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92)화 (79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92화

콘서트장에 입장한 관객들이 마주한 것은 바로 거대한 스크린이었다.

무대 세트 뒤편에 설치된 스크린으로부터 어떤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

“뭐야, 벌써 시작한 거야?”

처음에는 공연이 시작한 건가 착각했지만 이내 아니란 걸 알았다.

무대 위에 아무도 없었을뿐더러, 영상 속에서 흘러나오는 연주도 재즈 음악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뭐지?’

자리를 잡은 관객들이 영상을 바라보았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해변을 배경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 차림에 팔을 걷어붙이고, 차분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의 얼굴이 지적인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진짜 잘생겼다…….”

“인물이 참 훤해.”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객석이 관객들로 가득 메워질 때였다.

‘음?’

잔잔하게 연주하던 곡이 뚝 끊겼다.

마치 현장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것처럼 선명주가 피아노에서 손가락을 떼고 있었다.

‘와. 소름.’

물론 그것은 연출된 상황이었다.

선명주의 아들이 관객들이 입장해서 앉게 될 시간을 계산하여 편집한 영상이었다.

공연장 직원들까지 동원하여 진행한 리허설로 시간까지 꼼꼼히 재 보고 만든 결과물.

그것을 알 리 없는 관객들에겐 마치 선명주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가끔은 소리보다 침묵이 더 시선을 끌어모을 때가 있다.

피아노 앞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남자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이윽고, 선명주의 팔이 스르륵 올라가면서 관객의 시선이 그의 손가락 끝으로 모였다.

[♩♪♬♪♬]

피아니스트가 간단한 멜로디를 연주했다.

전 국민이 모두 알고 있는 곡이었다.

‘반짝반짝 작은 별?’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이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아주 단순한 멜로디로 시작된 곡이었다.

하지만 점점 변주들이 흘러나와 복잡해지면서 작은 별로 시작된 멜로디가 마지막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밤하늘로 변해 간다.

“우와…….”

그 연주에 매료된 관객들이 와아 하며 미소를 지을 때였다.

다시금 연주를 마친 연주자가 카메라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러곤 그들을 향해 윙크를 하며 웃었다.

‘어머.’

저도 모르게 수줍은 미소가 나온 관객들이 입가에 손을 슥 올릴 때.

이번에는 다른 곡이 흘러나왔다.

“음?”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했던 관객들이 이윽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바로 피아노로 연주되는 <남행열차>였다.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명곡이 흘러나오는데 마치 노래방 기계의 반주처럼 깔려나온다.

선명주가 카메라를 향해 손짓을 했다.

마치 따라서 불러보라는 듯한 움직임에 관객들이 노래를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은 점점 커져 갔고, 중반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노래의 후렴을 떼창처럼 부르고 있었다.

“흐하하하!”

“하하하!”

예술의 전당에 국민 애창곡이 울려 퍼지는 광경에 모두가 민망한 웃음을 터뜨렸다.

객석 곳곳에 퍼지는 웃음.

동시에 일반적인 예술 공연에서는 보기 힘든 흥겨움과 즐거움이 공기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재미있다.’

관객들이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20년 전의 천재가 준비한 마지막 공연.

그 때문에 어딘가 비장하고 숭고한 마음으로 찾아온 관객들에게 선명주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여러분을 즐겁게 해 드리겠습니다.

음악인의 배려와 철학이 느껴지는 영상이었다.

너무 긴장할 필요 없다.

이것은 그저 음악이니 음악답게 들어 달라.

그런 말들이 환청처럼 들려오는 기분을 느낄 때, 선명주의 손가락은 쉼 없이 움직임을 이어 갔다.

<달빛 창가에서>, <여행을 떠나요> 같은 명곡들의 반주가 이어지면서 노랫소리가 흥겨워졌다.

‘괜히 스타가 아니구나.’

그야말로 반짝이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관객들이 즐거워할 포인트에서 살짝 멈추거나 짓궂게 웃는 미남의 모습에 그들도 즐겁게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있을 때.

“어?”

조명의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면서 무대 위로 연주자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뭐야. 시간이…….”

“이제 시작할 시간인가 봐.”

“어?”

지루하게 핸드폰을 보면서 기다렸을 시간이 삽시간에 지나 있었다.

관객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핸드폰이나 손목시계의 시간을 보고 있을 때였다.

스르륵.

마침내 선명주가 연주를 마쳤다.

자리에서 일어난 미남이 그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 영상이 끝났다.

“와아아아아아!”

아직 본 공연이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벌써부터 주인공을 향한 박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   *   *

해변이 보이는 별장.

열린 창으로 소금기 섞인 바람이 들어오는 거실에서 한 남자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

선명주가 눈을 힐끔 들었다.

“녹화됐어?”

“응.”

“휴…….”

이마의 땀을 훔친 선명주가 피아노 의자에 주저앉듯이 앉았다.

“아이고, 힘들어라.”

“고생했어.”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미녀가 그에게 물을 내밀었다.

“물 드셔요, 서방님.”

“성은이 망극합니다. 부인님.”

부부가 즐겁게 웃음을 터뜨렸다.

신혼은 한참 지났지만 아직도 신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부부였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켠 선명주의 뒤로 그의 부인, 이명은의 손이 부드럽게 그를 감쌌다.

“그런데 이 영상은 왜 찍는 거야?”

“공연 전에 관객들 긴장을 풀어 주려고.”

선명주가 차분하게 말했다.

“공연 전에 관객들이 엄청 긴장해서 들어오잖아. 재즈라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집중해서 들어야 할 것 같고.”

“하긴. 우리도 클래식 공연 가면 그러니까.”

“그렇지.”

그가 부인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음악은 음악일 뿐일걸. 재즈라고 해서 특별히 긴장하고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어.”

본래 음악이란 것은 인간이 즐거우라고 만든 것이 아니던가.

원시인들이 모닥불을 둘러싸고 신명나게 몸을 흔들고, 뼈나 조개 따위로 바닥을 두들기던 것이 음악의 기원일 것이다.

그것이 점차 고도화되면서 피아노, 기타, 드럼과 같은 악기로 변하고 장르가 세분화되었을 뿐.

음악의 본질은 즐거움에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런 영상을 준비하는 거야. 공연 전에 관객들에게 긴장할 필요가 없다고. 내가 지금부터 들려줄 음악들은 당신들이 지금까지 즐겨 듣던 대중음악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거린 이명은이 남편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때 되면 지금 연주하는 곡들을 사람들이 알까?”

“……그, 그것까진 생각을 안 해 봤는데.”

“20년 후잖아. 그때 되면 옛날 노래들 다 까먹었을걸.”

20년 후인 2017년.

당장 다가오고 있다는 뉴 밀레니엄만 해도 실감이 안 나는데, 2017년이란 숫자는 정말 실감이 안 난다.

아니.

어쩌면 공연할 때가 되면 2018년일 수도.

“2018년이라니 정말 현실감이 없네. 그때 되면 자동차가 날아다닐 수도 있겠는데.”

“허어…….”

부부가 오오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선진국이 되어서 수학여행으로 프랑스 파리를 가는 어린이들, 가족끼리 우주여행을 가는 풍경까지.

선명주가 부인에게 말했다.

“나중에 화성 여행 생기면 가 볼까?”

“우주 데리고 꼭 가 보자. 아, 엄마도 데리고 가야 하는데… 엄마는 왠지 싫다고 할 것 같다.”

“하긴, 장모님 취향은…….”

성향이 맞는 사람들끼리 만난 까닭인지, 선명주와 이명은의 시시콜콜한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명은이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런 자잘한 영상까지 찍을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쓸 일도 없을 영상인데…….”

“기왕 준비하는 거, 끝까지 다 준비해야지.”

“괜히 신경 쓰여서…….”

“너무 신경 쓰지 마. 이건 정말 만약을 대비하는 거니까.”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부인의 모습을 보니 이런 영상을 녹화하는 것 자체가 불길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뜻을 따라 주는 부인에게 선명주는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이런 일을 추진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야 해.’

그는 무엇이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직성이 풀렸다.

‘만약의 일’이라는 것이 정말 일어났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죽음.

친척들로 인한 재산의 공중분해.

보육원을 전전하면서 지켜 줄 보호자 하나 없는 험난한 삶.

그 때문에 편집증에 가까울 만큼 계획에 집착하는 남편의 성향을 잘 이해하고 있는 부인이었다.

“다음 영상 녹화 준비할까?”

“응.”

이명은이 삼각대 위에 놓인 카메라를 조작하러 간 동안.

선명주는 해변 너머 하늘을 바라보았다.

밝은 하늘 너머로 그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 애썼다.

‘20년 후라…….’

당장 10년 후도 상상이 안 되는데 20년 후가 상상이 될 리가 없었다.

그때쯤에 만약 이 영상이 쓰이게 된다면, 그의 공연은 과연 어디에서 준비가 되고 있을까?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몇 명일까?

아니.

공연이 열릴 수는 있을까.

“하하.”

그의 유일한 외동아들을 떠올리는 순간 그저 웃음만이 나왔다.

자기 엄마를 닮아서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한 번씩 꽈당 할 만큼 덜렁대는 아들이었다.

정말이지 몸치 그 자체.

‘그 부분에선 나를 닮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래도 그가 지닌 특별한 재능은 유전이 안 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웃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우주를 생각하니 웃음이 흘렀다.

지금 다섯 살인 아들.

막 군대에서 전역하고 대학교 졸업학기를 다니고 있을 20년 후의 아들이 과연 이런 공연을 준비할 수나 있을까.

‘만약 열린다면… 열리는 사실 그 자체에 감사해야겠군.’

성공적으로 열린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과연 그런 일이…….

꽈당!

마당 쪽에서 무언가 부서지고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선명주와 이명은이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주야!”

“우주야!”

바깥에서 으아아앙 울음을 터뜨리는 다섯 살 아들을 향해 그들이 다급하게 뛰어갔다.

아들내미가 흙바닥에 주저앉아 엄마, 아빠 하면서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제 손가락만 한 벌레를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아이고야.’

아들을 향해 뛰어가면서 선명주는 헛웃음을 지었다.

우리 아들 언제가 돼야 다 클지.

*   *   *

“안녕하세요. 선우주입니다.”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영광이에요.”

악수를 청하는 선명주 팬클럽의 회장님과 정중하게 악수를 하고는 자리를 안내해 드렸다.

손님들이 쉼 없이 몰려든다.

“안녕하세요! 허어, 진짜 우주 씨…….”

“초대에 응할 수 있어서 정말이지 기쁘네요. 하하!”

“아버님의 공연을 보러 와서 정말…….”

곁에 서 있는 석환 형이 귓가로 사람들의 이름을 속삭여 주었기에 망정이지.

기억력 좋기로 자부하는 나도 혼선이 올 만큼 손님이 많았다.

특별히 초청한 손님들을 비롯해서 예술 관련 정부 관계자들까지 정신없이 인사를 반복했다.

“형.”

비주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땀 좀 닦아야 할 것 같아요.”

“고마워. 비주야.”

이마에 난 땀을 손수건으로 슥 훔치고는 손부채질을 했다.

리혁이가 휴대용 선풍기를 내밀었다.

“엄청 더워 보이는데 괜찮아요?”

“응.”

“그러게 내가 아침에 그랬잖아요. 얇은 거 입으라고.”

정장에 넥타이를 하고 있어서 좀 덥긴 했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었다.

생일 선물을 받은 것처럼 가슴이 들뜨고, 괜스레 히죽히죽 웃음이 흘러나온다.

“형, 저기 손님 또 오세요.”

“아, 오키.”

미어캣처럼 망을 보던 중현이의 말에 다시금 근엄하게 나가서 악수를 하고는 손님맞이를 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손님맞이를 한 후.

“할머니.”

“어, 왔냐.”

동생들과 함께 우리 할머니 곁에 앉았다.

잘 안 보이는지 돋보기를 쓴 채 팸플릿을 읽는 할머니였다.

[His Last Vow]

검은색 표지 위로 아빠의 모습이 별자리로 만들어져 있는 팸플릿이었다.

아빠의 약력에 대한 이야기와 오늘 공연을 해 줄 연주자들의 리스트가 쭈르륵 적힌 것들.

막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형, 근데 완전 콘서트 분위기예요.”

“그러게.”

동생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보통 우리가 어디에 입장하거나 그러면 환호가 터지거나 소란이 이는데, 지금은 관객들이 우리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피아니스트가 대중음악을 연주할 때마다 관객들의 노랫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흡사 우리 콘서트에서 뮤비가 나올 때, 따라 부르는 수플레들 같다.

“야, 이게 원래 요런 공연들은 요런 분위기냐.”

“아니, 할머니. 아빠 공연이 좀 특이한 거야.”

“고렇구만.”

폴 로랑이나 윈스턴 로스 선생님도 주변 관객들의 반응을 바라보며 못 말린다는 듯 웃고 있었다.

저마다 추억에 잠긴 얼굴이다.

그들을 일별하고는 나도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종종걸음으로 걸어 들어오는 연주자들과 시선이 마주치면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본 공연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   *   *

공영방송 PBS 1채널.

선명주의 공연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때렸던 공영방송이었다.

“이야…….”

“이거 실화인가?”

주조정실에 앉아 있는 PBS의 직원들이 쭉쭉 올라가고 있는 실시간 시청률 그래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게 뉴블랙 효과인가.”

“얼마 전에 그 낚시 프로도 뉴블랙 얘기 나오고 엄청 떴다면서.”

그야말로 시청률로 아버지에게 효도를 하고 있는 선우주였다.

내부적으로도 ‘이건 시청률 좀 나오겠다’ 하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많이 나올 줄은 몰랐다.

시청률의 여신이 있다면 그들에게 윙크를 하려다가 어어어, 이거 뭔데 할 것 같은 시청률.

“……시작 전부터 기록을 깨네.”

음원 사이트도 아닌데 지붕 뚫고 올라가는 시청률에 어안이 벙벙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네티즌들은 손을 모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와 오늘 광고 숫자 봐

-기업들 총출동했네

-얼른 시작했으면 좋겠다ㅎㅎ

-ㄷㄱㄷㄱ

-이게 뭐라ㅓ고 설레냐

주말 점심을 맞이하여 TV가 틀어져 있는 모든 곳이 PBS1 채널을 틀고 있었다.

철교 위를 지나는 지하철의 승객들이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접속을 하고.

카페나 당구장, 기차역과 식당을 가리지 않고 선명주의 마지막 공연을 보기 위해 채널을 바꾸고 있었다.

“어어! 시작한다.”

“볼륨 좀 높여 봐요. 하나도 안 들려.”

[예술의 전당 생중계]라는 자막과 함께 현장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흘러들어온다.

-뭐지

-되게 신난? 분위기네??

-??

-내가 생각한 거랑 분위기가 다르다

클래식 공연 특유의 침묵과 정중한 분위기보다는 뭔가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그런 이들에게 누군가 링크를 올려 줬다.

[실시간 예술의 전당]

남행열차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버님이 흥을 아신다

-갑자기 친근해지심ㅋㅋㅋㅋㅋ

-그치 이게 한국의 흥이지

-대뜸 남행열차를 연주하시는 아버님을 보고 부전자전이라는 것을 이해하였습니다

-떼창 지리누ㄷㄷㄷ

-내가 PBS였으면 이거 미리 중계해 줬음. 머 방송국 센스가 그렇지

-와 아이 컨택 타이밍 미쳤다..

-우주야 미안하다 아버님이 최애가 될 거 같다

-아들팬이 수플레니까 아버님 팬 하려면 뭐 해야 할까

-수르스트뢰밍 어때

-아 꺼져ㅗㅗ

-이거 보고 수르스퇴밍 검색하는 사람 없길 바람.. 구에엑

신명나게 대중음악 메들리를 연주하는 선명주의 영상을 보며 현장 분위기가 절로 납득이 갔다.

시작 전부터 30분 넘게 떼창을 하는데 어느 관객이 신이 안 날까.

이걸 방송을 왜 안 해 줬냐며 방송국의 센스를 타박하는 가운데, 마침내 본 방송이 시작됐다.

현장에 입장하는 연주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을 때.

“우와.”

암전된 무대 위로 네온사인 조명을 비롯해, 본토의 재즈 클럽을 옮겨 온 것 같은 세트가 보였다.

파츠츠츠츠.

지직거리는 효과음과 함께 무대 스크린으로 선명주가 등장하면서 현장에서 환호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관객 여러분.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군요.]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미남이 그들에게 웃으며 물었다.

[오늘 날씨는 어떠셨습니까? 추우셨습니까? 혹은 더우셨습니까? 공연장에 오시는 데 불편함은 없으셨습니까?]

저마다 마음속으로 대답을 하는 가운데.

선명주가 말했다.

[어떤 인사말로 시작을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만, 아무래도 한국인이라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인사말이 있죠. 모두들 식사는 하셨습니까?]

공연장에서 작은 웃음이 흘렀다.

전국적으로는 수백만 명의 웃음이었다.

[첫 곡으로 무엇을 고를까 고민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그런 식사에 관한 곡이면 어떨까 싶더군요.]

그런 말을 하던 아버지가 영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참, 그리고 아들. 아마 공연장에서 이 영상을 보고 있다면 밥은 꼭 좀 잘 챙겨 먹으려무나.]

애가 밥을 잘 안 먹어요, 하는 아버지의 말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중계 카메라가 현장에서 머쓱한 듯 먼 곳을 바라보는 선우주와 키득거리는 멤버들을 잡았다.

근처에 앉은 폴 로랑과 윈스턴 로스도 폭소를 하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국민 앞에서 잔소리ㅋㅋㅋㅋㅋㅋ

-아버님도 공연이 이 정도 규모일줄 알았으면 안하셨겠지ㅋㅋㅋ

-귀여워ㅋㅋㅋㅋㅋ

-아 뭔가 다 귀엽다ㅋㅋㅋㅋㅋ

-분위기 상상한 거랑 다른데 좋음ㅋㅋㅋㅋ

엄숙함 속에서 ‘나의 개쩌는 곡을 감상하십시오’ 하는 분위기로 공연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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