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94)화 (79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94화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신을 모시는 신전의 건물도, 어마어마한 군세를 호령하는 장군도, 천하를 지배하는 제왕도 결국에는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남는다.

길가메시라는 아주 오래된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4천 년을 넘어 현대 인류에게 전해지듯이.

이야기라는 것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불멸성을 지니게 된다.

“뭐. 내 곡이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랜드 피아노를 바라보며 선명주가 중얼거렸다.

악보 위에 휘갈긴 그의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Question]

그가 남긴 곡 중에서 가장 역작이라고 할 만한 곡이었다.

물론 임팩트만을 따진다면 이 가장 빼어날 것이고, 변주의 폭을 고려한다면 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음악 본연의 재미에 있어서만큼은 을 따라갈 만한 곡이 없었다.

즐겁다.

곡이 추구하는 메시지를 떠나 일단 즐겁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아서 기진맥진한 채 침대에 누우면, 내일은 무엇을 할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한다.

Question은 그런 의도를 담은 곡이다.

축제처럼 신나는 곡이 끝나고 난 다음의 여운이 그런 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된 곡.

“의도대로 잘 될지는 모르겠네.”

그가 갸름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적어도 20년 후의 음악 트렌드에나 어울릴 법한 곡이라 그런지 미래인들의 반응이 감이 안 온다.

그가 시선을 내려 아들을 바라보았다.

“너는 어떤 것 같니. 아들?”

하지만 품속에서 곤히 잠든 아들은 대답 없이 새근거리며 뒤척일 뿐이었다.

뽀송뽀송한 뺨.

다섯 살배기 아들은 제 아버지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한 채 몸을 계속해서 뒤척이고 있었다.

“어이쿠… 어구구.”

나이는 다섯 살인데 또래보다 성장이 빨라서 그런지 벌써부터 길쭉길쭉한 아들의 팔다리가 계속 흘러내린다.

거대한 고양이를 품에 안은 사람처럼 자세를 고친 선명주가 땀을 훔쳤다.

육아와 촬영에 지쳐서 뻗은 부인을 대신해 아들을 돌보고 있는 아버지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좋을 때다.’

지금이야 아빠 하면서 품에 안겨 있지, 여기서 몇 년 만 지나도 머리가 쑥쑥 커질 테니까.

엄마아빠가 최고인 시절은 아마 지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아들을 품에 끌어안은 채 선명주는 다시금 눈앞의 악보에 시선을 집중했다.

“흐으음…….”

인간이 남긴 모든 유산은 이야기로서 불멸성을 획득한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말하자면 음악에 서사가 있을 때, 더 오래 기억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 곡은 제가 열심히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녹음을 해서 만든 곡입니다!

-제가 한창 마약 중독에 빠져 있던 시기에, 약 중독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으로 쓴 로큰롤이죠.

전자와 후자 중에서 대중들에게 더 감명을 줄 수 있는 쪽은 당연히 후자다.

물론 그렇다고 없는 말을 지어 내는 것은 안 되겠지만.

‘약간의 자극적인 맛을 첨가하는 것도 좋겠지.’

20년 후의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 만한 멘트를 생각하면서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는 음악인이었다.

음악도 자기 PR이 중요한 시대 아니던가.

“패스파인더 호나 복제양 돌리 같은 현 시대의 키워드를 언급해 주고… 가볍게 시작해서 조금 진중한 메시지로…….”

메모지 위로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기호로 멘트를 정리해서 적은 선명주가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아들이 깨지 않도록 오른쪽 끝자리 높은 음계를 살포시 누르면서.

팅-

팅- 팅-

음계들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면서 생각이 서서히 정리된다.

그의 부인은 이런 소리를 들으면 무슨 빛깔들이 보인다는데, 이럴 때면 그게 어떤 감각인지 참 궁금했다.

‘음, 그러고 보니 그것도 Question이네.’

말장난을 하며 유쾌하게 웃은 음악인이 건반을 가볍게 두드렸다.

Question의 기본 멜로디가 반복되면서 품속에 있는 아들이 비척댔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좋은 곡을 들려주면 반응을 보이곤 했는데.

“역시 내 아들이야.”

명곡 판별기 아들을 바라보며 바보처럼 웃은 미남이 악보를 넘겼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잠이 든 아들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런데 그거 아니? 이 곡은 널 떠올리며 썼다는 걸.”

Question이라는 곡에 대해 소개할 멘트에 미사여구를 넣긴 했지만, 결국에는 아들 세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가 없는 미래를 가정해 만든 공연.

그곳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자연스럽게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친구들은? 친구들은 잘 사귀고 있니.

-너는 행복하니?

음악으로 전하는 질문들이 녹아 들어가 있는 곡이었다.

그것을 베이스로 하여 ‘당신들의 세상은 어떻습니까?’ 라는 메시지로 확장하는 곡이었다.

“……관객 여러분. 여러분이 듣는 이 곡은.”

Question에 대해 잔뜩 진중하고 힘이 들어간 표정으로 리허설 멘트를 연습하려고 할 때였다.

꼬르륵.

어디선가 난 소리에 선명주가 눈을 깜빡거렸다.

‘난 아닌데.’

고개를 내려서 바라보자 어느새 잠이 깼는지 그의 아들이 멀뚱멀뚱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초롱초롱.

꼬르륵거리는 배에 손을 올린 아들이 눈을 빛냈다.

“아빠.”

“응.”

“나 배고파.”

“…….”

음악에 담긴 무수한 Question들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다른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헛웃음을 지은 천재 음악인이 진중한 표정으로 아들에게 물었다.

“배 많이 고프니?”

끄덕끄덕.

“부엌으로 나가 보자. 아빠가 저녁 맛있게 만들어 줄게.”

“응.”

“엄마 깨지 않게 조용히.”

“조용히.”

부자가 손을 잡고 살금살금 부엌으로 걸어갔다.

*   *   *

그로부터 20년 후.

스마트폰이나 TV로 실시간 생중계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우와.’

마법같이 홀리는 멘트에 빠져들었다가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무대 위에 연주자들이 가득했다.

오늘의 엔딩 무대였다.

미국의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가 마이너 코드를 누르면서 곡의 초반부가 부드럽게 시작됐다.

-와 임팩트 미쳤네요ㄷㄷㄷ

-오늘 pbs 생방으로 안 본사람들은 진짜 후회할 겁니다ㅋㅋㅋㅋ

-우주야 미안하다 아버님 팬 됐다ㅋ.ㅋ

-암튼 그렇게 됐다 우주야

-우주야 메로나 사 와라

-빌보드 선정 90년대 최고의 음악인 랭킹 <- 근데 진짜임

-포브스 선정 내 마음을 훔친 남자 1위

-멘트 미쳤네요 정말 ㄷㄷ

인터넷에서 방금 전에 보았던 멘트에 대한 감상평이 올라오는 것도 잠시.

-노래 진짜 끝내준다

-뭔 노래를 보여 주려고 저 양반 후까시를 저리 잡나 했는데ㅋㅋ.. 뭐 그럴 만하네요ㅎ

-근데 확실히 90년대풍이라 하기에는 뭔가 이질적인게 있는 듯요

-노래가 좋음 걍

-오늘부터 자칭 재즈 전문가들 겁나 커뮤에 등장할듯ㅋㅋㅋㅋ

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인터넷의 게시글 리젠도 적어졌다.

그만큼 다들 무대에 집중을 한 것이다.

“이야…….”

“나 막귀인데 노래 진짜 좋다….”

“우와.”

조지 거슈인의 처럼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선상에 있는 듯한 음악이었다.

못 보던 악기의 연주자들도 보인다.

잔잔하게 시작된 노래가 유쾌함과 위트 있는 변주를 보이면서 사람들이 TV 볼륨을 높였다.

‘좋다.’

90년대 특유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번영에 대한 기대감을 담은 듯한 노래였다.

살짝 오래된 듯한 메시지와 어울리지 않는 최신 곡의 분위기가 독특하게 융합이 된 곡.

피아노 솔로가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감탄했다.

-올해 들은 노래 중에 젤 좋네요

-그야 올해는 1월이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작년까지 포함해서 들은 노래 중에 젤 좋아요

-지금까지 들어 본 가사없는 노래 중에 젤 조음

-선우주가 10년후에 어떤 모습일지 알 것 같음ㅋㅋㅋ

-그런데 아버님은 진짜 미래를 보신ㄱ ㅓㄴ가 요즘 나왔다고해도 믿겠음

-우주야 누나는 네가 음원을 준비했으리라 믿는다

드럼과 색소폰이 기가 막히게 얽혀들면서 곡의 하이라이트에 진입하고.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음악은 3분 40초 즈음이 되었을 때쯤 마무리가 되었다.

‘엇, 더 길게 해 주지…!’

정말 미래라도 본 것인지 3분 40초 만에 짧게 끝나는 곡이었다.

짧다면 짧을 수도 있지만, 갈수록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지는 현대인들에게는 정말이지 딱 적절한 길이었다.

아무리 감동적이고 대단한 자극도 10분 이상 이어지면 사람을 무뎌지게 만든다는 것을 고려한 원작자의 의도였다.

그 때문에 사람들의 감동 수치는 최고조였다.

“와아아아아아-!”

클래식 공연처럼 자리에서 일어난 관객들이 흥분 가득한 환호를 외치며 박수를 쳤다.

연주를 마친 음악인들도 일어나 관객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선명주의 팬클럽 회원들이 오열하는 장면이 잠시 나오며 중계 화면이 다시 무대 위로 돌아갈 때.

-앵콜.

-앵콜.

어디선가 작은 외침들이 흘러나오면서 무대 위의 연주자들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근데 방금 앵콜 목소리 중에 지호 목소리 같지 않았어?”

“아니겠지.”

정답이었다.

“잘했다. 프락치 5호.”

“헷. 감사합니다.”

객석에서 앵콜을 외치며 사람들을 부추긴 막내가 누군가의 쓰담쓰담을 상으로 받고 있을 때.

슬슬 TV 채널을 돌리려고 준비 중이던 사람들이 눈을 빛냈다.

‘뭐가 더 있나?’

앵콜을 외치는 관객들에게 미소를 지은 연주자들이 다시금 제자리에 앉았다.

현 시대의 전설로 꼽히고 있는 색소폰 연주자 카밀라 베이커의 얼굴에 클로즈업되는 화면.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풍채 좋은 여인이 피아니스트에게 눈짓을 하며 신호를 보낸다.

“오.”

피아노를 간질이듯이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솔로를 시작으로 재즈 밴드의 곡이 시작됐다.

그리고 시작된 것은 다름 아닌 즉흥 연주였다.

[For Sun]

PBS 중계 화면에 그런 자막이 떠오른 가운데 연주자들이 즉흥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월클들이 모이면 즉흥으로 이게 되는구나;

-저기 연주자 중에 몇몇은 선명주 키즈로 이번에 다큐 나왔던 분들임

-아버님 안목이 정말..

-지금 앵콜곡 듣는데 눈물 나네요

-저 사람들한테도 의미 깊은 공연이었을 거 같다

저마다 얽힌 사연은 다르겠지만 선명주와의 인연이 있는 이들이 즉흥 연주로 그들 나름의 진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무대 뒤편의 스크린에서 고인의 생전 모습들이 사진과 자료 영상으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저마다 연주에 몰입한 이들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색소폰을 불고, 첼로를 켜면서 소리들이 그림같이 어우러진다.

자유롭고 감정적인.

그야말로 재즈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그날의 공연이었다.

*   *   *

희한하게 을 듣고 있다 보면 어딘가 독특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분명 20년 후의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는 곡이라는데.

왠지 모르게 나한테는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주 씨.”

공연 관계자가 내게 말했다.

“이제 곧 나가실 시간이에요.”

“네.”

거울을 바라보면서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이곳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지휘자들이나 메인 연주자들이 나가기 전에 대기하는 공간이었다.

“자.”

넥타이 매무새를 고쳐주는 스타일리스트에게 감사의 눈빛을 전하고는 거울 속 나를 확인했다.

미소 좋고.

이빨에 뭐 낀 거 없고.

-와아아아아아아!

바깥에서 함성이 들려온다.

공연을 비롯해 TV 중계는 끝났지만, 오늘 관객들에게 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내가 할 예정이었다.

연주자들의 마음이 담긴 앵콜 무대가 끝나고.

“와아아아아아아-!”

음악인 선명주를 대신해 내가 입장했다.

환한 조명.

박수 소리.

그저 무대에 오르기만 해도 이렇게 신이 나는 걸 보면 나도 무대 체질인 모양이다.

-네.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서는 객석의 얼굴을 확인했다.

피곤함, 흥분, 행복함.

다양한 얼굴들을 확인하고는 부드럽게 웃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제가 올라오게 되었는데요. 오늘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근처에 다가온 카밀라 베이커와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우선적으로 오늘 연주에 힘 써 주신 분들에게 환호 부탁드리겠습니다. 카밀라 베이커, 레이먼드 어윈…….

연주자들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관객들이 환호를 보냈다.

그런데 말을 이어 가려고 할 때 객석 사이의 통로에서 어딘가 웅성거림과 소란이 인다.

뭐지.

순간적으로 착시현상을 본 건가 했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

비슷한 헤어스타일.

어두운 객석 통로 쪽에서 아빠와 닮은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

잠을 오래 안 자면 환청과 환각을 본다던데.

순간적으로 내가 헛것을 보았나 싶었는데, 우리 쪽 연주자들이 웅성대는 것을 보니 아닌 모양이다.

「방금 봤어?」

「뭐야. 선명주 선생님처럼 차려입은 사람이…….」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마자 부랴부랴 자리를 떠나는 뒷모습.

그를 따라 몇몇 사람들이 따라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흘깃 바라보다가 신경을 끄기로 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지.

어떤 관종이 관심을 받으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빠는 저런 걸음걸이가 아니다.

-네, 다시 한번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공연에 와 준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는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엔딩 때 진중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공연 관계자들과 연주자들이 한데 모여 떠들썩하게 수다를 떨었다.

뻥!

공연 관계자가 샴페인을 뜯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이지 끝내주는 무대였어요!」

여기저기 가득한 땀내.

땀범벅이 된 연주자들과 포옹을 하면서 오늘 공연의 성공에 대해 축하 인사를 나눴다.

넥타이를 풀어헤친 채 기진맥진한 연주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어깨를 부딪쳤다.

「정말 고생하셨어요.」

「오늘이야말로 시작인 걸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온몸에서 모락모락 김을 뿜어 낼 만큼 연주에 매진했던 연주자들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던 카밀라 베이커가 물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건 뭐예요? 명주를 닮은 사람이 객석 중간에 서 있던데, 그것도 공연의 일부인 거예요?」

마침 그 질문에 나도 곁에 서 있던 매니저에게 확인했다.

석환 형이 혀를 차며 말했다.

“방금 전에 가드가 붙잡았는데 미튜버라고 하더라. 아버님과 닮은 분장을 하고 몰카를 하려고 했던 모양이야.”

“……미튜버?”

“횡설수설해서 정확히는 잘 못 알아들었는데. 왜 있잖아. 미튜브에서 몰카 위주로 컨텐츠 짜는 사람들.”

“준비할 거면 재미있는 거나 찍지.”

“어떻게 할까?”

“형이 잘 처리해 줘.”

스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석환 형을 일별하고는 연주자들에게 향했다.

관종 미튜버였다고 설명을 해 주니 연주자들이 ‘asshole’ 이나 ‘moron’ 같은 좋은 단어를 알려 주었다.

나보다 더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에 비해 기분은 딱히 나쁘지 않았다.

저런 걸로 흔들리거나 설레어하기에는 이미 설레었던 적이 너무 많아서 무덤덤하다.

어릴 적에는 지나가는 사람 옷깃만 봐도 따라가서 확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서.

「자자.」

연주자들에게 박수를 치며 흥을 돋웠다.

「끝내주는 공연을 하셨으니 밥도 끝내주는 걸 드셔야죠. 밥을 든든히 먹어야 내일이랑 모레도 공연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오오오오-!」

「오늘 식사는 숯불구이입니다!」

「숯불! 숯불!」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동안 내가 여러 단어를 알려 주었지만 이렇게 발음까지 완벽한 단어는 ‘숯불’이 처음이다.

「김덕순! 김덕순!」

왜 할머니까지 같이 연호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새초롬하게 웃는 우리 할머니를 데리고 숯불구이를 향해 진격하는 연주자들을 보며 웃었다.

그러곤 곁에 서 있는 졸개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뭐 맛난 거 먹을까?”

“형 공연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으니까 제가 오늘 특별히 고기를 사 줄게요.”

중현이가 의기양양하게 말하곤 주머니를 뒤적였다.

“지갑 안 들고 왔지?”

“네.”

“그래. 고기는 마음으로 받을게.”

“저는 카드 있어요.”

이때다 싶어 카드를 내미는 비주의 모습에 웃음이 흘렀다.

오늘은 비주가 쏜다~! 하면서 환호를 하면서 100인분 먹자며 스탭들과 우정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 나니 텅 빈 공연장이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공연이 끝났네.”

“진짜 고생했어요.”

리혁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툭툭 두드렸다.

“이렇게까지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을 텐데. 이제 돌아가면 푹 자고 쉬어요.”

“그래. 그래야지.”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다 끝난 건 아니었다.

무대 위로 작은 카메라 한 대가 세팅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지개를 켰다.

엄밀히 말해 아빠의 공연은 끝이 났지만 아직 완벽하게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커튼 콜(Curtain call).

나는 오늘 무대의 여운을 더욱 길게 남겨줄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   *   *

공연이 끝난 후.

-20년을 넘어 전해진 그의 진심, ‘음악인 선명주와 함께한 2시간’

-PBS1 최근 10개년 최고 시청률? ‘그의 마지막 인사’가 안방을 울렸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음악으로 전 국민 감동시킨 “국민 父子”

검색어 1위부터 10위까지가 선명주의 공연에 대한 것으로 도배가 되고.

SNS를 비롯해 모든 커뮤니티에서 방금 전 있었던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폭증하고 있었다.

잠시 낮잠을 자고 오거나 이슈에 무심했던 사람들이 보고 움찔할 정도.

‘뭐야. 나 빼고 다 봤어?’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음식점이나 카페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공연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우주네 아버지 진짜 잘생겼다.”

“그거 오늘 공연에 나왔던 아까 마지막 곡이 진짜 즉흥 연주라고 하던데, 그게 실제로도…….”

“천재는 괜히 천재가 아니더라. 나 음악적으로 천재라고 누구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

옆자리에서 말한 주제가 옆자리로 옮겨 가고.

그만큼 화제성 높은 까닭에 오늘 술자리의 화젯거리는 선명주가 아니겠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천재의 귀환.

그리고 자신의 명성을 입증한 곡들.

흥분이 가시지 않고 있을 때였다.

“음?”

뉴블랙 TV의 구독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시간에 웬 라이브가…….”

미튜브 계정으로 라이브 알림이 떴다.

[Answer]

그런 알림을 누르자 예술의 전당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앉아 있는 연주자는 바로 우주.

“뭐야?”

“우주가 라이브 시작했나봐. 제목이 Answer래.”

“Answer?”

의문을 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Question’이란 곡 제목이 떠오를 때.

공연 말미에 미래인들에게 질문을 던진 아버지에게 답하듯.

아들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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