있었다.
첫 번째는 뉴블랙 TV에 공개되었던 아빠의 공연 예고편 영상.
[국민 여러분. 저, 선명주가 돌아왔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의 공연 모금 파티 영상 등이 사진 상으로 붙어 있었다.
[그의 아들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이그룹 뉴블랙의 리더…] 라는 설명에 민망하게 웃을 때.
아직 영상이 없는 텅 빈 모니터와 여러 가지 전시물이 있을 공간 등이 보였다.
“여기는 지금 비어 있는 건가요?”
“네.”
관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명주 선생님 공연이 끝나고 나면, 공연에 관한 영상이나 비하인드 등을 여기 담을 계획입니다.”
“멋지네요. 마음에 들어요.”
내게 있어 부모님의 이야기는 항상 끊겨 버린 이야기와 같았다.
마무리 없이 도중에 끝나 버린 이야기.
그런 이야기에 마지막 챕터가 새롭게 추가된 것 같아 기분이 뭉클하고 좋다.
“얼른 공연이 끝나서 여기 전시실이 근사하게 꾸며지면 좋겠네요.”
“예. 저희도 같은 마음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꾸며질 모습을 상상하다가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이번 달에 있을 공연뿐만 아니라 다음 달에도 아빠와 관련된 공연이 하나 있을 테니까.
보안상 밖에서 이야기를 하고 다닐 수는 없지만.
“음.”
직원 분에게 넌지시 말했다.
“한 가지 정도 더 추가할 공간을 만드는 게 좋겠네요.”
“네?”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특별히 준비하는 게 하나 있거든요.”
고개를 갸웃하는 직원 분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같은 시각.
멤버들은 2층을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우와.”
옛날 재즈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유명한 음악가들 속에 같이 웃고 있는 젊은이의 얼굴.
다른 음악인들과 함께 미국 대통령 앞에 앉아 있는 인물.
러시아에서 100만 명 가까운 인파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들이 사진과 영상으로 가득하다.
‘진짜 대단한 분이었구나.’
동시에 한편으로 납득이 되기도 했다.
선우주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런 괴물 같은 사람은 어디서 등장한 걸까, 하고 의문을 품었는데.
역시 슈퍼콩을 심은 데서 슈퍼그레이트콩이 나온 거였다.
“진짜 잘 온 거 같아요.”
지호가 전시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우주 형네 부모님을 직접 만나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어서 좋고.”
“그러게.”
다른 사람들은 음악인 선명주가 궁금해서 찾아오는 것이겠지만 그들에겐 조금 다른 상황이었다.
처음으로 멤버의 부모님과 만나는 기분.
지금까지 선우주의 할머니를 만나 보긴 했지만 부모님을 만나 본 적은 없었으니까.
‘물어볼 수도 없고.’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서로 간에 쉽사리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은 존재하는 법이었다.
궁금하면서도 물어보기 어려운 이야기.
요즘 들어서야 그나마 몇 가지 물어볼 수 있게 되었지만, 여태까지 그들이 대화 주제로 꺼낼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좋아.”
비주가 말했다.
“아버님이랑 어머님 실제로 만나는 기분이라서.”
“나도.”
중현이 동의했다.
아무래도 선명주 기념관의 형식 자체가 음악인이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컨셉인 만큼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다.
리혁이 턱 끝을 살짝 치켜든 채 말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요. 여기 한 번 꼭 와 보면 좋다고.”
“와, 저 형 콧대 봐요. 누가 보면 기념관 주인인 줄.”
한 번 방문한 것을 가지고 생색을 내는 리혁을 지호가 놀리고 있을 때.
그들은 2층의 마지막 전시 영상 앞에 도달했다.
선명주와 이명은 부부가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영상이었다.
처음 기념관을 조성하려는 프로젝트가 준비될 때만 해도 부부가 살아 있었다는 모양이다.
가을을 닮은 남자와 봄을 닮은 여자.
선우주의 이목구비를 반반씩 물려준 이들이 햇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십니까. 관람객 여러분.]
[저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남겨 주세요! 저희는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거든요.]
포스트잇으로 적은 메시지들을 통에 넣는 곳이었다.
멤버들이 잠시 영상을 바라보았다.
선우주의 부모님을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듯 마주한 것은 처음이 아니긴 했다.
-이거…….
우주가 머쓱한 얼굴로 그들에게 USB를 내밀었으니까.
-그게 뭐예요. 형?
-아빠랑 엄마가 너희한테 보여 주래…….
-저희한테요?
결혼할 여자를 비롯해 아들의 절친들에게 보여 줄 영상까지 준비했다는 선우주의 아버지.
-진짜 별별 영상이 다 있어. 나중에 나 결혼할 때 상견례랑 하객 입장에 쓸 영상까지 있더라.
리더가 건네준 영상은 그리 길지 않았다.
5분 정도.
우리 애랑 잘 지내줘서 고맙다, 타고나길 잘생겨서 좀 버릇이 없을 수도 있다 하는 이야기 등등.
그 당시 하려고 했던 대답 등이 머릿속을 둥둥 다시 떠다닐 때였다.
“저희…….”
조용히 바라보는 멤버들 속에서 비주가 먼저 입술을 뗐다.
“저희가 우주 형 잘 보살필게요. 친동생은 아니지만 어쨌든 동생들이긴 하니까.”
“돈과 계약으로 이어진 동생들이죠.”
막내의 말에 멤버들이 웃음을 흘렸다.
지호가 왜 그러냐는 시선으로 물었다.
“아 왜 웃어요, 형들? 혈연으로 이어진 것보다 이렇게 돈과 계약으로 이어진 게 더 찐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
“아버님, 어머님. 돈으로 이어진 이 막내가 맏형을 잘 보살펴 보겠습니다.”
지호의 말에 다들 웃었다.
영상을 다시 재생할 시간이 됐는지 같은 말을 반복하는 미남 미녀에게 중현이 미소를 지었다.
“우주 형한테 정말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형이고, 앞으로도 오래 함께하고 싶어요. 제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되는 만큼 한 번 노력해 볼게요.”
“근데 우리가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지, 솔직히 우리가 챙길 만한 부분은…….”
리혁이 그런 말을 할 때였다.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모습들.
-잠은 죽을 때… 자면…… 되는 거야…….
-어어어! 형들! 우주 형 눈 뒤집어져요!
-아, 속 쓰려. 이거 위염 증세가 안 사라지네.
-그러다 형의 육신도 같이 사라질 수 있어여. 아 왜여? 내가 틀린 말했나?
거기에 슈퍼맨의 크립토나이트마냥 알콜에 취약한 문제까지.
“…….”
“…….”
리혁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챙겨야겠네요.”
일만 잘할 뿐.
여러 부분에서 허당인 맏형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혁이 말했다.
“아버님 과학 좋아하시는 거 보니까 저랑 정말 대화가 잘 맞았을 거 같은데…….”
멤버들이 웃었다.
“솔직히 저를 가장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잠깐.”
비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아닐 거 같아. 리혁아.”
“동의.”
“보감.”
막내와 래퍼까지 나서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나 맞다니까요? 아버님이랑 성향이 제일 잘 맞아. 과학 좋아하지. 꼼꼼하지.”
“하지만 아버님은 형이랑 다르게 성격이 좋으시잖아요.”
“…….”
“어른들은 저처럼 귀여운 애 좋아해요.”
그것을 시작으로 누구를 가장 좋아했을지 토론을 시작하는 멤버들.
화르륵 불타오른 이들의 난상토론은 선우주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쟤네 뭐 해요. 민기 형?”
“아버님이랑 어머님이 누굴 제일 좋아했을지 토론하고 있어.”
당사자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 * *
선명주 기념관에서 관람을 마친 후.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마친 우리는 군산 투어를 돌았다.
우선 짭조름한 점심 때문에 당분이 땡긴다는 이들에게 한국의 토종 명물 간식도 선물해 주고.
「……이건 뭐죠? 우주?」
폴 로랑에게 한국의 민속 디저트를 소개했다.
「뚱-카롱이에요.」
「뚱카롱?」
「보시다시피 마카롱이죠!」
최근 들어 한국에서 핫하게 뜨고 있는 뚱카롱을 선물 받은 프랑스인이 마카롱을 바라보며 정색했다.
「마카롱은 이런 두께가 아닙니다.」
「안 드실 건가요?」
장난스럽게 뺏어가려는 내 모습에 폴이 뚱카롱을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처음에는 ‘이건 마카롱이 아니야!’ 하며 부정하던 프랑스인이 얼마 안 가 봉투에서 뚱카롱을 하나 더 빼 가는 것을.
「여기가 바로 여러분이 보고 싶어 했던 월명공원의 석양이에요.」
오늘따라 안개가 좀 심해서 뿌옇긴 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신비스러웠는지 다들 만족한 것 같다.
그렇게 한복을 입은 흑인 뮤지션들과 함께 군산 투어를 모두 마치고 오늘의 마지막 순서.
바로 우리의 김덕순 여사를 보러 갈 시간이었다.
「그분의 성함도 기억합니다. ‘오리’의 Duck과 ‘곧’을 의미하는 Soon을 합쳐 말하라고 선생님이 그러셨죠. 덕순 킴.」
엄마를 알고 있던 지인들과 할머니가 만날 시간이었다.
할머니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지 재즈 뮤지션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상당하다.
「빅 마마 같은 이미지였어요.」
「그분이 해 주시는 순두부를 먹을 때마다 감기가 바로 나으셨다는데, 너무 기대가 되는군요. 치킨 누들 수프같이 맛있는 음식이겠죠?」
이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마치 손이 큼지막한 흑인 대가족의 할머니 같은 인상이 떠오른다.
「항상 이야기하셨죠. 허름한 가게에서 단골손님들과 소통을 하며… 군산 사람들의 정신적인 멘토였던…….」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였다.
목적지가 다가오면서 안개가 휙 걷힌다.
[순이네 백반집]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온천 집처럼 거대한 규모에 간판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건물이 등장했다.
그 앞에서 강인해 보이는 직원들을 거느리고 코트를 펄럭이고 있는 누군가.
눈빛이 형형한 가게의 오너가 두 팔을 촤악 펼치며 여행자들을 환영했다.
졸개들이 그녀의 칭호를 읊조렸다.
“김덕순 더 퀸.”
“군산의 여왕…….”
거대한 백반집.
그 앞에 최종 스테이지의 보스처럼 웅장하게 서 있는 김덕순 여사의 모습에 재즈 뮤지션들이 입을 다물었다.
「…….」
그들에게 내가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뭔가 상상한 거랑은 좀 다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