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93화
밥 좀 챙겨 먹으라는 아빠의 멘트가 끝난 후.
무대에 올라온 재즈 밴드가 신명나는 곡조로 연주를 시작했다.
곡 제목은 .
아빠가 남긴 일지에 곡을 만들게 된 경위가 쓰여 있는 곡이었다.
-뉴욕에서 비 오는 날 베이글과 커피를 먹음.
드럼이 츠츠츠츠 하면서 흩날리는 빗방울을 표현하고, 색소폰 소리가 따끈한 커피처럼 흘러 들어온다.
곡의 배경은 1994년이라는데,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곡이었다.
아니.
오히려 최신곡 같은 분위기였다.
“우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막내가 몸을 앞으로 쭉 빼며 눈을 크게 뜬다.
첫 곡부터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물가에서 반짝이는 조약돌을 발견한 어린아이 같은 표정에 괜히 내가 기분이 뿌듯하다.
“…….”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고개를 슬쩍 돌려서 객석을 확인하는데, 첫 곡부터 다들 몰입한 얼굴로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그만큼 초반부 몰입도가 좋은 곡이었다.
아빠가 왜 이 곡을 첫 번째로 골랐는지 이해가 된다고 할까.
분명 나는 서초구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 곡을 듣고 있는데, 듣다 보면 정말 뉴욕의 카페에서 베이글과 커피를 먹고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안개 낀 대도시.
빛을 흩뿌리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짙게 퍼진 커피 향.
감각적으로 자극을 주는 소리들을 들으며 다시 한번 감탄했다.
“형.”
첫 곡이 끝나고 박수가 흘러나올 때, 지호가 내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장난 아니에요. 진짜.”
“제대로지?”
“와, 저 재즈 좋아했네요? 취향 아닌 줄 알았는데.”
끝내주는 악보와 끝내주는 연주자들이 만나니 결과물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첫 곡부터 박수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아빠의 멘트와 함께 곡들이 차례대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요즘 친구들은 사랑 고백을 어떤 방식으로 하나요? 요즘에도 학생들끼리 서로의 사물함에 편지를 넣나요?]
수줍은 사랑 고백을 다룬 <사랑>이라는 곡도 나오고.
[건망증에 대한 곡을 하나 써 보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제가 왜 이 곡을 썼는지 기억이 안 나더군요. 제목과 의도가 일치된 곡이라고 할까요?]
곡 소개부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 <건망증>이라는 곡도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분위기.
엄숙하지 않고 다들 웃고 즐기며 음악을 감상하는 분위기에 감탄했다.
공연은 진짜 이런 식으로 하는 거구나.
준비할 때만 해도 아빠가 남긴 영상들을 보면서 기획을 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내가 관객의 입장이 되어서 이 공연을 즐기니 어떠한 흐름 같은 게 눈으로 보인다.
마치 하나의 악보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인트로는 잔잔하게 시작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서서히 그 음계를 올려서 고음부로 간다.
그런 와중에도 완급조절을 기가 막히게 해서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가…….
“형.”
곡이 하나 끝나고 막내가 내게 속삭였다.
“우리도 방금 아버님 멘트 써먹어요. 콘서트할 때.”
“좋아, 사람들이 다 까먹을 때쯤 도용하자.”
가끔 너무 좋은 곡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것처럼.
아빠의 공연에서 내가 취할 만한 점들이 보였다.
무조건 강하고 자극적인 무대만이 최고가 아니라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든가.
관객들에게 쉬어 갈 틈을 주어야 한다는 점이라든가.
나보다 10년 이상의 경력이 더 있는 대선배 음악인이 보여 주는 완벽한 공연의 지향점이 눈에 들어온다.
“…….”
“…….”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동생들도 진지한 눈으로 공연을 보고 있었다.
그만큼 배울 만한 점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중에서 우리가 가장 눈여겨 본 것은 바로 그런 공연의 완급 조절이나 곡 배치, 쇼맨십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팬에 관한 태도였다.
* * *
1993년.
그것이 바로 한국에서 ‘선명주 팬클럽’이라는 오래된 팬덤이 등장한 시기였다.
미국과 일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쭉 들려왔지만, 팬덤이 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먹고 살기 바쁜데 뭔 피아니스트 음악까지 찾아듣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런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미튜브만 검색해도 해외 활동 자료들이 줄줄이 쏟아지는 시기가 아니었다.
신문이나 TV 뉴스 등으로만 접하던 시기.
그러나 그 시기에서도 어떻게든 자료를 찾아내서 덕질을 해내고 말았던 선명주 팬클럽의 회원들이었다.
‘우린 당신의 팬입니다.’
그저 그가 좋았다.
단순히 동양인이 해외에서 잘나간다는 것은 그런 무수한 매력 중에서 하나의 요소일 뿐이었다.
그들은 선명주라는 사람이 좋았다.
그가 보여 주는 음악, 음악에 대한 가치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선명주라는 사람의 매력.
-저의 팬이라고요?
김포공항에 꽃다발을 들고 마중 나온 이들에게 선명주는 정말 그가 보여 준 것 중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말하는 팬들에게 그가 물었다.
-그럼 앞으로도 저의 팬을 계속 해 주실 건가요?
그들은 그렇다고 답했다.
팬클럽이 결성된 이후로 6년 동안은 팬들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비록 미국의 주류 음악계에서 배척 받긴 했지만, 여전히 선명주는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음악인이었고.
국내에서 무료로 공연을 여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최고급의 연예인이라면 진행하던 토크쇼처럼, 몇 년 만 지나면 선명주의 이름을 딴 <선명주 쇼>도 나왔을 거라고 했을 정도.
서울, 대전, 대구, 광주, 부산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 무료 공연마다 따라가며 그의 음악을 즐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음악인 선명주 씨와…….]
1999년 11월 9일.
뉴스 속 날짜까지 선명히 기억나는 그날의 뉴스 화면 속에서 보았던 장면들.
그날로 팬클럽의 활동은 잠정 중단됐다.
간혹 마음이 맞는 몇몇끼리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곤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덕질의 역사가 끊어지지는 않았다.
-선명주 Best 앨범.
비 오는 날이나 심심할 때면 CD 한 장을 재생하며 하루 일과를 보내거나 드라이브를 하거나.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20년.
고등학생이던 팬은 아이 둘이 있는 아빠가 되었고, 신입사원이었던 팬은 이제 주름살과 함께 부장이란 직함을 달았고, 중년의 베테랑 교사는 은퇴를 앞둔 정년이 되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영상과 사진으로만 존재하는 그들의 아티스트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
-저번에 썸씽 부른 신인 그룹이라고 하는데. 저기 어떤 애 아버지가 엄청 유명한가 봐요.
-요즘에 쟤네가 그렇게 인기라고 하더라.
-근데 우주 아버지가 그렇게 유명한 분이라고 그러던데요?
TV 속에서 선우주를 접한 타이밍은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하승주의 뮤직카페에 출연해서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뉴블랙이 서서히 인기 그룹으로 발돋움할 때.
온갖 광고와 TV 속에서 등장하는 얼굴을 바라보며 그들도 기시감을 느꼈다.
‘어?’
정말로 익숙한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아버지의 이목구비를 빼닮았지만, 어머니를 닮아 수려한 미모를 지닌 아이돌.
포털 인물창에 [아버지 선명주]라고 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며 격세지감을 느꼈던 팬들이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나?’
그 작고 어렸던 선명주의 아들이 어느새 버젓이 20대 청년으로 성장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국내 가요계를 집어삼키더니 요즘에는 해외까지 노리고 있다나.
예능, 광고, 미튜브 등을 비롯해 어딜 가든 선우주가 보이면서 열심히 뒤에서 응원을 했던 이들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우주 분유값 정도는 내가 냈지.’
랜선으로 키운 아들내미나 조카를 바라보듯이 지켜보고 있는 한편.
그들은 오랜만에 재회를 했다.
2000년대 이후로 활동이 뜸했던 선명주의 팬클럽에서 종종 이야기가 오가고, 오프라인에서 서로 만나서 머쓱하게 웃고.
그런 식으로 클래식 매니아들처럼 소소하게 활동을 이어 갈 때였다.
-이, 이거 봐요!
선명주의 팬들이 모인 단톡방에 다급하게 링크가 올라왔다.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 선명주가 돌아왔습니다.]
그날의 충격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었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들의 아티스트가 20년 만에 돌아와 마지막으로 공연을 열겠다고 선언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우주가 이번에 미국에서 자선파티를 열었는데 거의 전 세계 투어를 해도 될 정도로 큰 액수가 모였대요.
-뭐야. 이거 티켓팅이 아닌데?! 전 국민 대상으로 추첨을 받는다는데요?
-안 돼…!
스케일이 커져도 너무 커져 있었다.
본래였다면 팬들을 위한 소소한 작별 인사 같았을 무대가 거의 전 세계 재즈계의 핫이슈로 떠오를 정도.
‘우주야……!’
팬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떻게 방법이 없었다.
레몬 엔터에 전화를 걸어서 ‘우리가 팬클럽인데 표가 좀 필요하다’ 하는 것도 염치가 없고.
그저 추첨 응모나 해야겠다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을 때.
[아버지의 공연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선우주의 초대장이 날아오면서 그들은 얼떨떨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행복함을 느꼈다.
매일이 행복했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영화의 속편이 곧 개봉하는… 아니, 그와 비교할 수도 없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공연장에 도착한 팬들은 그 기쁨을 누리는 중이었다.
“훌쩍.”
“울지 마세요. 저도 눈물 나니까.”
“크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열심히 참았지만 자꾸만 눈물과 콧물이 번갈아서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콧물이 묻은 휴지를 실수로 눈에 문지른 과거 고등학생 팬이 오열할 때.
이제는 건설회사 부장이 된 팬이 손수건으로 양 눈을 콕콕 찍고는 건네주었다.
“하…….”
주변에서 한숨을 내쉬는 관객의 소리에 눈치를 슬금 살핀 팬들이 다시금 울음을 꾹 참았다.
“아, 왜 이러죠.”
“나도 모르겠다. 진짜.”
특별히 감정이 북받칠 만한 것도 없는데 괜스레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왔다.
20년 전에 녹화된 것이란 걸 알면서도, 마치 그들에게 살아서 무언가 이야기를 해 주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들려 드린 음악은 어떠셨습니까? 1부의 음악들은 마음에 드셨습니까?]
그들이 마음속으로 대답을 할 때.
선명주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
[음악만 듣는 것도 너무 지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져 볼까요?]
장면이 전환되면서 또 다른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선우주에게 부드럽고 화려한 미모를 물려준 그의 어머니이자 선명주의 동반자.
‘명은 씨다.’
그가 공연을 할 때면 언제나 첼리스트로서 보조를 맞췄던 이명은이 선명주와 마주 보고 앉았다.
코너 속의 코너 같은 분위기.
미국 TV쇼를 벤치마킹했는지 큐 카드를 든 이명은이 토크쇼 호스트처럼 남편을 마주 보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여러분에게 질문을 받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작게 웃는 사람들에게 선명주가 자신이 미리 준비했다는 질문지에 대해 답변을 해 주었다.
이 공연은 왜 준비된 것인가?
음악인으로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라이벌로 생각한 사람은 있는지.
[없습니다. 라이벌이라 자칭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저와 순수하게 음악적 성취가 비슷한 사람은 없군요.]
생전에는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삼갔을 대답들도 거침없이 하는 선명주.
그런 대답들을 들으며 선명주의 팬들이 ‘아’ 했다.
정말 솔직한 답변들이 나오면서 과거 왜 그가 그런 활동을 했는지,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는지 등의 퍼즐이 딱딱 끼워져 가는 듯했다.
일반 관객들은 ‘오~’ 하고 듣고, 팬들이 눈을 초롱초롱 뜰 때였다.
[마지막으로, 이 공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인의 질문에 선명주가 고민에 잠겼다.
무언가 할 말을 고르듯.
입술을 달싹이던 미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의 팬들에게 이야기를 남기고 싶군요.]
팬이란 키워드가 나오자마자 전직 고등학생 팬이 오열했다.
선명주가 미소를 지었다.
[이 영상을 보고 있을 저의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군요. 아마 그 공연장에 적어도 한 명쯤은 있을 거니까요. 그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일단…’ 하면서 선명주가 운을 뗐다.
[일단 우리 팬들.]
선명주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네요. 어쩌다 보니 저 먼저 가게 됐습니다.]
절대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넉살맞은 농담에 여기저기서 기침과 웃음이 흘렀다.
[20년.]
선명주가 읊조렸다.
[20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을 겁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어르신이 되었지요. 여러분이 저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를 제가 직접 듣지 못해 정말… 안타깝습니다.]
소리 없이 흐느끼는 팬들을 향해 그들의 아티스트가 말을 이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저라는 사람을 20년이란 시간 동안 마음에 품고 있어 줘서.]
그러니 나는 먼저 떠납니다.
여러분이 가 보지 못한 여정을 향하여.
그런 말을 하며 작별 인사를 해 주는 음악인을 보며 팬들이 양손을 들어서 눈가를 덮었다.
“…….”
하지만 눈물을 흘리면서도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홀가분함에 가까운 기분.
오랜 기간 동안 하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를 함께 하면서 응어리진 무언가가 풀려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배려 가득한 목소리가 그들에게 닿았다.
[이제 멋진 모습으로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의 마지막 부탁에 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최고의 작별 인사였다.
* * *
1부의 Q&A 시간을 끝으로 잠시 광고 타임이 이어졌다.
겨울철 장사를 위주로 하는 광고들이 흘러나오면서 시청자들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운 뭔데.’
선명주의 팬이 되어 본 적 없는데도 괜히 울컥하고, 그들의 기분에 공감이 되는 1부 엔딩이었다.
-나 왜 울어ㅜㅠ
-진짜 오늘 가 있는 팬들이 있다면 팬들에게 최고의 작별 인사이자 선물이었겠네요.
-웃겼다가 울렸다가 들었다 놨다ㅠㅠ
-아버님 신파 영화찍으시면 천만찍으실 거 가타요..
-저기 가 있는 팬들은 진짜 눈물날듯
커뮤니티 등에 [20년 만에 최애가 작별 인사를 해 왔다] 하는 제목으로 방금 전의 클립들이 떠돌아다니고.
오프라인에서도 ‘우와…’ 하고 저마다 감상평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제한된 시간을 두고 기업들이 단가 싸움을 벌였던 광고 타임이 끝나고 2부가 돌아왔다.
처음에는 슬퍼서 2부 제대로 이어 갈 수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얼레?’
막상 2부가 되니 금세 또 까먹은 대중들이었다.
신명나게 울려 퍼지는 재즈 곡과 천재의 센스 있는 멘트.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무대가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흥이 다시금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쉽게도 오늘의 마지막 곡입니다.]
마지막 곡을 할 시간이었다.
[얼마 전에 깨달은 건데 사람마다 식사를 하는 방법이 다르더군요. 예를 들어 저의 부인은 먹기 싫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맨 마지막에 먹더군요. 반면에 저와 아들은 먹기 싫은 것을 맨 처음부터 먹고, 맛있는 걸 마지막에 먹죠.]
선명주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의미로 최고의 곡을 마지막에 남겨 두었습니다.]
그 말을 증명하듯 무대 위로 올라온 재즈 연주자의 숫자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얼마 후면 뉴 밀레니엄이라고 하더군요. 마침내 인류의 두 번째 천년기가 끝나고 세 번째 천년기가 찾아온다네요. 물론, 이 공연을 보게 될 분들에게는 이미 과거의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천재가 운을 뗐다.
[세기 말이라서 그런지 놀라운 소식들이 들려오더군요. 영국의 어느 연구소에서는 세계 최초로 복제양을 만들었다더군요. 미국에서는 패스파인더 호가 마침내 화성에 착륙했다던데…….]
그의 맑은 눈이 카메라 너머 관객들에게 향했다.
[요즘 들어 저는 궁금한 것이 참 많습니다. 인류는 화성에 갔습니까? 자동차는 날아다니나요?]
90년대 사람의 질문에 2010년대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워낙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말이지요. 아, 제 부인도 카메라 뒤에서 묻네요.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는 무엇인지… 요즘에 저희 부부는 <용의 눈물>이라는 사극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추억의 드라마가 언급되면서 어른들이 반가운 미소를 짓는 한편.
선명주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겠군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한국은 많이 혼란스러운데… 20년 후의 한국은 어떻습니까? 외환위기는 잘 극복하셨습니까?]
TV로 보고 있던 전국의 시청자들과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가 되었습니까? 97년도의 대한민국보다 더 아름답고 멋진 나라가 되었습니까?]
그에 대한 답변들이 저마다의 마음속에서 이어졌다.
[저는 정말로 제가 없는 세상이 궁금합니다. 얼마나 멋진 일들이 벌어졌을지, 얼마나 슬픈 일들이 벌어졌을지. 그래도 20년 후의 세상이라면… 저의 세상보다는 더욱 아름답겠지요?]
그의 질문이 차분하게 이어졌다.
[세계에 평화는 찾아왔습니까?]
[어린이들은 더 이상 기아와 가난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일상은 더 나아지셨습니까?]
답변하기 힘든 질문들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때.
[여러분에게 지금 들려 드릴 곡은 바로 그런 저의 질문들을 담아 쓴 곡입니다.]
피아노 위로 손을 올린 천재 음악인의 신호에 따라 연주자들이 악기를 손에 쥐었다.
[Question.]
선명주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이것이 바로 저의 마지막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