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95)화 (79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95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휴우…….”

카메라 너머에서 동생들이 ‘화이팅!’ 하는 플래카드를 흔들며 재롱을 부리는 모습에 웃었다.

긴장된다.

내가 이걸 잘 해낼 수 있을까.

카메라 뒤편에 있는 스탭들에게 손짓을 하는 순간, 이제 미튜브의 스트리밍 창이 뜰 것이다.

[Answer]

Composed by 우주

악보에 적힌 내 이름을 보고는 그 옆에 있는 악보에 적힌 부모님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질문이 있으면 그에 대한 답이 있듯이.

Answer는 Question에 대응하는 곡이다.

서로 간의 연결성이 좋기 때문에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서도 연주하기로 예정된 곡이었다.

그때 가서 공개해도 될 곡을 굳이 먼저 연주하는 이유라면…….

-그런데 우주 씨, 굳이 Answer라는 곡을 비밀리에 감추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올림픽 연출을 맡은 김익환 감독님의 말 때문이었다.

-지금 계획대로라면 올림픽 개회식 무렵에 아버님의 Question은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곡이 될 거란 말이지. 반면에 우주 씨가 연주하려는 곡은 관객들에게 생소할 수 있어.

그 때문에 미리 대중들의 귀에 라는 곡을 익숙하게 해 두려는 이유도 있었다.

그 외에도 이유는 다양하긴 한데.

사실 오늘 아빠의 공연이 끝나고 라는 곡을 연주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냥.

왠지 모르게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강렬하게 든다.

앨범을 제작할 때나 곡을 쓸 때 강렬하게 오는 직감처럼, 가수로서 본능적으로 오늘이 기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30초 카운트다운 해 주세요.”

내 손짓에 카메라 너머 스탭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30초.

29초.

시간이 줄어드는 동안 눈을 지그시 감았다.

-너는 잘 지내니?

의 멜로디 사이로 들려오는 듯한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를 감각으로 느끼며 답했다.

-저는 잘 지내요.

근처에서 두 손을 모으고 응원하는 비주, 팔짱을 낀 채 진중하게 바라보는 중현이.

자기 일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긴장하는 리혁이와 옆에서 마냥 웃고 있는 우리 막내.

그 뒤에서 스탭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석환 형과 우리 매니저들까지.

카메라에는 홀로 나오지만, 홀로 있지 않은 공간에서 작게 미소를 지으며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지금 연주할 에 어떤 감정을 담을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   *   *

미튜브.

Y앱.

인스타를 비롯한 SNS.

뉴블랙과 연관이 있는 모든 플랫폼에서 라이브 스트리밍이 뜨면서 시청자들이 삽시간에 몰려들었다.

-what is it

-라이브??

-Say hello to Manila

-스픽 코리안 이 새기들아

-지금 라이브 방송 주제는 뭔가요?

-헐ㅋㅋㅋㅋㅋㅋ 뭐 하나여

-Answer면 새로운 곡?

얼떨떨해하는 외국인들과 다르게 한국인들은 은연중에 짐작을 하고 있었다.

‘Answer면 설마…….’

오늘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곡이 바로 아니던가.

질문과 대답.

자연스러운 연결을 하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 그랜드 피아노가 들어오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주가 곡 썼나 봐.”

“곡?”

“제목이 Answer인 것 같은데, 이거 아버지 곡에 대해서 답변하는 식으로 뭐 쓴 거 아니겠어?”

그에 호응하듯 국민 아이돌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어…….’

그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빼어난 퀄리티에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버지가 남긴 곡의 뒷 페이지를 작성한 것처럼 곡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방금 전에 들었던 의 근사한 멜로디들이 스쳐 지나가고.

거기에 답을 하듯 새로운 멜로디가 이어졌다.

“이거 진짜 느낌이 이상하네.”

“그러게.”

일반인들에게는 왠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을 주는 곡이었다.

아무리 유명한 클래식 음악이라고 해도 제목을 모른 채 듣는다면 저마다 감상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따사로운 봄의 정원을 주제로 한 음악이라 해도 누군가는 해변을 떠올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주가 들려주는 곡은 정말 질문에 대답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진짜 대답을 해 주는 것 같네.’

정확하게 표현은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두 곡이 퍼즐의 서로 다른 조각처럼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분명히 구성이나 멜로디가 다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그들에게는 미스터리의 영역이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나.’

모두가 부자가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지금처럼 피부로 와 닿은 적은 처음이었다.

-지금 우주 신곡으로 라이브방송 중입니다. 다들 얼른 와서 보세요ㄷㄷㄷ

-타이밍 대박ㅋㅋㅋㅋ

-우주 노 개 잘젓는구나

-우주는 노를 젓는 게 아니고 물을 가지고옴; 노는 졸개들이 젓는 거

-answer라는 이 곡 표절은 아니겠죠?? 새로 작곡한 노래라고 하기에는 넘 좋네요.

타이밍도 대박이었다.

사람들의 관심도가 최고조일 때 자연스럽게 Answer라는 곡을 가지고 나타났으니까.

게다가 곡의 퀄리티가 뒷받침되니 화제성은 더욱더 상승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 그런데 벌써 후반부네?’

여기저기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우주의 라이브 방송을 보기 위해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이미 곡은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총 2분 40초.

아버지의 곡에 비하면 다소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

운 좋게 라이브 방송에 접속한 사람들은 Answer를 들으면서 왠지 모를 감흥에 젖는 중이었다.

‘아버지의 공연을 아들이 완성한다.’

아버지와 닮았지만 보다 더 수려한 얼굴.

재즈였던 Question과 다르게 팝 장르 같은 Answer.

오케스트라와 같은 구성이 아닌 피아노 솔로곡.

대비되는 점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는 화려한 미모의 청년에게 처음으로 아우라를 느낀 한국인들이었다.

“근데 곡이 너무 좋다.”

“어디서 들어 본 적은 없는데 왜 이렇게 표절 같지? 좋은 쪽으로.”

나중에 표절로 판명난 곡들을 들었을 때처럼 ‘이게 원곡이라고?’ 할 만큼 빼어난 곡이었다.

당사자도 그게 의심이 가서 표절은 아닌지 노르웨이와 루마니아같이 온갖 나라의 음악을 뒤적였을 정도였으니, 일반 대중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구성이나 완성도적인 면을 뛰어넘어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행복하다.’

음악에서 풍겨 나오는 감정이었다.

무언가 즐거운 상상을 하는지 행복한 미소를 입에 가득 머금은 미남이 손가락을 부드럽게 움직인다.

-제가 없는 세상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먼저 떠나간 사람의 질문에 그런 대답을 하는 것 같다.

세상에는 여전히 슬픈 일들이 가득하나 그에 못지않게 행복한 일들도 가득하다.

이란 곡이 신나게 축제를 벌인 후에 내일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곡이라면, 는 내일의 사람들이 어제의 사람들에게 잔잔하게 저마다의 답을 말해 주는 듯한 곡이었다.

‘더… 더…….’

계속해서 조금 더 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

야속하게도 2분 40초가 지나면서 우주의 연주가 끝났다.

“…….”

전국에서 라이브를 시청하던 사람들이 멍하니 바라볼 때.

자리에서 일어난 우주가 아버지와 똑같은 동작으로 대중들을 향해 부드럽게 허리를 숙였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자막.

[라이브가 종료되었습니다.]

약 3분.

짧다면 굉장히 짧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시간 검색어]

1위. 우주

2위. Answer

3위. 우주 라이브 방송

선명주의 공연이 끝나고 흥분 상태였던 대한민국이 한 차례 더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   *   *

지난 며칠은 정말이지 꿈같은 시간이었다.

-PBS1 ‘돌아온 선명주’ 시청률 47.1% 기록, 최고의 1분은 “Question”

경쟁자 없는 한산한 시간대긴 했지만 무려 50퍼센트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던 이번 공연.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시청률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정말이지 행복한 소식들이 쏟아진다.

[안녕하세요. 이번 공연 다녀온 선명주 팬클럽 회원입니다. (후기)]

이번 공연을 너무나 행복한 기분으로 보았다는 후기글도 인터넷에 속속들이 올라오고.

유령 카페와 같은 분위기였던 아빠의 팬카페에 회원 수가 한 시간에 1만 명씩 증가했다.

새로운 활동이 없는 만큼 이 분위기가 얼마나 길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아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

무엇보다…….

“형. 저 이거 캡처했어요. 아직도 1위예요!”

“진짜?”

“네, 이거 봐요.”

비주가 보여 주는 망고 차트를 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며칠이 지난 지금도 망고 차트의 최정상을 지키고 있는 아빠의 앨범.

별점 개수가 어마어마한 [His Last Vow]라는 앨범의 곡들이 현재 차트 최정상을 휩쓸고 있었다.

[일간 차트]

1위. 선명주 - Question

2위. 선명주 - Brunch

3위. 선명주 - 고백

4위. 선명주 - 세상이란 작은 연못의 배가 되어

1위부터 3위까지는 고정이고, 20위와 30위권까지 거의 줄세우기를 하듯이 곡들이 알박기를 하고 있다.

최근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있던 노래들이 싹 밀려나 있다.

우리의 Coin도 밀려나 있긴 한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근데.”

리혁이가 인터넷 반응을 모니터링하며 물었다.

“Answer는 대체 언제 발매되냐고 사람들이 게시판에 계속 글 쓰고 있는데요. 회사에도 문의 들어오고 있다면서요?”

“그건 좀 시간이 지나서 발매하려고.”

“빨리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래도 되긴 하는데… 뭔가 그러고 싶어.”

지금은 아빠에게 온전히 관심이 가도록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다른 악기까지 들어간 풀 버전은 평창 올림픽에서 연주할 계획이기도 하고 말이야.

음원 발매를 안 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Answer를 연주한 영상의 조회수는 지금도 순간순간 수십만 뷰씩 늘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물론, 화제성이 어마어마한 만큼 잡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과하고 싶대.”

매니지먼트팀 사무실에서 석환 형으로부터 얼마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또 들었다.

“사과? 누가?”

“저번에 몰카 기획했던 놈들 말이야.”

“아.”

그제야 기억이 떠오른다.

공연 마지막에 갑자기 아빠처럼 분장을 하고 나타난 관종 미튜버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대국민 깜짝 서프라이즈를 기획해 보려고 합니다ㅋㅋㅋ]

…라면서 ‘고인이 된 음악인을 기리기 위한 특집 몰카!’ 라고 계획을 했다는데 본인들 딴에는 참신한 기획이라 여겼나 보다.

구독자 수십만이 있는 유명 미튜브 계정이라고 하던데.

그날의 소식이 퍼지면서 전방위적으로 욕을 먹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네티즌이랑 기싸움 하더니… 나중에는 못 버티겠는지 울면서 너한테 사과하겠다고 영상까지 올리고 난리 났다. 그 와중에 구독자 많은 계정은 못 버리겠다 그런 거지.”

‘영상 볼래?’ 하는 석환 형에게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런 것까지 봐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무대응으로 일관해 줘. 저런 경우는 사과 받아 줘서 좋아지는 일이 아니라서.”

“알았어.”

“그리고 별도로 입장 안 내는 게 좋을 거 같아. 괜히 우리 안티들까지 구독자로 붙어서 체급만 키워 주는 꼴이라.”

어차피 사과하겠다고 하는 것도 ‘당사자가 사과 받아 줬는데 너네 왜 계속 왈가왈부함?’ 이라는 방패를 얻으려는 목적이 뻔하다.

“그 밖에 다른 건?”

“음… 이건 아직 지켜보고 있는 사안인데, 수사기관 쪽에서 서면조사 관련 요청이 올 수도 있을 것 같고.”

“응?”

“고발이 들어갔대. 아버님이 악보를 남겨 준 게 편법 상속이나 탈세에 해당되는 것 아니냐는 고발이 있었다고.”

무슨 이상한 단체에서 고발을 넣었다는 말에 웃음만 나왔다.

석환 형도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국적으로 이슈가 된 공연이라 그런지… 난리도 아니야. 지금도 회사 홍보팀에 문의 전화 들어오고 있다더라.”

“무슨 일 있어?”

“아버님 공연 기금으로 조성된 금액 말이야.”

“아.”

“공연 수익이랑 남은 기금을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신다고 했잖아. 그것 때문이지 뭐.”

어마어마한 액수가 모인 까닭일까.

각종 재단에서 ‘우리 재단에 유치해 달라’ 하면서 끈덕지게 전화를 걸거나.

우리 애가 음악을 하는데 돈을 달라, 어려운 사람 돕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며 요청하는 전화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진짜 별별 일이 다 있네.”

“그러게 말이다.”

이런저런 불편한 일들이 있긴 했지만 기쁨이 더 크니 딱히 별다른 감흥이 없다.

세상은 참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감상 정도.

아빠를 향해 왔다는 팬레터들이나 응원 메시지들이 보관된 박스들을 바라보면서 작게 웃을 때였다.

“그래서 기금은 어떻게 할 계획이야?”

“그 부분은 미리 계획한 대로 하려고.”

*   *   *

공항 라운지.

개운한 안색의 연주자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3일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낸걸요.」

다음 목적지인 일본행 비행기에 탑승하러 가는 연주자들과 하나하나 악수를 나누고.

「흐음, 혹시 덕순 양이 나에 대한 말을 하지 않던가?」

「좋은 분 같다고 말씀 하셨어요.」

「아무래도 공친 거 같군. 하하!」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들었던 윈스턴 로스 선생님과도 가볍게 포옹을 하며 배웅했다.

재즈 블루스를 흥얼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본 후.

두툼한 캐리어 손잡이에 손을 올린 금발의 프랑스인과 악수했다.

「폴.」

「우주.」

「정말 폴 덕분에 공연을 이렇게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어요.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예요.」

「뭐, 내가 이런저런 일을 하긴 했죠.」

작게 미소 짓는 프랑스인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모금 파티부터 시작해서 오늘 공연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세세한 부분까지 도움을 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였다.

그 시작점을 함께 했던 만큼 종착점도 부탁하기로 했다.

「기금을 어떤 식으로 운용할지 결론을 내렸어요.」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요?」

「믿을 만한 재단이나 운용처를 알려 줄 수 있나요? 다양한 곳으로 분산을 하고 싶어서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기본적인 투자전략이긴 하네요. 하긴… 한 곳에 맡기기엔 금액이 어마어마하죠.」

그런 말을 하던 폴 로랑이 물었다.

「차라리 우주가 재단을 하나 만드는 건 어때요? 할리우드 스타들이 에이즈 퇴치나 아프리카 기아를 위한 재단을 만드는 것처럼요.」

「그런 쪽으로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닌데 상황이 녹록치 않은 편이어서요.」

아무래도 기금을 운용하는 재단에 발을 들이면 뭔가 법적으로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아이돌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돈이 얽힌 문제와는 최대한 물러나 있을 생각이다.

게다가 모든 일에 신경을 기울여야 직성이 풀리는 게 내 성격인데, 지금 같이 본업으로 바쁜 상황에서는 내가 직접 관리를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언젠가 이런 재단을 세우게 된다면 이름은 생각해 뒀어요.」

「뭔가요?」

「은명 재단이요.」

부모님의 이름에서 ‘은’과 ‘명’을 합친 이름.

한국어로 ‘Destiny’를 의미하는 단어와 어감이 비슷하다고 알려 주니 폴이 웃었다.

「그런 재단이 꼭 생기면 좋겠네요.」

「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조용히 미소를 짓는 피아니스트와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누고는 손을 흔들었다.

석양이 보이는 출입구로 캐리어를 밀고 사라지는 이를 바라보고는 나도 몸을 돌렸다.

기다리고 있던 동생들이 날 맞이했다.

“진짜 끝났네요.”

“끝이네.”

동생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1월부터 정말이지 숨 가쁘게 준비했던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 가는 순간이었다.

어딘가 허전하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하다.

물론 아빠의 공연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내일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유럽 등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진행될 테니까.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안에서의 일은 끝난 기분이다.

“자, 가자.”

넷째와 막내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차로 이동했다.

“고마워, 얘들아.”

“뭐가요?”

“너희도 정말 바빴을 텐데, 지난 몇 달 동안 케어해 줘서.”

“뭘요.”

생긋 웃는 비주의 말에 나도 웃었다.

“이제 다시 바쁘게 앨범 준비로 돌아가야지.”

“으어…….”

“왜 그래, 막내? 기뻐서 그래?”

“아버님 공연할 때까지만 해도 신났는데, 지금은 다시 앞길이 막막한 기분이에요.”

까마득한 앨범 준비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지호의 모습에 즐겁게 웃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차에 타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동생들을 일별하고는 핸드폰을 조용히 꺼냈다.

이어폰을 끼자 흘러나오는 영상 하나.

[공연은 잘 끝났니?]

[어땠어?]

아빠와 엄마가 사이좋게 얼굴을 맞대고 질문을 하는 영상이었다.

공연은 잘 끝났어요.

[고생했다.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이 진짜 최고라니까.]

공연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 여부를 알 수 없는 부모님인데도 정말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조용히 영상을 보면서 고생했다, 수고했다, 사랑한다 말을 해 주는 부모님에게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저도 사랑해요.

아빠의 팬분들에게 이번 공연이 멋진 작별 인사였던 것처럼.

이번 공연과 관련된 일은 내게도 일종의 작별 인사와 같게 느껴졌다.

그동안 마음속에 가득했던 아쉬움을 털어 낸 기분.

예전처럼 부모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편이 아려오고 하는 일은 이제 없을 것 같다.

대신에 그 자리를 이제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뭔가가 차지하는 느낌.

[건강히 잘 지내야 한다.]

[잘 먹고, 푹 자고, 잘 웃고. 알았지?]

영상 속 부모님이 마음속으로 당부하는 이야기들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도 작별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요. 두 분 다.

덕분에 오늘은 편안히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

스르르 쏟아지는 잠기운에 저항하지 않고 부드럽게 온몸을 맡겼다.

간만에, 평안한 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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